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99
 
3
  145
2020-09-19 19:17:40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어제 10개 채웠는데 깜빡 잊고 이제 올리네요... 요즘 뭔가 바쁘고 정신이..ㅠ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서준혁 - 목동 현대 미술관 (2020.8.30)


 서준혁은 GR8VATTIC 및 HASHTAG 크루 소속의 래퍼입니다. 본래 DOSHi (그전에는 hyuttack이었다고...)란 이름으로 2018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특히 2018년 10월부터 올해 초까지 '월간도시'라는 프로젝트로 달마다 싱글이나 EP를 발표했기 때문에 적지 않은 양의 디스코그래피를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입니다. 이번 앨범은 그가 '서준혁'이란 본명으로 나오는 앨범이자 그의 첫 정규 앨범입니다.


 전시회 컨셉의 앨범 자켓과 소개글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심지어 다른 데서 처음 정보글을 보았을 때 진짜 전시회인 건가 했습니다;). 이름을 바꾼 것도 이 컨셉에 맞추어 일시적으로 본명을 쓴 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첫 트랙 "Audio Guide"가 정확하게 안내하듯, 앨범은 인트로와 보너스 트랙을 제외하면 대비되는 색깔을 가진 사이드 A와 B로 이루어져있으며, 각 사이드가 전하는 무드도 분명합니다. 간단히 요약해, A는 밝고 신나는 노래들, B는 차분하고 우울한 노래들이죠.


 앞에서 짧지 않은 커리어를 언급해놓고 민망하지만 저는 서준혁의 랩을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음악을 해왔던 듯 하지만 그의 플로우는 특히 사이드 A 무드에 특화되있는 듯합니다. 청량감 있는 빠른 비트에 맞춰 얹혀진 그의 랩은, 특유의 편하게 흘리는 듯한 발음과 자연스럽게 싱잉으로 전환하는 스타일로 감각적인 그루브를 형성해냅니다. 이런 센스는 사이드 B에서도 죽지 않습니다 - 다만 여기서는 특유의 발음이 멈블 랩처럼 작용해서 A에서의 느낌보단 이모 힙합 앨범처럼 들립니다. 이에 대해선 프로듀서진의 몫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꽤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으나, 저마다 아티스트에게 꼭 맞춘 듯한 스타일로 일관되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처음 빛을 발한 프레쉬함은 재생 횟수가 늘어나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바래는 듯합니다. 사실 전체적으로 형성된 무드가 크게 새로운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사이드 A와 B가 극명히 나뉘는 것은 애초에 의도했던 바이고, "가타고" "AniMore" 등의 트랙이 충분히 연결고리를 만들어줬다 생각합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B는 그나마 입체적인 반면, A는 비슷한 음정과 코드, 템포로 일관되어 비교적 평면적인 게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보너스 트랙이었겠지만, 마지막 트랙 "끝"이 나머지와 너무 다르더군요. 비트나 랩이나, 앞 트랙들에 비해 좀 촌스러웠달까요. 만든 시기가 달랐던 걸까 싶었습니다.


 '감각적'이란 말은 주관적이고 애매모호할 수 있지만, "목동 현대 미술관"을 표현할 때 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단어 같습니다. 정규라는 틀이 무색하지 않게, "미술관"이라는 컨셉에 충실한 구성과 평균 이상의 퀄리티로 앨범을 꾸려낸 부분은 박수를 보냅니다. 다만 감각적이란 강점에 매몰되어 나머지를 특색 없이 마감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습니다. 이번 앨범으로 판단하면 그의 최종 목표가 단순히 달달하기만한 음악은 아닐 겁니다. 이번에 확인한 매력을 유지하면서, 향후에 좀 더 깊이 있는 음악을 들려줬으면 좋겠습니다.



(2) Tommy Strate - Tommy Strate Part. 2 (2020.9.1)


 일단 제목을 봐서는 6개월 전 나온 정규 앨범 "Tommy Strate Part. 1"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6트랙과 17트랙으로 크게 차이 나는 볼륨은 물론, Part. 1의 곡 중 세 곡이 Part. 2에 다시 실렸다는 걸 감안하면 Part. 1는 전작이라기보다 티저 같습니다. 이외에도 이번 앨범은 Wiz World와 냈던 "SAFARI" 수록곡 두 곡이 실렸습니다.


