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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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3 01:55:13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고 계신지요... 제게 휴일은 육아 풀타임이라 상당히 힘드네요;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H1GHR Music - Blue Tape (2020.9.16)


 "Red Tape"과 2주 텀을 두고 "Blue Tape"이 발표되었습니다. 이미 두 앨범의 대비되는 컨셉은 많이 알고 있던 터라 내용물은 예상하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군요. "Red Tape"의 파워도 좋지만, 경쾌하고 멜로디컬하면서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곡들을 듣다보니 좀 더 H1GHR Music답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담으로, 막을 올리는 곡은 "Red Tape"에 두고, 막을 내리는 느낌의 곡은 "Blue Tape"에 넣은게 재밌네요. 따로 발매되었지만, 내부적으로는 하나의 큰 앨범으로 생각하나봅니다.


 "Blue Tape"은 "Red Tape"에 비해 단체곡이 적고, 싱잉 랩을 주 무기로 삼던 뮤지션들이 기량을 풀로 발휘할 자리가 마련되니 확연히 다채롭습니다. 특히 "Red Tape"에선 빠졌던 Golden이 본격 투입되면서 곡의 중심을 잡아주는군요. 컨셉에 따라 Trade L, 하온의 자리는 크게 줄었지만 이번에는 "Red Tape"에서의 모습 때문에 크게 아쉽진 않습니다 - 특히 Trade L은 이런 분위기에서 풀 타임으로 하기엔 아직은 배울 게 많지 않을까 싶긴 했고요. 하온은 그래도 꽤 안정적인 모습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에서 제일 인상적인 사람을 꼽으라면 서동현이겠네요. 노래와 랩 사이 걸쳐있으면서 둘에서 다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스킬 덕분에 "Blue Tape"에선 최대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나이를 고려하면 앞으로가 정말 많이 기대됩니다. 반면, 실력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Woodie Gochild의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곡이 하나 쯤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에 비해선 잔잔한 곡들만 있었던 건 아쉽습니다.


 두 개의 풀렝스 컴필레이션이 발표되면서 H1GHR의 한 시기가 끝난 듯합니다. 약간은 신생 레이블 같은 느낌이 아직 있었는데, 이번 앨범으로 입지가 절대 작지 않음을 분명하게 증명한 거 같군요. 박재범이 여러 매체에서 컴필레이션 작업이 너무 어려워서 다시는 안 하고 싶다고 말했던 거 같은데, 그만큼 공을 들인 티가 나는 뛰어난 앨범입니다. 전작의 Ourealgoat와 본작의 Audrey Nuna의 깜짝 등장도 재밌었어요. 컴필레이션에서 바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담긴 거대한 프로젝트였던, H1GHR Music의 "Red Tape" & "Blue Tape"이었습니다.



(2) Sama-D - After Dawn (2020.9.17)


 조용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Sama-D의 새 앨범입니다 - 정규라고 분류되어있네요. 제목만 봐서는 작년 8월에 나온 "Before Dawn"의 후속작 같은데요. 결론적으로 "Before Dawn"과 매우 흡사합니다. 물론 규모가 있다보니 조금 밝은 분위기도 있고 (애초에 컨셉부터 새벽 전과 후니까) 서사도 있지만, 아주 큰 틀에서는 Sama-D의 음악은 많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비단 앨범이 'Dawn'이라는 것에 묶여있어서 그렇진 않다 생각합니다. 그저 Sama-D의 스타일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 뿐이죠. 앨범을 들으면서 제가 "Before Dawn"에 대해 쓴 글을 보았는데 대부분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순박한 감성과 쏙쏙 이해되지만 결코 유치하지 않은 가사, 조금 오래 전 느낌이지만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라임이 장점이라면, 그루브가 약한 랩과 더불어 몰입감 약한 훅 등. 결론적으로는 '옛날 앨범'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옛날 앨범'이란 네 글자만으로 치부하기엔 많이 죄책감이 느껴지는군요. Sama-D는 씬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플레이어는 아니기에, 진지한 커리어보다는 반쯤은 취미 삼아 음악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굳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댈 건 없다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옛날 앨범은 옛날 앨범만의 정취가 있습니다. 요즘에 들어보기엔 좀 따분할지는 몰라도, 요즘에 없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것일 겁니다. 다만 그럼에도 아쉬운 건, Sama-D의 향후 앨범에서도 딱 요만큼만 기대하면 되는걸까 하는 의문 때문이군요.



