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107

 
3
  407
2020-11-12 15:04:51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요즘 슬슬 제대 후의 생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 말했다시피 제대와 함께 DanceD는 은퇴라서 저도 조금씩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이제 반년도 안 남아버렸네요. 후회없는 즐거운 기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Kwai - Flowering4 (2020.9.18)


 아마 많은 분들이 그랬겠지만, 리드머 리뷰를 통해 Kwai란 아티스트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Kwai의 경력을 찾으면 오직 이 앨범 하나 뿐이지만, 사운드클라우드에 들어가면 2018년에 나온 "Flowering"부터 본작까지 포함 네 장의 믹스테입이 올라와있으며, "Flowering"에서도 3년 정도 음악했단 얘기가 있는 걸 보면 제가 찾아내지 못한 과거의 흔적이 더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JJK의 레슨생이었단 얘기도 있군요.


 네 개의 연작 중 본편만 열심히 들은 상태에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착 가라앉은 로파이 감성을 토대로 Kwai는 씨니컬하고 날카로운 얘기를 풀어갑니다. 우선 톤이 상당히 잘 잡혀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완전히 처음 들어본 톤은 아닌데 누가 연상되는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네요 - Khundi Panda? Jayho? 아무튼 저공 비행을 유지하는 그의 목소리는 비트와 상당히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면서 앨범의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립니다. 발음만 두고 본다면 멈블 랩 같으면서도 라임 등 강세를 두어야할 때 스타카토를 끊듯 날카로워지는 톤 운용도 매우 숙련되어있습니다.


 이런 요소들로 만드는 무드가 "Flowering4"의 제일 큰 미덕입니다. 칙칙하고 어둡고 끈적한 분위기는 트랙마다 다른 주제에 따라 변형되지만 그 본질을 잃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Low Life" 같은 곡은 이런 톤 유지가 없었다면 우스꽝스럽고 어색한 스토리텔링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현실적으로 또 추상적으로, 체념적으로 또 공격적으로 변하는 어조가 일정한 톤 내에서 그려지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점을 잡기 어려운 앨범입니다. 제 생각에는 앞으로 자주 Kwai의 음악을 듣는다면, 이 톤을 오랫동안 접하면서 생기는 단조로움을 극복하는 것이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원체 낮게 깔려있는 톤은 분위기 형성엔 도움이 되지만, 확 끓어올라 임팩트를 주기는 쉽지 않은 편이니까요. 본작만 듣고는 그런 단점이 있다고 단언할 순 없습니다. 특히 2년 간 네 장의 연작을 꾸준히 발표한 전적을 볼 때, Kwai는 이런 고민을 우습게 만들 정도로 매끄러운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거나, 이미 찾아냈을지도 모르겠네요.



(2) Kim MONO - MONO Remastered (2020.10.23)


 쇼미더머니 시즌 9를 보면서 처음 알게 된 아티스트로, 마침 앨범이 새로 나왔길래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Kim MONO는 과거 DopeFlamingo라는 이름으로 Innovor 크루의 리더였으며, 이후 Kim MONO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는 IV Gang, Xallion Crew ('할리온 크루') 등에 속해있는 것 같습니다 (IV가 Xallion일 수도 있고...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Kim MONO의 이름으로는 작년 "The Onver"를 발표한 것이 처음인데, 이번 앨범 "MONO Remastered"는 신작이라기보다 이 "The Onver"부터 내왔던 여러 싱글들 중 다섯 곡을 추려 리마스터링을 거쳐 낸 것입니다. 마치 쇼미더머니에 나와 주목도가 올라간 김에 샘플러처럼 들어보라고 초이스해준 것 같군요 - 과거 곡부터 있다보니 그의 커리어를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많이 됩니다.


 쇼미더머니 2차에서 보여줬던 벌스는 재지한 비트에 담백한 맛이 있는 무난한 붐뱁 스타일이었지만, 이 앨범에서 보여지는 Kim MONO의 스타일은 좀 더 하드하고 무겁습니다. 특히 "The Onver"에선 Justhis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이 느껴지고, 나머지 곡들에선 영향을 어느 정도 벗었지만 요란한 비트와 공격적인 톤, 가사 등 쇼미 2차만 봐서는 예상하지 못 했던 모습들이 나옵니다. 이것이 최근에 와서 취향이 바뀐건지 아니면 쇼미 때만 그랬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사클에 올라온 음원을 보아도 약간은 이 앨범과는 노선이 다릅니다.


