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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마이크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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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1 01:24:53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제가 있는 부대는 지금 훈련 기간입니다. 훈련 기간이라도 군의관은 편하게 삽니다.

대신 저는 논문을 쓰다가 휴식 시간에 마지막 (10)을 적고 이걸 올리고 있습니다.

이 치열한 삶은 저들이 하고 있는 훈련 못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ChaMane - 오늘. (2021.2.26)


 아마 이 말을 하는게 처음은 분명 아닐 거 같지만, Friemilli 멤버들의 앨범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형제애의 코드와 젊은 패기로 밀어붙이는 메세지와 속도감 있는 트랩 비트, 타이트하고 파워풀한 랩 등이죠. 세세한 부분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유사점이 많아서, Friemilli 멤버의 앨범을 들을 땐 늘 무엇을 듣게 될지 예상이 가능하단 특징이 있습니다.


 차메인의 앨범도 그렇게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초반부터 직설적으로 쏟아붓는 랩의 포화는 부현석이나 KOREANGROOVE의 것과 비슷합니다 - 다만 부현석보다 톤이 조금 더 가늘고, KOREANGROOVE보다 싱잉 랩을 안 한다는 정도겠죠. 그래서 이런 스타일에 질려있는 상태라면 앨범에 대해 큰 호감을 느끼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이전의 차메인과 비교하여 "오늘."은 분명히 메리트가 있습니다. 우선 랩의 기본기 자체가 훨씬 탄탄해진 느낌이 있습니다. 발성이 더 분명해졌는데, 패기를 대변하는 파워와 빠른 랩의 타격감이 주 무기인 그(들)에게 이 변화는 매우 긍정적입니다. 특히 차메인은 Friemilli 멤버 중 제일 무난한 플로우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억지로 독특한 보이스를 갖는 대신 정공법으로 내실을 다진 것은 오히려 다른 의미로 그를 돋보이게 만듭니다.


 또한 후반부로 가면서 조금 더 감성적으로 변하는 비트는 "오늘."을 이때까지의 차메인 앨범 중 가장 넓은 스펙트럼을 커버하게 해줍니다. 특히 타이틀 곡 중 하나인 "6호선 봉화산행"의 경우 기존의 트랩 스타일에서 벗어난 레트로 풍의 비트가 주는 색다름과, 직전까지 이어지던 감성적인 무드를 이어받아 폭발시켜 앨범의 대단원을 장식하여 "오늘."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곡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다수의 FLOCC 멤버들이 피쳐링진에 참여하여 보여준 케미도 나름 앨범의 미덕 중 하나랄 수 있습니다.


 크루 멤버들끼리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 그리 좋은 표현이 아닐 수도 잇지만, 그래도 Friemilli 멤버들의 거취를 보면 처음부터 존재하던 사소한 차이를 억지로 키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가면서 더 날카롭고 단단하게 다듬어가는 듯합니다. 차메인 역시 이번 앨범에서 그런 변화를 보여줬고, 그전까지 느껴졌던 무난함은 흔적으로 남아있으면서도 더 이상 무난하지 않아진 듯합니다. "오늘."은 그의 세 번째 정규지만 커리어에서 제일 인상적인 앨범으로 기억될 거 같습니다.



(2) LOVO VERDI - Still Howlin' (2021.2.27)


 LOVO VERDI는 R&B와 싱잉 랩의 경계에 있는 또 한 명의 아티스트입니다. 이 시리즈에서 전작인 "Moonlight"를 다룬지 1년 여의 시간이 지나 오랜만에 새 EP가 나왔습니다. 다양한 비트메이커가 참여했던 전작과 달리 이번 앨범은 Young Villa라는 비트메이커가 거의 전곡을 제공했고, 곡마다 피쳐링이 하나씩 배치되었습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착 가라앉은 무드가 앨범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는 비트의 흩어지는 저음의 전자음과 LOVO VERDI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한몫을 하며, 무겁게 떨어지는 그의 창법 때문에 "YMMF" 같은 턴업 곡도 특유의 진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꽤 높은 오토튠의 비율과 부분에 따라 겹겹이 쌓인 화음도 이런 무게를 보태는 역할을 합니다.


