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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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5 23:44:17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이전에도 얘기했듯 근무지가 변화하면서 다 좋고 좋은데, 개인 시간은 휙 줄어들었습니다.

댄스디로써의 삶이 어떻게 될지 아직은 예측 불능이네요.

이 글의 열 번째 글도 아내와 애기가 잠들고 후다닥 적었습니다ㄷㄷ

부디 댄스디 은퇴의 날까지 시리즈가 안정적으로 진행되길 바라며...

그나마 다행인 건 밀린 앨범의 수가 얼추 줄어들었습니다. 앨범 러쉬가 이제 좀 진정되는 거 같네요

(이런 말하면 또 러쉬가 오겠죠? 후후@_@)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현 - 새벽 (2020.4.8)


 작년에 "어른"이란 앨범으로 다룬 적 있는 현의 새 앨범입니다. "어른"에서도 현의 베이스는 이모 힙합이었고, 랩보다는 순수 노래에 가깝게 들릴 정도로 싱잉의 비중이 높았었죠. "새벽"은 새벽에 들으라는 소개글에서 짐작할 수 있을듯 우울한 무드에 초점을 맞춘 앨범입니다. 기본적인 베이스는 비슷하지만 "어른"에 있던 감정의 변화가 "새벽"에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특별한 기교 없이 무난하게 부르는 목소리는 이모코어란 장르에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특히 우울감을 표현하는 데에서는 말이죠. 다만 저번 앨범에 비해서는 보여주는 것이 한정적이다보니 느껴지는 바도 좀 적었습니다. 우선 다른 락, 발라드처럼 멜로디가 집중적이지 않고 다소 단조롭기 때문에 (또 힙합의 측면에서 보면 탑 라인을 나쁘지 않게 짜긴 했지만) 쉽게 귀를 잡아끄는 포인트가 없고, 비슷비슷하게 들리는데 일조했습니다 - 개인적으로 "필요해"가 끝나고 바로 "장작"의 'Feel the fire' 부분의 멜로디를 듣는 순간 진한 데자부가 일어나더군요; 가사도 편안하고 일상적인만큼 얕게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무엇보다 6곡 내내 느릿느릿하게 같은 슬로우 템포로 이어지는 곡들을 듣는 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변화 포인트를 준 것이 아예 없진 않지만 대개는 미미하고, 그나마 제일 존재감이 있는 장치는 피쳐링입니다. 키미테의 벌스 분위기가 너무 곡 내용과 따로 놀아 엉뚱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만큼 다운되어있는 분위기를 올릴 필요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요컨대, 이 정도로 우울한 곡들만 모아놓을 것이었으면 끝까지 청자를 잡아두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했다고 봅니다.


 저번에 "어른"을 듣고 감상 후기 남길 때는 짧은 곡 안에 너무 급격하게 감정의 변화가 전개된다고 얘기했는데, 이번에는 완전 반대의 입장이라는게 아이러니하군요. 덕분에 다시 꺼내들은 "어른"에서는 여전히 표현의 스펙트럼이 그리 한정적이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기에, 이번 앨범이 조금 더 아쉽습니다. 노래의 비중이 높은 앨범이라, 조금 더 '노래를 잘 했으면' 매력적이었을 거 같단 생각도 같이 드네요.



(2) 던킨도우너 - 던킨도우너 1호점 (2020.4.10)


 던킨도우너는 래퍼 던킨과 보컬 도우너로 이루어진 듀오입니다. 2017년 첫 믹스테입 "Munchkin"을 발표, 이후 한 장의 믹스테입과 네 장의 싱글을 더 냈고, "RUBREW"라는 크루에도 속해있는 듯합니다. 외부 활동이 그리 많진 않았지만 Mic Swagger 4 Open Mic 때 최종 5인 후보에서 던킨 이름을 보기도 했었네요. "던킨도우너 1호점"은 그들의 첫 정규 앨범입니다. 선공개된 싱글 두 곡과 두 번째 믹테 "Jellybean" 수록곡 두 곡을 포함, 10곡이라는 작지 않은 크기로 완성되었죠.


