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126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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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4 00:27:06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마지막 후기글도 여기다가 쓸까 했지만, 그러면 글이 너무너무 길어져서 인스타 링크로 대체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p/COAxozmp80K/?utm_source=ig_web_copy_link

그러나 고백하자면, 제 마음 속의 밀.감.싹. 본진은 늘 힙플이었습니다. 믿지 못하시겠다고요? 헿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unofficialboyy & HAIFHAIF - 그물,덫,발사대기,포획 (2021.4.12)


 가만 보면 unofficialboyy도 참 한 우물을 파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욕하는 거 아니에요;). 뭔가를 내놓을 때마다 unofficialboyy의 음악 색깔은 바뀌어있었고, 적응될만 하면 또 다른 것이 등장하곤 했습니다. 전작 "drugonline" 역시 그의 새로운 모습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이번 앨범은 (그나마 "D.O.G." 컴필의 연장선이라고는 할 수 있는) 또 다릅니다.


 저는 HAIFHAIF란 비트메이커를 Lo Volf와의 콜라보 앨범으로 처음 알게 되어서 트랩 전용 비트메이커란 인상이 강하고, 그때문에 이번 앨범이 트랩 느낌이 강하게 풍길 줄 알았습니다. 대신 이 앨범은, 앨범 소개글에 적혀있는 대로 '청자들의 일상에 조금 더 쉽고 편안히 다가갈' 수 있는 장르라면 전부 조금씩 포함시켰습니다. 때문에 "drugonline"의 요란한 글리치 느낌이나 "unofficialboyy EP"의 trippy함 같은 매니악한 바이브는 배어나오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초창기 붐뱁을 하던 시절의 그와 제일 가까운 것 같습니다.


 곳곳에 스며있는 올드 스쿨 바이브가 재밌습니다. 자켓부터 그 시대에 대한 오마주가 느껴지고, "돈내"의 비트박스나 "누가왔게"의 1TYM 레퍼런스도 같은 맥락입니다. 말했듯이 붐뱁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요근래 그가 보여준 것 중 제일 담백한 랩과 사운드를 담은 트랙들은 뭐가 됐든 파격에 대한 욕심은 없게 들립니다. 이를 이어받는 것이 "mmm"이나 "Unofficialboyy Pt.2" 같은 댄서블한 비트이고, 후반부의 노래 부른 곡들로 이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unofficialboyy가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를거란 걸 예상치 못했고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단순히 옛날 느낌을 자아낸 걸로는 심심할 수 있습니다. 역시 여기에 개성적인 색깔을 더해주는 것은 unofficialboyy의 하이톤에 살짝 걸쳐 웅얼거리는듯한 플로우입니다 - 이 톤은 적어도 올드 스쿨 힙합엔 없던 것이죠. 그리고 이런 보이스 컬러가 의외로 노래에서 잘 먹힙니다. 특히 '웅얼거림'이었던 발성이 "?X3"이나 "잿더미"에서 묘하게 울컥하는 느낌으로 변화합니다. trippy의 정반대인 사운드와 trippy의 결정체인 피지컬의 조합이 만드는 예측 불가의 결과물입니다.


 이제는 unofficialboyy가 터치하지 않은 장르가 뭔지 세는게 더 빠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다양한 걸 하면서도 그는 고유의 느낌을 유지하면서 모든 음악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 붐뱁을 했다고 땜핑을 세게 때리지도 않고, 댄스곡을 했다고 화사하게 노래한 것도 아니듯이요. 과거 앨범들은 워낙 그런 그만의 색깔이 진하여 퀄리티와 별개로 접근성이 떨어졌다면 이번 앨범은 그런 장벽 없이 유쾌하고 편하게 unofficialboyy를 즐길 수 있습니다. 그 다양한 스타일에 하나하나 맞는 비트를 만들어준 HAIFHAIF의 능력도 기억해둬야겠습니다.



