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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undi Panda (쿤디판다) - MODM : Original S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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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24 22:24:55

 

가로사옥2020년 최고의 앨범 중 하나였습니다. 내면의 사유를 하나의 건축물에 투영해 체계화 시켜 음악으로 변환한 컨셉은 그 창의성과 치밀함에 압도될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독특한 상상력과 그를 실행시킨 탄탄한 퍼포먼스의 이상적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로사옥Khundi Panda에게는 부담되는 앨범일 수도 있습니다. 항상 정규 단위의 작업물에 거대한 서사를 담아낸 Khundi Panda였고, 심지어 가로사옥은 건축물을 테마로 한 3부작의 마무리라 지나치게 철학에만 경도된 래퍼라는 인상을 청자들에게 줬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상응하듯이 발매된 이번 앨범, MODM : Original Saga (이하 MODM)은 급격한 방향 전환을 한 훨씬 더 가볍고 직관적인 앨범입니다.

 

당장 가사부터 기존의 곡들에 비해 무게는 더 가벼워졌지만 꼬아 쓰는 면이 거의 없어 직접적인 쾌감을 줍니다. 컨셉 역시 게임을 테마로 잡아 신나게 전투의 열기에 뛰어드는 모습을 그려내지, 사유의 무게를 떠받치는 거창함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다가오는 비유와 자기과시를 하는 펀치라인이 주가 되었다 해서 MODM의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락성이라 해도 게임이라는 뚜렷한 테마, 그에 걸맞게 엄선된 일관성을 지니면서도 독특한 프로덕션, 그리고 작정한 듯이 랩을 화려하게 펼치는 Khundi Panda의 랩 퍼포먼스는 커리어 하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고무적입니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MODM Intro가 이런 앨범의 색깔을 바로 보여줍니다. 옛날 아케이드 게임이 생각나는 향수를 자극하는 전자음이 들려오는 비트와 게임을 시작할 때 자주 볼 수 있는 press start n play라는 어구를 반복할 때는 세계관에 입장하는 몰입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런 비트가 그냥 쭉 이어지는 게 아니라 알람 소리가 나면서 더 급박한 전개의 날 선 신스와 붐뱁 드럼으로 만들어진 비트가 들어와 긴장감이 심화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변주가 한 번 더 일어난 채로 다음 트랙으로 은근슬쩍 전환될 때는 쾌감이 엄청납니다.

 

그렇게 들어오는 다음 트랙 Somozu Combat에서는 랩이 들어올 때부터 또 한 변 변주가 일어납니다. 2분 남짓한 시간에 비트가 네 번씩이나 바뀌는 연출은 시작부터 집중을 하게합니다. 끊어치는 날 선 신스와 묵직한 비트로 만들어진 건조한 비트가 인상적인데, 마치 사이버 스페이스 어딘가 오류가 나 글리치가 터지고 있는 인상을 줍니다. 여기에 탄탄한 발성과 절제된 플로우로 라이밍을 하는 Khundi Panda는 말 그대로 계속 점수를 내는 플레이어 같습니다. 특히 합장 이모지로 못 채우는 차크라 등등 센스가 넘치는 가사도 넘쳐서 그저 입만 벌린 채로 계속 듣게 됩니다.

 

곡의 후반부에 다시 한번 비트 변주가 들어오는데, 발현 악기를 만진 것 같은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루프에 가볍고 빠른 템포의 드럼이 곡의 분위기를 향수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바꿉니다. 전반부가 냉혈한의 차갑고 계산적인 플레이였다면 후반부는 경기 전 락커 룸에서의 주마등을 보는 듯한 애틋함이 묻어납니다. 물론 가사도 후반부가 좀 더 감성적이지만, 크게는 같은 골자의 가사가 프로덕션 덕에 완전히 다르게 와 닿습니다. 프로듀서 야간캠프의 역량에 감탄하게 됩니다.

