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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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7 21:34:13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Absint - Stop Sleeping (2019.11.15)


 Absint도 이번 기회에 처음 들어보게 되는 래퍼입니다. 처음 이름을 들었던 Cycadelic Records의 멤버로써였고, 처음 노래를 들어본 건 이번 사인히어 예선에서였네요. 이전 싱글들이 있긴 했지만 제대로 들어볼 기회는 없었던 거 같습니다 - 이번이 첫 EP이기도 하고요.


 앨범은 전체적으로 편안하네요. chilling vibe라는 말이 잘 요약하는 거 같습니다. 1-3번 트랙을 BadMax가 프로듀싱했는데, 이렇게 들을 때마다 BadMax가 단순 트랩 비트메이커가 아니란 걸 느낍니다. 아무튼, Absint의 퍼포먼스는 랩보다 보컬에서 좀 더 매력 있어보입니다. 랩은 좀 딱딱한 느낌이 있습니다. 살짝 Snacky Chan이 연상되는게, 교포로써 한글을 하다보니까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영어로 할 때도 전반적으로 힘이 좀 많이 들어가있고 패턴이 정형화되었다는 느낌. chilling하는 분위기에는 딱 어울리는 거 같진 않습니다. 반면에 중간중간 보여주는 노래는 그 자체가 대단한 건 아니지만 훨씬 곡에 부드럽게 잘 묻는 듯 했습니다. 짧은 앨범이라 긴 말을 하진 않겠고, 우선 Absint라는 래퍼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는데 개인적 의미를 두렵니다. 아직은 딱 잡아끄는 건 없고, 뭔가 다른 매력을 발견해야하는 단계 같네요.



(2) Life of Hojj - Bad Vibes Baby (2019.11.15)


 Clarity 크루에서 늘 뭔가 어중간한 색이었던 Life of Hojj가 이번에 새로 꺼낸 스타일은 라틴입니다. 여전히 무난하고 확 튀는 임팩트는 없습니다. 전형적인 형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누군가는 듣고 표절 시비를 걸 수도 있을 겁니다 - 표절했을 거란 얘기가 아니라, 그냥 이런 곡이 꽤 많다는 거죠. 그렇지만 그래도 이때까지 보여줬던 모습 중 잘 어울리는 옷인 거 같긴 합니다. 가장 최근 들었던게 ONiLL 앨범에서였는데, 그때의 심심한 랩보단 이런 싱잉 랩이 더 특색 있어보이고 좋네요. "Temptation"에서의 스토리텔링도 일단은 괜찮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뭔가, Life of Hojj의 팬이 되기엔 뭔가 부족해보입니다. 늘 그는 Donutman과 Kidd King 중간 어디쯤인듯한 모습으로 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둘에게서 얻을 수 있는 걸 굳이 Life of Hojj에서 찾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습니다. 이번 스타일이 그나마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요? 다만 너무 모범 답안만 따라간 곡이라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것 같아 아쉽군요.



(3) BRWN - The Black Dessert 2 (2019.11.15)


 BRWN을 처음 제대로 들어본 건 저번 앨범 "Rendezvous"였습니다. 당시 제가 썼던 글을 보면 R&B 가수보다 트랩 래퍼 같다든지, R&B라고 하기엔 살짝 난해하다든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번 앨범 "The Black Dessert 2"는 제목을 볼 때 2018년 6월 나온 "The Black Dessert"의 후속작인 셈이므로, 같이 살짝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재밌는 건, 제가 느꼈던 난해함이 그 과거에도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일반적인 시선에서 R&B 가수라고 부를만한 색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시간이 흐르면서 BRWN은 좀 더 자신만의 개성적인 모습을 갖춰가고 그걸 다듬어갔던 거 같습니다.


 "Rendezvous"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이번 앨범에서도 거의 유효합니다. 아니, 특유의 힘 없이 짜내는 듯한 발성은 더하다면 더하여 가히 신음에 비유할만 합니다. 싱잉 랩 같은 멜로디라인은 여전하여, 앨범이 시작되고 얼마간은 좀 특이한 트랩을 듣는 것처럼 들려옵니다. 그 분위기가 좀 더 딥하게 반전되는 부분은 "강박" 쯤인 것 같습니다. 여기를 지나면서 그 감정의 골이 좀 더 깊어지고 넓어지면서 곡들은 한 편의 전위 예술 같은 느낌을 더 띄게 됩니다. "장마"-"짝사랑" 부분은 절정입니다. 더 이상의 장르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포인트입니다.


