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kodomo (소코도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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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14 20:57:11

 

sokodomo는 고등래퍼가 배출한 최고의 아웃풋 중 한 명이었습니다. 물론 짜집기 등의 논란이 있었으나 본인의 책임이라 보기 어렵고, 무엇보다 그는 고등래퍼 이후에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 커리어를 탄탄히 하겠다는 의지를 제대로 보였습니다. 독특한 패션과 개성이 넘치다 못해 과다하다는 평까지 들었던 sokodomo는 고등래퍼라는 딱지는 한참 전에 떼었습니다. 전작 WWW.III도 이런 개성이 담겨 재밌는 감상을 선사했었으나 이를 더 과감하게 밀어붙이지 않은 인상이 남아 살짝 아쉬움이 남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EP “…---…”는 그동안 줄곧 제가 기대하던 sokodomo의 개성과 역량이 십분 발휘된 훌륭한 앨범입니다.

 

이미 앨범의 첫 트랙 SLATT부터 sokodomo는 랩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힙합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sokodomo인데 인트로부터 이런 성향을 공표하는 셈입니다. 피쳐링한 Haeil과 함께 주문을 읊듯이 가성으로 보컬을 구사하는데, 그루브감이 극대화 된 베이스 기타와 작열하는 디스토션이 걸린 전자 기타와 합쳐져 21세기 P-Funk가 느껴집니다. 음울하지만 신이 나는데, 무엇보다 뒤로 갈수록 악기가 쌓이는 곳에서는 Queens of the Stone Age 같은 얼터너티브 블루스 록의 색체도 보입니다. 여기서 인더스트리얼 전자 음악이 생각나는 베이스로 급격하게 전환되는 연출까지 앨범 초장부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멜로디는 주술적인 동시에 굉장히 반복적이고 끈적하게 설계되어있어서 곡의 중심이 잡힙니다. sokodomo와 프로듀서 sesåme의 조합은 언제나 흥미로웠지만, 이번 앨범을 계기로 더 역동적이면서도 안정적인 모순적 발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클리셰가 되어버린 힙합 슬랭인 slatt을 제목으로 하는 트랙이라 신선함 더 극대화되어 다가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uUh9qmy7eo

 

이런 정신 나간 허를 찌르는 전개는 박재범과 MM에서는 더 파격적입니다. 밴드 음악에서나 볼 수 있는 드럼과 공간감 있는 기타에 멜로디를 얹고 시작하는데 갑자기 다른 노래를 튼 것처럼 긴장감 넘치는 신스와 클랩, 그리고 영화 음악에 나올 법한 웅장한 드럼이 들어옵니다. 심지어 템포도 빨라져 처음에는 심히 당황스러웠으나, sokodomo의 멜로디가 너무 캐치해서 계속 듣게 됩니다. 오토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데, 높은 톤부터 팝 적인 멜로디까지 Hyper Pop의 영향이 많이 묻어납니다. 하지만 이런 기계적인 느낌이 지속적으로 노동을 강요 당하는 현대인의 인간 소외 현상을 광시곡과 같이 다루는 가사와도 잘 어울리고, 브릿지에서는 트럼펫 세션이 치고 나오면서 인간미와 고무감을 선사해 무게도 잡힙니다. 3분도 안 되는 런닝 타임에 이렇게까지 많은 감정과 소리를 담아내는 역량은 천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간 중간 옅게 들려오지만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는 화음, 두 번째 훅에서 클래식 성악 합창과 비슷하게 훅을 처리하는 것까지 상상하지 못한 요소를 끌어와 예리하고 치밀하게 풀어냅니다. 피쳐링한 박재범도 평소와 다르게 개인적인 성공 서사보다는 곡을 위해 강박에 빠진 인간상을 광적인 딜러버리로 소화하면서 완성도를 끌어올려줍니다. 가히 천재의 영감과 역량이 피부로 와 닿는 훌륭한 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az74AUtBp4

 

MMHyper Pop적인 요소를 차용하는 정도라면 다음 곡 EGO는 이를 거의 힙합 곡이 아니다 싶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Hyper Pop의 본좌’격 위치에 있는 영국의 PC Music 사단이 바로 생각나는데, A.G. Cook과 같은 프로듀서의 날이 서 있는 신스, 얼터너티브 록을 연상시키는 코드 진행까지 정말 충실하게 구현합니다. 일종의 뉘앙스 카피처럼 여겨지는 청자도 있겠지만, sokodomo가 보컬을 구사하는 방식은 또 독특합니다. Hyper Pop의 많은 장르가 그렇듯이 템포가 굉장히 빠른데 sokodomo는 좀 더 우울한 멜로디를 느리게 전개합니다. 이런 대비되는 병치가 흥미로운 곡을 만드는데, 상당히 퇴폐적이고 자살 충동 비슷한 내용을 다루는 가사와 잘 들어맞습니다. 오히려 충격적인 삑사리로 유명한 래퍼 645AR의 트랩 비트에서는 코믹한 존재감이 Hyper Pop 색의 비트에서는 오히려 진지하게 좋게 들립니다. 워낙 초고음 오토튠을 많이 사용하는 장르라 괴리감이 덜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대조되는 요소의 병치에서 시너지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힙합의 범주에서 벗어난 여러 소리들로 이루어진 실험적 곡들도 재밌지만, …---…는 랩에 관련된 부분도 매우 탄탄한 앨범입니다. Huckleberry P와 함께한 2번 트랙 PEGASUS가 대표적인데, 서늘한 공간감이 있는 신스로 만들어진 비트가 심해에 잠겨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상당히 추상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sokodomo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변해버린 오랜 친구 때문에 슬퍼하는 내용을 독기 어린 시선으로 담아냅니다. 떠떠떠거리는 훅이 Verbal Jint를 연상시키기도 해서 뇌리에 남습니다. 이 위에서 과장된 톤으로 끊어치면서도 매끄럽게 비트를 타는데, 화려하게 랩을 뱉어대는 Huckleberry P의 엄청난 존재감에도 딱히 밀리지가 않습니다. 특히 훅에서 멀티 트랙으로 보컬을 쌓는 등의 방법으로 목소리를 쉽게 잊히게 하지 않습니다.

