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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거듭난 신앙인' 비와이와 심바자와디의 Hymm, <NEO 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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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24 11:21:32

 비와이가 프로듀싱 한 곡들의 특유 다크함이 묻어나는 앨범. 여기에 Viann의 편곡과 믹싱이 합쳐지고 심바자와디의 신앙심 가득한 가사, 음악성이 합쳐지면서 Dejavu Group의 합작이 완성됐다. 처음에는 매우 어둡고 딱딱한 앨범처럼 느껴졌다. 특히 강한 어조의 플로우가 반복되고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들이 반복되면서 어렵게 느껴졌다. 가사도 찾아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 사실 찾아봐도 비기독교인에게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이번 앨범은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큰 노력이 필요했다. 비기독교인이던 내가 성경을 찾아보고 크리스천들의 글을 읽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심바자와디와 비와이의 의도가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힙합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 힙합에는 그 아티스트의 모든 생애와 가치관이 담겨 있다. 내가 그냥 삶을 살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사람들의 생애와 가치관. 나는 힙합을 듣게 됨으로써 수없이 많은 삶을 살아볼 수 있다. 이번 앨범은 내가 크리스천의 머릿속에서 헤엄치며 잠시 살아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이 앨범이 수작인 이유는 종교에 대한 신앙심을 빼고도 수준급의 음악성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해석을 통해 신앙심을 들여다보면 두 아티스트의 종교적 색채를 느낄 수 있고 심오한 고민의 과정들을 함께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앨범 제목은 <NEO CHRISTIAN>이다. Neo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새로운'의 의미를 가진 접두사다. Christian은 잘 알려졌다시피 그리스도인이다. 즉, 새로운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의미가 정확히 어떤 새로움인지 잘 다가오지 않고 있다. 앨범 소개를 참고하자. 비와이와 심바자와디는 NEO CHRISTIAN의 두 가지 정의를 알려주고 있다. 


NEO CHRISTIAN [명사] [같은말] 신기독인(새로운 기독인).

1. 단순한 종교인이었으나 새롭게 거듭난 신앙인

2. 교회에서 뿐 아니라 온 열방을 상대로 전하는 자


명사 자체의 의미는 신기독인이 맞다. 더 정확히 들어가 두 가지 의미를 보면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우선 종교인과 신앙인을 다른 의미로 정의하고 있다. 종교인은 단순히 종교를 믿는다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신앙인은 신앙을 품고 신을 진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앨범 전체적으로 이를 강조하고 있다. 그를 따르고 그의 가르침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즉 종교인에서 벗어나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이후에는 교회 밖에서의 열방을 향한 종교적 전달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종교 전파가 아니다. 성령이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권능을 주면 그 권능을 갖고 세상에 나아간다. 자신에 맞게 주어진 능력을 이용해 소명을 다하는 것이 곧 전파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열방, 즉 세상 나라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기독교는 이런저런 일로 인해서 오명을 썼다. 실제로 부패하고 잘못된 사례도 분명 있었다. 비와이와 심바자와디의 외침은 '새로운' 기독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두 가지 정의라는 큰 틀 아래에서 신의 뜻을 받아 어떻게 삶을 살고 인간의 불완전함을 이겨내야 할지 고민한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이 맥락 아래에서 완성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키워드는 '거듭남'이다. 앨범에서 비와이와 심바자와디는 종교인이 아닌 신앙인으로 거듭남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종교인과 신앙인은 다른 단어다. Neo Christian은 어쩌면 거듭난 종교인, 신앙인으로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 Holy Ghost is Coming Down, Kneel


제목부터 해석하면 'Holy Ghost'는 성령이다. 즉, '성령이 내려오니 무릎을 꿇어라' 정도로 볼 수 있다. 성령의 힘이 몸을 향해 닿는 것은 기독교에서 '성령의 임재'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의 승리 비결이자 개개인별로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으로 '신앙인'으로서 거듭나는 것이다. 앨범의 인트로로 매우 적합해 보인다.


