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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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15 20:24:21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대상: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1) Yellowjacket the One - SoBigCity (2019.6.29)


 정지웅이란 이름으로 고등래퍼 시즌 3에 출연, 정은표 배우의 아들이라는 점이 부각되었던 래퍼입니다. "Yellowjacket the One"이란 이름의 인지도는 많이 낮지만 사운드클라우드에는 이번 믹스테입이 벌써 여섯번째일 정도로 나름 허슬했군요. 그의 랩 스타일은 방송에 나온 것과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톤은 나쁘지 않게 잡혀있으며, 당시 고등래퍼 출연진 사이에서 메세지를 중시하는 편이었기에 담백한 가사와 또렷한 딜리버리가 눈에 띄었죠. "SoBigCity"에서 처음 귀에 들어오는 장점은 비트 초이스입니다. 물론 타입 비트이긴 하지만, 어쨌든 감각적이고 청량감을 주는 비트들이 그의 랩 스타일과 괜찮은 시너지를 보입니다. 이 위에서 Yellowjacket은 도시에 대해 느낀 (주로는 부정적인) 인상들을 표현하고 있으며, 신나는 분위기에 얼핏 보이는 쓸쓸함은 균형 잡힌 감성을 전달해줍니다.


 다만 Yellowjacket은 아직 래퍼로써 다듬어야할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아직 본인 표현력이 충분히 넓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할까요. 음악적으로, 평탄한 높낮이를 그리면서 전개되는 플로우는 처음 한두 곡에선 큰 단점은 아니지만 앨범이 끝날 때쯤은 지루함을 주기 충분합니다. 플로우를 짜는 패턴이 정형화되어있어서, yuh 같은 추임새도 정해진 위치에 등장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폭 좁은 표현력은 가사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벌스는 곡 안에서 비슷한 얘기를 조금 다르게 바꾸어서 반복하는 느낌이 듭니다. 한 가지 소재를 다채롭게 그려내는 능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한 가지 예로, 도시의 삭막함을 그려내는 소재로 '미세먼지'가 다섯 곡 모두에 등장한다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더불어, "Silence"에서 보이는 박자가 빨라지는 기초적인 실수나, "산림욕"에서 비트의 시그니처 사운드를 제거하지 않고 사용하는 모습은 아직 아마추어랄 수 있는 그의 커리어를 고려하더라도 크게 실망스럽습니다 - 시그니처 사운드 안 빼는 건 정상수 믹스테입 외에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개인적으로 고등래퍼를 보면서 그가 기억에 남았던 것은, 사운드적인 면에만 치중한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메세지에 꽤 공을 들인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좋은 래퍼가 되기 위해선 이 한 가지만 있어선 안 될 것입니다. 개인적인 작업물 양이 적지 않음에도 이 정도의 모습이었던 것은 좀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고등래퍼"가 그의 커리어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되었을만큼, 기존의 틀을 깨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2) HD BL4CK - Leave (2019.7.1)


 예고도 없이 갑자기 정규 앨범이라고 합니다. 정말 허슬하는 비트메이커구나 하는 찰나, 본작은 다름이 아니라 HD BL4CK이 랩을 시도한 앨범입니다. 다양한 스타일을 커버해왔지만 어두운 음악에 특히 강세를 보였던 그와 어울리게 앨범은 이모 힙합을 테마로 잡고 있습니다. 초반에 두세 트랙 정도 트랩 넘버가 있지만, 4번 트랙 "갔지"를 기점으로 우울하고 가라앉은 무드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죠. 이 장르가 랩 스킬에 기대는 편이 아닌만큼, HD BL4CK의 랩이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얘기할 순 없습니다. 트랩 넘버에서는 STAREX 크루 스타일의 트랩이 많이 연상되는, 어찌 보면 뻔한 스타일이죠.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소수의 트랙을 제외하고 거의 노이즈라고 여겨질 정도로 이펙트를 걸어 목소리를 왜곡시킨 점인데요, 개인적으론 이 앨범과 친해지는 걸 방해하는 제일 큰 요소였지만, 익숙해지고 나니 나름 로파이한 감성을 극대화시키는데 한몫하는 것 같군요. HD BL4CK의 비트는 테마에 맞게 진중하고 무게감 있지만 개인적으로 "Liberation" 때만큼의 감흥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특히 일부 트랙은 미니멀하게 가다보니 (이것도 STAREX 크루 스타일로) 마찬가지로 뻔하고 재미 없다고 느껴졌던 것도 같아요. 이번 앨범이 이벤트성일지, 래퍼로써의 출사표(?)일지 궁금하군요. 취향은 아니다보니 좀 아쉬운게 크긴 하지만 다음 행보를 기다려보도록 하겠습니다.