 다른 식으로 전작과 비교해보면, 전작은 단 두 곡을 제외하고는 피쳐링진이 모두 참여한 앨범이었습니다. 이번 앨범이 의도적으로 피쳐링진 비율을 줄인 것 같지는 않지만, 여러모로 전작에 비해 훨씬 개인적인 앨범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사나 감정 표현 등이 좀 더 농밀해진 느낌이며, 이 감정이 BRWN 특유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니 흔한 감정도 상당히 독특하고 기괴(?)한 형태를 띄는게 재밌습니다. 이때문에 사실 이번 앨범에서는 대부분의 피쳐링진과 케미가 그렇게 좋다고 느껴지지 않더군요.


 여전히 그가 하는 음악을 즐겁게 들을 정도의 내공은 없지만 여러 곡을 듣다보니 그가 점점 더 이해되어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렇게 한 아티스트랑 친해지는 느낌이 참 즐거운 거 같아요. 이번에 피쳐링진들이 아쉬워서 저는 좀 더 BRWN이 내면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봤습니다...만 아마 그렇게 된다면 더 듣기 불편해질 수도 있겠군요...;



(4) 마미손 - 나의 슬픔 (My Sadness) (2019.11.18)


 처음 쇼미더머니 시즌 7에서 마미손이 데뷔했을 때 그는 자신의 컨셉에 대해 '평소에 표현의 한계를 느끼던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나를 끄집어내기 위한 일종의 놀이'라고 하였습니다. 확실히 그때 보여줬던 곡 "탭댄스"는 Mad Clown이 하기엔 좀 많이 고어적이긴 했죠. 그 뒤 아슬아슬하게 코미디언과 뮤지션을 넘나들면서 보여준 모습은 나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국내 힙합씬에선 제일 오래 유지되는 alter ego로써의 성공 사례로 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미손이 하는 음악은 Mad Clown이 하지 못하는 음악이어야 할 것입니다. 저 말을 했을 당시 Mad Clown은 막바지긴 했지만 대중기획사에 소속되어있었으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었죠. 이제 본캐도 인디펜던트가 된 상태에서, 정말 그가 성공적으로 캐릭터를 분리했는가를 시험하는 장이 마미손의 첫 앨범 "별의 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타이틀곡 "별의 노래"를 비롯해 화제가 된 몇몇 곡 ("땡큐땡큐" "공양발원문")만을 본다면 괜찮아 보입니다. 개그 만화 대사나 유행어 같은 가사를 뻔뻔하게 읊으면서도 주제에 대한 참신한 시선을 잃지 않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동시에 신선한 콜라보까지 성사시켰으니 금상첨화죠. 헌데, 앨범을 뜯어보면 사실 주를 이루는 것은 말랑말랑한 사랑 노래입니다. "땡큐땡큐"도 사랑 노래이긴 하니까 여기까지 합치면, 2번에서 6번 트랙까지, 앨범의 75%가 대중적인 사랑 노래에 할애된 것입니다.


 당연히 대중 친화적인 코드에 사랑 가사를 썼다고 해서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쨌든 듣고 좋으면 성공한 음악 아니겠어요. 근데 그게 마미손에게서 나와야했었나 고민이 드는 겁니다. Mad Clown이 이 노래를 못 쓸 이유라면... 싱잉 랩이라서 그런가요? Mad Clown이 근래 타겟으로 잡아온 대중들은 그냥 랩을 더 듣고 싶을 테니까? 앨범 내내 스탠딩 코메디 쇼 같은 열연이 펼쳐지길 바랐던 저였기에, 이어지는 사랑 고백에 어떻게 느껴야할지 당황한 것입니다.


 그런 노래들까지도 객관적으로 보면 듣기 편하게 만들었고, 노래마다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괜찮게 평가할만합니다. 그저 제 선입견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죠. 오히려 답은, 마미손 역시 Mad Clown이라고 인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하긴, Mad Clown이 쇼미 싸이퍼 때 "버벌진트의 졸개들아!"했을 때 그건 마미손 모드였...). 여담으로, "공양발원문"에 대한 가사가 많고 저도 좋게 들었는데, 딘딘 앨범에 피쳐링으로 재탕한 거 알고 나니 살짝 김이 샜습니다.



