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undi Panda (쿤디판다) - 가로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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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6 21:51:19

 

 

전 영화 Buena Vista Social Club을 참 좋아합니다. 쿠바 뮤지션들이 모여 만든 Buena Vista Social Club이라는 앨범의 작업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인데 쿠바의 문화와 삶을 면밀히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느낀 건 자신의 속도의 중요성입니다. 자의적 해석에 불과하지만 쿠바가 Buena Vista Social Club에서 낭만적으로 비춰질 수 있었던 것은 물질적인 풍요로움 대신 체제에 깊숙이 내재된 여유 같았습니다. 바빠지는 세계 질서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만의 페이스로 나아가는 국가로 보였습니다.

 

물론 이 다큐멘터리가 미화된 면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현대 도시의 삶이 어쩌면 너무 바쁘고 치열하게 돌아가는 게 아닐까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그렇지만 여느 도시 사람과 같이 결국 돌아보는 것으로 그치고 금방 정신 없이 살아가는 폼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 어린지라 본격적으로 돈을 벌지는 않지만 돈을 버는 준비도 돈을 버는 만큼 바쁜 세상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런 면에서 가로사옥을 들으며 Khundi Panda에게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속도를 찾고 그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보이는 앨범이기 때문입니다. Khundi Panda라는 사람은 이 앨범으로 정신 없는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재정의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가로사옥은 이 행복의 기준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한 앨범입니다.

 

가로사옥은 디테일이 뛰어난 비트들 위에 Khundi Panda의 빽빽한 랩이 얹혀져 완성된 트랙들로 이뤄진 작품입니다. 시종일관 타이트한 구성의 랩이 펼쳐지는데 워낙 완급조절이 안정적이라 답답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덕에 밀도 높은 가사들임에도 피로함이 없어 청각적으로 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비트의 완성도가 정말로 높습니다. 드럼 위에 간단하게 소스만 루프시키는 방법보다는 다양한 악기를 추가해 청각적 쾌감을 챙깁니다.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비트들이지만 곡이 진행되며 소리가 쌓이며 들을 거리가 늘어나서 지루하지 않습니다.

 

블랙박스을 예로 들자면, 쉬지 않고 일정하고 빠르게 휘몰아치는 킥 드럼 위에 끊어치는 신스 루프가 얹혀 있는데 여기에 오토튠이 깔려 있는 화음과 후반부에 들어오는 전자음이 섞이면서 굉장히 풍부한 사운드가 완성됩니다.

 

이런 식으로 가로사옥은 여러 가지 악기의 사용으로 다양성을 구현합니다. ‘킥아웃코드의 보컬 샘플과 목관악기 루프 위에 박자가 바뀌며 다른 악기들이 번갈아 치고 빠지는 진행, ‘양심트리거의 트립합이 연상되는 루프, 트랜스 음악이 연상되는 신스와 급박한 드럼 변주가 인상적인 어덜트금고’, 그리고 공간감 있는 밴드 구성이 훌륭한 까지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습니다. 각 곡에 참여한 프로듀서들의 뛰어난 역량과 이를 모두 유기적으로 잘 모아 배치한 Khundi Panda의 센스가 보입니다.

 

하지만 가로사옥의 백미는 Khundi Panda의 가사와 이 앨범을 관통하는 서사입니다. 발매 이전에도 각 트랙을 상징하는 아트워크가 공개되기도 하였고 앨범 자체가 건축을 한 테마로 한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인지라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항상 기발한 아이디어를 보여줬던 아티스트이고 가로사옥도 예외가 아닙니다.

 

글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이 앨범은 Khundi Panda가 남의 시선이나 사회로부터 정의된 자아를 벗어 던지고 자신만의 성공과 행복의 기준을 재정립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어린 시절 자신이 당한 학교 폭력과 음악을 하며 먼저 성공하는 동료들에게 느끼는 열등감, 그리고 자신이 우상이라 생각하는 아티스트에게 당한 조소까지 모두 이 앨범의 서사를 그리는 에피소드로 다뤄집니다.

