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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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0 19:43:16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마지막 믹테 녹음을 요즘 진행 중인데 금방금방 목이 나가네요. 원인을 생각해보니 코로나 때문에 노래방을 못 가서... 역시 코로나는 이런데도 영향을 끼칩니다ㅠㅠ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STAREX - The Starex Tape (2020.7.16)


 한국 힙합씬의 게임 체인저를 논할 때 저는 의외로 STAREX 크루가 목록에 들어가기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총과 마약, 돈 얘기를 서슴없이 하는 기믹과, 예쁘장한 사운드(?) 위 깔리는 오토튠 싱잉 랩은 트랩 뮤직의 한국식 대안 중 하나를 제시했고, Futuristic Swaver aka Laptopboyboy의 허슬에 힘입어 은근히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하나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다만 붐뱁충인 저에겐 특히 그들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획일화가 견디기 어렵기도 했던게 사실입니다. 이 시리즈에서도 불만을 여러 차례 토로한 적 있고요.


 때문에 컴필레이션 "The Starex Tape"은 듣기 전부터 재미 없는 앨범일 거 같다는 우려를 안겼는데, 결론적으로 생각보다 괜찮은, 의미 있는 앨범이었습니다. 비슷하게 들리던 이들을 한데 모아 들으니 생각보다 각자의 개성이 있고 장단점이 들리더군요. 특히, Futuristic Swaver가 생각보다 크루 내에서 많이 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거칠거칠한 톤도 그렇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 밀도 있으면서도 정박으로 쪼개진 박자와 정형화된 플로우 등이 꽤 대조적으로 들리더군요.


 위에서 언급한 획일화의 제일 큰 원인 중 하나는 Laptopboyboy의 비트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앨범은 예상대로 Laptopboyboy의 프로듀싱이 많지만, 또 예상과 다르게 외부 비트를 많이 썼습니다 - 물론 My Homie Tar, Benchpress180 같은 비교적 덜 알려진 크루 멤버들의 비트도 들어볼 수 있었죠. 저는 Laptopboyboy 비트는 여전히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 잘 들어보면 코드, 박자, 악기 다 다르게 쓰는 거 같은데 왜 이렇게 항상 똑같은 느낌인지 모르겠어요. 앨범 후반부 4트랙 정도 몰려있는 부분은 여지없이 좀 지루하게 느껴지더군요. "Lightspeed!"나 "WYGD" 같은 새로움이 뒤에도 좀 있었으면 좋았을 거 같습니다.


 앨범에서 새로운 발견은 Northfacegawd입니다. "Blue Dream 2"로 접하긴 했지만, 그때보다 더 많은 모습을 이번 앨범에서 볼 수 있었고, Uneducated Kid와 비슷한 포지셔닝 같으면서 독특한 목소리 때문에 좀 더 관심이 가는 캐릭터 같습니다. !magnic!이나 Uneducated Kid 등 상반된 파트너와의 콜라보에서 전부 자연스러운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한편 Uneducated Kid도 Yng & Rich 들어가기 전의 raw함이 슬쩍 보여서 역으로 신선했습니다.


 그저 비슷비슷하다 라는 말로 일괄하던 저에게 "The Starex Tape"은 그들의 활동을 정리하고 더 알아갈 수 있게 해준 의미 있는 이정표입니다. 끝까지 '비슷비슷하다'라는 평가를 완전히 떨칠 수 없는 건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다만 제가 어떻게 생각하든, 어느덧 이들이 한국 트랩씬에 끼친 영향력과 발휘하는 존재감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다다른 듯합니다.



