서사적인 디자인으로 자신을 이야기하다, Reddy의 정규 5집 <5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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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30 12:28:58

 * 이 글은 지난 5월 18일에 작성됐습니다

 

'500000'이라는 제목은 언뜻 보기에 무언가 뜻을 종잡을 수 없다. 앨범 표지를 보니 여러 명의 레디가 있고 옷 가게처럼 보이는 장소가 있다. 그러나 가운데 있는 레디의 표정이 좋지 않다. 그는 실제 레디의 가장 최근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으며 최근의 자신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모든 곡이 올 타이틀이다. Skit과 Interlude도 타이틀인 것을 보니 전체를 들어야만 하는 앨범인 듯하다. 타이틀에 인기를 집중시키는 대중성을 놓았지만 정규 5집으로서 말하고자 하는 서사가 있어 보였다. 앨범 소개는 간단했다. '김홍우에 대한 앨범', Reddy의 정규 5집 <500000>.

 

많은 대중이 기억하는 레디의 모습은 이렇다. '옷을 잘 입고 쇼미더머니 5에 출연했던 래퍼'는 가장 일반적인 대중들의 인식일 것이다. 한때 패션 브랜드에서 일도 해봤고 디자인도 직접 해봤던 그는 패셔니스타 래퍼로 유명하다. 이후 쇼미더머니 5 출연과 G2와의 디스전, 씨잼과 함께 한 '현상수배'까지가 그들의 기억 속 레디였다. 사실 뮤지션은 자신을 표현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지만 정작 자신의 서사를 잘 들려주는 이는 적다. 또 자신을 이야기로서 잘 풀어내고 드러내는 사람 역시도 적다. 그런 점에서 레디의 이번 정규 5집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사적으로 디자인한 이번 앨범 트랙들은 대중적이지 않지만 적어도 레디라는 사람을 들여다보게 했다.

 

이 기분을 숨길 수 없어 지금의 레디, 아무도 내 기분을 모를테지

24, 예전으로 같이 돌아가보자고

- Reddy <500000> 1번 트랙 '500000' 중에서

 

 

 

50만 원을 받고 공연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앨범의 서막이 열린다. 레디는 아무도 자신의 기분을 모를 테지만 현재의 기분을 숨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1번 트랙의 마지막에서 예전으로 같이 돌아가 보자고 말했다. 앞으로 자신이 살아왔던 과거와 현재까지를 말하겠다고 암시한다. 이어진 '생매장'이라는 뜻의 'Buried Alive' 제목을 가진 2번 트랙부터는 과거 이야기가 시작된다. 돈이 행복의 동의어라고 보았던 과거의 그는 돈을 좇고 돈에 쫓기는 삶을 살았다. 음악만 하며 살고 싶었지만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투잡이었던 과거, 현실과의 괴리와 택배를 쌌던 시절이 담겼다. 두 문장이 당시의 상황을 표현한다. '산 송장이야 이거야말로, 정글 속 여긴 진흙탕 난 벗어나고 싶어 정말'. 이 트랙은 강렬한 비트와 함께 당시 레디가 느낀 삶의 환멸감과 지겨움이 드러난다.

 

세 번째 트랙 'Humantree'는 Skit이다. 래퍼들의 앨범에서 Skit은 주로 농담, 또는 촌극의 역할을 한다. 옷 가게에서 문의 전화를 받는 레디와 레디를 알아본 자의 대화는 분명 속뜻이 있어 보인다. 사실 재고 문의를 하는 사람은 래퍼 스웨이디다. 2012년 무렵 남포동 고사우스에서 일하며 음악 하던 스웨이디는 레디의 팬이었고 휴먼트리에서 일을 하는 레디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와 전화 통화가 연결될 때면 떨리곤 했다고 스웨이디는 회상한다. 한편 앞의 트랙들은 네 번째 트랙 'Hmmm'으로 이어지는 단추가 됐다. 'Buried Alive'의 마지막 파트 가사는 'Hmmm'의 첫 파트 가사와 일치한다. 같은 가사지만 다른 멜로디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르다.

