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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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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31 23:24:05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현재로써 목록에 남은 앨범은 Lil Tachi 이번에 나온 앨범 뿐입니다

물론 주말을 넘어가고 주를 넘어가면서 또 신작이 나올테지만...

일단 밀린 거 따라잡고 나서는 아이유랑 혁오 앨범이나 주구장창 돌리려 합니다 흑흑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채군 - 어둠과 사람과 숨과 (2020.1.19)


 만약에 Wassup Crew나 늘픔패거리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채군의 이름이 낯익을 것입니다 - 최근 얘기했던 Vegaflow처럼요. Demonicc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기간이 더 길긴 했지만, 최근 늘픔패거리 동료들과 "Uncommon Ave."라는 집단을 만들면서는 채군으로 돌아온 거 같습니다.


 이번에도 결론부터 말해볼게요. "어둠과 사람과 숨과"의 주인공은 랩이 아닙니다. 랩 앨범 얘기하는데 모욕 같이 느껴질지도 모르는 말이나 저의 결론은 그렇습니다. 채군의 총괄 프로듀싱 아래 만들어지고 담긴 이 앨범의 연주를 앨범 소개글은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정말 그렇습니다. 킹스턴 루디스카, 3호선 버터플라이 등 여러 배경의 짱짱한 멤버가 모여 선사하는 하모니는 생생함을 넘어 밴드 잼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사이에서 랩의 자리는 생각보다 작습니다. 원래 채군은 파워풀한 랩을 뱉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힘을 빼고 편하게 가는 스타일과 오밀조밀한 라임이 그의 개성이었죠. 그렇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스킬은 있었던 데 비해, 이번에는 훨씬 더 담백합니다. 전곡에 걸쳐 거의 한 가지 톤을 사용하기 때문에 랩을 논하자면 솔직히 지루합니다. 그런데 이 앨범은 말했다시피 밴드가 주인공입니다. 사운드에서부터, 랩보다 악기들의 소리가 전면에 나와있으며, 단조로운 랩은 튀지 않고 하나로 섞입니다. 군데군데 랩을 쉬고 연주에 집중되는 파트가 많다든지, 아예 드럼이나 기타의 템포에 맞추어 랩을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하여, 랩을 듣고자 했던 사람들은 실망할 공산이 커보입니다.


 '시한부 환자의 마지막 글'이란 컨셉을 갖고 있다지만 곡들이 가지고 있는 바이브는 비교적 밝습니다. 이중 가장 펑키한 곡인 "일흔한번째 편지"는 밴드 연주의 매력이 제일 크게 살아나는 곡으로 베스트 트랙으로 꼽기 부족함이 없습니다. 채군의 가사는 사람에 따라 억지스러워보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론 담담한 어조와 적절한 은유가 잘 쓰였다고 생각합니다 - 역시나 밴드에 맞추어 너무 복잡하게 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같고요. 사소한 것 하나, 곡이 갑자기 툭 끊기는 부분들이 중간중간 있는데 이건 의미를 잘 모르겠더군요 - 모르는 부분이라 그런지 맘에 들진 않았습니다ㅎ


 아무튼, 찾던 것은 못 찾았지만 의외의 것을 선물 받은, 신선한 반전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공연을 한대도 찾아갈 여건이 안 되어 아쉽지만, 한번쯤 라이브 잼으로 보고 싶은 앨범이네요.



(2) Potty Monkey - Lost Me (2020.1.17)


 은근히 숨은 트랩 고수(?)처럼 얘기되곤 하는 Potty Monkey가 새 EP를 냈습니다. 그동안 발표했던 하드한 느낌하고는 상반되는 조용히 중얼거리는 스타일의 랩으로, '멈블 랩'이란 단어에 좀 더 충실하게 곡이 나왔습니다. 이를 제외하면 이번에도 ICECREAMTRUCK이 모든 비트를 제공했기 때문에 바이브는 평소의 진한 트랩 느낌이고, 여전히 마약, 범죄, 여자에 대해서 담담히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그전 Potty Monkey의 노래보다도 취향과 상반되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좋게 들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전히 군데군데 랩 디자인과 훅 메이킹의 센스는 보인다고 해야할 거 같습니다. 이런 장르의 팬이라면 오히려 Potty Monkey의 성공적인 스타일 변화라며 반길지도 모르겠네요.