(2) Damndef & LOBOTOME - Stand-Alone System (2020.7.16)


 Damndef는 한국 씬에서 본격적으로 그라임을 하는 거의 유일한 래퍼로 유명합니다 - 곡 한두 개씩 그라임을 하는 래퍼들은 많았지만 아예 자신의 전공 분야(?)로 삼은 뮤지션은 드물죠. 요즘 것 잘 못 따라가는 늙은 리스너로써 그라임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이해를 못하지만 (Damndef가 직접 힙합엘이에 올린 그라임, 드릴 설명글이 아주 큰 도움이 됐습니다), 얼추 제가 이해하기엔 빠른 BPM의 EDM 계열 비트 위 얹혀진 타이트한 랩 정도의 인상이 납니다. 사실 그라임이란 장르가 지정되기 전부터도 이런 느낌의 음악은 조금씩 있어왔기에 그 자체가 그리 낯설진 않습니다. 들은 것을 바탕으로 직접 그라임의 매력을 논한다면 숨가쁘게 달리는 템포 위 깔린 랩의 타격감이 있겠습니다. 이런 면에서, Damndef & LOBOTOME의 이번 앨범은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비트는 충실하게 그라임의 정의를 따르기 때문에 어찌 보면 전부 비슷비슷하게 들립니다 - 이 부분은 제가 그라임을 다양하게 듣지 않았기 때문에 장르의 스펙트럼에 대해 어느 방향으로든 부적절한 평가를 내리면서 감상한 결과일지도 모르겠군요. 다만 LOBOTOME가 제가 알던 전 Overclass의 Lobotomy가 맞다면 (이 부분 아직도 확신을 잘 못 하겠습니다. 맞겠...죠?) 여러 아이디어가 더 있었을텐데란 아쉬움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라임의 정의를 잘 따른 Damndef의 랩은, 플로우의 설계에서 비슷한 어프로치를 취하고 있어 비슷비슷한 느낌이 많이 납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랩의 일부는 Damndef 본인이 감당 못하는 느낌이 난다는 점입니다. 박자를 겨우 따라잡는 느낌이 나는 부분이나, 빠르게 랩하다보니 발음이 뭉개져버리는 부분 등등. 특히 후자는 타격감을 매력으로 생각했던 이 장르에 있어 치명적인 단점이었던 거 같습니다. 동시에 Damndef 발성이 그렇게 세게 때려주지도 못하고요. "Industrial Revolution" 등, 가사에 들어간 비유 중 재밌는게 많았는데 (비록 조금 간결하게 해줬으면 하는 느낌은 있습니다. 이 역시 가사를 압축시켜 밀도를 높이고 타격감을 올려줬으면 하는 기대에서 비롯된 겁니다) 랩 때문에 잘 살지 못한 거 같아 안타깝습니다.


 확실히 '빠른 랩'으로만 치부하기엔 제대로 된 그라임은 생각할게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피쳐링진 중에서 제가 원하는 그림이 나온 건 행주 뿐이었던 거 같아요 - 위에서 그라임 잘 모른다고 하고 '원하는 그림' 운운하는게 어불성설이긴 합니다만... 생소한 장르를 택하여 그걸 알리고자 하는 의도는 응원하지만, 진정으로 매력을 설득하기엔 부족한 데가 아직 좀 느껴집니다. 장르를 구분짓는 특성을 논하기 전, 좀 더 기본적인 부분에서요. 앨범 발매 전 싱글들에서도 조금씩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걸 확인하게 된 거 같아 좀 씁쓸하군요. 다음 작품에선 좀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길 바랄 뿐입니다.



(3) Superbee - black SUPERBEE (2020.7.17)


 일찍이 "Rap Legend 2"를 낸 후 수퍼비는 어느 인터뷰(였는지 뭐였는지..)를 통해 랩을 잘 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줄었으며, 오토튠 싱잉에 대해 관심이 커졌다고 밝힌 적 있습니다. 자연스럽게도 새 앨범 "black SUPERBEE"는 오토튠 싱잉을 하는 수퍼비를 담았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은 물론 아니지만, 또 온전히 여기에 집중된 작품은 처음 듣는 거 같습니다.


 제목처럼 담겨있는 감성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전작에서 보여준 비장함과 연결이 되면서 수퍼비가 초반에 보여준 'happy boy'와는 상반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토튠을 사용한 것만 놓고 따져보면, 일찍이 "양아치" 같은 데서 보여준 것에 비해 딱 멜로디를 즐길 수 있을만큼만 담백해졌기 때문에 분위기나 사운드 때문에 귀가 피곤해질 일은 없는 거 같습니다.