(5) 히피는 집시였다 - 불 (2019.11.18)


 사인히어에서 아쉬운 결과를 남기긴 했지만 히피는 집시였다는 건재합니다. 전작이 워낙 난해했어서 다가가지 못하는 거리감이 생겨버릴까 걱정했는데, 이번 앨범은 2집 정도의 친근성으로 다시 돌아온 느낌입니다. 추측컨대 사인히어 출연이 영향을 끼치긴 했던 거 같습니다. 피쳐링진에 Hoody와 우원재가 있는 것도 그렇고, 예선 때 하려다가 실수한 오토튠이 이번 앨범 수록곡 중 두 곡에서 확인되죠. 가만 보면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양한 피쳐링진을 기용한 것도 처음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을 두고 대중적이라든지, 트렌드를 고려한 흔적이 있다든지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일 거고요.


 그렇다 해서 히피는 집시였다가 가진 본래의 색깔이 퇴색되지는 않습니다. Seb은 자신은 근본이 없는 보컬이라는 얘기를 종종 하는데, (물론 기파랑이란 과거를 고려하면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지나친 겸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만의 자리를 확고하게 다져놓은 것 같습니다. Jflow의 프로듀싱이야 말할 것 있나요. 한가지, "공기"에서 전자음이 마치 공기 새는듯한 소리 같은건 의도한 거겠죠? 전에 "언어"에서도 이런 일상적인 소리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시도를 했다는데, 참 재밌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한국형 얼터너티브 알앤비라고 표현되곤 하는데, 이번에 실린 "춤"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상당히 창하고 연관지어지는 음악 스타일인거 같아요. 극도로 정적이고 느리면서도 빈 자리 없이 꽉 차게 느껴지는 음악은 그 압도하는 아우라도 아우라지만, 제가 듣는 음악들이 비움으로써 채우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더 인상적인 것 같습니다.


 최근 goodtomeetyou 단체 인터뷰에서 히피는 집시였다 부분을 읽어보면 앨범별 분위기의 변화가 어떤 스타일, 취향의 흐름에 따른 변화가 아니라 주어진 주제를 풀기 위한 선택에 지나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트렌드를 고려했다든가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간다든지 하는 의도의 추측은 별 의미는 없겠죠. 뭐가 됐든 저는 제가 이해 가능한 세계로 와주어서 너무 좋습니다. 요즘 좋은 음반들이 많이 나왔지만 "불" 역시 두고두고 들을 앨범이 될 것 같네요.



(6) 노도 - 연착 (2019.11.20)


 한때 Verbal Jint의 Overclass 크루의 멤버로 유명했던 노도의 오랜만의 앨범입니다. 2집 "연옥"에 대한 기억도 사실 희미하긴 한데 7년만의 생존 신고네요 (그 사이 두 장의 싱글이 있고, 뭔가 영상으로 만든 믹스테입도 있었던 거 같긴 한데...). DJ Freek란 이름으로 잠깐 활동했던 때를 제외하면 래퍼가 메인 포지션이었는데 의외로 세 번째 정규 앨범인 이 앨범은 인스트루멘털 앨범입니다. 비트 찍는 게 랩하는 것보다 더 좋았는데 환영한다는 일부 반응도 같이 보았습니다 (...이것에 공감이 간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을게요...).


 한 번 돌리고 난 후 든 생각은 우선 감상용인지, 랩을 얹는 용인지가 애매하다는 점과, 옛날 사람 같은 작품이라는 점이었습니다 - 둘은 약간 연결되는 생각입니다. 제목만 보고 유추를 했을 때 어느 정도 스토리를 가지고 연결이 되는 것 같긴 하고, 효과음으로 그런 주제를 암시하는 부분은 재밌습니다. 하지만 대체로는 붐뱁 드럼 위 샘플링 기반으로 한 루핑 비트로 이루어져있습니다. 노래들에 사소한 효과를 제외하곤 이렇다할 변주가 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랩 인스라고 부르는게 더 적절할 겁니다. 첫 인상은 감상 앨범인 거 같았는데, 이 부분이 조금 갸우뚱해집니다. 특히나 정규 앨범이란 딱지를 갖고 나왔는데 말이죠.


