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한 맨션에서 펼쳐지는 불쾌한 이야기, 쿤디판다와 김라마의 정규 앨범 [송정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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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10-07 17:46:37

지난해 쿤디판다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을 들려주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쇼미더머니5>에서 탈락하며 좌절을 맛봤던 예전과 달리 자신을 증명하고 온전히 실력으로 검증받고 싶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실력에 대해 자신감이 가득했다. 정규 앨범 [가로사옥]이 오랜 시간을 거쳐 발매를 앞둔 7월, 그의 인터뷰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앨범을 여러 차례 돌려보고 서사를 짚어 보면서 느꼈다. 그의 자신감은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는 것. 이내 <쇼미더머니9> 출연 소식이 들려왔고 그의 성공을 기원했다. 그러나 한편에는 '과연 대중에게 쿤디판다라는 캐릭터가 방송으로 잘 다가갈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들었다. 그는 그런 걱정을 보기 좋게 떨쳐냈고 '뿌리'라는 명곡을 뽑아냈으며 [가로사옥]은 한국대중음악상의 '2021 최우수 랩&힙합 음반상'을 수상했다.

 

기분 좋게 한 해를 마친 쿤디판다는 2021년,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크루 서리(30)와는 재밌는 컨셉의 [THE FROST ON YOUR KIDS] 발매를 시작으로 MD 판매와 마케팅을 자체적으로 해냈고 이어 5월에는 청각적으로 재밌게 구성해낸 게임 컨셉 기반의 [MODM : Original Saga]를 발매했다. 이때는 MODM 게임도 만들어 앨범 마케팅에 활용했고 실제로 힙합 헤비 리스너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 열기가 식기도 전에 담예, 비앙, 누기로 구성된 슈퍼밴드 플랫샵의 구성원으로 [Khundi Panda VS DAMYE VS Viann VS Noogi]를 발매했다. 이때는 서로 티격태격하는 컨셉을 기반으로 찌질한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여기에 딩고와 함께한 <힙합 청년부 데자부>에서는 역대급 재미를 선보였고 [Wrote This Tomorrow] 컴필레이션 발매로 절정을 찍었다.

 

65트랙. 쿤디판다의 크레딧이 박힌 올해 발매된 모든 곡의 수. 올해의 허슬러를 넘어 '올해의 아티스트' 타이틀을 넘보고 있는 쿤디판다. 놀랍게도 그는 10월, 인디 아티스트 김라마의 손을 잡고 정규 앨범 규모의 컨셉슈얼한 앨범 [송정맨션]을 들고 돌아왔다.

00. 쿤디판다, 그리고 그 옆의 김라마

 

이번 앨범은 2년이 넘는 꽤 오랜 기간 동안 구상됐다고 한다. 김라마와는 [재건축]을 발매한 뒤 연이 닿았고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오랜 시간을 거쳐 정규 앨범 볼륨의 작업물을 발매하게 됐으니. 사실 앨범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쿤디판다에 대한 서사 정리는 충분했다. 이 파트는 김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넣은 챕터다. 김라마는 [외톨이갱을 기다리며]라는 EP를 발매한 인디 아티스트다. 악기와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비트 메이킹은 물론 목소리도 좋고 전체적으로 훌륭한 음악성을 갖추고 있었다. 쿤디판다와 협업 작업물이기는 하지만 [송정맨션]은 어쩌면 김라마에게 더 눈길이 가는 앨범이다. 그가 앨범의 모든 작곡을 맡았고 적재적소에서 서사적으로 유연하게 흘러가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가 2019년 초, 쿤디판다에게 보냈던 메일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추측하건데, 처음 만들자고 제안한 이번 앨범은 이미 2019년 김라마의 머릿속에 있었을 것이기에.

