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Dilla (제이 딜라) - Welcome 2 Detro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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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2-28 01:33:59

 

현재 진행형 레전드 Kanye West 2013 HYPEBEAST 인터뷰 중에 남긴 인상 깊은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난 Dilla를 위해서 작업하는 것이다.”

 

그토록 강한 자아를 가진 것으로 유명한 Kanye West가 다른 프로듀서를 두고 저렇게까지 말하는 건 보기 드문 일입니다. 어쩌면 J Dilla가 받는 수많은 평가 중 가장 의미 있는 찬사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자의식 과잉에 시달리는 천재가 자신의 모든 행보를 누군가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한 것으로 단정하는 발언은 묘한 감동까지 느껴집니다.

 

J Dilla가 이렇게까지 추앙 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을 주름 잡던 Neo Soul 장르를 이끈 Soulquarians 집단의 사운드적 지주 역할을 했고, 장르를 넘나드는 샘플링 감각과 퀀타이징을 우회하면서 구사했던 자유로운 박자 체계는 후대의 프로듀서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런 영향력의 연장선으로 현재 온갖 플레이리스트로 유행하는 lo-fi hiphop의 쇄도를 J Dilla의 영향력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잖이 있습니다.

 

하지만 J Dilla가 이렇게까지 추앙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는 그의 유산이 단편적으로만 전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YouTube J Dilla 타입 비트를 치면 2000 Slum Village 데뷔 앨범에 실린 재즈 힙합 스타일이나 2006년 남긴 전설적인 유작 Donuts의 소울 샘플링을 위시한 스타일에 가까운 비트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스타일로만 일축하기엔 J Dilla15년을 못 넘기는 짧은 커리어 동안에도 매 순간 진화했던 아티스트입니다.

 

Fantastic Vol. 2, Ruff Draft EP, 대표작 Donuts, 사후 앨범 The Shining, 그리고 이번 리뷰로 다룰 Welcome 2 Detroit까지 J Dilla는 언제나 장르의 경계를 허물면서 대중성과 실험성의 경계를 시험하는 모험가적 기질이 있는 영혼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Welcome 2 Detroit J Dilla가 고착화된 색깔을 구사했던 초창기에서 더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한 중반부로 넘어가는 시기를 대표하는 과도기적인 앨범입니다. 심지어 실험성에서만큼은 취향을 떠나 국내에 더 잘 알려진 작품들보다도 과감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금에 J Dilla를 평가함에 있어 절대로 뺄 수 없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Welcome 2 Detroit 같은 앨범이 있었기에 마지막 역작인 Donuts 같은 명반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그런 Donuts 만큼의 가치를 지닌 명백한 명반입니다.

 

16트랙 중 첫 세 트랙만 들어도 평범하지 않은 앨범임을 알 수 있습니다. 1분도 되지 않는 타이틀 트랙, 1 30초를 못 채우는 Y’all Ain’t Ready, 그리고 갑자기 정상적인 3분대의 곡 길이의 Think Twice까지 상당히 빠르고 급작스러운 전개를 보여줍니다. 이 세 곡은 서로 스타일도 완전히 다릅니다.

 

타이틀 트랙에서는 터키 포크 록의 거장 Moğollar1970년작 Haliç'te Gün Batışı의 간주를 샘플하여 루프로 돌리고, Y’all Ain’t Ready에서는 샘플 없이 날이 선 신스와 찍어누르는 플로우로 하드코어 힙합을 보여줍니다. 그러더니 Think Twice에서는 동명의 Donald Byrd 1974년작 재즈 보컬 곡의 커버를 선보입니다. 객원 보컬 Dwele의 고급진 보컬과 휘슬 신시사이저로 훵크가 떠오르는 따뜻한 곡으로 재해석합니다. 한 술 더 떠서 Think Twice는 중간에 파격적인 변주가 연주 세션으로 이어지면서 건반, 휘몰아치는 심벌과 트럼펫 세션까지 퓨전 재즈를 떠올리는 구간도 등장합니다.