 여기서 "Tommy Strate Part. 1"을 떠올려보면 6곡이 4대2의 비율로 (...) 다른 스타일의 곡이 실려있었습니다. 이번 Part. 2의 소개글에서도 그는 '다양한 색'을 강조했고, Part. 1은 그런 색을 보여주기엔 좀 작은 느낌이 있었다면 Part. 2는 충분히 커다란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때문에 대조적인 색깔, 즉 "깊숙히" (참고로 Part. 1에서는 "깊숙이"였는데 이번에 바뀌었다는...?)로 대표되는 감성적인 이모 힙합과, "Status" 등으로 대표되는 미니멀한 트랩의 공존이 이번엔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여러 트랙들로 인해 그렇게 뜬금 없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때문에 Tommy Strate의 다양한 색을 경험하는 데는 이만한 앨범이 없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취향 탓이긴 하지만 Tommy Strate의 음악이 너무 미니멀해서 감흥을 느낄 여지를 찾기가 어렵고 단조롭게 다가온다는 게 제일 큰 단점이었는데, 왠지 언젠가부터 Tommy Strate는 그런 모습을 탈피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 처음 느꼈던 바로 직전 앨범 "SAFARI"는 Wiz World 때문이라고 해도, 본인 프로듀싱이 많이 들어간 이번 앨범도 그렇다는 건 의미가 있겠죠. 그럼에도 제가 알던 Tommy가 기저에는 강하게 살아있어서, 툭툭 뱉는 듯한 감질맛 나는 랩과 비트의 가벼운 무게가 여전하게 그의 개성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유머러스하게 느껴지는 센스도 있다 생각해요. 대표적인 예가 마지막에 갑툭튀한 "막대사탕".


 이런 긴 앨범의 경우 항상 '이렇게 길어야만 했는가?'란 의문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사실 곡들이 대부분 길지 않아 해봤자 러닝 타임이 40분을 넘지 않고, 말했듯 대조적인 곡들이 있음에도 흐름이 자연스러워서 어느 정도 17곡인 당위성은 되었다 생각합니다. 다만, 위에서 '모습의 탈피'를 얘기했음에도 쉽게 단조로워지는 그의 스타일로 이만큼 듣는 건, 취향이 딱 일치하지 않을 경우엔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저는 그냥 이왕 두 가지 파트로 낼 거였다면 균형 있게 내주지 싶군요. 반대로 그의 팬이라면 이번 앨범은 두고두고 들을 앨범으로 평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인의 스펙트럼을 미련 없이 선보인 앨범이니, 누구라도 적어도 몇 곡 건져갈 거라 생각한다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일까요.



(3) WONJAEWONJAE - my life is demo version (2020.9.2)


 한동안 어색하게 느껴졌던 WONJAEWONJAE의 스타일에 제가 익숙해진 건지, 아니면 이번 앨범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건지는 구분이 정확히 가지 않습니다. 이번 솔로 EP에서도 WONJAEWONJAE는 오토튠을 잔뜩 바른 보컬을 얹어두었지만, 딱 전작인 "KOREAN MALE" 시리즈와 직접 비교를 할 경우 거의 이펙트 덩어리라 느껴지던 전작에 비해 좀 더 딜리버리에 적절한 밸런스가 잡혔습니다.


 차이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체적인 음역대가 올라갔고 전개가 조금 더 복잡해졌습니다. 프로덕션에 있어서도 전작의 디스코 같은 스타일과 대비되는, 일렉 기타를 비롯한 강렬한 사운드와 무게 있는 템포의 비트를 많이 수록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연출하는 분위기가 몽환적인 데에서 강렬하고 애절한 사운드로 바뀌었다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 마지막 트랙 "철없게"는 이 변화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트랙입니다 (좀 사족이지만 린린이 그렇게 절절하게 부르는 래퍼인 걸 까먹고 있었네요).


 일시적인 시도인지 방향이 바뀐 건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 인상적으로 다가가는 건 이쪽이 더 쉬울 거 같습니다 - 어떻게 보면 그만큼 더 흔한 스타일이 되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이 방향 그대로 더 나아갈지 아니면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다음 작품이 나오면 들어볼 이유가 다시 생겼네요.



