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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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8 18:42:49

리뷰라기보다는 일기장에 쓸만한 글을 옮겨왔다는 느낌으로 적어보는 앨범 소감문입니다.


대상: 

대체로 이 시리즈가 한 번 끝을 맺었던 2018.7 이후로 나온 앨범들

여기에다가 이전 시리즈 글에서 다뤘는데 다시 들으니 감상이 바뀐 앨범

적어도 세 곡 이상의 앨범만. 싱글까지 포함하자니 너무 많아서..

내가 아는 / 어디서 들어본 아티스트 + 뭔가 지나가다가 추천 받거나 들어주세요! 했던 거라든지... 그런 앨범들


주의:

음알못. 특히 사운드알못.

붐뱁충.

 

오늘의 잡담:

30번째에 도달해버렸군요. 앨범으로는 355개.

솔지 님이 저번에 리플로 단 "밀감싹 프로젝트"라는 약자가 매우 맘에 드네요



(1) 재달 - Come and Go (2019.02.26)


 재달의 "Come and Go"는 전작 "Period"의 감성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재달이 락밴드에 있어서 이러한 음악을 한다는 말은 통하진 않는 거 같습니다. 사실 "Adventure" 때만 락적인 느낌이 났지, "Period"부터는 이미 다른 바이브 (뉴에이지라고 해야되나, 장르를 잘 몰라서 무슨 단어를 써야할지...)를 연출하고 있었죠. 그 바이브는 제 부족한 표현으로는 신비하고 몽환적이며, 편안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편안함'이 키입니다 - 재달의 음악은 자연스럽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다채롭습니다. 듣다보면 싱잉 랩이라기보단 얘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죠. "Oh Sh" 마지막에 나오는 스킷이 곡에 거부감 없이 녹아들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예입니다. 어설픈 프로덕션에서는 따분한 음악이 되었을 법하나, 재달이 만든 풍부하고 공간감 넘치는 비트는 이 모든 것을 훌륭하게 커버합니다. 사실 "Period" 때의 느낌을 그대로 재현했다면 나쁘게 말하면 재탕인 셈이지만, 워낙 다채로웠거니와, EP 단위의 작업물이기에 자기 복제란 생각은 아직은 들지는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악동 같은 Legit Goons 내에 조용히 사색을 즐기는 듯한 재달의 이미지가 안 어울린다는 느낌도 있지만, 지난 "Junk Drunk Love" 앨범으로 어울릴 때는 어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줘서 큰 걱정은 않으렵니다 (솔로 작업물로 파고들면 뱃사공도 이런 느낌을 많이 내긴 하니까요).



(2) HunnyHunna - How Can I Become Famous (2019.2.23)


 여전히 김규헌이란 이름이 더 낯익은 HunnyHunna의 오랜만의 새 작업물입니다. 적은 활동 탓에 고등래퍼의 이미지를 벗지 못 했을지 몰라도, 그의 노래들은 전작부터 고등래퍼 때 보였던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한 노력이 보입니다 - 기본적으로 방송에선 싱잉 랩을 주무기로 삼을 거란 이미지는 아니었으니까요. 전작과 비교해볼 때는 비교적 가벼운 무드와 이에 맞춰 부드럽게 이어가는 플로우가 눈에 띕니다. 물론 앨범이 진행할 수록 밝음에서 우울함으로 분위기가 진행되는 건 있는데 톤 자체가 힘을 빼고 있고, "Misery" 같은 트랙을 제외한다면 플로우를 타이트하게 짠 느낌이라 듣기 편한 음악을 만들려고 했던 거 같습니다. 전작에선 그나마 "카리스마" 같은 비교적 센 트랙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 역시 고등래퍼 때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군요. No2zCat이 대부분 프로듀싱한 트랙 (1번 트랙은 Peakboy 프로듀싱)은 팝적인 색깔을 띄면서 '이지 리스닝'이란 시도와 잘 맞물립니다. 이 시점에서 HunnyHunna에게 힘을 좀 더 주길 바라는 것은 고등래퍼 때 색깔을 잊지 못한 탓으로 보일까 조심스럽지만, 실제로 일부 트랙들은 듣기 편한 것을 넘어 김빠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특히 "까매"나 "Misery" 같은 무게감 있는 트랙들에서 아쉽습니다. 또 "Paparazzi" 같은 트랙에서 보이는 빠른 랩들은 이따금 비트를 따라가려고 애쓰는 듯한 모습이 보이는데, 이 역시 플로우를 다잡아줄 힘까지도 빼버린 탓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고등래퍼와 저번 앨범의 일부 트랙에서 보인 그의 발성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활용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여튼 자신의 음악 세계 내에서 신선한 시도를 하는 것을 나쁘게 볼 순 없습니다. 현재까지의 모습은 '힘'을 제외하고라도 자신만의 무엇은 아직 부족한 듯하지만, 방향 자체는 좋아보여서 좀 더 지켜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근데 지금보다는 작업물을 좀 더 자주 보여줘야지 않나...