 뭔가 곡 자체는 과거 노도가 만들었던 파워풀하고 하드코어한 느낌이 많이 죽어있습니다. 그건 사실 "연착"이라는 단어부터 풍겨오는 이미지 때문인 거 같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힘을 줄 데 주지 않고, 서정적으로 가는 것도 애매하고, 전반적으로 답답하게 느낀 건 저뿐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곡들은 템포와 비트가 비슷하며, 그가 1집 때 보여줬던 비트메이킹과 별반 다를 것 없습니다. 특히 "Tears of Joy"의 싼마이스러운 신스는 10여년 전 풋풋했던 저의 추억마저 되살리기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거듭 말했지만 막귀라 불려도 할 말 없는 사운드 문외한이므로, 그 아래 깔려있을 여러 노력과 실험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도 많습니다. 여튼 저는 2008년 나온 그의 인스 앨범 "The Ultimate Instrumentals" 때보다 아쉬웠고, 노도의 활동 복귀에 대한 얘기는 그 후에 보여주는 활동으로 평하는 게 나을 거 같단 생각이 드네요.



(7) 얼돼 (Errday Jinju) - 살아 (SARA) (2019.11.20)


 최근 차붐의 "Sweet & Bitter"를 들을 때 피쳐링진에 이름을 올린 Errday Jinju를 보고 사실 처음엔 신인 뮤지션인가 했습니다. 알고보니 얼돼가 영어 이름만 변경을 한 거였더라고요. 특히 피쳐링에서 기타를 치면서 뭔가 암울한 내용으로 노래를 부르는 부분이, 이름만 변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앨범 "살아"가 발표되었습니다.


 저는 늘 얼돼의 앨범을 인정하면서도 완전하게 좋아하진 못 했는데, 특유의 뽕끼 섞인 목소리와 발성이 늘 코믹과 진지 사이 어중간한 느낌으로 어색함을 유발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제 주관적인 의견이고 그 외에 괜찮은 부분도 많아보였지만 그 취향을 넘어설만큼의 매력이 없어보였습니다. "살아"는 우선 그런 톤이 많이 줄어서 개인적인 거리감이 확 줄어들었습니다. 그 대신 얼돼는 훨씬 다양한 목소리를 넘나들면서 노래를 진행합니다. 가히 뮤지컬을 보는 느낌이 살짝 들 정도로 말이죠. 분위기는 좀 더 어두워졌습니다 - 여전히 농담을 던지지만, 과거 앨범에 비해 훨씬 가시가 느껴집니다. 본래도 숨기고 있던 씨니컬한 칼날을 더욱 드러내면서, 앨범은 예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색깔을 띄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코믹에 한 발을 걸치고 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을 거 같아요.


 그로 인해 좀 더 집중이 되게 된 메세지들은, 얼돼 특유의 문장력이 겹쳐 다소 난해하지만 그의 주변 세상에 대한 어렴풋한 이미지를 남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얼돼의 인스타에 올라온 "살아 프롤로그"를 읽고 앨범을 감상할 것을 추천하고 있고, 저도 역시 그러했고 또 추천하는 바이지만, 글만 읽어서는 긍정적이 될 것 같았던 앨범이 이런 느낌으로 나오다니 참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특히, "겁쟁이"로 편안하게 끝을 맺을 것 같던 앨범이 "탈춤"에서 분위기를 싹 뒤엎어버리고, "맺음말"의 불협화음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그가 말하는 '살아'는 어떤 의미였던 걸까요? 그래서 그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걸까요? 이제 그에게 보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고민이 많이 들게 하는 서사 방식입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있지만 그래도 안전한 노선을 취했던 과거와 달리 앨범은 한층 대담하고 과감해졌습니다. 실로 '진화'라고 표현해도 괜찮을 법한 변화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에는 이번에도 전곡을 제공한 C.Why aka Fredi Casso가 큰 역할을 합니다 - Fredi Casso도 단순한 붐뱁 비트메이커가 아닌 상당한 잠재력을 가진 프로듀서 같습니다. 이런 복잡미묘한 분위기에 맞는 비트를 제공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테니까요 (물론 대개는 비트가 먼저 나오고 그다음 가사가 나오는 식이 많았겠지만...). Errday Jinju가 된 그의 향후 행보가 정말 궁금해지게 하는 작품입니다.



(8) MBA - TRIP (2019.11.20)


 MBA가 EK의 솔로 앨범에 바로 뒤를 이어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사인히어에 출연한 것을 발판 삼아 참여진이 늘 거라 생각했는데, 평소대로 EK, Bola, Neal의 3인조 구조에 Make A Movie가 몇 트랙에 참여하였네요. 차이라면 그 외의 외부 참여진도 늘어났다는 것 정도?