(4) Easymind - Amateurism (2020.9.2)


 반가운 이름입니다. 제가 Easymind, 그리고 그가 속한 두 개의 단체 Awkward Studio와 YDP Records를 처음 접한 2019년과 달리 2020년은 그와 그들에게 조용하게 지나가는 한 해였습니다. "Amateurism"은 오랜만에 그가 내놓는 EP 앨범이며, 인스트루멘털 한 곡을 제외하면 전곡을 직접 프로듀싱하였고 피쳐링도 간소화한, Easymind에게 집중된 앨범입니다.


 본래 그의 스타일을 몽롱하고 살짝 우울한, 어찌 보면 난해한 음악이라 생각했는데, "Amateurism"은 그에 비해 무게가 많이 가벼워져 있습니다. 전반적인 프로덕션이 90년대 붐뱁의 느낌이 충만합니다 - 간단한 샘플의 루프에 의존한 로파이한 느낌은, Easymind가 전에 보여주던 스타일과 일맥상통하는 면도 있지만 그때에 비해 '밝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가 눈에 띕니다.


 그의 랩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일상적으로 드는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여 서두르지 않고 풀어내는 가사와 정확한 딜리버리는 청자를 무리 없이 그의 독백에 초대합니다. 마냥 가볍지는 않지만 이해하기 결코 어렵지 않고, 동시에 의미심장한 포인트가 몇 개 있습니다. 다만 기교 면에서는 언급할만한 것이 매우 적습니다. 본래도 Easymind는 조용히 읊조리는 스타일이었기에 화려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번에는 플로우가 더더욱 일관되고 단조롭습니다. 90년대 붐뱁을 얘기했지만, 마디를 듬성듬성 채웠기 때문에 '타이트함'을 느낄만한 구석은 앨범 전체에서 한 손에 꼽을 수 있습니다. 그나마 "호수" 정도가 좀 인상적인 설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장단점은 전부 제작 의도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페셔널한 제작이 아닌, 만들고 스스로 즐기는 "Amateurism"에 굳이 복잡한 디자인과 혁신을 요구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거의 모든 걸 스스로 해낸 앨범이라는 점과 개인적인 가사 소재들은 전부 이와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컨셉적으로는 잘 만들어졌지만, 어쨌든 청각적 쾌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에겐 잘 안 맞을 수 있겠습니다. 담백한 파스텔톤의 독백 모음집이라는 표현 정도가 본작을 요약하는 데 적당할 거 같군요.



(5) H1GHR Music - H1GHR: RED TAPE (2020.9.2)


 올 가을의 첫 기대작인 H1GHR Music의 컴필레이션입니다. 이걸 올리는 날 BLUE TAPE이 나오기 때문에 상당히 찔리지만 저는 일단 밀린 컨셉(?)을 갖고 가겠습니다. 


 "RED TAPE"은 랩쉿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BLUE TAPE"과 역할을 구분하였다고 하며, "RED TAPE"은 그 색에 어울리게 공격적이고 강렬한 곡들을 주로 하고 있죠. 저는 뮤직비디오 공개곡들을 먼저 들으면서 붐뱁으로 아예 가려는 건가 했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다른 느낌이 많이 나오긴 하더군요. 때문에 Golden은 인트로에만 등장하고 말지만, 어차피 "BLUE TAPE"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고, 앨범 컨셉을 공고히 하는데 과감하지만 좋은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컨셉에 맞춰 멤버들은 랩에 한껏 힘을 주었고, 대부분 정말 순수한 의미에서 '잘 하는 랩'을 뽐냅니다. Woodie Gochild, 서동현처럼 싱잉 랩으로 유명했던 이들도 하드코어한 분위기에 잘 묻는, 동시에 본인의 개성을 살려내는 센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영입되자마자 바로 큰 프로젝트에 투입된 Trade L은 개성 면에서는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커리어, 시기 등을 고려할 때 한 사람 몫을 잘 해줬다고 생각되고요. 무엇보다 놀라운 건 어느 분위기에서도 최적의 모습을 보여주는 pH-1이었습니다.