 한편 수퍼비의 싱랩은 다른 여느 트래퍼들의 싱랩과 발성 면에서 차별화됩니다. 원래도 스킬풀하면서 단단한 랩을 구사했던 그였고, 이런 랩 스타일의 특징이 이번 싱랩에도 고스란히 살아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여타 트래퍼들보단 좀 더 딴딴하고 무게감 있으며, 스킬적으로 화려합니다. 가끔은 이것 때문에 멜로디가 안 사는 (즉, 싱랩이 아닌 그냥 랩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적은 있지만 괜한 트집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의외의 좋았던 점은 피쳐링진. 피쳐링진들이 자신의 능력을 유감 없이 발휘한 앨범입니다. 특히 호미들의 이런 느낌의 랩을 꼭 듣고 싶었는데 갈증 해소를 제대로 해주었네요. Uneducated Kid의 벌스도 그의 커리어로 확대시켜 보아도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마무리 "32 Joints Finish"까지 수퍼비는 랩을 잘 한다는 걸 몇 번이고 거듭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Uneducated Kid와의 콜라보 앨범 당시 오토튠 쓰는 걸 들으면서 확실히 랩을 잘 하니까 싱잉 랩도 듣기 재밌다고 느꼈는데, 당시보다 훨씬 내실을 갖추어서 앨범으로 뽑아낸 것 같습니다. 길이나 구성 때문에 EP 느낌이면서 내용물은 정규처럼 상당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것 같네요. 화려하기만한 알맹이가 없다는 비난들이 이따금 보이지만, 귀에 어필시키는 능력은 저는 인정 안 하고는 못 배길 거 같습니다.



(4) Loxx Punkman & Conda - Grind House-Explosive Show (2020.7.18)


 본래 "Grind House"는 6월 5일 Pt.1, 22일에 Pt.2가 "SPIT!"이라는 앱을 통해 공개되었던 앨범입니다. 7월 18일은 음원 사이트에 통합본으로 발매된 날짜이며, 이때 각 파트의 마지막 트랙이 된 스킷 하나와 보너스 트랙 하나가 포함되었습니다. 원래 발표 날짜를 발매일로 해야 맞지만 어쨌든 두 트랙이 늘어서 수록곡이 바뀌었고, 제목이 Grinde House에서 "Grind House"로 바뀌었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이게 음원 사이트의 오타인 줄 알았는데 Loxx Punkman의 인스타에도 Grind House로 되어있더군요) 7월 18일을 날짜로 표기하였습니다.


 SPIT! 독점 공개 당시 앱을 새로 까는 것에 심한 거부감과 귀차니즘을 느껴 안 듣고 지나갈 뻔했지만, 결과적으로 들을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다행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The Red Apple" 발매 당시 Deepflow는 그의 음악의 빠꾸 없는, 걸걸하고 지저분한 느낌을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에 비유하여 설명하였었죠. "Grind House"는 "The Red Apple"에 비해 그 느낌이 훨씬 극대화되어있습니다. Loxx Punkman에서 기대하던 색깔이 드디어 나왔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를 실현한 데는 두 가지 파트로 나눈 구성이 한몫한 바 있습니다. Loxx Punkman은 거친 배틀 랩으로도 유명했으며, 이는 공격적이라는 것과 동시에 상대에게 정신적 대미지를 안기는 센스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전 트랙에 깔려있지만, Pt.1은 좀 더 암울하고 무거운 트랙들인 반면, Pt.2는 흥겨우면서 유머러스함이 넘칩니다. 결론적으로 이 구성이 Loxx Punkman의 매력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때려부술 것 같은 느낌으로 이를 가는 듯한 랩을 선보이던 그가 Pt.2에서 능글맞게 여자를 꼬시고 외계어를 뱉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Pt.2가 좀 더 취향에 맞았어요.