 랩 자체에 흠 잡을 데는 많지 않지만, 강렬한 비트에 어울리기엔 스타일이 다소 무난무난한데가 있기 때문에 가벼운 MR과의 케미가 더 좋게 들리는 거 같습니다. 이를테면 수록곡 "Okok JEJE"는 사클에 "IV 힙합전사"라는 이름으로 MR이 바뀌어 올라와있는데 조금 더 가벼운 편이라 더 잘 맞는 거 같더군요. 이외에, 무난함을 타파하기 위해 본인이 이런저런 노력을 하지만 그게 다른 래퍼를 연상시키는 점이 아쉽습니다.


 담백한 스타일이 쇼미 현장에서 먹혔던 이유는 기본기를 갖추고 있기도 하지만 여러 화려한 스타일에 대한 피로가 한몫했을 거 같습니다. 무난하다는 게 긍정적인 수식어인 경우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분명 씬에 필요한 장르이기는 하죠. 첫인상 효과인지는 몰라도 그 담백한 붐뱁에 저도 매력을 느꼈기에 억지스러운 하드함을 연출하진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 앨범은 과거 곡 모음집인만큼 앞으로 그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는 지켜봐야 알 거 같습니다.

 


(3) Baesuyong - Sing a Song, Enlighter! (2020.10.26)


 Holmes Crew의 멤버이자 과거 Silly Boot인 Baesuyong의 새 앨범입니다 - 무려 21곡이라는 엄청난 규모이죠. 전에 발표한 싱글 중 두 곡이 실려있는데, 이 중 "Since Day One"은 Silly Boot 때 냈던 곡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 굳이 Silly Boot과 Baesuyong을 딱 구분 짓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나 Baesuyong이 된 후 변한 비주얼에서 우러나는 기운 (..)처럼, 이 앨범은 묘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 명상용 힙합인가 싶을 정도로, "Sing a Song, Enlighter!"는 Baesuyong의 의식의 흐름따라 진행됩니다. 예전처럼 Rainmaker가 전곡을 맡았는데, 큰 굴곡 없이 편안하고 물 흐르는 듯 진행되고, 이 위로 얹혀지는 Baesuyong의 랩은 거의 독백에 가깝습니다. 중간중간 요가와 독서에 대한 호감을 나타내는데, 그게 참 어울린단 생각이 들을 정도로 '자연인'스러운 음악들입니다.


 이는 사실 전반부와 후반부에 두드러지고, 중후반부는 Silly Boot 때의 음악을 닮아있습니다. "Home Cuisine"과 "Really Are"가 대표적으로, 팝적인 코드나 댄스홀 리듬은 만약 그를 예전부터 체크해왔다면 익숙할만한 모습입니다. 다만 이런 곡들은 말 그대로 옛날 모습 같고, 전반과 후반에 보였던 '요기' Baesuyong의 모습과 꽤 괴리가 있어서 정상적인 앨범의 서사 흐름으로 보여지진 않습니다.


 앨범이 기묘한만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고민이 큽니다. 중후반부를 빼고 얘기하자면, 역시 곡의 편차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그루브감이 전무하다시피 약한데다, 지극히 한국적인 발음으로 읊는 영어 랩,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니 당황스러울 수 있는 내용 전개, 마찬가지로 의식의 흐름을 따른듯해 때로 유치해보이는 라임 등이 누구에게 어필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이걸 명상용으로 쓸 수는 없긴 한데, 그렇다고 전형적인 힙합곡처럼 리듬을 타며 듣기엔 애매하단 거죠. 아이러니하게도,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중후반부의 곡들이 나머지와 너무 괴리감이 커서 앨범의 맥락 내에서는 온전히 즐기기 힘듭니다. 차라리 다른 앨범으로 발표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21곡은 리스너가 한 번에 소화하기 쉽지 않은 양입니다. 특히 적극적으로 청자를 끌어들이는 매력 요소가 없다면 말이죠. "Sing a Song, Enlighter"는 뭔가 해탈한 듯한 Baesuyong의 면모를 보는 재미는 있을지언정, 21곡을 기다리며 다 들을 정도의 매력은 있는지 의문입니다. 평범한 감상을 의도한 앨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의도한 청자가 제가 아닐 가능성도 다분히 있겠죠. 다만 만약 그렇다면, 그가 의도한대로 앨범을 듣기 위해선 마음의 준비가 적잖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4) BIGONE - LOVE+EMOTION+BLOSSOM (2020.10.27)