맨 처음 인트로는 씨잼의 외침으로부터 시작된다. '성령님이여 제발 저를 새롭게 하소서 Amen' 이는 2019 한국힙합어워즈 올해의 힙합앨범인 <킁> 中 '상송'의 가사다. 종교를 믿지만 무언가 방황의 이미지를 갖게 된 씨잼의 부름은 매우 독특하고 특별하게 다가온다. 회개하고 다시 회개하는 씨잼의 부름으로부터 앨범이 출발됐다.


'우리 머리 위에 기름 정수리가 젖어'


 

첫 가사부터 강렬한 종교적 색채가 드러난다. 기름이 부어진다는 것은 성령의 임재, 즉 성령의 힘이 몸에 닿는 것을 의미하며 '크리스찬'이 되는 과정이다. 비와이 X 심바자와디는 성령을 받아서 움직이게 됐고 그에 따르는 행동을 힙합으로써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과거 그리스어에서 Xrio(크리오)는 기름을 붓다라는 뜻이었다. 이 단어가 변화되어 '기름이 부어진 자' (Xristos)가 됐고 이것이 성서 안에서 정착되어 그리스도가 되었다. 이후 예수를 구세주(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을 '크리스찬'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과정은 무엇보다도 앨범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우선시 되어야 했던 빌드업의 일부다.   

 

 

'우린 Bad News 보다는 Good News Cypher'


 

Bad News Cypher는 릴 보이, 테이크원, 던 말릭, 저스디스 등이 참여한 vv2 Remix의 제목이었다. 테이크원과 '보석집'의 멤버이기도 하고 저스디스의 가르침을 받았던 것을 보아 나쁜 뜻의 가사는 아니다. 그저 나쁜 소식통이 아니라 좋은 소식통의 사이퍼라고 강조한 가사일 뿐인 것 같다. 현대적인 힙합씬과 기독교적 요소를 잘 묶어낸 가사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전하는 복음은 Good News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이들이 뱉는 말은 Cypher라고 표현한 것.

 

'넌 불로 세례받은 자를 본 적 없겠지', '새 시댈 불러 마치 전태일'

 

성령의 인도를 받고 회개하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성령의 '불'이 임하여 그들을 심판한다. 믿음으로 살아갔다면 달랐겠지만 자신의 욕심에 의해 불태워지는 것. 이것이 불로 세례를 받는 것이다. 예수는 살아생전에 물로만 세례를 했다. 사후에는 더러움과 잘못됨을 태워보내는 정결의 의미로 불로서 세례를 한다고 한다. 결코 나쁜 뜻은 아니다. 죄를 태우고 구원받는 것이다. 불로 세례를 받는 것은 죄를 태우고 새로움을 열게 된다. 이와 동시에 불과 관련된 인물인 전태일을 언급한다. 분신 자살을 통해 노동에 큰 변화를 이끌고 온 인물. 불로 세례를 받으며 새 시대를 부른다. 상당히 고차원적이면서도 핵심적인 가사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을 전태일 열사처럼 새 시대를 부르는 인물이 되겠다고 말하면서도 그를 향한 리스펙트를 표한다.

 

 


'주가 베푸신 상이 사랑으로 자유케 돼 압도당해 열방이'


주의 완벽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세계의 나라들이 압도당하려면 완벽해야 가능한 일이다. 압도는 완벽해야 당할 수 있다. 그들의 뜻과 베푼 사랑, 그 모든 것이 완벽했기에 가능했던 압도였고 앞선 가사에서 심바자와디는 이 압도감을 두 눈이 떠지길 바라며 받아들이라고 권유한다.