 

마케팅에도 전반적으로 김라마가 관여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의 블로그에 따르면 앨범 발매 날에 딱 음악으로 말하고자 하는 성격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앨범은 발매 직전에서야 소식이 들려왔다. 또, 그는 음악으로만 설명하고 싶어 인터뷰나 뮤직비디오 없이 발매하자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김라마가 음악에 대해 얼마나 진심인지, 또 그가 [송정맨션] 음악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이 전해진다. 물론 음악을 그만두려고 했던 김라마의 메일 한 편을 받아 함께 정규 앨범을 만들기로 한 쿤디판다 역시 안목이 대단했다. 사실 이번 앨범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됐지만 단 한 가지 직감은 확실하게 온다. 곧, 김라마가 음악으로 인정 받고 걱정 없이 음악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직감.

 

01. [송정맨션]

 

송정맨션. 쿤디판다는 역할 수도 있지만, 컨셉슈얼하고 스토리가 담긴 앨범을 예고했다. 그리고 곧 발매된 송정맨션을 듣고 어떤 이야기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번 앨범은 '송정맨션'이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서사적으로 트랙과 트랙의 연결고리를 통해 진행된다. 어떤 영감을 받아 앨범이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랜 기간 동안 마치 소설책을 쓰듯 준비해 온 서사임은 분명하다. 앨범 전체적으로 무언가 낯설지만 따듯한 감성 속에서 이질감과 불쾌함이 전달된다. 그리고 따듯해 보인 감성 속에는 차갑고 딱딱한 가사나 어딘가 화가 치밀어 보이는 듯한 화자의 이야기가 간접적으로 전달된다. 가사는 전체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단지 어렵게 써 놓은 가사처럼 보이지 않고 해석의 여지를 남긴 소설책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재밌었다. 늘 맛있는 소설책을 쓰는 쿤디판다에 서사적인 안정감과 불쾌함을 동시에 가져다준 김라마. 둘의 조화는 완벽했다.

 

그리고 [송정맨션]은 아직 모든 걸 보여주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꼭 앨범을 들어본 이들만 읽어보길 바란다. 만약 들어보지 않았다면 꼭 글을 읽기 전에 앨범부터 들어보고 읽으면 좋겠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앨범이고, 실제로 아티스트도 답을 내리지 않기 위해 인터뷰나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지 않았으니까. 늘 말하지만 이 글은 리뷰도 아니고 정답지도 아니다. 단 하나의 해석이자 음악 큐레이션.

1. 송정맨션

 

'받아쓰기보다 쉬운 너를 안고 돌잡이보다 쉬운 나를 안으면'

 

여기서 너와 나는 연인, 혹은 결혼한 사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헤어질 듯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의 관계처럼 '우리 마음속은 몇십번 이별을 하였지만 누가 밀쳐내고 삐져 등 돌려도 자석이라 돌아와'라고 말한다. 에픽하이의 가사처럼 등만 돌리면 자석이라 밀어낼 수 있지만 반대로 여기서는 가까이에서 밀쳐내다가도 등을 돌리려고 하면 당겨지는 관계를 연상시킨다. 서로 표정을 읽지 못하는 상황, 같이 있는 것도 시간을 뺏는 것 같은 기분도 드는 관계.

 

엊그제 좋다고 했는데 엊그제 서로에게 욕을 퍼부었고 어제는 혼자였기 때문에 혼자 술을 마신 모양이다. 마치 '파트타임 외톨이'처럼. 여기서 포인트는 다시 관계가 돌아올 것을 안다. 지금 잠시 외톨이일 뿐이라고 말한다. 마치 한 맨션에서 펼쳐지는 끝없는 얽히고설킨 관계 같은 문장들이다. 집에는 헌신이 많지만 그마저 밖을 나갈 때면 화자의 상대방은 다른 신을 신는다. 어쩌면 집 밖에 나가서는 다른 짝을 만나는 상대일 수도 있다. 이런 관계는 수십 번이나 반복되었고 이제는 싸운 뒤 복도로 뛰어나간 대상을 붙잡는 건 마치 습관과도 같다. 그렇게 말하는 한 마디는 '어차피 같이 누울 텐데가 내 징그러운 심보'. 돌아올 걸 안다.