(3) Yawah - Sunday (2019.2.19)


 제게 Yawah는 "뱃사공과 싸운 악플러"라는 부정적인 편견이 먼저 박혀있습니다. 당시 지금보다도 훨씬 붐뱁충이었던 제가 그의 음악 때문에 생각을 고쳐먹을리도 만무했고, YG에서 보여준 음악 ("승"이 "Yawah"라는 걸 공식 인정하진 않았지만ㅎㅎ)은 어차피 아이돌 음악이란 틀에 맞추어 내는 것일테니 진정한 그의 스타일이라고 볼 순 없었으니까요. 오랜만에 들어본 그의 음악은 제 기억 속의 "Lost Mind" "144,000" 등등보다 훨씬 부드럽게 다듬어진 모습입니다. "Cohort 조무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거 같은데, 스타일적으론 확실히 Cohort에서 자주 했던 전형적인 클라우드 랩입니다. 과거랑 비교해보면 우선 톤을 낮추었고, 오토튠을 훨씬 뺐죠. 한 마디의 가사를 적게 써서 엄청 여백을 두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가사도 평범하게(?) 썼고요. "멍" 같은 트랙은 클라우드 랩의 대표적 메리트인 중독성 면에선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랩이나 비트나 다 듣고 나면 Yawah의 매력은 무엇인지가 좀 애매해집니다. 비트는 어디서 서너 번은 들어본 거 같은 트랩 스타일이었고, 랩은 듣는 내내 Okasian이 생각났습니다. 과거의 스타일에서 거부감 일만한 요소들을 모두 다듬다보니 듣기 편해진 대신 특색은 많이 잃어버린 느낌입니다. 앨범 자체가 못 만든 건 아닙니다 - 듣기 싫은 노래는 없어요. 말마따나 큰 감흥 없이 멍하니 듣다 끝나버리는 게 문제죠. 붐뱁충이라 이런 류의 장르는 섬세하게 평가하지 못하는 제 탓도 있긴 할 겁니다 - 듣는 트랩 앨범의 절반 이상이 제겐 이런 느낌이니까. 그런 면에서 더 이상 평가는 보류해야겠군요.



(4) Issac Squab - My Stance (2019.2.26)


 우리나라에선 유독, 일명 "1세대"라 불리는 래퍼들이 현재에 와서 힘을 못 발휘합니다. 하긴, 미국이라고 Slick Rick이나 Afrika Bambaataa가 활발히 활동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20년 넘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래퍼들은 많이 볼 수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트렌드에 민감하고 크기가 작은 씬 탓에, 촌스러움이 그 자체로 인정 받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전공 분야를 떠나 어설프게 트렌드를 흉내내려다가 이도저도 안 되는 사례가 많은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Issac Squab도 이 사례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 합니다. 올드 팬으로써, 아직 음악을 놓지 않았다는 소식은 반갑지만, 앨범은 "옛 버릇과 트렌드의 불편한 동거"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My Stance"는 사회 비판 (좀 범위가 좁긴 하지만)이란 명확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앨범을 풀어나갑니다. 여기에 곡 전체를 하나의 펀치라인처럼 써내려간 "벌써 2년"이라든가, 일단은 트랩 리듬을 해보려고 했던 것 같은 "저수지 게임" 등은 좀 더 센스 있어보이려는 노력의 흔적이며, 이에 따라 랩에 멜로디를 가미한다든지, 톤에 조금 힘을 빼고 자유롭게 비트를 타려는 시도도 군데군데 보입니다 (사실 과거 힙플라디오 '우리 막랩할래요' 시절에 하던 거랑 비슷하긴 합니다만...). 하지만 이런 센스는 이내 한계에 부딪치고, 결국 기존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이 남지 않습니다. 피쳐링진인 Pharoh나 Supasize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여우사냥"에서 지펑크를 흉내낸 것 같은 그 멜로디 랩은...). 이 앨범의 단점은 랩보다도 The GITA가 전곡 프로듀싱한 비트에서 느껴졌습니다. 그의 비트도 위의 얘기가 적용됩니다. 일례로 "저수지 게임"은 올드 스쿨스러운 어두침침한 루핑 멜로디에, 트랩 비트를 지향한듯한 비어있는 드럼 비트가 깔려있는데, 이 드럼이 가히 오락실 전투기 총 소리 같은 약함을 보여주면서 곡을 더욱더 약화시키는데 공헌했습니다. 오히려, "난 무식한 자"처럼 좀 더 옛날 스타일에 충실한 랩과 비트가 좀 더 자연스럽고 좋게 들리네요.


