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가히 상반기 최고 앨범, 언오피셜보이의 정규 2집 [그물, 덫, 발사대기, 포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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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7 03:34:32

 지난해 3월에 발매된 [drugonline]은 마침내 이수린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방황 끝에 언오피셜보이(unofficialboyy)라는 이름에 정착한 그는 거친 질감의 비트 위에서 20대가 겪을 수 있는 향락적인 삶의 절정을 트랩 사운드에 진하게 담아냈다. 그의 음악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아진 결정적 계기였다. 하나, 둘 입소문이 퍼져나가더니 수작 이상의 트랩 앨범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drugonline]8-9년 이상 음악을 해온 언오피셜보이가 드디어 몸에 맞는 옷을 제대로 입은 느낌이었다.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로 올린 느낌도 들었다. 향락적인 이야기들과 거친 사운드, 때로는 아찔한 소신 있는 가사까지, 실제로 그는 앨범 발매 직후 뭔가 때를 벗은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다음 작품에는 어떤 음악을 들고 올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신인티를 갓 벗어난 듯한 아티스트의 다음 행보에 궁금증이 맺혔다. 과연 언오피셜보이는 한껏 올라간 리스너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그렇게 1년이 흘러 지난 412, 정규 2[그물,,발사대기,포획]을 발매했다. 그는 앨범 소개를 통해 [그물,,발사대기,포획]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청자들의 일상에 조금 더 쉽고 편안히 다가가려 노력한 트랙들로 구성한 앨범입니다’. 무슨 말이었을까. 이제 와 보니 이해가 가는 말이지만 처음 앨범을 접한 이들에게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는 문장이다. 앨범을 여러 차례 돌려 들은 입장에서 이 문장을 다시 읽어보니 색다른 평을 할 수 있었다. 이수린의 입장에서 이번 음악은 청자들에게 더 쉽고 편안하게 다가간다고 생각했기에 나온 앨범 소개다. 그러나 어쩌면 이수린이라는 사람이 조금 더 편안해진 상태에 있던 것이 아닐까. 그는 힙합엘이와의 아카펠라 인터뷰에서 ‘[drugonline]처럼 진한 음악을 하고 싶었고, 그런 진한 음악을 위해 살았지만 결국 더 이상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랩에 대한 강박증이 있었던 언오피셜보이, 아마도 [drugonline]을 계기로 강박증을 떨쳐내며 더 자유롭게 새로운 것들이 보였던 것 아닐까. 놀랍게도 [drugonline]으로 최대치를 찍은 줄 알았던 그의 음악은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00. 그물, , 발사대기, 포획, 그리고 하이파이프

 

 우선 [그물,,발사대기,포획]은 양홍원과 함께한 타이틀 트랙의 이름과 일치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트랙이 앨범을 대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타이틀이 됐을 것이다. 그에 걸맞게 트렌디하고 누군가를 포획하며 자신이 앞서나간다는 재밌는 이야기들이 담겼다. 앨범 전체적으로도, 특히 전반부에는 이 타이틀 트랙과 비슷한 무드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한편 이 앨범은 프로듀서 하이파이프(HAIFHAIF)와 합작으로 진행됐다. 온전히 앨범의 작곡 크레딧은 그가 차지했을 정도다. 그러나 앨범이 전체적으로 여백이 없는 편이다. 한 프로듀서와 합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랩 그 자체에서 다양한 맛이 느껴진다. 하이파이프는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했고 언오피셜보이는 여러 스타일을 소화해냈다. 그러나 결국엔 날 것 그 자체의 음악과 퍼포먼스로 조화가 이루어진다. 전체적으로 드럼 사운드가 인상적이고 여러 스타일 중에는 비트박스 헬캣(beatbox hellcat)과 비트박스로 함께한 돈내트랙이 인상에 깊게 남는다. 무엇보다 날 것에서도 사랑 이야기가 어색하지 않으며 팝스러운 면모도 소화해낸 점이 인상적이다.