 

 

이 모든 사운드 전환과 장르를 넘나드는 흐름이 고작 6분 남짓한 시간에 일어납니다. 이 첫 6분이 Welcome 2 Detroit의 모든 음악을 응축해서 보여주는 훌륭한 맛보기입니다. 남은 35분 가량의 런닝 타임 동안 박진감 넘치는 파격적인 전개와 J Dilla의 자랑스러운 고향 디트로이트 시를 대표하는 수많은 래퍼들의 탄탄한 내공이 귀를 즐겁게 해줍니다.

 

Beej-N-Dem, Pt. 2에서 잘 드러납니다. 프로그레시브 훵크 밴드 Ohio Players1971년작 Pain에서 건반을 샘플하는데 밝고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나서 좋게 들었습니다. 피쳐링한 BeejJ Dilla 모두 언어유희를 위시한 자기과시 배틀 랩을 선보이는데, 스네어가 두드러지는 비트를 대놓고 칭찬하며 시작하는 Beej의 벌스가 기억에 남습니다. 또 다른 감상 포인트는 J Dilla의 보컬입니다. 브릿지 구간에서 약간은 레게와 소울을 섞은 듯한 풍으로 나른하게 흥얼거리는데 의외로 비트에 잘 어울립니다. 곡이 끝날 때 다양한 효과음이 쌓이면서 MPC를 마구 두들기는 듯이 박자가 쪼개지는 연출도 재미있습니다.

 

흥미롭게도 Ohio Players Pain Welcome 2 Detroit에서 다시 한번 샘플링이 됩니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One인데, 여기서는 특정 부분이 아니라 보컬, 건반, 플룻이 전부 섞여있는 부분을 필터링을 해 통으로 샘플합니다. 이 위에서 J Dilla는 개인적으로 고마워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을 마구 샤라웃하면서 앨범을 마무리하는데, 마지막에 끝나듯이 페이드 아웃을 했다가 다시 들어오는 등 약간의 똘끼가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샘플된 구간이 Beej-N-Dem, Pt. 2에서 샘플된 구간과 바로 이어지는 구간이라는 점입니다. 원곡에서 건반이 나오는 구간 이후 강력한 보컬이 나오면서 One에서의 샘플된 구간으로 전환되는데, J Dilla는 불과 20초도 안 되는 구간에서 곡 재료를 2개나 건진 것으로 모자라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샘플 자체를 운용하는 실력도 뛰어나지만 이런 샘플들을 디깅하는 귀도 남달랐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입니다.

 

Give It Up의 전 트랙인 It’s Like That에서도 Ohio Players의 샘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소울 밴드 The Temptations1972년작 Papa Was a Rolling Stone에서 따온 다음에 감속을 시켜서 더 그루브 감 있게 살렸는데, 참여한 Big ToneTa’Raach의 안정적인 배틀 랩과 J Dilla의 훅에서 쌓이는 악기 등등 고무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우주적인 분위기를 띄는 신스가 얹히면서 명상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는데 붕 뜨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곡이 마무리 되면서 드럼의 믹싱이 작아지고 신스는 반대로 더 커지는데, 이런 변주에 몰입하다가 갑자기 두 번째 비트로 전환이 됩니다. 허를 찔려서 타격감이 더 강한데, 여기서 초창기  Kanye West가 쓸 법했을 보컬 샘플 루프 방식이 보입니다. 그 보컬 샘플이 Ohio Players 1973년작 Ecstasy에서 따온 건데, 짧아서 아쉽지만 다음 곡 Give It Up의 조금 더 신나는 템포로 더 매끄럽게 전환을 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적재적소의 배치가 돋보입니다.

 

Ohio Players의 곡들이 Welcome 2 Detroit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J Dilla는 이들의 곡을 온갖 방식으로 활용합니다. 앞서 설명한 Beej-N-Dem, Pt.2 One에서는 한 곡에서 두 개의 곡을 끌어냈다면, Give It Up에서는 두 곡에서 각각 두 부분을 끌어낸 다음 한 곡으로 뭉쳐냅니다. 중독적인 베이스와 선명한 건반은 Ohio Players1972년작 Pride and Vanity 5초 가량의 도입부에서 가져왔고, 트랙의 인트로와 척추가 되는 드럼 루프와 중간중간 삽입되는 짧은 보컬 샘플은 알앤비 Joe Tex1966년작 Papa Was Too에서 끌어왔습니다.