(2) Owen - P.O.E.M. III (2021.4.13)


 이미 노래를 듣기 전부터 "P.O.E.M. III"에 주목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Owen의 제일 유명한 앨범인 "P.O.E.M."의 세 번째 작품이며, 그 "P.O.E.M."을 연상시키는 The Quiett의 비중 있는 참여, 그리고 MKIT RAIN이 "UNCUTPOINT"로 사실상 변경된 후 Warner Music의 자회사로 편입된 후 나오는 작품... 이 사건을 전후로 생겼던 Owen의 마리화나 흡연 사건과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SNS 활동까지, 흥미로운 배경 속에 앨범이 나왔습니다.


 "P.O.E.M."은 Owen의 앨범 중 가장 유명하면서도 지금과는 많이 다릅니다. 사람들은 "P.O.E.M."의 이름을 단 앨범이 나올 때 그 과거의 모습을 재현해주길 바라지만, Owen의 랩은 은근히 많이 변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대략 "P.O.E.M. II"부터 그 변화가 본격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변화의 핵심은 랩이 건조해지고 텁텁해진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이 변화는 "P.O.E.M."의 다채로운 커버와 "P.O.E.M. II"의 시커먼 커버의 대비되는 색깔 배치가 훌륭히 상징적으로 대비시켜줍니다. 


 "P.O.E.M. III"에서도 Owen은 이 변화의 선상에서 더 나아갔습니다. 언젠가 그는 "Smile" 때부터 프리스타일로 가사를 쓰는 걸 연습 중이라고 했는데, 이 변화는 가사가 아니라 플로우에서 제일 드러납니다. 이번 앨범에 차용한 비트는 올드하게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고전적인 붐뱁 문법을 차용한, 샘플 루프의 느낌이 다분한 정직한 비트들이고, 대개 이 비트를 타는 법은 강박적인 정박 리듬과 규칙적인 댐핑에 기반을 둡니다. 허나 본 앨범 랩의 리듬감은 대체로 비트의 박자보다 앞서가는 느낌이며, 같은 톤으로 장황하게 늘어놓는 타입이라 댐핑이 살지도 않습니다. 클래식한 느낌을 위시한 것 같지만, 실제 랩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Owen의 음악 중 이 부분이 상당히 괴리감을 줬던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포인트가 많지 않고, 분위기를 환기시켜야할 싱잉이나 훅도 그저 그 건조함에 묻혀 흘러가는 것만 같습니다.


 저의 "P.O.E.M. III"에 대한, 혹은 요근래 Owen 음악에 대한 감상은 이걸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다만 덧붙여 "P.O.E.M. III"의 특징이라면 일련의 사건의 영향을 받아 더더욱 화가 난 Owen의 가사를 들 수 있겠군요. 결코 긍정적일 수 없는 변화를 겪은 MKIT RAIN에 대한 회고, 마리화나에 대한 생각, 그리고 본인과 대치되는 사고를 가진 이들을 향한 날카로운 공격 등등. 어느때보다 '스뜨감'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앨범입니다. 생각에 동의하고 말고를 떠나, 저는 이런 주장들이 음악적으로 더 뚜렷했으면 설득력이 더 컸을 거라 생각하는데, 윗문단에서 얘기한 이유로 그러지 못하게 느껴져서 아쉬웠습니다.


 어쩌면 감상 포인트를 제가 아직 못 잡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Owen의 음악은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으니까요. 약간은 Swings와 비슷한 느낌이 납니다 - 저는 Swings가 음악에서 '투머치 토커' 기질을 숨기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프로덕션 등 다른 부분이 많이 차이나지만 오직 랩에 대한 생각은 Owen과 유사합니다. Ovadoz를 떼어서 그런가 추측을 하기엔, 이번 앨범의 메세지는 완전 Ovadoz였습니다. 그래서 고백하자면, 저는 그가 준비해놨다는 두세 개의 앨범이 크게 기대되진 않습니다. 허나 개인적 소회와 별개로 자신만의 스타일 완성에 거의 다다른 것으로 보이는 그의 씬 안의 위치는 부정할 수 없다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저 또한 알맞는 감상법을 찾고 설득되길 바라봅니다.



