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TE (아이테) - MO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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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9 12:33:24

 

AITE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우연히 Alive Funk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서 본작 MOLY의 발매를 알게 되었고, 나름 화려한 참여진을 보고 감상을 해보았습니다. 전곡 Alive Funk의 프로듀싱과 화지, 담예 그리고 차메인 피쳐링이 담긴 앨범은 못해도 본전이라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상당히 놀라운 래퍼를 발견했다는 생각입니다. MOLY 32분 남짓의 런닝타임을 눈 깜짝한 사이에 증발시켜버린 뛰어난 작품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AITE의 스타일은 호불호는 크게 갈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음이 짙은 톤과 정박과 엇박을 마구 넘나드는 방식의 플로우는 사람에 따라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MOLY는 세심한 디테일과 창의적인 요소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는 빼어난 수작임을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훵크와 얼터너티브 록의 장르를 힙합적인 문법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이해도와 랩과 보컬을 오가는 방식이 큰 거슬림 없이 자연스럽게 발현됩니다.

 

MOLYAITE가 음악인으로서 보낸 20대를 향해 보내는 일종의 찬가 같은 앨범입니다. 곡마다 특정 시기 혹은 당시에 느낀 감정을 주제로 잡은 다음 천천히 깨달음에 도달하는 서사를 그려냅니다. 첫 트랙 I Will에서부터 상당히 존재론적으로 보이는 고찰로 시작합니다. 자신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를 청자에게 질문을 하는 듯한 뉘앙스로 풀어냅니다. 가스펠을 연상시키는 소울 샘플이 인상적인 비트와 어우러지면서 비장한 처절함이 느껴져 바로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진한 여운을 주는 기타와 점진적으로 쌓이는 드럼도 상당히 효과적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LknY8qUjNI&list=OLAK5uy_mSdCrvW4nRhW-L9ob0snySb3siCkTyVW4

 

이런 고민은 다음 트랙 Maybe One Last Year에서도 이어집니다. 다만 좀 더 가벼운 태도와 음악으로 다루는데, 중독적인 베이스 루프와 얕지만 빠르게 몰아치는 스네어가 훵크적인 감각이 살아있는 비트도 이와 잘 맞아떨어집니다. 첫 번째 벌스는 작업하러 가는 일상을 담아내는데, 두 번째 벌스에서는 좀 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대조가 일상에서 관념을 이어주는 일종의 율리시스적인 접근법과 닮아 있습니다. 가사처럼 마지막 일 년이라는 미련을 재치 있게 잘 풀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고민에 지친 AITE는 화지와 함께한 다음 트랙 백미러에서 안식을 갈망합니다. 도시 풍경을 연상시키는 공간감 있는 기타와 묵직한 베이스 위에서 흥얼거리는 듯한 플로우를 안정적으로 구사하는 두 래퍼의 퍼포먼스는 일품입니다. 바빠질수록 자신이 지켜야 할 것과 걸어온 길을 되짚는다는 의미의 가사를 전달하는데 백미러라는 비유를 차용한 것도 훌륭했습니다. 차 안의 밤 풍경을 연상시키는 음악에 잘 어우러지는 센스 있는 주제 선정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w0JcF5YTVY&list=OLAK5uy_mSdCrvW4nRhW-L9ob0snySb3siCkTyVW4&index=3

 

이어지는 선로 이탈은 급격한 분위기 전환입니다. 어두운 공간감과 둔탁한 드럼 위에서 도박장을 연상시키는 가사들이 이어집니다. 비유적 장치인지 실제로 도박에 빠졌던 모습을 보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제대로 방황하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가쁘게 뱉어대는 훅과 급박한 플로우가 강박적인 감정을 효과적으로 담아냅니다. 특히 후반에는 비트가 끝나는 듯 싶다가도 매우 빨리지면서 곡의 두 번째 구간이 시작되는데 랩에도 디스토션을 씌우면서 자아분열과 같은 위태로운 모습을 그려냅니다. 뛰어난 라이밍과 랩 퍼포먼스가 인상적이었고 청자를 제대로 몰입시킨 구간이었습니다.

 

‘Like A Movie’는 다시 한 번의 큰 분위기 전환을 꾀하는 트랙입니다. 앨범에서 가장 느린 곡이라 볼 수 있을 템포에 공간감 넘치는 나른한 기타가 인상적입니다. 드림팝을 연상시키는 보컬 라인과 발성, 그리고 약간의 블루지한 기타 프레이즈들도 분위기 형성에 큰 도움을 줍니다. 과거에 엮인 적 있는 누군가와의 소통을 하는 듯한 가사도 몽상적인 트랙과 부합하는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AITE의 각진 플로우는 어색하게 들리는 구간이 많았습니다. 플로우 디자인을 살짝 바꾸거나 더 치밀하게 라임을 설계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Sadder Budweiser Skit’은 제목과 다르게 상당히 완전한 곡 같은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AITE‘Like A Movie’의 루즈한 분위기를 이어서 힙합보다는 모던 록이나 슈게이즈 계열의 넘버를 완성시키는데, 잔잔한 기타로 시작한 미니멀한 트랙이 마무리로 갈수록 악기가 쌓이며 고무적인 감상을 선사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살짝 불안하더라도 더 감정이 실렸다면 좋았겠지만, 안정적으로 음정을 더 신경 쓴 것도 충분히 유효한 선택이었습니다. 기타 솔로도 멋있었고, Skit답지 않게 놀라운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맥주를 마시면서 하는 일상에서 흥미로운 곡을 만들어 낸 것은 탄탄한 재능의 반증이라고 봅니다.

