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츠요지 - Sitcom of the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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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2 22:24:49

 

JAY-Z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용이 인상적이라 기억납니다. 동료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앨범 커버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데, 래퍼들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앨범 커버에 얼굴을 싣지 않는다고 합니다. 완전 동의하지는 않지만, JAY-Z는 실제로 대부분의 커버에 얼굴이 올라와있으니 진정성 있어 보였습니다.

 

제가 음악을 리뷰 할 때 앨범 커버를 평가의 대상으로 삼지 않지만, JAY-Z의 시각으로 봤을 때 이번 키츠요지 앨범은 매우 정석적입니다. 멋있는 턱시도를 차려입고 내려보는 시선, 오스카를 패러디한 듯한 트로피, 금색과 검은색의 배치는 중견 배우의 여유로움이 느껴집니다.

 

그런 자신감이 이번 앨범 Sitcom of the Year의 컨셉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스스로를 시트콤의 주연으로 설정하며 서사를 이끌어가는데 자신의 삶은 시트콤에, 래퍼로서의 페르소나는 주연에 비유하는 듯합니다. 그런 나름의 세계관을 구축한 다음 거기서 겪는 여러 해프닝과 내적인 변화를 전개하며 앨범을 풀어갑니다.

 

앨범의 첫 트랙 주인공부터 알 수 있습니다. 무거운 베이스와 플룻을 변조한듯한 신스가 휘몰아치는 듯한 비트가 즉각적인 청각적 쾌감을 챙깁니다. 키츠요지와 자주 합을 맞추는 iCOS가 다시 한 번 프로덕션을 맡았는데 역시 뛰어난 디테일이 인상적입니다. 여기 위에 키츠요지가 속도감 있는 오토튠으로 쇼미더머니에서 2차를 합격한 자부심을 드러내는데 언뜻 흘리는 듯 하면서도 박자를 안정적으로 잘 소화해내는 개성이 보입니다.

 

퍼포먼스 외에도 가사가 키츠요지의 큰 장점인데, 외설적인 단어 선택이 냉소적인 어투와 결합되어 독특한 블랙 코미디적인 서술 방식이 완성됩니다. ‘주인공에서도 아첨꾼들 얼굴에 사정을 하거나 친부의 불륜을 다룰 수 있는 래퍼는 자신 뿐이라는 슬프면서도 웃음 짓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가사들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올해 발매된 정규 1집의 첫 곡도 아버지의 불륜을 더 자세하게 다룬 만큼 키츠요지의 팬이라면 이스터 에그처럼 와 닿기도 한 트랙일겁니다.

 

자부심이 충만한 키츠요지는 이어지는 트랙 극대노에서 회상을 합니다. 컨셉을 고려했을 때 일종의 플래시백 같은 트랙인데 역시 창의적인 작사가 눈의 띕니다. 플룻과 어두운 신스를 뼈대로 설계된 타격감 있는 트랩 비트 위에 가난이 점진적으로 분노의 단계를 올려가는 묘사를 풀어냅니다. 특정 모티프를 잡고 스토리텔링을 부여하는 방식이 거대한 만트라적 선언 없이 가난의 무서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자연스럽고 흥미로웠습니다. 훅에서도 소노 중노 대노를 순서대로 나열해 이런 특이한 서술 방식을 강조합니다. 많은 생각이 들어간 게 보이는 완성도 높은 트랙입니다.

 

 

SUPERBEE와 함께한 유후 (Yoo-Hoo)’는 아쉬웠습니다. 비트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세번 연속으로 플룻이 등장하는 건 아무래도 자기복제의 면모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키츠요지가 정말 랩을 잘했는데 비해 피쳐링한 SUPERBEE는 별로 인상을 남기지 못해 균형이 깨져 보였습니다. 특히 2절에서 키츠요지의 화려한 래핑에 비해 특히 단순하게 느껴져서 더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훅에서 비성이라는 단어를 진짜 비성으로 소화하는 건 피식하게 되는 뻔뻔함이 있어서 기억에 남습니다.

 

다음 트랙 ‘NG 모음은 제가 앨범 통틀어 가장 좋게 들은 트랙 중 하나입니다. 밝고 통통 튀는 비트 위에 자신의 수많은 역경을 NG로 표현하는 가사도 좋았고 그 위에서 치열한 톤으로 랩을 뱉으면서 생기는 애틋함이 있습니다. 특히 돈을 쫓았는데 인정을 대신 얻었다는 표현은 허를 찌르는 문장입니다. 흔히 고무적이면서 감성적인 트랩에서 느끼는 감동을 잘 살렸습니다.

 

하지만 ‘NG 모음의 밝은 무드가 무색하게 여기서부터 앨범의 무드가 급격하게 변합니다. 쇼미더머니에서 탈락한 클립을 삽입하면서 다음 트랙 만년 조연 Complex’로 넘어갑니다. 중동 전쟁 영화에 나올 법한 사나운 비트가 제목을 반복하며 포 카운트를 세면서 시작하는데,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을 바로 느끼게 해줍니다.