 당연히 Conda의 능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일찍이 Auvers와 BLNK 앨범에서 증명해온대로, 그는 두 가지 파트에 맞는 두 가지 색깔을 정확하게 구현해냅니다. 놀라운 것은 샘플링이 쓰이지 않았다는 것 (인스타에 올라온 Pt.1 관련 썰에만 써있긴 한데 Pt.2도?). 그럼에도 만들어낸 칙칙한 질감은 붐뱁충을 흥분케 만들기 충분합니다. Pt.1에서 피아노를 주 악기로 썼다가 Pt.2에서 악기를 다양화시킨 것도 재밌습니다. 그냥 Conda는 저에겐 이제 믿고 듣는 프로듀서입니다.


 이때까지의 Loxx Punkman 앨범은 에너지가 있는 건 알겠는데 그게 왠지 갑분싸스러운 방향으로 흐르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게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습니다) 이번엔 딱 정확히 가려운 데를 긁어준 것 같습니다. 흠을 잡으려면 어떤 걸 잡을 수 있을까요 -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세련되게 표현하지 못한 것 (이를테면 발음, 박자 상관 없이 내달리듯)? 그것 역시도 그의 의도를 표현하는 방식의 일부였다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시원한 앨범을 만났네요. 부디 이번 앨범이 더 멋진 것들을 가져올 원동력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5) Nini Blase - 변절자 (2020.7.15)


 오랜만에 보는 이름입니다 - 지난 작은 EP 이후로 9개월이 흘렀더군요. 첫번째 EP와 두 번째 EP가 달랐듯 이번 앨범도 전혀 다른 컨셉을 취하고 있습니다. 1992년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음란물 선고를 받으면서 체포되었고, 끝내 우울증에 자살로 끝을 맺게한 '마광수 필화 사건'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때문에 "변절자"는 아주 분명한 서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섹시 댄스곡'을 연상시키는 "뷔페"는 1번 트랙으로써 이번 앨범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짓고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씹선비즘"과 "변절자"로 Nini Blase를 '속단'했던 사람들을 꾸짖고 있죠. 하지만 그녀는 결국 "조서"를 작성하게 되고 (격한 기침은 그녀의 병들어 초라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장치 같습니다. 혹은 하기 싫은 말을 하면서 올라오는 구역질을 대체한 거 같기도 하고요), 백조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부르는 노래라는 "Swan Song"으로 결말을 짓습니다. 실제 사건이 작가의 자살로 끝나듯 "변절자"의 끝도 비극적입니다.


 앨범마다 인상적인 컨셉을 갖추고 그려내는 능력이 있는만큼, 이번 앨범에도 흥미로운 장치가 많습니다. "뷔페"를 제외하면 그녀의 어조와 단어들이 자못 비장하게 그려져있어, 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2, 3번 트랙이 가벼운 트랩 비트의 일인자(?) Laptopboyboy와 Eddy Pauer가 만든 비트라는 것도 어떤 장치로 느껴졌습니다 - 대개는 자기 자랑을 하고 슉 지나가는 곡 위에 투사로써 자신을 담은 것 역시 의도적인 '변절' 같은 느낌이더군요.


 이런 흥미로운 장치들로 인해 꽤 재밌는 경험을 안겨준 앨범입니다. 다만 들리는 것만 따질 때는, 오토튠 멜로디가 다소 매끄럽지 않게 적용된 부분이 있는 거 같습니다. 이 역시도 아이러니를 연출하는 부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의도했을 비장함이 오토튠에 의해서 깎이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더불어 "변절자"에 참여한 절친 Swervy 가사가 상대적으로 얕은 자기 자랑에만 머문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장의 작은 EP를 통해서 원하는 그림을 축으로 앨범을 만드는 능력은 보아왔지만 (두 번째 EP는 조금 약하게 듣긴 했어도), 감질맛만 나게 하는 거 같아서 아티스트 자체에 확 몰입은 아직 안 되네요. "Prototype" 때의 임팩트는 아직도 남아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다음에는 조금만 더 큰 그림을 그려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실 그보다, 일단 이름을 좀 자주 봤으면 하네요.