(3) D-Hack - D-CLASS HERO (2019.7.1)


 D-Hack도 나름 허슬하는, 고유의 영역을 갖춘 MC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오타쿠 기믹을 이용한 힙합으로는 아무래도 처음으로 생각나는 이름이기도 하고, 본인 가사를 믿는다면 나름 그걸로 성공도 한 것 같고요. 앨범 소개에 따르면 6번째 EP인 이번 앨범은 그의 첫 챕터를 마무리하는 앨범이라고 합니다. 스타일적으론 이전 앨범과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여전히 같은 KINGdumbs 크루 소속인 프로듀서 J;KEY가 전곡을 제공하였고, D-Hack은 과하다 싶은 오토튠과 왠지 모르게 친숙하다 싶은 수준의 일본어를 섞어 나름의 스웩을 담아 싱잉 랩을 펼치고 있죠. 저번 앨범과 약간 차이라면 J;KEY의 프로듀싱에 한껏 들어간 뽕끼가 생각나는데, 거의 노래방 반주 (딱히 비난으로 쓰는 표현은 아니고 솔직한 느낌이..;) 같은 미디 비트는, 래퍼가 D-Hack이다보니 시너지도 있지만 호불호 포인트로 작용할 순 있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D-Hack이 이번 앨범에서 유독 빠르게 달리는 플로우를 많이 썼는데, 과한 오토튠 속에서 나오는 속사포는 개인적으로 많이 뻑뻑하다는 느낌 때문에 좋아하진 않습니다. 원래가 D-Hack의 스타일은 제 취향은 아니지만 앞선 두 가지 때문에 이번 앨범은 조금 더 거리감이 느껴지긴 했네요. 여튼 첫 챕터가 끝났다고 하니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는 한 번 더 확인해봐야겠죠.



(4) 박재범 - Nothing Matters (2019.7.2)


 제일 가는 허슬러답게, "The Road Less Traveled" 이후 한 달도 안 되어서 EP가 발매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다시 R&B에 포커스를 맞춘 앨범입니다. 제작 기간 때문인지, 코믹했던 "All Day Flex" 뮤직비디오 때문인지, 힘을 풀고 가볍게 만든 앨범이란 느낌입니다. 지난 R&B 앨범이었던 "Ask About Me"와 비슷한 면도 있지만, 미국 씬에 출사표를 내기 위해 피ㅜㅜㅜㅜㅜ ㅜ쳐링진에 힘을 준 것과 대비되게, OkayJJack, Slom 등 처음 같이 작업한 프로듀서진 (Ugly Duck도 처음 작업이긴 하군요 프로듀서로는...)들의 이름이 눈에 띄네요. 흐느적거리듯 움직이는 박재범의 보컬과 바운스감 있는 반주가 어우러져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이 포진해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의 마무리를 짓는 "홀로", 그리고 유일한 랩곡인 "Encore"의 진중한 무드는 짧은 앨범에도 꽤 긴 여운을 남기며, 생각보다 가볍게 만든 앨범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군요. 여튼 전체적으로는 R&B 씬에 체크포인트를 찍고 가는 느낌입니다. 뭔가 큰 족적을 남기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앨범 감상이 반드시 그런 심각한 일이어야하는 건 아니니까요. EP라는 규모를 교과서적으로 활용했달까요.