 

 

옷을 팔아야만 했던 레디의 불안정했던 삶은 팬들을 뒤에 두고 창고 정리를 해야만 했다. 돈이 없었기에 투잡을 뛰었고 그 사이 늦게 시작했던 래퍼들은 레디를 앞질렀다. 믹스테입을 듣고 레디를 컨택했던 팔로알토가 조언을 건넸지만 여전히 힘들고 버티는 레디의 삶이 계속된 것이다. 레디가 바랬던 삶은 이런 것이 아니었고 삶이 조각난 기분을 느꼈다. 이후 힙합이 레디를 지루한 일상 속에서 건져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된 삶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세상의 반응은 추웠고 시간이 흐르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무서웠던 것. 뮤직비디오와 함께 들으면 훨씬 가사가 잘 다가온다.

 

 

"난 늦었으니까 두 배로, 잠을 줄여야지 두 배로

앞선 애들보다 두 배로, 두 배로 두 배로 두 배로 두 배로"

 

- Reddy <500000> 5번 트랙 '두 배로' 중에서

 

래퍼로서의 삶을 시작했지만 추웠던 세상의 반응을 이겨내기 위해 레디가 선택했던 것은 노력이었다. 옷을 팔던 시절, 자신을 앞서나갔던 래퍼들을 다시 제치기 위해 '두 배로' 열심히 했다. 여전히 버는 돈은 같고 낮과 밤의 직업이 달랐지만 무엇이든 두 배, 세 배, 네 배에 될 때까지 했다. 그러다가 군대도 다녀오고, 또 몇 배든지 열심히 했다. 여섯번째 트랙은 'Teenage Shopper', 간주 파트에 해당하는 Interlude다. 지하철을 타고 이태원역에 도착해 내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딱히 가사로서 의미가 있는 파트는 아니지만 다음 트랙에서 이태원 길거리로 이어지는 복선이다. 또 십대 쇼핑객, 즉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6호선 이태원역에서 쇼핑을 하던 자신에 대한 트랙이다.

 

 

7번째 트랙 'I Was a Boom Bap Kid', 이태원의 쇼핑객이자 붐뱁을 뱉던 시절의 레디가 펼쳐진다. 디제이 스케줄 원과 CB Mass, Mobb Deep, YDG를 즐겨들었고 힙합을 좋아하던 안경잽이가 묘사된다. 당시 레디에게는 이태원이 청담동이었다고 한다. 즉, 당시 이태원에서의 쇼핑이 마치 청담동에서 명품을 사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10만 원이면 아래위 버버리로 맞춘다. 지금은 청담동 본사로부터 스폰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됐지만 그에게도 가짜 명품을 사던 시절이 있었다.

'수면 위'는 힙합씬의 관심거리 중 하나인 'The Cohort' 크루에 대한 트랙이다. 레디는 한때 코홀트의 일원으로서 컴필레이션인 Orca-Tape을 발매하며 호평을 받았었다. 그러나 이후 개인적 사정으로 크루를 탈퇴했고 그 이유가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많은 리스너들과 팬들의 예측이 난무했다. 레디가 쇼미더머니 출연을 결심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고 오케이션과 다툼이 있었다는 말도 많았다. 이에 레디는 정규 5집에서 코홀트 이야기를 말하겠다고 밝혔던 바가 있다. 결국 앨범이 발매됐고 코홀트와의 이야기를 풀어낸 트랙인 '수면 위'가 세상에 나왔다.

 

 

"걔네는 모여서 작업해, 내가 일하는 시간에

내일 그다음 내일도 난 못 껴, 일하러 가야 돼

-

집이 좀 살았다면 걔들처럼 했겠지 나도

이게 자격지심인가 기분 별로 걔넬 봐도

질투하게 돼 자꾸 미워하게 돼

내 영혼이 조금씩 금이 가고 파괴돼

-

지들끼리만 즐겁네 이건 아니지 가족이

같이 있는데도 혼자인 거 같았어

못 견디겠어 난 박차고 나왔지 말없이

-

무리에서 낙오된 범고래 한 마리

소문들은 인터넷에서 퍼져 강같이

하나같이 사실이 아닌 이야기들이

사실처럼 쓰이고 그것들이 또 퍼졌지

Orca-Tape CD 아직 내 방에

니들이 궁금해했던 얘기지"

 

- Reddy <500000> 8번 트랙 '수면 위' 중에서 코홀트 관련 가사

 