(3) Dvwn - it's not your fault (2021.4.14)


 Dvwn이란 이름을 KOZ Entertainment에 합류하면서, 다시 말해 ZICO의 픽을 받으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비록 2018년에도 EP를 낸 바 있고 그전부터 사운드클라우드로 곡을 발표하면서 2차적으로 ZICO의 주목을 받은 거지만, 저 역시도 그가 KOZ에 합류한 2019년에 처음으로 이름을 들어본 사람입니다.


 그동안 "새벽 제세동" 시리즈를 비롯해 발표해온 싱글들을 통해 Dvwn은 본인의 음악 세계를 펼쳐왔고, 이번 EP에는 그게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ZICO가 공익 복무 중이 아니었다면 달라지는 점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러기 전부터도 Dvwn은 개입 없이 본인의 색깔을 전시해왔었습니다. 이는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와 음색, 일반적인 소재 선정에 대한 독특한 표현 정도로 대변할 수 있겠으며, 이번 앨범은 특히 m/n을 비롯한 여러 프로듀서들의 웅장한 반주가 이와 잘 어울렸습니다. 


 특유의 처연한 톤 (저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Crush가 강하게 연상되었습니다) 때문에 곡들이 마냥 우울하진 않지만 모든 곡은 기본적으로 쓸쓸한 느낌이 들고, "호스텔" 같은 곡은 히피는 집시였다 같은 무게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BADKID!!!"에서 보이는 이펙트의 활용도 꽤 어울립니다. 편하게 들을 수 있지만 깊은 이면을 숨긴 앨범이라는 설명이 어울릴법한 EP "it's not your fault"였습니다.



(4) xs - don talk (2021.4.17)


 MUNCHMAN과의 합작 앨범과 단 6일의 차이를 두고 나온 xs aka 이기욱의 솔로 EP입니다. MUNCHMAN과 냈던 "yessirskii"가 MUNCHMAN에 맞춰준 느낌이 다분했기 때문에 솔로 앨범은 어떤 색깔일까 했는데, 그전에 나온 kitsyojii, Mac Kidd와의 콜라보 앨범과 느낌이 비슷했습니다. 자세히 풀어보면 단순해빠진 트랩 비트 위 단순한 리듬을 가진 플로우를 근간으로, 독특한 톤과 유머러스한 가사 표현이 주는 중독성을 주 무기로 내세운 트랩이라고 설명할 수 있으려나요.


 "don talk"를 즐기려면 우선 xs의 톤에 적응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입니다. xs의 째지는 하이톤은 개성적이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 인위적이게 들릴 여지가 있어보입니다 - 대개의 경우는 그러지 않을 정도의 적정선을 지키지만요. 두 번째는 위에서 말한 '단순한 리듬'입니다. 저는 솔직히 그의 목소리가 가진 그루브감을 낭비한 게 아닌가 아쉽더군요. 특히 첫 트랙 "don talk"는 훅도 없이 2분 30초 내내 랩을 이어가는데 목소리가 가진 힘만으로 이어가기엔 너무 긴 길이입니다. 간간히 쫄깃하게 이어가는 플로우가 들릴 때마다 더욱 아깝습니다.


 마지막으로는 "yessirskii"에서 보여준 다양한 스타일에 대비되는 단면적인 앨범 스타일입니다. 사실 앨범 규모가 달랐고, 솔로 앨범이니 자기가 제일 좋아하고 잘 하는 걸 택했겠지만, "yessirskii"에 담긴 스타일 다 곧잘 해냈기 때문에 스펙트럼을 억지로 축소시킨 것만 같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 앨범을 먼저 들었다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을 단점인 거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xs는 연이은 앨범의 발표로 쇼미 후의 활동을 잘 이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초장을 잘 열었으니 어디까지 커질지 지켜봐야겠습니다.



(5) J'Kyun & Marco - Cats, Coffee & Synthesizer (2021.4.19)


 J'Kyun과 Marco의 조합은 역사가 깊습니다 - 당장 J'Kyun의 데뷔는 당시 Marco가 이끌던 크루 "Diamond Tribe"를 통해서였죠. 그럼에도 둘이 콜라보 앨범을 냈다고 했을 때 저는 살짝 우려되었습니다. Marco는 두 번째 정규 앨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솔로 앨범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 후 대중 작곡가로 전업하였으며, J'Kyun은 전작 "Things Get Ugly"가 적잖이 말랑했으니, 꽤 대중적인 색채로 나올 거란 생각에서였죠.


