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30) - THE FROST ON YOUR KI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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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06 10:00:45

 

사람마다 힙합 앨범에서 찾는 요소들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멋있는 훅들을 원하고, 누군가는 비트가 가장 중요하며, 10년대부터는 랩의 형식을 탈피해 멜로디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대중과 매니아들의 취향도 다르지만 그 매니아들 간의 취향도 천차만별입니다. 깊은 의미의 가사와 치밀한 서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붐뱁이나 트랩을 막론하고 톤이나 플로우 같은 청각적인 쾌감을 최고로 치는 리스너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불변의 기준은 있습니다. 라임이 없으면 랩이 아닙니다. 라임이 없는 랩은 살아남지 못했고, 앞으로도 나타나서도 안됩니다. 이 기준에 관해서 만큼은 힙합의 팬이라면 모두가 꼰대가 되어야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운율과 리듬의 형성에 있어서 라임이 제외되면 흔히 말하는 ‘국어책 읽기’와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최소한의 기준을 제대로 못 맞추는 래퍼들이 즐비합니다. 어느 정도 주류에 올라가게 된다면 그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지만, 신인을 찾기 위해 사운드클라우드나 유튜브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경우가 끝도 없습니다. 다른 요소를 우선 순위에 두더라도 이는 기본적인 것을 갖춘다는 가정 하에 성립하는 접근법입니다. 가사를 위해 라임을 희생시킨다면 래퍼로서의 재능보다는 신춘 문예에 도전하는 것이 옳습니다. 


서리(30)의 새 앨범 THE FROST ON YOUR KIDS는 이러한 의식을 바탕으로 설계된 앨범입니다. 래퍼 Khundi Panda, 손심바, OHIORABBIT, dsel, 프로듀서 cjb95와 Viann, 그래피티 아티스트 Niwann, 그리고 아트워크 디자이너 희수로 이루어진 서리 크루는 이번 앨범을 통해 현재 씬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음악을 주조해냅니다. 거대한 서사 구조보다는 빼곡하게 설계되어있는 라임과 임팩트 있는 문장력을 최우선으로 힙합의 가장 기본적인 쾌감을 극대화 시킵니다. 


이런 정석적인 래퍼들의 퍼포먼스를 독특한 샘플과 변칙적인 박자의 비트들이 받쳐줍니다. cjb95와 Viann 그리고 게스트로 참여한 와비사비룸의 Arwwae와 씬의 베테랑 Avantgarde Vak이 미국 동부의 색이 물씬 풍기는 서늘하고 건조한 비트들을 제공합니다. 멜로디보다는 중독적인 루프를 택했고 래퍼들의 마구 밀어붙이는 스타일을 고려했을 때 매우 유효한 선택입니다. 


이런 다양한 사운드 요소들 위에서 서리 크루의 래퍼들이 관철하는 컨셉은 일종의 ‘가르침’입니다. 철학적인 메시지보다는 단순히 랩과 음악을 제대로 하는 방법을 설파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말 그대로 “랩 못하는 놈들은 좀 맞자”라는 다소 단순무식하는 코드가 앨범을 시작부터 끝까지 지배합니다. 


대부분의 곡들은 얼핏 보면 극단적으로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다못해 13곡의 트랙 중에서 훅이라고 할 만한 것을 보여주는 곡이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벌스로 꽉꽉 채워놓은 후에 비트의 변주로 브릿지를 처리하거나 그런 것도 없이 바로 랩을 이어나가는 구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훅의 부제가 THE FROST ON YOUR KIDS를 상당히 불친절한 앨범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그만큼 얻는 것들이 확실히 있습니다. 청각적 쾌감의 구심점이 되는 훅이 없기 때문에 가사 한줄의 파급력과 라임 체계에서 오는 타격감이 더 중요하고 참여진 전원이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프로덕션 역시 단순해보이는 기본적인 베이스 위에서 소리가 치고 빠지던가 과감한 변주로 청자의 관심을 계속 유지시킵니다. 