(5) Futuristic Swaver - Futuristic Love (2019.7.4)


 근 몇 년간 엄청난 작업량을 보여준 Futuristic Swaver는 그 결과 씬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과 입지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한국 트랩씬에서 한 줄기를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하는 작업물 양에 비해 보여주는 스펙트럼은 그리 넓지 않았고, 이는 그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도리어 질려하며 멀어지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류의 음악에선 늘 어중간한 태도에 서있는 저로썬 기본적으로 Futuristic Swaver의 새 앨범을 들을 때, 기존의 틀을 얼마나 깼는가가 관건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앨범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Futuristic Swaver를 생각하면 떠올려지는 것들이 이번 앨범에서도 전부 고스란히 재현되어있죠. 혹자는 이례적으로(?) 외부 프로듀서를 두 곡이나 참여시켰다는 점을 얘기할 수도 있고, "Secret Receipt"에서 보여준 평소와 다른 악기 운용과 탑 라인을 예로 들어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마지막 트랙 "Blame Me"에서 보여준 비교적 진중하고 무게 있는 모습도 반례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결국 크게 보았을 때는 사소한 '일탈'일 뿐입니다. 비트, 템포, 주제, 플로우 등등 거의 모든 요소가 그가 해왔던 그대로 재활용되고 있으며, 외부 프로듀서도 사실 이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 특히 WavyPang의 비트는 Futuristic Swaver가 예전에 썼던 '작곡 프로그램 기본 악기스러운' 신스를 쓰는데, 개인적으론 Futuristic Swaver의 음악에서 거슬리는 면 중 하나였던지라 더욱 질리는 느낌입니다. 


 거꾸로 생각해볼 때, 이미 그의 팬인 이들은 앞에서 얘기한 세 가지 반례를 신선하게 느끼고, 완성된 그의 스타일을 느끼며 이번 앨범을 충분히 즐길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이러한 이유로 싫어했던 헤이터들은 그대로일 것이고요. '아돈기버뻑'이란 태도는 Futuristic Swaver의 음악에서도 물씬 드러나는 만큼 굳이 헤이터를 고려하여 음악을 만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허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라고 믿고 싶진 않군요. 여러 피쳐링 작업 및, 그의 전 앨범 "BFOTY"가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있습니다. 소기의 성공을 달성한 지금 그에겐 그런 증명을 좀 더 확고히 할 타이밍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돈기버뻑'만큼, 발전도 모든 뮤지션에게 중요한 가치일테니까요.


PS 앨범 보도자료에 등장하는 21 Savage의 가사는 "ball w/o you"라는 가사로, 저 해석 제가 한 해석입니다. 근데 마지막 줄이 원뜻이 잘 전달 안 되게 해석해버린 거 같아서 좀 난처하네요. 날 사랑하지 않더라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은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랑보다 믿음이 더 큰 것이다... 란 뜻인데... 흠.



(6) Swings & 한요한 - 외나무다리 (2019.7.6)


 아마 이 앨범은 한요한의 "To All the Fake Rapstars"가 좋은 반응을 얻은 데서부터 출발하였을 것입니다. 어쨌든 달리는 음악은 한요한의 전매특허였고, 어찌 보면 힙합씬 내에서 한요한만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많이 없습니다. 거기에 Swings의 유머러스한 가사가 터져주었죠. 저도 생활이 무료할 때 "블랙넛 앨범 내 씨발롬아"를 듣곤 하고 있으니 뭐 (?). 여튼 그와중에 나온 이 앨범, 한 마디로 요약 가능합니다: "To All the Fake Rapstars를 다섯 곡으로 만든 앨범".