 

 

프로듀서들 역시 MODM에서 큰 역할을 하는데, 전자음의 영향이 짙은 비트들이 각각 개성적인 포인트를 주축으로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습니다. Somozu Combat 다음 GRAY가 함께한 트랙 메인풀이 대표적인 예시인데, SALON 01의 래퍼 Pento의 포로듀서 자아인 LASER SOUND VISION이 세련되면서도 타격감이 충만한 비트를 제공합니다. 처음에는 디스토션이 걸린 전자 기타 같은 신스가 치고 들어오는데, 이 위에서 주사위를 빨리 굴리라는 반복 구절과 함께 진짜 주사위가 굴리는 듯한 셰이커 소리가 나옵니다. 여기에 점수가 올라가는 듯한 효과음과 화재 알람 소리도 들리는데, 고조되는 되는 비트가 툭 끊기더니 LASER SOUND VISION의 태그가 나오면서 비트가 시작됩니다. 전환 자체도 쾌감이 엄청나지만, 기타에 필터를 건 듯한 부드러우면서도 금속성을 띄는 신스 루프, 무거운 베이스와 묵직한 킥 드럼이 짱짱한 스네어와 대비되면서 독특한 그루브가 완성이 됩니다. 세련됨과 투박함을 동시에 잡는데 능한 SALON 01식 전자 음악의 표본입니다.

 

그리고 이런 훌륭한 비트 위에 Khundi Panda가 강렬하다 못해 작렬하는 플로우로 마구 라임을 쏟아 붓는데, 곡이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Somozu Combat의 조금 더 과격한 버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라이밍을 풀어가는 방식이 촘촘하면서도 너무 자연스러워 경외감이 듭니다. Verbal Jint의 절제되면서도 치밀한 라이밍 방법론과 E SENS의 자연스러운 화법 구사를 적절히 섞어 놓은 어떤 최종형태의 랩의 경지에 도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 어떤 구절에 강세를 넣는지 등등이 이 사람에게는 본능 같습니다. 훅도 긴 편인데 이러한 강세 처리로 캐치하게 설계했습니다. Khundi Panda의 밀도 높은 라이밍과는 살짝 대비되는 GRAY의 랩도 훌륭했습니다. 여유로운 플로우를 구사하면서 게임 래퍼런스도 일관되게 구사해 곡의 무게 중심을 잘 잡아줬습니다. 이런 모든 퍼포먼스 끝에 LASER SOUND VISION이 비트를 슬슬 톤 다운 시키며 부드럽게 안착하는 마무리까지 완벽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넉살과 함께한 Rarebreed도 훌륭했습니다. 지저분한 전자 기타 루프가 인상적인데 마치 소울 가수 Isaac Hayes의 미래적인 버전을 듣는 것 같은 도입부였습니다. 베이스와 드럼의 묵직함과 대조되게 스네어랑 하이햇은 가볍게 몰아치는 것도 특이했습니다. 여기서도 Khundi Panda의 래핑이 빛을 발하는데, 유연하고 날렵하게 라이밍을 펼칩니다. 특히 효과음과 함께 비트가 한 번도 고조되면서 톤도 올라갈 때는 제대로 시동이 걸린듯한 인상을 주면서 몰입도가 더 올라갑니다. 청량감이 상당한데 브릿지에서 다시 비트가 빠지면서 다음 벌스를 위해 예열하는 것 같다가 다시 넉살이 들어올 때 그 청량감을 다시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넉살은 마구 뱉는 듯하다가도 감속을 하면서 끈적한 플로우로 전환하면서 뛰어난 완급 조절을 보여줍니다. 제목처럼 본인들의 개성을 과시하는 곡인데, 제목을 납득하게 됩니다.

 

대부분 자기과시를 하는 트랙이 맞긴 하지만, 곡 별로 이를 다루는 방식이 다 다릅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게임이라는 테마 안의 많은 요소들을 다른 주제로 접근하는 식인 셈입니다. 인터루드의 역할을 하는 ‘Gacha Lord : 운칠기삼이 좋은 예입니다. 최근에도 논란이 많이 되었었던 확률형 아이템을 소재로 사용해서 제목 그대로 운칠기삼의 메시지를 담은 트랙입니다. 랩이 아니라 Summer Soul과 함께 스포큰 워드 형식으로 내레이션은 진행하는데, 약간의 아쉬움이 남습니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소재고 사회적으로도 뜨거운 주제인 만큼, ‘컨셔스하지는 않더라도 더 디테일하게 다룰 수 있었던 트랙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비슷한 의미에서 Beta for More…도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브레이크 비트와 우주적인 신스에 Khundi Panda가 이례적으로 포효하듯이 오토튠을 끼고 울부짖는데, 화음도 얹히고 발진하는 드럼과 상승하는 신스음까지 재미있는 요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변주에 지저분한 베이스가 깔리면서 Khundi Panda가 단어들을 툭툭 뱉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더 많은 라이벌을 원한다는 의사를 표출하면서 여운 있는 마무리를 선사하기는 하지만, 프로덕션의 화려함에 비해 Khundi Panda의 퍼포먼스는 그닥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좀 더 정돈된 곡 구조에 벌스라도 하나 넣었다면 더 감흥 있는 감상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재미있게 들었고 프로덕션이 워낙 훌륭해서 앨범을 돌릴수록 꽂히는 면이 있는 곡입니다..