(3) Cosmic Boy - Can I Heat? (2020.1.21)


 Can I 시리즈(?)론 세 번째 작품입니다. 지난 앨범에서 이미 힙합하고는 좀 거리가 있는 팝 코드로 곡을 만든다고 생각을 했는데, "Can I Heat?"도 같은 맥락입니다.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제외하면 세 곡은 따스함의 정도가 상, 중, 하로 나뉜 느낌으로, 재지한 피아노 선율에서 시작하여 쓸쓸한 기타 멜로디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전부 보컬로만 피쳐링진을 채운 건 아니지만 실제 랩 같은 랩이 들어간 부분은 없기 때문에 이런 따스한 코드하고도 잘 맞물린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선우정아와 youra가 함께 한 첫 곡이 제일 포근한 느낌을 풍기면서 인상적이었던 거 같습니다. 크게 단점이 드러나는 앨범은 아니고, 단지 Cosmic Boy는 이런 쪽으로 갈 건가보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앨범이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대중작곡가로 성공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4) eggu - What Colour is Your Love? (2020.1.22)


 솔로 EP에서 Owen 앨범 참여, 그리고 Yizumin 프로젝트까지 이룬데 이어 쉴틈 없이 발표된 그의 첫 정규 앨범입니다. 그 직전 커리어 세 가지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번 앨범으로 판단해보면 Yizumin 때의 모습이 제일 그가 하고자 하는 방향과 유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타리스트이기도 한 그가 기타를 주 악기 삼아 만드는 멜로디는 항상 조용하고 차분하며, 그 위에 피쳐링진의 목소리들은 담백하게 믹싱되어 얹혀져있습니다. 덕분에 전에 내놓은 작업물에 비해 훨씬 chilling한 분위기가 앨범 전체를 메우고 있습니다.


 사랑의 다양한 색깔이라는 주제 하에 피쳐링진들은 사랑을 소재로 다양한 얘기들을 합니다. 개인적으로 주제가 완벽하게 드러날 정도로 벌스들이 재밌게 쓰여지진 못 했던 거 같습니다. 'Colour'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다채로움이 담기길 기대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진부한 얘기로 마무리지은 것 때문일까요. 여튼 이런 서사를 제외하고 구성에 있어서 재밌는 점은 첫째로 피쳐링진에 댄서와 타투이스트가 있다는 점. 귀로 듣는 음악에 드러날리 없는 두 직종이 당당히 피쳐링진으로 이름을 올렸다는 건 좀 더 다양한 얘기를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함과 동시에 다른 감각을 상상하면서 듣게 만드는 의도가 섞여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루드라서 크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런 의도를 상상하는게 재밌었네요.


 두 번째로 다음 앨범의 선공개곡이라는 "Her'liday"가 마지막 곡으로 수록되어있다는 것. 확실히 피쳐링한 잠비노가 들려주는 바이브는 앞에서의 이야기들과 다르게 독특합니다. 다만, 이 보너스 트랙도 eggu의 비트는 큰 맥에선 벗어나지 않는 듯하더군요. 앨범이 전체적으로 살짝살짝 수면을 건드리듯 단촐한 기타 선율에 거의 의지하고 있어서, 눈을 감고 깊이 있게 음악을 듣는 사람에겐 편안함을 줄 수 있겠지만 임팩트를 바란 사람들에겐 졸리다는 평을 받기 충분할 거 같습니다. 으레 프로듀서의 앨범이 그런 임팩트에 의지하기 때문에 후자가 꽤 많을 거 같다는 추측이 드는군요.


 그저 재지한 느낌으로, 혹은 붐뱁 프로듀서로 알던 과거의 커리어에 비해 훨씬 정확히 eggu의 방향성을 알게 해준 건 좋았습니다. 솔직히, 저도 eggu가 하려고 했던 얘기를 둔하게 들은 청자 중 한 명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뭐, 이 또한 아티스트가 결정한 방향성이긴 하겠죠. 또한 워낙 다양한 모습을 지금까지 보여왔던만큼 표현할 수 있는게 많을 것이기 때문에 앨범 하나로 그에 대한 평가를 휙 바꿀 순 없을 겁니다. 그저 "Her'liday"가 수록된 앨범이 나오면 또 듣고 얘기할 뿐이겠죠.