 개인적으로는 믹스테입 발표 전부터 래퍼 + 보컬이란 흔치 않은 조합 때문에 힙합엘이 워크룸에서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팀이었습니다. 1MC 1보컬이란 조합은 매력적으로 보이고 시도된 케이스야 많지만, 은근 팀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비중 조절이나 케미를 내기가 어려워 성공 사례가 생각보단 드문 거 같습니다. 와중에 던킨도우너가 하는 음악은 통통 튀고 신나는 바이브의 곡들로, 팝적인 색깔도 많이 띄고 있고 상당히 풋풋한 느낌이 많이 배어있습니다. 이 안에서 던킨과 도우너는 서로의 스타일로 벌스를 주고 받으면서 다져온 케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처음 던킨도우너를 봤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하여 싱잉 랩이라는 것이 랩의 한 분야로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도우너의 보컬은 사실 으레 생각나는 R&B 스타일의 보컬이라기보다 가성 섞인 플랫한 발성, 대신 화려하게 짜놓은 플로우가 돋보이는 타입으로, 어떻게 보면 "래퍼 + 보컬" 조합이란 글자에서 예상되는 그림과 많이 다릅니다 - 즉, 던킨도우너는 그저 래퍼와 싱잉 래퍼 한 명씩 있는 팀이라 생각하는게 좀 더 예상에 일치할 겁니다.


 신나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던킨의 플로우는 시종일관 다이나믹합니다. 반대로 도우너의 보컬은 음이 잘게 쪼개져있고 가성이 많아 얇게 느껴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하죠. 발랄한 바이브에 맞추기 위한 서로의 타협이었을지 모르지만 케미가 좀 애매합니다. 던킨의 랩은 활동 시작할 즈음의 트렌드의 영향도 있는데,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거북할 수도 있을 겁니다. 특히 "Still I Don't Know About Me" 같은 차분한 곡에서마저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톤 운용은 곡에 잘 녹아들지 않고 겉도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얇은 보컬, 신난 래퍼(?)와 표현, 비트 등 곡의 거의 모든 요소들이 발랄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에 매우 단 걸 먹는 듯한 느낌이 앨범 전체에서 납니다 (말했다시피 차분한 곡에서도 그들의 에너지가 멈추지 않습니다). 대체로 하드코어 리스너에게는 어울리지 않고, (심한 편견적인 말일 수 있지만) '어린 리스너가 듣기 좋은' 곡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역시 그들이 지향하는 바였고, 예상대로 나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아재 리스너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성숙한 색깔을 입혔으면 하는 바람이고, 특히 보컬이 보컬다운 모습 (이 또한 편견일 수 있는데)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이번 앨범엔 과거의 곡들이 많이 섞여있었으니, 앞으로 만들어갈 곡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확인해보겠습니다.



(3) 안병웅 - Bartoon: 24 (2020.4.13)


 "Bartoon: 24"는 2019년 7월 나왔던 그의 믹스테입 "Bartoon: 36"의 연장선에 있는 앨범입니다. "Puff Pass" "Mary Jane" 두 곡이 편곡되어 실렸고, 좀 더 빵빵한 피쳐링진과 함께 사운드 퀄리티에 힘을 주었습니다 (라는 건 물론 상당히 논란이 있는 부분으로, 이건 아래에서 좀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멤버였던 태빈이 나가 현재 M.S.F.의 나머지 한 멤버가 된 Candid Creation이 전곡을 프로듀싱했고요. Beddy가 옛날 랩 네임인가 어림짐작한 적 있는데 이번 앨범 커버에도 'Beddy Lee'라는 이름이 등장해서 다른 뭐가 있나 싶긴 하네요. 