 

01. 이수린과 언오피셜보이, 그리고 주변

 

 앨범이 스토리 전개나 주제 의식이 확실한 편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트랩 앨범들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거나 트랙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무드를 내는 곡들이 주였다. 그러나 여러 차례 들어보면서 이수린의 삶이 담긴 앨범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가 느꼈을 여러 감정, 그리고 주변 환경들이 확 살갗에 와닿은 기분이었다. 이수린, 그리고 언오피셜보이의 삶이 전개되면서 그를 거쳐 지나간 많은 것들이 문자 자체로 해독되지는 않지만 감정적으로 다가왔다.

 

기억하니 혹시 그 시절 baddyhomie, 그를 살인한 극악무도 한 놈이 여기에

 

 루다에서 배디호미로, 그리고 그들을 살인한 채 남은 언오피셜보이. 돈에 대한 이야기로 [drugonline]과 연결고리를 지으며 시작되는 [그물,,발사대기,포획]은 현재 자신을 가장 대표하는 ‘D.O.G’ 크루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D.O.G’의 멤버인 HAIFHAIF와의 합작, 그리고 gamma의 연속된 피쳐링들. 이어 자신을 씬에 끌어 올려준 JJK, 그리고 자신이 가르쳤던 Lil tachi까지. 결정적으로 타이틀 트랙에서는 잠시 멀어졌지만 이내 릴 타치를 연결고리로 재회한 양홍원도 앨범에 담기게 된다. 후반부 트랙들에서는 사랑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뱉지만 그 속에는 다양한 감정이 내재돼 있다. 특히 ‘?X3’에서 엇갈린 인간관계에 대해 묘사하는데, 처음에는 상대방을 탓하지만 결국 자신을 탓하게 되는 감정을 묘하게 잘 표현했다. 이어 ‘bother 2021’까지 사랑과 관계 속에서 거듭하는 고민, 감정이 유기적으로 와닿는다.

 

02. 지드래곤, 그리고 YG패밀리

 

 2000년대를 풍미했던 YG패밀리와 원타임, 그리고 지드래곤과 2NE1, 빅뱅까지. 이들은 1990년대생은 물론 2000년대 이후까지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지드래곤과 2NE1, 빅뱅은 여전히 현재를 대표하고 있으며 원타임의 테디는 YG 전속 프로듀서로 활약 중이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최근 릴타치를 비롯해 노엘, 빅나티 등은 대놓고 빅뱅의 영향을 받았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이 파동은 언오피셜보이에게도 전해졌다.

 

 이번 [그물,,발사대기,포획]을 들으면 전체적으로 YG, 특히 지드래곤의 느낌이 많이 나는 편이다. 본인도 이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발음이나 음악 스타일 자체에서 지드래곤의 향이 난다. 그러나 거부감이 드는 냄새가 아닌 특정 시기나 음악에 대해 향수를 일으키는 향기였다. 지드래곤의 스타일은 자주 변하곤 하지만 그 중심점을 딱 집어서 자신의 스타일로 소화한 느낌이라 재밌기도 하다. 언오피셜보이의 특유한 발음은 지드래곤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중독성을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소위 맛있다라고 표현할 만한 가치가 있다. 지드래곤을 카피했다기보다 그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언오피셜보이의 태도도 멋있게 느껴진다. 그는 역사란 게 되게 멋있는 것 같다라며 힙합에 대해 자긍심을 가질 수 있고 나중에 시간이 지났을 때 내가 과거가 되고 OG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동시에 그래서 모든 OG를 존경한다라고 말했다. 과거의 중요성을 알고 그 흐름을 부정하지 않은 채,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는 그의 자세야말로 힙합이 아닐까.

 

03. 앨범 트랙들

 

1) 그까이꺼

 

앞서 말했듯 [drugonline]은 이수린의 이야기들이 아찔한 워딩과 함께 담겨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강조하면서도 아찔하고 때론 강하게, 때론 환각 속에서 트랩으로 이야기를 건넨다. 여기에 돈 이야기는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그러나 그까이꺼에서는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무심하다. 돈이 필요하면 그까이꺼 벌어온다고. 중독적인 훅과 재밌는 가사들은 덤이다.

