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bal Jint (버벌진트) - 변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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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5-08 01:37:50

 

Verbal Jint의 작품들은 언제나 자신감으로 가득했습니다. 자아성찰을 하더라도 자신의 실력과 이성에 대한 확신은 언제나 견고했습니다. 커리어의 정점이라고 평가 받는 희대의 명반 누명만 하더라도 힙합 씬과의 투쟁이라 볼 수 있을 정도로 호전적이었습니다. ‘Wack’함을 경멸하는 그의 태도는 그를 씬의 중심부로 이끌었고, 이후에는 Go Easy등의 앨범으로 상업적인 행보도 능숙하게 밟아가며 대중적인 입지도 넓혔습니다. 힙합 장르 팬들은 실망감을 표하기도 했지만, 그의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Verbal Jint2016년 크나큰 시련을 맞이하게 됩니다. 음주운전으로 대중적 입지를 한 순간에 잃어버렸고, 과거 그와 다퉜던 평론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유아적으로 조롱하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Verbal Jint의 행보는 평소와는 사뭇 달라졌습니다. 반성 곡을 연달아 수없이 발표하는 것은 물론, 그 반성 곡의 3주년을 맞아 다시 업데이트를 해서 발매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앨범 변곡점은 그런 기류의 연장선에 있지만 앨범 제목에 걸맞게 과거의 과오로부터 앞으로 나아가 다시 자신감을 회복하는 과정을 담아냅니다.

 

전작 GO HARD의 마지막 곡 Gone을 샘플한 첫 곡 Gone for a Minute에서부터 자신이 저지른 죄와 그에 따라 잃은 입지, 그리고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담담한 태도를 보입니다. 과거 발매한 곡들을 언급하며 돌아보는 시각은 관록과 씁쓸함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차분한 드럼, 훵키한 베이스, 그리고 중심을 굳게 잡아주는 건반이 인상적인 비트인데, 이 위에 세련되고 군더더기 없는 Verbal Jint의 플로우와 라이밍은 여전합니다. 치밀한 디테일로 꽉 찬 사운드를 구사하는 Verbal Jint의 내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포 카운트 시작과 함께 다음 곡 Hey VJ로 넘어갑니다. 박자에 딱 맞게 벌스를 시작하는데 힙합 팬이라면 미소를 짓게 되는 쾌감이 있습니다. 묵직하면서도 따뜻한 베이스, 잔잔한 전자 건반, 그리고 투박한 드럼이 고풍스러우면서도 훵키한 그루브 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중간중간 G-Funk가 연상되는 과감한 변주와 벌스가 진행됨에 따라 악기를 뺐다가 다시 넣는 식으로 랩으로만 이루어진 트랙임에도 청자의 집중을 잡아둡니다. Verbal Jint도 훌륭한 비트에 걸맞게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절제된 플로우와 치밀한 라이밍을 시원하게 구사합니다.

 

제목에 그대로 부합하는 트랙이기도 한데, 자문자답으로 근황을 풀어내는 서술 방식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질문을 할 때는 톤을 조금만 올려 치면서 음악적 괴리감은 줄이면서 몰입도는 유지시키는 센스는 Verbal Jint의 예술적 감각이 빛을 발하는 선택입니다. 음주운전의 과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의연해졌지만 여전히 죄의식은 머리 속에서 언저리에 어슬렁거리고, 자신의 예술에 대한 반응을 냉정히 분석하기도 하면서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들을 뛰어난 퍼포먼스와 문장력으로 자연스럽게 녹여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Y-BOxBSDpQ 

 

Hey VJ의 변주는 인상적이지만, ‘변곡점에는 이를 더 과감하게 실행한 경우가 꽤 많습니다. 보컬리스트 Isobel Kim과 함께한 다음 곡 걷는 중은 아예 다른 비트 몇 개를 조합해서 만들었다는 인상이 들 정도로 변주가 파격적입니다. 싸이키델릭한 신스가 두드러지는 비트 위에 속도감 있게 랩을 하다가 건반과 Isobel Kim의 고혹적인 보컬이 치고 들어오면서 과감하게 전환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두 번째 벌스가 끝나고 명상적인 트랩 비트로 또 다시 비트가 바뀌면서 처음 나온 비트의 신스가 피치가 내려간 상태로 다시 들어옵니다. 비트 별로 다루는 주제도 다른데, 첫 벌스는 끝나가는 겨울에 느끼는 누군가를 향한 감사함, 두 번째 벌스는 삶의 속도를 늦춰서 느끼는 여유, 마지막 벌스는 다시 겨울이 된 시점에서 한 해를 돌아보며 후회할 것들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 되짚으며 곡을 마무리합니다. 전환에 걸맞게 일 년이 흘러가는 몽타주 같은 연출을 의도한 듯 하고 실제로 잘 전달됩니다.

