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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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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7 18:25:38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이제 세 앨범 남았습니다. 앨범 세 개만 더 듣고 이 시리즈를... 잠깐 이 말 저번에도 했던 거 같은데.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GiiANA x B JYUN - STEREO / MONO (2020.5.25)


 GiiANA는 흑인 음악 뮤지션은 아닙니다. 그녀는 전자음악 레이블 Daily Earfood 소속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R&B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일렉트로니카 카테고리에 좀 더 어울려보이는 비트메이커입니다. 이에 따라 B JYUN은 래퍼로써가 아니라 보컬로써 콜라보를 이루었고, 전작 "BREAK THE LINE."에 비해 좀 더 노래 부르는 그의 모습이 강조되었습니다.


 GiiANA의 음악 스타일 대로 수록곡들은 일렉트로닉, 트로피컬 하우스 스타일의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B JYUN과의 케미는 아주 좋습니다 - 이미 Catchup과의 콜라보라든지, 전작 일부 트랙들에서라든지 해서 이런 장르와의 조화가 낯설지 않은 그이긴 했습니다. 오토튠으로 화음을 이뤄 겹겹이 쌓는 창법이나 글자 하나씩 스타카토로 끊어 부르는 스타일이 비트가 가진 청량감과 잘 어우러지네요. 가장 업된 트랙인 "DAISY"는 Penomeco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짧은 앨범이라 무드의 기복이 적기도 하고, 곡의 바이브나 중간에 등장하는 드랍까지 '표준적인' 구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너무 일정한 분위기밖에 없다고 푸념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진지 빨면서 듣는 앨범은 아닌 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BREAK THE LINE"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던 B JYUN의 보컬에 집중해서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GiiANA라는 저쪽 세계(?) 이름을 하나 더 알게 된 것도 반갑고요.



(2) Xbf - Transit #2 (2020.5.27)


 1편이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2편이...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기다렸다가 한 포스트로 묶어서 썼을텐데...라고 생각하는 DanceD였습니다. 들어보고 나니 그 생각이 더 많이 듭니다. 전작과 별로 눈에 띄는 차이가 없거든요. Xbf의 랩 스타일이 워낙 특징적인데다, 그의 바이브를 조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AllTimeMusic의 비트가 비중 높게 들어가있으니까요. 심지어 초반에는 유명한 국내 뮤지션이, 후반부에는 외국 래퍼들과 함께 했다는 점도 비슷하다면 비슷하겠군요. 초반에 오토튠 싱잉 랩이 등장하기도 했고, AllTimeMusic 말고 다른 프로듀서의 비트도 있어서 살짝 텐션이 업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크게 봐서는 #1과 차이가 있다고 보긴 어려울 거 같습니다. 그냥 하나로 묶어 "Transit"이란 앨범으로 즐기면 될 거 같네요. 그리고 이 경우, 19곡이나 비슷한 스타일로 연이어 듣기엔 좀 너무 쳐지는 것도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3) NOISEMASTERMINSU & Ourealgoat - Experiment Record (2020.5.27)


 다모임의 간택을 받은 비트메이커 NOISEMASTERMINSU는 "아마두"라는 역대급 히트 힙합 싱글의 주인공 중 한 명이긴 했지만, 다모임이 끝난 이후의 활동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 Tommy Strate와의 콜라보 싱글과, IMEANSEOUL과 함께 만든 팀 "SMUGGLERS"의 싱글, 그리고 몇 장의 앨범에 참여한 흔적이 전부였죠. NOISEMASTERMINSU 비트를 듣고 싶었던 사람들에겐 이번 EP는 반가운 소식일 수 있겠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그가 이룬 성공의 객관적 수치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정말 비트메이커로써의 역량이 엄청났는가는 한 번 생각해볼 문제라고 봅니다. "Experiment Record" 역시 그런 의문을 한 번 더 가지게 합니다. 사실 스타일 자체가 미니멀한 트랩 비트이기 때문에 딱 캐치할만한 부분이 없는 것도 사실이겠죠. 어떤 이유에서건, Ourealgoat는 본인의 비장한 비트가 더 잘 어울리는 거 같습니다. 스트링 세션이 인상적인 "주둔"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비슷하거니와 Ourealgoat의 중얼거림이 더 흐리멍텅하게 들리는 걸 느꼈습니다 - 본인도 나름 "향수" 같은 건 실험을 했던 거 같긴 하지만... 임팩트가 생각보단 없네요. 게다가 곡들도 짧기 때문에, 앨범의 존재감이 좀 약합니다.