첫 트랙인 THE FROST ON YOUR KIDS부터 알 수 있습니다. ‘서리’라는 크루 이름답게 추운 분위기인데, 손심바가 앨범명을 속삭이며 트랙이자 앨범이 시작됩니다. 이윽고 강력한 베이스가 울려퍼지면서 손심바의 랩이 시작됩니다. 몇마디 들어가면서 드럼이 들어가고 Khundi Panda가 받아칩니다. 그렇게 차례가 dsel과 OHIORABBIT에게도 돌아갑니다. 서로의 목소리도 확연히 다르지만, 플로우를 구사하는 방식도 달라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대체적으로 Khundi Panda가 문장 내부의 라이밍을 신경 쓴다면 dsel과 OHIORABBIT은 끝 마디를 강조하는 식으로 랩합니다. 그리고 손심바는 이런 많은 라이밍 스타일들을 적절히 섞어가면서 구사합니다. 이는 앨범 전체에서도 유효하게 작용합니다. 네 명의 래퍼 모두 속도감에서도 조금씩 차이가 나고 라임에 강세를 주는 포인트가 다릅니다. 


다음 트랙 Hugo도 그런 다양함이 잘 담겨져 있습니다. 하강하는 베이스 코드 진행과 체명악기 루프가 이어지는데, 약간은 신비로우면서도 둔탁함이 느껴지는 오묘한 비트입니다. 여기에 Wu-Tang Clan의 RZA가 생각나는 기괴한 보컬 샘플까지 얹혀져 묘하게 공포스러운 분위기도 느껴집니다. dsel이 첫 벌스를 담당하는데 여기서 중간에 전자건반이 겹쳐지는 등, 루프라는 기본 골자 안에 단조로움을 상쇄시키려는 프로듀서들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특히 OHIORABBIT의 벌스가 맘에 들었는데, 한국 영화 특유의 신파나 닥터 피쉬 같은 다양한 소재로 비유를 맞추면서 가사를 써낸 구간이 펀치감 있습니다. 비슷한 의미로 손심바도 최근에 알페스 사건을 의식해서 본명인 현재를 언어유희로 소화하는 면도 재치 있습니다. 


언뜻 간단해 보이는 비트들이 듣다보면 정말 치밀하게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의 랩으로만 승부를 보는 앨범답게 우직한 퍼포먼스를 래퍼들이 펼칠 수 있도록 프로듀서들이 지루해질 수 있는 음악을 다양한 악기 배치로 지원해준다는 인상입니다. 곡의 도입부에서 소개되는 루프가 중반부에서는 파격적으로 달라지던가 악기가 더 쌓이면서 예상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감상을 선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골로가 모텔’이 좋은 예시입니다. dsel의 간단한 훅과 미니멀한 신스 루프로 시작되는 트랙은 손심바의 벌스가 들어가면서 드럼 박자를 바꾸고 강렬한 신스가 추가됩니다. 토하듯이 뱉는 손심바의 톤과도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상투적인 랩, 훅, 랩의 구조가 아니라서 벌스와 랩을 반드시 병치해놓지도 않습니다. dsel이 몇마디만 뱉어놓고 훅을 생략하고서는 Khundi Panda에게로 바로 넘어갑니다. 즉, 순간순간에 들리는 음악은 비교적 정직한 접근인만큼 그 순간이 들어오는 타이밍을 예상하지 못하게 곡 구조를 설계해 놓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곡 구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트랙이 ‘고드름 세례’입니다. 느와르 영화를 연상시키는 차분한 베이스와 울려퍼지는 심볼 위에 훵키한 신스가 얹히면서 시작하는데, 모두가 합창하는 훅이 나오면서 뒤에 현악기와 배경 화음이 깔리면서 소리가 풍부해집니다. 이렇게 쌓인 악기들이 래퍼들의 벌스에 맞추면서 들어왔다가 빠지면서 감상을 지루않게 유지하고 가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특히 마지막 훅을 부르고 나서 Prince를 연상시키는 헤비메탈스러운 기타 연주는 탄사가 나왔습니다. 여기에 두번째 기타가 대조되는 훵크 연주로 받쳐줘 나른함도 느껴지는데 갑자기 다시 드럼이 내리치며 손심바가 들어오는것도 기억에 남는 순간입니다. 다 끝난 것이라 생각했던 곡이 돌연 허를 찌르는 인상 깊은 순간입니다. 


 


인터넷 밈으로 자주 사용되었던 볼록할 철(凸)을 제목으로 한 9번 트랙도 비슷한 주제를 다룹니다. 래퍼들 각자 기준미달 예술가들의 표상을 설정하고 공격합니다. 거짓된 우울증을 꾸며내고 논란에 맞서기보다는 바로 사과하는 아티스트들에게 질책을 쏟아내는 손심바의 벌스가 가장 뇌리에 박혔습니다. 또, OHIORABBIT의 토끼를 소재로 쓴 가사들도 실소가 나오는 포인트였고 Khundi Panda의 도입부에 드럼이 맞물려서 들어오는 연출도 멋있습니다. 


