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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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6 21:15:54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날씨가 왜 이리 추운가요. 해뜰 때는 덥길래 반팔 입고 나갔다가 얼어죽을 뻔한 것이 바로 어제입니다 흑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QuvicBoy - HUISTEN 25 (2020.9.26)


 QuvicBoy는 2020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프로듀서입니다. 아마 올해 3월에 나온 Asher (아셀)의 싱글 "On the Way"가 거의 공식적인 첫 작품일 거 같네요. 5월에 첫 싱글을 발표한 후로 평균 한 달에 한 번 정도 '월간 큐빅'이라는 이름 아래 작업물을 발표해왔는데, 9월의 발표물은 첫 EP가 되었네요.


 낯선 이름들이 많은, 여러 피쳐링을 거느린 프로듀싱 앨범입니다. 첫 트랙 "ONLY NOW"부터 펼쳐지는 아련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비록 후로 이어지는 곡들은 "ONLY NOW"의 템포나 무드와는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방향이 따스하면서 몽환적인 쪽으로 잡혀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악기 배치도 그렇지만 각종 이펙트를 활용하여 우러나오는 분위기가 여운이 짙네요. 앨범 뒤에 두 곡이 인스트루멘털로 실려있는데, 인스트루멘털로만 들어도 분위기가 좋습니다.


 힙합에 국한할 때 쉽게 다룰 수 있는 아티스트가 적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래퍼들이 자신의 벌스를 풀 때, 비트와 목소리가 쉽게 조화가 안 되고 비트가 가지고 있는 힘을 많이 깎는 듯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비트 자체가 벌스에서 힘을 죽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묻히기보단 위에 얹혀진 느낌이라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이라 느끼는 무드가 줄어들고 감흥이 덜해, 흔한 감성 랩 정도로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여진 중에선 "come"의 OSSH가 제일 좋았습니다 (사실 "ONLY NOW"의 후렴이 피쳐링인 줄 알고 꼽으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샘플이더군요a). 그래서 OSSH의 참여가 제일 많은 걸지도요.


 결론적으로 제일 좋았던 곡이 첫 트랙이라서 뒤로 가면서 조금 김이 새긴 했습니다만, 첫 인상이 좋아 기억에 남을 앨범 같습니다. 힙합 장르의 벽이 많이 무너진 요즘이라 장르를 구분할 건 없지만, 멜로우한 일렉트로니카 (무슨 단어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느껴주세요)에 더 부합하는 음악들인 것 같군요. 혹은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다면 의외의 뭔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결과물 앞으로도 기대해보겠습니다.



(2) Starry Nightt Music - Starry Nightt Vibe (2020.9.29)


 올해 중순 Crucial Star의 "천체망원경"으로 시작을 알린 Starry Nightt Music은 바로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앨범을 연이어 발표하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고, 설립 3개월만에 컴필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씬의 중심부에 들어갔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초반 러쉬를 통한 공략 끝에 조금 이른 감은 있어도 분명한 방점을 찍는 앨범, "Starry Nightt Vibe"입니다.


 창단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Starry Nightt Music은 Crucial Star의 스타일과 공명하는 음악들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되었니다. 컴필레이션도 마찬가지의 이지 리스닝 계열의 랩과 노래라고 간단히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거의 모든 곡에서 재지한 바이브와 차분한 템포의 비트 위 안정적인 퍼포먼스가 일관되게 펼쳐지며 레이블의 색깔을 공고히 합니다. 네 명의 멤버들은 각자의 포지셔닝이 뚜렷하게 구분되어있어 겹치지 않으면서도 조화로운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어찌 보면 예상이 쉽게 가능한 무드로 진행되지만, 좁은 틀에 갇히는 걸 경계하는듯 다양한 시도가 이뤄집니다. 이를테면, 이러한 분위기의 곡들은 사랑 얘기를 주제로 삼는 경향이 짙지만, 본작에는 다른 주제, 예를 들어 음악에 대한 태도 등을 다루는 곡도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랑 얘기를 하더라도 다양한 스타일을 실험했습니다 - "Black Sugar Bubble Tea"가 좋은 예입니다. 멤버 전원이 잘 어울리지만 확실히 연륜이 있는 Crucial Star가 제일 유연하고 존재감이 분명합니다. 한편 디너프는 "알파카의 하루" 때 유치한 쪽으로 빠질까봐 우려했는데, 그런 부분을 잘 컨트롤한 거 같네요.