 말초적인 즐거움을 주는 앨범이라 우선 비슷한 시기에 나온 Hi-Lite의 "Legacy"보다 좀 더 사람을 흥분시키기는 쉬운 거 같습니다. 다만 "Legacy"가 물 흐르듯이 편안한 흐름을 보여줬다면 "RED TAPE"은 온 멤버가 달려들어 전면적인 공격에 나섰기 때문에, 전략도 다르고 그로 인한 효과도 다릅니다. 사실 수록곡을 살펴보면 인트로와 Sik-K의 솔로곡, 외국 멤버들과 함께 한 "Dance Like Jay Park Remix"를 제외한 11곡이 전부 단체곡이며, 멤버 구성도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때문에 강렬함이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유지되서 다 듣기에 피곤한 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 곡 수를 줄이거나 참여 멤버를 차별화두었다면 어땠을까 의문이 남네요.


 H1GHR Music의 컴필레이션 감상은 "BLUE TAPE"으로 완결될 것입니다. 어찌 보면 트렌디한 음악을 하는 그들에겐 "BLUE"가 더 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이번 앨범은 어떤 스타일을 보이건 기본적으로 멤버들은 랩을 잘 한다는 걸 증명하는 게 주 목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BLUE"가 합쳐지면 좀 더 입체적이고 완성된 모습이 드러나리라 기대가 되는군요.



(6) Devine Channel - BYPRODUCT (2020.9.3)


 Devine Channel은 임광욱 (Kei Lim)과 Ryan Kim (aka Karate)으로 이루어진 프로듀싱 팀입니다. 한때 Devine Channel은 크루의 형태를 띄었으며, 앨범 발매 전 2인조 체제로 정리했다고 하는데, 크루였을 때의 흔적은 2018년 이후로 업데이트가 안 되는 그들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SOLE, Thama도 멤버였더군요. 이번 트리플 싱글은 태연, 방탄소년단 ("불타오르네" 작곡이더군요), 빅스 등 유수의 아이돌 음악 작업을 하던 중 잊혀지던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수록곡 세 곡은 전부 다른 스타일로 되어있고, 어떤 의미로는 피쳐링진 전체가 흔치 않은 조합입니다 (뭐 Lil Cherry & GOLDBUUDA가 자주 음악을 내진 않으니까......?). K팝 쪽 작업이 많기 때문에 멜로디 전개가 확실하고 감각적인 음악일 줄 알았는데 들어보니 그렇진 않습니다. "Faded" 같은 이모 힙합의 경우 워낙 몽환적인 구성이라, 사실 비트가 잘 들리진 않았던 것 같네요. 참여진을 고려할 때 의미가 있는 노래들일 수 있지만, 아직 Devine Channel이 만드는 힙합 비트는 확실한 인상은 없습니다. 이후로도 자신만의 음악을 보여주는 기회를 계속 만든다하니 일단은 지켜봐야겠습니다.



(7) East Frog & Enzzx - On My Groove (2020.9.5)


 이 시리즈에서 몇 번 다룬 적 있던 East Frog에 대해 아신다면, Enzzx라는 이름이 낯설어도 왠지 61MF 크루 소속의 누군가일 거 같다 라고 추측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역시 작년에 EP 하나를 냈던 경력이 있는 래퍼입니다. 마찬가지로 Dynasty Music 소속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서로 다른 스타일의 둘이 만났다는 식으로 앨범 소개가 되어있는데, Enzzx 음악을 잘 몰라서 여기에 맞장구를 치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East Frog가 이때까지 냈던 노래를 떠올려보면 이번 앨범과는 많이 차이가 났었죠. 개인적으로 장기하가 연상되는 한량 바이브가 제일 기억에 남았는데, 거두절미하고 "On My Groove"는 오토튠 싱잉 랩을 주축으로 삼은 트렌디한 앨범입니다.


