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l tachi (릴 타치) - Forever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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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5 21:44:12

 

Lil tachi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쇼미더머니 777입니다. 노란색 티쳐츠와 더벅 머리에 방방 뛰면서 하이톤으로 쏘는 랩은 Coogie ZENE THE ZILLA와 같은 핫한 루키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눈에 띄었습니다. 비록 떨어지기는 했지만 인지도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선방해서 힙합 팬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습니다.

 

그 이후 고등래퍼 3에서 파격적으로 이미지를 변신한 이후, 양아치스러움을 가미한 캐릭터로 좀 더 도발적인 이미지를 취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탄탄한 랩 피지컬이 그에 걸맞는 방향성을 부여 받아 양질의 작업물에 잘 담겼습니다. 이후로 여러 경연에서 계속 얼굴을 비치면서 인지도를 쌓았고 어느새 첫 번째 정규 Boombap Mixtape 2를 발매했었습니다. 전작이 없는 후속작인데다가 붐뱁이라는 이름을 단 트랩 앨범이라는 모순적인 작품은 뛰어난 랩 퍼포먼스와 패기 넘치는 태도로 많은 리스너를 열광시켰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인상적이면서도 상당히 허점이 많은 앨범이었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트랙 수와 그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자기복제, 의도는 좋았지만 귀를 피로하게 만든 날 선 믹싱, 개연성 있는 곡 구조의 부재 등등 신인의 잠재력을 확인하기엔 좋았으나 이미 완성되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동료를 먼저 떠나보내는 사건과 성인에 가까운 나이가 되면서 Lil tachi는 조금 더 성숙해진 면모를 보입니다. 가사적으로는 여전히 반항심과 유소년의 허세가 묻어나지만, 음악적인 면에서 많은 것을 다듬고 신중하게 트랙을 배치했다는 인상이 듭니다. 7곡 트랙이라는 상당히 짧은 런닝 타임에서 볼 수 있듯이, Forever Young은 전작과 비교해 제작 과정에서 제대로 된 큐레이션을 거치고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앨범입니다.

 

unofficialboyy Kid Milli가 함께한 첫 트랙 Forever 0부터 전작과는 확연히 다른 음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금속성이 느껴지는 비트인데, 변조된 알람 소리 같은 신스에 깔끔한 믹싱이 트랩 비트 치고는 이례적으로 모든 악기가 선명하게 구별되어서 들립니다. 워낙 미니멀한 구성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전작의 난잡한 구석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 unofficialboyy의 단어 하나하나에 타격감을 주는 훅이 오토튠과도 잘 맞아떨어지고, Lil tachi의 마디마다 강세를 능숙하게 조절하는 플로우는 정말 잘 어울립니다. 주문을 외우거나 남도일의 추리가 필요하다는 독특한 묘사도 재밌었고 Kid Milli의 낮게 읊조리는듯한 피쳐링도 Lil tachi와 대조되는 면이 있어 균형 잡힌 트랙이 완성됩니다. 언제나 0을 쌓는다는 허슬 멘탈리티를 청춘에 대한 언어유희로 풀어내는 것도 소재에 있어 센스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역시 젊을 때 벌어둬야 합니다.


 

 

이어지는 Boinata가 참여한늘어나도 좋게 들었습니다. 상당히 드럼이 무거운데, 트랩이 장기인 Lil tachi가 사뭇 다른 류의 비트를 든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주를 이루는 루프가 전자 건반인데, 스플라이스 같기도 합니다. 명상적이고 우주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편안하면서도 몰입이 되는 사운드입니다. Lil tachi가 사뭇 진지하게 래퍼 활동을 시작하면서 얻은 것들과 잃은 것들에 대해 랩을 하는데, 타계한 동료가 참여했다는 점에서 묘합니다. 스킬적으로도 완벽했고 벌스가 들어갈 때 사운드가 좀 더 풍성해지는 연출도 적절했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Lil Chanel은 다른 의미로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바운스가 극대화 되어 있는 비트가 인상적인데, 거의 드럼으로만 이루어진 면이 2000년대의 Pharrell Williams가 몸을 담았던 The Neptunes가 떠오릅니다. 소재는 흔한 자기과시성 트랙인데, 약을 올리는 듯한 Lil tachi의 톤이 상당히 개구진 모습을 그려내면서 트랙에 개성을 부여합니다. 특히 훅에서 그런 면이 두드러집니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참여한 gamma는 오히려 퇴폐적인 분위기를 내면서 트랙의 흐름을 방해합니다. 준수한 벌스였지만 이 트랙에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4번 트랙 All Black은 반면에 빈틈 없이 좋게 들은 트랙입니다. 인트로에서 어쿠스틱한 드럼 패턴이 갑자기 트랩으로 전환되는 연출도 멋있었고 찌그러지는 신스 라인도 힙합팬이라면 통쾌함이 느껴질 시원함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멤피스식으로 훅에 변조를 거는 것도 잘 어울렸고, 두 번째 벌스는 확성기를 사용하는듯한 디스토션을 거는 것까지 고무적인 재미를 선사합니다. 스킬이 화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적재적소에 들어간 단순한 패턴의 강세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렇게 단순한 구조의 비트들은 BIG Naughty가 벌스를 제공해주는말을 마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201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훅 대신 DJ Wegun의 스크래치가 들어간 것도 기존 Lil tachi의 세련됨을 추구한 트랩과는 거리가 달라보였습니다. 옷을 위주로 과시하는 하이톤의 Lil tachi와 낮은 톤으로 소셜 미디어에서 존재감을 뽐내는 BIG Naughty의 벌스 사이의 균형이 곡의 중심을 잡아줍니다. G-Dragon을 오마주한 BIG Naughty의 플로우도 재밌었습니다. 살짝 아쉬운게 있다면 둘이서 벌스를 같은 비트에 얹었을 뿐이지 함께 제대로 곡을 작업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둘만의 궁합을 보여줬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이후에는 Walking이라는 인스트루멘탈 트랙을 거쳐서 선공개 되었던 Back to the SAG으로 전개됩니다. 정확한 역할 배분을 알 수는 없으나, Walking은 훵크를 기반으로 탄탄하게 설계된 트랙은 맞습니다. 워낙 복고적인 Back to the SAG의 전환을 좀 더 자연스럽게 하는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분위기 환기에는 성공했지만, 좀 더 욕심을 부려서 페이드 아웃 시키는 대신에 그대로 다음 트랙과 이어지는 역동적인 연출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청자의 바람일 뿐이지만 워낙 디테일이 잘 살아 있는 비트라 아쉬움이 남습니다.