(6) 1060 - 독립시행 (2020.7.19)


 1060은 Mighty Fine 크루의 멤버로 2016년부터 소소하지만 꾸준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래퍼입니다. 실은 이 시리즈에서도 몇 번 다뤘고, 개인적으로 "IDWY"를 들은 이후에는 흥미가 떨어져 더 얘기를 꺼내지 않았던 바 있죠. 그 사이에도 그의 활동은 계속 되어 개인 및 Mighty Fine 크루의 싱글과 Coulslaw와의 콜라보 EP 시리즈 "Young Things"의 신작이 나왔지만, 그런 이유로 체크는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오랜만에 본인의 솔로 EP가 되었고, 오랜만에 찾아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사이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그동안 꼽았던 문제는 벌스에서도 훅에서도, 랩에서도 노래에서도 같은 톤으로 일관하여 지루함을 주는 점, 템포가 조금만 빨라지면 박자를 따라가기 급급한 느낌이 드는 점, 노래 부분이 답답하고 깔끔하지 않은 점 (본래 톤이 약간 걸걸한 데가 있기 때문에) 등이 있었는데, 이런 단점들은 이번 앨범에서도 거의 다 찾을 수 있습니다. 박자 문제는 "독립시행"의 훅, 노래는 "Better Late Than Never"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 같군요.


 그래도 그나마 전보다 낫게 들은 건, 톤이 좀 더 안정해졌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들은 건 뭔가 너무 경직된 느낌이 있었는데, 그래도 전보다는 더 편하게 내는 것 같아요. 덕분에 아주 살짝 운용도 가능해진 거 같고요. 하지만 여전히 대체로 같기 때문에, 첫 두 트랙 정도까지는 괜찮아도 세 번째 트랙부터는 피로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장점으로, 비트가 전에 비해 훨씬 본인에 맞는 것으로 초이스된 거 같습니다. 이런 무난한 템포의 소울풀한 샘플이 들어간 곡이 다른 곡들보다 더 어울리는 거 같아요 - 말했듯 박자를 급하게 타는게 단점 중 하나니까요.


 순수한 마음가짐을 담아내는 가사는 그의 앨범에서 늘 보였던 부분 중 하나입니다. 전곡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낙관적이고 열정적인 태도는 듣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칠만큼 강한 거 같습니다. 맞는 말이죠, 독립시행이라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 아직까지 제게 만족스럽게 들린 음악이 없더라도, 의지만은 언제까지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7) Flavordash - Heart to Dirt (2020.7.20)


 STAREX 컴필이 발매된 후 처음으로 앨범으로 돌아온 건 Flavordash로군요. 그동안 여러 활동이 있었지만 솔로 앨범은 "Meteor" 이후로 오랜만인 거 같습니다. 기억 속의 Flavordash는 전형적인 STAREX 트랩 스타일에서, 다른 멤버보다 조금 더 노래의 비중이 큰 래퍼 정도로 생각을 했었는데, "Meteor"와 비교하자면 이번 앨범은 그 색깔을 더 뚜렷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그저 단순히 싱잉 랩으로써의 노래와, 진짜 노래로써의 노래의 차이와 비슷하달까요. 무엇보다 사운드가 훨씬 풍부해져서 듣는 재미가 더 있었습니다. 프로듀싱도 그렇고 (Dayrick이란 이름이 점점 기억에 남고 있네요), 피쳐링으로 참여한 둘도 중간중간 신선한 매력을 줬던 것 같습니다. Flavordash의 퍼포먼스는 크게 차이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배경이 있어서 좀 더 본인의 목소리와 멜로디에 집중해서 들을 수 있던 거 같아요.


 개인적인 취향으로 여전히 무슨 말인지 전달이 안 되는 영어 가사는 싫어합니다 (근데 최근에 이분 영어 강사라고 들었는데 제가 갑자기 쫄리네요;). 그래도 이런 류의 앨범은 가사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듣게 되다보니 덜 신경 쓰였습니다. 평범한 트랩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은 듯하지만 이번 앨범 감상은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경험으로 남을 거 같습니다.