 다만 "Maze Garden" 때도 느꼈던 '진지한 주제에서의 Crucial Star의 가사가 간간히 마음에 걸리네요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가사인 "Pizza Day"의 모짜르트 라인과 "예술병"의 이뭐병 라인...). 메세지보단 라임에 끌려간 것도 같고 깊이도 얕아보였습니다. 때문에 그런 진중한 주제들은 그저 다른 걸 보여줘야겠단 강박에 억지스럽게 시도한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나름 당면한 과제를 잘 해결한 앨범 같습니다. 이런 대중적인 느낌의 노래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힙합씬에선 제일 비대중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한 가지 원인으로는 그런 틀에서 나올 수 있는 음악이 제한적이라는 선입견 때문일텐데, 이에 대해 인지하고 노력한 흔적이 있는 점이 좋았습니다. 저는 일명 발라드 랩이라 불리는 이런 분야도 충분히 발전의 여지가 있다 생각합니다 - 예전에 한 번 말했지만 이 분야는 사실 지극히 '한국적인 힙합'의 예 중 하나입니다. 굳이 낮게 보고 부정할 필요는 없겠죠. Starry Nightt Music이 그 길의 대표 주자로 남아 앞으로 확고한 영역을 구축해주길 바랍니다.



(3) jeebanoff - GOOD THING. [remix] (2020.9.29)


 이름 그대로 2019년 10월 나왔던 "GOOD THING."의 리믹스 앨범입니다. 비트를 바꿔 내는 리믹스 앨범이야 흔히 있었지만, 벌스를 바꾸는 방식의 리믹스 앨범 - 특히 본 앨범의 틀을 필요한만큼만 유지하면서 가져온 - 은 흔치 않아 시도 자체로 흥미롭습니다. 피쳐링진 없이 jeebanoff 목소리만 담겼던 원작에 비해 이번 리믹스 앨범은 트랙마다 피쳐링진을 한 명씩 초빙하였고, 트랙리스트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대개의 피쳐링진이 감미롭고 아련한 jeebanoff의 보컬과 상반된 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조화를 확인하는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jeebanoff가 잘 끌어놓은 분위기에 잘 더해지지는 않는다는 느낌이었는데, 아마도 이건 jeebanoff가 만들어놓은 분위기가 독특하기도 하거니와, 피쳐링진이 전곡에서 동일하게 2절 한 벌스만을 담당하고 있어서 리믹스의 방식이 뒤로 갈수록 뻔하고 똑같이 느껴지고, 벌스 하나만 바뀐 곡이 원곡에 비해 얼마나 메리트가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면으로는 제가 "The Q Remixes"를 그닥 안 좋아했던 이유랑도 살짝 비슷할 것 같습니다 - 리믹스 벌스 중에 원곡 벌스를 능가하는 게 없었던 거 같아요. 뭐, 이 경우는 언제든지 다시 원작으로 돌아가 들으면 되니 불평은 않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원래 "GOOD THING."을 들을 땐 이만한 감흥이 없었는데, 이번에 원작이랑 비교해볼 심산으로 다시 틀었더니 느낌의 깊이가 상당히 달라져있더군요. 시리즈 연재를 통해 여러 앨범을 들으면서 많이 배우고, 그때문에 같은 앨범을 감상해도 맛이 다르게 우러나오게 될 때마다 참 보람 차고 뿌듯합니다ㅎ



(4) 넉살 - 1Q87 (2020.9.30)


 한 해가 저물어가는 중에도 한국 힙합엔 굵직굵직한 앨범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끝끝내 대표적인 '미해결 과제' 중 하나였던 넉살의 새 앨범도 나와버렸으니, 장장 4년 7개월만에 나온 "1Q87"입니다.