 앨범보다 더 핫한 이슈를 몰고 다닌 최근 인터뷰 영상에서 그는 '붐뱁 키드로 남고 싶지 않다. 그것은 의도한 이미지가 아니다'라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맞아요, 8-90년대 힙합에서 이런저런 소스를 따오긴 했지만, 그가 하는 음악은 고전적인 의미의 붐뱁과 차이점을 많이 보입니다. 좀 더 직선적이고 파괴력을 보이는 게 골든 에라 힙합이었다면 안병웅의 랩은 리듬감은 계승하되 몽환적이고 묘한 바이브가 들어있어 재밌는 부조화가 있습니다. 발음만 따지면 멈블 랩이라고 해야할지도 몰라요. Candid Creation의 비트도 이에 맞춰 일반적으론 고막에 잘 와닿지 않는 음역대의 소스를 많이 활용했고, 전체적으로 먹먹한 사운드를 추구하여 좀 안 좋은 환경에서 들으면 드럼만 쿵쿵따 대고 비트와 랩은 웅얼대는 느낌이 듭니다. 나쁜 믹싱에 대한 논란은 이런 색깔을 만드는 데에서 파생된 부작용 같군요. 이런 색깔 때문에, 전작에서도 그렇지만 안병웅의 랩은 Qim Isle이 연상되곤 했습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가사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한영 혼용이 심한 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언어 간의 변환이 나름 매끄럽다 느껴졌고, 라임으로 마디 적재적소에 강세를 잘 두어서 개성적인 리듬감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다만, 아직 노출된 것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리듬감이 벌써 물리기 시작하는 건 문제입니다. 첫 등장 시에는 꽤 충격적이었지만, 의외로 경직된 구조였던 거죠. 전 "Mary Jane" 같은 노래 때문에 스펙트럼이 좁다고 속단하고 싶진 않지만 새로운 것을 보여줄 때가 이미 되었습니다. 또 잘게 분절된 랩 가사 및 비슷해보이는 어휘들은, 결국엔 그가 사운드 중심으로 가사를 쓰는게 아닌가 추측하게 만듭니다. 이 역시 "Mary Jane" 같은 곡에선 차이점을 보이지만, 대개는 라임으로 인한 타격감이 훨씬 강조되어있고 메세지는 깊이가 얕습니다. 이 부분마저 아니라고 한다면, 메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 또는, 다른 말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더 연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논란이 되었던 7interview 인터뷰는 저도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뭐 본인 음악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는 게 나쁜 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로는 힙합하고 어울리는 것도 같고요. 하지만 그게 센 척이든 아니든 속으로는 본인의 부족한 점을 확인하고 염두해둬야 할텐데요 - 설마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 과장을 좀 섞어 말하자면 이번 앨범으로 저는 '안병웅'이라는 장르가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부디 더 이상의 트러블 없이 그 스타일을 공고히 하여 대체 불가능한 아티스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뭐 인터뷰를 어떻게 받아들이든, 모든 건 음악으로 증명하기 나름이니까요.


PS 사소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흠. 중요한 시기의 앨범이었던만큼 Candid Creation의 랩 벌스가 마지막에 들어가는 건 조금 아니지 않았는가.... 하는...;



(4) Tommy Strate & Santa Paine - Quarantine (2020.4.11)


 갑자기 Tommy Strate가 새로 발표한 세 곡짜리 작은 앨범입니다. Santa Paine은 Tommy Strate와는 "UP" 때부터 작업해온 프로듀서로, "NEVERMIND" 시리즈에 비중 있게 참여하기도 했고, Dopein, Bryn, Owen, Make A Movie 등과도 콜라보한 바 있는 프로듀서입니다. 앨범 소개글에 따르면 Tommy Strate가 만들 레이블 "Kim's Lounge"의 멤버가 될 예정이라는군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희망을 주고자 만들었다는 "Quarantine"은, 그 의도에 비하면 상당히 멜랑꼴리하지만 (...) 여느 때의 스타일과 달리 심플한 피아노 연주와 짙은 감성의 싱잉으로 마감한 곡들은 확실히 느긋하게 쉬면서 듣기에 한없이 어울립니다. 트랩 비트의 느낌보다는 발라드 같은 느낌으로 전개되다보니 꽤 신선한 면이 있네요. 많은 것이 있진 않지만 "Kim's Lounge"라는 이름을 소개하는 예고편으로 괜찮은 작품 같습니다.



(5) Deepflow - Founder (2020.4.13)


 이 글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그저께만해도 힙합엘이 게시판에는 제327회 Deepflow는 변절자인가에 대한 토론회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반항은 타협으로, 패기는 수완으로 변하는 건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건만, 속사정을 알 길 없이 겉으로 드러난 단편만 보게 되는 팬에게는 늘 받아들이기 힘든 일 같습니다. 다행히도, 속사정을 구구절절히 설명하는데 힙합만큼 좋은 장르는 없죠. 물론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Deepflow의 "Founder"는 지극히 개인적인 앨범입니다. 랩을 좋아하던 청년에서 VMC의 사장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내밀히 그려내고 있으며, 그 흔한 자기 과시도 없이 사건과 소회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저 같이 디테일에 환장하는 올드 리스너로써는 환장할만한, 함께 추억 여행 보내주는 듯한 이야기들이죠. 이렇듯,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가 손에 잡힐듯이 생생하게 전개된다는 점이 "Founder"의 큰 강점 중 하나입니다. 때문에 그의 심경 변화가 섬세하게 그려지고, Deepflow의 (누군가에게는 다시 변명일) 솔직한 가사는 어떤 노래들보다도 큰 울림과 설득력을 지닐 수 있습니다.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Founder"는 귀로 듣는 영화이며, 13곡이 순서대로 묶일 때 큰 생명력을 발휘합니다. 이런 탄탄한 서사는 O'Domar의 "밭"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군요.