 

각 곡은 그런 에피소드를 하나씩 담아냅니다. 가사가 구어체로 서술이 되어있는데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고 오로지 Khundi Panda만이 확실히 알 수 있는 어떤 제3자에게 향해 있습니다. 이 제 3자와의 관계나 해프닝에서 결론을 하나씩 끌어내고 그 결론들이 점점 쌓이며 하나의 거대한 깨달음으로 발전합니다.

 

, ‘가로사옥은 이런 에피소드를 상징하는 들이 길게 연결되어있는 구조물입니다. ‘겟어웨어의 도입부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나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효과음 등의 장치가 있고, 후반부에서는 이런 비유들이 가사로 언급됩니다. 이런 요소들이 가로사옥이라는 컨셉의 몰입도를 높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지훈이라는 사람의 존재입니다. 어릴 적 자신에게 학교폭력을 가했던 사람의 이름이 이 앨범을 통틀어 계속 꾸준히 언급됩니다. 첫 트랙 블랙박스에서 자신이 지훈이에게 가졌던 감정은 결국 힘에 대한 부러움이라 정의한 Khundi Panda는 이후에도 계속 이 감정과 씨름합니다.

 

이어지는 네버코마니에서도 자신과 비슷한 경력을 가졌지만 훨씬 뛰어나다 생각하는 아티스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자벌레에서도 자신을 모른척하는 동년배에게 마치 보호색을 쓰듯이 자신의 열등감을 숨깁니다. 특히 네버코마니에서 자신과 같은 세대의 아티스트에게 느꼈던 동경심을 이렇게 과감하고 적나라하게 담아내는 건 힙합 씬에서 보기 드문 굉장히 용기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이렇게 쌓인 상처들은 네 번째 트랙 양심트리거에서 일종의 체념과 함께 반절 해소됩니다. 오가는 대화를 방아쇠로 표현하며 결국 어쩔 수 없는 일상적인 위선에 대해 조소하는 참신한 트랙입니다. 여기서 Khundi Panda는 결국 그런 가식이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 더 시간과 애정을 쏟아 붇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당겨라는 단어를 중점으로 설계된 훅은 중독적이면서도 주제의식을 담아 잘 설계되어 있습니다.

 

바로 다음 트랙인 향바코에서 Khundi Panda는 그런 사람들을 쭉 나열하며 고마움을 표현하고 추억을 회상합니다. 트릴로지의 첫번째 작품이었던 쾌락설계도믹스테잎의 낭만이라는 수록곡과 닮은 점이 많아 흥미로웠습니다. 배경에서 계속 진행되는 토크박스로 처리한 화음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현실의 벽은 존재했고 아직 Khundi Panda는 금전적 성공은 맛보지 못했습니다. ‘겟어웨이는 시티팝 영향이 짙은 비트 위에 타협한 동년배를 보며 이를 악물고 자신이 갈 길을 다시 다잡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경멸하던 부류가 결국 학창시절에 이겨낸 폭력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이런 감정에서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합니다. 비트가 좀 더 다채로웠을 수도 있었지만 크게 방해되는 단점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덕에 벌스에 더 집중하게 되는 면도 있었습니다.

 

일곱 번째 트랙 어덜트금고에서부터 Khundi Panda는 지훈이로 대표되는 열등감 자체를 벗어나려고 하는 듯한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유일하게 제3자가 아닌 청자 혹은 자신에게 향한 가사 같지만, 여기서 Khundi Panda는 자신만의 기준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과거에 얽매이는 것과 과거로부터 배우는 것은 차이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상당히 가사가 긴 훅임에도 플로우를 잘 짜서 머리에 각인됐습니다. 래퍼로서의 Khundi Panda의 역량이 돋보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df6ZTAcJjc

 

이어지는 낙찰 전 / 용기의 합창단어덜트금고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다루는 두 파트로 이뤄지는 곡입니다. 확실히 앞으로 나아갈 Khundi Panda는 더 이상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지만 결국 그런 정제된 자신이 담긴 음악이 과연 팔릴지에 대해 의문이 듭니다. 경쟁자들과의 심적 관계는 청산했지만 대중에게 받는 인정은 다른 문제인 만큼 다시 한번 Khundi Panda가 넘겨야 할 숙제처럼 비춰집니다.