(3) Yonge Jaundice - D.U.E. (Doped Up Everyday) (2020.9.17)


 많은 분들의 오해와 다르게(?) 저는 디깅에 매우 게으른 사람입니다. 기본적으로 사운드클라우드 디깅을 하지 않고,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도 직접 신인을 들어보게 되는 일은 드뭅니다. 대부분은 옆에서 누가 들어보라고 찔러야 듣는 편이죠. 그런 와중에도 음악을 안 듣고도 이름 정도는 기억에 남는 래퍼들이 몇 있는데, Yonge Jaundice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이유는 작업량입니다. 2019년 초 첫 작업물을 올린 후, 지금까지 스트리밍에 올라온 것만 (본작을 포함해) 7개의 EP, 사운드클라우드와 힙합엘이 믹스테입란을 탈탈 털어보면 무려 45개라는 무시무시한 숫자의 믹테가 나옵니다 - 스트리밍과 다 겹치지도 않고요. 말그대로 몇달, 몇주가 아니라 며칠 간격으로 신작을 뿜어내는 허슬러죠.


 그 와중에도 저는 음악을 한두 곡이나 들어봤을까요, 그냥 트랩 래퍼인가보다 하던 와중에, Paloalto와 Huckleberry P가 하는 신인 발굴 컨텐츠 "P2P"에서 극찬을 받은 걸 보았고, 마침 신작이 멜론에 올라왔길래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부지런한 활동 중에도 Yonge Jaundice는 별다른 소속은 없어보입니다. 정보도 많이 알려진 건 없고, 다만 2019년 이전에는 토론토 생활을 8년 정도 했다... 정도만 써있군요.


 서론이 무척 길었습니다. "D.U.E."는 아티스트로 올라가진 않았지만, OP4L이란 비트메이커와 함께 만든 앨범으로 '24hrs project'란 말이 소개에 있어 24시간만에 만든건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합니다. "P2P"에서 말했듯, 기본적으로 Yonge Jaundice의 랩의 강렬한 느낌은 확실히 인상적이긴 합니다. 저는 트랩 래퍼로 알고 있었지만, "P2P"에 냈던 곡 "OEW"는 올드 스쿨 붐뱁이었듯, 주로 묵직하고 어둑한 곡이 취향일뿐 장르를 크게 가리는 것 같진 않습니다. 본인의 목소리와도 확실히 잘 어울리고, 중간에 힘을 빡 준다든지, 혹은 플로우의 속도를 올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좋습니다. 아니, 이게 주무기라고 하는게 옳겠군요.


 한 마디로 'raw'한 랩입니다. 거칠거칠한 질감이 가득해서, 이런 느낌을 좋아하시면 괜찮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의도한 것인지 혹은 환경 탓인지, 믹싱마저 엄청 raw합니다. 분위기를 살린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감상에 방해로 느끼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 같아요 (곡 끝에 무음이 길게 붙어있는 것도 이것으로 인한 건지...). 더불어 랩에서 조금 더 디테일에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 생각한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플로우가 빨라지는 순간 발음이 부정확해지는게 눈에 띕니다. "24hr project"라서 그랬을까요? 하지만 함께 들어본 EP "Commandos"도 비슷했다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도 raw라고 얘기한다면 달리 할 말은 없습니다.