 선공개 곡인 "AM I A SLAVE"를 듣고 저는 걱정부터 들었습니다. 무슨 난해하고 무시무시한 앨범을 내려고 이걸 선공개한 것인가? 다행히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게 공감대에서 동떨어진 앨범은 아니었지만, 1집에 비해 무겁고 어두워진 것만은 사실입니다. 얼굴 볼 일이 많아진만큼 유쾌하고 재밌는 이미지가 부각된 그였기에 당황스러우면서도 관심이 가는 부분입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4년 여간의 공백 중 3년 정도는 많아진 일을 처리하고, 공황에 힘들어하고, 할 말이 없어 앨범을 못 만들었던 기간이라 했습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짜낸 결과물이니 당연한 결과이긴 합니다. 내용적으로도 포괄적이고 일반적이었던 1집에 비해 "1Q87"은 넉살 자신에게 몹시 집중되어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성공과 이에 따른 고민이 본 앨범의 큰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서사가 다소 정신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적어도 초중반에서 넉살은 이러한 변화를 부정적으로 느끼다가도 ("BAD TRIP" "AM I A SLAVE") 그 안에 도취되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WON", 어쩌면 "브라더"도?). 시점도 곡마다, 혹은 곡 내에서도 여러 번 과거와 현재를 오갑니다. 아마도 이것은 일어난 변화가 본능적으로는 좋으면서도 끊임없이 이것이 옳은지 되묻는 과정을 반영한 것 같습니다. 조금 두서 없던 과정을 지나 "나"에 이르면서 마치 여러 갈래의 시냇물이 한 줄기의 강으로 이어지듯 차분한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그 끝은 그의 양면성과 닮아있는 '추락은 비행이 될 수도 있다'라는 결론입니다.


 당연하게도, 편안히 들을 수 있는 앨범은 아닙니다. 특히 초중반에 두드러지는 로파이한 전자음의 향연 (Fredi Casso는 이제 이런 쪽으로 나가려는 걸까요)과 비유적으로 적힌 넉살의 가사는 살짝 "가로사옥"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말했다시피 서사 구조가 직선적이지 않아서 들쑥날쑥한 분위기에 적응하는데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넉살이 네이버 나우에서 농담조로 '랩이 너무 많아서 별로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말마따나 밀도 높게 쏟아지는 날카로운 넉살의 랩도 피로에 일조하는 부분이긴 합니다. "AKIRA"나 "브라더" 같은 트랙이나, 주로 후렴에 배치된 피쳐링진들로 환기시키기엔 살짝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피로는 의도된 앨범 방향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점이기 때문에 단점이라 말하긴 아쉽지만 '청취 시 주의 사항' 정도로는 언급해야할 것 같습니다.


 요컨대 "1Q87"은 입문용으로도 소개 가능할 "작은 것들의 신"과는 반대편에 놓여있는 앨범입니다. 앨범 자켓에 검고 두꺼운 옷으로 전신을 두른 모습이 꼭 어울리는 거 같습니다. 그 검정 너머의 넉살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 후로는 좋은 점만 보입니다. 사운드적으로도 깔끔하게 잘 빠졌고, 넉살의 랩 실력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죠. 피쳐링도 딱 양념 정도로만 쓰여서 조연의 자리를 빛내면서 곡의 풍미를 돋궈줍니다. 비록 작업 기간은 1년 여 정도 걸렸다 하지만 "1Q87"은 4년 7개월 어치의 고민이 어려있다고 느껴집니다. 비록 앨범 하나라는 좁은 창구로 쉽게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본인의 능력에 걸맞는 탄탄한 작품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5) 스카이민혁 - 그랜드라인 (2020.10.1)


 스카이민혁의 새 EP "그랜드라인"은 지금까지의 앨범과는 살짝 느낌이 다릅니다. 대책 없을 정도의 긍정주의와 살짝 유치하다고 볼 수도 있던 싱잉 랩과 반대로 이번 앨범은 감성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비트 위에 랩을 얹었으며, 내용이 자못 센티멘탈하고 무겁습니다. xrface라는 프로듀서의 비트를 전곡에서 사용하였는데 질감이 이때까지 쓰던 비트와 딴판입니다. 그런 질감으로 스카이민혁은 첫 곡부터 한 곡을 3부로 나눠 진행하는 등, 그의 음악으로썬 실험적(?)이랄만한 것들을 선보입니다. 이에 따라 라이밍과 플로우 디자인은 살짝 더 전형적인 랩의 형태를 띈 대신, 스카이민혁의 감성 자체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대체로 우울하긴 하지만 "모험" 트랙 같은 데서는 무한긍정 기운도 있고, 악을 써대는 것도 심심치 않게(?) 들어있긴 합니다.