 Issac Squab이 랩을 못 하냐고 하면 쉽게 답을 못 하겠습니다. 아주 원론적으로 따진다면 라임, 발성, 플로우, 박자 등에 큰 결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이 험난한 랩씬에서 두각을 드러낼 2%가 부족하고, 이를 뒷받쳐줄 프로덕션이 부족한 탓입니다. 예를 들어, Golden Boy Training Academy 때처럼 Vida Loca와 다시 콜라보하여 정통 붐뱁으로 가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마지막엔 드네요. 결론은 붐뱁입니다 - 붐뱁충.



(5) Audio Game - 29+1 (2019.2.26)


 나름 다양한 곡들을 해왔지만, 타이틀곡을 그들의 대표 색깔이라 칠 때 Audio Game의 음악은 더리 사우스 풍의 비트와 유쾌한 내용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리스너에게 와닿을진 물론 각자 다르겠지만). 그걸 고려할 때 "29+1"은 좀 뜬금 없습니다. 놀랍도록 MC 스나이퍼와 비슷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이건 흉내가 아니라 타고난(?) 비슷함으로 보입니다...) Playback의 후렴으로 문을 여는 "떠나가네"를 기점으로 네 트랙 동안 선보이는 색깔은 우울하고 차분합니다. 그러다 "sorrinterlude"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갑자기 바뀝니다 (이렇게 Interlude를 중심으로 바뀌는 구성은 공교롭게도 audiogamejoystick의 솔로 앨범 때와 동일하군요). 전자 기타의 현란한 멜로디 위에 의지나 다짐 같은 걸 선언하는 느낌의 곡들인데... Joystick 솔로 앨범 때도 그랬지만, 전반부와 후반부의 느낌이 너무나 다릅니다. 어느 정도냐면, 7번 트랙을 듣고 바로 1번 트랙을 들으면 아티스트가 아예 달라진 느낌이랄까요. 이것을 앨범 제목대로 서른 즈음에 접어들어 하는 현실적 고민과 다짐으로 묶을 수도 있겠는데, 그러면 중간에 위치한 "강아지"부터 "지금"까지의 구간은 너무나도 뜬금 없습니다. 중간 구간을 제외하면 일종의 처절함 혹은 광기가 트랙마다 깃들어있는데, 중간에 갑자기 예쁜 척을 하고 재롱을 하는 느낌입니다.


 음악적으로, Audio Game은 재밌는 랩을 하는 편이 아닙니다. 역시 Joystick 솔로 앨범 때와 마찬가지로, 랩은 건조하고 빽빽하며, 앞으로 달려갈 줄밖에 모릅니다. 이런 스타일이 반드시 오답은 아니지만 재밌는 곡을 만들고자 한다면 비트와의 콜라보가 중요할 것입니다. 그때문인지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7~80년대 메탈 같은 분위기로 곡이 휘황찬란해지는데, 두 멤버가 이 포스를 랩으로 따라잡지 못합니다. 이때문인지, 이번 앨범엔 유독 노래가 많습니다. 싱잉 랩이 아니라, 그냥 생목으로 술 취해서 부르는 노래 같은 느낌의 노래입니다 - 멤버 한 명만 랩하는 곡도 두 곡인가 있습니다. 이게 뭐 분위기엔 괜찮게 어울리긴 하지만 듣다보면 이 앨범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궁금해집니다 - "지대" "덤" 같은 곡을 선보이던 이들이, 새로운 스타일을 접목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앨범이 중구난방이란 느낌은 지울 수 없군요 (특히 "sorrinterlude"... 튜닝도 안 되어있고 일반적인 레이어링이나 화음도 없는 그 '쌩느낌'으로 노래를 진지하게 부르는 걸 듣는데 이거 스킷인건가 노래인건가 끝까지 헷갈렸습니다). 하고 싶은게 너무 많은게 문제였을까요. 적어도 7트랙 크기의 앨범으로 다 이루기엔 욕심이 조금 과해보였네요...