이 트랙은 THE FROST ON YOUR KIDS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괴상한 비트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다운 튜닝이 된 현악기 루프로 시작을 하는데 보컬 샘플도 동남아시아 사원 어딘가에서 들릴법한 신비로운 운용을 보여주고 훅을 대신한 브릿지에서는 전자음악을 연상시키는 드랍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특히 벌스가 진행되면서 드럼이 마구 내리치다가 빠지고 반복하는 박자 체계도 상당히 전위적입니다. dsel의 벌스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는 컴퓨터가 글리치를 내는 듯한 효과음이 삽입되기도 합니다. 정신없는만큼 화려하기도 해서 재밌게 들었습니다.. 


고전적인 소울 샘플의 활용을 보여준 Ye Chef도 좋았습니다. 샘플을 재생하면서 시작되는데, 그 루프 위에서 OHIORABBIT이 랩을 하다가 중간에 드럼이 들어옵니다. 중간에 디스토션이 들려오고 단조의 피아노가 들려오면서 레이링이 되는데, 이때의 쾌감이 꽤 고무적입니다. 이후에 들어오는 손심바의 ‘리그 오브 레전드’ 용어를 사용한 언어유희는 감탄스러우면서도 유머스러운 면이 있어 웃음이 났습니다. 부모를 이용하여 공격 하는 건 힙합에서는 나름 흔한 일이지만 그 중에서도 창의적인 가사였습니다. 이외에도 ‘ㅗ’ 모음을 더 살려서 재미를 더했던 Khundi Panda의 벌스나 그를 바로 이어받아 즉각적으로 랩을 이어가는 dsel이 트랙을 끝까지 흥미롭게 만들었습니다. 곡이 마무리 되면서 갑자기 나른한 전환 구간이 생긴 것도 독특했습니다. 


Ye Chef는 이번 서리 앨범에서 찾을 수 있는 포인트를 또 하나 보여주는데, 키워드를 구심점으로 설계된 트랙들입니다. 단순히 싫어하는 대상을 전부 뭉뚱그려 까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추상적인 대상을 무작정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유형을 정리하고 접근하는 경우가 꽤 됩니다.


와비사비룸의 프로듀서 Arwwae와 함께한 Loser’s Advocate도 그런 곡들 중 하나입니다. 제목만 보면 패자들을 위한 곡이지만 사실은 그들에게 자비가 없다는 취지의 곡으로, 교육을 자처하는 앨범인만큼 오히려 그게 패자들을 위함이라는 메시지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참교육’인 셈입니다. 패배자라는 특정 테마로 표적을 줄여서 공격합니다. 다시 MC로서의 래핑을 멋있게 만들겠다는 심바의 포부와 Khundi Panda의 특출한게 촘촘한 라이밍, OHIORABBIT의 와비사비룸 오마주까지 재밌는 트랙입니다. 


비트도 훌륭합니다. 처음에 조율하듯이 기타와 드럼이 몇 번 퉁기더니 메인 루프가 들어오는 동시에 정렬되며 오는 쾌감이 상당합니다. 특히 도입부는 Ye Chef의 연장선인가 착각할 정도로 전환이 깔끔해서 놀라웠습니다. 객원으로 참여한 사람의 비트가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전 트랙과 이어지는 건 프로듀서들이 그만큼 신경을 썼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늘하면서도 명상적인 분위기와 그루브 감이 있는 베이스 라인이 Mobb Deep과 D’Angelo의 합작품을 듣는 것 같습니다. 

 

 


291도 세분하게 주제를 잡고 만들어진 트랙입니다. 291이 주소와 관련된 수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리 크루의 스튜디오를 용의 둥지로 비교하는 가사적 내용으로 봐서 무언가 연관이 있을거라는 생각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어쿠스틱한 느낌이 물씬 나는 베이스로 시작하는 트랙인데,  배경 화음은 종교의식과 같은 경건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래퍼들이 실력과시를 하는데, 서로 자신들의 작업공간인 스튜디오나 음악 작업 과정의 면을 파고들어 내용을 전개합니다. 손심바의 경우는 스튜디오를 용들의 보금자리라고 표현하고, Khundi Panda는 아마추어들에게 유튜버들도 채우는 오디오 챙기라고 일갈합니다.