 초반에 R&B와 싱잉 랩의 경계라고 했던 이유는 아주 단순무식하게 오토튠 싱잉의 일종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멜로디 전개가 R&B 보컬보다는 싱잉 랩 특유의 단조로움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계속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들리는지, 비트나 LOVO VERDI의 싱잉은 명확하게 꽂히는 멜로디 라인이 있지 않습니다. 재밌게도 마지막 트랙 "Coat"는 진성 R&B 트랙으로 완전 다른 노선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런 걸 보면 본인도 단순히 래퍼로만 불리고 싶진 않은 거 같군요.


 여튼 저는 전작과 본작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무드가 나쁘진 않았습니다. 완전히 오리지널한 캐릭터라고 보긴 어렵지만 어둑한 분위기에 취하고 싶을 때 한 번씩 들어볼만한 노래 같습니다. 멜론의 아티스트 페이지에는 자신을 '밤을 노래하는 LOVO VERDI'라 소개하는데 썩 어울리는 표현 같네요.



(3) Northfacegawd - northfacegawd (2021.2.28)


 "THE STAREX TAPE" 후로 눈에 띄는 활동을 하고 있는 Northfacegawd의 두 번째 EP입니다. Northfacegawd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목소리고, 이를 활용하는 방법도 거의 정립되어있습니다. "northfacegawd"는 트랙마다 갖가지 방법으로 그 패턴을 교묘하게 피해가면서 우리가 알던 Northfacegawd의 랩이면서도 살짝 낯설고 신선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과감하진 않지만 동시에 무리하지도 않게 자신의 능력 범위를 보여주는데는 충분한 전략입니다.


 하지만 이번 EP는 4트랙에 9분도 안 되는 (그것도 마지막 리믹스를 빼면 5분 대의) 너무나 짧은 길이, 그 곡들마저도 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단순한 구성이기 때문에, 듣고 나면 앨범을 들은 건지 샘플러를 들은 건지 헷갈립니다. 그래서 Northfacegawd이 보여준 모습들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할 수 있지만, 사실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는게 아쉽습니다. 저번 EP랑 이번 EP를 합쳐서 냈으면 뭔가 앨범 같았으려나요 - 물론 그냥 제가 아재라 앨범 단위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4) nippy ski - 무법지대 (2021.3.1)


 전작 "cyberworldrobbery.co.kr"가 워낙에 단순한 음악을 표방했기 때문에 이번 EP에는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무법지대"는 그런 예상을 깨고 상당히 변칙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작과 달리 이번 앨범은 nippy ski가 전곡을 프로듀싱했는데, 느낌은 본래 nippy ski가 해왔던 것과 같지만 중간중간 비트가 변하면서 주목을 끄는 부분들이 군데군데 있습니다. 가사적으로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멍청 트랩'스럽지만 단어의 사용이 훨씬 유연해진 거 같습니다. 한 가지 더 특이한 부분은 nippy ski가 곡에서 두 가지 톤을 이용한다는 건데, 단순히 톤 운용의 수준이 아니라 마치 얼터 이고처럼 두 사람이 랩을 주고 받는 느낌으로 전개가 됩니다. 음, 솔직히 이 부분은 전체적으로 좋은 요소였다고 말하는게 주저되지만, 여튼 재밌는 부분인 거 같긴 합니다.


 이런 각종 변화구 속에서도 물론 nippy ski가 원래 하려던 느낌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노빠꾸로 질러대는 랩과 흘려대는 발음, 반복적인 가사 등 으레 생각 나는 그런 것들이죠. 하지만 군데군데 넣은 변화가 뻔한 음악을 뻔하지 않게 바꾸고 좀 더 많은 귀에 와닿게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것이 본인 프로듀싱으로 일궈낸 부분이 커서 더 의미가 있습니다. 전작을 듣고 저의 취향과 꽤 거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지나가려 했는데, 이렇게 됐으니 후속작은 다시 관심을 갖고 기다려봐야 겠습니다.