(5) kitsyojii - 돈이 다가 아니란 새끼들은 전부 사기꾼이야 (2020.1.24)


 "Yanbian 2" 이후로 부지런한 행보입니다. 최근 LBNC에 합류한 멤버 중 kitsyojii는 단연 튀는 아티스트입니다. '돈을 주제로 한 오토튠 싱잉 트랩'이라는 컨셉은 진부함의 끝을 달리는 테마고 kitsyojii도 분명 여기에 속하건만 그에게는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앨범 첫 곡부터 끝까지 드러나는 돈에 대한 열정은 정말 세계적으로 찾아봐도 이런 표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납니다. 중고딩 교복을 입고 판치기 돈까지 싹쓸이한다든지, 야동과 돈 중 돈을 보고 딸을 잡는다든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과장된 표현은 kitsyojii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대개의 머니 스웩 곡이 진부한 표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 비해 그의 표현은 읽는 것만으로 재미를 주는 다채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음악적으로도 이 앨범은 비지 않습니다. kitsyojii의 한이 서린 듯한(?) 목소리와 플로우가 비트를 꽉꽉 채워주면서 느낌은 완성됩니다. 더 나아가 iCOS가 전곡 프로듀싱한 비트는 후반부에 가서 "부잣집 딸래미" "쌔스끼" 등에서 발랄하게 전환을 하면서 한 번 더 돈 얘기를 비틀어 꺾고, kitsyojii는 센스 있게 이 분위기에 맞춰 다시 한 번 본인의 스킬을 유감 없이 발휘합니다.


 개인적으로 취향의 벽은 있지만, 이 앨범으로써 kisyojii의 존재감은 확실히 다져졌다고 생각됩니다. 돈에 대한 정신병적 집착 (...)에 가까운 태도는 유머러스하고 참신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질리게 만드는 요인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참신함이 있어 '원래는 질렸어야할' 시점을 넘어서 계속 찾아듣게 하는 매력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아티스트로써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이지 않은가 싶네요.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며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S 최근 들어서 kitsyojii가 Audio Game의 Joystick이었단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너무 달라진 스타일과 가사 소재 및 내용에, Audio Game의 마지막 앨범, 그리고 kitsyojii의 첫 싱글 사이의 간격이 3개월밖에 안 된다는 것 때문에 쉽사리 믿겨지지는 않더군요. 다들 주장하시니 그러려니 했지만 언제든지 사실이 아님이 입증되기를 기다리던 찰나, 며칠전 저는 꿈 속에서 kitsyojii의 철자를 거꾸로 써보고는 아 Joystick이 맞았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실화)



(6) Paloalto - Love, Money & Dreams: The Remixes (2020.1.24)


 깜짝 등장한 Paloalto의 리믹스 앨범입니다. 사실 단 두 곡의 리믹스만 실려있고 여기에 신곡 하나만 들어가있으니 볼륨으론 살짝 실망스럽지만, 내용물은 꽤 실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리믹스 앨범이란 것 때문에 "Q Day Remixes"가 먼저 떠오르게 되지만, "Q Day Remixes"는 아무래도 '일단 알만한 애들 다 데려왔다'란 식의 팬 서비스 느낌이 강했던 반면 이번에 공개된 리믹스 곡 두 곡은 조합이나 참여진의 원곡에 대한 이해도가 좋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신곡인 "LM&D"가 상당히 여운이 짙고 포근합니다. 주제 면으로나 음악 면으로나, "Love, Money & Dreams"의 마무리로 아주 잘 어울리는 듯해요. 특히, 다양한 분위기를 포괄하긴 했지만, 비교적 텐션이 높은 목소리로 랩을 이어갔던 나머지 곡들에 비해 힘을 뺀 편안한 목소리로 부른단 점 때문에 이렇게 포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Love, Money & Dreams" 뒤에 그대로 세 곡을 순서대로 갖다붙여도 꽤 어울릴 것 같아요 - 때문에 원 앨범의 디럭스 버전 보너스 트랙 같은 느낌이 드네요. 소소하지만 마냥 가볍진 않은 선물이었습니다.



(7) IAN - EPISODE (2020.1.22)


 1년 전쯤에 강이안의 "시ㄹ험"이란 앨범에 대해서 여기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시 XXX 느낌이 너무 많이 나서 그것에 대해 중점적으로 썼었는데, 그 강이안이 현재는 IAN (혹은 ianairplane)으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네요. 바로 다음 싱글이었던 "DEJAVU"부터 IAN은 스타일을 확 바꿨었습니다. "시ㄹ험"은 말 그대로 실험이었던 건지, 다른 계기가 있는지는 몰라도, 훨씬 대중적인 색채를 띈 아티스트가 되었죠. "EPISODE"는 그런 스타일이 담긴 첫 EP로, 소개글에서 그는 본인을 '싱어송라이터'라고 부르기도 하고, 분류조차 R&B, 인디 음악으로 되어있습니다.