 해서 개인적으로는 좋은 환경에서 곡을 작업하면 어떨까 많이 궁금해지는 래퍼이긴 합니다. 첫 인상은 나쁘진 않지만 과거 개미친구 (42kgb)에게 끝내 실망했던 걸 생각하면 확언할 순 없네요. 뭐, 처음 들어서는 모든 장단점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무작정 곡을 많이 내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기회 삼아(?) 일단은 진득하게 들어보면서 어떤 래퍼인지 좀 더 알아가보렵니다.



(4) 오르내림 - Good Boy Syndrome (2020.9.18)


 WeDaPlugg 합류와 함께 나온 오르내림의 신작입니다. 처음 오르내림이 유명해졌을 때, 동심 어린 듯한 표현과 감성적인 싱잉 랩이 그 이유였다면, 확실히 전작 "Cyber Lover"에서부터는 본인의 음악 스타일을 기반으로 감성을 성숙시켜 한 단계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Good Boy Syndrome" 역시 그런 면모의 연장선입니다 - 예를 들어 표현하자면, 오르내림의 '절규'에 가슴 아플 수 있는 앨범이군요. 이런 환경에서 그의 필력은 단연 빛을 발합니다 - "중산층"이 상당히 심금을 울리네요.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표현력의 폭이 넓어졌다 느꼈습니다. 어쩌면 오르내림의 통통 튀는 감각은 계속 부재 중이니 아쉬워할 수도 있겠지만, 대신 보여주는 이 색깔이 저는 왠지 저에게 더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약간 삼천포로 빠져서 WeDaPlugg 합류에 대해선 조금 애매한 입장인데, 가만 보면 WeDaPlugg는 이제 보컬의 비중이 더 높은 레이블이 되었군요. 뭐, 미리 걱정을 해도 들어간 후 의외의 시너지를 보여주는 경우를 워낙 많이 봤으니 크게 얘기하진 않으렵니다. 아무튼 앞으로의 성숙한 모습을 더 기대하게 만드는 반가운 컴백 작품이었습니다.



(5) DOOMSDAY & Horim - WAVE (2020.9.18)


 Horim도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군요. 저는 "EPISODE" 앨범이 마지막이었는데요, 당시까지의 Horim에 대한 이미지는 뭔가 신비롭고 몽환적인 노래를 부르는 R&B 가수였습니다. 때문에 약간은 난해하단 생각도 있었고요. 표현력과 지식이 부족해서 정확히 표현은 못 하지만 R&B란 단어론 설명이 매우 부족한 가수 아닌가 합니다.


 오랜만의 복귀작인 "WAVE"는 사실 그런 신비함은 많이 빠져있습니다. 뭐, 마지막 트랙인 "GOOBY"는 단순하진 않지만 (사실 이 곡은 짱유가 오랜만에 기억 속의 짱유(?) 모습을 보여줘서 인상적이었네요), 나머지 두 곡은 강조된 라임과 단순한 루핑, 발성과 멜로디 전개 등으로 뭔가 트랩 음악의 영향을 더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DOOMSDAY는 Los 앨범 때문에 하드한 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서로 인상이 강했는데 튀지 않게 분위기에 맞는 무난한 비트를 잘 써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본 이름은 언제나 반갑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던 여운 짙고 깊이 있는, 자유로운 느낌이 아니라 다른 모습이라 당황스럽고 아쉬웠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든 잘 해내기를 응원하지만 적어도 듣는 분들이 이게 Horim의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6) DJ Wreckx - BB KIDZ Vol.1 (2020.9.19)


 5월부터 한달마다 싱글이든 EP든 뭐든간에 꾸준히 내고 있는 DJ Wreckx가, 이번에는 '붐뱁 키즈'라는 컨셉 하에 알려지지 않은 신예들을 피쳐링시켜 앨범을 냈습니다. 앨범 구성은 Day Jam, OTWO, P.Zone이 각각 한 곡씩 피쳐링한 곡들과 이에 대한 리믹스로 구성되어있고, 제목 그대로 순수 붐뱁을 컨셉으로 하고 있습니다.