 아무래도 저 같이 트랩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완전하게 평가하긴 무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의 감상은, Ourealgoat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힘빠진 비트라는 것. 따지고 보면 이런 비트에 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래퍼는 따로 있는 법이죠. 섣부른 판단하지 않고, 후에 NOISEMASTERMINSU에 대한 더 정확한 감상을 할 수 있는 작품이 나오리라 믿고 기다려보겠습니다.



(4) Midas P - THE TRAPM@STER 2 (2020.5.30)


 다른 멤버들에 비해 인지도는 비교적 낮지만, Midas P도 Wayside Town 소속의 비트메이커로 꽤 굵직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2015년 Major Republic이란 집단의 소속으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점차 트랩 비트메이커로써의 정체성을 잡고 크루 안팎의 수많은 아티스트의 앨범에 참여하거나 콜라보 앨범을 발표하여왔죠. 그러던 중 2018년 "Road To Trapm@ster"를 시작으로 본인 비트에 유수의 피쳐링진을 대동하고 발표한 믹스테입 "THE TRAPM@STER" 시리즈는 1년마다 작품이 발표되면서 올해로 세 번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믹스테입에는 잘 등장하지 않지만 205SUPPLIER의 '호스트'를 받아 (사실 이게 정확히 무슨 개념인지 저는 모릅니다...) 발표된 이번 앨범은, 시리즈 나머지 작품들과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사실 Midas P 음악을 어느 정도 접했다면 아시겠지만, 그의 비트는 아주 표준적인 트랩 스타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개성이 잘 안 산다고 생각했지만, 이모 힙합이 휩쓰는 요즘 다시 들어보니 이것이 거꾸로 개성이 된 것도 같습니다.


 트랙 수가 많지만 간단간단하게 만들어진 게 많아 총 플레이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습니다. 약간은 정신 없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앨범 자켓부터가 정갈한 앨범을 목표로 하고 만들어진 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때문에 사정 없이 돌아가면서 랩을 하고 사라지는 여러 피쳐링진들의 음악에 몸을 맡기는게 이 앨범을 즐기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말했던 대로 전형적인 트랩이지만, 트랙 수가 많고 피쳐링진이 많다보니 뒤로 가면서 다양한 스타일 - 카와이 트랩이라든지, 이모 힙합이라든지... 좀 감성적인 것도 있고요 - 이 등장합니다. 이런 곡들 중에는 피쳐링진들이 평소엔 잘 안 보여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있어서 (Bryn, 김미정 등등...) 듣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두서 없음을 감안하고 큰 생각 없이 듣는다면, 특히 트랩 팬에게는 선물 세트 같은 앨범이 될 것입니다. Midas P는 믹스테입 위주로 활동하고, Wayside Town의 주류가 된 이모 힙합이랑 좀 거리가 있어서 뭔가 생각을 덜 하게 되지만, 그래도 자신의 영역을 조용하게 다지고 있는 비트메이커인듯 합니다. 저 역시 크게 그의 이름에 주목해본 적 없고, 붐뱁충이라 실은 저번 앨범은 '의도적으로' 피해갔었는데 (...25트랙이었다고요 저번 껀), 이젠 그러지 말아야겠습니다ㅋ



(5) Mac9 - Rocket Boi Landed 2 U (2020.5.31)


 Mac9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이자, "Fresher than Mo'" 시리즈를 종결하고 새로 나온 앨범입니다. 정규 치고는 작은 8트랙의 규모이지만 들어보면 자신의 스펙트럼 범위를 소개하기 위한듯 다양한 스타일이 수록되어있습니다. 전작 "Fresher than Mo III"만 해도 기존에 하던 것과는 다른 하드 트랩이었고, 꽤 성공적인 변화였죠. 이런 모습까지 전부 다 포괄하여 앨범에 담았기 때문에, 대략 두 트랙마다 다른 스타일이 펼쳐집니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Mac9의 목소리는 다루기 힘든 무기입니다. 개성적이고 독특하지만, 자칫하면 유치한 느낌만 남고 끝나버릴 수 있어 이렇게 되는 걸 피하는게 곡을 만들 때의 제일 큰 관건이라 느꼈습니다. 밝은 스타일인 전반부의 경우는 이런 약점이 없어지지 않았음을 좀 느꼈습니다. 특히 3번, 4번 트랙의 경우 발랄하고 통통 튀는 느낌이 강조되었는데, 멜로디 라인이 그걸 뒷받침해줄 정도로 잘 짜이진 않았던 거 같습니다. "May Queen"이 타이틀곡인 걸 보면 이걸 자신의 대표 스타일로 생각하는 거 같긴 한데요.