 

'다시 들어와 결국 같은 방에 눕겠지, 우리 사는 맨션은 저택이 아니니까'. Mansion은 보통 저택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한국에서 맨션은 저택이 아닌 일반적인 주택을 의미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차피 나가도 갈 곳 없고 돈 없는 삶이 그려지기도 한다. 마치 낡은 맨션에 사는 연인, 혹은 부부처럼. 상대방에게 '넌 나가도 할 게 없어서 돌아와야 할걸?'이라 말하듯이.

 

2. 복도

 

우선 복도는 전 트랙에서 화자가 상대방과 싸운 뒤 붙잡아서 돌아오는 공간이다. 너무 익숙하기도 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정의 관계 속에서 늘 불안함을 느낄지도 모르는 공간.

 

'받아쓰기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무언가 1번 트랙과 이질감이 들게 만드는 첫 가사다. 분명 '받아쓰기보다 쉬운 너를 안고'라고 말하지 않았었나. 기분이 묘하다. 개가 밤마다 짖는 윗집. 그 이유를 '도둑이 드나 봐'라는 말에서 찾고 있다. 사실 진짜 매일 도둑이 든다는 의미는 절대 아닐 것이다. 윗집은 매일마다 다투거나 혹은 화목하거나, 혹은 정말 개가 짖는 장면일 수 있다. 그러나 '소릴 죽이든지 개를 죽이든지 해'라는 말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경고와도 같다. 그리고 이 말로 미루어보았을 때, 윗집 사람들의 행위를 보고 개가 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그 행위를 멈추거나 혹은 개를 죽이거나 하나만이라도 조용히 하라는 의미가 담긴 것 같다. 어쩌면 누려 마땅한 조용한 안식처를 위해 한 마디 용기를 낸 화자. 사과를 들었지만 이내 소리는 반복된다. 한편 '훔칠 것도 없는 집에'라는 말은 저택이 아닌 맨션의 돈이 없는 삶을 사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표현하고 있다.

 

'복도에서 포대기에 싸인 네발짐승을 마치 지가 낳은 것처럼 자랑하는데 맙소사, 그래서 그리 숨 가쁘게 짖었나'

 

윗집의 짐승은 알고 보면 부부의 아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아이를 눈치 없는 짐승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부부에게 '그래서 그리 숨 가쁘게 짖었나'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아 서로의 인류애는 사라진 상황. 부부와 아이를 모두 짐승처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앞서 부실공사를 의심할 정도니 어쩌면 애초에 개를 키우기 어려운 환경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집에서 짖고 있던 건 강아지가 아닌 아이가 아니었을까. 저택이 아닌 맨션에서 강아지를 기르며 화목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었을지 잘 모르겠다. 재밌는 생각을 한 가지 더 해보면 2번 트랙의 화자는 앨범 전체의 화자가 사는 아랫집일 수도 있겠다. 1번 트랙의 부부를 지켜보는 맨션 아랫집 사람의 관점.

 

어쩌면 이 두 가지 해석은 다소 과한 설정일 수 있다. 그러나 이후 '분노에서 애처가의 자세로'라는 가사를 들으며 화자의 분노를 엿볼 수 있다. 이 화자는 맨션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공간인 복도에서 윗집과 다른 처지에 있는 본인의 삶에 화가 난 모양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복도라는 공간에서 받은 충동적인 감정을 괜히 내 사람을 걱정한다는 대의명분의 힘을 빌려 '애처가의 자세'로 다른 곳에 화를 풀게 되는 화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결국 화자는 층간소음을 참지 못하고 화를 풀어버렸다. 매번 신경 쓰던 윗집의 소음과 이웃, 그러나 정작 윗집에서는 누군지조차 몰랐던 모양새다. 컨셉슈얼하지만 낯설면서 어색하고 왠지 모를 인간의 낯빛이 드러난다.