 겉으로 눈길을 잡아끌 요소가 적을지 몰라도, 상당히 안정적으로 만들어진 앨범입니다. 일단 둘의 싱잉 랩이 깔끔하게 잘 빠졌습니다. 소재 선택이나 가사를 풀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고요. 특히 좀 느린 템포를 가진 감성적인 곡들의 비중이 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쳐지지 않게 하는 건 이들의 랩이 균형을 잡아주는 덕택이 큽니다. 심지어(?) 이센스윙스도 본인 최근 앨범 "일반인"보다 요번 피쳐링에서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것 같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이 걸린다면, "Warning!"의 가사가 거리 두기 관련한 얘기로 진행되는게 좀 뜬금 없어 보였다는 점과, 마지막 곡인 "Friends"가 워낙 짧은 곡인 탓에 앨범 마무리가 애매해보였다는 점 정도겠습니다. 사소한 점을 끄집어내 트집 잡아야할 정도로 "On My Groove"는 준수한 수준의 앨범입니다. East Frog의 스타일은 기존의 것이 좀 더 개성적이랄 수 있지만 더 매력적인 건 이번 모습 쪽인 거 같습니다. 제게 61MF라는 크루는 왠지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게 되는 집단인데, 적어도 이 두 아티스트는 그런 선입견을 버리고 앞으로 더 진지하게 들어봐야할 거 같습니다.



(8) Dish Crimson - Anonymous Traveler (2020.9.5)


 Dish Crimson은 이 시리즈에서 C. Cle의 "Lowrider" 앨범을 다룰 때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2018년 결성된 힙합 밴드로, 락 밴드의 구성에 프론트맨으로 래퍼 C. Cle이 있으며, DJ인 Breakson도 멤버에 들어가있죠. 결성 이래로 꾸준히 싱글만 내왔던 그들이 첫 정규를 발표하였습니다. C. Cle의 첫 정규가 발표된지 1년이 조금 넘은 시간만이군요.


 이번 앨범에는 그들이 과거 발표한 싱글 네 곡의 리마스터링 버전을 포함한 9곡이 실려있습니다. 이중 타이틀 곡인 "불붙여"는 앨범의 포문을 여는 역할로, 처음부터 강렬한 기타 사운드로 락 밴드 구성의 장점을 한껏 과시합니다. 곧 이 분위기는 어쿠스틱하고 감성적으로 변했다가, 다시 하드해졌다가, Kumapark가 연상되는 연주 등으로 다양하게 변합니다. 밴드로써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산만하지 않고 나름 통일성 있게 앨범이 흘러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결국 C. Cle에게 있는 거 같습니다. "Lowrider" 때도 얘기했듯 C. Cle의 랩은 생각보다 잔잔합니다. 적당한 분위기에서는 좋은 조합이지만, 강렬한 곡들에서는 연주에 묻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Demon" 정도의 톤 운용을 더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허나 이 "Demon"을 포함해서, 애매하게 시도되는 트랩 스타일의 플로우도 뭔가 상당히 어색했습니다. 이런 음악에서 맥 없는 목소리로 랩을 한다면 좀 더 정공적인 플로우와, 노래 내에서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는 사운드 작업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밴드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였지만, 가장 중요한 랩이 메인이 되지 못하고, 뭔가 모를 촌스러움이 서려있는 앨범이었습니다. 모르겠네요, 라이브를 보면 생각이 바뀔까요? 확실히 목소리 뿐만이 아닌 제스처와 카리스마가 동반되어 존재감 어필에 성공한다면 훨씬 좋은 청각적 경험이 될듯도 합니다. 한편 "Lowrider" 앨범에서 보였던 인생에 대한 성찰과 따스함은 본작에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가지고 있는 재능과 포부가 다음 작품 - 솔로건 Dish Crimson이건간에 - 에서는 좀 더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9) 전산시스템오류 - 비정규앨범 (2020.9.1)


 최근 Deepflow와 OPCD (오픈창동)가 주최한, "Founder"를 소재로한 랩/비트 컴피티션이 있었습니다. 이 정도 크기의 컴피티션은 좀 오랜만이라 은근 관심이 있었는데, 랩부분 우승팀이 '전산시스템오류'더군요. 마침 신작들을 훑다가 특이한 이름 때문에 눈에 들어온 적이 있었기에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전산시스템오류는 신진, Credit, Ian Choi로 이루어진 3인조입니다 (여담으로 예전에 신진이란 여자 래퍼가 있었는데... 10년도 더 된 옛날 얘기). 이중 신진과 Credit이 래퍼, Ian Choi가 비트메이커와 보컬의 역할을 하고 있죠. 열심히 정보들을 찾아보면 이 셋은 팀 결성 전에도 나름 솔로곡들을 만들어왔던 것으로 보이며, 신진과 Credit은 각각 믹스테입 한 장씩이 있고 특히 신진은 '전태일힙합음악제' 경선의 최종 3인까지 오른 경력이 있군요. 결성 전 발표한 곡들을 보면 Ian Choi와 Credit이 먼저 알고 지낸 사이고 이후 신진이 합류한 거 같은데 정확치는 않습니다.