 결론적으로 "Cats, Coffee & Synthesizer"를 '대중적'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폄하에 가깝습니다. Marco의 비트를 듣는 건 정말 오랜만인데 (물론 그 사이 제가 들은 가요 중에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신스 음들을 디테일하게 조율하여 짜놓은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챱핑된 듯한 독특한 끊어짐이나 패닝 등 다양한 이펙트로 장식된 신스와, 그 옆에 위치해 메인 비트를 장식해주는 여러 악기들이 전체적인 사운드를 참 예쁘게 꾸몄습니다.


 J'Kyun은 예의 차분하고 그루비한 랩을 이 위에 선보입니다. 흔히 J'Kyun의 전성기를 "RE:Birthday"로 얘기하곤 하는데, 저는 이번 앨범에서의 랩이 더 수준이 높았다고 생각합니다. 랩적으로도 가사적으로도 J'Kyun은 성숙해졌습니다. 한 가지, 마지막 트랙은 "Things Get Ugly" 때 같은 느긋함을 내세운 곡인데 이게 저는 J'Kyun의 기준에서 '대중적'인 곡이었다 생각했고, 앨범 중에선 제일 덜 참신한 곡으로 마무리가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단지 이 앨범을 J'Kyun의 최고의 앨범으로 꼽을 수 없는 이유는 규모가 작은 EP이기도 하고, 이제 막 J'Kyun으로 복귀한 그가 보여줄 것이 많이 남았을 거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Cox Billy로써의 활동이 의미가 없거나 오점만 남겼다고 생각하긴 싫지만, 당시의 기록 때문에 이 앨범이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적어도 현재로써는 그는 노이즈를 거두었으니 여러분도 노이즈를 걷고 들어본다면 연륜을 유감 없이 발휘한 두 아티스트의 음악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보너스 페이지~~~

이제 들을 시간 없는데 갑자기 앨범이 쏟아져 나와서, 딱 한 번만 듣고 적어보는 감상들

 

* 키겐 - 좀 더 영원한 걸 원해 (2021.4.12)

 첫 트랙을 제외하곤 전부 인스트루멘털. 뉴에이지나 일본 인스트루멘탈 듣는 것 같은 편안함 위주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제외). 저번 앨범 때도 생각했지만 이런 이지 리스닝 스타일의 비트 잘 찍는듯.


* Skull - WHOO (2021.4.12)

 스컬다운 곡들. "WHOO" 같은 센 게 끌린다. 사실 레게를 하나도 모르니까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음 - 나의 귀엔 '준수한 레게곡'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는...ㅠㅠ


* COLDCANDY - 궤도이탈 (2021.4.13)

 seeherwave의 순한 맛과는 살짝 다른 무거운 맛. 톱니가 등에 박힌 자켓처럼 어두운 얘기로 시작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긍정적인 얘기가 등장. 살짝 톤이 꾸밈이 필요한듯. 리버브랑 이펙트로 공간감 넣고 겹친 부분들은 좋았는데 이게 그냥 톤으로 랩하는 거랑 괴리가 생겼었음. 멜로디나 내용은 좋았음.


* gong - Tomorrow (2021.4.14)

 Radiohead를 연상시키는 마지막 트랙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전작 "염증나무"의 연장선인 걸걸하고 구수한 감성의 노래 - 개인적으로 오토튠은 이런 결에 잘 안 묻는다고 생각. 다만 "내일의 숙취" OST와 살짝 닮아있는 "Tomorrow" 정도는 다르다고 할만할지도.


* yovng trucker - yatch out (2021.4.15)

 전작들과 얼추 비슷하지만 왠지 모르게 발음이 더 명확해진 느낌이라 애매한 바이브가 준 것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콸라의 예토전생은 반갑다.