 

‘DOG가 가 파이널 라운드, GAMMAKINGMAKER 방시혁이야, 나는 BTS 터뜨려 DYNAMITE’

 

2) 돈내

 

사실 언오피셜보이의 행보를 흥미롭게 지켜보긴 했으나 이 정도로 재밌게 앨범을 들을 줄은 몰랐다. 이번에도 앨범 소식은 들었지만 제대로 앨범을 듣진 않았었다. 그러나 그가 돈내라이브를 한 영상을 보고 앨범을 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다. 트랙 전체적으로 지드래곤과 탑의 뻑이가요가 연상되지만 언오피셜보이만의 맛이 중심점을 확실하게 잡고 있다. D.O.G와 돈 이야기는 당연히 들어있다.

 

왜냐 돈 앞이면 변할 건 뻔할 뻔이고 거짓말할 바엔 뻔뻔한 게 fun이요

 

3) mmm

 

처음엔 왜 돈내가 타이틀이 아닌가에 의문을 가졌다. 그러나 20번 이상 앨범을 돌리니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타이틀은 타이틀인 이유가 역시 있었다. 가사들은 선정적이지만 훅의 멜로디 라인은 순수하고 흥겹다. 언오피셜보이의 담백한 감성이 그대로 잘 느껴지며 이 트랙 역시도 지디의 향기가 진하게 풍겨온다. 특히 ‘hiphop처럼 들썩거리는부터 나는 향이 강하다. 한편 앨범 소개에서 왜 청자들에게 더 쉽고 편안하게 다가간다고 했는지 알 것 같은 곡이기다.

 

4) 누가왔게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알차게 들어있다. 제목부터 누가 왔게라고 외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린 왕이라며 차기 OG가 될 수 있음을 자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힙합씬의 왕따지만 왕자로, 그리고 이제는 왕의 자리를 향해 가고 있음을 말한다. 배디호미를 살인한 극악무도한 놈은 이제 OG 자리를 노린다. 자신의 과거를 살인했다는 점이 포인트다. 살인 당한 배디호미가 이제는 살인한 언오피셜보이로 완벽하게 변모한 것. 그리고 자신을 끌어 올려준 JJK의 피쳐링을 받는다. 라이밍과 가사까지 주제에 맞춰 재밌게 풀어간다.

 

5) Unofficialboyy pt.2

 

쇼미더머니 777’ 2차에서 보여준 중독적인 라인을 빅뱅 스타일로 재조합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unofficialboyy’ 트랙에서 말한 네 명성 돈 전부 뺏겨, 내 꿈을 현실로 땡겨를 조금이나마 현실화시켜 파트 투에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큰일을 해낸 게 너에겐 큰일이겠네, 뭘 하던 했더니 뭐라도 됐네’. 크게 묘사하기 어려우나 앨범을 듣다 보면 킬링 트랙이다.

 

6) 대가리

 

탈주닌자클랜과 D.O.G의 콜라보처럼 느껴진다. 각 크루의 대가리를 맡고 있는 언오피셜보이와 릴타치의 합이 재밌다. ‘우린 팀의 대가리라는 문장이 주는 무게감과 자부심이 크다. 앨범 내내 ‘D.O.G’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 만큼 인상적인 가사다. 한편으로는 릴타치의 스승인 언오피셜보이와 릴타치가 그리는 트랙, 의미가 크다. 트랩 킹의 차기 주자 후보로 꼽히는 두 명의 합인 대가리를 들으면 기대감이 더 상승된다.

