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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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2 03:03:19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최근 daytona 님 글을 읽으면서도 진짜 내 껀 리뷰는 아니구나... 하고 절절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 없이 읽어주십시오 헿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Young Ill - CODE NAME: 0101 (2020.7.7)


 Young Ill은 2018년 첫 믹스테입/EP "Forever Youngill"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한 래퍼입니다 - 인스타나 앨범 소개글을 뒤져보면 이 앨범이 음악하러 상경한지 1년 되었을 때 나온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별다른 소속은 없어보이고 랩과 비트메이킹까지 맡아 조용하지만 꾸준히 음악을 만들고 있는 뮤지션이더군요.


 어쨌든 이번 앨범은 제가 Young Ill을 처음 접한 앨범이고, 자연스레 Young Ill이란 뮤지션에 대한 인상을 결정하는 판이 되었습니다. 앨범을 틀면 무거운 템포의 어둡고 강렬한 비트와 거친 목소리가 먼저 반깁니다. 느낌이 붐뱁보다는 사우스 힙합의 웅장함과 더 비슷하더군요 (장르를 말하는게 아니라 묵직함에 대한 느낌만). 주제 의식에 맞춰 깔끔하게 써내린 가사와, 거친 목소리를 한껏 활용하여 힘을 쓴 훅을 먼저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4곡 중 3곡이 본인 비트인데, 이 역시 세련되게 뽑혔고요. 사족으로 타이틀곡 "Ceremony" 뮤직비디오도 저예산 치고는 느낌 있게 뽑혔습니다.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나쁘지 않은 앨범이지만,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들이 드러납니다. 개인적인 착각일 수 있으나, Young Ill이 목소리를 편하게 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억지로 힘을 세게 준 소리는 뭔가 모르게 늘 삑사리 나기 직전 같은 위태위태한 느낌이 있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일부 곡들은 박자를 저는 것도 같고, 톤 운용이 부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데도 있어보이고요. 이러다보니 시원해야하는 내지르는 부분이 더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마지막 트랙 "6ixteen"에서 갑자기 바뀌어버리는 목소리는 이와 같은 맥락일 거 같습니다 - 컨셉에 맞춘다는 의미로 힘을 바꿔버리니 꾸며놨던 목소리가 아닌 원래 목소리가 나오면서 아예 다른 톤이 되어버리는 거죠.


 제가 기술적으로 능통한 래퍼나 레슨 선생이 아니다보니 원인은 잘 모르지만 어렴풋이 발성 때문일 거라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해결되면 훨씬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어낼 포텐이 있다 생각합니다. 위에 언급했던 문제가 제일 느껴지지 않는 깔끔한 트랙이 "향"인데, 이 곡은 비트도 느낌이 좋아 래퍼 및 비트메이커로써의 가능성을 짐작케 합니다. 늘 이런 섬세한 개선이 래퍼들에겐 제일 큰 벽인 듯합니다. 훗날에 더 인상적인 작품들을 가지고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2) ICE BOYZ GANG - 작은 실천이 큰 생각보다 낫다 (2020.7.7)


 ICE BOYZ GANG의 경우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왠지 모르게 날것의 와일드함을 기대하고 듣게 되었고, 어느 정도는 제 기대를 충족시켜준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정돈된, 차분한 느낌은 계속 깔려있었죠. 그나마 하던 음악 장르와 묻어나오는 젊음의 패기 때문에 이것이 가려져왔다면, 이번 앨범은 역으로 그 가지런함이 주가 된 듯합니다.


 쉬운 단어로 이번 앨범은 대중성이 짙습니다. 가벼운 락 비트로 문을 열어 이모 힙합 바이브로 마무리 맺을 때까지, 세 멤버는 깔끔한 멜로디 라인과 급하지 않은 플로우, 이해하기 쉬운 가사로 심상을 전개해나갑니다. 전작들에서도 느꼈지만 세 멤버는 스타일이 비슷한 데가 많아서 벌스들을 나열해놨을 때 균형이 잘 맞고 좋은 케미를 선보입니다. 듣기 편하게 멜로디 짜는 것도 어느 정도 증명된 바 있고요.