 힙합엘이 게시판만 참고해보면 "외나무다리"는 커다란 혹평의 역풍을 맞고 있습니다. 항간에는 Swings가 이런 반응을 예상하면서 냈다고 했다 하고, 이는 아마 음악을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불쾌하게 때리는 면이 있어서 그랬을 듯합니다. 당연히 이 앨범이 진지하게 작업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근데, 그러면 심심풀이 땅콩 앨범으로 보면 좋은 앨범일까요? 문제는 여기서 사용한 무기들이 "To All the Fake Rapstars"에 너무나 지나치게 기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일 히트쳤던 부분인 제 가족 디스는 "Tough"를 제외하고 내내 등장합니다. 어떤 유머도 네 번이나 들으면 웃음이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요한은 시종일관 소리를 질러대며, 스윙스도 여기에 가세해서 같은 박자로 소리를 질러댑니다. "Fake Rock Star"를 제외하면, 비트마저 똑같이 느껴집니다 - 만약 서로 다른 아티스트의 곡이었다면 서로서로 표절 시비가 걸렸을 것입니다. 그 근간에는 물론 "To All the Fake Rapstars"가 있습니다 - 제일 제목이 비슷한 곡이 그나마 다른 스타일의 비트를 채택하였으니 아이러니한 일이군요. 이 앨범의 미덕은 피쳐링진에 있습니다. 피쳐링 멤버들은 락 비트에 밀리지 않고 의외의 시원시원한 기량을 보여주며, 천편일률적이던 곡에 신선함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특히 영비의 파트는 "우사인볼트"에서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 파트라는 것이 훅이나 브릿지가 아니라 단순히 벌스의 후반부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엘이 게시판의 몇몇처럼 이 음반으로 둘의 음악을 앞으로 손절하겠다는 건 지나친 과민반응입니다. 어쨌든 이 앨범은 하나의 해프닝입니다. "외나무다리"를 가지고 둘의 앞으로의 작품 세계를 따지는 건 어불성설이죠. 결국 제일 아쉬운 것은, 이 '조크'에서 이 정도 센스 - 유머로써도, 음악으로써도- 밖에 못 보여준 것인가 입니다. 어쨌든 다채로운 시도를 보여주며 인정 받아온 둘이었기에 갖고 있는 것의 10%도 발휘하지 못한 듯한 모습이 실망스러운 거죠. 차라리 세 곡 정도의 크기로 압축해서 냈더라면, 아니 "호루라기"를 선공개하는 데에서 멈췄다면, 유머가 뻔해지기 전에, 박수가 그치기 전에 마무리 지을 수 있었을텐데. 결국 이 앨범에 쏟아지는 악평들은 이것인 듯합니다.


(7) Jiwoo - Maison (2019.7.6)


 Jiwoo는 Hayake라는 이름을 쓰던 비트메이커로, 최근 Colde의 새 레이블 Wavy에 합류한 후 "Maison"을 발표했습니다. 우주비행 크루 멤버로써 몇몇 곡을 발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vv2"에서의 랩이 그의 이름이 알려진 계기가 되었기에, 앨범에서 랩을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Maison"은 보컬 앨범이며 최근 Fisherman의 앨범에서 보여준 모습과 맥락이 일치합니다. 장르 구분을 잘 모르지만 대략 재즈 클럽에서 조용히 피아노 독주와 함께, 혹은 밴드의 잔잔한 세션에서 부르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워낙 읊조리는 듯 잔잔하게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분위기에 어울리지만, "Comme des Garcon" 2절이라든지, "Sapphire Blue" 같은 살짝 텐션이 올라가는 파트에선 조금 맥아리가 없는 듯 느껴지는 목소리가 아쉽습니다 - 이런 단점은 공교롭게도 그의 레이블 사장 Colde와 비슷하기도 하네요. 일반적인 R&B 앨범을 생각하고 들었다간 너무나 가라앉은 분위기에 졸릴 수도 있습니다 - 처음 들었던게 밤에 장거리 운전하면서였는데, 좀 위험하더군요...; 하지만 바이브가 적합한 상황이 그저 따로 있는 것 뿐이겠죠. 앞서 얘기한 약한 목소리가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름 취향 맞는 분들에겐 반가운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8) AgØ  - 문 (The Door) (2019.7.8)


