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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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30 17:11:15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저번에 전역일을 4월 16일이라고 썼던데, 4월 8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4월은 DanceD로 지내는 마지막 달이기도 합니다.

4월 16일에 해석 중단, 4월 23일에 밀.감.싹 시리즈 중단입니다.

인생 3막의 시작이 가까워지고 있네요... 묘한 기분입니다.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권기백 - 보라타운 (2021.3.13)

    권기백 - 보라타운 [번외편] (2021.3.13)


 비록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B-Free의 "FREE THE BEAST"를 통해 처음 알았겠지만, 권기백은 나름 More Money 크루 소속으로 2019년부터 음악 작업을 해왔습니다. 채 2년이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이 사이 그는 7개의 믹스테입을 제작했고, B-Free의 눈에 띄어 Sticky Mafia란 팀을 결성하기도 했으며, 결국 New Wave Seoul에 합류, 8번째 믹스테입 "보라타운"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되는 그의 첫 앨범이기도 합니다. 힙합엘이에서는 "보라타운"에 대한 상당한 hype이 있었고 저도 상당히 큰 기대를 가지고 앨범을 들어봤습니다.


 조금 더 찾아보면 권기백은 이 앨범 전까지는 웨스트 코스트 힙합을 표방하고 있었고, 당장 전 믹스테입인 "City of ANYANG II"를 들어봐도 지금과는 다른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랬던 그가 B-Free에게 멤피스 힙합을 소개받고 지금과 같은 스타일로 곡 작업 중인 건데요. 이 스타일은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하고 거친 맛을 여러 가지로 살리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역으로 곡을 부드럽게 들리게 하는 요소들은 적극적으로 배제를 하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곡에 대한 감상이 기분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밑밥을 많이 까는 것은 결국 앨범을 처음 돌렸을 때 느꼈던 당혹감을 설명하기 위한 겁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번 앨범은 Sticky Mafia의 크리스마스 앨범보다는 "FREE THE BEAST"에 가깝습니다. Sticky Mafia는 B-Free가 중화제 역할을 좀 했지만 이건 권기백 혼자 끌고 나가기 때문에 "FREE THE BEAST"에서 보았던 노빠꾸 가사가 디폴트 세팅이 되죠 - 이를 바탕으로 랩적인 기교를 빼고 그저 갈린 목소리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걸 들을 수 있습니다. 본인이 전부 프로듀싱했다는 비트는 이런 바이브를 이어나갑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악기 및 갖가지 샘플이 곡의 여기저기 좌와 우로 나뉘어 난무하며, 메인 샘플을 큰 가공 없이 드럼 위에 올린 구조가 위태롭습니다. 고백하자면, '조잡하다'는 게 첫인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 앨범에 열광했던 이유는, 이 모든 특징들이 이번 권기백에게 기대했던 이미지를 충족시키기 때문일 것입니다. 위에서 말했듯 권기백이 요즘 하고 있는 힙합은 예쁘고 아름답게 들리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이 앨범 어디에서도 단맛을 느낄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가 연출하는 쇼에 임하면, 재밌는 요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곳곳에 숨어있는 옛 음악에 대한 오마주 ("YEAH HOE!"나 "교향곡" 같은 노골적인 샘플...), 모범적인 'mob shit'인 난폭한 단체곡, "친절한 금자씨"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같은 가사 센스 등. 특히 "내 사랑 내 곁에"는 곡의 컨셉부터 결과물까지 모든게 흥미로웠습니다. "보라타운"은 동명의 곡으로 권기백이 설정한 세계관을 잘 요약하며 끝을 맺습니다.


 어린 나이는 관심을 끄는 요소이지만 현재 상황에선 장점도 단점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 어쨌든 보여준 걸로 냉정하게 비교를 하는게 맞을 거 같아서요. 그리고 그 태그를 빼더라도 프로듀싱, 엔지니어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탄탄한 컨셉의 앨범을 부지런히 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취향에 맞는 사람들이 hype을 일으키는 것이 십분 이해가 갑니다. 다만 저처럼 취향에 안 맞는 사람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앨범입니다 - 그냥 너무 텁텁한 맛이었어요. 대신 저는 지펑크로 준비하고 있다는 다음 앨범에서 놀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뛰어난 능력과 열정이 새로운 레이블의 품에서 더더욱 꽃 피길 바랍니다.