'내 원수 앞에서 난 누워서 뱉어 내 혀는 필객의 붓'


주님은 사랑으로 가득 찬 말만 뱉으라고 전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야 한다. 원수 앞에서도 베풀 수 있는 사랑, 그의 혀는 필객의 붓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문장력이 뛰어난 사람의 붓처럼 사랑이 담긴 말을 자연스럽게 터뜨려 낼 수 있는 사람을 말하고 있다. [내 마음에서 좋은 말이 넘쳐, 왕에 대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필객의 붓과 같도다. (시45:1)]


비와이는 전체적인 가사에서 성령을 받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성령 받아 새로운 것을 여전히 하는 놈'으로 시작해 '빛나는 혼을 자랑해', '승리를 이미 아는 몸', '지는 거 대체 어케하누', '불이 든 나의 mic' 등 승리밖에 모르는 성령의 힘을 자신 있게 외치고 있다. 동시에 신의 완벽함을 주장하며 성령에 무릎 꿇는다. 그날그날 누적된 죄는 회개로서 씻어나갈 수 있다. 세례를 받아서 새로운 삶을 살 듯이. 이에 따라서 처음 등장한 씨잼의 역할도 그려진다. 잘못하고 방황하지만 회개하며 죄를 씻는 모습임을 이해할 수 있다.


 


2. [TITLE] 힘


제목처럼 키워드는 '힘'이지만 이 키워드에는 세 가지 의미가 함께 담겼다. '힘' 뮤직비디오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우선 '力'을 의미하는 힘과 '그'를 의미하는 Him, '찬양'을 의미하는 Hymm까지 중의적인 표현이 사용됐다. 해석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직접적인 곡이었다. 힘을 가진 Him의 모든 것을 Hymm하는 곡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그의 곁에서 함께 걷고 그를 찬양하겠다는 두 아티스트의 다짐도 찾아볼 수 있는 곡이다.


먼저 비와이 파트부터 시작된다. '아버지 영이 내게 임했네'라는 가사로 주님을 '영적인 의미의' 아버지로서 받아들이는 모습이 비친다. 그는 세상을 창조하고 남성과 여성을 탄생시킨 그 자체의 의미로 아버지라고 불린다. 하나님의 영적인 존재는 성령이다. 성령이 임재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이는 첫 트랙과도 이어지는 맥락이다. 동시에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면서 세례 받아 회개할 필요성이 있음을 주장한다. '야훼의 능이 쬐임으로'는 앞선 가사들과 같은 맥락이다. 하나님의 성호인 여호와는 독일어이고 영어로는 야웨와 야훼라고 불린다. 하나님의 능이 자신에게 쬐이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여호와이레 임마누엘'은 다소 어렵다. 임마누엘은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의미이고 여호와이레는 '하느님이 준비하신다'라는 의미다. 즉, 늘 사랑하기에 함께 계시고 늘 준비하고 계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의 이러함 덕분에 새로이 된 존재가 가능함을 의도하고 있다. 늘 준비가 되어 있으시기에 회개하면 죄가 씻김을 깨닫는다. '그의 나라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 그것뿐'은 유업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권세와 영광을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향한 강한 신뢰와 지향성을 드러낸다.


이제 비와이는 '내 목소린 천국의 나팔이 돼버리네'라고 말한다. 천국의 나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영적인 귀가 열려야 한다. 성령의 권능을 받아 소명을 다하는 것을 넘어서는 귀의 열림이 필요하다. 비와이는 그 이상으로 천국의 나팔이 되어버리는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나팔은 (기상나팔처럼) 누군가를 깨우는 역할을 한다. 아직 깨닫지 못한 현실의 사람들을 위해 나팔이 되어 그들을 깨우겠다는 의지도 동시에 보인다. [사람이 구원을 받을 때에도 천사가 나팔을 불고 (고전 15:51)]

"We walkin with Him 걸음이 됐네 난

살아 있는 힘 권능이 될 게 난

Singing this Hymm 목소리가 되어 난"

 

결정적으로 곡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우선 그와 함께 걷겠다고 말한다. 그를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동시에 살아 있는 힘, 권능이 되고 그를 찬양하는 Hymm을 부른다. 노래 전체적으로 그에 대한 힘을 찬양하고 그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을 보내고 있다. 그의 힘 아래에서 낮게 엎드린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하며 그의 힘을 찬양한다.