 하지만 (근거 없는 기대였을지라도) 이들의 에너지를 기대하던 입장에선 기대와 반대 방향으로 더 나간 느낌입니다. 아니, 이런 기대가 없었대도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던 거 같습니다. 사실, 어느 하나 튀지 않고 균형 잡힌 세 명의 랩이란 말을 뒤집으면 셋 다 거기서 거기인 느낌이란 뜻이고, 안정적인 후렴 후 나열되는 안정적인 벌스를 듣다보면 곡이 실제 길이보다 길게 느껴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준수한 완성도의 앨범이라 생각하지만, 확 잡아끄는 건 없는 무난무난한 작품입니다. 이것이 이번 앨범에서 취한 방향 때문에 더욱 그렇다 생각이 되어 아쉽습니다. 하지만 뭐, 리스너가 만든 허상 속 프레임 때문이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 어쨌든 이들은 처음부터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음악들을 쭉 내고 있으니 응원할만한 이유는 충분하겠죠. 



(3) Kimchidope - Twisted Emotions (2020.7.8)


 이번 앨범은 지난 "Lose Control"과 그다지 텀을 두지 않고 발표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표면적으로도 "Lose Control"과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 11트랙으로 규모가 동일하고, 프로듀싱은 DeepHartt와 BadMax만 참여했으며, 싱잉보다 랩에 더 초점을 맞춘 듯한 이모 트랩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사랑이라는 큰 주제도 동일하기 때문에 전작과 본작을 무언가의 파트 1, 파트 2로 보아도 무리는 없을 거 같습니다.


 때문에 감상 후기는 전작과 동일합니다. 약간 차이라면 "Belated" "Contact" "Ink" 같은 댄서블한 리듬을 가진 곡의 비중이 더 높아진 느낌. BadMax 비트가 살짝 더 풍성해진 거 같지만 이건 정확하진 않습니다 - 다시 듣다보니 그냥 또 루핑인 거 같기도 하고요...; 아쉬운 점도 동일합니다 - Kimchidope의 싱잉이 듣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이고 이런 스타일도 포용해야겠지만, 변주가 줄어들다보니 오토튠 비중은 평소와 마찬가지임에도 평소보다 과하게 느껴졌습니다. 조금 더 담백한 보컬이 필요한 듯합니다.


 작은 차이들을 제외하면 Kimchidope 평소의 모습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Lose Control"과의 연작이라고 생각하는게 이 앨범을 가장 잘 요약하는 듯합니다. 다른 건 차치하고, 오랜 공백 끝에 묶어두었던 곡을 푸는 기간일 수도 있으려나요. 일단은 허슬이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지켜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네요.



(4) VINXEN - 유사인간 (2020.7.9)


 굳이 인스타로 인한 구설수를 끌고 오지 않는다해도 빈첸의 음악은 늘 구설수였습니다. 자살을 옹호하는 것처럼까지 보이는 극단적인 우울한 태도와 멈블 랩 분류 속에서도 심하게 엉겨붙은 느낌의 발음 등, 사실 고등래퍼가 없었다고 하면 대중적인 선호를 받기는 어려웠을 스타일입니다. 바로 전작인 "Manta Bipolar" 믹스테입은 딱 그런 단점을 대변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이번에 나온 "유사인간"은 정규 앨범이며, 믹스테입과는 확연히 다른 무게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무게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인지되는 변화는 멜로디입니다. 모던 락 같은 화려하고 다이나믹한 밴드 세션 위로 빈첸은 이때까지보다 훨씬 경쾌한 리듬과 멜로디의 싱잉을 하고 있으며, 이는 앨범 커버 같은 네온 칼라의 감성을 전달합니다. 생각보다 멜로디 메이킹 능력이 상당히 좋다고 느꼈고, 이를 서포트해준 유수의 프로듀싱진도 가감없이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불시착" "BLIND"가 Tyler, The Creator를 연상시키는 건 좀 안타깝지만).


 여전히 빈첸은 엉겨붙은 발음으로 우울을 토해내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내세울 변이 있습니다. 곡을 적극적으로 이끌고 가는 비트 위에서 그의 불명확한 발음에 과도하게 끼얹혀진 오토튠은 하나의 악기 사운드처럼 나머지 밴드 사운드가 어우러지면서 특이한 바이브를 내는 듯합니다. 이게 가능한 건 빈첸의 감각적인 싱잉이 있어서입니다. 이 분위기 탓인지 우울을 토하는 가사도 이번에는 어느 정도 여지를 두고 쓰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굳이 "Stupid Night" "i" 같은 곡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희망이나 탈출구 (도피라도 좋습니다)에 대한 얘기가 있고, 끌어오는 소재가 더 다양해져서 물리는 감이 덜해졌다고 느낍니다. 한편으로 흐리멍텅하게 부르는 듯한 느낌이 내용과 상당히 어울리기도 했고요.