 XXX과 유사점이 많았던 스타일에 벗어난 건 일견 좋지만, 그 후 택한 스타일이 다른 개성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닙니다. 흔히 들어봤을 법한 이지 리스닝 스타일의 싱잉 랩이죠 (아티스트 한 명에 비유하려니 자꾸 제가 미는 친한 동생 Logi밖에 생각이 안 나긴 하는데요...;). 이 분야는 어찌 보면 심하게 튈 필요는 없는 분야라, 변한 스타일에까지 쫓아가서 뭐라고 얘기하는 건 의미 없는 헤이팅이나 다름 없겠죠. 그렇게 남들과 애써 다르지 않더라도, 일단 그 음악이 드러내고자 하는 바는 선명히 표현하는게 중요할텐데요.


 첫 인상은 나쁘지 않은 노래들입니다. 적당한 화성과 코드 진행, 그리고 비유 섞인 가사들까지. 게다가 본인이 모든 음악 작업을 도맡아 하였단 점도 높게 살만 합니다 (이는 이 앨범 말고 그의 모든 노래에 해당하는 얘기입니다). 헌데 들으면서 묘하게 답답한 구석이 있습니다. 무조건 발랄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상큼한 구석이 있어야하는 대중적인 노래에, IAN의 목소리가 너무 낮게 깔리는 건 아닌지, 그게 처음 귀에 들어오는 부분입니다. 힙합엘이 태풍 님의 글에서 MELOH의 피쳐링 파트가 제일 킬링 파트였다는 얘기는, 앨범 안에서 가장 하이톤에 선명한 음색이기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 사실 전 IAN과 MELOH가 너무 안 섞여서 살짝 피쳐링이 안 묻은 사례라고 생각했어요. 이 로우톤의 벌스는 또 갑자기 텐션 업되는 후렴을 언밸런스하게 다가오게 하기도 합니다.


 곡 내내 여러 가지를 시도하긴 하지만 결정적으로 곡을 이쁘게 만들어줄 - 위에서 얘기했던 '음악이 드러내고자 하는 바'와 같은 맥락으로 - 파트가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들으면서 후렴에서 좀 더 변화를 주거나, 1회성으로 왔다간 사운드 이펙트를 더 활용한다던가, 아니면 벌스에서 좀 더 멜로디를 감성 돋게 짜거나, 리듬을 그루브감 살게 했다면... 등등의 아쉬움이 계속 남았습니다. 


 얼핏 예쁘장한 조합의 곡들이지만, 색채가 바래있는 느낌입니다. 연한 파스텔 톤의 색깔도 좋지만 문제는 IAN의 음악이 그걸 바라던 눈치는 아니라는 거죠. 일부는 디자인의 문제가 있을 거고 일부는 엔지니어링에 있을 겁니다 - 이는 홀로 모든 작업을 도맡아하는 이들이 항상 맞닥뜨리는 도전이기도 할 겁니다. 첫 만남과 완전히 달라진 스타일 변화는 그럴 수 있다 치지만, 그 변화가 수긍이 갈 정도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8) Kana Bathe - MISFIT (2020.1.27)


 주목할만한 여자 아티스트를 꼽을 때 은근하게 등장하던 Kana Bathe도 드디어 앨범을 발표하였습니다. highgel 님이 공유해주신 정보에 따르면 Chord Share라는 신생 대중기획사와 계약을 맺고 컴백한 것이더군요. 과거엔 V Coca라는 이름을 잠시 썼고, 화나가 기획한 여성 래퍼 컴피티션 "GALmighty"에도 참여했으며, 믹스테입이 세 장 정도. 이때의 작업물들은 이제 없는 듯하고, 열심히 디깅하지 않은 이에게 보이는 건 세 장의 싱글, 그리고 이번 앨범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최근 나온 GEMma의 "DODO FUNK"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힙합이란 장르 범주 맨 바깥에 위치한 것이 유사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일견 Kana Bathe는 또 한 명의 이모 힙합을 표방한 오토튠 싱잉 래퍼 같아보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와 비트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일반적인 힙합의 것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On the Road라는 비트메이커가 다수의 곡을, 그 외에 여러 비트메이커가 참여한 프로덕션의 경우 격한 전자음과 퍼커션의 행진은 일렉트로니카나 하우스를 더욱 떠올리게 합니다. 흔히 이모 힙합에서는 보기 힘든 화려함이죠. 


 물론 앨범의 주역은 Kana Bathe입니다. 첫 트랙에서 들려오는 가냘픈 노래, 그리고 후반부의 억센 랩에서 저는 Bjork, 그리고 Lim Kim이 차례대로 연상되었습니다. 뭐 이런 연상은 첫 트랙에 국한되긴 했지만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에 두껍게 덧칠된 오토튠은 실로 기이한 바이브를 연출합니다.  이런 바이브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 그녀의 플로우입니다. 헤비한 오토튠 와 강렬한 비트와의 믹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가사 전달력은 상당히 떨어지는 편인데, 이는 음절을 압축시키고 흘리면서 넘어가는 특유의 발음 때문입니다. 가사가 전달되지 않는 것이 그리 거슬리진 않습니다. 오히려 위태로이 흔들리는듯한 목소리와 잘 매칭되는 듯하고, 신선한 느낌을 배가시키죠. 다시 가사를 살펴보면 그녀는 라임을 거의 쓰지 않는데, 이것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도 이 플로우입니다.