이어지는 심바자와디의 파트는 생각보다도 강렬하다. 자신 있는 종교적 색채의 곡이라서 그런지 더욱 자신감에 차 있다. '신이 내 뒤에 서있는 게 아냐 신의 편에 선 게 나란 말야'는 라임을 맞춤과 동시에 강렬한 인상이 남는다. 신이 절대적으로 자신을 돕는 게 아니다. 자신을 수동적인 존재로서 받아들이지 않고 신의 편에 선 자신을 능동적인 '신앙인'으로서 전달하고 있다. 즉, 종교인에서 벗어나 신앙인으로 거듭난 자신을 비추어 말한다. 이어 '허락받아 나란 죄인'을 통해 죄인이지만 그를 믿음으로써 함께 걸을 수 있길 허락받는다. 그의 곁에서 회개하고 신앙심을 다할 것을 전달하고 있다. 이어 육체로는 이 플로우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겨낼 수 없다고 말하는 심바자와디의 센스가 돋보인다. 반면 아버지께 자신을 맡겨 영적인 힘을 받게 된 둘. 둘 다 자신을 죄인이라고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다.


본격적으로 반대편을 향한 전투적 의식도 갖춰지고 있다. '아버지의 적들을 숨죽이게 해'처럼 신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을 선언하고 있다. 세 번째 트랙부터는 이와 같은 전투적 의식이 더 돋보인다. 이어 'Hitman of God Father, Corleones way'는 영화를 이용한 가사다. 대부의 암살자, 즉 자신은 아버지의 적들을 숨죽이게 하는 사람이다. 동시에 영화 <대부>의 Corleones를 언급하며 그들의 길에 자신을 빗대고 있다. 마지막에는 'Yo Come feel my Braggadocious'라고 외치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Braggadocious는 영어로 boastful을 의미한다. 즉, 자신의 자랑과 뽐냄을 느껴보라는 의미로 던지고 있다.


3. Neo Christian Flow


이 곡은 부활절에 선공개되었다. 당시 제목처럼 매우 직접적인 주제를 드러내는 강렬한 곡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동시에 앨범 발매를 예고했고 기독교인의 합작품에 대한 신선함을 처음 느낄 수 있었던 곡이기도 했다. 타이틀은 아니지만 신의 편에서 싸우고 신을 향한 지향심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곡이었다.               

심바자와디와 비와이의 벌스에서 동일하게 등장한 '신은 죽었다고 말했던 니체는 죽었다'는 가장 센 가사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이해하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진리를 찾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에 안주하고 진리를 이용해 악한 짓을 하곤 했다. 니체는 이성의 능력을 믿고 신과 믿음이란 것에 전적으로 의존한 서구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드러냈다. 다른 진리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고 생각하길 바랐던 니체의 하나의 의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적 모험주의의 한계점과 허무주의로 이어지는 사상에 따라 니체의 사상은 여러 방면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을 떠나서 비와이와 심바자와디의 가사는 '신은 죽었다'라는 단순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을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신은 죽었다고 말했던 니체에 반기를 들고 인간이 죽었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신을 부정하던 불완전한 인간은 죽었으니 신은 완전할 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말하고 있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강력하게 느껴지는 만큼 당시의 파급력도 상당했다. 그처럼 어쩌면 비와이와 심바자와디의 가사도 하나의 파급력이 큰 선언처럼 느껴볼 수 있다. 서구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대표하는 것처럼, 심바자와디는 Christian들에게 'Neo'가 필요함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니체를 그저 나약한 인간처럼 상징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니체라는 사람에게 부정적 감정을 가지고 그를 부정하기 보다는 그를 어떠한 상징물로써 인용하여 자신들을 표현하고 있다는 해석이 더 올바를 것 같다.