(6) HD Beatz - Discovery Trip (2018.12.27)

    HD BL4CK - 4 (2019.3.1)


 원래 이 글은 "4"의 감상이었으나 글을 쓰던 중 "Discovery Trip"란 앨범이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고 추가된 글입니다. 전작 "Pieces"에서 나름 다크한 음악으로 약간의 인상을 남겼던 HD Beatz였지만, 두 앨범은 실험을 자제하고 무난한 색깔로 돌아왔습니다 - "Discovery Trip"의 선공개 곡이었던 "The World is Ours"는 그나마 The Quiett의 보컬을 샘플하여 곡을 전개하는 재밌는 시도는 있었지만, 그 곡의 인스를 포함한 나머지는 그저 BPM 90대, 루핑 기반의 ("Swampy Swoosh"는 좀 다른 분위기이긴 한데..) 비트였을 뿐입니다. "4"의 경우 HD BL4CK이라는 이름, 그리고 기괴한 앨범 자켓을 보고 다크함을 좀 더 뿜어내줄 것인가 기대했는데, 수많은 래퍼들을 초빙한 컴필레이션 스타일의 앨범이 되면서 색깔은 더욱 무난해졌죠.


 다만 "4"의 경우, 세 가지의 다른 스타일을 병렬 구성해뒀다는 점은 재밌습니다. 네 개의 스킷을 기점으로 스타일 변화를 하면서, 붐뱁으로 시작한 앨범은 트랩으로 빠졌다가 살짝 다시 올드 스쿨로 오는 듯하더니 이모 힙합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는 여러 스펙트럼을 커버할 수 있다고 과시하는 듯한데, 고유의 스타일이 뚜렷하지 않은 채 보여주는 스펙트럼은 크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뭐, 과거의 앨범들에 비해 사운드적으론 그때보다 훨씬 꽉 차고 깊은 느낌을 받긴 했어요. 재밌게도 "Discovery Trip"까지 포함하면 붐뱁을 더 많이 시도한 셈이지만 그보다는 트랩과 이모 힙합 쪽이 그나마 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건 어쩌면 이 장르 쪽에서 보컬의 임팩트가 더 컸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고, 후반부 이모 힙합이 앞에 있던 어두운 톤과 달라서 환기 효과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군요.. 특별히 흠잡을 데 없지만 그렇다고 무엇이 좋았다고 자신 있게 얘기하도 힘든... 'Jack of all trade, and master of none'이란 영어 속담이 생각나는군요..a PS Skinny Brown이 의외로 천의 모습을 가진 점은 많이 놀랐습니다.



(7) RAVI - R.OOKBOOK (2019.3.5)


 아이돌 그룹 멤버가 어쩌고 라는 얘기를 언급하는게 민망할 정도로 RAVI는 이미 탄탄한 솔로 커리어를 구축했고, 감상 태도도 그에 맞춰 진지해야할 것입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RAVI 앨범을 다루는 것은 세 번째인데, 우선 말하자면 그 사이에 RAVI가 눈에 띄는 발전을 이뤘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딱 전작 "K1tchen"과 비교하자면 이번 "R.OOKBOOK"은 전작의 트랩 스타일을 버리고 레트로 펑크나 퓨쳐 베이스 등 댄서블한 음악을 테마로 채택하였습니다. "Nirvana"에서 보여줬던 스타일과 비슷하지만 프로덕션 면에서는 더욱 풍부하게 들립니다. 다만 하나 늘어난 것은 멜로디 라인에 좀 더 중점을 뒀다는 것으로, 제한적인 음역대를 가진 싱잉 랩의 모습이었던 전작과 비교하여 "R.OOKBOOK"의 랩의 멜로디는 훨씬 다채롭습니다 - 아이돌 가수라는 배경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결과겠군요. 가사적으로도 그런 분위기에 어울리는 감각적인 표현이 눈에 띕니다.