(5) APEX - Zombies Everywhere (2021.3.2)


 지난 앨범 "Father on Board"의 발매와 동시에 예고되었던 다음 정규 앨범 "Zombies Everywhere"가 발매되었습니다. 간격이 길지 않은만큼 기본적인 무드는 "Father on Board"와 비슷합니다. 때문에 전에 느꼈던 단점도 거의 그대로 재현된다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가사만 봐도 어떻게 처리할지 알 거 같은 고정적인 플로우 디자인 (특히 라임 처리)을 꼽을 수 있고, 이번에는 특히 몇몇 비트가 이보다는 땜핑이 더 살아있어줬음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요란해"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특히 APEX는 계속 힘을 실어 긁은 목소리로 랩을 하기 때문에 맥이 없는 비트는 때론 치명적입니다.


 다만 코믹하고 일상적인 전반부와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후반부가 극명히 나누었던 전작에 비해 "Zombies Everywhere"는 그 중간선을 잘 잡았다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면 "Zombies" "Who's the Best" 같은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적당한 무드의 곡들이 개인적으로는 듣기 편했습니다. 훅 메이킹도 전작보다는 어느 정도 나아졌다고 생각했고요. 저는 아직도 APEX가 목소릴 담백하게 가져가는 부분이 훨씬 흡입력이 있다 생각합니다 - "I'll Be Your Father" 같은 곡을 소화할 정도로 긁는 목소리의 운용을 잘 한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이번 앨범엔 원하던 담백함이 몇몇 곡의 포인트에 자리하고 있어서 기억에 남습니다 ("Zombies"의 훅 같은 거).


 허슬하는 과정에서 나온 앨범을 하나하나 다 거론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건 어쩌면 소용 없는 짓일지도 모릅니다. 이는 바꿔 말해 이번 앨범이 전작에 비해 이렇고 저렇고 말하는 게 부질 없다는 거죠. 이 정도의 허슬 속도를 계속 유지할 거라면 APEX의 발전은 장기적으로 보는게 맞을테니, 아쉬운 부분에 큰 의미를 두진 않겠습니다.


PS 이때까진 교묘하게 제 참여 앨범에 제 얘기를 섞었는데 이번엔 못 섞었으니 대놓고 말하자면 "COPYCAT" 피쳐링에 무려 닷원 (후략).



(6) Alt - 숟가락 얹은 앨범 (2021.3.2)


 뭔가 되게 금방 나왔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오래 걸린(?) Alt의 새 EP입니다. "숟가락 얹은 앨범"은 본인이 맘에 드는 비트에 랩만 딱 얹어서 붙인 제목이라 하는데, 비트의 컨셉이 상당히 명확합니다. Gong Hoon, chAN's 두 비트메이커가 만든 비트들은 기타와 피아노 그리고 최소한의 드럼 루프로 편안하고 느긋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으며, 이는 Alt가 평소에 하는 늘어지는 수준의 chill한 랩과 잘 어울립니다. 일상적이면서도 랩으로 다룰 거라 예측 못 했던 소재로 랩하는 건 Alt의 특기이고 이는 보통 코믹하게 표현되지만, 이번엔 가사들이 인간미 넘치는데다 비트가 워낙 포근하니 모든게 낭만적이고 따스하게 다가옵니다. 같은 분위기의 곡이 다섯 개가 포진해있는 건 (특히 큰 인상을 남기기 어려운 느긋한 바이브이기에) 장점이 될 수 없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Alt에게서 매력을 발견한 분들이라면 그 매력을 좀 더 크게 즐길 수 있는 기회일 수 있겠습니다.



(7) Lil 9ap & Jayko - Marigold (2021.3.2)


 한때 허슬러라 부르기 손색 없는 작업량을 보여줬는데, 어쩌다보니 Lil9ap에겐 10개월 만의 EP입니다. 지난 앨범 "Babyboy"에 '새로운 시작'이라는 걸 앨범 소개글에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그후로 뭔 일이 있었나 싶기도 하군요. 함께 콜라보하는 Jayko는 아주 간략한 검색 상으로는 작년 12월부터 겨우 이름이 등장하는 걸 보아 루키로 추정 중입니다.


 오랜만에 듣는 Lil 9ap의 랩은 기억 그대로입니다. Lil 9ap의 랩은 곡 내에서는 한 벌스 동안 한두 가지의 플로우 패턴으로만 일관하면서 같은 리듬을 반복해나가는데, 특유의 쫀득한 목소리가 이런 패턴이 단조로워지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습니다. 오히려 계속 같은 리듬에 귀가 익으면서 더 그루브가 솟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 생각해보니 B-Free 곡 들을 때도 이런 현상이 있었던 거 같군요. 