* VIMOKA - 합리화 (RATIONALIZATION) (2021.4.15)

 Zan Dark이던 시절에 좀 들어보다가 최근 DJ Wreckx 앨범으로 다시 만난 아티스트. 딱 잡힌 중후한 톤과 인도, 아랍 풍의 샘플로 일관된 무드 (Mild Beats 비트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합리화'란 단어로 풀어낸 본인의 확고한 힙합 열정 등은 좋은 부분이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이렇게 설계해둔 것들이 대체로 무너지는 편. 특이한 비트를 매끄럽게 타기에 다소 투박한 플로우도 아쉬움.


* 안경잽이 - 너무했다 (2021.4.17)

 어느 면으로는 평범한 이모 힙합 앨범이지만 확실히 전작 ("너무 멋져")에 비해선, 스타일의 변화를 제외하고라도 전체적으로 발전이 보이는 앨범. 마냥 진부한 이모 힙합만 있다기엔 "To. Me"나 "해야 할 말" 같은 '찡한' 곡도 나름 잘 소화하고 멜로디 및 랩 메이킹이 나쁘지 않음.


* X.Q. & El Rune - Emotion Vaccine (2021.4.18)

 찐한 R&B 느낌을 내고자 했던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둘의 목소리가 가진 힘이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음. "MOVE" 같은 전자음이나 "슥" 같은 힘을 뺀 노래가 좀 더 어울리게 들렸음.


* Slyme Young & N.O.A.T. Beats - Lovesick Boys (2021.4.19)

 솔직히 말해 지적할 곳 찾기가 어려운 음악. 그럼에도 아직 Slyme Young의 특징이 뭔지 말하기가 어렵다. 무난무난한 비트와 주제, 표현 등 모든게 무난무난하기에 그런지도.


* VINXEN - Manta Bipolar Pt.2 (2021.4.20)

 물 오른 VINXEN의 멜로디 메이킹 능력과 감성 컨트롤이, "유사인간" 때만큼 거창하지는 않게 수수한 색깔로 배인 앨범. 호불호는 있겠지만 VINXEN도 나름 장르화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곡이 20곡 (리바이벌 곡 5곡 포함이긴 함). 20곡 내내 즐거울 정도로 다양한 표현 방법을 갖고 있진 않은듯.


* zzuno だいすき! - Plug Tour Lif3 (2021.4.20)

 분명 STAREX 쪽 부류인거 같은데 진부함이 덜 느껴져서 좋음. 랩이 꽤 촘촘한데도 질리지 않는 멜로디 메이킹과 오토튠 과하게 쓰지 않는 부담 없는 톤 탓인가. 짧아서 임팩트 적은거랑 완전히 클리셰를 벗지 못한게 그나마 트집 잡을 부분?


* Kapital G X Frogman - 한사바리 Pack (2021.4.20)

 일찍이 친 마리화나 앨범을 낸 적 있는 Kapital G 크루와 Frogman의 조합. 주특기인 chilling하는 랩은 그대로이고 당연하게도 마리화나 얘기지만 뻔한 표현 안 쓰는게 마음에 듬. 허나 이번에 더 끌리는건 CreDoz의 비트. 사실 "I Can Be" 비트 같은 바운스감 있는 비트까지 느긋하게 랩하는건 너무 축축 쳐지는거 아닌지.


* Yung Woody - pick up time (2021.4.20)

 자칭 예비떨쟁이를 외치며 거의 매달 뭔가를 내고 있는 Yung Woody의 믹스테입. 곡마다 외치는 대마 얘기야 뭐 그렇다치고, 상당히 dumb down된 단순무식한 랩이라 그 부분에서 취향이 맞아야하고 1분대의 곡들이 대부분이라 휘발성이 상당하다. 개인적으로 리듬파워와 어떻게 친해졌는지 궁금할 따름. 근데 본인 비트가 몇개 들어가있는데 이게 은근 느낌 있다.