 취지가 공감되고 어찌보면 제가 좋아해야 마땅할 일이나, 왠지 "BB KIDZ Vol.1"은 답답한 앨범이었습니다. 바로 직전 나온 나찰이 참여한 싱글 "Jungle"만큼 터져주는 느낌이 없고, 래퍼들의 목소리가 답답하게 믹싱되서인지, 로파이하고 단순하게 찍힌 비트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붐뱁에서 제일 중요하다 생각하는 댐핑이 여간 안 느껴지더군요. 리믹스 트랙은 단순하게 찍힌 DJ Wreckx의 비트와 대조적인 색깔을 가지고 있어 다른 맛을 보여주지만 붐뱁이란 컨셉에선 더 멀어진 느낌입니다. 솔직하게 말해, 래퍼들도 그냥 아주 흔한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 같고요.


 전체적으로 올드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올드한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선입견을 가진 이들을 설득할만한 힘은 좀 부족해보입니다. Vol.1이라고 하니 앞으로 후속작이 나올 것도 같은데 좀 더 흥미로운 트랙들이 많이 실렸으면 좋겠네요.



(7) Skinny Brown, Jayci Yucca, TOIL - 토카브라운: Highteen Rockstars (2020.9.19)


 Wayside Town에서 발표한 또 다른 조합입니다. 앨범 제목은 마치 '토끼니브라운'을 연상시키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재물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죠 (아니 TOIL의 프로젝트 시리즈라고 봐야할까요?ㅎ).


 밴드 구성의 비트를 잘 찍는 TOIL과 어린 락스타 컨셉을 구축해나가고 있는 Jayci Yucca가 뭉쳤으니 그 결과물은 충분히 예상 가능합니다. 물론 중간에 Skinny Brown이 꼈지만 워낙 다양한 걸 커버하는 아티스트이니 무리는 없고요. 예상대로 첫 두 트랙은 경쾌하고 강렬한 일렉 기타가 맞이해줍니다. 다만 그것만이 이 앨범이 가진 스타일은 아니어서, "Wasted" 같은 전형적인 이모 힙합이나, "2020 Let's Go" 같은 스웨깅을 위한 트랩도 있습니다. "Runners"를 락적인 걸로 둔다면 락적인 것 절반 힙합적인 것 절반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정도까지 의도했었다고 생각되진 않았습니다. Wayside Town 단체 인터뷰에서 말했듯 그냥 동네 친구들이 모여 노는 것처럼 만든 앨범이겠죠.


 어쩌면 Leellamarz를 뛰어넘는 TOIL의 허슬과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비트 퀄리티는 상당히 귀감이었지만, "토카브라운"에서의 TOIL 프로덕션은 아쉽군요. 실린 트랙들이 전부 뻔한 느낌입니다. 처음 들을 때 1번 트랙과 2번 트랙은 같은 반주를 가지고 리믹스한 건가 싶었고, 사실 아직도 그 의심을 완전히 떨치진 못 하겠습니다. "너와 나의 Neverland" "Wasted"의 촌스러운 구성이라든지, "2020 Let's Go"의 어수선한 느낌 등, 이번 앨범은 너무 힘 안 주고 만든게 아닌가 하는 구석들이 많았습니다.


 기본적인 실력은 있는 멤버들이니 안 좋게만 생각할 건 없습니다. Jayci Yucca는 정말 갈수록 락커가 되어가는군요 - 그도 역시 가끔 멈춰서서 '왜 래퍼를 하고 있지?'하고 생각하는 뮤지션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뭔가 제대로 락 밴드 세션 받아서 하면 재밌는게 나올 거 같기도 하고, 오히려 역량을 더 정확히 알게 될 거 같기도 하고요. Skinny Brown도 마찬가지입니다 - 다만 위에서 말한 것에 앞서서, 그의 특유의 목소리 톤이 Jayci Yucca의 어리고 발랄한 분위기랑 어울리진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여러모로 그냥 '이 정도 만들었다'까지의 감흥만 있어 아쉬운 앨범, "토카브라운"이었습니다.