 

3. 돼지손

 

더 이상 화자가 어디에 사는 누군가인가에 대해서는 해석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어쩌면 송정맨션에 사는 각각의 사람들의 사는 삶의 이야기가 아닐까 느껴지기도 했다. 한 서사로 느껴도 재밌고, 각각의 서사로 보아도 재밌기 때문에 이제 화자와 다른 화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지 않기로 한다. 그냥 하나의 서사로서 지켜보기로 했다.

 

이번 트랙에서는 화자가 값싼 술을 먹고 달아오른 모습이다. '그냥 도로 위에 퍽하고 엎질러진 한밤중'이라며 인간의 본능 그 자체를 드러낸 가사가 이어진다. '너와 난 가축을 닮았군'. 뒤에서 들려오는 비웃는 소리는 다른 이들의 웃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인간은 누군가를 보면서 비웃지만 그 조차도 다른 이들에게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결국 그런 사이클의 구조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자조적인 웃음처럼 느껴진다. 본능과 욕구를 따르는 자신이 느끼는 행복감에 대한 자조적인 웃음. 돼지처럼, 그냥 가축처럼 네 발로. 손이 없다. 배고픈 돼지처럼, 손 없이 가축처럼.

 

중간중간 클라이막스마다 감정을 고조시키는 김라마의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서로 느끼는 무언가가 사랑보다 식욕에 가깝다면 넌 동의할까'. 1번 트랙의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불편하고 슬프기도 하다. 값싼 술에 모든 걸 팔고 가축이 되어버린 기분. 값싼 술을 먹는 것조차도 마냥 곱게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 아프고 불편하다.

 

4. 초록포션

 

초록색 포션은 3번 트랙의 값싼 술이 소주임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용서를 빌 듯 손이 발이 되어'라는 가사는 앞서 손이 없는 가축처럼 네 발 돼지가 되었다는 3번 트랙과도 느낌이 비슷하다. 조금 이야기의 초점은 다르지만 결국 손이 발이 되고 무언가 가축과도 같은 삶을 비추고 있다.

 

힘든 삶 속에서 술을 먹고 그냥 기어 다니며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다. 어쩌면 용서를 빌 듯 손이 발이 된 것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허리조차 피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닐까. 힘들어서 소주에 기대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 같다. 소주를 마치 나의 영웅처럼 숭배하는 모습이다. '용기를 부어줘요, 나의 영웅'.

 

5. 수호천사

 

'아침부터 밤까지, 밤부터 새벽까지, 새벽부터 이른 아침'

 

'너는 버스 타 알바하러 대충 홍대로'라고 말하는 가사. 문득 1번 트랙에서 말한 파트타임 알바를 하는 화자의 짝이 생각난다. 물론 뒤의 가사까지 다 들어보면 조금은 다른 관계다. 1번 트랙은 서로 밀어내는 관계지만 이 트랙에서의 화자는 먼발치에서 대상을 지켜보며 스토킹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기서 포인트는 이 송정맨션과 연관된 사람들의 삶을 다시 한번 강조해 주고 있다. 안정적이지 못하다. 알바하러, 파트타임 일을 하러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이다. 이 점에서 생각해보면 1번 트랙과 5번 트랙의 화자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각 트랙들은 단지 송정맨션에서 살아가는 각각의 이야기처럼 들려온다.

 

다시 수호천사 트랙으로 돌아와, 화자는 인스타 팔로우도 확인하고 올린 글을 보고 합리적으로 맞추며 의심도 했고 상대의 일상을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마치 사이코패스, 혹은 스토커처럼. 어쩌면 시간이 흐르면서 '널 지키는 내 존재는 네가 문을 나설 때쯤'. 즉, 상대가 문을 나설 때쯤의 시간을 파악하고 있고 어디로 가는지 다 확인하고 있다. 더 소름이 돋는 것은 지금부터다. '초겨울 되니 춥더라 너 없는 방안이, 여긴 내가 데워줄 테니까 따듯하게 입어'라고 말한다. 상대방도 모르게 옷장에 숨은 스토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몰래 집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보고 자리에 있다가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면 아쉬워하며 집을 떠나는 모습이다. '실제로 본 적 없어, 악수라도 하고 싶어'. 본인은 자신이 스토커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수호천사라고 이야기한다.