이어 재밌는 가사가 하나 나온다. '비와이처럼 meshasoulja'는 속 뜻이 궁금해진다. 실제로 비와이는 인스타그램 아이디로 meshasoulja를 사용한다. 우선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mesha가 사용된다. 동시에 메시아의 역할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중간 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한다. 영을 받아 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사람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meshasoulja는 messiah's soldier의 영어 발음이라는 추측도 있다. 즉, 신의 편에 선 군인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정확한 뜻은 본인이 알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 '너와는 용도가 다른 진짜 카모플라쥬 걸쳐'라는 가사는 조금이나마 의미를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최근 카모플라쥬는 패션계에서 핫하게 떠오르고 있다. 그런 용도와 달리 실제 군사적인 의미에서의 카모플라쥬를 암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무언가 멋을 내는 게 아닌 신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선지 같은 피를 뒤집어쓴 선지자'는 계속해서 반대편과 싸우고 버티며 선지자 역할을 하겠다고 드러내는 가사다. 그가 말하는 투쟁과 싸움은 신앙인으로 거듭나려는 노력과도 같다. 반대편의 누군가와 버텨 이겨내면서 결국엔 승리하고 신앙인이 되겠다는 의지와도 같다. 앨범 설명 중 두 가지 정의에서 첫 번째 정의가 많이 강조되는 모습이다. 이어 'Spit Killuminati 마치 2PAC shit'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함과 싸우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난다. 투팍은 "일루미나티 같은 X소리는 집어치우고 너네 삶에 집중이나 해"라고 말했다. 음모론은 듣고 흘려보내야 한다며 사회에 비판적인 저항 의식을 드러냈던 투팍. 그처럼 저항 의식을 드러내는 심바자와디의 모습이다.


비와이도 비슷한 분위기로 두 번째 벌스를 완성했다. '우월해진 난 원래의 진리를 동네가 숨기지 못하게 자랑해'와 같은 가사에서는 앞선 두 가지 정의 중 두 번째 정의에 걸맞은 가사다. 이제 알게 된 진리에 모든 열방이 알도록 압도감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한다. 이어서 '초월하신 이의 보좌를 빛나게 하는 게 내역할' 가사도 같은 맥락이다. 신의 편에서 전투적인 의식을 보인다.


마지막에는 '종교인이던 내가 거듭나 신앙인이 돼'라고 표현하며 직접적으로 의도를 드러냈다. 이 두 가지 정의에 따라서 종교인이던 자신이 신앙인이 되고 천국을 미리 볼 수 있게 됐다. 어떠한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고 세상에 이 뜻을 알리고자 한다. '신을 벗고 들어가지 내 지성소, 구속 안에서 자유한'은 다소 역설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는 신성한 장소에 들어감으로써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고 이를 구속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보살핌은 곧 영적인 자유를 줄 것이다. 따라서 구속 안에서 자유한 Neo Christian Flow, 자신들의 구속됐지만 자유로운 래핑과 플로우.


4. David N Elijah


 

처음에 제목을 보고 무슨 의미인지 고민했다. 종교인이 아니라면 당연히 모를 법한 제목이었다. 제목을 조사했다. 알고 보니 David는 익숙한 말로 '다윗'이었고 Elijah는 '엘리야'였다. 다윗과 엘리야라고 하니까 기억나는 트랙들이 있다. 우선 비와이의 <Time Travel> 中 'David'가 떠올랐다. 비와이는 당시 다윗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골리앗과의 싸움을 가사 속에 담아냈다. 동시에 신에 대한 감사함과 인도해 주심을 찬양했다. 이어 심바자와디와 돈 싸인의 <Elijah's Demo>, 그중에서도 'Elijah' 트랙이 떠오른다. 심바자와디는 '난 이곳의 엘리야'라며 '네 숨을 죽일 Breath Killer'라고 말했다. 이처럼 다윗과 엘리야는 성경의 인물들이지만 비와이와 심바자와디가 생각한 성경 속 자신들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윗과 엘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어 승리를 쟁취했다. 다윗은 어린아이였지만 하나님의 힘을 영적으로 얻어 큰 괴물인 골리앗을 이겨냈다. 엘리야는 용기와 신앙심을 가진 선지자였다. 마지막에는 죽지 않고 불수레에 올라 하늘로 승천하기도 했다. 무언가 비와이 X 심바자와디가 깨달음을 얻고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영감의 대상이다. 다윗과 엘리야처럼 두 아티스트는 싸움을 거치고 있고 승리를 향해 다가가는 중이다. 이 트랙에서는 그들처럼 하나님의 힘을 얻어 승리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이 두 인물의 이야기에 맞물려 그리스도가 언젠간 다시 현생으로 돌아올 것임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인트로 파트에서 '그리스도가 너무 필요해'라며 씨잼의 <킁> 中 '휙'의 가사를 인용한다. 그리스도를 향한 기다림과 다시 돌아옴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정확히 표현된 구절이다. 노래에서도 '다시 오실 나의 그리스도, 깨어 맞이할 내 그리스도'라고 표현하며 씨잼과 맥락을 같이 한다.


