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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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5 16:50:32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오늘 휴일이었는데 아침 8시 반에 피씨방에 가서 다섯시간 반 동안 가사 해석을 했습니다

It's hard living like DanceD.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호미들 - Ghetto Kids (2020.5.15)


 "수퍼비의 랩학원" 우승자였던 수학자와 대조적으로 은근한 허슬을 보여주고 있는 호미들의 새 앨범입니다 (수학자는 저번에 Superbee 랩하우스에 나왔을 때 들어보니 연락도 잘 안 되는 같던데...;). 무려 첫 정규 앨범이죠.


 "Ghetto Kids"는 현재까지 나온 두 장의 EP 스타일을 충실히 계승하였습니다 - EP와 정규의 차이는 트랙 수뿐인 걸로 보입니다. 이전 앨범과 마찬가지로 가난을 극복하고 부자가 된 스토리가 거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죠. 풍부한 어휘력을 바탕으로 한 센스 있고 세밀한 묘사는 거의 미국 힙합의 'hood' 이야기를 보는 듯합니다 (생각해보니 부현석보다 호미들이 먼저 이런 걸 했네요). 이외에도 이때까지의 활동을 통해 증명해온 그들의 강점 - 뚜렷하고 개성적인 세 명의 톤과 단순 듣기 좋은 것을 넘어 감정선이 잘 살아나는 멜로디 메이킹 등은 이번 앨범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다소 장황하게 느껴질 수 있는 플로우임에도 세 명 다 랩이 단조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합니다. 특히 탑 라인 짜는 것이 매우 단단해졌단 느낌입니다.


 아쉬운 점은 첫 EP를 들었을 때와 같습니다. 리스너가 함부로 아티스트의 스타일을 규정하는 건 옳지 않겠지만, 두 장의 EP와 정규까지 애절하고 가라앉은 바이브로 이어가는 건 많이 아쉽군요. 정규는 규모가 커진만큼 약간의 기복이 있길 바랐는데 너무 천편일률적인 느낌입니다. 특히 YDP ck와 YDP louie의 톤이 좀 더 톡 쏘는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곡이 있으면 좋을텐데요. 이들을 제2의 리듬파워로 보는 건 이제 포기(?)하지만 다른 것도 할 줄 안다는 걸 아는 상태에서 조금 애가 탑니다.


 내실이 있는 그룹은 일련의 앨범 활동으로 인정하였고, 실력과 행보에 비해 과소평가 받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허나 동시에 꺼내놓지 않은게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가 없군요. 사실 이쯤에선 그냥 애매한 가능성보단 드러난 것만으로 얘기를 해야할 거 같기도 하고요.



(2) TOMSSON - Driving Music: A Part of Pulp Fiction (2020.5.15)


 이 앨범은 TOMSSON의 첫 정규 앨범 "Pulp Fiction"의 발표 3주년을 맞아 나온 미니 앨범입니다. 본 앨범 수록곡들은 "Pulp Fiction"의 수록곡이었던 "Bite Twice" "Pogba" "If I Die Young"의 리믹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위기가 딴 판인 것을 넘어서, TOMSSON이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Die Young" 정도는 뭐 가능했다 보더라도) EDM 비트에 리믹스를 한 것은 TOMSSON의 행보를 지켜보던 이들에겐 재밌는 선물이 될 것입니다. 확실히, "Pulp Fiction" 때 다소 단조롭던 플로우가 이런 현란한 비트와 멜로디 비중이 늘어난 랩으로 탈바꿈하면서 조금 더 듣는 맛은 있어졌지만, 완전히 그루브감 있는 모습까지는 아닙니다 (그러고보니 목소리 때문인지 Futuristic Swaver가 좀 연상되더군요). 혹은 붐뱁 곡을 가지고 싱잉 랩으로 만들어서였는지도 모르죠. 제 의견으로는 좀 맞지 않는 옷처럼 보입니다만, 이벤트성으로는 재밌는 앨범이었습니다. "Pulp Fiction"을 잘 들었던 분이라면 아마 그 재미가 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3) 조우찬 - ID: Schoolboy Pt.3 (2020.5.16)


 초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로 쇼미더머니에서 확실한 인지도를 챙긴 (하필 저랑 이름이 같아서 방송 보면서 움찔움찔하게 만든) 조우찬은, 착실히 "ID: Schoolboy"라는 연작을 발표하며 신체적인 폭풍 성장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그동안 싱글 형태로 발표되던 것과 달리 Pt. 3인 본작은 EP 형태로 발표되었고, Paloalto와 Stalley가 총 프로듀싱을 맡아서 화제가 된 바 있죠.