PS [번외편]에 대한 얘기를 거의 안 했는데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비슷한 대신 정말 번외란 표현이 어울리는 곡들이 수록되어있습니다 - 뭔가 믹스테입의 믹스테입 같은 raw함이랄까... "보라타운"을 들은 다음 들어야 제대로 감상 가능한 앨범 같습니다.



(2) Kimchidope - BETTER NOW, BETTER PLACE 2 (2021.3.15)


 작년 여름 발표되었던 Kimchidope의 "Lose Control"과 "Twisted Emotion"은 (왠지 모르게 전자는 음원 사이트에서 내려가있네요), 2주의 간격을 두고 발표된 두 장의 정규라는 놀라운 사실을 제외하고도 Kimchidope의 스타일이 변화한 시점이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저 역시 Kimchidope를 처음부터 들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1년여 간 들은 그의 노래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오토튠이 껴있지만, 기계음을 뚫고 나오는 R&B스러운 절절한 감성이 매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정규 앨범에서는 이런 절절함이 다듬어져 나왔죠 - 좋게 말하면 몽환적으로, 나쁘게 말하면 반복적으로요.


 "BETTER NOW, BETTER PLACE"는 2년 전에 나온 앨범으로 공교롭게도 제가 처음 Kimchidope를 들은 앨범입니다. 그 후속작을 자처하는 본작은 위에서 말한 변화를 그대로 이어받은 앨범입니다. 그리고 저는 Kimchidope가 보여준 변화의 방향을 아직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그의 랩은 오토튠이 과하기 때문에 엥간한 탑 라인이 묻히고 감성이 흐려지는 면이 있습니다. 거기에다 발음을 흘리는 쪽으로 변화하였기 때문에 이런 바이브의 애매함은 더 악화됩니다. 전개되는 멜로디 폭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크게 인상적인 면이 없으며, 가사적으로는 포인트가 되어야했을 부분 ("TRAMPOLINE"의 '방 뛰어' 같은..?)도 쉽게 묻힙니다. 


 이런 애매한 바이브는 비단 그의 랩 뿐만 아니라 비트와 엔지니어링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생각됩니다. 그나마 이런 스타일 치고는 한글을 애용하며 곡마다 가사에 재밌는 표현이 하나씩은 등장하는 점은 건질만합니다. 본작을 듣는 김에 오랜만에 돌려본 전작 "BETTER NOW, BETTER PLACE"는 이런 스타일의 변화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문제가 랩에만 있지 않다는 생각을 재확인시켜주는 듯합니다. 반드시 과거의 스타일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아직까지 청자의 기억에 각인되는 데에는 현재 방식은 불리한 데가 더 많아보이는군요.



(3) Minit & 123 - UP (2021.3.15)


 작년부터 활발히 나오고 있는 Minit의 개인 앨범을 살펴보면 은근히 Minit이 밀어주고 있는듯한 고정적인 출연 멤버들이 있습니다. AVOKID, Holynn, 그리고 이 "UP"을 발표한 123 등이 있죠. 이들은 거의 대부분 Minit의 바이브에 맞춰 이모 락이나 댄스 스타일의 보컬을 보여왔습니다.


 "UP"은 그런 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앨범이 시작된 후 나오는 초반 트랙들은 평소처럼 젊음의 패기로 무장한 청량감 있는 곡들입니다. 래퍼가 싱잉 랩으로 노래를 부를 때와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의 차이는 생각보다 확연하고, 123의 노래는 그런 면에서 시원시원합니다. 123의 과거 싱글들을 살펴보면 센치한 노래들을 주로 했던데, 이런 바이브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군요. Minit의 비트도 여느 클리셰적인 진행 없이 무난하게 흘러갑니다. 그런 신경 쓰이게 하는 부분이 없다면 청량감을 제공하는 건 Minit의 장기 중 하나이죠.


 뒤로 갈수록 앨범은 123의 래퍼로써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마지막 "Loveyourself Freestyle"은 완전히 랩으로 이루어져있고, 단순히 싱어가 랩을 했다고 보기엔 상당히 그루브가 잘 살아나는 랩입니다. 그러고보면 앞의 가사 표현이나 라이밍도 꽤 재밌는 부분이 많아요. 중량감 있는 두껍고 허스키한 목소리는 호불호가 갈리는 포인트가 되긴 할테지만, 그덕분에 피쳐링진들보다 상대적으로 큰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듯합니다.