 이 모든 건 주관적인 의견이고, 사실 그의 멈블 랩과 오토튠에 대한 불호는 충분히 이해할만 합니다. 특히 멈블 랩이 가사의 전달력을 해친다는 점에서, 제가 얘기한 두 가지 장점이 상충되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앨범을 싫어할 이유는 있어보이지만, 적어도 빈첸이 한 단계 스텝업했음을 증명하기엔 충분하지 않은가 합니다. 앨범 소개글에서 그는 "i"를 제외하곤 전부 작년에 쓰인 아픈 곡들이라고 하였으며, 확실히 "i"는 앨범 수록곡 중 제일 밝은 곡입니다. 이렇게 음악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겪은 변화를 앞으로 나올 음악에서 기대할만한 이유를 충분히 품은 앨범, "유사인간"이었습니다.



(5) New Champ - 무덤에서 (2020.7.11)


 2년 전부터 New Champ의 위신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Chillin Ovatime의 사칭 사건에 본인 소속된 Fame Records의 게시판 홍보, 유튜브 조회수 조작 의혹 (은 이번 앨범 보니 실제였던듯)까지 겹치고 쇼미더머니 출연분은 조롱거리만 늘려갔습니다. 와중에 나온 앨범 "M.E."는 옹호하는 사람까지 묶어 욕을 먹을 정도로 빈축을 사기까지 했죠. 이번에 다시 들어봐도 "M.E."는 "장첸" 같은 논란의 트랙이 있을지언정 그 정도로 나쁜 앨범은 아니었지만 이미지라는 게 그런 짓을 하는 겁니다 - 제 기억에 "M.E."는 그저 지루하고 쳐지는 앨범이었을 뿐입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 "무덤에서"는 절치부심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표시합니다. 앨범 제목과 커버는 물론이고, 앨범 전반부의 트랙들은 죽음에서 돌아와 자신을 짜증나게 했던 것들을 전부 쳐부숴버릴 것을 역사적 혹은 종교적인 인물과 개념을 비유로 들어 강렬한 어조로 공표하고 있습니다. 무엇도 말릴 수 없어보이는 이 태도는 "최종판결 (Skit)"을 기점으로 하여 반성과 탄식으로 바뀌고, 앞에서 형성된 캐릭터와 합쳐 비장함으로 거듭납니다.


 전작보다 사운드적인 개선점을 얘기하는 걸 보았는데 막귀인 저는 이 부분은 논하기가 어렵습니다. 그외에 서사를 만들어 랩으로 푸는 과정은 전작과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차이라면 볼륨이 줄어들어 좀 더 밀도 있고 명확하게 이야기가 담겼다는 점, 그리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듯 장난끼를 최대한 뺐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는 새로운 모습보단 "장첸2020" "홀로코스트2" 등으로 과거의 하드코어한 모습을 적극 계승하여 예전 팬들에게 어필을 하려합니다. 그가 말한 '부활'은 예전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볼 수 있겠습니다.


 Swings의 '투머치토커' 모드를 연상시키는 산문적인 New Champ의 가사 전개는 모두가 좋아할 순 없지만 나름 개성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그의 의지만은 매우 선명하게 느껴지긴 해요. 다만 이 앨범은 매우 건조하다는 걸 유의해야합니다. 앨범 커버처럼 매우 시커멓달까요. 위에서 말했듯 장난끼를 뺀 데다 New Champ의 어조까지 겹쳐 즐겁게 들을만한 포인트가 많지 않습니다.


 예전보다 더 딱딱해진 듯한 플로우 디자인과, 때문에 더 부각되는 그의 특유의 발성법도 문제를 키웁니다. 곡 설계나 비트에서 이런 걸 보상하는 임팩트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대부분은 (아마 타입 비트라서 그런듯 싶은데) 그냥 단조롭습니다. 야심차게 데려온 크루 "D.I.D."의 퍼포먼스도 아직은 눈을 잡아끄는 정도는 아닙니다. 와중에 컨셉은 사실 극단적으로 말해 재활용이기에, 얼마나 유효할지 알 수 없지만 처음 나왔던 때 ("전시의 밤" 시기를 기준으로 잡을 수 있겠죠)보단 효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네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New Champ의 음악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다는 쪽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좋아해야한다고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긴 합니다. 한때는 그가 꽤 맛난 곡들을 썼던 걸 기억하는데 지금 남은 것은 텁텁함이 크긴 하군요. 어쨌든 D.I.D.의 컴필레이션 등 예고한 활동이 남아있으니 조심스럽게 그의 행보를 지켜봐야겠습니다.