* EJO - Chameleon Man (2021.4.20)

 전작이 나왔을 당시 넉살의 샤라웃에 관심이 갔지만 기묘한 분위기에 감상을 접었던 아티스트였다. "Chameleon Man"은 그런 기묘함은 없지만 여전히 독특하다. 지극히 단순한 루프와 조용한 읊조림 사이사이 명상을 권고하는 듯한 바이브는 어떤 면으로는 올드 스쿨 같고 어떤 면으로는 힙합 아닌 무언가 같기도. 고전적인 힙합에 대한 기준에서는 지루하고 따분할 수 있으며 가사의 95%가 영어라는 점도 주의할 점.


* FELIX DA RAIN - ROSE (2021.4.20)

 앨범 몇 번 다룰 때마다 결국 같은 얘기들. 경쾌하고 파워풀한 분위기의 비트와 묘한 불협화음인 욕설 가득한 가사 등등. 호불호 포인트는 이 욕설과, 여전히 불청객으로 느껴지는 오토튠. 허슬하는 뮤지션들이 으레 그렇듯 크게 보면 결국 비슷비슷한 음악들. 앨범마다 신나는 것과 센티멘탈한 것의 비율도 비슷하게 잡는거 같은데?


* PENOMECO - Dry Flower (2021.4.20)

 가왕전까지 갔다온 PENOMECO는 명실상부 보컬이다. 멜로디 메이킹 능력을 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곡들은 수려하게 잘 빠져있고, 실력파 프로듀서진이 대거 참여한 까닭이기도 하다. 다만, 'dry'가 컨셉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을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PENOMECO의 가늘게 뻗던 목소리가 대거 사라졌거나 잘 살지 않는 노래들이 실렸다. 좋은 노래들이긴 하지만 PENOMECO의 음악으로썬 잘 와닿진 않는다.


* Moldy & Sylarbomb - Sci-Fi Short Film (2021.4.21)

 기억이 부정확할지 몰라도 원래 요란하고 정돈 안되고 정신없이 난사하는 랩으로 기억하는데 ("Hack a Web"이 제일 근접한듯), 이번 앨범은 은근 그루브가 있다. 물론 고전적인 그루브를 느끼기엔 Sylarbomb 및 리믹스로 참여한 비트메이커들의 비트가 가만 두지 않지만.. (애초에 리믹스들은 랩보다는 전자음악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조금 쉽게 풀어준 느낌?


* MILLHAM - BALANCE (2021.4.21)

 STAREX의 trippy함 라인 MILLHAM. Icey Blouie가 떠난 빈 자리를 지키는 듯한 몽롱한 느낌. 허나 Icey Blouie랑 비교하기엔 나름 각 잡힌 데도 있다 - 특히 군데군데 라임이 꽤 치밀한 부분이... 그런 느낌 때문에, 본능적인 음악이지만 "It Was All a Dream" 같은 딥한 감성도 조금 있다. 허나 결론적으로 내 취향은 아님.


* AP X Freaky - 4 (2021.4.21)

 Freaky가 누군가 했더니 24 Freaky였고, 그랬더니 앨범 분위기가 이해되었다. 24 Flakko (현 Xbf)가 하던 딥한 분위기의 음악이 전체적으로 흘러가고, AP 역시 음악에 잘 어울리기는 하다. 허나 전체적으로는 뻔한 사운드 같은 느낌... 특별히 언급할 부분이 많진 않다.


* 김미정 (yourbeagle) - yours (2021.4.21)

 김미정 앨범은 늘 글을 쓰려다가 관두곤 했는데, 이유는 묘하게 힙합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 YonYon 같은 케이스랄까. 여튼 그래도 음악을 쭉 들어온 입장에선 톤이 좀 더 매력적으로 변한듯. 그동안 뻔한 느낌이 심했었는데, 그래도 이번엔 완전히 특별하진 않아도 전반적으로 흡입력이 느껴진다. 여전히 내 생각 속 힙합은 아니지만, 뭐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는 아닐지도.

 

 

그리고 마지막 앨범... 두구두구...?