 일단 처음 든 생각은 '오 이런 것도 하는구나'였습니다. 의외로 라임도 괜찮게 맞을 때도 있고, 가사도 유치하게 느껴지진 않긴 해요. 하지만 여전히 스카이민혁이란 점에서 어디까지 얘기를 해야할지는 좀 헷갈립니다. 원래가 발음, 박자, 펀치라인 같은 고전적인 잣대를 들이댈 아티스트는 아니었는데, 이번에 방법론이 고전적인 것을 띄었다고 해서 '플로우에 그루브가 별로 없다' '발음이 의미 없이 부정확하다' 등의 얘기를 하면 웃기다는 거죠. 다만 한 가지, 이런 비트에서도 그렇게 악을 써대야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욕설까지야 아이덴티티로 보고 그렇다 치는데... 하긴, 이 언밸런스마저 스카이민혁답긴 하군요.


 본래 스카이민혁 음악을 좋아했던 분이라면 의외의 모습이 마음에 들 수 있을 것이고,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저와 마찬가지의 감상을 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앨범일 수 있을 것입니다 - 완전히 호감으로 돌아세우긴 어렵겠지만요. 개인적으로 그보다 관심 있는건, 요근래 일련의 앨범에서 점점 긍정에서 부정으로 흐르는 스카이민혁의 감정선입니다. 앨범에 담긴 걸 전부 곧이곧대로 들을 필요는 없겠지만 왠지 안타깝군요. 다시 생각해보니 이 정도로 청자를 몰입시킨다면 나름 좋은 아티스트인 걸까요.



(6) Chaboom & Leebido - HOT STUFF (2020.10.2)


 키츠요지 & Leebido가 나온지 얼마 안 되어 나온 또 하나의 콜라보 앨범. 몰랐는데 HOMEALONe, Jazzy Moon과의 콜라보 앨범도 있어서,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 콜라보 앨범이 되는 거라더군요. 듣기 전에 앨범을 살펴보면 직관적인 제작 의도와 구성이 눈에 띕니다. '우리가 피우는 것, 모는 것, 마시는 것, 사는 곳 + 여자가 HOT STUFF다'라는 표제 하에, 그 다섯 가지 각각을 한 트랙으로 옮겨 만들었으며, 실제 존재하는 브랜드를 제목 및 소재로 삼아 곡을 풀어나갑니다.


 여기서 Chaboom의 센스가 빛을 발합니다. 주제에 맞는 각종 고유명사와 유행어들을 짜맞춰 능청스러운 톤으로 풀어가는 그의 랩은 그야말로 대체 불가능입니다. 이제 거의 영혼의 파트너로 느껴지는 마진초이의 비트도 찰떡이고요. 반면 Leebido는 아무래도 Chaboom과 같이 들어서인지, 조금 아쉬운 부분은 있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스킬이야 원래 있었지만, 키츠요지와의 앨범과는 다른 의미로 개성이 덜한 느낌이라 해야할지. 워낙 Chaboom이 여유롭게 잘하니까 Leebido의 랩이 상대적으로 불필요하게 힘이 많이 들어가있고 정형화되었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런 연유로 힘을 빼고 랩한 트랙이 조금 더 좋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본작은 Chaboom의 클래스를 재확인시켜준 동시에, Leebido의 장단점에 대해 더 알게 해준 앨범이었습니다. 첫 믹테 "TETSUO"까지 생각해보면, 아직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 구체적인 이미지가 안 잡힙니다. 여튼 LBNC와 함께 허슬하고 있으니 부족한 부분은 조금씩 메워져갈 거라 믿어봅니다.