요약하자면 코홀트 멤버들과 레디 사이에는 금전적 괴리가 있었고 레디는 그 사이에서 미움과 질투심을 느꼈다. 서로 달랐기 때문에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레디는 일하러 갔지만 코홀트 멤버들은 작업하고 놀았던 것이다. 코홀트의 시작은 미국 대학교에 다니는 래퍼들과 한국계 미국인 등이었다. 키스에이프, 오케이션 등은 레디와 달리 금전적인 배경이 받쳐주고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게 됐다. 코홀트의 마스코트는 범고래다. '무리에서 낙오된 범고래 한 마리'는 레디를 의미하며 개인적 감정으로 탈퇴했으나 예측들이 퍼졌음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여전히 Orca-Tape(코홀트 컴필레이션)을 소장하고 있고 개인적 감정이 있기는 하지만 잊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결국 다음 트랙인 '치트키'에서는 김홍우라는 사람이 래퍼 레디로서 뱉었던 가사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코홀트 탈퇴 시에도 매스미디어를 두고 의견 차가 있었을 것이고 쇼미더머니 출연을 두고 생각이 많아졌을 것이다. 과거 'Fuck mass media'와 같은 가사를 썼지만 이제 와서 출연을 결심한다는 것이 맞는 것일지 고민하는 모습이 담겼다. 사실 가사를 썼을 때는 진심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방향으로 가서는 언제 돈을 벌고 빚을 갚을까, 또 앨범이 죽을 쑤는 모습을 보며 출연하게 됐다. '지치기 직전, 난 미치기 직전', '절벽 끝에서 내가 떨어지기 직전'은 2016년 당시의 쇼미 출연 전 레디의 모습을 표현해 준다. 마음은 급해지는데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누가 대신 살아본 적 없는 내 삶이

얼마나 깜깜했는지 몰라 nobody

살아야지 일단 얼마 안 남은 시간

내년이 되면 관둬야 할 것 같았던 음악

-

이용해야 했어 욕하던 시스템을

내가 생각하던 멋과는 달랐어도 "

                          

- Reddy <500000> 9번 트랙 '치트키' 중에서

                             

원하지 않았던 시스템을 이용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게 됐다. 자신이 가진 책임감은 컸으며 자신의 기준과 달라도 나아가야만 했던 삶을 설명한다. '기회는 맞어, 나한테도 그랬고', '양날의 검'으로 쇼미더머니를 말하고 있다. 결국 레디의 삶은 나아졌다. 'G2와의 디스전' 그리고 '현상수배'와 '신사', 'Like This'는 레디를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9번 트랙 'Baby Driver'는 그런 레디의 모습을 그렸다. 자동차도 사고 성공을 맛보며 인기에 취한 모습이다. '원하던 걸 가졌고 난 달려, 보이는 게 없지 빨라서'처럼 인기에 취해 둘러보지 않고 달렸다.

 

 

11번째 트랙인 'No Worries'에서는 인기가 끝나가고 걱정 없이 살고 싶은 마음을 말하고 있다. 앨범을 내도 돈을 벌지 못했던 시절을 지나 큰돈을 만졌지만 또다시 말라가는 상황 속에서 방향성을 찾아야 했다. 가진 게 많아졌지만 가진 게 보이지 않았던 시절. 이제는 유행보다 제일 자신다운 것을 담길 원한다. 이번 앨범에도 다른 무언가가 아니라 온전한 자신을 담고자 했다. 불안함에 익숙해지고 방향을 잃은 방황, 이제 돈은 충분해졌다. 그럼에도 자신 안에 공허함이 생겼고 비어있는 공간들을 돈이 아닌 무언가로 채워야겠다고 생각한다. 'No Worries', 그가 원하는 것.

 

마지막 트랙인 'Fade Out'에서는 잊히기 싫은 지금의 상황이 이야기된다. 인기가 반짝하고 말았지만 그런 삶이 아니라 기억되는 자신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시간이 갈수록 외로워지고 잊히기 싫어서 더 열심히 하는 레디. 그렇게 앨범이 마무리되었다. 앨범에서 전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레디의 삶'이지만 사실 일반적인 래퍼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여전히 매스 미디어의 개입 없는 래퍼로서의 삶을 꿈꾸는 이들이 많지만 그 앞에 무릎을 꿇은 뮤지션도 많았다. 돈이 필요했던 시절과 자신의 음악에 대한 차가운 반응, 또 인기가 찾아오지만 결국 언젠가는 떠나간다. 마지막으로는 잊히기 싫은, 영원함을 원하는 모습까지 가장 일반적이지만 가장 특별한 삶의 서사.

 
글 / HIPHOPPLAYA EDITOR 김동현 (gunners2537@hiphopplaya.com / @kimd0nghye0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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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1 20:06:05

솔직함이 가장 큰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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