 


(?) .1 - THE GR8F8 (2021.4.22)

    .1 - THE GR8W8 (2021.4.22)


 간간히 예고해왔듯 저는 이제 본업으로 돌아가면서 힙합과 관련하여 하던 활동을 대부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1이란 이름의 래퍼로 이어오던 취미활동도 마찬가지로, 이 앨범은 말하자면 은퇴 앨범입니다. 처음엔 이렇게 규모가 커질 예정은 아니었지만, 마지막이니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고, 그외에 예전에 쓴 가사 중 버리기 아까운 것도 있고... 모으고 모으다보니 한 장의 앨범으론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두 개의 앨범으로 쪼갰습니다. 그래서 전곡 신곡에 훨씬 공을 들인 "THE GR8F8", 그리고 신곡도 좀 있지만 과거 가사 재탕을 하는 것이 중심이 된 (MR도 mp3가 많음) "THE GR8W8" 각각 15곡이 탄생했습니다.


 제 랩을 진지하게 들어본 분은 별로 없을 거라 생각되지만, 지금까지 써왔던 글을 많이 읽어보신 분이라면 얼추 제 취향이 뭔지 감이 잡힐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대략 2000년대 초중반 한국 힙합에서 유행하던 스타일의 팬으로, 가사에 제 얘기를 하는 것을 무척 중요시했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보니 쓰다보면 어느새 벌스 3의 16번째 마디를 넘기고 있던 터라 빈자리 마련이 어려워서 생각보다 피쳐링을 많이 못 썼을 정도입니다.


 믹마해준 FWRYEYE가 이 시리즈로 스스로의 앨범 까는 걸 기대한다고 했는데, 제 음악의 단점은 아주 극명합니다. 듣는 재미가 별로 없다는 점이죠. 특색 없고 무난무난한 톤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늘 컴플렉스였고, 만들어보려고도 했지만 억지로 만들려니 안 그래도 안 되는 랩이 더 안 되더군요. 거기다 메세지에 치중하다보니 곡 설계 자체가 별 재미가 없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이를테면 "GR8F8"의 "Liar's Excuse" "The Great Fate" 같은 경우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메세지 치중한 것이 청각적 쾌감을 포기하는 핑계는 될 수 없다고 어느 앨범 감상글에서 쓴 적 있는데, 저도 같은 잘못을 반복했습니다. 그 외에 듣는 귀가 섬세하지 못하다보니 믹싱/마스터링 같은 사운드 작업에서 모니터링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사운드 이상하게 들리면 엔지니어 FWRYEYE 탓이 아니라 적당한 피드백을 못 준 제 탓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언제나 앨범을 낼 때마다 제 랩이 늘었다고 자평하였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이번에는 은근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했습니다. 여기저기 들어간 싱잉 랩적인 요소나 "아름답지 못한"에서 아예 노래를 부른 부분도 그렇고, 평소에 타던 90대 BPM이 의외로 별로 없었습니다. 아, 아까 말했듯 "THE GR8W8"은 옛날 가사 재탕이라서 예외입니다. 그냥 옛날 꺼 그대로에요 거긴.


 한국 힙합 그렇게 많이 들어놓고 제 앨범이 개쩐다 라고 얘기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객관적으로 어디에서 까이고 어디에서 욕을 먹어야할지 거의 정확히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번 제 두 앨범이 너무 자랑스럽고 작업 기간이 즐거웠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스케줄 꼬였을 때 빼고). 혹여라도 앨범에 호기심이 동하여 듣는 분들이 있다면 나쁘지 않은 경험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THE GR8F8

https://soundcloud.com/danced-1/sets/the-gr8f8

 

THE GR8W8

https://soundcloud.com/danced-1/sets/the-gr8w8 


5
Comments
2021-04-24 09:52:28

완결 ㄷㄷ

2021-04-24 09:53:36

공개곡도 잘들을게요 ㅋㅋㅋㅋㅋ
본업도 파이팅

WR
2021-04-26 22:20:16

감사합니다ㅎㅎ

Updated at 2021-04-24 12:16:29

진짜 몇년동안 즐겁게 읽었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느 정도 여유 생겼을 때 시즌 2로 돌아와주세요 제에바아아아아알~~~~~~~~~~~

WR
2021-04-26 22:20:35

쟈이즈 님 병맛 넘치는 진지한(?) 리뷰로 제가 없는 이곳을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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