(8) KOREANGROOVE - 섬광 1/2 (2020.9.12)

    KOREANGROOVE - 섬광 2/2 (2020.9.19)


 부현석에 이어 KOREANGROOVE도 입대를 하면서 입대 전 마지막 앨범을 내놓았습니다 - 부현석의 "FRONT LINE"보다는 몇 배의 스케일을 자랑하는 정규이지만요. 과거 냈던 EP 2부작이 "YAGWANG"인 걸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정신적 계승작(?)이로군요. 마찬가지로 일주일 간격으로 2부작이 발표되었고요.


 앨범을 들으며 가장 호감이었던 부분은 훨씬 파워풀해진 KOREANGROOVE의 목소리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KOREANGROOVE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정쩡함으로, 많은 걸 보여주지만 어느 요소 하나 인상적인 부분이 없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는데요, "섬광"에서의 KOREANGROOVE 목소리는 훨씬 단단하고 꽉 차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멜로디 역시 전보다 생동감 있어서 어느 정도 청각적 쾌감을 보장해주는 듯합니다. 하드한 곡과 감성적인 곡으로 (마치 최근 H1GHR 컴필을 보는듯한... 베꼈다는 얘긴 아니고요;) 파트 1과 파트 2를 나눈 부분도 바람직합니다 - 덕분에 그가 할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좀 더 체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습니다. 파워풀한 스타일이란 면에서 '1/2'이 저는 기억에 좀 더 남네요.


 '어정쩡함'이라는 다소 가혹한 표현을 써버린 김에 좀 더 이어가보자면, 사실 본작에서까지 완전히 그 얘기를 안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처음 접했을 때부터 같은 크루인 부현석과 겹치는 부분이 많게 느껴졌고, '하필이면' 부현석을 먼저 알게 된 연유로 그의 음악에 관심이 덜해지는게 사실입니다. 여기에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곡마다 2개의 톤을 쓸 때가 있습니다. 두 톤이 서로 꽤 달라서 있지도 않은 피쳐링을 찾아볼 정도인데, 안 그래도 선명하지 못한 정체성에 좋은 전략인지 모르겠어요 (딩고 '랜덤뽑기'에서 우원재가 긍정적으로 얘기하는 걸 보긴 했지만, 제 의견은 그렇네요).


 뭐가 됐든 "섬광"을 통해 보여준 발전상은 분명한 것이고, 더불어 인정해야할 것은 Friemilli 크루에서 제일 부지런하게 작업물을 내는 래퍼가 그라는 점입니다. 강제로 갖게 된 공백기에 앞서 그래도 긍정적인 평가 변화를 할 수 있게 해줬다는 점에 감사합니다. 더불어 YTC, Friemilli, USB 세 크루가 합친 대형 크루로 윤곽이 잡힌 FLOCC도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많이 기대가 되네요. 이 추세를 이어 조금 더 노래를 듣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점은 많이 아쉽군요. 건강히 군생활 마치고 돌아오길 기원합니다.



(9) 탱 - Homeless (홈리스) (2020.9.21)


 작년 11월 "탱쓰부르쓰"에 이은 탱의 새로운 EP 앨범입니다. 중간중간 싱글 활동도 없이 앨범 단위로만 내는, 요즘 기준에는 살짝 신기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군요. 여전히 별다른 소속은 없는 것 같고요.