 사운드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Van Ruther의 디렉팅과 프롬올투휴먼의 밴드 세션을 기반으로, 스트링 세션과 NP Union의 브라스까지, 모든 악기가 리얼 세션으로 포함되어 앨범의 생명력을 더욱 발산하게 해줍니다. 악기 소리 하나하나가 다 살아있으며, 이 귀로 듣는 영화의 OST처럼 분위기에 맞게 전개와 반전을 반복합니다.


 오직 랩으로만 따졌을 때, 이번 앨범의 Deepflow의 랩은 따분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곡에 따른 차이는 조금 있지만, 대개 큰 변화 없이 평탄하게 흘러가는 어조와 박자니까요 - Deepflow도 인터뷰에서 '테크니컬한 주법을 시도한다고 해서 잘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지금 선택한 주법을 더 밀도 있게 완성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지루할 수 있는 플로우를 살아숨쉬게 하는 것이 인스트루멘털입니다. 마치, 비트도 목소리를 가지고 주장을 펼치며 Deepflow에게 맞장구를 쳐주는 느낌이랄까요. 누구였는지 기억 안 나는데, "BEP"의 후렴 세 번이 다 다른 얘기를 하는 것 같다는 반응을 Deepflow가 좋아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마법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비트입니다. 사실 이런 꽉찬 사운드는 래퍼에겐 매우 불편합니다 - 여러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악기들이 랩과 기싸움을 하게 되니까요. 그럼에도 결코 밀리지 않고 우직하게 메세지가 전달될 수 있는 건 역시 Deepflow의 힘입니다.


 앨범의 면면에 사연이 있습니다. VMC 초창기부터 함께 한 주요 멤버와의 단체곡, 나름 대중적인 성공을 이룬 넉살과 작품성은 있지만 대중적으론 만족스럽지 못했던 QM, 그리고 함께 청사진을 그려나갈 Rohann으로 이어지는 피쳐링진의 흐름. 노래 곳곳에서 등장하지만 다른 의미를 가지는 500이란 숫자. 어느 하나 허투루 더해진 것이 없는 치밀한 작품입니다. 특히, 여러 성공담을 들어왔으면서도, 사장이란 위치는 어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던 청자들에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얘기를 건네는 게 좋았습니다. 그 얘기에 공감이 가지 않을 수도 있고, 그저 랩이 따분해서 손이 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 "Founder"는 '창립자'가 전하는 살아있는 전기이며 예술 작품입니다. "Heavy Deep" 때와는 다른 의미로 heavy함이 느껴지는 앨범이었습니다.



(6) Loopy - No Fear (2020.4.14)


 수많은 싱글 선공개 끝에 더 수많은 트랙과 함께 나타난 Loopy의 새로운 정규 앨범입니다. 짧은 곡도 별로 없는 21곡의 트랙리스트를 주파하기 위해 우선 알아둬야할 것은, "No Fear"가 그의 최근 행보 - LooFla, 쇼미더머니 경연 곡 등과는 꽤 다른 색깔을 띄고 있다는 겁니다. 그걸 위해 선공개 싱글이 그리 많았나 싶지만, 사실 선공개 싱글로도 앨범을 설명하긴 쉽지 않습니다. 몇 번을 듣고 나서, Loopy가 하고 싶은게 많아 트랙 수가 이리도 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래 Loopy는 가사보다 사운드에 더 집중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었고, 이번에 그 사운드의 방향은 trippy, 몽환적인 바이브입니다. Loopy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톤과 발음이 만들어내는 그루브감과 감성은 적어도 몇 곡에서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IN N OUT"은 전자의, "SAD BOY"는 후자의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군요. 허나 그 두 가지를 나름의 방향으로 강화시키기 위해, 오토튠이 훨씬 두껍게 덧칠해졌고 (일부에서는 보코더 느낌까지 나네요), 발음은 더욱 풀어졌습니다. 이런 걸 생각할 때 프로덕션은 조금 얇아진 듯한 느낌은 있습니다 - 아마 쇼미더머니 때 Code Kunst의 존재감이 너무 컸던지, 아니면 이번에 비중 있게 차지한 Dayrick의 스타일에 대해 제가 편견이 있어서일지 모르겠습니다.