 팀 이름부터 범상치 않긴 했습니다. "비정규앨범"은 트렌드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전산시스템오류만의 길을 우직하게 간 앨범입니다. 두 래퍼의 가사에는 독설적이랄만큼 씨니컬한 어조가 서려있으며 이를 Ian Choi의 비트가 조화롭게 감싸줍니다. 로파이한 Ian Choi의 비트는 난해하거나 엄청 실험적인 건 아니나 적지 않은 무게감, 공간감을 품고 정해진 템포대로 움직이는 것이 상당한 아우라를 품는 것 같습니다. 이 위에 신진과 Credit의 랩이 처음부터 끝까지 본연의 텐션을 가지고 얹혀지는 게 인상적이었고요, 쉬운 작사 스타일이 아님에도 서로가 유사성을 가지고 잘 어울리는 것도 장점이랄만 합니다.


 특히 Ian Choi의 보컬이 나머지 둘의 랩과 어우러지는 방식도 인상적입니다. 두 래퍼의 랩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일단 공격적인데, Ian Choi의 경우 히피는 집시였다의 Seb을 연상시키는 차분하고 느릿한 보컬이라 얼핏 둘을 이어붙일 방법은 없어보입니다. 그러나 "MISSING"에서처럼 과감히 비트를 바꾸어 반전을 자아내며 보컬을 등장한다든지, "FuckTheSpaceOpera"처럼 두 래퍼가 날카로움을 유지하면서 차분함에 맞물리는 벌스를 썼다든지 하는 식으로, 앨범 내내 셋이 어우러지지 못했다고 느껴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만, 이런 느린 비트에 여느 때와 같은 랩을 하는 것이 적절한 선택인지는 좀 더 많은 트랙을 접하며 판단해야할 것 같습니다.


 팀의 구성이나 강한 인상을 남기는 스타일 등에서 저는 반무가 연상되었습니다. 한 가지 아쉽다면 반무와 달리 전산시스템오류의 신진과 Credit은 얼핏 들어서는 워낙 비슷한 랩스타일을 갖고 있어, 래퍼끼리의 조화가 유사성에서만 나온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상당한 잠재력을 지닌 신인을 만난 거 같아 즐겁습니다. 이후로 이어질 활동에서도 그 힘을 계속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0) Pateko - Love U God (2020.9.7)


 워낙 Wayside Town에 허슬하는 비트메이커가 많아 비교적 이름은 덜 알려졌지만, Pateko 역시 Wayside Town에 속해있는 또 한 명의 비트메이커입니다. PABLO MU2IK 멤버들 앨범 전곡 프로듀싱이 많아서 PABLO MU2IK 소속인가... 하기도 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Love U God"은 네 곡 짜리 작은 앨범으로, 제목과 달리 종교적인 앨범은 아닙니다 (...). PABLO MU2IK으로 접했다보니 우울하고 어두운 색이지 않을까 했는데, 밝은 분위기의 곡들로 이뤄져있고, 제목 때문인가 살짝 가스펠 느낌도 나는 거 같습니다. 어찌 보면 Leellamarz가 한창 MARZ 2 시리즈를 내던 시절의 그 느낌이라 하면 정확할지도요.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곡들이긴 한데, 그 이상의 매력은 찾기 쉽지 않습니다. 비슷비슷한 분위기로 만들어져있기도 하고요. 그나마 ASH ISLAND가 밝은 분위기의 곡을 하는 건 좀 신선했던 거 같습니다. 이런 분위기의 싱잉 랩을 좋아하신다면 들어볼만한 앨범이지만, PABLO MU2IK 앨범들에서 느꼈던 Pateko의 매력은 좀 희미했던 거 같습니다.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NO
Comments
아직까지 남겨진 코멘트가 없습니다. 님의 글에 코멘트를 남겨주세요!
 
글쓰기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