이런 뛰어난 퍼포먼스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OHIORABBIT의 훅입니다. 주로 훅이 랩으로 만들어졌거나 아예 생략된 다른 트랙들과는 다르게 감미로운 보컬로 처리되어있습니다. 약간의 오토튠이 입혀져 있는데 비트도 서정적인 기타와 전자건반으로 전환이 되면서 어울리기도 합니다. 오히려 시너지가 엄청납니다. 청자의 허를 제대로 찔러서 굉장히 인상 깊은 순간으로 각인됩니다. 이번 앨범의 하드코어한 컨셉인 건 알지만 OHIORABBIT의 보컬이 이렇게 잘 어울린다면 좀 더 배치되었을 수 있지 않나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Midnight Smash Bros도 제대로 컨셉을 잡아놓은 트랙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유명한 게임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 차있는 트랙인데, Khundi Panda의 첫번째 벌스부터 알 수 있습니다. 첫 두 마디에 스타크래프트와 포캣몬에 대한 래퍼런스는 물론 게임 산업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손익분기점에 대한 래퍼런스도 있습니다. 훅에서는 제목의 스매시 브라더스와 소닉을 언급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손심바의 벌스가 쾌감이 있지만서도 약간 뜬금없습니다.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이상하게 받아들여지는 한국 사회에 대한 일침이 시원하면서도 이게 게임이랑은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물론 최근에 동북공정 등등 게임계도 사회적인 이슈가 한둘이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그렇게까지 깊게 유추하라고 가사를 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중문화 래퍼런스도 마지막에 해리포터 세계관 볼드모트 밖에 없어서 아쉽습니다. 오히려 이어지는 dsel의 벌스가 서든어택2라는 희대의 망작과 해리 포터 세계관의 저주 크루시오를 더 잘 녹아냈다는 생각입니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찌그러지는 베이스와 경각심을 일으키는 신스, 기괴한 보컬 샘플까지 음산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비트까지 좋게 들은 트랙입니다. 


이런 게임 컨셉은 ‘호랑이레슨’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Midnight Smash Bros와는 사뭇 다른 접근이지만 Khundi Panda의 플레이스테이션 조작 키를 소재로 한 훅을 보면 확실합니다. 진짜 게임보다는 랩 게임의 플레이어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로 보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런 표현 방식과 교육이라는 테마의 결합입니다. OHIORABBIT이 본작을 수학의 정석의 저자 홍성대와 비교하는데, 게임과 한국의 입시와 직결되는 교재에 대한 래퍼런스가 한 트랙에서 동시에 이뤄지니 상당히 오묘합니다.


훅도 창의적이고 멤버 전원의 퍼포먼스는 좋았지만 아쉬운 게 있다면 비트입니다. THE FROST ON YOUR KIDS의 다른 트랙들은 어쿠스틱한 면과 전자음악적인 면이 잘 어우러져 있는데 비해서 ‘호랑이레슨’은 너무 전자음에 경도되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비트 자체의 완성도는 문제 없지만 앨범의 통일성을 해치는 감은 있습니다.  

 

한국 재즈 프로덕션의 베테랑 Avantgarde Vak과 함께한 ‘땡땡이’도 교육이라는 컨셉을 좀 더 심화시켜 접근합니다. 말 그대로 작업 안하고 빈둥거리는 래퍼들을 땡땡이치는 학생으로 비유해서 물어뜯는데, 도입부부터 매우 인상적입니다. 재즈 세션 밴드가 연주 전에 예열하듯이 관악 세션이 드문드문 들어오고 건반도 한 노트만 계속 반복됩니다. 드럼도 찬찬히 연주되는데, 이 모든 과정이 왼쪽 트랙에서 오른쪽 트랙으로 왔다갔다 하는 믹싱이 마치 영화의 시작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독특한 시작이 서리 멤버들이 공격 대상을 뒷담화하는 내레이션과 정말 잘 맞물립니다.  


랩 퍼포먼스도 고무적입니다. Khundi Panda의 공격 대상을 배달시킨 닭과 비교하는 가사나, 주제에 한 층 더 몰입해서 교무실을 테마로 잡아 벌스를 설계한 OHIORABBIT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dsel의 허스키한 톤이 후반부에 드럼만 남은 비트에 전개될 때도 잘 묻어가면서 감흥이 큽니다. 멤버들이 서로 간단한 훅을 돌아가면서 뱉을 때도 서로 주고 받는 모습이 제대로 부각되어서 오직 크루로서만 낼 수 있는 사운드를 구사하는 것도 영리한 선택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는 멤버들 전원이 함께 랩을 할 때는 그룹 앨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전율이 있었습니다. 