 앨범을 듣기에 앞서, 조우찬이 아이돌 연습생 신분으로 현재 연예기획사에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리 선입견을 갖고 감상을 하자는 태도는 지양해야겠지만, 특히 어린 나이부터 연예 활동을 준비해왔다고 할 때 예상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들은 트렌드에 민감하고 실제로 습득을 넘어 학습할 수 있는 경로가 훨씬 풍부합니다. 대신 스스로 라임과 플로우를 재는 시간이 부족하여, 하드코어한 맛을 내는데는 약합니다. 어차피 대중들의 귀에는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것이 먹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요.


 이번 앨범을 갖고 얘기해보자면 그런 감각적 요소는 속사포 랩, 중독적인 훅, 혹은 감성적인 싱잉 랩 등으로 대표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신 기초적인 요소, 예를 들어 라임의 적재적소의 배치, 자신을 구분 짓는 탄탄한 발성, 창의적인 플로우 같은 것은 부족할 수 있습니다. 앨범 내용물은 감성을 자극하는 "뭐해", 랩 스킬을 뽐내는 "Catfish", 공감을 끌어내는 "시험 끝"처럼 예상 범위 내에서 모든 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 "Honey Dance"는 당장에라도 챌린지를 시작할 듯한 기세더군요. 어린 나이 때문일 수 있겠지만, 가사는 상당히 얕은 반면 라임은 떡칠이 되어있습니다. 때문에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캐치가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발성 부분은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 - 사실 기억에 남는 목소리를 만드는 것이 대중 기획사 입장에서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아이돌이라도 잘 갖춰지는 경우가 많은데, 조우찬의 목소리는 뭔가 맥아리가 없습니다. 그의 포지션을 고려한대도 빈약하게 들리는 톤은 풀어나가야할 과제입니다.


 냉정하게 말해, 쇼미더머니 때의 조우찬과 이 앨범의 조우찬이 다른 건 목소리 뿐입니다. 어린 나이를 고려하여 낙관적인 전망을 갖는 것은 좋습니다. 더불어 그가 힙합에 대해 갖는 태도도 중요할 것입니다 - 사실 그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음반을 만들면 만들어도, 힙합씬에 한 획을 남기겠다는 각오로 하고 있진 않겠죠. 그럴 경우 조금 더 기대치를 낮추고 기다려볼 필요가 있겠죠. 어쨌든, 발전하고자 하면 얼마든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은 갖춰졌으니, 어떤 식으로 그의 미래를 그려갈지는 두고 봐야할 일입니다.



(4) BRWN - Lean on Me (2020.5.16)


 조용하지만 꾸준히 신작을 내고 있는 BRWN의 EP입니다. 직전에 발표한 싱글 "광화문연가"가 평소 그가 해왔던 이모 트랩의 성향을 띄었고, 그보다 전에 발표한 "To HER"는 R&B 색깔이 더 진했는데, 이번 EP는 그 "To HER"보다 더 보컬 멜로디가 강조된, 조금 더 '고전적인' 느낌의 R&B입니다. 프로듀싱진이 "To HER"와 거의 같지만 이런 방향에 맞춰 힘 줄 데는 더 준 느낌이군요. 원래 몽환적이고 은근한 트랩 소울에 최적화되었던 BRWN의 가냘픈 목소리가, 좀 더 멜로디 라인이 선명하고 힘 있는 이런 장르를 만나니 좀 더 특이한 바이브가 형성되었습니다. 다른 말로는 음악의 난해함에 예민한 분들이 제일 쉽게 BRWN을 접할 수 있을만한 앨범입니다.