 이름이 특이해서 (그리고 여자 래퍼라서 더 기억에 남았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긴 하네요) 기억에 남아있던 래퍼인데, 처음으로 공식 결과물을 발표했군요. JJK의 지지를 받아 프리스타일 씬에서 꽤 이름을 알려왔다고 해서 언제나 그랬듯 붐뱁을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모 트랩, 클라우드 랩 쪽의 스타일을 택한 건 흥미로운 반전입니다. Noop과 gJ의 비트 위에서 "문"은 어린 나이에 타향살이하며 느낀 불안과 두려움, 피로 등에 대해 담담히 얘기하고 있으며, 담백하게 적어낸 가사와 톤은 자못 어울리는 편입니다. 통일성이라든지, 서사의 흐름이라든지 이런 건 크게 흠잡을 데가 없어보이는군요.

 

 아쉬운 점은 연륜의 문제에서 기인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스타일은 MC가 살리는 분위기가 제일 핵심적인 부분인데, 아직 그런 감정을 담아내기엔 담백함이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원래 이런 타입의 노래들은 다들 힘을 빼고 부르긴 하지만, 발성이 빈약하게 느껴진 부분도 있고, 그 와중에 힘을 너무 줘서 흐름이 부드럽지 않고 뻑뻑하다고 느껴진 부분도 있었죠. 곡마다 살짝살짝 톤이 바뀌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1, 2번 트랙의 톤이 본인의 가장 기본 목소리라고 친다면, "어린왕자"는 인위적으로 얇게 날카로운 하이톤을 연출한 느낌이 있고 (그래서 뭔가 미료 느낌이 납니다), "Float" 역시 뭔가 짜낸 느낌이 살짝 있습니다. 그 외 사소한 지적으로, 라임을 짚는 박자가 서로 어긋나서 리듬감이 깨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일지 모르겠는데 이런 분위기라면 전체적으로 가사를 좀 더 비워도 되지 않았나 싶군요.


 여러 가지를 얘기했지만 크게 볼 때 첫 앨범으로는 무난한 성적을 낸 것 같습니다. 위에서 말했던 것들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단점이라기보단 커리어를 이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고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는 부분 같습니다. 그래서 연륜의 문제인 거 같다고 얘기를 한 거고요. 정보가 별로 없어서 이번 스타일이 그녀에게도 새로운 시도인지, 아니면 항상 해오던 스타일인지는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여튼 앞으로의 활동에 좀 더 주목을 해보겠습니다. 



(9) NaShow - Dark Side of BLULIGHT (2019.7.10)


 NaShow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 래퍼입니다. Diz'One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던 초창기 시절, 제가 처음으로 구매한 언더그라운드 힙합 앨범이었던 "Slug.er Presents Hiphopscene"에서 단연 돋보이는 실력으로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UMF Super Rookies에 선정되어 활동하던 시절 공연장에서 나름 희귀 앨범인 PR 데모 CD도 받았었죠 (수록곡들은 인터넷으로 무료 공개가 되었던 곡들인데, 개인적으론 전곡 그의 곡 중 베스트). Simon Dominic을 잇는 래퍼가 될 거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하던 시절이 가고 애정은 식었지만, 이후 (아마도 전 기획사와의 분쟁 과정에서) 또다른 aka였던 NaShow를 메인 랩네임으로 바꾸고 KK와 Brofit Records에서 활동하면서 "The Show"라는 연작을 내던 모습까지, 늘 챙겨보고는 있었습니다.