 

총 두 곡에서 네 개의 샘플을 가져와 트랙의 9할에 해당되는 재료로 사용했는데 이렇게 매끄럽고 부드러운 한 곡으로 완성이 되는 것은 천재적인 재능의 징표입니다. 박수를 보내라는 뜻의 제목이 바로 납득이 되는 순간입니다. 돈과 인기에 대해 자기과시를 하는 J Dilla의 랩이 특히 더 건방지게 들리는 건 기분 탓만이 아닐 겁니다. 이런 트랙을 만들어내면 그렇게 건방져도 됩니다.

 

이렇게 여러 곡에서 샘플 따서 곡을 완성시키는 것은 샘플링 작법을 사용한 거장들의 음악에서는 나름 자주 발견됩니다. J Dilla의 출중한 실력에 대한 반증은 되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Welcome 2 Detroit는 샘플링 팔레트를 흑인 음악 너머 뜬금없을 법한 장르에서도 끌어온다는 점에서 동시대 앨범들과 사뭇 다릅니다. 이 앨범의 가장 핵심적인 감상 포인트는 다양한 장르에서 끌어오는 샘플들로 주조된 독특한 비트들입니다. 특이한 제목의 Featuring Phat Kat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래퍼 Phat Kat이 피쳐링한 트랙인데, 인상적인 라이밍을 단단한 플로우로 구사하는 Phat Kat의 발군한 랩 실력을 감안하면 제목을 따로 안 만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상적인 랩 퍼포먼스만큼 비트도 독특합니다. 차지게 내려치는 스네어와 끈적한 베이스 라인은 언제나 J Dilla의 장기지만, 이 비트를 완성시키는 건 독특한 샘플들입니다. 중간에 아주 짧지만 반복되는 보컬 샘플은 훵크 가수 Rufus Thomas1971년작 Do The Funky Penguin에서의 1초짜리 애드립이고 앳된 신스처럼 들리는 루프는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Yes의 기타리스트 Steve Howe1975년작 Will O’ The Wisp에서 필터링 처리된 휘파람 소리입니다. 딱딱한 가사의 내용과 서정성이 묻어나는 비트의 모순적인 병치가 매력적인 이 트랙은 J Dilla의 장르를 넘나드는 취향 덕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곡이 끝나고 J Dilla가 스토커 여성에게 시달리는 스킷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J Dilla의 스펙트럼을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이 남긴 음성 메시지가 점점 광기에 다다르는 연출이 기괴한데, 배경음악으로 John Carpenter 감독의 1978년 영화 Halloween의 메인 테마를 살짝 필터링 해서 사용합니다. 건조한 건반이 해당 트랙의 핵심인데, 스릴러 같은 모습을 그려내는데 아주 탁월한 샘플 초이스입니다.

 

디트로이트의 힙합 듀오 Frank-N-Dank가 참여한 Pause도 특이한 샘플링 재료를 찾을 수 있는 트랙입니다. J Dilla는 이 곡에서 독일의 하드 록 밴드 Lucifer’s Friend1976년작 Moonshine Rider에서 샘플링 한 건반을 필터링을 통해 신스처럼 변환해 완성시킵니다. 게다가 원곡에서 악기가 내려치는 부분은 따로 벌스 곳곳에 배치시켜 긴장감을 주기도합니다.