(8) LOLLY - No Suicide (2020.7.19)


 저는 아직도 LOLLY에 대한 정보를 정확하게 갖고 있진 못합니다. 하지만 전작 "A.S.H.A."를 들은 이후, 은근하게 LOLLY와 '관련 단체' Webside의 이름을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었고, 앨범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지면서도 왠지 LOLLY가 대단한 인물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앨범으로 그 의심(?)을 확인하고팠던 와중에 새 EP가 나왔습니다.


 LOLLY를 트랩 래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 앨범 (그리고 듣는 김에 스치듯 들어본 전작)을 들어보면 한 가지 장르로 규정할 수는 없는 듯합니다. 드럼 루프나 템포를 가지고 음악적으로 따질 순 있겠지만, 한 가지 바이브만 갖고 있는 래퍼는 아니네요. "A.S.H.A."에서도 전반부와 후반부 느낌이 달랐듯이 말이죠. 동시에 편하게 낸듯하면서도 딥한 바이브 - 특히 전작보다 더 심오해진 가사가 그렇습니다. LOLLY의 차별화되는 포인트를 논하자면 이 묘한 딥함을 꼽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번 포스트에도 적었던 톤 문제가 다시 떠오릅니다. 글쎄요,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도 있을까요? 전체적으로 현장에서 랩하는 걸 녹음한 듯한 raw함이 꽤 많이 배어있어요. 톤 자체도 꾸미지 않은 느낌에 박자나 발음이 나간 부분도 들리고, 중간중간 애드립이 녹음이라기보다 주변에서 추임새 넣는 느낌으로 들어가있거든요. 이 느낌이 어떤 곡 ("Anti Society" 같은)에선 어울리지만, 어색하게 들린게 개인적으론 더 많았던 거 같습니다. "Resistance" 같은 곡은 꽤 톤에 힘을 많이 준 편이라 잘 들었지만, 이걸 계속 지속하기엔 목이 많이 힘들거 같고요.


 전체적으로 특별함이 없진 않지만, 개운치 않은 맛이 있는 앨범입니다. 특히 마지막 트랙의 피쳐링진은 개선의 여지가 상당히 많아 보였어요 - 미소나지의 경우는 이제 첫발을 딛는 신예 래퍼라고 되어있는데, 굳이 정식으로 발표되는 앨범에 참여시켰어야 하는 의문이 듭니다. LOLLY 본인의 경우 저 raw함이 매력적인 raw함으로 후에 어필할 수 있을지를 두고 봐야할 거 같습니다. 이론적으론 트렌드의 대안이 될 순 있대도, 아직은 확신이 들진 않는군요.



(9) MODO - 蟲 (2020.7.20)


 MODO는 Korean Psycho Crew 및 Underbar라는 크루에 속해있는 래퍼입니다. 작년에 막 음악을 시작한 루키라고 볼 수 있으며, 아마 MIC SWG 시즌 5의 Open Mic 코너를 통해 이름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Qim Isle을 연상시키지만 그와는 또 다른 유니크한 목소리가 눈을 사로잡았죠. 그런 그가 첫 공식 작업물부터 정규 앨범을 내는 과감한 행보를 보였으니 그것이 "蟲"입니다.