 우선 분명한 것은 BIGONE의 스타일 변화 자체는 성공적이란 것입니다. 이모 힙합 아티스트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그가 속한 MBA, VMC의 입장에서 보아도 특이하여 존재감을 부각시켜주었을 뿐더러, 일명 "BLOSSOM" 시리즈로 앨범마다 세밀하게 차이를 주면서 그저 장르의 전형적인 모습만 답습하지 않으려 시도해왔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놀라웠지만, 이제 BIGONE하면 이모 힙합 래퍼를 떠올리기는 쉬워졌습니다.


 개인적으로 Tommy Strate와의 콜라보 앨범이었던 전작은 상당히 프레쉬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LOVE+EMOTION+BLOSSOM"은 주관적인 평가에선 그의 정반대에 있습니다. 이번 앨범에서 보여주는 멜로디와 비트 등 음악적인 요소들은 전부 어디선가 들어본 것들이었습니다. 누구라고 딱 집어지진 않습니다 - Sik-K도 조금 들리고, Wayside Town 아티스트들의 것인 거 같기도 하고요. 뭐가 됐든 "DAMN" 정도를 제외하면, 적어도 BIGONE 본인이 맡은 부분에선 신선하게 들리려고 하는 노력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좋은 점은 내용인 듯합니다. 실연이라는 주제 하나에 각 곡의 내용들이 상당히 응집력 있게 뭉쳐있고, 은근 뻔할 수 있는 주제를 놓고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한 느낌도 납니다. 서사라고 할 정도로 스토리라인이 진행되는 건 아니지만 앨범 규모나 의도로 보면 통일성 있게 흘러간 것에 집중하여 높게 쳐주고 싶군요. 다만 "PEACH BLOSSOM"과 "Flame Blossom"까진 뚜렷한 발전이 보이던 가운데, 본작은 정체로 받아들여지는 점이 끝내 아쉽습니다. 특히 딩고 스포일러 영상에서 앨범 제작에 허투루 임한 건 아니라는 점이 보였기 때문에 더 아쉬움이 크네요.



(5) Ourealgoat - 때 묻은 돈 (2020.10.27)


 워낙에 엄청난 작업량을 보여줬다보니, 3개월이 좀 안 되는 시간만에 나온 앨범인데도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 드는군요. 또한 피쳐링진도 없이 모든걸 온전히 Ourealgoat가 했다는 점에서 관심이 가는 앨범이기도 합니다. 자주 나오는만큼 스타일의 큰 변화는 없지만, 이번 앨범은 이때까지의 음악에서처럼 풍기는 비장미가 조금 덜해지고, 대신 트랩 바이브로 살짝 템포가 빨라지고 톤이 강해진 듯합니다. 특히 "수상함이 보이는 거리"에서 같은 추임새, 웃음소리 같은 건 Ourealgoat 음악에선 처음 들어보는 것 같네요.