번뜩이는 편곡적 아이디어들과 쾌감 있는 가사들은 THE FROST ON YOUR KIDS를 뛰어난 수작으로 만들어줍니다. 물론 무결점의 앨범은 아닙니다. Easymind가 30km/h에서 보여준 아카펠라 랩의 완성도는 나름 준수했지만 너무 짧아서 무슨 역할을 하는지 잘 와닿지 않았고, 앨범의 마지막 트랙 WE STEAL YOURS에서는 같은 샘플을 사용한 Ye Chef만큼 비트가 독창적이거나 래퍼들의 벌스들이 더 좋다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그래도 앨범을 마무리한 dsel이 끝까지 공격적인 태도를 견지해 마무리다운 마무리를 했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시종일관 하드코어한 앨범이 마지막에서 갑자기 감성적으로 돌아서거나 했다면 더 어색했을 것입니다.   


THE FROST ON YOUR KIDS는 자부심의 결과물입니다. 참여진들이 MC로서의 스킬에 자부심이 없었다면 절대로 만들어지 않았을 앨범입니다. 인정을 바라거나 과소평가에 대해 분노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차갑고 냉정하게 팩트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고, 분노한다면 답답함에서 기인하는 경우들입니다. 프로듀서들도 일말의 대중적 코드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놀이하듯이 마구잡이로 찍어낸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인정하는 앨범이지만, 그런 인정도 과연 이분들이 바라는지 모르겠습니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닐테니 말입니다. 누군가한테는 더럽게 건방지고 오만한 음악으로 들릴 겁니다. 그렇지만 근거 확실하게 건방진 것만큼 멋있는 것도 없습니다. 


Best Tracks: Hugo, 골로가 모텔, 고드름 세례, Ye Chef, Loser's Advocate, 凸, 땡땡이, Midnight Smash Bros, 291

Worst Track: 30km/h


8/10

10
Comments
1
2021-02-25 16:36:50

호불호 갈릴 것 같고 지친다는 의견도 공감가는데 저는 앨범 통째로 달리는 스타일도 아니어서 그냥 한곡한곡이 다 취향저격이었네요. 모두 찍어내리는 스타일을 할때 혼자 달리는 쿤디의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

1
2021-02-25 16:39:44

또 각자의 다음 앨범도 기대가 됩니다. 디젤도 확실히 성장한거 같고 쏜씸빠와 비앙 합작앨범이 이 앨범을 넘을지 기대가 갑니다. 전자붐뱁 스타일은 비슷할 거 같은데 어떤 스타일일지..

WR
2021-02-25 17:26:06

2000년대 Def Jux 음악을 엄청 좋아하는데 그 분위기가 나서 너무 좋았어요. 저도 전설 기대중입니다ㅋㅋㅋ

WR
2021-02-25 17:25:27

확실히 쿤디판다씨가 더 속도감 있는 래핑을 구사하셨죠. 저도 질린다는 평은 이해가 안되는지라...

1
2021-02-28 00:50:14
근본 그 자체인 엘범 같아요. 과하지 않지만 신선한 비트, 깔끔한 랩, 인상적인 가사까지 뭐 하나 부족한게 없었네요. 저는 호랑이레슨 훅이 재미있었네요.
WR
2021-02-28 01:14:54

네 근본 오브 근본인데 프로덕션은 앞서가는ㅋㅋㅋㅋㅋ

1
2021-02-28 06:47:17

이제는 이런 라이밍이 고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기본적인 라임도 못 맞추는 래퍼들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것일거고, 또 한 편으로는 현 시대에서 라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일지도 모르겠죠..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던진 화두들은, 국힙 씬 내의 플레이어들과 리스너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 앨범은 분명 수작입니다.

물론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요.

WR
2021-02-28 09:51:54

맞습니다. 세테(?)를 철학적으로 고민하다기보다는 그냥 본인들이 정답이라 여기는 방법으로 자기 과시를 하는 점이 오히려 매력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작위적인 느낌을 전혀 못 받아서ㅇㅇ

2021-05-23 16:38:29

8.5정도 주고싶네요 컴필앨범중 요즘에 이것보다 좋게 들은거 없는거 같습니다

WR
2021-05-24 21:44:40

제가 소수점을 안 써서 그렇지만 충분히 공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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