 

이렇게 보컬 톤을 사용하는 곡이 하나 더 있는데, 4번 트랙 트럼프쥬스입니다. 비록 아예 노래를 부른다고 할 수는 없으나, 오토튠을 활용해서 벌스에 살짝 음가를 더해 플로우를 구축합니다. 전자 건반, 섬세한 클랩과 하이햇이 인상적인데, 믹싱 엔지니어인 나잠수의 뛰어난 디테일이 잘 보이는 구간입니다. 중간중간 배치된 하프 같은 신스 아르페지오와 여러 효과음이 하나 하나 명확하게 들리면서도 전체적인 구성에서 튀지 않습니다. 프로듀서 Glam Gould가 이색적 재료로 요리한 음식을 나잠수가 훌륭하게 플레이팅 했습니다. 

 

중점적인 역할을 하는 프레이즈가 없어 구조는 느슨한 편이지만, 여러모로 기억에 남도록 설계된 여러 장치 덕에 편하게 감상할 수 있으면서도 기억에 남는 곡입니다. 특히 동전 소리를 입으로 낼 때에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오히려 그 뻔뻔함이 흥미롭습니다. 바운스 감이 있는 비트에 통통 튀는 플로우에 걸맞은 추임새입니다. 여러모로 asmr 같은 소리의 향연, 편안한 플로우, 그리고 초반의 높은 텐션을 낮춰주는 적절한 트랙 배치까지 정말 좋게 들은 트랙입니다. 승리의 축배를 뜻하는 제목인데 신나는 분위기보다는 일종의 안도감과 편안한 정서를 담아낸 것도 독특한 접근이었습니다.

 

 

다음 트랙 Yucked Up Clan!부터 다시 텐션이 올라갑니다. 퍼지는 킥 드럼과 노이즈처럼 울리는 신스, 그리고 날카롭게 튀는 하이햇으로 만들어진 비트에서 함께한 CHOILB, Puff Daehee, 그리고 Verbal Jint가 각자 벌스를 전개합니다. 중간중간 스네어들이 마구 휘몰아치는 구간이 나와 비교적 평이한 루프임에도 지속적으로 분위기가 환기됩니다. Khundi Panda는 여전히 탄탄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만, 가장 빛나는 건 다양한 플로우를 뽐내는 참여진입니다. 어설프게 뭉친 크루를 비난하는 트랙인데, 네 명 모두 주제를 잘 맞추면서 능숙하게 비트를 탑니다. CHOILB는 격앙된 톤에도 안정적인 호흡으로 쭉 벌스를 마무리하며, Puff Daehee는 끝 단어를 강조하는 복고식 플로우를 세련되게 재해석해서 트랙에 그루브감을 더합니다. 여기에 Verbal Jint는 평소보다 더 끊어치는 플로우를 톤을 올려서 뱉는데, 라임 배치와 능숙하게 비트를 타는 모습에서 백전노장의 관록이 보였습니다. 잘 만들어진 단체곡으로 수준 미달의 단체들을 공격하는 점이 특히 더 고무적이었습니다.

 

Verbal Jint의 관록 넘치는 베테랑의 능숙함은 화나와 개코가 함께한 8번 트랙 원시의 힘에서 다시 느낄 수 있습니다. 인트로에서 두 번째로 나온 비트가 여기서 다시 나오는데, ‘원시의 힘에서는 간주가 아니라 메인 루프로 쓰입니다. 앨범을 통틀어 가장 날카로운 비트인데, 도입부에 바이닐 판이 튀기는 효과까지 입혀져 있어 더 두드러집니다. 금속성의 질감의 드럼이 빠른 템포로 전개되어서 긴장감을 넘어 일종의 강박성이 느껴집니다. 베이스는 스피커를 뚫어버릴 듯이 찌그러진다는 점도 한 몫 합니다.