 

Back to the SAG은 선공개곡으로 나왔을 때부터 좋게 들었습니다. 같은 크루의 Tendo라는 래퍼가 함께했는데 서로 주고 받으면서 박빙의 랩 실력을 보여주면서 훌륭한 곡이 완성됩니다. 색소폰 리프에 명랑하게 울리는 스네어까지 충격적인 곡이었습니다. Lil tachi가 선택을 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곡이 너무 잘 뽑힌만큼 더 신선합니다. 에어포스 1과 스냅백이라는 요소를 다시 패션 과시용 가사로 보는 것도 특이했고, 평소와 다르게 마디 끝에 강세를 주는 플로우도 목소리와 어울렸습니다. Forever Young의 최고 반전이었습니다.

 

 

앨범은 마지막 트랙 Over (Outro)로 마무리됩니다. 잔잔한 베이스 패턴으로 시작하는 곡이 하우스 음악처럼 비트 드랍이 되면서 퍼지는 공간감을 보여주는데, 나름대로의 청량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토튠이 첨가된 간단 훅이 들어오는데 다양한 소리적 장치와 맞물리면서 화려한 소리의 벽을 형성시킵니다. 그리고 주변 상황을 잘 분간하지 못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Lil tachi의 벌스도 산만한 비트와도 잘 묻어납니다. 다만 문제는 뚜렷한 구조 없이 곡의 절반 가량을 비트가 끌어 간다는 점에 있습니다. 앞선 Walking과 같은 인스트루멘탈 트랙도 아닌데다가 앞서 보컬이 실린 부분과 큰 차이가 없는 비트의 전개 때문인지 굳이 이를 반복해야하나하는 의문이 듭니다. 마무리가 여러모로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Forever Young은 커버에 흰색 배경에 관을 배치해 놓았습니다. 먼저 떠나보낸 동료에 대한 추모의 의미를 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봅니다. 그렇지만 Forever Young은 슬픈 앨범이 아닙니다. 오히려 Lil tachi가 다시 한번 본인에 대한 자신감을 다시 다지고 그 과정에서 자아성찰을 함께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동료의 죽음을 자신이 밟아온 길과 결부시켜 본인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성찰한 계기가 된 듯합니다. 가사에서 이를 노골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낭비를 줄이고 정밀해진 여러 창작적 선택들이 담긴 이번 앨범은 이런 성숙해진 심리를 반영하지 않나 싶습니다. 성숙은 타협이 아닙니다. 그 역시 패기가 필요한 용기 있는 결단입니다. 바람직하게 성년기를 맞이하는듯한 고등래퍼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Best Tracks: Forever 0, 늘어나, All Black, 말을 마, Back To The SAG

Worst Tracks: Over (Outro)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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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2-17 05:51:46

사실 2번 트랙에 보이나타가 참여했는지 여부는 애매한 것 같습니다.
당장에 크레딧만 보더라도 보이나타는 작사/작곡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직전 트랙에 'R.I.P Boinata'라는 가사를 넣은 것의 연장선이 아닐까도 생각되더라구요.
죽은 동료를 향한 샤라웃의 의미다 이거죠.

2021-02-18 12:50:57

들어가긴 한거 같은데요. 마지막 부분의 추임새가 보이나타 아닌가요?

WR
2021-02-19 10:20:28

저도 쓰면서 이걸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했는데 어쩔 수 없더라고요... 제목에는 그렇게 써 있고 크레딧은 또 아니고ㅜ

2021-02-17 05:55:19

개인적으로, Forever 0은 올해(라봐야 얼마 안 지났지만) 발매된 트랙 중 가장 좋게 들었습니다.

WR
2021-02-19 10:20:51

저도 엄청 좋게 들었어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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