 

'네 매력점은 철저하지 않단 것'. 즉, 철저하지 않은 덕분에 집도 들락날락하고 집 안에 양말도 맘대로 갖고 나올 수 있다. 그래도 모르니까. 대학교 캠퍼스에서 벌어진 술자리에서 만난 누군가를 먼발치에서 지켜본 게 다지만 그가 휴학을 할 때부터 가까워진 기분을 받았고 자취하는 곳이 근처라는 사실을 알고 스토킹하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공기를 마신다고 느끼는 것에서도 소름이 돋는다. 누가 같이 오진 않나 지켜보면서 의심하고 심술도 가진다. 담뱃갑도 확인하고 마치 악당 잡는 영웅처럼 비웃는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문고리를 떼어 몇 시간 동안 네 옆에 시체처럼 눕다, 한 번 쓰다듬고 네 방 어디 몰래 둔 나의'. 몰래카메라가 의심되기도 한다.

 

6. 부동산

 

'아침부터 밤까지, 밤부터 새벽까지, 새벽부터 이른 아침'

 

이전 트랙의 초반부와 연결고리를 만들어두었다. 그러나 무언가 철학적이고 비유적이어서 트랙 전체적으로 해석이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초반에는 뭔가 철저하지 못했던 대상의 이야기처럼 들려온다. '파출소가 가까워 CCTV는 필요 없어, 안전하고 값싼 곳 굳이 발 아프게 멀리 갈 것 없어요'.

 

이어 찬송가 같은 음악이 깔린다. 그리고 들려오는 '반달처럼 부른 당신과'. 무언가 임신을 암시하는 것 같다. 집중 단속 구역이니 이곳에 버리지 말라는 말을 놀랍게도 '하늘에서 들려오는 말'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윤리적인 양심이나 무언가 관습적으로 하지 말라고 했던 비윤리적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의도하지 않고 갖게 된 아이에 대한 낙태, 혹은 임신한 연인을 버리는 행위를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조금 더 극적으로 해석하자면 대상을 죽인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단 투기를 하지 말자고 말하는 장면에 부동산 투기를 빗댄 것이 아닐까.

 

7. 빚 - 인플레이션

 

본격적으로 가사가 더 심오해지고 어려워지는 트랙이다. 무언가 계획 없이, 혹은 의도하지 않았던 결혼을 하게 된 이들의 모습처럼 그려진다. '텅 빈 바닷가에서 가족이 되어 빌린 것이 많군요'. 단편적으로는 바닷가에 집을 지어 자연에 빌린 것이 많은 누군가의 모습 같지만 실은 비유적인 표현이다. 마치 텅 빈 바닷가에 살듯, 갑자기 만나 가족이 되어 빚도 많이 지게 된 모습이다. '값싼 돌멩이라도 줍느라고 휜 허리와 저렴한 인생이 극심한 통증을 수반했지'라고 말하지만 이건 당신을 만나고 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자신의 삶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모습 같다.