 반대 색깔의 비트에 목소리를 올리니 어느 때보다 BRWN의 개성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어떤 분들에겐 곡 전개에 비해 힘 없어보이는 그의 목소리가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을 거 같지만, BRWN을 이전부터 들어왔다면 재밌는 반전으로 느껴질 듯합니다. 특히 프로덕션이 자아내는 신비로운 바이브가 좋네요. 그의 앨범에는 항상 '신선하고 색다른 콘텐츠로 나타날 것이다'란 소개글이 붙어있는데, 정말 그 말처럼 본연의 색을 유지하면서 앨범마다 조금씩 다른 색을 섞는다는게 계속 신작을 체크하게 하는 동기가 되는 거 같습니다.



(5) Reddy - 500000 (2020.5.17)


 방송 멘트들이긴 하지만, 래퍼가 소개될 때 패션 아이콘이란 얘기가 제일 크게 다뤄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조바심을 낼 수 있을 부분입니다. 더욱이 최근 솔로 활동이 뜸했던 아티스트라면 그럴 수 있죠. Reddy는 자신이 가진 입지와 인지도에 비한다면 음악적인 성취가 애매한 래퍼입니다. 사실 전작인 "Universe"와 "Telescope"가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앨범이긴 했지만, 화려한듯 수수하고 강렬한듯 소프트한 앨범들이었던 거 같습니다.


 "500000"은 전작들과 많은 부분에서 대조됩니다. 전작들이 앨범을 만드는 표준적인 공식에 따랐다면, 이번 앨범은 소개글마따나 '김홍우'로 초점을 가져왔습니다. 바로 2번 트랙 "Buried Alive"부터 Reddy는 감정을 폭발시킵니다. 음악적으로는 전에 없던 모습을 꺼내겠다는 포부이고, 메세지적으로는 참거나 돌리는 것이 없을 거란 예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면 위" "치트키" 같은 핫한 화제들이 실릴 수 있었고, 끄덕이면서 들을 수 있게 된 거죠. 성공한 Reddy의 입으로 듣는 것이 생경한 스토리지만, 흔한 '밑바닥 시절 얘기'보다 훨씬 울림이 있습니다.


 여러모로 Deepflow의 "Founder"가 생각나는 앨범입니다. 논픽션을 다루는 뚜렷한 서사 구조와 영화 같은 묘사 때문이죠. Deepflow에게 Van Ruther가 있었듯 Reddy에겐 Yosi가 있습니다. 전곡을 프로듀싱한 Yosi의 비트는 그의 재능을 다시 확인하게 합니다 - 아니 사실, 내가 왜 그의 능력을 모르고 있었을까 반성하게 할 정도입니다. "Founder"와 마찬가지로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다이나믹한 비트는 이 앨범의 미덕 중 하나입니다.


 남은 것은 음악적인 임팩트입니다. 글쎄요, Reddy라는 래퍼가 어딘지 모르게 밋밋한 아티스트로 보여왔던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오직 사운드로만 따졌을 때 이번 앨범으로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긴 조금 부족한 거 같습니다. 물론 위에서 말했듯 "Buried Alive" "수면 위" 같은 디스토션 섞인 거친 감정과 Yosi의 비트가 이를 효과적으로 카운터해주긴 합니다. 하지만 아직 어떤 부분의 랩은 너무 담백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한, 서사가 중요한 앨범이라 예민하게 보는 건지 몰라도 후반부가 조금 흐지부지한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Baby Driver"의 역할이 좀 애매했던 거 같아요.


 이러나저러나 "500000"은 Reddy의 커리어에서 기념비적인 앨범이고, 객관적으로 봐도 잘 만든 앨범인 건 맞습니다. 사운드에 대해 굳이 뻘소리를 꺼냈지만 이 앨범은 인간 '김홍우'를 느끼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목표였고, 그 부분은 성공했다 봅니다. 또 그를 패션 아이콘으로 만드는데 기여했을 감각적인 센스가 멜로디 메이킹이나 곡 디자인 같은 데에서 보이고요 - 이건 전작들에서도 티가 났던 능력이기도 합니다. 뭐가 됐든, 이번 앨범은 저에게는 Reddy의 커리어 중 처음으로 기억에 남을 앨범이 될 거 같습니다.