 Jayko는 앨범의 전곡 프로듀싱과 랩을 맡았으며, 마지막 두 곡은 둘 중 Lil 9ap의 랩만 실려있기 때문에 Lil 9ap이 좀 더 메인에 나와있는 느낌입니다. 솔직히 말해, 둘의 목소리가 거의 구분이 가지 않았습니다 ("Maintain" 뮤비를 보고 나서야 둘이 진짜 다른 사람이구나 수긍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랩의 감상 중 일부는 Jayko의 것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랩을 맞춘게 아닌가 합니다.


 결론적으로 그루브감 있게 잘 듣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반복적인 랩은 어느 순간에 가선 감질맛이 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애태우는 것도 의도의 일부였나 싶기도 한데, 아무튼 곡들마다 뭔가 터져주기를 기다리게 만드는 느낌이 좀 있군요. Jayko의 비트도 차분하고 둘의 랩이 결코 과하지 않게 조곤조곤 뱉는 스타일이다보니 더더욱 명확해집니다. 뭐 솔직히 그게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만, 좀 더 들은 횟수가 는다면 단점으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는 듭니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듣는 Lil 9ap의 목소리는 반갑네요.



(8) 42kgb - 수렵채집인 (2021.3.4)


 워낙 곡수 빠방한 앨범을 자주 내니 정규, EP, 믹스테입 등의 분류가 의미 없어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세 번째 정규 (42kgb로써는 두 번째) "수렵채집인"입니다. 앨범의 전반부는 지금까지 그의 커리어 중에서 제일 인상적인 벌스들이 튀어나옵니다. 특히 초반 3곡은 하드코어 붐뱁 스타일의 비트 위에서 매우 강렬하게 내리꽂는 랩을 선보이는데, 단순 파워로 비교한다면 여느 때와 비슷할 수 있지만 좀 더 임팩트를 주도록 계산된 장치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라임을 강조하는 방식인데, 그저 떠벌떠벌 (비하 표현이 아닙니다 그냥 이거 외에 적절한 표현이 없어서..;) 늘어놨던 식의 랩과 달리 포인트를 집어주는 부분들이 곡의 텐션을 한껏 올려줍니다.


 이는 전통적인 랩 스타일을 좀 더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방언 기질이 다분했던 부분은 그대로 이어져서 상당히 기괴한 혼종이 탄생하였습니다. '톤 운용'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삑사리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목소릴 찢어대는 42kgb와 그 찢어지는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믹싱, 와중에 리듬감, 타격감이 극대화된 랩 디자인으로 인해 이때까지 그의 음악에서 느끼던 혼란과 다른 아찔함이 느껴집니다. 이어지는 앨범 후반부는는 개미친구 때의 스타일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 특히 마지막 곡에서 다시 죽음에 대해 우스갯소리처럼 논하는 부분은 그의 첫 정규 "legacy"를 떠올리게 합니다.


 "근육"에서 느꼈던 당황스러움이 가시고 얼추 42kgb의 음악이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서서히 매너리즘으로 느껴지던 개미친구의 음악이 마치 SF 만화 같은 데 나오는 과잉진화를 거친 느낌이군요. 그 모습은 결코 유쾌하지 않고, 이해의 여지는 더욱 좁아졌습니다. 그로 인한 충격은 42kgb 음악을 감상하는 데 강한 동기가 됩니다. 다만 타고난 작업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게 그 감흥을 퇴색시킬까 하는 건 여전한 우려로 남는군요. 허나 이번 앨범 같은 예상치 못한 타격을 줄 수 있다면 그 우려는 쓸데 없는 것일 겁니다.