 

바다는 평안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다르게 보면 어지럽고 멀미가 나기도 하는 공간이다. '하늘이 안 보이는 집'은 마치 반지하를 표현한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면 반지하는 지하의 냄새가 나기도 하고 멀미가 나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반지하를 바다처럼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안에서도 화자와 상대방은 세상에 지지 않을 것이라고 서로에게 기댔다. 그러나 화자가 느끼는 것은 '내가 안고 가는 삶의 공허'. 점점 분위기가 바뀐다. 진짜 너만이 내 삶의 이유였지만 '그 값어치를 믿고 멋지게 살기를 원하지만 배낭을 가득 채워 가도 원하는 건 하나도 못 샀지'라고 말한다. 실망했고 무의미함을 느끼는 화자의 모습. '아이가 깨지 않을 만큼만 서로를 미워할까 했어'라는 표현. 무언가 동반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아이가 있지만 삶의 회의감을 느끼고, 결국 포기에 다다른 모습. 빚은 인플레이션 됐고 아파하는 화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8. 패밀리룸

 

다른 스토리와는 다르게 학생들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분명 송정맨션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되는 이들이다. 전반적으로는 양아치 학생들의 이야기 같다. '그는 땀띠가 나도 춘추복을 입지', '그에게는 매일의 할당량이 주어져, 아마 편의점이나 간판이 낡은 주점,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검사 받기 전엔 주저 해선 안 돼'. 그러나 화자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의심스러운 전화를 받은 뒤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여기에 외치는 '야 시발놈아, 우린 친구 따위가 아냐, 가족이지, 가족이지', '야 시발놈아 날 배린 건 내 친구가 아냐, 가족이지, 가족이지'. 누군가를 회유하려는 전화처럼 들린다. 우린 가족이라고. 그러나 정작 자신을 배린 건 너희가 아니라 실제 가족이라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것은 충분히 보다듬지 못해준 가족의 환경에서 자라온 어떤 학생의 일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가족, 혹은 부모는 송정맨션의 주민이 아닐까. 그렇게 그는 감옥에 다녀온다. 9달 만에 나왔다. '첫 유배지'라는 점에서 다시 갈 가능성도 농후하다. 참치 통조림과 라면은 황제의 식사.

 

9. 모험

 

'언젠가라는 희망 하나 품고 진전 따윈 없는 현실을 걸어서 다시 여기에 단칸 방'. 희망을 갖고 살아왔던 화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마도 화자는 음악가를 꿈꾸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단칸방에서 살며 진전 없는 현실이었고 사치 같은 건반은 치워버린 상태. '여진히 기약 없기에 난 그 옆에 완전히 새로운 계획을 짜뒀네, 불을 지필 도구만 챙겨 떠나 보자 모험'. 불을 지피고 문틈을 막은 채로 어딜 가겠다고 말하는 걸까. 문틈을 막았는데 모험을 떠날 수 있을까. 아마도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로 최선이었을까요 나의 노력'이라고 말하지만 이어지는 아픈 말들. '내가 갚기 위해 바친 젊음도', '상속받은 가난에 맞춰 한 걸음', '사실 내가 진짜 바란 것은 행복도 아닌 청산 하나거든'.

 

10. 전승

 

'상속받은 가난에 맞춰 한 걸음'

 

어쩌면 처음에 느꼈던 가난하고 낡은 맨션의 이미지는 정말 송정맨션의 이미지와 일치할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단정을 짓고 앨범을 지켜보면 풀리지 않는 어려운 내용이 많았다. 마치 한 문을 열기 위해 수많은 열쇠를 쏟아놓은 느낌이랄까. 그러나 생각보다 쉽게 풀린 것은, 그 문 옆에 있던 수많은 문을 찾아서였다. 사실 앨범의 이름은 '송정맨션'이라는 가상의 공간이다. 송정맨션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일들과 인간이 보여주는 불쾌한 낯빛. 그 불쾌함의 근본적인 이유는 가난 혹은 어떤 것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그런 모든 것을 '송정맨션'이라는 대명사로 퉁치고 있었다. 그냥 어려운 단어와 문장들의 연속에서 느껴진 것은 불편함이다. 이 전체를 하나의 서사로 보든, 많은 각각의 이들의 서사로 보든 중요한 것은 속에 담긴 내용이었다. 김라마와 쿤디판다가 전하고자 했던 것은 이와 같은 불편함과 불쾌함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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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021-10-08 01:22:08

정말 인상깊게 들은 엘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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