(6) Planet Black & Shupie - STAY N' PLAY (2020.7.12)


 취미 활동처럼 보이던 Planet Black의 디스코그래피는 어느새 점점 탄탄해져가고 있으며, 그의 든든한 조력자 Shupie와 결국 콜라보 앨범을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 "Driving Playlist" 같은 걸 낼 때는 가볍고 트렌디한 음악을 했고, 지금도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점점 시도의 범위가 넓어짐을 느낍니다. 예를 들자면 오토튠 싱잉 랩에 머물렀던 초반에 비해 랩이나 싱잉의 색깔이 다양해져가고 있습니다.


 Soul Company 시절에도 Planet Black은 투박한 랩으로 여러 유수의 히트메이커 사이에서 실력적으론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 했고, 지금도 특별히 뭐가 있지는 않습니다. 앨범 전체적으로 들어볼 때 색깔을 만들고 흐름을 끌고 가는 건 Shupie라는 생각이 들어요. 앨범 전반은 특히 미니멀한 비트가 많은데, 어딘가 심심하게 느껴지는 둘의 랩의 약점이 더 노출되는 거 같습니다. 뒷부분의 타이트하고 그루브감 느껴지는 드럼 라인 위가 더 어울렸고, 특히 "Goin' Down the Street" "Ain't Got No Jewelz" 같은 곡이 Planet Black의 둔탁한 저음 톤을 잘 활용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Planet Black의 꾸준한 활동과 더욱 완성도를 갖춰가는 듯한 커리어는 보기 좋습니다. "Driving Playlist" 때만 해도 기억에 남는 것이나 다른 뮤지션과 구별되는 것을 짚기 어려웠는데, 이번 앨범에 이르러서는 어느 정도 그런 포인트들이 생긴 것 같아요. 가사 군데군데 들어간 재밌는 표현들도 눈에 띄고요 (원래 되게 텐션 세고 웃긴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Shupie에 대한 얘기는 "데슈용" 앨범 때 했던 거랑 큰 차이는 없어서 줄였습니다. 그리고 이 글도 여기서 줄입니다...



(7) Gim Goyard - Justdoitlikeme! (2020.7.14)


 꽤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싶더니, 앨범 단위로는 거의 1년만입니다. "돈보다 위" "THE RICH;;" 같은 전작들은 그의 화려한 랩스킬에 힘 입어 힘 빡 준 하드코어한 느낌이 지배적이었는데, 이번 앨범은 그에 비해 한 단계 정도 힘을 풀고 가볍게 했다는 인상입니다. 여전한 텅 트위스팅과 가사 내용을 다소 해칠지라도 기발하면서 정확한 라임 및 리듬감을 위해 돌아가는 가사들은 이런 가벼운 비트에서 더 빛을 발하며, JJK를 연상시키는 면도 있습니다 (JJK에게 레슨을 받았다고 해서 선입견이 발동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1번 트랙은 확실히 좀 유사했습니다).


 힘을 뺐다고 해서 하드한 느낌이 완전 사라지지는 않습니다만, 곡들의 짧은 길이와 장난끼가 엿보이는 가사, "나홀로 집에" 같은 곡과 뚜렷한 기승전결 없는 구조 등은 앨범 제작 의도가 무겁지는 않았다는 걸 짐작케 합니다. 너무 하드해서 듣다가 질리는 것보단 이게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라 더 반갑기도 했고요.



(8) Owen - 성장통 (2020.7.14)


 믹스테입으로써 발표된 "성장통"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앨범입니다. 우선 Cribs라는 비트메이커가 일괄적으로 프로듀싱한 비트들은 이때까지 Owen에게 듣던 스타일의 비트와 상당히 다릅니다 - 1번 트랙의 전주가 흐를 때부터 뭔가 색다른 걸 들을 수 있겠구나 하고 기대감이 커지더군요. 동시에 크레딧을 까보면 "All lyrics freestyled by Owen"이라고 적혀있습니다. 훅도 있고 나름 짜임새가 있어서 어디까지 프리스타일이라고 믿어야할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즉흥적이고 가볍게 제작되었다는 걸 뜻하겠죠.