 총체적으로 멜로디 메이킹 능력이 떨어진다고 하긴 어려운게, 감성적인 곡을 배치한 7-8번 트랙은 나름 들을만 합니다. 나머지 5-6번은 하드 트랩 스타일로, 여전히 개인적으로는 베스트 구간입니다. 다만, 랩을 타이트하게 짤 때 리듬감을 살릴 정도로 박자를 잘 쪼개진 못 하는 거 같습니다. 속사포 랩스킬은 그의 특기는 아닌 거 같습니다 - 그냥 여유롭게 랩할 때가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지더군요.


 단점을 많이 얘기했지만 Mac9 앨범을 쭉 듣다보면 그래도 꽤 무르익은 음악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처음에 한 가지 어프로치만 하면 목소리 운용에 있어 다양한 답을 찾았고, 능숙해졌다는 느낌이에요 ("Journey 2 Money"는 좀 너무 갔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러한 진화의 전적이 있어, 아직 들을 때마다 아쉬운 점이 떠오르지만 나올 때마다 챙겨들을 수 있는 아티스트 같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봅니다.



(6) 우한량 - co:rye 고려 (2020.5.31)


 우한량은 일년 전 "chosvn"이라는 믹스테입을 낸 바 있는 Jamiang의 새 이름입니다. 당시 국악과 힙합의 결합이라는 신선한 시도로 조용하지만 큰 충격을 남긴 바 있었는데요. 본작은 같은 소재를 더 발전시킨 작품입니다. 이를 위해 5000여 곡의 국악을 직접 다 들었다고 하죠.


 이번 앨범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샘플링이나 편곡이 아니라 원곡을 그대로 살리고 랩을 얹는 방식을 택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재밌는 점이 몇 개 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인트로를 담당하는 "연"과 "몽"은 우한량이 첨가한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서로 다른 곡이 유기성을 가지고 앨범의 막을 연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어떤 면으로는 차용한 곡들에게 앨범의 주인공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국악 트랙이 그대로 실렸기 때문에 전통적인 벌스-훅 구조를 가질 수 없게 되며, 리듬 패턴도 고전적인 힙합 곡과는 다릅니다. 이로 인해 예측 불허하게 진행되는 곡 전개의 신선함 (이조차 원곡에 의한 것이니 '신선하다'라 부르는게 맞는지 헷갈리지만)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환상적이고 신비롭게 변합니다.


 한편 선정된 국악들은 대체로 빠른 템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랩을 얹자면 타이트한 플로우의 형태를 가질 수밖에 없고, 이는 "chosvn"에서도 마찬가지였죠. 래퍼로써의 우한량은 솔직히 개선의 여지가 많습니다. 침을 머금은 느낌이랄지, 부정확한 발음과 이때문에 미끄러지는듯 절어버리는 박자가 거슬리는 요소입니다 (후자는 비교적 자유로운 원곡의 템포에 더 어울린다면 어울리겠지만). 허나 이 앨범은 그런 랩보다 멜로디가 첨가된 싱잉 랩의 비중이 큽니다. 싱잉 랩이라고 말하는게 맞을까요? 창을 연상시키는 바이브레이션에, 적절하게 더해진 이펙트는 앨범의 아우라를 더해주는 장치입니다. 이 '노래'에서만큼은 위에서 언급한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소리로 장관을 연출하기도 하죠.