 

걷는 중은 곡을 듣는 청자에게 자신의 방어적인 태도를 어느 정도 이해해달라고 호소하는데, 바로 다음 트랙인 Open Letter 역시 이런 대화체 같은 화법을 구사합니다. 실수를 한 본인의 무기력함을 일상적인 분위기로 가볍게 다루는데, 팬들에게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일종의 미안함을 느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산뜻한 느낌을 주는 변조된 건반이 주된 트랩 비트인데, 듣기 쉬우면서도 날렵한 플로우와 살짝 필터가 걸려 있는 듯한 랩이 잘 어울립니다. 함께한 화영의 보컬은 음역대가 다이나믹 하지는 않으나 현악 세션이 들어오면서 주는 감흥이 상당합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보컬 부분이 조금 낮게 믹싱된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훅이 들어올 때는 신스까지 추가되면서 더 고무적이어야 할 부분이 오히려 소리에 묻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좋게 들은 곡에 아주 작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curv moon과 함께한 나는 하수다에서는 분위기가 한 층 더 희망차게 바뀝니다. 도입부부터 고무적인데, 가스펠 형식으로 편곡된 좋아보여보컬 라인이 터지면서 명량한 건반과 프로듀서 Mike Dean이 연상되는 웅장한 신스가 들어옵니다. 여기에 다른 신스도 겹겹이 얹히면서 Verbal Jint 곡 중에서 역대급으로 풍부한 사운드가 완성됩니다. 비트와는 상반되게 차분한 플로우로 라이밍을 전개해 나가는데, 어렸을 때는 꿈을 좇는 것에 대한 회의를 가진 부모님의 시선과 랩 게임의 냉정함에 의연해지는 과정을 서사적으로 풀어냅니다. 훅에서 클랩 드럼이 두드러지면서 현악 세션이 멋있게 깔리는데, curv moon의 멜로디와 퍼포먼스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줍니다. 곡의 마무리에서는 악기가 마구 쌓이면서 경건한 분위기까지 연출합니다. 스케일이 큼에도 신파적이지 않고 예리하게 감동을 전달한 훌륭한 곡입니다.

 

이후 앨범의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Verbal Jint는 커리어 초창기의 호기로운 면을 다시 보여줍니다. lIlBOI와 함께한 흑화의 뜻은 꽂히는 플룻 루프가 돋보이는 트랩 비트 위에서 헤이터들을 공격하고 다시 hustle하겠다는 의지를 담아냅니다. 말 그대로 흑화를 한 셈인데, lIlBOI도 이에 맞춰 실망스러운 인간 관계를 안겨준 판에 대한 회의감을 담아냅니다. 훅에서도 특정 명사의 정의를 깨달았다고 나열하는데 일종의 건방진 깨달음이 느껴집니다. 안 좋게 보면 중2병스럽다고 해석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지만, 앨범의 트랙리스트 배치가 적절해서 분위기를 제대로 환기시킵니다. 비트가 상당히 흥미로운데, 건조한 톤의 미니멀한 트랩 비트라는 첫 인상과는 다르게, 현악 세션, 단조의 건반과 트럼펫이 변조된 듯한 소리를 내는 신스까지 디테일이 매우 치밀합니다. 그냥 들으면 랩을 잘하는 트랙이지만, 자세히 들으면 세심하게 짜인 구성이란 점을 알 수 있습니다. Verbal Jint의 프로덕션 능력의 이러한 치밀함을 특히 좋아하는 만큼 굉장히 만족스럽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류의 8번 트랙 내가 그걸 모를까는 그런 면에서 아쉬웠습니다. 역시 자신을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적 우월성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취지의 곡인데, 속삭이는 듯한 톤과 여유 있게 툭툭 뱉는 플로우는 기분 좋게 능글맞고, JUSTHIS 역시 테마를 잘 살리면서 랩을 화려하게 뱉기 때문에 일종의 대조를 이루어 트랙의 무게중심을 잡습니다. 문제는 이 트랙의 비트인데, 강한 베이스와 날 선 신스 루프는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앨범의 다른 트랙들에 비해 너무 사운드가 비어있습니다. 미니멀 함을 의도한 방향이었겠지만 아무래도 앨범 감상에 있어 방해되는 면이 적지 않아 계륵 같은 트랙이었습니다.