(9) ASH ISLAND - ISLAND (2021.3.5)


 팬들이 고대하던 앨범 중 하나였던 ASH ISLAND의 2집이 발매되었습니다. 특히 선공개 곡들에 대한 반응이 대체로 좋아 큰 기대를 받은 바 있는데, 늘 실망은 기대에 비례하는지 앨범 자체에 대한 반응은 뜨뜨미지근해보이네요. 여튼 "ISLAND"는 "ASH"와 마찬가지로 TOIL이 전곡 프로듀싱을 했고, 특징적으로 Skinny Brown이 대다수의 곡에 작사 및 작곡 (아마 탑라이너의 역할로 추정되는)으로 참여했군요 - 이거 때문에 대필이냐는 오해도 사는 모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ASH ISLAND의 능력에 대한 의심은 전혀 없다는 것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앨범을 한 번 돌리면 "ASH"와 비교해 가벼워진 분위기가 먼저 귀에 들어옵니다. "ASH"는 아직 방송을 통한 스킬풀한 래퍼로써의 이미지만 남아있던 Clloud를 강렬한 락 사운드와 허스키한 목소리, 우울한 코드로 무장한 ASH ISLAND로 재탄생시킨 성공작이었습니다. "ISLAND"의 경우 그러한 모습은 후반부에 고스란히 몰려있지만, 여러 가지 면으로 훨씬 인상적일 수밖에 없는 전반부가 상대적으로 업템포이기에 전체적인 느낌도 살짝 더 경쾌합니다.


 이럴 수 있는 건 ASH ISLAND의 탑 라인 짓는 능력이 더 향상되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Paranoid" 때부터 인상적인 훅과 준수한 멜로디 메이킹 능력을 과시했던 그지만 전작보다 더 다양해진 분위기에도 적절하게 청자를 몰입시키는 멜로디를 배치하였습니다. Skinny Brown이 도와준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ASH ISLAND 본인의 능력이 받쳐주지 않고선 어려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모든 장점이 집약된 곡이 타이틀곡이자 앨범의 포문을 여는 "멜로디"입니다 -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밸런스 있는 무드를 그려가는 비트와 시원하게 뻗어가는 고음과 중독성 있는 멜로디, 타이트한 플로우를 바탕으로 "Paranoid"의 성공에 뒤쳐지지 않으면서 새로운 그의 음악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뒤이어 나오는 곡들이 그만큼의 참신함을 재확인시켜주지 못한 건 아쉬운 점입니다.


 앨범이 워낙 전반부와 후반부 분위기가 대비되고, 특히 "그랑프리" "Checks"의 존재로 유기성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저는 그렇게 많이 거슬리진 않았습니다 - 그다지 통일된 서사를 가질 필요 없는 앨범이거니와, Side A / B 구성을 의도한 거라면 깔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오히려 그 두 곡에 관해 갸우뚱한 점은 트랙리스트 내 배치보다는, 이미 싱잉 랩으로 자리매김한 ASH ISLAND가 굳이 열심히 랩한 곡을 실을 필요가 있는가 였습니다. 특히 "Checks"는 심플한 훅만 부르고 피쳐링진이 다 해먹은 단체곡이었죠 - TOIL 앨범에 들어갈 것이 잘못 온 건가 싶더군요. 전 "그랑프리"에서의 ASH ISLAND 랩도 꽤 잘 했다고 생각하지만, 요런 걸 넣어줄 거면 차라리 랩곡을 한두 곡 더 실어 밸런스를 맞췄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그랬다면 너무 크기만 크고 산만한 앨범이라고 논하고 있었을까요?


 예상만큼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저에게는 "ISLAND"는 충분히 ASH ISLAND의 매력을 확장시키고 발전시킨 준수한 후속작이라 생각합니다. 멜로디나 가사가 흔한 티를 다 벗진 못한 것은 추후 개선의 여지가 있어보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씬 안에서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괜찮은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좀 더 자주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군요.



(10) 안병웅 - Batanga! (S. alt' C. oke A. nd T. equila) (2021.3.6)


 "Bartoon: 24"가 좋지 않은 여론만 남긴지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는 "Bartoon: 24"이 불호를 이끌어낼 요소를 갖고 있었던 건 인정하지만 당시 인터뷰로 인해 필요 이상으로 과소평가된 면이 있었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그가 쇼미 8에서 보여준 모습을 대부분 잘 재현했었다는 거겠죠. 시간이 지나 인터뷰에 대한 기억이 옅어지고 다시 그의 실력에 대해 조금 더 객관적인 태도를 갖출 수 있을 것 같을즈음, 새 EP "Batanga!"가 나왔습니다.