 이외에도 고풍스러운 노래 가사, 소리꾼을 피쳐링으로 참여시킨 점, 제작 배경에서 묻어나는 장인 정신과 국악에 대한 존중의 태도 등, 여러 가지로 그는 단순히 자신의 음악을 과시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국악을 소개하려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더 나아가, 이 앨범은 독특한 힙합이 아닌 '진화한 국악'이라는 생각까지 드는군요. 그저 평범한 힙합 리스너로써는 허술한 부분은 느껴지나, 자신만의 영역, 아니 어쩌면 새로운 장르의 개척이 이뤄지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인가 싶어 조심스러워집니다. 이제 원곡을 사용하는 것 말고 온전히 창작된 음악이 나온다면 깔끔한 마무리가 될텐데요 ("강강술래"는 프로듀싱된 곡이긴 했습니다). 이미 그는 존재하는 국악 5000여 곡을 다 들어봤다 하니 미래에 대한 합리적 의심(?) 아닐까요? 어떤 음악으로 돌아올지 기다려보겠습니다.



(7) Walter - Bloody Plants Flowers (2020.6.1)


 앞서 "Rose Garden" 시리즈 두 개로 이미지 변신을 했던 Walter가 이번에는 풀렝스 앨범으로 돌아왔습니다. 보면 아시겠지만, "Rose Garden" I과 II의 여섯 곡이 그대로 실렸고, 신곡 다섯 트랙을 추가한 형태죠.


 절반 이상의 수록곡이 재활용이라는 건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지만, 어쨌든 기존 EP에서 보여줬던 포스를 유지하고 확장시킨다는 목표에 충실하게 제작되었습니다. 기존 트랙 중 강렬한 걸 맨 앞으로, 우울한 걸 뒤로 뺀 후, 색다른 분위기의 신곡을 가운데 부분에 중점적으로 배치하여 자연스러운 구성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신곡들은 톤을 부드럽게 하거나 랩을 취입하는 등 조금 더 '대중적'인 요소들이 많아 매니악했던 기존 트랙과 리스너 사이의 완충 작용을 하는 듯합니다.


 어쨌든 스타일 자체가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밖에 없으니 최종적인 점수는 취향따라 달라지겠지만, 기존 EP를 잘 들었던 분이라면 재탕 앨범이라는 첫인상에도 불구하고 즐기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멤버들이 각자 다른 색깔의 앨범만 내는데 오사마리는 아직 있는게 맞...겠죠?


 

(8) Tommy Strate & GOLDBUUDA - BUUDA FLAME (2020.6.3)


 갑자기 나온 3곡짜리 작은 콜라보 앨범입니다. 최근 Tommy Strate는 이렇게 단타로 콜라보 작업물을 내는 걸 즐기고(?) 있군요. 그 앨범들이 하나하나 다 색깔이 다른 건 재밌는 부분입니다. GOLDBUUDA와 함께 한 건 클라우드 랩...이라고 하나요? 여백을 많이 남긴, 감질맛 나게 건드리는 랩과 비트의 노래들입니다. 반복적인 가사도 많고, 내용도 크게 있지 않을 뿐더러, 길이가 짧아서 휘발성이 강한 앨범 같습니다. 이것도 좋아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Lil Cherry와 함께 했을 때 보여주는 GOLDBUUDA의 기묘한 매력은 여기에는 없지 않나 합니다. 그냥 Tommy Strate의 콜라보 시리즈 중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 같군요.



(9) 창모 & Paul Blanco - BIPOLAR (2020.6.3)


 갑작스럽게 앨범이 나오긴 했지만, 창모와 Paul Blanco의 조합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당연히 어떤 형태로든 콜라보 앨범이 나올 거라 예상되던 참이었습니다.  이미 수많은 곡을 통해 케미를 증명한 둘이었기에 아티스트명에 둘의 이름이 함께 올랐다는 것만으로 기대치는 올라가기에 충분했습니다


 의외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리는 듯 보입니다. 긍정과 부정은 저의 의견은 부정적인 쪽에 가깝다는 걸 인정해야겠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각자의 작업물에서 보여줬던 파워가 여기선 그닥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이를테면, 창모하면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 날카로운 랩, 현란한 오토튠 싱잉, 그리고 Paul Blanco는 딥하면서도 파괴력 있는, 그야말로 소울풀한 목소리가 떠오르잖습니까. 근데 이번 앨범은 그런 것들이 있다는 느낌이 약하게 뭔가 밋밋합니다.