 강렬한 전자음의 세례와 두꺼운 오토튠 속에, 심지어 들어서는 구분도 안 되는 가사 내용 (아닌게 아니라 사실 메세지 자체는 꽤 심오합니다. 여자의 노래에서 군대 얘기를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 "Seemulation") 속에 피로를 호소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허나 Kana Bathe와의 첫 만남인 이번 앨범에서 저는 그녀만의 미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초반에는 조금 더 다양하게 나오던 스타일들이 뒤로 가면서 하나로 통일되는 듯한 건 좀 아쉬웠습니다. 예를 들어 1번 트랙의 억센 랩은 그후로는 거의 없었던 거 같네요. 아무쪼록, 활동이 잠잠했던 긴 시기를 마무리하고 이제 활발한 컴백을 예고하는 거라면, 저도 기대를 가지고 활동을 지켜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멋진 모습 많이 보여주시기를.



(9) 호미들 - 진인사대천명 (2020.1.28)


 첫 앨범에선 조금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던 호미들과 수학자 중, 호미들이 먼저 후속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사소한 거지만 크레딧에 적힌 멤버 이름은 원래대로 돌아왔군요. 결론적으로는 전작보다 더 즐긴 앨범입니다. 저번 앨범에서 전 어정쩡한 분위기를 제일 아쉬운 점으로 꼽았었는데, 그게 해결이 된 느낌입니다. 여전히 그들에게 기대하던 난장판 바이브는 없지만, 비장한 색깔에 어울리는 비장한 랩으로 좀 더 방향성을 잡아서 편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 사실, 그저 제가 호미들에게 기대하던 모습이 저번 앨범으로 좀 수정이 되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요. 여튼 그러고나니 셋의 독특한 톤과 센스 있는 가사가 좀 더 귀에 잘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운드에서도 보강이 된 느낌입니다. 수학자나 호미들이나 첫 앨범에선 사운드가 맥 빠지는 듯해서 별로였는데, 그게 개선이 많이 된듯해요. 기본적으로 파워가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Boys from the Mud" 같은 약한 비트는 여전히 어울리지 않습니다. 나머지 트랙처럼 쿵하고 때려주는 베이스가 있어야 들을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Pluto 시그니처 사운드는 왜이렇게 클까요;). 한 가지, 처음 돌릴 때 곡들이 원래 길이보다 길게 느껴지곤 했는데, 훅을 좀 길게 잡아서 그런 거 같기도 합니다. 가사 밀도가 비교적 높은 랩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처음 돌릴 땐 끝에 갈 수록 좀 질리는 듯했지만, 이건 몇 번 돌리니 딱히 인지되진 않더군요.


 가지고 있는 포텐을 채 못 본 거 같아 아쉬웠는데, 금방 돌아와 만회해주어서 반갑습니다. 저 역시 그들에게 적응이 되가면서 편하게 감상을 했던 것도 같고요. Superbee가 약속한 성공이 어서 그들에게 찾아오기를 기원하겠습니다.



(10) 한국사람 - Netflix & Chill (2020.1.30)


 너무나 자주 앨범을 내서 할 말이 떨어져가는 한국사람의 새 앨범입니다. "환상" 앨범이 두 가지 색깔로 나누어져있었고, "유령"이 그 중 거칠고 격정적인 색깔을 떼왔다면 (외부 비트메이커를 기용해서 약간의 변주와 조정이 있긴 했지만) 이번 앨범은 특유의 기괴한 찌질 감성만으로 이루어진 앨범입니다. 덕분에 한국사람 앨범 중에는 가장 이지 리스닝이 될 거고요, 동시에 가장 힙합스럽지 않은 앨범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한국사람을 처음 접하고자 하는 이들이 제일 쉽게 듣긴 하겠지만, 완전히 그의 색깔을 알기엔 정보가 너무 제한적일 수 있겠군요. 물론 제가 기괴하다고 표현하게 만든 불협화음 섞인 허밍들과 분위기에 맞지 않는 과격한 표현들은 그의 개성이지만 말이죠. 크게 할 말은 없는 앨범입니다. 규모 때문에도 그렇지만 "유령"과 "Netflix & Chill"은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살짝 쉬어가는 소품집 같은 느낌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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