 

여기서 세 명의 래퍼가 모두 탄탄한 랩 퍼포먼스를 보여주는데, 화나는 목이 찢어질 듯한 허스키한 목소리로 차분히 라이밍을 펼치고, 개코는 끈적하게 라이밍을 짜내듯이 저는 듯 안 저는 듯한 위태로운 독특한 플로우를 구사합니다. Khundi Panda의 벌스가 워낙 정석적인 면이 있어서 다양하면서도 균형감 있는 곡이 완성됩니다. ‘원시의 힘이 포켓 몬스터에 나오는 기술 이름에서 따온 오마주라는 점과 피쳐링한 인원이 한국 힙합에서는 이미 전설들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그 중 한 명이 라이밍이라는 힙합의 가장 기초적인 면모가 극대화 된 래퍼라는 점에서 센스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대중문화 래퍼런스는 MODM에서 자주 보이는데, ‘원시의 힘바로 다음 트랙 토끼공주 빈데어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게임의 정점에 서 있는 고인물들을 풍자한 인터넷 밈인 토끼공주에 본인을 대입하는데, 제목부터 이게 뭔가 싶다가도 실소가 나옵니다. 빈데어는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으나, 영제를 보니 Been There라는 뜻이니, 둘을 조합하면 본인이 이미 볼 것은 다 봤다는 경지에 오른 인물임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대음 수상 경력과 쇼미더머니 본선 진출 등등 Khundi Panda는 실제로 산전 수전을 겪고 온만큼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고 그에 합당한 가사를 다룹니다.

 

경험 없는 뉴비들을 혹독하리만치 공격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점에 올랐다 해서 멈추지 않고 변화하겠다는 내용은 묘한 감동이 있기도 합니다. 투박한 스네어와 셰이커 소리가 합쳐져 브레이크 비트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웅장한 베이스와 명상적인 신스가 얹히면서 오래된 드럼과 미래적 소스가 뭉쳐서 2000년대 뉴욕 지역의 Def Jux 작업물의 레트로한 미래 지향주의가 떠오릅니다. 안정적 Khundi Panda의 래핑도 좋았지만, 멀티트랙으로 보컬 사운드를 보완하고 끝 음을 길게 처리한 훅도 캐치했습니다. 여기에 DJ Wegun의 화려한 스크래칭까지 더하면서 새로운 소리들의 복고적 활용으로 향수를 자극하는 흥미로운 트랙이었습니다.

 

MODM은 성공적인 전환입니다. 수필적인 성격의 작품에서 오락성 음악으로 방향을 바꿨지만 결국 Khundi Panda를 최고로 만든 요소들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훌륭한 라이밍, 자연스러운 문장력, 개성 있는 비트 초이스, 그리고 탄탄한 앨범 구성 능력까지 고스란히 여전합니다. 게다가 오락성 앨범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음악 외적으로도 숨겨진 흥미로운 장치들이 듣는 재미를 배가 시킵니다. 매 트랙 마다 MODM을 약자로 활용해서 다른 문장을 곡 주제에 맞게 삽입하기도 하고, 트랙의 배치가 단순히 음악적 기승전결만을 고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게임을 천천히 깨는 듯이 승리하고 성장하는 과정, 그리고 그 끝에서 오는 고독과 깨달음이 선형적 서사로 진행이 됩니다. 가장 오락적인 앨범에서도 작품성을 생각하는, 일종의 이스터 에그라 할 수 있는 디테일까지 챙기는데 그것들이 작위적이지 않고 너무 자연스럽게 녹아 듭니다. Khundi Panda를 이 시대가 원할지는 제가 판단할 거리가 아니지만, 그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MC임은 분명합니다. 비트, 가사, 플로우, 발성, 구성 전부 탁월했습니다

 

펜타킬!

 

Best Tracks: Somozu Combat, 메인풀, 트럼프쥬스, Yucked Up Clan!, Rarebreed, 원시의 힘, 토끼공주 빈데어

 

Worst Track: Gacha Lord : 운칠기삼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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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5-26 03:27:16

아쉽다고 짚어주신 지점들도, 결국에는 필요했던 장치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WR
2021-05-30 11:04:17

어떤 예술적인 메시지나 서사 구축에는 분명히 의도성이 있었을거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다뤘다면 더 자세하고 섬세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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