 

 

이런 인상적인 비트 위에 키츠요지는 굉장히 민감할 주제를 다룹니다. 더 재능 있는 동료에 대한 열등감을 표출해내는 과감한 선택을 합니다. 실력 차이가 나는 동료 사이의 묘한 긴장감을 담아내는 가감 없는 묘사가 불편할 정도로 선합니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주인공과는 완전히 입장이 반전이 되어있습니다. 독특하게 울리는 발성으로 처리한 훅도 좋았는데 자기 혐오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 미안함마저 들었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Nominated’는 동양적인 발현악기 루프로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차붐의 캐치하면서도 감각적인 훅과 제목에서부터 본인의 수상식 경력을 과시합니다. 하지만 바로 노미네이트에서만 그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이어지면서 더 무거운 가사들이 뒤따릅니다. 자연스러운 라임 배치가 인상적인 키츠요지의 두 번째 벌스에서도 상보다는 돈에 더 우선순위를 두면서 당당함을 표출합니다. 전 트랙에 이어서 중심에 있지 못해 설움이 폭발하는 플레이어의 심리가 잘 드러납니다.

 

Rakon과 함께한 7번 트랙 새벽 네 시에서 이런 현실 직시가 결국 키츠요지를 무력함의 늪으로 빠뜨립니다. 자신의 열등감이 주변인을 불편하게 만들기 시작하며 펼쳐지는 모습들을 나열합니다. 음악적 동료들은 선뜻 위로의 말을 주저하고 있고 자신은 마음과 달리 괜히 가족들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구슬픈 플룻과 잔잔한 피아노가 타격감 있는 트랩 드럼과 병치되며 치열하면서도 절망적인 감상을 선사합니다. 새벽 네 시의 태양과 달을 묘사하는 Rakon의 허스키한 보컬과 토하듯이 멜로디를 짜내는 키츠요지의 랩은 손톱을 깨져가면서 안전 장치 없이 절벽을 오르는 듯한 절박함이 느껴집니다. 청자의 마음을 울리는 좋은 곡입니다.

 

 

앨범을 마무리하는 ‘Documentary’에 와서는 앨범 초반부의 자부심이 전부 증발하고 공포스러운 독기만이 남아있습니다. 유명 예능이 포진한 채널을 전부 욕하면서 본인의 음악을 다큐멘터리가 포진한 KBS 1에 방영하라는 가사는 완전히 흑화해 버린 주인공을 보는 듯했습니다. 자신의 시궁창 같은 삶은 그 누구보다 다큐멘터리라고 절규하는 키츠요지의 모습은 참으로 비참하면서도 단호합니다. 심의에 당해 벌스를 난도질하는 편집에도 화가 나지만 결국 다음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훅이 살짝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벌스의 광인 같은 딜리버리가 너무 인상적이라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습니다.

 

Sitcom of the Year는 이질적인 트랩 앨범입니다. 성공의 이야기가 아닌 실패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낮은 곳에서 시작한 화자가 높은 위치에서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겨우 도약하려는 래퍼가 결국 더 깊은 구렁텅이로 추락하는 서사를 전합니다. 남는 것은 갈고 닦은 실력과 전보다 더 독해진 결의뿐입니다.

 

전작 돈이 다가 아니란 새끼들은 전부 사기꾼이야부터 키츠요지의 실력에는 의심이 없었습니다. 하이톤으로 구사하는 날이 선 오토튠 사이에는 탄탄한 라이밍과 안정적인 발성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멤버 교체가 있었던 LBNC가 제대로 방향성을 잡았다는 것을 보여준 첫 래퍼입니다. 비록 키츠요지의 가장 심연이 담긴 부정적 감정이 핵심인 앨범이지만, 커버에서 양복을 갖추고 폼을 잡고 있는 모습은 오히려 더 멋있어 보입니다.

 

JAY-Z는 언제나 철갑을 두른듯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때에는 영혼을 내놓는듯한 절절한 묘사를 거리낌없이 사용합니다. 그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있는 음악이 가져온 성공이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동경하고 우러러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앨범 커버에 얼굴을 박는 자신감은 사회적 지위나 재산의 규모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밑바닥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과감하게 직시하고 성장하며 감히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용기에서 나옵니다.

 

키츠요지는 이미 비슷한 스타일의 다른 래퍼들에 비해 가진 무기가 너무 많습니다. 뛰어난 멜로디, 독보적인 가사 스타일, 그리고 그걸 칼 같이 수행해낼 수 있는 기본기입니다. Sitcom of the Year로 확실하게 느낀 것은 그는 열등감에 빠져 있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닌 것 같을 수 있겠지만 LBNC4번 타자는 분명히 키츠요지입니다.

 

Best Tracks: 주인공, 극대노, NG 모음, 만년 조연 Complex, Nominated, 새벽 네 시

Worst Tracks: 유후 (Yoo-Hoo)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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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0-12-02 22:59:25

들어보겠습니다

WR
2020-12-02 23:12:33

감사합니다!

2020-12-03 02:37:48

이번 앨범 너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정규 1집보다 더 기억에 남더라고요

WR
Updated at 2020-12-03 10:09:43

곧 연말정산인데 고민이 됩니다 후

2020-12-03 07:31:09

쇼미 끝나자마자 만들어서 딱 나왔다는게 얼마나 집중력 있게 만든 앨범인지 알 수 있고 그래서 감정이 더욱 찐하게 녹아있는거 같아요

WR
Updated at 2020-12-03 10:10:31

맞습니다. 앨범이 완성되기전에 머릿 속에서 다 짜인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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