 EK 앨범하고는 결이 다릅니다. 참여진이 늘어났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시도했던 솔로 앨범과는 달리 하는 이야기가 좀 더 일반적이 될 수밖에 없고, 구성이 조금 더 평탄해집니다. 다양한 장르가 있기는 하지만 전형적이죠. 여기에 Neal이 총 프로듀싱을 맡은 미니멀한 비트도 한몫합니다. 좋게 듣는 분들은 과하지 않고 깔끔하게 정돈된 비트를 느낄 것이고, 저 같은 사람은 심심하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심심했기에 싱잉 랩이 들어간 노래가 더 좋더라고요 - 이 부분은 과하지 않은게 빛을 발했다고 인정해야겠습니다.


 한편 MBA가 앨범을 낼 때마다 고질적인 얘기가 나오는 EK의 밸붕은 이번에도 없는 건 아닙니다만, Bola의 랩이 늘긴 했습니다. 또, 참여 비중이 조금 늘어난 Make A Movie도 나머지 멤버와 톤이 확 달라서 괜찮은 케미가 느껴집니다. 어차피 EK에 귀가 쏠리는 건 기본적으로 독자적인 활동이 많아 익숙함이 다르니 실력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닐테죠. 냉정하게 말하면, EK가 이번에도 잘 하긴 했지만 솔로 앨범에서 보여준 게 더 많았기 때문에 이번 앨범에서 의의를 찾긴 어려웠습니다. 의외로 피쳐링으로 참여한 '유명인'들도 본인 실력껏 해줬지만 잘 묻진 않더군요.


 원래 글을 안 좋게 썼다가, 앨범에 대한 반응이 좋은 걸 보고 다시 각 잡고 들은 후 고쳐 쓰는 중입니다 (눈치 안 보고 쓰려고 하는데 나약한 나란 인간...). 그런다고 해서 제 감상이 엄청 바뀌지는 않는 걸 보면 오랜만에 취향의 벽을 느끼는군요. 저는 여튼, 의외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한 평범한 트랩 앨범이었던 거 같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제가 '붐뱁충'이라고 항변하게 만드는 트랩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들어가있었던 거 같아요. 사인히어에서 보여준 음악이 기존 MBA와 달랐듯 폭을 좀 더 넓혀보면 어땠을까요? 제 부족한 귀로 말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듯 합니다.



(9) 딘딘 - Goodbye My Twenties (2019.11.20)


 딘딘이란 이름은 유명해졌지만, 그가 무슨 음악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의외로 별로 없습니다. 그만큼 뮤지션으로써의 존재감은 희미하기 짝이 없던 와중, 20곡이라는 과감한 크기로 낸 정규 앨범은 그 분위기를 반전시킬 결정타일지 무리수일지 우려가 앞섰습니다. 이윽고 앨범을 트니 실질적인 첫 트랙인 "Paradise"에서 감미로운 보컬이 당황스럽게 제 귀를 맞이합니다 - 피쳐링진에 남자 보컬은 없으니 이것은 딘딘의 노래군요. 오케이, 노래 의외로 잘 합니다. 동시에 이 시리즈에 넣지 말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엄습하기 시작합니다.


 이 앨범은 무척 가요적인 지향점과 공식으로 만들어진 앨범입니다. 보여주는 수많은 모습 중 딱 랩만을 떼놓고 보았을 때 딘딘의 랩은 매력이 부족합니다. 생목으로 부른다고 해야할만큼, 다듬어지지 않은 발성과 연구 없는 톤으로 그저 자신감 있게 내뱉는 것 뿐입니다. 가사는 깊이가 얕고 클리셰가 가득하며, 플로우 역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갑니다. 전체적으로, 신날 때나 슬플 때나 감정은 너무 과잉되어있고, 하나의 잘 된 곡을 만들기보단 기억에 남을 포인트 하나만 남기는 것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 그 포인트는 대부분 후렴을 맡은 피쳐링진의 몫입니다. 프로덕션도 가요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리듬보다 멜로디에 비중이 가있습니다 - 그 결과 리듬파워 (근데 행주가 없지 않나요 "SSDD"에)도 제대로 못 살리는 비트들이 자꾸 등장합니다.