 Ourealgoat 음악에서 무엇을 좋아하는가에 따라 다를듯한데, 무게감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이번이 조금 아쉬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Songwaygoya 앨범도 그렇고, 이렇게 되고보니 호미들의 음악과 상당히 유사한 것 같습니다. 또 훅-벌스-훅으로 이어진 후 곡이 끝나는 단순한 구조만으로 계속되기 때문에 단조로운 면도 있고요. 하긴, 워낙 자주 나오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단조롭게 다가오기 쉬운 위치죠. 올해의 다작을 통해 자리매김은 확실히 했는지라, 설령 이번 앨범이 살짝 아쉽더라도 그에 대한 기대는 변치 않고 다음 앨범을 기다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6) Grack Thany - Grack Thany Presents 'WAFER 1.91' (2020.10.27)


 1년이 조금 넘는 간격을 두고 발매된 Grack Thany의 새 컴필레이션입니다. 제목부터 전작 "WAFER"를 계승하고 있으며, 앨범 소개글에는 "update complete"라는 간단한 문구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군요.


 저에게 Grack Thany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전쟁터 한복판에 선듯 사방에서 쏟아지는 요란한 로파이 신스의 향연입니다. 한 발짝 물러나 볼 땐 크루에 속한 다섯 명 (여섯 명?)의 프로듀서가 모두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비롯된 거겠죠. 그래서 Grack Thany의 지난 두 앨범, 그리고 멤버들의 앨범은 비트가 주된 시선을 가져갔습니다. 그런 면에서 "WAFER 1.91"는 처음으로 랩이 중심이 된 Grack Thany의 컴필레이션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특유의 요란한 신스 배치는 있지만, 비트 속을 덜 채우고, 루핑 위주의 구성을 채택하여 랩이 들어갈 빈자리를 좀 더 마련한 느낌입니다. 여기에 한 곡을 제외하고는 Moldy와 Nubset이 전부 랩으로 채워넣었고, 평소보다 좀 더 타이트한 랩스킬을 선보였기 때문에 (특히 Nubset은 되게 dumb down된 랩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기선 반대의 모습이네요) 자연스레 래퍼가 중심으로 떠오릅니다. 일반적인 리스너에게는 이런 변화는 '대중적인 방향'으로의 변화와 거의 일맥상통할 것 같습니다.


 물론 Moldy와 Nubset의 랩이 소화가 편히 되는 랩은 아닙니다. 그래서 랩이 중심이 되었다고 마냥 친절하게 다가오진 않습니다. 나름 앨범에는 "Shanghai Chicken Snack Wrap"이나 "2AM SHOWER" 같은 숨 고르기 구간이 있지만 본래 이 크루가 가지고 있는 파워는 숨을 고른다고 해서 가벼워지지도 않죠. 제 생각엔 그래도 좋아진 접근성을 토대로 이들의 비트가 일반적인 요란한 트랩 비트와 무엇이 다른지 한결 쉽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다만, 랩이 중심이다보니 래퍼 라인업이 오직 둘 뿐인 것은 좀 아쉬운 면입니다. 둘과 조금 차별화되는 래퍼가 한 명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뻔 했어요 (hira 같은 피쳐링진이 더 많았어도 좋고요).


 Grack Thany는 늘 조용한 것 같지만 그래도 꾸준히 움직이는 크루입니다. 특히 이번 앨범이 세 번째 컴필레이션이라는 걸 고려하면 에너지가 흔치 않게 커다란 집단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처음 접할 때 받은 '앱스트랙트 힙합'이라는 명찰이 오히려 편견을 갖게 했다면, 이후로 세 장의 컴필레이션을 통해 저에게 그들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전자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장인 집단으로 거듭났습니다. 다만 내내 그들의 음악에서 고수되는 요란함이 또다른 틀이 되지는 않았는가 하는 우려가 아직 가시지는 않네요.



(7) lil asian*+ - REBORN (2020.10.29)