(6) G R I O - WALLFLOWER (2020.5.18)


 비트메이커 G R I O의 비트를 제일 많이 접했을 법한 경로는 아마 GI$T의 앨범일 겁니다. GI$T의 애절한 싱잉 랩이 랩을 넘어 발라드 같은 분위기까지 풍기게 하는 데는 G R I O의 비트 역할도 컸습니다. 믹스테입의 형태로 사운드클라우드로 발표된 "WALLFLOWER"는 그런 앨범들에서 보여줬던 따스한 질감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작업한 건지 확실치 않지만 전부 연주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악기들이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물론 크레딧 보면 기타 같은 건 실제 세션을 쓰긴 했더군요). 신디사이저보다는 어쿠스틱 기타나 피아노, 스트링 세션 같은 악기가 사용되었으며 단순 루핑되는 멜로디가 아니라 실제로 '연주'되는 느낌이라 더 그렇죠. 때문에 트랙들이 미묘하게 웅장하게 들리고 포근합니다. 작업 초반 방향이 어두운 쪽으로 잡혔었다고 하는데 현재 결과물이 만족스럽지만 어두운 색깔도 그것대로 들을만 했을 것 같군요. 반면, 흔한 이모 힙합 스타일로 소화한 일부 피쳐링진의 퍼포먼스는 아쉬웠습니다.


 오랜만에 비트에 더 집중하게 하는 프로듀서의 앨범입니다. 그 방식이 실험적인 것을 굳이 시도하지 않고 매우 고전적인 느낌을 주면서 해냈다는 것도 재밌습니다. 글쎄요, 어떤 분들에겐 MC Sniper의 향수를 불러일으켰을지 모르겠습니다 - 그게 좋은 의미일 수도 있고 나쁜 의미일 수도 있겠죠. 저는 가장 이해 못할 점을 꼽으라면 이 앨범이 사클 믹테 형태로 나왔다는 거 정도일 거 같습니다. 이게 정식 앨범이 아닌 겁니까?!



(7) Homeboy - memories... (2020.5.18)


 Wet Boyz의 Homeboy가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입니다. 사실 첫 번째 정규가 있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역시 더욱 정진해야겠네요 크흠. 여담으로 드디어(?)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는 분류가 R&B로 되었습니다.


 아무튼, 바로 전 앨범이 "Project X2: DDABULL"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이번 앨범은 원래 그가 하던 힐링 뮤직으로 돌아와있습니다. 늘 들려주던 편안하고 몽환적인 노래들을 들을 수 있다는 거죠 - 특히 Wet Boyz에서 Haruhi에 비해 더 가성 섞인 하이톤을 맡던 멤버였으니 이 효과는 극대화됩니다. 듣다보면 느끼는 건, 레트로 감성이 전에 비해서 많이 섞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거. "all you need is love" "memories" 같은 곡은 마치 90년대 가요를 듣는 것 같습니다. 씨티 팝 싱글도 내곤 했음을 고려하면 부자연스러운 부분은 아니고 그의 기존 감성과도 잘 어울리는 부분입니다.


 곡들이 생각보다 짧은 곡이 많아서 휙휙 넘어가면서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오히려 몇몇 트랙은 너무 짧아서 여운을 가질 새도 없이 지니갔던 거 같아요. 그리고 의외로, 거슬릴 정도까진 아니지만 화음 같은게 약간 불협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평소보다 오토튠 느낌이 더 드러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체적으로는 크게 흠잡을 데 없이 호불호가 크게 안 갈릴 이지 리스닝한 음반입니다. 저번 앨범에서 버려서(?) 그리웠던 Wet Boyz 특유의 감성을 다시 가져왔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 같네요.



(8) Rohann - Neverland (2020.5.19)


 앨범 발매 즈음 되어 Deepflow는 '고랩 웹스터비처럼 화끈한 모습을 기대했으나 결국 이 이야기들을 한 번 털어내야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납득했다'라고 이로한의 앨범에 대해 코멘트한 바 있습니다. 사실 이 얘기만으로 앨범에 대한 감상 후기를 전부 요약할 수 있습니다. 고등래퍼에 나와 "한국의 Joey BADA$$"를 자칭하며 강렬한 퍼포먼스로 관객들의 뇌리에 자신의 모습을 새겼지만, 실은 그의 마지막 곡 "이로한" 역시 깊은 감성을 자아내는 곡이었음을 떠올려야 합니다 (물론 Joey BADA$$라고 빡센 것만 하는 건 아니지만).