 앨범은 뒤죽박죽입니다. 그냥 하고 싶은 걸 다 때려넣었습니다. 멜론의 장르 구분이 "발라드, 랩/힙합, R&B/Soul, 록/메탈, 일렉트로니카"로 되어있는 것은 허풍이 아닙니다. 어느 하나 자신의 개성으로써 중심이 서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광범위한 장르는 넓은 스펙트럼보단 흡사 노래방에서 생각나는 대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너무 왔다갔다하다보니 그가 하는 얘기를 어디까지 믿어야할지까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이를테면, 처절한 "Goodbye"에서 말하는 우울은 진짜 딘딘의 우울이 맞긴 한 걸까요? 몇 트랙만 거꾸로 돌리면 전혀 반대의 이야기를 반대의 표정으로 하는 "Bling Bling"이 나오고, 뒤로 돌리면 "HANNAM GANG"과 "리피와 디니"에선 그런 고민 따위 싹 잊은 것처럼 보이는데요.


 이윽고 발라드곡 (진짜, 더도 덜도 안 보탠 발라드) "옷깃 끝자락에 남은 너"로 앨범은 마무리되고 "Thanks to"가 흘러나옵니다. 정규 아니면 이런 발라드를 언제 해보겠냐고 너스레를 떠는 그의 말에 저의 상식이 도전 받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 앨범은 가요적인 지향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댄스 그룹이 한 앨범에 댄스와 발라드를 같이 넣는 것처럼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일반적인 힙합 앨범을 감상하려는 태도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틀린 것이었죠.


 그럼에도, 결국 앨범을 완주한 끝에도 딘딘이 어떤 뮤지션인지 이미지가 완성되지 못하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아이돌 그룹에 속해있는 래퍼 포지션의 멤버 같아요.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습니다. 진짜 노래 실력은 좀 괜찮거든요. 어차피 딘딘은 음악이 아닌 분야에서 잘 되고 있고,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여러 가지 매체에서 보여준 성격적인 면도 좋아하는 편이고요. 다만, 음악인으로써의 기대는 앞으로 한동안 품을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뭐... '딘딘은 딘딘'이란 말을 그렇게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요.



(10) Huckleberry P - CHELLA (2019.11.21)


 감질나게 트리플 싱글만 나오고 있는 Huckleberry P. 분신을 앞두고 정기 행사처럼 다시 신곡을 발표했습니다. 앞두고 발표했기 때문에 하드코어하고 파괴력 있는 곡을 냈을 거라고 미리 추측이 가능하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비트부터가 야성미가 넘칩니다. 본인 앨범에서는 평화로이 통기타를 치거나, 블루스 (저번 앨범 타이틀곡 "택1해"는 좀 거칠긴 했음)를 부르는 김박첼라가 이런 비트를 만들 때마다 놀랍습니다. "Fanaconda" 때 이상의 파워이고, 이것은 때려박는 것에 특화된 Huckleberry P의 랩과 아주 좋은 시너지를 보여줍니다.


 다만, 늘 Huck P의 랩에서 보이는 똑같은 패턴 (가장 대표적으로는 맨 뒤에서 두 번째 글자를 길게 늘이는 것이 있습니다)은 이번에도 똑같아서, 곡이 신선하긴 하지만 많이 들은 느낌인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게 그나마 적은 마지막 트랙 "Been Through"에서의 랩이 제일 타이트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생각해보면 Huck P는 기존에 정해진 틀이 너무 단단해서, 이를 깨는 모습을 보여줄 때 (예를 들면 "Air"처럼 오토튠을 썼다든지) 호응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선입견처럼 자리하는 그의 스타일에 대한 인식을 깨려면 더 많은 걸 보여줘야 하는 거 같습니다. 뭐, 공연에선 멋있게 펼쳐지겠죠. 죽기 전에 "분신" 보고 싶네요. 흑. 

  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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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11-27 22:00:34

댄스디님 글은 항상 정독하게 되네요
신보들 많이 알아 갑니다

WR
2019-11-27 22:19:35

긴 글 읽어주시니 기분이 좋네요>_<

2019-11-27 23:01:19

앨범을 듣다보면 내가 이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리까리한 작품들이 몇 있는데 댄스디님의 글들을 읽다보면 어떤 방식으로나 모호한 윤곽이 잡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글을 더욱 세세히 보며 앨범들을 듣고 있워용. 모르던 작품도 많이 알아갑니다. 인스타에서나 힙플에 올라오는 이 글들도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

WR
1
Updated at 2019-11-27 23:13:06

저도 이거 쓰면서 목표하는게 그거거든요 

'좋아요'이랑 '구려요' 수준인 느낌에다 논리적 근거 만들기ㅋㅋ

쓸라고 더 디테일하게 집중하게 되니까 스스로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아무튼 쟈이즈 님 같은 내공 높은 분에게도 도움이 된다니 (흐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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