 

오히려 같은 주제를 더 심도 있고 흥미롭게 다루면서 음악적으로도 완성도가 뛰어났던 7번 트랙 공인을 훨씬 좋게 들었습니다. Hey VJ와 비슷한 화법을 구사하는데, 여기서는 자문자답을 넘어서 아예 톤을 바꿔가며 본인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연기합니다. 걸걸한 톤은 물론이고 보컬의 피치도 조절하는데, 여기에 피쳐링한 한요한의 내레이션도 얹히면서 정말 재미있는 곡이 완성됩니다. 그리고 녹음 세션을 그대로 옮겨 놓은듯한 Verbal Jint 본인의 내레이션이 일종의 현장감을 주는데, 도입부에서 순서대로 악기를 넣으라는 오더와 MckDaddyYouTube 컨텐츠를 패러디 한듯한 부분은 실소를 자아냅니다.

 

비트도 독특한데, 어쿠스틱 기타 라인은 서정적이지만 사용된 신스는 훵크 기타 리크를 변용한 듯해서 상당히 무겁고 거칠어서 일종의 긴박함을 줍니다. 베이스와 드럼도 투박해서 더욱 무거운 사운드가 구축됩니다. 함께한 Swings도 우직하게 랩을 마구 뱉으면서 본인의 사상을 시원하게 표출하며 트랙의 중심을 잡아줍니다. 유독 한국에서 많이 제기되는 연예인 공인설을 적나라하게 저격하는 곡인지라, 이 주제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두 래퍼의 케미는 참으로 환상적입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실행한 모범적인 완성도를 보여준 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bW0NlUy1Bg

 

이렇게 공격적인 앨범의 전개는 오로지 Verbal Jint 개인의 서사보다는 항상 그래왔듯 세간과 그의 관계를 중점으로 풀이가 된 트랙들입니다. 자신의 사념이 투영이 되었지만 그를 풀이하는 방식에서 외부와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적극적으로 개입됩니다. 하지만 9번 트랙부터는 이런 세상과의 관계보다는 본인의 삶과 사상에 더 중점을 맞춥니다. 앨범의 전반부가 반성과 죗값의 수용, 중반부는 그럼에도 부딪혀야 하는 불합리, 후반부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얻은 결론을 서술합니다.

 

9번 트랙 아홉수부터 자명합니다. 9번 트랙이라는 점과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 본인의 19, 29, 그리고 39세 시절에 각각 하나씩 벌스를 배정한 설계에 따라 완성된 곡입니다. 도입부에서 Been through the fire라는 가사에 디스토션을 걸고 나서 같은 라인을 소울 보컬로 소화해낸 다음 병치시키는데, 청각적 쾌감이 상당했습니다. 여기에 향수를 자극하는 신스와 훵크 기타 리크가 조합된 비트는 전 트랙에 비해 상대적으로 잔잔한 곡임에도 분위기 형성이 치밀해 청자를 몰입시킵니다. 훅은 제목을 반복할 뿐이지만 그 구간에서는 기타 리크와 드럼만 남기다시피 해서 다시 한번 허를 찌릅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두 번째 벌스가 도입하는데 다시 비트가 떨어질 때는 힙합 팬의 감각을 제대로 저격합니다. 그 외에도 세 번째 벌스에서는 화음이 쌓이기도 하는 등, ‘아홉수Verbal Jint slow burner 제작에는 장인에 가까운 궤도에 올랐음을 제대로 보여준 곡입니다

 

다음 트랙 물론 아냐 라면은 텐션을 좀 더 올립니다. 밝은 클랩과 투박한 드럼의 대조적인 병치, 따뜻한 신스와 어쿠스틱 기타, 빈틈을 꼼꼼히 채워주는 건반, 속도감 있는 템포, 그리고 고무적인 브라스 악기가 합쳐지면서 치열하고 고무적인 사운드가 연출됩니다. 심지어 마지막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레게 풍의 변주도 사운드가 풍성해서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Verbal Jint의 세심한 디테일을 잘 보여주는 트랙입니다. 여기에 살짝 음가를 얹어서 캐치한 플로우를 보여주는데, 비트의 분위기와 청춘을 응원하는 가사가 어우러지면서 비장하면서도 감동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인터넷 밈으로 지은 제목과 40의 나이에 청춘에게 조언의 형식을 띈 가사는 소위 꼰대같은 면을 부각시키는 위험 요소인데, 작위적이기는커녕 서사의 후반부라는 배치, 뛰어난 사운드와 퍼포먼스 덕에 정말 호소력 있게 들렸습니다. 이런 곡이 있기에 Verbal Jint에게 한국 힙합 최고의 베테랑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1IKgXE_2M4