 

이 내려치는 샘플들이 Frank의 랩에 맞춰서 마디의 첫 박자에 떨어지는데 벌스 설계를 고려했을 때 매우 뛰어난 선택입니다. Frank가 자신의 이름에 적힌 알파벳에 맞춰서 랩을 하는데, 마디마다 해당 알파벳을 말하고 랩을 합니다 (F!~, R!~, A!~, N!~, K!~ 식으로). 안 그래도 창의적인 작사 방식인데 프로덕션이 이를 더 부각시키는 장치의 역할도 하는 셈입니다. 심지어 저 알파벳도 직접 녹음한 게 아니라 The Tony Williams Lifetime이라는 재즈 밴드의 1972년 곡 The Boodang의 아웃트로에서 샘플링 했습니다. J Dilla의 번뜩이는 샘플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런 특이한 샘플링 운용 방식은 ‘Shake It Down’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J Dilla가 미모의 여성에게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트랙인데, 부드러운 신스와 투박한 드럼, 중독적인 훅과 J Dilla의 자동차 래퍼런스가 인상적입니다. 훅을 반복하면서 곡이 마무리되는데, 여기서 백인 소울 아티스트 Boz Scagg & Band1971년작 Nothing Will Take Your Place의 보컬 라인이 아주 작게 배경에서 재생됩니다. 많은 필터링을 거쳐서 알아보기 힘들 수 있지만, 보통이라면 비트의 핵심으로 사용할 만한 매력적인 루프를 여운을 남기는 장치로만 쓴 것도 프로듀서로서의 자신감을 보여준다 생각합니다.

 

단순한 샘플링 작업도 J Dilla는 익숙하게 잘 소화해냅니다. 샘플을 따온 다음에 루프를 시키는 작업 방식은 단순한 만큼 결국 얼마나 효과적으로 청자에게 인상을 주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려있습니다. 디트로이트의 일급 비밀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후일 Slum Village에서 J Dilla를 대신하게 될 Elzhi가 참여한 Come Get It이 모범적 예시입니다. 퓨전 재즈 그룹 Michal Urbaniak Group1973년작 Valium에서 따온 루프로 만들어졌는데, J Dilla는 전자 건반과 기타 프레이즈가 섞인 짤막한 구간을 잘라낸 다음 피치를 낮추고 필터를 적용해 우리가 현재 익숙해 할 법한 lo-fi 비트를 완성시킵니다. 리버브를 건 것 같기도 하지만 워낙 공간감이 원래 있는 샘플이라 확실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두껍게 믹싱이 된 부드러운 베이스 라인과 착 달라붙는 스네어까지 추가되면서 훌륭한 비트가 완성됩니다.

 

Elzhi는 이런 좋은 비트를 낭비하지 않습니다. 다른 참여진들과 마찬가지로 작정하고 달려들어서 랩을 쏟아내는데, 여유로운 지금과는 달리 신인일 때의 Elzhi라 굶주린 듯한 톤이 상당히 반갑습니다. 우겨 넣는 듯하면서도 박자를 칼 같이 유지하는 플로우를 보여주는데 신박한 비유와 뛰어난 문장력으로 시선을 제대로 강탈합니다. Welcome 2 Detroit의 출중한 퍼포먼스들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훌륭한 래핑이었습니다. J Dilla는 여기서 MC로서의 역할에서는 물러나고 훅에서 나른하게 알앤비 멜로디를 구사하는데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프로듀서의 역량은 좋은 비트를 만드는 것뿐 만이 아니라 결국 좋은 곡을 만드는 것인데, 그런 시각에서 Come Get ItJ Dilla의 뛰어난 작곡 실력에 대한 반증인 셈입니다.

 

직접적인 샘플링이 아니지만 상상하지도 못한 곳에서 영감을 받은 트랙도 있습니다. J DillaWelcome 2 Detroit에서 유일하게 협업으로 프로듀싱 한 비트가 The Clapper인데, 베테랑 드러머 Karriem Riggins가 함께했습니다. 제목 그대로 클랩이 가장 두드러지는데, J Dilla 특유의 괴짜 같은 그루브가 묻어납니다. 훅도 clap on, clap off라고 반복해서 박수라는 컨셉을 밀어붙여 기억이 안 날래야 안 날 수 없습니다. 이 비트의 클랩 박자는 1984Joseph Enterprises에서 출품한 박수 소리로 전등을 끄게 해주는 Clapper 장치 광고 영상에서 따온 겁니다. 사실상 Karriem RigginsJ Dilla에게 줬다고 보는 게 맞는 비트지만 Welcome 2 Detroit의 희한한 음악성에 걸맞습니다.