3번 트랙에서부터 시작된 전투적인 의식과 투쟁심. 이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신의 힘을 등에 지고 있기에 이미 승리를 확신한다. '이미 승리 된 싸움 나와 이제 다음 위대한 계획으로 땡겨'라며 승리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동시에 예수님, 그리스도가 다시 이 현실에 내려올 것이고 이를 깨어 맞이할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를 '위대한 계획'이라 표현하면서 구원을 향한 간절함과 당연시 여기는 마음이 들어있다.


이번 앨범에 몇 없는 재밌는 구절도 하나 보였다. 비와이의 가사 중 '내 잔의 밑엔 당신의 말 마치 인앤아웃'은 미국의 인앤아웃 햄버거에서 출처를 찾을 수 있었다. 인앤아웃 버거에서는 콜라 잔 밑에 요한복음을 옮겨뒀다. 맛있는 버거로 고객들에게 감동을 주겠다는 기업 정신이 담겨있는 복음이다. 비와이는 이를 따서 컵 밑에도 새길 정도로 강력한 신앙심을 비추어내고 있다. 이어 '이제 나의 마른 입에서 쏟을 예언들이 네 귀에 들리길 기도해'라며 선지자로써, 예언자로서의 자신을 이야기한다. 영적인 성령의 임재를 받았고, 그 뒤로 죄인이지만 신의 곁에서 함께 걸었던 그들은 이제 선지자의 위치가 되었다. 이제는 신의 위대함을 전달하고 세상을 예언하는 자가 되었다.


딱히 다윗과 엘리야의 위대한 전투나 성공담은 가사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처럼 비와이와 심바자와디에게도 뒤에 신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전능자가 있어 바로 내 뒤엔'처럼 신에 대한 믿음이 매우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혼자서도 맞서지 그거면 돼 당연히 두렵다는 감정이 없어'에서는 신이 늘 함께하기 때문에 두려움까지 상실한 모습이다. 이를 전투처럼 그려내고 있지만 두 아티스트에게는 삶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평소 랩을 뱉고 음악을 할 때면 신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이었던 모양이다. 두려움도 없이 누구든 이길 생각으로 신과 함께 음악을 해온 둘의 간절함, 그리고 믿음이 느껴지는 트랙이었다.


심바자와디는 '바라건대 내 아버지께서 날 산채로 데려가시길 Range Rover와 닮은 불수레로'라고 가사를 썼다. 엘리야가 나중에 죽지 않고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했던 것에 대한 가사다. 그처럼 죽지 않고 승천할 수 있길 기대하면서 그리스도가 돌아올 것임을 믿고 있는 듯하다. 또 불수레를 레인지 로버에 빗댄 것이 매우 재밌는 구절이다.