 21곡을 주파함에 있어 난관이 되는 것은 쉴새 없이 몰아치는 trippy함의 파도를 어디까지 견디느냐 와,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고 다양한만큼 산만하게 느껴지는 앨범 구성입니다. 안 그래도 독특한 Loopy의 톤에 오토튠이 세게 발라졌으니, 평소의 호불호 정도가 훨씬 심해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뒤로 갈 수록 피로가 있을 수밖에요. 한편 위에서 '선공개 싱글만으로 이 앨범을 설명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것은 특히 후반부에 집중된 다양한 스타일 때문입니다. 떼놓고 보면 인상적이고 재밌습니다 - "TUESDAY"나 "NEO SEOUL LOVE" 같은 건 기존의 Loopy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스타일이었죠. 허나 이런 것들이 앨범 진행 중 다소 뜬금없이 등장하는 감이 있습니다. 피로가 제일 누적되었을 '결' 파트에 이르러서도 "DARK TIME" "G.O.A.T." 등으로 한 번 더 힘을 주는 것도 이런 맥락의 예 중 하나입니다. 물론 앨범을 반드시 통째로, 순서대로 들으란 법은 없긴 하지만요.


 반대로 말하면 앨범을 통째로 돌리자면 사이사이 과소평가 받고 기억에 남지 않는 곡들이 분명 있는 듯합니다. 이런 장르 특성상 팬이 아니라면 쳐지는 느낌을 피하기 어려워서이기도 하고요. 또 사운드의 방향 차이 때문에 근래 Loopy가 보였던 음악보다는 덜 깔끔하다는 인상도 있습니다. 저 역시 붐뱁충으로써 이런 이모 힙합과 마음의 벽이 아직 있는 터라, 디럭스로 추가될 4곡에 대한 호기심은 솔직히 말해 높지 않군요 (한 곡은 선공개긴 하지만)... 반대로 Loopy와 이모 힙합에 대한 호감이 있다면 그가 늘어놓은 음악적 실험의 결과를 충분히 즐길 수도 있겠죠. 결과가 어떻든간에, 본작에서 보여준 실험 정신은 잊지 말아야할 거 같습니다.



(7) Kid Milli - BEIGE 0.5 (2020.4.17)


 Kid Milli의 1.5집 "BEIGE 0.5"입니다. .5는 90년대에 EP라는 단어를 잘 모를 적에 보통 쓰던 단어였는데 이 앨범은 재밌게도 정규라고 지정되어있으면서도 2집이 아니라 1.5집입니다 - 인터뷰에 따르면 트랙 수 때문이었고, 2집은 "BEIGE"가 될 예정이라고 하죠. 사실 지난 앨범들이 꽤 많아서 그 중 뭐가 1집이었는지 이 글 쓰면서 찾아봤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그 많은 앨범 동안 Kid Milli는 항상 스타일을 바꿔오며 정해진 테마에 충실한 앨범을 냈습니다. "AI, THE PLAYLIST"는 귀 아픈 (부정적인 얘기 아닙니다) 전자음이 가득한 비트 사이에 현란함을 극대화한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L I F E"는 붐뱁충을 만족시킬만한 붐뱁 리듬을 기반으로 했었죠. 그럼 이번에는? 나름 예고편 싱글로 나왔던 "BOY"의 뮤직비디오 유튜브 리플에 '씨잼과 마미손 (...)을 베꼈다'란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극히 단편적이고 얕은 반응이지만, 여튼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BEIGE 0.5"의 가장 큰 특징은 오토튠 싱잉입니다 - 드디어 Kid Milli도 이모 힙합에 발을 담근 것인가요.