 퍼포먼스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건 어느 정도의 기준치는 만족시켜줄 베테랑들이니까요. 저는 프로덕션의 방향부터가 제가 기대하던 것과 달랐다고 느낍니다. 애초에 믹스테입으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전반적으로 대중적이고 가요스러운 코드가 흐르고 있어서, 힘을 많이 주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창모와 Paul Blanco가 반반씩 보탠 비트는, 자세히 들어보면 악기 초이스 등에서 차이가 날지라도 개성이 밋밋하고 서로서로 비슷한 색깔로 마감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빡센 "Swoosh Flow"나 "Tour Day 5 Freestyle" 등만을 베스트로 꼽고, 중반부는 심심하게 흘러가고 맙니다 ("널 위해"는 환희의 참여 덕에 기억에 남긴 하죠)


 결론적으로 두 뮤지션의 전작에 비해 색깔이 다소 바래있어, 김이 새고 큰 감흥을 못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바이브가 부드럽고 편안하다며 호감을 표시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군요. 뭐, 제가 싫어하는 앨범 하나 가지고 둘의 명성이 깎일 일은 없습니다. 다만 둘의 이름으로 이보다 더 멋진 걸 미래에 들고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은 남네요.



(10) Van Noir - RUN(A)WAY (2020.6.3)


 작년 가을에 "무인번화가"로 처음 접한 래퍼 Van Noir의 새 앨범입니다. 당시 랩 스타일이 Khundi Panda를 연상시키는 건 앨범 자켓을 Khundi Panda가 해주어서인가... 하고 고민했던 적이 있는데, 이번 앨범도 여전히 Khundi Panda는 연상됩니다. 큰 기복 없이 건조하고 일관성 있게 톤을 유지하면서, 플로우 디자인이 타이트하고 글자마다 주는 특이한 악센트, 그리고 씨니컬한 가사 등등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가봅니다. 더불어 비트도 Khundi Panda가 잘 쓰는, 전자음악적인 요소가 있는 비정형적인 비트 (개소리처럼 들린다면 반박 않겠습니다...)들이라 더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크게 유사성은 단점이라 생각 않고 들었습니다. 아마 이런 스타일에 제가 기본적인 호감이 있어서 그런 것 같고, 그점이 총체적인 인상에 얼마나 비중을 가질지는 듣는 분따라 다르겠죠. 주제 의식은 전작 "무인번화가" 때의 이야기를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습니다. '세속적인 성공'의 방법, 그리고 그 방법을 중심으로 한 세태들. 이번 앨범은 그 세태를 패션 쇼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풀어내고 있으며, 1번 트랙부터 4번 트랙까지 패션 쇼의 진행에 따라 유기성 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건조한 톤으로 이야기를 풀고 있고, BPM이 전체적으로 빠르면서 랩 리듬도 비슷비슷하게 가져가기 때문에 단조롭게 들리기 쉽습니다. "Runway"에서 "Haute-Couture"로 넘어가는 부분이 특히 이 단조로움이 심하게 느껴지는데, 사실 "Runway"의 마지막 가사를 "Haute-Couture"의 첫 마디로 쓰고 있는 것만 봐도 어느 정도 의도된 유사함이겠지만, 그래도 이성적으로만 설득이 안 되는 부분은 있습니다 (오히려 "Haute-Couture"의 전주를 걷어내서 2-3번 트랙이 한 트랙처럼 붙어있었으면 납득이 더 되었을 거 같아요).


 그 외의 부분은 좋았습니다. 짧은 길이에 비해 꽤 임팩트가 선명한 앨범입니다. 세상을 지적하는 앨범인만큼 제일 중요한 요소랄 수 있는 가사도 깔끔하고 괜찮아요. 네 트랙의 비트를 프로듀싱한 Omoon이란 비트메이커의 스타일도 좋습니다. Van Noir의 랩과 잘 어울리고 주제 의식을 더 또렷하게 하는, 그 자체의 시니컬함을 띄고 있는 듯한 느낌. 특히 "Haute-Couture"의 보컬 샘플과 이현준 벌스가 나올 때의 비트 체인지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결국 처음에 언급한 Khundi Panda를 연상케하는 점. 본인이 얼마나 이를 인지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 그 누구도 일부러 따라해서 작품을 내는 사람은 없겠지만, 인지하지 못하는 점이라면 억울함만 배가되고 고치기는 쉽지 않을테니까요. 현재 이 색깔이 마음에 들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Van Noir만의 뭔가가 더해져야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있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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