 

 

5. 어디로 (Feat. C JAMM, Jvcki Wai)


피처링 선택이 탁월했다. 이들이 랩을 잘 하는 아티스트라서가 아니다. 절대적인 신앙심과 자부심으로 네 개 트랙을 완성시킨 '신앙인' 비와이와 심바자와디는 물론이다. 여기에 오랜 종교인이었지만 마약과 술로 방황의 길을 걸었던 씨잼의 회개, 신을 부정한 무신론자이지만 사실 역시나 방황하는 재키와이까지. 종교에 대한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고민이 담길 수 있게 만들었다. 게다가 평소 씨잼의 오토튠 스타일을 기반으로 곡을 짜서 듣기 편안하다. 제목 그대로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해 자연스럽게 고민하고 불완전한 인간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먼저 비와이는 사실 신이 두렵기도 한다고 말하며 사실 고백적인 가사를 썼다. 그러면서도 불완전한 인간, 즉 자신에 대한 고민이 가득한 상황을 보여준다. '제발 나를 깨워 내게 말을 해줘'처럼 자신이 신을 갈망하고 있으니 이런 자신에게 구원과 도움을 달라고 말한다. 심바자와디도 비슷한 맥락에 있다. '우릴 구해주소서 어쩌면 이번엔 눈감을 수 있을지도 몰라'처럼 구원을 받아 승천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씨잼은 이번 곡뿐만 아니라 앨범에서 킬링 파트다. 사실 비와이와 심바자와디는 씨잼과 같은 방황자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실제로 앞선 트랙들에서 씨잼의 <킁> 가사가 자주 인용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씨잼은 늘 잘못을 했지만 회개해왔다. '주일은 내일이지 버릇됐어 또 그래 아침엔 회개'처럼 잘못한 뒤 회개를 반복했다. 이후 가사들도 자기반성적이면서 고백적이다. 인생을 망치지 않기 위해 제발 자신을 붙들어달라고 말한다. 씨잼의 파트들이 매력적인 이유다. 어쩌면 역설적이다. 그래서 더욱더 매력적인 것이 아닐까.


재키와이의 철학에 대해서 조금 더 파고 들어가면 매우 심오하게 접근할 수 있다. 그는 <Neo EvE> 앨범에서 기독교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낸다. 그중 'Anarchy'는 무정부상태라는 뜻이지만 곡에서는 신이 없는 상태를 말했다. 성경에서는 여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한다. 남자의 부속물처럼 보여주기도 하고 성녀 또는 창녀로 구분 짓고 있다. 특히 결정적으로 아담의 갈비뼈로부터 이브가 나오면서 모든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나왔다는 사고 틀을 만들었다. 재키와이는 오래된 책이라는 명분으로 관습을 당연시하는 성경에 비판 의식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능동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여 가사를 완성시켰다. 'To. Lordfxxker'에서는 픽션이긴 하지만 타락한 목사를 그리기도 했다. 그녀가 실제로 종교를 싫어한다기보다는 믿고 싶지 않은 세상의 일들을 비판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곡에서도 신이 없는 상태라고 믿고 싶은 모양새다. '난 뉘우쳐 진정 내가 아는 내 죄만'처럼 죄인임을 당연시하기 보다 그냥 자기 자신을 주장하고 싶어 했다. 여기에 '계속해서 커져가 불신만, 넌 나 같은 사람까지 안아주실까'처럼 기독교와 무신론자 사이에서의 고민이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기다려 언젠가 내가 승천할 순간' 같은 가사가 이어진다. 이후 천국에는 못 가지만 지옥에서 자꾸 속는, 자신을 지배하는 욕망과 미로 속에서의 고민을 표현했다.


6. 파송예배


사실 파송예배는 완전한 곡의 형태는 아니다. 그러나 5번 트랙에서 7번 트랙으로 이어짐을 연결해 주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파송예배란 교회가 교회 밖으로 선지자나 선교자를 내보내는, 특정 지역으로 파송할 때 드리는 예식이다. Neo의 뜻처럼 새로운 기독교인을 열망했던 비와이와 심바자와디는 이제 열방으로 힘을 쏟아내기 위해 새로움을 택한 것 같다. '주의 가르침 잊혀져 갈 그때, 새로이 새로워짐을 택할 우리'를 통해 삶에 안주하여 가르침을 잊을 때면 새로워짐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즉, 지금의 기독교처럼 주의 진정한 말씀들을 잊어갈 때 Neo Christian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한다. 불완전했던 인간의 모습에서 다시금 고민하는 모습이 찾아 보인다. 마지막 구절에서는 'We're church in the wild'라며 7번 트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주고 있다.