 꽤 다방면으로 능력을 가진 아티스트를 알게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노래 앨범이겠지 해서 대충 들으려고 하다가 마지막 트랙에서 반전을 느꼈네요. 특히 Minit도 이런 힙합 비트를 생각보다 느낌 잘 살려서 잘 찍는군요. 소소하지만 새로운 발견의 재미가 있는 앨범이었습니다.



(4) D-HACK & Pateko - D와 PATEKOMORI (2021.3.16)


 작년 여름 "OHAYO MY NIGHT"으로 합을 맞춘 적 있는 비트메이커 Pateko와 함께 만든 D-HACK의 새 EP입니다. 전작 "D-SEKAI"에서는 조금 다르게 비춰졌던 D-HACK이 보여줬던 오타쿠 스타일의 음악이 이번 앨범에서는 다시 원래의 볼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본래 D-HACK의 음악은 신나고 발랄한 쪽이었단 걸 고려하면 차이가 있겠지만, 포인트는 '오타쿠'인 것 같습니다.


 Pateko의 비트는 힙합보다는 팝 발라드나 락을 생각나게 하는 악기 구성과 전개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너와 나의 아르카디아" 같은 곡은 일본 애니 OST를 연상시키기 충분합니다. 저는 그쪽 노래들을 설명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게 아니라 진짜 어려운;) 이유로 싫어하는지라 솔직히 말해서 이런 곡들을 들으며 오그라드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이 부분은 취향 문제이니 모두가 같은 식으로 느끼리라곤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여전히 D-HACK의 목소리 톤이 이런 비트에 이런 노래를 하는데 어울리는가는 좀 궁금합니다. 말마따나 애니 OST 톤이라면, 조금 더 깨끗하고 무난한 목소리가 어울렸을 것입니다. D-HACK의 목소리는 참 다루기 힘든 무기 같습니다. 지난번 "D-SEKAI"에서는 이게 나름의 호소력으로 승화되어 듣기 좋았는데, 그걸 제외한 앨범에선 늘 괜찮은 멜로디를 조금 껄끄럽게 바꾸곤 해왔습니다 - 제 귀에는 말이죠. 그나마 비트도 보컬도 힘을 제일 뺀 "OHAYO MY NIGHT"이 듣기 제일 쉽습니다.


 D-HACK이 하고 싶은 음악은 이제 거의 알겠지만, 본인의 스탯이 이에 이상적으로 어울리진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D-HACK은 워낙 오래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해왔고 나름대로 본인 영역도 구축해놓은 상태라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건 공허하고 뒤늦어보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영역이 있는만큼 다양한 호불호도 있기 마련이겠죠. 뭐, 탑 라인 만드는 거나 가사의 표현 같은 건 분명 나름대로의 예쁜 부분이 보입니다. 결국 "D와 PATEKOMORI"도 D-HACK 본인이 알고 있는 정답으로 만든 앨범일 따름입니다.



(5) 얼돼 - B.612 (2021.3.17)


 비평적으로 성공했던 "살아" 이후 1년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 얼돼는 산이의 FameUs Entertainment에 합류하였다가 도로 탈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1년만에 헤어지는 것의 뒷사정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얼돼의 감성을 고려하면 산이가 내세울 음악과는 안 맞을 거라고 예상되었던 바, 다시 인디펜던트로 돌아온 얼돼가 내심 반갑습니다. 그리고 "B.612"는 인디펜던트가 된 후 처음으로 나온 EP입니다.


 생각보다는 짧은 앨범입니다. 5곡 중 세 곡은 온전한 벌스가 하나뿐인 2분을 살짝 넘는 곡들이죠. 짧은 길이는 조금 아쉽지만 앨범은 그가 "살아"에서 보여줬던 감성과 표현 방식을 잘 따르고 있습니다. 그 앨범부터 (사실 그전 "콘돔"부터?) 얼돼는 랩보다 싱잉의 비중을 늘렸고 무드가 차분 (무기력이 살짝 섞여 씁쓸한)하게 변했습니다. 이 변화는 성공적이었고 저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얼돼의 깊이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죠. "B.612"도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힘든 과거를 긍정하고 미래를 향해 도약하려는 메세지를 얘기하지만 그냥 노래만 들어서는 몹시 울적합니다. 그 괴리가 전하는 미묘함이 얼돼 음악의 매력입니다.