(7) $EUNGHYUN - PICTURE PERFECT (2020.10.3)


 $EUNGHYUN (사운드클라우드엔 "$NGHYN"으로 되어있음)은 본래 SHEEZY STASH라는 이름을 썼던 래퍼입니다. 2016년 첫 믹스테입을 발표 후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시작부터 함께 해온 단체 MUSICΔLIVE가 지금까지도 그의 소속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IIA와, 앨범 두 개를 발표한 VKSHN 등의 집단이 있는가본데 무엇이 크루고 무엇이 레이블, 혹은 그룹인지는 정확히 구분이 안 갑니다.


 3년 전쯤에 힙합엘이 워크룸에서 우연히 그의 곡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퓨쳐 베이스 계열의 곡이었는데, 유려한 플로우와 잘 빠진 싱잉 때문에 따로 지적할 부분을 찾을 수 없는 인상 깊은 곡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가 되어 우연하게 $EUNGHYUN으로 재회한 그의 스타일은, 방향 자체는 비슷하지만 좀 더 팝적인 색깔을 띄고 있었습니다.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오토튠 싱잉랩, 신스를 감각적으로 배치한 비트, 연애 소재 등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랩과 멜로디 메이킹이 상당히 빼어난 수준이라, 장르에 대한 취향만 맞는다면 호불호가 갈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전곡이 같은 분위기이긴 하지만 이런 기술적인 부분이 받쳐주고 6곡짜리 앨범이고 인트로와 인터루드가 적절히 배치되어있어서 들으면서 질린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습니다. 3년 전 들었을 때처럼 지금도 딱히 단점을 꼽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남는 문제는 오리지널리티로군요. $EUNGHYUN을 요약하면 'Sik-K의 목소리로 하는 Punchnello와 DPR LIVE의 중간 어디쯤인 음악' 정도일 것 같아요. 이 문장으로 거의 모든게 설명된다는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일 거 같습니다.


 그래도 $EUNGHYUN은 이 이상 알려지지 않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전부 예상되는 분위기로 흘러갔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완벽을 기했으니 그건 그거대로 의미가 크다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프로덕션도 상당히 만족스럽게 들어서, 그가 속해있는 집단 (세 가지 중 무엇에 집중해야할진 몰라도;)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는군요. 그들의 커리어를 따라가면서 어느 지점에서든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맞이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8) kumira - 또 하루 (2020.10.1)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R&B 보컬 kumira의 새 앨범으로, 일단 멜론에는 정규로 표시되어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when we hurt" 이후로 처음 듣는 그의 앨범이지만, 그 사이 많은 EP와 싱글을 발표하긴 했더군요. 허나 감상은 "when we hurt" 때와 거의 같았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kumira가 적는 진솔한 가사는 솔직하고 순수해서 울림이 있지만, 뭔가 모르게 꾸며지지 않은 목소리는 와닿지가 않습니다. 적어도 호불호가 갈릴 포인트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when we hurt"랑 다른 것은 본인에 집중한 이야기가 많다는 점과 피쳐링진이 많다는 건데, 저는 목소리 때문에 피쳐링진에 스포트라이트가 많이 간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것은 포근하고 편안하게 들을만 합니다. 이것도 나름 kumira의 스타일이니 그저 취향의 문제일뿐 정답이고 아니고는 없겠죠.



(9) Biglightbeatz - Bad or Good (2020.10.4)


 Biglightbeatz는 Legit Goons 소속의 프로듀서입니다. 2012년 첫 창단 때는 물론, 그전부터 뱃사공과 '야밤그루브'를 해왔을 정도로 돈독한 사이를 이어오고 있죠. 대표곡이라면 아무래도 저번 Legit Goons 컴필 타이틀곡인 "GTA"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몰랐는데 이거 전에도 앨범이 하나 있었군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두 번째 앨범인 "Bad or Good"이 나왔습니다.