 

다음 트랙 OTHER WORLD 역시 랩 퍼포먼스가 훌륭했습니다.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발현 악기의 일종으로 만들어진 루프와 쿵쿵거리게 퍼지는 드럼이 특히 인상적인 곡입니다. 여기에서 비트가 빠졌다가 들어오는 구간들을 십분 활용해서 톤을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다양한 플로우룰 엄청 화려하게 구사합니다.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번 돈을 마구 날리면서도 경쟁에서 승리하고자하는 강박감도 다루는 것 같습니다. 엄청난 텐션의 곡이라 잘 어울립니다. 특히 훅이 곡이 진행될 수록 점점 기계화 되어가는 점진적 연출도 흥미로웠는데, 화음과 추임새마저도 기계음을 입히는 연출이 마치 경쟁 심리에 차가워지는 인간상을 표출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음악적 연출로 메시지를 증폭시키는 경우는 너무 뻔하거나 전혀 캐치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sokodomosesåme는 그 애매한 경계를 정말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합니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FUNKY DON도 앨범의 다른 트랙들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음악성과 퍼포먼스 그리고 실험성의 조합을 보여줍니다. 래퍼 Xinsayne과 일본 래퍼 LEX가 함께하는데, 두 명 모두 훌륭했습니다. 비록 일본어를 잘 몰라 익숙하지는 않지만 긁히는 목소리와 미성을 오가는 LEX의 톤 처리와, 비트가 빠지는 구간에서는 엇박을 구사하다가 들어올 때는 능숙하게 정박을 타는 Xinsayne 모두 기억에 남는 벌스들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sokodomo는 한 술 더 떠서 바꿔가는 톤은 물론 벌스가 진행될수록 멜로디에 비중을 키우는 벌스는 일종의 해체주의적 쾌감이 있습니다. 비트는 한 때 싸클에서 xxxtentacion 같은 래퍼가 유행시켰던 파괴적인 베이스가 두드러지는 베이스 비트인데, 긴박한 신스 사용과 빌드 업이 되는 효과음 등등이 추가되면서 벌스의 쾌감을 배가시킵니다. 돈에 대한 찬가를 그리는 듯한데 잔혹동화가 연상되는 브릿지가 간단한 훅을 세뇌 당한 사람이 주술을 읊는 것 같이 들리게 합니다. 워낙 광기 어린 면이 엿보여서 비트는 비교적 평범한데도 뇌리에 각인됐습니다.

 

정말로 놀랍다는 말 밖에 안 나오는 앨범입니다. 좋은 의미로 정신이 폭발하는듯한 감상이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장르의 경계를 신경 쓰지 않고 마구잡이로 혼합하면서 정돈된 음악을 보여준 아티스트가 또 있었나 싶습니다. 단순히 혼돈의 미학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상업적인 코드를 자연스럽게 녹여냅니다. 그리고 여기에 현대 사회가 직시해야 하는 문제들을 은연 중에 가사에 녹아내는 것도 작위적이지 않고 세련됩니다. 비록 한 줄의 임펙트가 강하지는 않아 작사 방식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어쩌면 이 앨범은 그것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음악을 듣게 되면 단순히 미래 지향적이라는 인상을 넘어서 실제로 음악이 미래에는 이렇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미래의 사운드트랙을 미리 엿 들어본 것 같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앞으로 sokodomosesåme의 앞날이 너무나 기대됩니다.

 

Best Tracks: SLATT, PEGASUS, OTHER WORLD, MM, EGO, FUNKY DON

Worst Tracks: N/A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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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1-05-16 00:28:47
정말 들으면서 와...소리밖에 안나왔네요. 소코도모의 랩 sesåme의 비트, 적절한 피쳐랑까지(특히 헉피) 너무 독특하고 좋았어요. 데이토나 이후로 가장 강렬한 짧은 엘범 같습니다.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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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20 22:55:57

네네 짧은 길이에도 불구하고 할 거 다하고 또 기름기?는 없어서 너무 깔끔하게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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