 저번 앨범 "H E L L"이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충격적이어서, 그 스타일을 좀 더 이해할 겸 이번에 나온 신작을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곡 제목에 Playboi Carti를 넣은 것에서도 보듯 lil asian*+이 지향하는 바도 비슷합니다. 로파이하고 단순 건조한 비트 위 극도로 간단하게 뱉는 랩은 확실히 Carti를 연상시키긴 하네요. "soak*d up"에서처럼 소리가 찢어지면 찢어지는대로 두는, 의도적으로 사운드를 정돈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겠죠. 이런 스타일은 매우 본능적인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장단점을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첫 인상이 곧 끝 인상일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만약 이 스타일의 모델을 Playboi Carti라고 둔다면 어쨌든 그에 비해 랩톤이 비트에 잘 박히지 않고 의외로 평범해서 그냥 흐지부지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뭐 Carti만한 느낌을 내는 아티스트가 과연 나올지는 의문이군요. 오리지널리티를 논한다면 잘은 모르겠습니다 - 어쨌든 한국에서 시도하지 말란 법은 없고, 이를 감안해서 감상하면 되는 거니까요. 다만 그저 대충 만든 음악으로 흘러가지 않으려면 뭔가 장치가 더 있어야할 것 같긴 합니다 - "H E L L"보다는 그래도 다양한 면이 보였던 것 같아 좋았습니다. 물론, 제가 친해질 수 없는 스타일이니 모든 건 불호인 감정 안에 갇혀있을지도...



(8) MINO (송민호) - TAKE (2020.10.30)


 최근 나왔던 송민호의 킬링 벌스를 보면서 얼마나 랩 스타일이 전에 비해 변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하드한 인상을 심어주려던 예전에 비해 현재의 송민호는 능글 맞고 유연한 랩을 구사합니다. "XX" 때만 해도 이런 변화는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는데, 두 번째 앨범 "TAKE"에는 그 변화가 완전히 담겨있습니다.


 정말 그런지 몰라도 "XX"는 프로덕션이나 피쳐링진 등에서 탈YG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런 노력은 "TAKE"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갑니다. 단순히 앨범 참여진을 따져보는 것보다도, 마치 이모 힙합 같이 변한 앨범의 색깔에서 다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몽환적인 악기 구성과 멜로디의 전개와 공간감을 강조한 사운드 배치를 토대로 송민호는 이런 새로운 스타일에 자신을 흠뻑 적십니다.


 이런 시도는 신선하고, 어색하지도 않으니 반겨야 마땅할 것입니다. 다만 이전보다 능글 맞아진 그의 랩이 자아내는 케미는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입니다. 적어도 저에겐 너무 과한 데가 일정 부분 있어보입니다. 플로우는 유연함을 넘어 흐느적대는 느낌인데다, "도망가"의 '급발진 랩'으로 대표되는 무리수에, 목소리를 꼬는 쿠세가 간혹 느끼하게 다가올 때가 있었습니다. 대형 회사다운 빵빵한 사운드가 이미 받쳐주는데, 랩은 조금 더 편하게 가도 되지 않았나 합니다.


 더불어 탈YG, 혹은 탈아이돌에 대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노래가 찌질 감성의 사랑 노래로 맞춰진 데다, 앨범을 마무리하는 "Sunrise"와 "이유 없는 상실감에 대하여" 등은 너무 감성적인 나머지 앞에서 보여줬던 스킬과 음악 스펙트럼을 무색하게 만든 건 아니었나 합니다. 또한 랩을 뽐내는 트랙인 "Ok Man"은, 셀프 프로듀싱한 비트가 너무 빈약한 데다 의도가 너무 뻔해서 (전작의 "로켓"을 계승한다 볼 수 있겠군요) 좀 민망했습니다.


 편하게 대중적인 노선을 택하지 않고 실험을 하는 것은 멋집니다. 또 다른 셀프 프로듀싱 곡인 "Love and a Boy"는 좋았고, "펑!"의 드럼이 들어오는 파트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어느 방향을 노리고 있는지 완전히 감이 오지 않는 과한 퍼포먼스가 빛을 가리는게 있습니다. 마치 나는 랩을 잘한다, 나는 예술적이다 라는 걸 거부감 들 정도로 홍보하는 느낌이랄까요. 조금 더 정갈한 어레인지와 함께라면 훨씬 매력 있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9) 박재범 & DJ Wegun - Everybody Sucks (2020.10.30)


 이 시리즈에서 짧고 굵다는 표현은 클리셰마냥 남발되곤 하지만, "Everybody Sucks"만큼 그 표현이 적절한 앨범은 요근래 작품 중에선 찾아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동시에 본작은 근래 H1GHR MUSIC에서 나온 앨범 중 제일 랩 집약적인 앨범입니다. 길다고 볼 수는 없는 러닝 타임 사이 박재범과 피쳐링진의 랩의 향연이 인상적으로 펼쳐지고 앨범은 깔끔하게 막을 내립니다.