 Legit Goons란 이름은 거의 칠링하는 분위기의 음악을 의미하는 브랜드화되었고, Biglightbeatz도 완전히 예외는 아닙니다. 다만 그것은 비트의 색깔보다는 믹싱/마스터링 등의 사운드 작업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 듯합니다. 비트는 사실 "Thirst" "Smoker's Poem" 같은 느긋한 바이브의 곡도 있지만, "좋아" "Feel It" 같은 강렬한 곡도 있어서 두 가지의 분위기로 양분되어있습니다. 중간중간 인터루드들은 딱 연결고리만큼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어떤 면으로는 프로듀서로써의 아이덴티티를 더 확실하게 보여주기도 하고, "Hangover"처럼 여운을 극대화시키는 장치로도 활용됩니다.


 위에서 저도 언급했듯, 믹싱에 대한 말이 꽤 많은 걸 보았습니다. 믹싱은 대부분 Authentic이 담당했지만, 나잠수가 담당한 7번 트랙의 분위기도 비슷한 걸 봐서는 철저히 의도된 부분이었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역시 느긋한 바이브를 강조하는 먹먹함을 연출하기 위함이었을 거 같은데, 저도 그 효율성에 대해선 좀 의문이 듭니다. 무엇보다 "좋아" "You Got This" 같은 트랙의 에너지를 많이 해치는 편이라 단점이 뚜렷한 전략이었던 것 같습니다. 뭐 "Smoker's Poem" 같은 트랙엔 좋았을지 몰라도요.


 "GTA"에서 느꼈듯 락적인 성향을 꽤 띄고 있는 비트메이커라서, 그런 부분이 바랜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그래도 의도가 뭐였건간에, 나름 Jayho 앨범을 기다리면서 들을 Legit Goons 앨범은 되는 것 같습니다. 멤버가 많은데 하나의 색깔로 잘 통일되는게 참 신기하긴 하네요.



(10) Jambino & Eggu - mnemonic (2020.10.5)


 요즘 Jambino의 모습을 볼 일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Raphouse on Air에 출연했는가 하면 NOAH1LUV 앨범에 세 곡이나 참여했고 글을 쓰는 현재 Yizumin의 두 번째 앨범이 나오기도 했죠. 그리고 그 Yizumin에서 만난 인연이 프로듀서 Eggu와 낸 이 앨범도 그렇습니다.


 "mnemonic"은 상당히 짧은 앨범입니다. 6곡의 길이를 평균 내면 2분이 되지 않을 정도죠. 그래서 앨범이 갑자기 끝난다는 느낌도 듭니다. 좀 집중해야지 시작과 끝을 알 수 있달까요. 때문에 못내 아쉬운 점도 있지만, 내용물은 Jambino와 Eggu의 음악을 들어왔던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들을만 합니다. Eggu는 사실 처음 트리플 싱글이나 정규 앨범에선 스타일이 감이 오진 않았는데 (일단 기타리스트라는 말을 듣고 듣다보니 더 헷갈렸던 거 같음;), 이번 앨범에서 신스를 활용하여 만드는 사운드스케이프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의 비트 앨범 - Owen의 "smile" 곡들도 포함 - 중에선 제일 또렷한 느낌이 나게 믹싱이 된 (적어도 제 둔한 귀에는 그랬습니다...) 것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Jambino의 랩도 흥미롭습니다. 역시 방향의 차이일진 모르겠지만, 최근 들은 그의 노래는 "누워버릴까"에 비해선 더욱 멜로디컬해진 것 같습니다. "누워버릴까"는 상당히 딱딱하단 느낌이 들었는데, 본작은 훨씬 부드럽게 들리더군요. 탑 라인 자체도 그렇지만, 화음을 쌓는 방식과 조금 더 쉽게 풀이된 가사 등이 원인인 듯합니다. 특히 가사는, 짧은 곡들인만큼 촌철살인적인 면이 인상 깊습니다. 예를 들어 마피아 게임에 빗대어 불신 사회를 노래한 "마피아" 같은 게 기억에 남는군요.


 "mnemonic"은 짧지만 Jambino와 Eggu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이정표 같습니다. Jambino는 아직은 들을 때마다 "킁"의 C JAMM이 떠올라버리긴 합니다만, 듣기 좋아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거 같군요. 때가 되면 듣게 될 Yizumin 앨범도 기대가 많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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