 "Neverland"는 서사가 꽤 탄탄한 앨범입니다. 초반 세 곡은 씬에 처음 등장했을 때의 꿈과 포부 가득 찬 시절을 그려냅니다 - 3번 트랙 제목이 "Webster B"인 것도 그런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앨범에서 유일하게 강한 랩을 들을 수 있는 파트이기도 합니다. 이후 이어지는 것은 꿈이 현실이 되고 나서 겪은 변화 앞에 혼란스러워하는 소년의 모습입니다. "Whee" "변하지 않아"와 같은 해탈의 모습과 "Long Live" "Neverland Outro" 같은 비장함이 교차하면서 그가 겪은 다사다난했던 세월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를 고려할 때 놀랍도록 깊이 있는 앨범입니다. 고등랩퍼 때 굳혀진 이미지와 자신의 레이블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고려하면 그가 선택할 법한 전략은 뻔했지만 이로한은 그걸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뭐 선공개곡이나 일부 피쳐링을 통해 어렴풋이 이럴 것이다 라고 생각은 했지만, "Neverland"가 담은 반전을 보며 저는 배연서가 이로한이 되듯 고등랩퍼 참가자가 한 명의 뮤지션이 되는 변화를 목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르륵 칵칵'으로 대표되던 기교 없이 담백하게 전달하는 가사는 지나치게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고 딱 그의 메세지를 전달 받을 정도의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 때문에 전달력도 매우 뛰어나, 스토리가 중요한 앨범으로써의 기본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누군가 이 앨범에 실망한다면 아마 대개는 예상하던 하드코어함과의 괴리 때문일 것입니다. 저 역시 완전 아니라고 부정은 못 하겠어요 - "Webster B" 같은 트랙이 있지만, 이조차도 약간은 부족합니다. 아니 사실 더 거슬러올라가, 이로한이 정말 실력 좋은 하드코어 래퍼인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묵직한 저음 톤은 강력한 무기이지만, 트랙을 놓고 봤을 때 너무 가라앉아있고 타격감이 없어 지루하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로우톤이라 불리한 걸 수 있지만, 중간중간 귀를 잡아끄는 킬링 파트가 있어주면 좋겠는데 그게 전부터 약했다 생각합니다 ('드르르 칵칵'이 약간 그 기능을 해주긴 했는데...).


 다만 이런 단점은 오히려 이번 앨범처럼 일정한 분위기를 설정하고 자아내는데는 더 좋았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이제 이로한에게서 빡센 랩을 굳이 기대하진 않으려 합니다. 물론 듣는 재미는 조금 더 챙기면 좋긴 하겠죠. 우선 메세지를 담아내 청자와 교감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랐다는 데에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말마따나, 아직 어리니까.



(9) Xbf - Transit #1 (2020.5.20)


 24 Flakko로 활동해오던 그가 Xbf로 이름을 바꾼 후에 낸 곡들은, 정규 앨범 "Blood Ink"를 제외하면 동일 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감미로운 R&B 트랙들이었습니다. 특히 잔뜩 아래로 내리 깔은 목소리가 트레이드마크였던 그였기에 비교적 하이톤으로 노래 부르는 그가 상당히 낯설기도 했습니다. 낯설긴 해도 듣기엔 괜찮은 노래들이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Transit #1"은 다시 Flakko 때의 그로 돌아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왜인지 몰라도 크레딧이 다 빠져있지만 들리는 시그니처 사운드로 미루어볼 때 AllTimeMusic이 비트를 이번에도 많이 제공한 듯합니다.


 그의 랩 앨범은 항상 같은 얘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리깐 목소리에 얼마나 적응하느냐가 앨범의 호불호를 결정하게 되고, 거기에 마음에 든다면 더 흠 잡을 부분은 없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비장한 분위기, 비장한 가사들로 무장했고 과하지 않게 딱 표준적인 랩을 들려주기 때문에 굳이 뭘 더 깔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리깐 목소리도 후반부에서는 파워풀하게 끌어내기도 하고, 나름의 그루브감도 있고, 참 묘하게 꽂히는 랩입니다.