 

아쉽게도 물론 아냐 라면의 훌륭한 요소들은 마미손과 함께한 다음 트랙 비정한 세상 피토하는 음악에서는 부정적으로 작용합니다. 곡의 뼈대 자체는 훌륭합니다. 복고적인 신스와 디스코 리듬의 차진 드럼은 레트로 스타일을 제대로 구현합니다. 그리고 마미손의 인트로도 대놓고 노린 제목과 걸맞게 나름 익살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이 곡의 문제는 Verbal Jint의 보컬 퍼포먼스입니다. 멜로디도 매력적이고 기억에 남지만 코러스 부분에서 Verbal Jint의 보컬의 한계가 너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벌스나 코러스 직전의 브릿지까지만 해도 비음이 나름대로 곡의 유머스러운 면과의 일치가 된다고 생각하고 납득할 수 있지만, 코러스는 아무래도 너무 억지스럽고 힘겹게 들립니다. Verbal Jint물론 아냐 라면과 같이 낮은 높낮이의 보컬 라인에서 매력적인데, 이 곡에서는 너무 무리했다는 인상입니다. 차라리 코러스를 오토튠 처리하거나 다른 보컬을 기용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미손의 피쳐링 벌스는 추상적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도대체 곡의 핵심 주제와 무슨 연결고리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라임이 없는 랩으로 창의적인 무언가가 나올까 생각했지만, 치밀하지는 않아도 결국 마지막 운은 맞추는 라임을 보여줘서 곡의 도입부의 엄포와도 말이 안 맞습니다. 프로덕션, 멜로디 라인, 중간에 변주와 함께 들어오는 Verbal Jint의 랩 벌스 등등 좋은 요소가 많지만 몇몇 치명적인 단점들이 아무래도 곡의 중심을 흩트려놓습니다. 어떤 날에는 좋게 들리고, 어떤 날에는 도저히 끝까지 들을 수 없는 답답한 곡입니다.

 

변곡점에서 보컬 처리가 오류인 또 다른 곡은 BIG Naughty와 함께한 불협화음입니다. 밝은 신스와 어린 아이의 옹알이 소리가 삽입이 되어 개성 넘치는 비트는 재밌지만, Verbal Jint는 벌스에서는 너무 발음을 흘리고, 훅은 조금 억지스러운 멜로디와 피치를 비음이 더 두드러지게 조정해놔서 듣기에 너무 불편했습니다. ‘물론 아냐 라면의 연장선에서 자신보다 한참 후배인 아티스트에게 조언을 구하는 아름다운 취지의 곡이라 더욱 아쉽습니다. 오히려 BIG Naughty가 보컬과 랩을 쉽게 넘나들며 비트를 훨씬 능숙하게 해석합니다.

 

반면에 12번 트랙 My G-WagenVerbal Jint의 장기인 깔끔한 플로우를 현대의 트렌드에 맞게 훌륭하게 재해석해낸 곡입니다. Verbal Jint의 앨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차에 대한 헌정가인데, 이번에는 G-Wagen이 그 대상입니다. GO HARD에 실려있던 프리퀄 격의 My Bentley의 가사를 샘플해서 훅으로 사용한 점도 반가웠습니다. 통통 튀는 밝은 신스와 에너지 넘치는 트랩 드럼, 사운드를 꽉 채우는 베이스와 다시 한번 Mike Dean을 연상시키는 신스 변주까지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곡입니다. 여기서도 음주운전에 대한 얘기를 하지만 속도감 있는 플로우와 비트 덕에 훨씬 더 긍정적이고 죄를 인정하고 양심에 새긴 다음 나아가는 인상을 줍니다. 함께한 수퍼비도 비트를 공격한다는 느낌보다는 분위기와 소재를 맞춰 조금 더 가볍고 캐치하게 벌스를 짜놓은 덕에 편안하면서도 신나는 균형 잡힌 곡이 완성됩니다.