7. Church in the Wild


노래 제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칸예 웨스트가 제이지와 함께 한 'No Church In The Wild'다. 아무래도 그의 노래에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인용해서 제목을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동시에 Church in the Wild라는 문장을 해석해 볼 수 있다. 무언가 Wild는 사람 손을 대지 않은, 야생, 황야 등을 그려내는 단어다. 그런 곳의 교회라니 무언가 쉽게 해석해보긴 어렵다. 가사를 보고 이후에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곳에서 나와 새롭게 거듭나 돌아가, 등 돌린 이들의 등을 다시 우린 껴안아야 돼'라는 구절은 기독교인들의 새로운 방향성을 가리키고 있다. 앨범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거듭남'의 의미. 종교인에서 신앙인으로 거듭남을 비롯해 Neo로써 거듭나는 것을 강조해왔다. 그런 새로워짐을 거듭한 뒤 등 돌린 사람들을 안아야 한다. 기독교로부터 등을 돌리고 불신했던 사람들을 향해서도 사랑을 베풀고 다시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최근의 기독교는 자신들만의 구원, 그리고 회개만을 생각하지 않았나 돌아보는 과정이다. 이 역시도 일명 '고였다'라는 표현처럼 수동적이었던 종교를 능동적인 종교로서 다시 고민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아까 '파송예배'에서의 두 구절이 이어지고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후 '거짓 사랑으로 우린 닮아 가자며 평생을 말하던 신의 얼굴과 달라져 살아간다'는 매우 직접적이다. 그동안 종교인으로서의 사랑은 거짓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과 닮아가자고 말했지만 정작 신의 얼굴과 달라져 살아가고 있었다고 돌아본다. 지금의 기독교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이다. '온 땅이 신의 이름에 등을 돌리는 데도, 우린 반대로 거기서 고개를 돌리려 해서'는 달라진 자신들의 모습이다. 이제는 신을 완전히 믿고 신앙심을 가졌다. 온 땅이 신을 배척하더라도 자신들은 신을 바라보고 사람들을 향해 사랑을 베풀겠다는 마음. 주가 명한 것은 지금과 같은 기독교가 아니었다. '주가 명한 대로 우린 거듭남을 택해'라며 진정한 주의 모습은 '거듭남'임을 거듭해서 강조한다. 그렇게 주의 가르침이 잊히던 지금, 이들은 새로이 새로워짐을 택했고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NEO CHRISTIAN>.

 

가장 중요한 트랙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동안의 트랙에서는 성령의 임재를 받고 그의 힘을 찬양했으며 그의 편에 서서 전투적인 모습까지 보여줬다. 결정적으로 7번 트랙에서의 가사와 본질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한번 '거듭남'의 의미를 확인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이어져 영향력을 미쳐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야생 속의 교회. 교회 만이 구원받아야 하는 세상의 전부가 아니다. 사실 '어디로' 트랙에서 짚어보았던 것처럼 세상에는 기독교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 사실을 일깨워주는 비와이와 심바자와디.

 

* 어떤 종교와도 관계가 없으며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음을 전제합니다. 모든 종교적 해석은 찾아보고 공부한 뒤 작성됐습니다. 

* 앨범을 더 재밌게 들을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글이 되길 원합니다. 모든 음악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 틀린 정보가 있다면 누구든지 댓글 달아주시고 피드백 환영합니다 :)

                

Written by HIPHOPPLAYA EDITOR 김동현(@kimd0nghye0n1 / gunners2537@hiphopplay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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