 사실 "Transit #1"은 그의 다른 앨범보다 듣는 것 자체는 훨씬 편할 수 있는데, 이는 기라성 같은 피쳐링진 때문입니다. 피쳐링진으로 표기가 안 되어있고 곡 주인처럼 표기가 되어있어서 놓칠 수도 있는데, Owen, Nafla, Swings, Deepflow 등 굵직한 이름들이 많이 보이며, 오랜만에 보는 Killagramz나 후반부 트랙의 낯선 이름의 외국 래퍼들의 퍼포먼스도 상당히 좋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벌스 하나 뿐만 아니라 훅까지도 담당했기 때문에 곡 안에서 비중이 상당히 높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Xbf가 크게 밀리지 않는다 생각되는 건 곡 분위기가 기존 24 Flakko 때 보여줬던 분위기로 통일되어있고, 피쳐링진 래퍼들이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Xbf의 바이브에 잘 녹아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피쳐링 벌스의 우수함을 논하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결국 개개인의 Xbf에 대한 취향에 갈릴 듯합니다. 저는 사실 이런게 취향일리 없는데도(?) 들을 때마다 꽤 즐겁게 듣고 있습니다. 자기 반복처럼 보이긴 하지만 쉽게 질리지 않는다는 큰 장점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그의 랩을 잘 모르는 분들에겐 피쳐링진이 좋은 미끼로 작용할 듯하니 이 기회에 한 번 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군요.



(10) GGM RECORDS - First Day Out (2020.5.20)


 두 달 만에 새로운 컴필레이션을 갖고 돌아온 GGM RECORDS입니다. "Indictment"와 두고 비교를 하자면, 스타일 면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 아직은 이들이 자기들 스타일을 소개하는 단계에 있다고 보는 게 맞겠죠. 다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Indictment" 때의 '그윽한' (?) 분위기는 유지하되 템포가 조금 빠르고 통통 튀는 느낌의 비트들이 추가된 차이가 있다 하겠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운드가 전체적으로 chilling하는 느낌으로 작업되어있기 때문에 이걸 가지고 뭔가 바운스감을 즐기기엔 2% 부족해보입니다.


 멤버들의 랩은 전 앨범과 마찬가지로 갱단 컨셉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총을 챙기고, 경찰을 엿먹이고, 마약을 하며 돈을 털고 있죠. 영어라서 잘 드러나지 않고 음악이 조용해서 그럴뿐 어찌 보면 Uneducated Kid보다 더 뚜렷한 컨셉 음악인 겁니다. 영어를 들어보면 분명 네이티브 스피커까진 아닌 거 같으면서 얼추 자연스럽게 속어를 써가며 곡을 진행하는 거 보면 그런 음악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치밀했구나 싶습니다.


 여전히 멤버 중엔 GGM LIL DRAGON이 제일 그들의 부드럽고 편안한 바이브에 맞게 랩을 한다 싶은데, 사실 멤버들 간의 목소리가 완전히 구분되진 않습니다 - 셋이 참여한 곡에 두 목소리밖에 안 들린다든지...; 하나 전작과의 차이로 Jr. Eagle이 마지막 보너스 트랙을 수록하여 참여진이 한 명 더 늘었다는 점이 있습니다. 보너스 트랙 한 곡만 싣는 거 보면 어떤 사정이 있어서 활발한 활동을 잘 못하는 듯한데, 한 곡으로만 판단하긴 이르지만 나머지 멤버와 구분되는 억양의 로우톤과 훅 메이킹을 보면 향후 활동을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두 장의 앨범을 자기 나름대로는 색깔을 차이 줘서 냈던 거 같긴 합니다만, 어쨌든 chilling vibe가 이들의 중심축입니다. 이번 앨범까지 들으면서는 이 분위기가 지루하고 밍밍한 맛과 한끗 차이가 될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전부 영어로 우리나라 것이 아닌 문화를 소재로 삼다보니 어색하게 느껴지는 멤버들도 분명 있고요. 어차피 다음 앨범 색깔도 크게 이것과 벗어나지는 않을 거 같고, 이 바이브를 더 강화시키는 길이 최선의 정답이겠죠 - 처음은 첫인사 효과로 나쁘지 않게 지나갔다 싶지만, 두 번째 들으니 아직은 감질맛만 느껴지는 단계 같습니다. 확실히 한국에 잘 없는 색깔이긴 하니 잘 가꾸면 씬에 한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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