 

마지막 트랙 변곡점 Outro’도 훌륭한 마무리입니다. 19세기 후반 미국 남부에서 파생된 Barrelhouse Jazz를 연상시키는 건반 진행과 김 빠지는 관악기부터 특이한데, 이 곡도 정석적인 구조의 랩을 다양한 톤으로 구사하면서 흥미로운 진행을 보여줍니다. 잘 나오지 않는 정규 앨범 때매 고뇌하는 과정을 그려내면서 울먹이는 듯한 톤이 점점 심화되다가 마지막에 청자에게 다시 한번 앨범을 들어보라는 부탁은 갑자기 원래의 목소리로 전달합니다. 2분이 안 되는 짧은 곡이지만 묘하게 역동적이고 여운이 남았습니다. 특히 Verbal Jint라는 래퍼가 대화체로 상당히 공손하게 반복 재생과 다음 작품을 기대하라는 말을 하는 점이 신선하고 의외였습니다.

 

변곡점의 첫 번째 차별점은 연예인 공인론에 대해서 일차원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첫 트랙에서 본인도 R. Kelly를 안 듣는다 말하면서 누군가에게는 본인도 같은 증오의 대상이라는 점을 납득합니다. 하지만 앨범의 중반부 구간에서는 그럼에도 선을 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받아칩니다. 이는 Verbal Jint가 공인에 대한 해석을 영리하게 한 구간입니다.

 

Verbal Jint는 한 명의 연예인 이전에 래퍼입니다. 그리고 한 명의 래퍼 이전에 생산자입니다. 그 상품은 그의 음악이고, 그 음악을 즐기는 팬들과 청자는 소비자입니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양측에게 재화를 교환하는 과정을 제외한 일말의 의무를 지지 않습니다. 모두가 아는 유명한 식당의 주인은 위생적인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암묵적 약속 이외에는 소비자에게 지켜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맛이 없으면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고 소비자는 다른 식당으로 가버리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유독 한국은 연예인에게 식당 주인에게는 요구하지 않는 것을 요구합니다.

 

물론 소비자는 생산자에게 소위 말해 정이 떨어져서물건을 소비하지 않을 권리도 당연히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명제는 공인트랙에서 Verbal Jint가 연기한 사람들처럼 도를 넘은 비난과 사생활을 침해할 권리도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되지 않습니다. ‘변곡점의 초반부와 중반부는 이런 미묘하면서도 따지고 보면 명백하고 당연한 관계를 정리합니다. 연예인의 사생활은 법을 기만하는 위법 행위일 경우에나 알 권리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이외의 경우는 그저 대중의 폭력에 불과합니다. 음주운전으로 Verbal Jint는 죗값과 자숙, 그리고 충분히 손해를 감당했고, 대중은 그 이상의 정보를 요구할 권리가 없습니다. 연예인과 대중이 아닌 시민 대 시민이 되어서 지켜야 할 선은 넘지 말아야 합니다. Cancel culture는 익명성 뒤에 숨어 욕설을 배변하며 관음적 욕구를 채우는 하류 인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가 아닙니다.

 

하지만 변곡점은 이런 을 강조하고 정의하는데 있어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런 을 긋고 나서도 Verbal Jint는 청자에게 이런 자신의 역경이 용기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전달합니다. 침범하지 않아야 할 타인의 영역이 반드시 단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티스트와 팬/대중의 사이가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로만 해석되는 것이 법적으로는 가장 합리적이고 정의로울지 언정, 그런 세상은 너무 삭막하고 냉정할 것입니다. 비정한 세상에 피 토하는 음악은 아티스트와 팬이 완전히 분리된 곳에서는 존재 가치를 잃습니다. 재미는 공유해야 비로소 진정으로 재미가 됩니다. 분노와 혐오의 세상에서 죄를 짓기도 하고 마구 짓밟히기도 한 Verbal Jint는 냉소적일 때 가장 박수를 많이 받은, 어찌 보면 비운의 예술가입니다. ‘변곡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아픔을 지워준 세상에게 다시 한 번 악수를 청하는 용감한 낙관주의자의 앨범입니다. 이런 진심이야말로 그 어떤 기술보다도 더 큰 울림을 주는 실력의 반증입니다. 새롭고 더 성숙해진 거장의 귀환에 다시 한번 가슴이 뜁니다. 환영합니다.

 

Best Tracks: Gone for a Minute, Hey VJ, 걷는 중, Open Letter, 나는 하수다, 흑화의 뜻, 공인, 아홉수, 물론 아냐 라면, My G-Wagen, 변곡점 Outro

 

Worst Track: 불협화음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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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WR
2021-05-08 17:34:30

감사합니다!

2021-05-09 22:16:30

리뷰진짜잘하셨네요! 궁금했는데,잘봤습니다!^^

WR
2021-05-14 16:26:34

좋게 읽어주셔서 뿌듯하네요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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