 

The Clapper 가사의 주제는 Welcome 2 Detroit의 모든 트랙이 그렇듯이 세속적입니다. 다만 살짝 더 무거운데, 단순히 자기과시가 아니라 디트로이트의 거리가 얼마나 위험한지가 간접적으로 드러납니다. 테마에 맞게 총기 발포음을 박수 소리에 비유한 것 같습니다. 특이한 점은, 캘리포니아 언더그라운드의 전설적인 래퍼 Blu가 피쳐링을 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뛰어난 문장력과 치밀한 플로우를 보여줘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독특한 감각을 가진 힙합적인 곡들이 Welcome 2 Detroit의 중심을 잡아주면서도 개성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이 앨범을 다른 앨범들보다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트랙들은 곳곳에 배치되어있는 연주곡들입니다.

 

Welcome 2 Detroit을 발매한 영국 음반사 BBE (Barely Breaking Even)에 대한 언어유희인 B.B.E. (Big Booty Express)는 그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이지만 그 이유로 훌륭한 트랙입니다. 디트로이트는 흑인 음악의 성지인 Motown Records를 품었던 도시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미국의 전자 음악 씬을 탄생시켰다고 평가 받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디트로이트 테크노는 유럽의 전자음악 흐름을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흡수한 결과물 중 하나인데, J Dilla는 이 트랙으로 그 역사를 담아냅니다. 고향이 자랑스러워하는 음악적 움직임의 원류를 공부하고 헌정을 바칩니다.

 

듣자마자 익숙한 사람들은 전자 음악의 혁신가들인 독일 밴드 Kraftwerk1977년 역작 Trans-Europe Express를 오마주 한 트랙임을 알 수 있을 겁니다. 808도 아닌 TR-909로 박자를 만들기도 했지만, 가사만 장난스럽게 바꾼 멜로디를 원곡과 똑같이 보코더로 왜곡시킨 것이 결정적입니다. 여기에 1982년 공상과학 걸작 Blade Runner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한 Vangelis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어두운 신시사이저까지 얹히면서 J Dilla의 디스코그라피는 물론 힙합에서도 자주 볼 수 없는 진귀한 트랙이 완성됩니다.

 

그만큼 B.B.E. (Big Booty Express)를 힙합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Brazilian Groove (EWF)도 완전히 다른 장르의 음악을 보여줍니다. 브라질의 음악에 영향을 받아 작곡이 되었다는 Earth Wind & Fire1977년작 Brazilian Rhyme (Beigo Interlude)를 커버한 곡인데, 발현악기를 루프와 간드러진 화음, 훵키한 리듬 기타와 찌그러진 스네어 박자까지 편안하면서도 집중하게 되는 훌륭한 곡입니다. 여기에 디트로이트의 유구한 훵크의 역사를 반영한 듯 싸이키델릭한 기타 솔로도 들어가면서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해줍니다. Earth Wind & Fire가 비록 디트로이트에서 탄생한 그룹은 아니지만, J Dilla가 창의적으로 재해석해서 본인의 음악적 DNA를 삽입한 것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특이하게도 브라질 음악에 영향을 받은 트랙이 하나 더 있는데, 제목부터 Rico Suave Bossa Nova입니다. 심지어 Brazilian Groove보다 한 술 더 떠서 아예 보사노바 재즈 드러머 Milton Banana가 이끄는 Trio1966년작 Cidada Vazia의 건반을 샘플링합니다. 보사노바 재즈의 거장인 Stan GetzJoão Gilberto와 협업한 전설적인 드러머인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샘플링 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결과물이 너무 훌륭합니다. 세심한 심벌과 함께 스네어가 슬그머니 등장하는데, 세션으로 참여한 Karriem Riggins의 절제력 있는 그루브에 감탄이 나옵니다. 여기에 카우벨과 뒤에서 추임새를 넣어주는 코러스까지 완벽합니다. 130초 남짓한 시간에 보여줄 수 있는 건 모두 보여줍니다. 인터뷰에 의하면 한 번에 완성된 녹음이었다는데 참으로 엄청난 분들이라는 말 밖에 안 나옵니다.