 작년 6월 NaShow는 Brofit Records와 계약을 종료하고 "BLULIGHT MUSIC"이란 이름의 레이블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앨범은 거기서 나온 세 번째 본인 앨범입니다. BLULIGHT MUSIC 개시 후 NaShow는 기존에 보여주던 음악과 다른 스타일을 시도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의 기존 스타일이란 마디를 빽빽하게 메운 속사포 랩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앨범 "BLU"부터 그는 싱잉 랩을 주 무기로 삼고 있으며, 이번 앨범도 마지막 곡 "숲"을 제외한다면 약간의 이모 힙합 느낌을 띈 싱잉 랩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재밌는 건, 그가 그전까지 했던 타이트한 랩의 스타일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의 이전 스타일은 스킬풀하고 화려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유행도 갔거니와, 무작정 힘차게 내달리는 플로우 때문에 피로감이 꽤 느껴졌습니다. 여기에 압축적인 작사 스타일 때문에 메세지가 쉽게 전달 안 되는 것도 한몫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저의 특성상 전혀 문법에 맞지 않는 영어는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즉 기존의 스타일은 갈 수록 장점보다 단점이 크게 드러났던 바, 싱잉 랩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리스크가 있는 전략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이런 성향이 드러나는 트랙은 첫 두 트랙, 그리고 랩 트랙인 마지막 트랙에서 뚜렷하고, 중간에 있는 트랙들은 좀 더 템포에 여유를 두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Coffin"은 가장 실험적인 트랙이라 할 수 있죠. NaShow는 사실 보컬 능력도 상당히 좋은 뮤지션입니다 - 이는 과거 데모 테입을 낼 때부터 드러났던 장기입니다. 중간 트랙들은 그런 보컬 능력으로 피로감이 높아질 수 있는 플로우와 밸런스를 맞추고 있으며 멜로디 메이킹도 나쁘지 않아서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개인적으론 이런 모습을 잘 활용하고, 또 잘 알려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인정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애정이 있는 래퍼다보니 얘기가 좀 길어지네요. NaShow는 많은 사람이 아는 래퍼하고 할 순 없을 것이며, 그것은 Outsider와 함께 사라진 속사포 열풍도 한 가지 이유겠지만 결국 요즘의 성공은 노출도와 직결되니, 좋은 기회가 아직 닿지 못한 게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그 기회가 올 때까지, NaShow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알릴 방법을 더욱 연구해주었으면 좋겠네요. 응원합니다.



(10) East Frog - 공해 (2019.7.6)


 얼마전 Esenswings와의 장난끼 어린 EP가 그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기에, 최근 Snacky Chan의 Dynasty Muzik에 합류했다는 소식은 조금 놀라웠습니다 - 아무래도 Snacky Chan의 이미지가 있다보니 Dynasty Muzik은 베이스 쿵쿵 때리는 붐뱁을 할 것 같은 이미지고, 또다른 멤버인 A-Chess도 어느 정도 그에 부합하니까요. 레이블 합류와 함께 발표한 이번 EP도 그런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해서, 저번 Esenswings와의 앨범에서 실망했던 부분을 어느 정도 보상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전 앨범은 재밌는 소재를 재밌게 풀어내지 못했다고 하면, 이번엔 빵 터지진 않더라도 나름 피식하게 해주는 센스는 있었거든요. 더불어 포크 락 같은 느낌 ("똥술"은 아니지만)으로 맞춘 음악 위 힘을 빼고 편하게 들려주는 랩도 나름 어울리게 들립니다. 이 '힘을 뺀' 느낌이 누군가에겐 너무 허전하고 심심한 걸로 들릴 수 있을 테지만 거기까진 취향 차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굳이 장기하 따라하는 거라고 대놓고 말하는 "내가 분명히 경고 했지"를 빼더라도, "대충 걸어" "엄마야 큰일 났네"에서 진하게 풍겨오는 비슷한 무드,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나머지 트랙은 Legit Goons를 강하게 연상시킨다는 점은 약점이 될만합니다. 유머러스함을 주 무기로 삼는다면 남과 다른 색깔이 무엇보다 중요할 테니까요 - 그래도 장기하는 힙합 외의 장르니 그걸 끌어오는 게 한 번까지는 괜찮지만, "엄마야 큰일 났네"처럼 오마주 수준으로 다시 차용하는 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군요. 이러나 저러나 이번 앨범은 '기다려보면 재미 있는게 나올지도 모르겠다'라는 기대는 주었습니다. 이건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그가 속해있는 61 Mufuckerz 전체에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기왕 둥지도 틀었으니, 좋은 활동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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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07-12 23:02:02

잘 읽고 갑니다,,^^,,,총총

2019-07-12 23:39:09

❤️❤️❤️

WR
2019-07-13 11:09:58

감사합니다 여러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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