 앨범 제목인 '벌레'는 앨범 가사 곳곳에서 등장합니다. 여기서 벌레는 기생충의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대개 하찮은 존재를 상징하는 장치이며 그의 열등감을 표현하는 장치로 쓰이고 있습니다. 한 곡을 제외한 전곡을 프로듀싱한 Jasin의 비트와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벌레' 외에도 여러 가지 단어 선택이나 구절 등에서 서로 이어져있습니다. 그래서 "蟲"은, 완전히 분위기가 바뀐 10번 트랙을 제외하면 하나의 커다란 고해로 뭉쳐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독특한 것은 큰 무기가 되지만 다루는 방법이 까다로울 때가 있습니다. MODO의 스타일이 그런 예인 것 같습니다. 날카롭게 찌르는 목소리가 10트랙 내내 듣고 있기엔 피곤할 수 있는 것도 문제지만, 운용에 대한 노력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탈출구"에서 일상적인 소재를 끌어올 땐 다른 트랙의 부정적인 토로와는 다른 어조였다 생각해요). 다른 부분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플로우가 대부분 세네 글자씩 모아 휘릭 발음하는 비슷한 패턴으로 곡, 아니 앨범 전체에서 흘러갑니다. 가끔씩 다른 플로우가 들긴 하지만 의미 있는 변주라고 느끼기엔 MODO 본래 랩의 색이 너무 셉니다. 이런 톤과 랩 플로우는, 왠지 그가 유니크함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자신을 몰아붙인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가사적으로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의 가사는 이런 분위기의 곡에서 으레 예상할 수 있는 난해한 축에 속하지만, 마냥 함축적으로 썼다고 표현하고 넘기기엔 어휘가 한정적이고 라임이 단순합니다. 유사한 얘기들이 많아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위에서 언급했던 '하나의 커다란 고해'라는 얘기는 유기성 면에서 좋은 뜻일 수 있지만, 트랙 간의 차이가 없고, 몰입시킬만한 기승전결이 약했음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비슷한 식으로 임팩트를 만들고 전개되는 Jasin의 비트도 한몫을 했던 거 같고요.


 결론적으로 MODO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갖는 건 성공했지만, 이에 어울리는 포장을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 사운드클라우드나 MIC SWG 때의 랩을 보면 그렇게 패턴의 폭이 좁은 거 같지도 않은데, 의도적으로 단조롭게 만든 걸까요? 경직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결과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는 게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쉬움을 접고 다음 앨범을 기다려보겠습니다.



(10) Sycho, Od Rhomp - SOUSSTANK (2020.7.22)


 기대만큼의 인지도는 아니었지만 대학 힙합 동아리를 대상으로 한 컴피티션 프로 "내 전공은 힙합"은 유튜브와 VLive를 통해 25화에 걸쳐 방영된 바 있습니다. 참가자들의 트렌드에 부합한, 생각보다 획일화된 스타일에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참가자가 있었으니 경희대 국제캠퍼스 동아리 '래빈'의 조순영이었습니다. 그는 본래 Super Rookie Challenge 참여 경력 및 "HASHTAG"라는 크루를 통한 공연 활동을 해오던 래퍼로, 이번에 Sycho라는 본래 랩네임으로 크루 멤버 Od Rhomp와 함께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저마다 빡센 모습을 보여주려고 경쟁하던 프로그램에서 Sycho는 탄탄한 발성과 센스 있는 라임 및 억양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랩을 펼쳐왔고, 이 앨범에서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톤을 어느 높이로 조절하든 파워가 줄지 않을 뿐더러, 딱딱하게 쪼개는 발음부터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억양까지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 뱉어대는 랩스킬은 루키의 것이라는 걸 감안할 때 놀라운 수준입니다. 특히 "Fast & Furious" 벌스에서 마지막으로 갈 수록 텐션을 올려가는 모습이 제일 인상적이네요.


 함께 참여한 Od Rhomp도 센스는 괜찮아요. 다만, Sycho에 비해 조금 더 어려운 발성을 요하는 로우톤을 잡고 있어서인지 군데군데 랩톤이 잡히지 않고 흔들리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그래도 완벽하진 않지만 나름의 보완이 되고, 특히 오토튠은 꽤 잘 묻습니다.


 중간에 뜬금 없이 이모 힙합 삘을 낸 "No P But B"를 제외하면 재밌게 들었습니다. 가벼운 앨범이지만 둘의 개성과 능력을 증명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며, 앞으로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잘 만든 출사표입니다. 아직 제 시선은 Sycho에게 쏠려있긴 합니다만, 크루로써도 자주 보았으면 좋겠네요.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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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Updated at 2020-07-31 00:19:00

록스펑크맨!
저도 레드애플은 기대에 약간 못 미쳤는데
기대를 가지고 들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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