 "Batanga!"는 "Bartoon: 24"에서 보여준 붐뱁 스타일을 계승하면서 당시 받았던 단점을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엿보이는 앨범입니다. 가장 크게 지적받았던 가사가 좀 더 정돈되고 흐름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저번 가사를 엄청 싫어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대로였다면 내용 전달이 안 되어 디스곡을 쓰기 어렵지 않았을까...). "Walkin' Down the Street"나 "Sinner"에서는 좀 더 꽉 찬 발성으로 비트를 채우는 모습이 확인되며, 전체적으로 사운드가 명확해져 저번의 먹먹한 소리에 비해 훨씬 짱짱해졌습니다. 비트도 다소 감흥이 애매했던 전작에 비해 재지한 느낌을 살려 그가 표방하려 한 스타일을 잘 그려내주는 듯합니다.


 이렇게 문제점을 개선시켰으니 분명 "Bartoon: 24"보다 많이 좋아야할텐데, 저는 왠지 여러 번 돌려봐도 쉽게 애정이 가지 않았습니다. 왠지 저는 안병웅 스타일에 벌써 질려버린 것 같습니다. "Bartoon: 24" 얘기할 때도 얘기한 거지만, 그가 보여주려는 붐뱁 스타일에 그의 발음과 억양은 왠지 코드가 맞지 않습니다 - 저는 붐뱁은 직선적으로 때리는 맛이라 생각하고, 그는 계속 발음을 흘려 흐리멍텅한 바이브를 만들거든요. 또한 고질적인 플로우 패턴 (왜 그렇게 'ㅐ' 라임을 좋아하는지 모르겠군요)과, 그걸 벗어나려고 하자마자 뚜렷한 개성 없어지는 랩 디자인이 자꾸 걸립니다. 그리고 싱잉. 앨범 소개글에서는 새로운 시도처럼 적어놨지만 사실 여러 번 보여줬던 싱잉 랩, 매번 비트랑 불협화음인 건 제가 놓치고 있는 숨은 뜻이 있는 걸까요?


 객관적으론 좋아진 점들이 보이면서도 돌릴수록 찜찜한 부분이 계속 거슬렸던 앨범입니다. 안정감 있게 듣기엔 뭔가 특정 부분만 지나치게 큰 불균형한 음악을 듣는 것 같았어요. 안병웅이 처음 쇼미에 등장했을 때 그의 플로우를 매우 신선하게 보는 시선이 많았지만, 그의 개성은 너무 확고했고 생각보다 빠르게 빛바랜 듯합니다. 물론, 그 개성과 코드가 맞는 누군가는 "Batanga!"에서 한 단계 발전한 그를 즐겁게 맞이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저는 왠지 중요한 게 빠진 속빈 업데이트 같군요. 처음 그를 알았을 때의 포텐을 다시 한 번 만끽할 수 있는 날이 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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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3-12 11:14:03

Jayko님은 옛날에 쿠기 coogie 앨범이랑 IM 컴필 Work Out에 참여하셨던 P#00000님이셔요

제레미퀘스트님이랑 할때는 praiseme로 활동하셨던거로 기억해요

WR
2021-03-12 11:57:39

안그래도 오늘 릴구압 님 인터뷰 보다 알게 됐어요 식스제로 님이셨구나~~

2021-03-17 17:49:18

와우.. 댄스디님 아직 활동 하시는군요.... 대단하십니다.

한창 제가 힙플에서 활동할 당시엔 (약..14~15년 전) 대학생이셨던거 같은데, 

군의관이 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오랜만에 들어와 봤다가 반가운 아이디 보고는 눈치없이 댓글 답니다. 

그 당시 아이디는 아닙니다. 탈퇴 하기도 했고 그때의 철없고 오그라들던 글과 댓글들을 생각하면 

부끄러워 숨고 싶거든욬ㅋㅋㅋㅋ

쨌든 건승하십시오. 항상 응원 하겠습니다.

WR
2021-03-19 02:22:37

그 군의관도 이제 끝나갑니다ㅎㅎ 반갑습니다~~

 
24-03-22
 
2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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