 

7) 그물,,발사대기,포획

 

제목이 앨범 제목과 일치한다. 그만큼 언오피셜보이가 생각하기에 중요하고 강조하고 싶었던 트랙이라고 볼 수 있다. 악기가 하나씩 들어오는 비트의 구조 자체에서 쾌감이 느껴진다. 길거리를 걸으며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바운스를 타며 힙합 그루브를 즐길 수 있는 곡이다. 그물, , 발사대기, 포획은 뭔가 누군가를 포획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fuck 돈의 노예 목줄을 끊은 노래, 발포해 허나 하나 놓치지 마, 생포해’. 이어 짧고 강하게, 자신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을 외치는 듯한 느낌이다. 양홍원의 깔끔한 피쳐링까지. 맛있다.

 

8) ?X3

 

후반부에 전개되는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여는 첫 장의 느낌이다. 무엇보다 리스너들이 가사를 즐겼으면 좋겠다. 매번 리더 자리를 지켜왔던 언오피셜보이,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듯하고 솔직한 한 마디가 담백하게 담겼다. ‘미안해란 말 안해도 돼, 더는 듣고 싶지 않네라고 하며 상대에게 탓을 돌리지만 결국 솔직한 말들이 훅에서 이어진다. 실제로 녹음을 할 때 훅 파트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강하게 마음을 먹었지만 실제로 자신의 감정인 일치하지 않을 때,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지곤 한다. 그는 아마도 과거에 대한 회상과 감정을 상기시키는 과정에서 속상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어쨌든 가사 음미가 필요한 곡이다.

 

‘?X3’라는 말의 의미도 궁금해진다. 릴타치가 대가리에서 쓴 가사와 연관성도 있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를 세 번 강조한 것 같기도 하다. 물음표, 물음표, 물음표.

 

9) 나빠

 

‘?X3’부터 전환된 분위기의 곡들이 이어진다. 자기 혐오가 들어간 사랑 노래다. 짧고 강하게, 자신이 나쁜 이유를 감성적으로 설명한다.

 

10) 잿더미

 

있잖아 나 더욱 버리고 있어, 있잖아 나 더욱 어리고 있어

 

버리고 있다가 어리고 있다고 표현한다. 이어 날 사랑하는 법도 몽땅 잊었고 널 사랑하는 법도 몽땅 잊었다고 한다. 잿더미는 이미 타버렸다. 잿더미에는 더이상 불을 지필 수 없다. 이미 타버린 심장에 불을 지펴 뜨겁게 만들고 싶어 한다. 이와 같은 점에서 적절한 워딩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절절한 사랑 이야기의 절정을 찍는 트랙이다.

 

11) bother 2021 (feat. gamma)

 

‘?X3’부터 꺼낸 이야기들의 유기적인 연계성이 결말을 찍는 트랙이다. 이미 떠난 사람, 혹은 짝사랑의 대상을 두고 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수이 필름과 함께 촬영한 뮤직비디오에서도 비슷한 구성이 그려진다. 순수하면서도 순수하지 않은 가사들, 그리고 중독적인 훅이 [그물,,발사대기,포획]의 결말을 그리고 있다. ‘bother’는 신경 쓰이게 한다는 말이다. 누군가 이수린을 신경 쓰이게 한 사람, 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입할 수 있는 가사가 아닐까.

 

04. 대중문화예술

 

 그는 대중문화예술에 대해 순수하고 예술의 본질과 같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은 주로 대중문화예술이라고 칭할 수 있으며 자신의 초심을 많이 생각했다고 한다. 가짜 가사로 대표되는 트랩 장르를 소화했지만 나름대로 깊이 있는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담겼다. 한편 사운드적으로 이지 리스닝을 하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앨범이었다. 25회 이상 앨범을 돌렸지만 여전히 질리지 않는다. 이런 중독성과 매력 있는 앨범은 오랜만이다. [drugonline]으로는 차마 다 느끼지 못했던 언오피셜보이의 매력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정규 2집 소식을 들었을 때 느낀 기대감보다 다음 작품 소식이 들려올 때 느낄 기대감이 더 커진 것 같다.

 

취향의 차이가 있겠지만 가히 올해 여태까지 들은 앨범 중 가장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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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Updated at 2021-09-22 23:20:00

뒤늦게 읽은 글이긴 한데 배디호미 -> 루다 순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1번 단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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