 그런 다양한 색깔 속에도 늘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결국 중심은 기존의 Kid Milli인 것이 놀랍습니다. 특유의 현란한 플로우는 이번에도 곳곳에서 등장합니다. 싱잉 랩을 본격적으로 사용했을 뿐이지, 대부분의 곡에서는 여전히 Kid Milli의 랩이 주인공입니다. 저는 그가 랩의 메세지가 아니라 소리가 중시되게 한 파이오니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즉, 그는 자신의 랩이 어떤 악기로 사용될지 알고 적재적소에 넣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Timmy Holiday" 전반부의 랩은 끊어지는 부분이 없고 계속 웅얼대는 느낌으로 가는데, 여기에서 딜리버리를 논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히려 음산하고 난해한 분위기에 찰떡 같이 붙는다고 봐야하죠. 저는 결코 Kid Milli의 작사 능력을 낮게 보지 않고, 상당히 잘 쓰는 편이라 생각하지만, 그의 음악은 늘 가사보다는 랩의 타격감과 주변 비트와 어우러짐이 더 많은 걸 말했습니다. 이모 힙합에 발을 담근 지금, 평소보다 빵빵해진 리버브와 어두운 Ian Purp의 비트는 Kid Milli 식 장르의 소화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랩만 얘기했는데, Kid Milli의 보컬도 좋았어요. 특히 "Instagrammer Girl"은 정말 프레쉬했습니다 - 트랙리스트를 보지 않고 처음 돌릴 땐 당연히 피쳐링일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단점을 찾기 쉽지 않은 앨범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극단적인 평들이 많더군요. 뭐, 장르의 전형적인 장치를 대부분 가져왔고 Kid Milli의 랩 파트는 전과 비슷하니 그런 부분의 취향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굳이 아쉬운 걸 꼽자면, 상당히 감성이 짙은 앨범 전체 분위기에 비해 "Pop!"이 마무리를 짓는 게 좀 쌩뚱 맞았다는 정도겠네요 ("BOY Remix"는 보너스 트랙으로 생각 중). 어느 정도의 공백기 이후 돌아온 셈인데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티스트 Kid Milli에 주목하게 됩니다. 곧 나온다는 "BEIGE"도 기대하며 기다려보도록 하죠.



(8) Yuzion & Futuristic Swaver - Melodic Trapstars (2020.4.17)


 할 말이 그리 많지 않은 앨범입니다. 딱 예상하던 그 색깔로 나왔거든요. 의외로 프로듀서진에 Laptopboyboy가 없었고, 세세하게 들어보면 Laptopboyboy랑 바이브가 좀 다르긴 하지만, 여튼 크게 봐서는 익히 알고 있는 '그들의 트랩' 그대로 나왔습니다. 애초에 Yuzion은 지금까지 그 외의 모습은 보여준 적 없었으니 당연하긴 하였죠. 그리고 몇 번 밝혔지만 이 스타일은 저와 취향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 장르 자체가 매너리즘에 빠져있다고 느끼거든요. 그래도, Yuzion의 상큼 풋풋한 목소리가 Futuristic Swaver 목소리의 짜글짜글함 (이상한 표현인 거 아닙니다. 그럼에도 분명 공감하시는 분이 있을 겁니다)을 카운터해주는 부분이 있어서, 둘의 케미는 좋은 거 같습니다.



(9) GI$T - He (2020.4.20)


 벌써 두 번째 정규입니다 - 체감상 3-4달만인가 싶었는데 일단 숫자로는 6개월만이긴 하군요. 빠른 작업 속도는 인정할만 합니다.


 "He"는 지난 앨범 "감정"에서 보여준 것을 답습하면서 더 정제한 형태입니다. "감정"에서 보여준 솔직하면서도 강렬한 감정선은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정제된 것은 노래 실력입니다. 그의 노래 실력은 단순히 싱잉 래퍼라고 부르기 무안한 정도로 깊이와 울림이 있습니다 - 1대1 비교는 이상할 수 있지만 첫 트랙에서는 Crush가 연상될 정도로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감성에 맞게 발성을 내고 탑 라인을 짜는 실력이 좋아 애절하면서도 따뜻하게 앨범을 들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제일 큰 단점 중 하나는 가사였습니다. 이는 매우 개인적인 차원의 감상인데, 저는 원래가 시적이거나 기발한 가사를 좋아하는 터라 GI$T의 솔직 담백한 가사가 어떤 면에서는 얕게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이런 가사의 특징 때문에 더 순수하게 그의 기분에 공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냥, 저번 앨범도 그렇고 이번 앨범도 그렇고 단순한 구조와 표현을 가진 가사가 좀 걸리네요.