 

담예와 함께한 다음 트랙 Inhale Your Thing에서는 가벼운 무드로 전환을 합니다. 신스음과 통통 튀는 효과음이 인상적인 훵크 비트를 차용하는데, 작사 방식이 독특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청자에게 산소만큼 필수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반문하는데, 본인의 산소는 음악이라는 점을 제 4의 벽을 부수며 언급합니다. 일종의 메타픽션적인 요소라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담예의 피쳐링도 훌륭했습니다. 벌스도 주제에 잘 맞고, The Sandwich Artist에서 보여줬던 탁월한 화음 형성도 여전했습니다. 모든 벌스가 끝나고 곡의 후반부에 신스 솔로도 아주 고무적이었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훌륭하게 실행했습니다.

 

이어지는 가비지타임은 뚜렷한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 충실하게 가사를 이끌어가는 AITE의 장점을 잘 보여줍니다. 주로 스포츠에 쓰이는 용어지만, 일종의 속칭 사회의 쓰레기라 불릴만한 사람들의 찬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훅이 살짝 단순하다 싶다가도 살짝 변주가 들어오는 비트 덕에 크게 처지지는 않습니다. 특히, 두 번째 벌스에서 하이햇이 작렬하며 플로우가 급박해지는 부분은 전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피쳐링한 차메인 역시 깔끔하게 존재감을 뽐냅니다. 특히 던져라는 단어 이후에 잠깐 쉬는 구간은 곡의 주제와도 잘 맞아떨어지는 위트가 느껴졌습니다.

 

원했던 건이라는 살짝 이질적이었습니다. 보컬 샘플이 사용된 듯한 공간감과 전 트랙의 연장선처럼 느껴지는 함성소리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가사가 상당히 추상적인데, 뭔가 다 알아듣지는 못했습니다. 뭔가 존재론적인 고찰과 목표에 관해서 회의감을 엿볼 수 있는데, 훅에서의 목이 쉰 듯한 연출에 특히 간절함이 묻어납니다. 훅의 멜로디 자체는 살짝 묻힐 수 있을 만큼 엉성한 면이 있다 생각하지만, 비트에 살짝 효과음을 더한 게 곡을 살립니다. 이런 회의감은 두 번째 벌스에서는 디스토션과 함께 들어와 더 가중되어 물질과 정신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 생생합니다. 좀 더 뚜렷한 곡 구조와 탄탄한 멜로디가 있었으면 하지만 나름 좋게 들었습니다.

 

이어지는 Wait의 경우도 비슷한 장단점을 가졌습니다. 잔잔한 슈게이즈 같은 곡인데, 사운드가 훌륭합니다. 리버브가 걸린 베이스가 웅웅거리면서 공간감이 비어 있다기보다는 꽉 찬 무게감이 있어 좋았습니다. 건반도 크게 기여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기타가 좀 더 크게 믹싱이 되었으면 하는 맘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멜로디를 소화함에 있어 너무 느슨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좀 더 거칠더라도 느슨해지는 것보다는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Kid Cudi와 같은 몽롱함은 화음으로 연출을 하고 곡의 실제 뼈대는 더 실체가 있는 방향으로 갔으면 제대로 인상적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앨범을 마무리 하는 Can I?는 록의 영향보다는 훵크적인 분위기로 돌아옵니다. 정직한 박자에 우주적인 신스가 앞서 언급한 Kid Cudi의 영향이 짙지만, 중간에 들어오는 휘슬 신스나 트랙 전반에 깔리는 기타 프레이즈는 옛날 Kool & The Gang의 여름 밤이 생각나는 공간감이 떠오릅니다. 현 세대 음악에 가진 소박한 불만과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고찰하는데, 앞선 두 트랙과는 다르게 좀 더 정석적인 랩 플로우로 접근합니다. 훅도 간단하게 설계되어서 좀 더 기억에 쉽게 각인이 되는 면도 있었습니다. 앨범 전반의 서사의 마무리를 공감을 갈구하는 호소로 끝냄에 달콤 씁쓸한 여운이 남습니다.

 

전반적으로 AITEMOLY는 매우 탄탄한 작품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전작을 들어보고 비교라도 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스트리밍 사이트에는 막혀 있는 것 같아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게 첫 정규였다 치더라도 그 이상의 감동을 담아낸 작품임은 확실합니다. 작고 세심한 디테일까지 많이 신경 쓴 작품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플로우를 창의적으로 설계하고 전통적인 흑인 음악과 록 영향의 균형도 잘 잡혀있습니다. 다만, 후반부에서는 전반부의 예리함이 흐릿해지는 경향이 있고, 창의적인 플로우 디자인이 가끔씩은 아직 완숙하지 않은 피지컬에 먹히는 감이 있습니다. 다듬어야 할 구석은 간혹 보이지만 충분히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감상이었습니다. 정성과 잠재력이 가득한 앨범입니다.

 

Best Tracks: I Will, 백미러, 선로 이탈, Inhale Your Thing, 가비지타임

Worst Track: Like a Movie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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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1-11-01 16:20:54

오 오랜만의 리뷰, 그리고 예상 못 하던 앨범!

저도 아티스트에게 흥미가 생기는 앨범이긴 했는데, 피지컬이 좀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초반에 펼쳐지는 펑키한 맛을 좀 더 살렸더라면..!

WR
2021-11-10 12:05:16

저도 어느 정도 동감입니다. 톤 같은 경우에는 다듬어질 구석이 아직 많아요. 그래도 플로우 설계나 앨범 짜는 맛(?)을 잘 살렸다 봐서 꼭 리뷰를 해야겠다 싶었어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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