 사운드적으로 그의 목소리는 앞뒤로 오가며 적절하게 곡을 채우고 있습니다 - 다른 말로는 코러스, 애드립의 활용이 탁월합니다. 또 다양한 톤을 가지고 있고 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면서 감정의 디테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살아"에서 저는 "지팡이"가 상당히 튄다 생각했는데 이게 톤의 차이 때문이었죠. 하지만 "B.612"에서는 훨씬 톤의 변조가 역동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전환됩니다. 이는 얼돼의 능력도 있지만, 다양한 분위기를 관통하는 무드를 잡아내는 Fredi Casso의 비트 덕이기도 합니다 - 개인적으로 Fredi Casso는 본인 앨범에서 우주로 갔다가, QM 앨범에서 하드하게 때리더니 또 이 앨범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 평온해지고 대체 사람이 어떻게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 그래놓고 또 iCOS하면 돌변하겠죠...


 개인적으로 꼽는 단점으로는 짧은 길이, 그리고 뒤의 두 트랙이 너무 쳐지는 느낌이었단 것이 있습니다 - 이건 "기억해" 같은 분위기의 노래를 더 원했던 소망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본작에서 보이는 그 특유의 센스는 후속작을 기다리게 하기 충분합니다. 인디펜던트로든 소속으로든 좋은 환경에서 좋은 작품 계속 뽑아줬으면 합니다.



(6) 사소미 - 키메라 (2021.3.17)


 사소미는 2020년 첫 싱글을 발표한 래퍼입니다 - 본인 인스타를 참고하면 그 전 해부터도 랩을 해왔던 것 같지만 확인 가능한 다른 자료는 없군요. 앨범의 참여진을 보건대 JJK 레슨생, 혹은 측근이었을 것 같은 가능성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입니다. highgel 님의 추천, JJK/kwai/김고야드/Loxx Punkman의 참여, 전작 "인셉션"과 "KICK"의 괴기스러운 아트워크 등 사소미란 아티스트에 관심을 가질 계기는 많았고, 이번에 새 EP가 나왔길래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첫인상은 kwai랑 비슷했습니다. 내리깔은 톤, 씨니컬한 가사, 기본적으로 붐뱁 리듬을 기반으로 한 로파이한 음악들... 이를 바탕으로 나머지 씬과 차별되는 본인의 태도와 목표를 설명하는 가사는 그럭저럭 짜임새가 있습니다. 쳐지는 분위기를 업은 랩도 어느 정도는 개성적인 부분이 있고요. 하지만 들으면서 아쉬운 부분들이 점차 드러났습니다. 사소미가 가지고 있는 랩의 방법론은 "LOVE"나 "ff" 같은 느릿한 음악에선 좀 어울리지만, 살짝 텐션이 가미된 앞 세 곡의 경우는 한두 군데씩 버거워보이는 데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게 의도된 건지 아닌지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 예를 들어 "홍대"에서 랩이 빨라진 건, 그런 스타일의 일률화를 비판하는 의도가 보이긴 했죠. 하지만 나머지 곡에서 템포가 올라갔을 때 박자를 절거나 숨이 차보이는 건 어떤 걸지요. 개인적으로는 몰입을 깨는 요소로 강하게 작용했습니다.


 본인이 그리고 있는 음악을 이상적으로 해내기 위해선 아직 불안정한 부분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건 대표적인 단점이었고, 힘을 빼고 랩해도 약해보이지 않도록 톤을 다졌으면 좋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본인에게 주어진 벌스를 전체적으로 지배하는 힘은 부족해보였습니다. 그래도 그냥 그런 래퍼로 잊어버리기엔, 작게나마 커리어 내내 일관적으로 보여주는 사소미만의 무드가 있습니다. 이것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출시킬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면 좋을 거 같군요.



(7) 이석구 - Eat n Vomit (2021.3.18)