 

, 자신의 음악은 낙찰되기 전의 미술품인 것인데, 이 트랙의 두 번째 부분인 용기의 합창단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동료의 음악이 공연장에서 반응을 얻는 것을 보고 제목 그대로 용기를 얻습니다. 이윽고 자신 역시 동료와 같이 모든 것을 담은 음악을 가져왔으니 당당하게 청자에게 값을 요구하며 트랙은 마무리됩니다.

 

아홉 번째 트랙 킥아웃코드는 지금까지의 트랙들을 정리하는 듯합니다. 음악을 시작했을 때부터 따라가고자 했던 기준들이 벌스가 진행되며 깨지는 진행을 보여줍니다. 이 기준을 꿈으로 비유하는데 벌스마다 마지막 마디가 꿈을 깬다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렇게 마지막 벌스가 끝나며 결국 꿈에 남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았던 가장 순수했던 원점으로 돌아가는 묘사를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pbDxnm8D5w

 

그렇게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 에서 Khundi Panda는 깨달음에 도달합니다. 자신이 쫓으려던 절대적인 이상향은 없고 목표는 계속 바뀔 것입니다. 집을 찾으려고 떠났던 여정이지만 결국 자신이 가는 곳과 현재 존재하는 곳이 곧 집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역경에 부딪히며 흔들렸지만 그 모든 과정이 자신을 만들었고 이 변해가는 과정의 중심에 있는 자신과 그 현주소가 결국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앨범은 끝납니다. 자신이 가는 곳이 곧 길이고 집인 셈입니다.

 

가로사옥은 이런 추상적인 서사가 문제없이 전달될 수 있게 가사가 잘 쓰여진 앨범입니다. 지나치게 현학적이기만 한 표현들이면 짜증났겠지만 Khundi Panda는 작가주의적인 접근을 하면서도 가독성을 놓치지 않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단어 선택 등에 있어 대충 무슨 얘기를 하는지 감이 잡히는 정도지만 꼬여 쓰여 있는 경우가 많아 여러 번 들어야 그 의미가 뭔지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감적으로 허를 찌르는 문장들과 바로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라인들이 공존합니다.

 

이런 면이 가로사옥을 다회차 감상이 새로운 감흥으로 보상 받을 수 있는 재미있는 앨범으로 만듭니다. 지금 이 리뷰를 쓰는 이 시점에서도 전 아직 이 앨범의 모든 문장들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어쩌면 몇몇은 의도적으로 Khundi Panda 본인에게만 읽힐 수 있는 가사들이기도 할겁니다. 전반적인 흐름과 중점적인 내용은 맞췄다고 자신하지만 제 해석에는 여러 가지 오류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라인들만으로도 충분히 감명 깊게 들을 수 있도록 배려가 되어 있는 앨범이라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쾌감을 주는 음악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기 때문에 상당히 배타적일 수 밖에 없는 소재에 쉽게 몰입할 수 있습니다.

 

이 앨범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피쳐링진 간의 편차입니다. JINBO, 히피는 집시였다, 그리고 DAMYE가 기여한 부분들은 출중한 퍼포먼스와 뛰어난 배치의 교과서였습니다. 특히 JINBO의 피쳐링은 곡의 마무리를 탄탄히 책임져줬고 DAMYE는 이 앨범의 가장 캐치한 훅 중 하나를 선사해줬습니다. 하지만 자벌레에서 형선의 뛰어난 보컬 능력은 매력적이지 않은 멜로디에 낭비되었고 향바코에서 Noogi의 보컬 부분은 너무 짧아 불필요한 인상을 줬습니다.

 

가로사옥은 기발한 소재가 치밀한 디테일과 만나 멋지게 활공하는 작품입니다. Khundi Panda는 자칫 무게에 짓눌려 침몰하기 딱 좋은 내러티브를 기대를 뛰어넘는 실행력으로 완성도 높게 구현했습니다. 힙합의 예술적 가능성을 이야기 할 때 앞으로 꾸준히 언급될 앨범이 않을까 싶습니다. 첫 정규부터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내놓은 Khundi Panda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너무 기대됩니다.

 

Best Tracks: 블랙박스, 네버코마니, 양심트리거, 어덜트금고, 낙찰 전 / 용기의 합창단, 킥아웃코드,

 

Worst Track: 자벌레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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