 결국 저번 앨범을 너무 닮아있다는 얘기로 거슬러갈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그가 주는 감동이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정도의 울림 있는 노래를 부르는 싱잉 래퍼는 드문만큼 이미 나름의 영역을 구축했다고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구축이 되었다면 이제는 슬슬 확장의 시기가 아닌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봅니다.



(10) Leellmarz & TOIL - TOYSTORY2 (2020.4.21)


 "MARZ 2 AMBITION" 이후 비교적 휴식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씬의 대표적인 허슬러 둘인 Leellamarz와 TOIL의 합작 앨범입니다 (하긴 TOIL은 쉬지도 않았죠...). 앨범 제목을 보면 알다시피 "Toystory"는 원래 2018년 9월에 1이 나왔던 앨범이고, 이번 앨범은 1년 반만의 후속작이죠.


 여러 결과물을 통해 자신의 스타일과 실력을 증명한만큼 Leellamarz의 매너리즘에 대한 얘기는 빠르게 논의되었습니다. 애초에 그가 "MARZ 2" 시리즈를 냈을 때의 스타일이 새로운 것은 아니었을 뿐더러 비슷한 음악을 짧은 간격으로 듣다보니 피할 수 없었던 부분일지도요. 다만, 그 시절을 통해 분명 스타일이 성숙하고 완성되긴 했습니다. 일례로, 오토튠 없이 깔끔한 싱잉을 뽑을 수 있게 되었죠. 다만 완성 단계에 이르고 나니 매너리즘 얘기는 더욱 힘을 얻게 된 느낌이 있습니다. 저는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Room Service"도 이 궤에서 벗어나진 못 했다고 생각합니다. 해서 Leellamarz 앨범을 들을 때는 그런 틀을 얼마나 벗었는지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는 듯합니다.


 그런 습관에서 기인한 무의식적인 반응인지, 오랜만에 그의 앨범을 들어서인지, "Toystory 2"는 이때까지의 Leellamarz 작품 중 제일 프레쉬했던 앨범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얻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상대적인 의미로 말이죠. 가장 큰 요소는 첫 세 트랙이었습니다. 이 세 트랙에 깔린 펑키한 느낌이 Leellamarz와 잘 어울리고 좋더군요 (3번 트랙의 TakeOne 디스를 앨범 듣기 전부터 먼저 보고 있었는데, 그 노래가 이렇게 신나는 노래일줄은 상상을 못 했음...;). TOIL도 최근 Hash Swan과 Jayci Yucca 앨범에서 풍성한만큼 고정된 밴드 바이브를 보여주다, 앞의 세 트랙에서 재밌는 음악 소스를 사용하여 펑키하고 가벼운 바이브를 보여주어 더욱 좋았습니다.


 세 트랙을 넘어가서는 다시 무난무난합니다. "아가씨"나 "why you live in the mirror?" 같은게 좀 다르다고 할 순 있겠지만 초반의 충격만큼은 없었어요. "인간중독" 같은 트랙은 더더욱 전형적인 Leellamarz였고요. 다만 새삼 그의 과거 곡들을 돌아보면, 현재의 Leellamarz는 싱잉이 안정되기도 하였고, 랩과 노래를 균형 있게 섞는 감각이 좋아진 거 같습니다 - 예전에는 랩과 노래를 너무 딱 구분하려는 느낌이었거든요. 이렇게 한데 잘 버무리니 노래가 더 사는 거 같네요. 더불어 펑키한 느낌의 초반 3곡을 좋아한건, 제가 Leellamarz의 노래가 감성적이 될 수록 다소 느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이렇게 부담 없이 흥얼거리듯 부르는게 그의 얇은 톤에 더 어울리는 거 같아요.


 또한, "MARZ 2" 시리즈 때보다는 작품 하나하나의 임팩트가 커졌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뭐 간격이 길어져서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지난 허슬이 독만 되진 않았을 거에요. Leellamarz와 TOIL은 이번 앨범 소개글에서 음악을 즐거운 '놀이이자 행복'으로만 쓰고 있지만, 놀이로 뽑아낸 앨범이 이정도 수준이 되었다면 지난 시간 동안 둘 다 어느 의미로는 대가가 되어가고 있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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