 이석구는 음원 사이트 기준 2019년 말부터 결과물을 내기 시작한 아티스트입니다 - 본인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라와있는 제일 오래된 녹음물은 3년 전이지만, 또 앨범에는 8년의 세월을 언급하고 있기도 합니다. 첫 EP는 'Not Idiots'란 이름으로 나왔지만 이후부터는 계속 '이석구'란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비트메이킹에 믹싱까지 도맡아서 하는 그의 유일한 음악적 파트너는 Hwadu란 래퍼로 그와는 '넝마주이'라는 팀으로 앨범을 낸 적도 있군요. 작년 12월에 나온 "ISCARIOT"이란 앨범에 호기심이 생겨 찾다가 마침 최근 나온 앨범 "Eat n Vomit"이 있어 함께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이석구는 전곡의 랩과 프로듀싱, 믹싱/마스터링까지 혼자 다 해냈습니다. 위로 깔리는 이석구의 랩은 매우 씨니컬하고 비판적입니다. 주로는 힙합씬의 상업화, 관심의 불균형 등에 대해 얘기하는 듯하지만 구체적으로는 본인이 불만을 가졌던 것들에 대해 마구 쏟아내고 있습니다 - 말 그대로 'vomit'이죠. 첫 인트로부터 강렬하게 터뜨리며 나가는, 조소를 머금은듯한 어조 사이사이 분노를 폭발시키는 랩톤은 009나 이현준이 연상됩니다. 비트는 그의 조소를 제일 잘 서포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짜여있습니다. 사운드 면에선 좀 투박하다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만, 앨범의 테마에는 깔끔한 쪽보단 이게 더 낫다고 느낍니다.


 전작 "ISCARIOT"에 비해 비트보다 랩에 더 포커싱한 앨범입니다 - 메세지는 마찬가지로 날카롭지만 "ISCARIOT"은 워낙에 의미심장한 앨범이었긴 하죠. 확실히 전작보다 비트가 비교적 심플해졌기 때문에, "now i'm sick" 같은 플로우를 의도적으로 늘어지게 한 구간이 상대적으로 앨범을 더 쳐지게 하는 것 같긴 합니다 - "ISCARIOT"보다 곡들 길이가 대체로 짧았는데도 말이죠.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메세지에 동의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랩에서 뾰족한 말투를 즐기는 편입니다. 홀로 음악을 하기 때문에 묻히기엔 씬에서 의미 있는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아티스트라 생각합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커리어를 부스트해줄만한 사건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8) Issac Squab - 감정의 쓰레기통 Pt.1 (2021.3.19)


 이제는 팟캐스트 "매콤한 라디오"의 진행자로 제일 활발한 활동 중인 Issac Squab (이번 기회에 인스타를 보았더니 전시회 주최 같은 일도 하시는 듯...?). 2019년부터 2021년 사이의 공백이 있었지만, 올해 들어 두 장의 싱글을 발표하며 완전히 음악을 놓지는 않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감정의 쓰레기통"은 5년 전 "Dilettante" 이후로 나오는 두 번째 정규 앨범이 될 예정으로, 그중 첫번째 파트가 먼저 발표되었습니다.


 Issac Squab를 비롯한 1세대 래퍼들의 곡은 언제나 현재의 트렌드에서 얼마나 뒤쳐졌는가가 문제시되곤 합니다. 사실 BILL STAX를 제외하고는 이 문턱을 넘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뒤쳐진 스타일'이라는 것은 으레는 청각적 쾌감이나 그루브에 대한 고려 없는 투박한 랩 디자인과 톤 운용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Issac Squab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고, 현재에는 음악 활동이 메인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감정의 쓰레기통"을 벌써 폄하하기엔 이릅니다. 본작은 Issac Squab의 이별을 주제로 만든 다섯 곡이 수록되었으며, 자연스레 우울한 톤을 띄고 있습니다. 여느 컴백하는 래퍼들처럼 Issac Squab도 싱잉을 시도합니다. 다만 오토튠을 범벅하는 등 과하게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단 그저 감정의 표현을 위해 차용한 새로운 방법인 거죠. 생각보다 Issac Squab의 싱잉은 어울립니다 - 착 가라앉은 무드에 살짝 중후한 그의 목소리와 실려있는 힘겨운 감정이 분위기를 제대로 살립니다. 오히려 유일한 피쳐링으로 짧은 노래를 들려주는 The GITA보다 Issac Squab의 노래가 더 자연스럽게 들리기도 합니다.


 말했듯 "감정의 쓰레기통"도 '구식 랩 방법론'이란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앨범은 이별 후의 비애라는 뚜렷한 주제가 있고, 그 주제는 보통은 화려한 기교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대책 없이 마냥 쳐지는 앨범이라 하기엔 "Jack Honey" 같은 괜찮은 변주도 있고요. 또 가사가 생각보다 클리셰 없이 디테일하게 적혔습니다. 특히 "서른 너머의 연애" 같은 곡은 나이가 들면서 세세한 감정에 얽매이지 않게 되는 모습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상당히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뛰어난 랩 앨범으로 칭할 순 없지만 애초에 그렇게 접근할 필요가 없는 앨범입니다. 소재가 된 감정이 자세하고 안정적으로 묘사된 작품으로, 오랜만의 컴백작이란 걸 고려했을 때 그럭저럭 만족스럽습니다. 다만 이별이란 주제는 Pt. 1에서 마무리 짓지 않을까 싶은데, 이러한 랩 스타일로 나오는 Pt. 2는 어떨지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드는군요.