 박재범의 랩은 일정 경지에 올랐으며, 특히 이번 앨범은 영어 랩을 쓰는데 주저 않은 듯한 모습입니다. 박재범처럼 영어가 능숙한 경우의 영어 랩은 (뭐 일부는 한글 랩에 상대적으로 미숙해서일지 몰라도) 한글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유연함과 그루브감을 갖추게 되고, 거기에 밀도 높은 펀치라인까지 곁들여져 높은 청각적 쾌감을 안깁니다.


 여기에 DJ Wegun의 비트 얘기를 빼놓을 수 없군요. "Band Wegun Effect" 땐 그저 평범한 비트메이커로 생각되던 그는 이번 앨범에서는 그의 파트너의 랩만큼이나 깔끔하면서 인상적인 비트를 내놓았습니다. 과하지 않은 소스로 정확히 리듬의 맥을 짚어가는 구성은 박재범의 랩에 집중하고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며, 특히 곡마다 하나씩 있는 변주를 기점으로 변하는 분위기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마치, 이 짧은 앨범에 힙합 서브 장르가 10가지 정도는 담긴 거 같은데 그걸 다 임팩트 있게 표현한 거죠.


 마치 H1GHR MUSIC 컴필 "RED TAPE"처럼, 워낙 랩에 집중된 앨범이라 받은 충격에 비해서 휘발성이 빠를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부 리스너에게는 영어 비중이 높은 것도 그런 이유가 되겠죠. 그럼에도 "Everybody Sucks"는, 박재범의 랩 실력과 DJ Wegun의 비트메이킹 실력을 제일 효율적으로 뽐낸 자리라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10) zzuno だいすき! - Demontime (2020.10.30)


 쭈노 다이스끼는 사운드클라우드 씬에선 이미 꽤 유명한 래퍼입니다. 확인되는 활동은 201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특히 이때 만든 "Wavy-!"라는 곡이 꽤 히트를 친 거 같군요. 이후 사쿠라장, 대방제약 같은 크루에 속해있었지만 현재는 별다른 소속은 없는 거 같고요. 사실 이름은 워낙 특이하니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듣지 않았던게, 단순히 (개인적으로 안 좋아하는) 오타쿠 삘의 트랩을 할 거 같아서였습니다. 그게 완전 틀렸다는 걸 이번에야 알았네요.


 쭈노 다이스끼는 제 예상과는 반대되는 꽤 하드한 랩을 합니다 - 예전에 어땠는지까지는 못 챙겨 들었지만요. 내용에서도 총, 마약, 여자가 등장하는 등 갱스터 기믹에 더 가깝습니다. 이런 기믹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랩은 준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힘을 크게 들이지 않고 편하게 랩을 하면서도 거친 바이브를 품고 있고, 끊기지 않고 이어나가는 플로우는 곡 전체에 그루브도 살리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느낀 바와 그가 지향하는 바가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닌 듯합니다. 이를테면 "Skrr"에서는 세 마디 랩 후 한 마디를 비워버리는 구성이 나오곤 하는데 이는 제가 생각하는 그루브를 상당히 해치는 방향이죠. 어쩌면 마지막 트랙 "Yummy High Remix" 같은게 본 모습(?)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쭈노 다이스끼에 대한 첫인상만 가져가고, 그 이상의 많은 걸 알만큼 담겨있는 앨범은 아니어서 더 많은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일단 제가 좋아하는 방향의 랩을 구사하는 래퍼를 알게 되어서 반갑지만, 클리셰에 가까운 컨셉과 여운이 별로 남지 않는 트랙 때문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어 이는 미래의 결과물에서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앨범 소개글엔 "Side A"라고 되어있군요. 이 앨범은 "Demontime"의 절반 뿐이라는 걸까요?

NO
Comments
아직까지 남겨진 코멘트가 없습니다. 님의 글에 코멘트를 남겨주세요!
 
글쓰기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