 '집 없을 때를 떠올리며 만들었다'는 소개글에 전작과 비슷하게 진중한 쪽이 될 거 같았지만, 실은 2, 3번 트랙은 턴업되는 바이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후로 자기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이어지긴 하지만 앨범이 전체적으로 그리 무겁다고 느껴지진 않습니다. "품바"와 "탱쓰부르쓰"로 기억하는 탱은 막걸리 한 잔 걸치며 랩할 듯한 걸걸한 느낌이었는데, "Homeless"는 오히려 더 래퍼스럽게(?) 가볍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파워가 사라진 게 그의 음악 속의 심이 빠진 듯한 느낌이라 많이 아쉬웠습니다. 턴업되는 바이브에선 여전히 타이트하게 박자 사이를 누비고 진지한 곡에서는 진지할 줄 알지만, 그런 변화 때문에 전보다 평범해졌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특히 "고래" 같은 곡은 이때문에 곡의 원래 의도만큼의 스케일이 나오지 못한 듯합니다. 오히려 벌스마다 '읊조리다가 점점 격앙되는 감정'이라는 클리셰적인 구성만 남아버린게 아닌가 하네요. 찬찬히 뜯어보면 앨범 수록곡들엔 분명한 감정의 서사가 있지만 밋밋하게 마감되어 인상이 옅어졌습니다.


 너무 탱이란 뮤지션에 대해 '얘는 품바를 들어보니 걸걸한 거 하는 애다!'라는 편견이 작용하여 아쉬움으로 이어진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찍이 보여준 모습에 비해 색깔이 애매해졌고, 앨범의 컨셉도 흐려진 듯한 게 계속 걸리는군요. '묻힌 앨범과 또 묻힐 앨범'이란 가사가 마음 아프지만 그 와중에도 듣는 사람에게 뚜렷한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10) 42kgb - 근육 (2020.9.22)


 42kgb는 개미친구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엄청난 작업량답게 3개월 만에 새로운 정규 앨범이고요. 다만 원래 그 사이 EP나 믹테도 무수하게 나왔을 법한데 꽤 공백기(?)를 가지다가 나왔군요. 이름이 바뀌었길래 뭔가 변화가 있나 했는데, 그렇진 않습니다. 대신 "근육"은 저번 앨범에서 미묘하게 강화된 그의 우울감을 한 단계 더 키워놨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즉, 같은 맥락에서 더 나아간 작품이기 때문에 스타일이 의미 있게 변한 건 아니었고, 그래서 음악적인 면에선 저번 앨범과 거의 같은 감상을 했습니다. 여전히 버거울 정도로 쏟아지는 텍스트량을 그는 박자나 플로우에 신경 쓰기도 귀찮다는 듯 모조리 쏟아냅니다. 믹싱은 의도된 건지 지저분하고 먹먹합니다.


 왠지 이번 앨범은 들으면서 고통스러웠습니다. 뭐랄까, 음악을 좋아해서 만든 앨범이라기보다 상당히 강박적으로 써제낀 노래들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바람" 정도부터 이어지는 후반부에서 상당히 심합니다. 그래서 "나쁜친구"나 "침잠" 같은 데에서 음악적 시도라고 평할만한 플로우가 있긴 하지만 이게 이런게 재밌겠다 싶어서 한 건지 아니면 토해내다보니 생긴건지 구분이 안 가더군요. 노래 내용들도 정확히 구분이 안 가고 하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내포한 특이점을 향해 내달리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텍스트량도 많지만,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적힌 각종 비유들은 리스너가 쉽게 소화하기 버겁습니다. 여기에 어색하게 얽혀있는 '감미로운' 노래와 유머러스한 표현들이 기괴한 조화를 이룹니다. 다만, 이는 마찬가지로 저번 앨범에도 느꼈던 것들입니다. 다만 더욱 진하게 느낄 뿐이죠.


 결국 "42kgb" 트랙에서조차 왜 그가 42kgb가 되었는지를 속시원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당장 다음 앨범에서 개미친구로 다시 바꾸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수많은 앨범을 들으면서, 이쯤 되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와닿는게 있어야할 것 같은데, 여전히 처음처럼 거리감이 느껴지는게 아쉽습니다. 하긴, 그의 앨범 소개글에 늘 등장하는 것은 '완전한 공감의 불가'로군요.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래도 청각적으로라도 즐겁고 싶은데, 점점 42kgb/개미친구에게선 그게 어려워져가는 것 같은게 또 하나의 아쉬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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