(9) 김모노 - 뒤죽박죽로파이 (2021.3.20)


 2021년 들어서도 김모노는 꾸준히 싱글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뒤죽박죽로파이"는 반년 정도만에 나온 앨범 단위 작업물인데, 네 곡 전곡에 IV 크루 멤버인 (걸로 추정되는...) SoBLACK, Uncommon, \olfi$h가 피쳐링으로 참여하였고, 비트는 언제나처럼 Uncommon이 전부 댔으니 4명이 만든 프로젝트 앨범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제목은 "로파이"가 들어가지만 앨범은 상당히 느긋하고 편안한 바이브를 가지고 있어서 로파이란 단어가 주는 감흥과는 사뭇 달랐던 것 같습니다. 특히 마지막 "SWIM"을 제외하면 특별한 계획 없는 날 친구들과 왁자지껄 놀고 다음날을 맞이하는 일상이 그려지는데, 여기에서 네 멤버의 우정과 편안함을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SWIM"에서 갑자기 섹슈얼한 표현들이 등장하는 건 뜬금 없었지만, 짧은 앨범이긴 해도 전체적으로 chill한 무드에 충실하게 짜놓은 앨범이라할 수 있습니다.


 다만 느긋한 곡들은 늘 쳐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왠지 이 부분에 대한 고려는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 같습니다. 4명의 멤버들이 충분히 시간을 들여 돌아가면서 랩을 하는 곡은 아무래도 일반적인 곡보다 길 수밖에 없고, 당장 첫 트랙부터 앨범은 느릿느릿하게 진행됩니다. 이것이 컨셉이었으니 어쩔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좀 더 가볍게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까 궁금하네요. 특히 김모노와 IV 크루가 이때까지 음원으로 보여준 모습들은 하드했기 때문에 더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런 유유자적한 분위기에 각 멤버들의 개성이 가려지고 옅어졌다는 점도 걸립니다.


 본인 커리어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앨범이 아닐 거라 생각되고, 이러한 무드를 감상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나쁘지 않을 수 있지만, 제가 생각하던 김모노와 IV 크루의 강점은 여기에서 찾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 사실이 아티스트에 대한 의견을 뒤집어버릴 정도는 아니겠지만..



(10) 하회 - HAHOE VISION (2021.3.22)


 "HAHOE THE NEW MASK"와는 꽤 짧은 텀을 두고 나온 새 EP입니다. 하회와 모아이 때의 하회 이미지를 벗고 솔로 아티스트로 자리 굳히기를 하려는 걸까요? 전작에서 받았던 좋은 의미로의 충격은 "HAHOE VISION"에도 거의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 아직도 그를 단순히 코믹한 싱잉 트래퍼로 기억한다면 첫 트랙 "VISION"의 시원하고 단단한 랩부터가 그런 편견을 깨줄 겁니다.


 다만 간격이 짧아서 그런지 저번 앨범과 차이는 거의 없고, 사실 저번 앨범에 비해 무난한 트랙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안동, 대마, 하회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도는 듯한 가사는 이번 앨범에서 조금 더 폭이 좁아보이고 (다만 대마에 대한 '집착'은 아직은 소수의 목소리니 더 자주, 더 크게 말해야할 필요를 느끼고 있을지도요), 한 트랙 콕 집어 "DURAG"의 랩이 여러모로 평범하기 이를데 없어 김이 빠졌습니다. 타임 킬링 용으로, 그리고 하회의 현재 모습을 확인하는 용으로 나쁘지 않지만 냉정히 말하면 "HAHOE THE NEW MASK"의 디럭스 보너스 트랙 정도로 생각되는 앨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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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3-31 16:28:00

아.. 안대... 밀감싹 시리즈는 이전부터 종료 계획을 들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잇었는대 댄스디로의 활동까지 중단하신다뇨.. 안대.. 그러지마.. 흑흑... ㅠㅠㅠㅠㅠ

WR
2021-04-03 15:41:13
2021-04-02 21:53:10
2021-04-09 10:10:17

 가지 마세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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