 때문에 평소의 쫀쫀하고 타이트한 Owen 랩을 생각했던 분들에겐 실망이 클 수 있겠습니다. 이번에는 비트와 마찬가지로 랩 어프로치도 좀 다르게 들립니다. 특히, 빠른 템포를 타는 방식 - "중독" "Digital Dash" 같은 데에서 평소의 유기성 있게 흘러가던 플로우보다 2-3음절씩 끊어치는 듯한 랩이 인상적입니다. 여기에 뜬금 없이 가성을 쓴다든지, "비스트 모드"에서 레게스럽게 부른다든지 하는 재밌는 시도가 여기저기 있습니다. 평소 시종일관 진중했던 그와는 차이가 있죠. 하지만 동시에 이 앨범 역시 시종일관 진중한 Owen의 앨범이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의 충돌에서 어색함을 느끼는 분들이 좀 있는 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재밌게 들었습니다. 제가 듣는 Owen은 상당히 건조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입니다. 정규 앨범에서 보여주는 완성도나 몰입되게 하는 능력은 인정하나, 앨범 내의, 또는 앨범 간의 다이나믹함이 별로 없고 말 그대로 '그냥 듣게되는' 래퍼였습니다. "성장통"은 그의 디스코그래피 안에서 상당히 특이한 위치를 차지할 것 같습니다. 오토튠 싱잉에 대해 부정적인 분들이 많은데, 전 크게 느끼진 못 했고요. 다시 진중한 그의 음악을 듣기 전 나쁘지 않은 숨돌리기였다고 요약하고 싶습니다.



(9) Crucial Star - Hwaak! (2020.7.15)


 Crucial Star가 Starry Night이란 레이블의 대표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 본작은 두 개의 싱글 발표 후 나온 EP입니다. 앨범 소개글에는 '여름용 앨범'으로 만들었다는 듯한 글귀가 적혀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앨범이 업되고 신나는 건 아니고, Crucial Star의 전매특허랄 수 있는 편안하고 감성적인 톤이 전체적으로 깔려있습니다 (마지막 "Pardon Me?" 정도는 신나는 곡이랄 순 있겠군요).


 그래서 첫 두 곡은 그에게서 예상할만한 편안한 사랑 노래인데 반해, 나머지 곡들은 비슷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욕까지 섞여있는 강한 어조의 곡인게 재밌습니다. 어떤 부분은 언밸런스한 듯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편하게 듣는 데 무리가 없게 곡이 잘 전개되는 거 같습니다. 특히 "Pardon Me?" 같은 곡의 진솔한 얘기와 표현은 여전히 그의 팬들이 노래를 즐겁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소대로의 모습이 담긴 앨범이지만 조금 더 나아간다면 그 평소대로의 모습을 여러 가지 주제와 어조로 활용해봤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 강한 메세지에 대한 것만 잘 넘어간다면, 비트가 미니멀한 구성을 띄고 있어서 가볍고 산뜻하게 들을 수 있는 앨범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론, Crucial Star는 여름보단 가을/겨울에 어울리는 아티스트 같긴 하지만요.



(10) YANU - SHINE (2020.7.16)


 YANU가 앨범을 낸다고 했을 때 아마 대개의 사람들은 랩 앨범을 예상했을 것입니다. Halftime Records 영입 당시 Lil Boi가 그를 '랩 엄청 잘하는' 사람으로 소개하기도 했고, 쇼미 관련 활동을 포함해서 이 앨범 전까지의 활동은 래퍼로써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죠. 막상 나온 앨범은 락을 첨가한 싱잉 랩 스타일을 띄고 있었습니다.


 이 당황스러움을 극복하고 들어보면 나름 잘 뽑힌 앨범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Gang-uk이 이런 스타일의 비트를 찍는 건 처음 들어보는 거 같은데 과하지 않은 선에서 만든게 좋네요. 다섯 트랙 밖에 안 되지만 YANU는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해, 경쾌한 음악들 사이 우울하고 무거운 3, 4번 트랙을 넣어두었습니다. 상반된 분위기에도 YANU가 일찍이 랩 플로우로 보여준 리듬감을 벌스 전체에 깔아놓은 점이 좋았고, 멜로디 메이킹도 어느 바이브에든 잘 어울리게 만들어 두었습니다.


 잠깐 짱유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스타일은 Jayci Yucca가 연상되는 점이 있었습니다. '락적인 싱잉 랩'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순박하다고 해야할지, 착한 바이브가 일치하는 거 같아요. YANU의 목소리가 그에 어울리게 상당히 담백한 편인데, 이건 나쁜 점은 아니지만 또 강점이 되기도 어려운 부분이라 이번처럼 단순 랩이 아니라 노래를 더한게 좋은 전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해오던 음악이 이건지, 아니면 새로운 시도였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군요. 퀄리티가 떨어진단 생각은 안 하지만, 목소리를 멋지게 꾸며내는 법을 지금보다 더 많이 찾아놨으면 좋겠단 생각은 듭니다. 그래도 보여준게 많지 않고, 이제 막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하는 뮤지션이니 거창한 평을 내리기엔 좀 이르겠죠. 향후 나올 많은 음악들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다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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