 

 

동명의 Oneness of Juju1975년작을 커버한 African Rhythms는 전통을 기념하고자 하는 J Dilla의 가장 궁극적인 오마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트로이트를 넘어서 흑인 음악 그 자체의 원천에 가장 가깝다 할 수 있는 아프로비트에 대한 경외감을 표하는 트랙이라 사료됩니다. 여기서 J Dilla는 힙합의 리듬을 유지하면서도 젬베와 같은 악기가 추가되고 원곡의 전통을 강조하는 내레이션을 본인이 직접 다시 녹음했습니다. 배경에 주술적인 챈팅을 삽입하고 본인의 목소리에도 에코를 잔뜩 걸어놔서 마치 신비한 원주민 종교 의식에 참여한 듯한 장면을 그려냅니다.

 

Welcome 2 Detroit는 여러모로 독특한 앨범입니다. 전위적이라기엔 랩 같은 부분은 뛰어나지만 정석적이고, 정석적이라 하기엔 힙합의 범주를 벗어난 연주 세션에 가까운 트랙들까지 포진되어 있습니다. 샘플들의 출처는 전통적인 흑인 음악은 물론, 힙합과는 까마득히 먼 장르들까지 스펙트럼이 엄청납니다.

 

발매 당시에 그 어떤 앨범도 이보다 과감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그 방식이 과거를 참고하는 작법이었다는 면에서 고무적입니다. Welcome 2 Detroit는 창작가가 본인의 음악적 DNA를 기념하는 동시에 장르의 범주를 넓히는 진보적인 성취를 같이 이뤄낸 작품입니다. 어쩌면 가장 샘플링의 대가다운 음악을 만든 셈입니다.

 

Welcome 2 Detroit는 대단한 서사가 있는 앨범이 아닙니다. 참여진 전원은 물론 J Dilla 본인도 랩 퍼포먼스가 뛰어난 앨범이지만 가사적으로나 소재 면에서 어떤 심오한 주제 의식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세속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힙합의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랩 퍼포먼스는 Welcome 2 Detroit의 부가적인 매력에 불과합니다. Welcome 2 Detroit에서는 서사가 없는 랩이 서사가 있는 비트에 실리며 무게감이 달라지는 기이하면서도 전율적인 감상이 완성됩니다. 총을 쏜다면 디트로이트의 거리에서, 논다면 디트로이트의 클럽에서, 돈을 번다면 디트로이트의 공연장에서 버는 겁니다.

 

J Dilla는 단순히 훌륭한 비트를 만드는 프로듀서가 아니었습니다. 본인의 삶에서 음악을 마음대로 끌어내 숨 쉬듯이 당연하게 구사했던 초월적인 경지에 올랐던 거장이었습니다. 그리고 Welcome 2 Detroit는 그 천재 같은 J Dilla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자서전입니다. 전설적인 유산에 걸맞은 전설적인 작품입니다.

 

Best Tracks: N/A

Worst Track: N/A

 

 

CLASSIC/10

6
Comments
2021-03-01 09:44:22

미친 앨범..

WR
2021-03-01 22:20:02

죽여주죠ㅎㅎ

2021-03-06 23:27:01

잘 읽었습니다 제이딜라 죽여주죠

WR
2021-03-07 14:35:14

감사합니다! 기일에 맞춰 여러번 돌렸네요ㅎㅎ

2021-04-01 07:45:58

이 정도 리뷰를 쓰려면 단순히 많이 듣고 부클릿을 뒤져보는 정도로는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W2D 20주년 음반을 최근 구매했는데
이 리뷰의 디테일을 보면서 집중 감상하겠습니다!

WR
1
2021-04-05 16:08:26

제가 쓴 리뷰 중에서 손에 꼽히도록 자료 많이 뒤지면서 작성한 것 같네요..ㅋㅋㅋㅋㅋ 알아봐주셔서 뿌듯하네요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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