 이외의 음악적인 스타일은 다소 정체되어있습니다. 특히 이번 앨범에서 가장 아쉬운 건 그의 오토튠 떡칠 싱잉 랩입니다. 전자음이 난무하는 트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에 맞춰 보컬도 담백해졌으면 좋았겠지만, 이번에도 여지없이 RAVI는 이전에 썼던 그대로 귀가 피로해질 정도로 오토튠을 과하게 걸어놨습니다. 피쳐링진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더욱 명확해집니다. 이로 인해 떨어지는 딜리버리는 의도적인지 아닌지 몰라도 흘려대는 발음 때문에 더욱 떨어져, 앞서 말했던 가사가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TUXEDO" 후렴에서 '트수 트수' 그러길래 뭐지 했는데 tuxedo tuxedo더군요...). 여전히 답답하게 느껴지는 발성과, 그다지 감정 이입이 잘 되지 않은듯한 평탄한 목소리도 그루브를 해치고 있습니다. 전작보다 줄어든 피쳐링진은 아이러니하게 이 문제를 더욱 크게 드러나게 합니다. 힙합이 그에게 분명한 업이 되었다면, 좀 더 개선해나가려는 노력을 보여줘야 할텐데요. 지난 "Nirvana" "K1tchen" 리뷰에선 긍정적으로 글을 마무리지었지만 이번에는 살짝 팔짱을 끼고 글을 맺어봅니다.



(8) Kembetwa - Flexed Up, Dressed Up (2019.3.6)


 HNML 크루의 멤버이자, Mckdaddy와는 Daddy Tonez를 하고 있는 Kembetwa의 EP입니다. 역시 Kembetwa를 처음 접하게 된 작품이 되었는데요, 이 이유 때문에 팀메이트와 비교를 한다면 좀 비합리적일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들으면서 Mckdaddy와의 차이를 많이 생각하게 되더군요. 허스키하고 '부드러운' 편이었던 Mckdaddy와 반대로 Kembetwa의 목소리는 로우톤에 좀 더 단단한 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펙트를 꽤 먹인 듯한 질감인데, 뭐가 됐든 비트 위에서 존재감은 분명해보이지만, 약간 덜 유니크하단 느낌은 들었습니다. 사실 이는 목소리에서만이 아니라, 플로우 자체가 다소 단순하게 다가오는데, 이 역시 Mckdaddy가 타이트하게 플로우를 짰던 것과 대조되어서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 앨범은 전형적인 트랩 앨범이며, 앨범이 짧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달리 흐름이라고 볼만한 건 없이 이런저런 트랩 스타일의 곡을 모아둔 형태라 믹스테입 같은 느낌도 났습니다 - 역시 예상대로 저의 베스트는 "Mild Seven on My Lips". 이렇게 붐뱁을 마지막에 하나 껴넣는 것으로 컨셉 통일인가요?ㅎ 스타일이 전혀 다를 거 같았던 뱃사공과 의외로 잘 어울려서 재밌었습니다. 사실 이 트랙이 붐뱁인 점만 갖고 좋았던 건 아니고 이 템포에서 좀 더 끈적이는 그루브감이 느껴져서 그랬습니다.


 이렇게 보면 Mckdaddy보다 전체적으로 실망한 느낌인데, 뭐 Mckdaddy는 LP였고 Kembetwa는 5곡짜리 EP였던 점도 작용하긴 했겠죠. Daddy Tonez 노래를 들어보면 이런 스타일 차이가 꽤 밸런스 있게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이 앨범 자체로는 확 기억에 남는 뭔가는 없었던 거 같습니다 (마지막 트랙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거 정도였달까요). 일단은 평가를 보류하고 좀 더 지켜볼까요.



(9) Playback - 평화를 찾아서 (2019.3.6)


 audiogamejoystick과 Audio Game의 앨범에 이어서 꽤 짧은 간격을 두고 Playback 앨범까지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시간 차이가 그렇게 크게 나는게 아닌만큼, 일찍이 느꼈던 스타일의 특징은 다 들어가있습니다. '건조하고, 빽빽하게 밀어넣은, 다소 단조로움이 느껴지는 랩 플로우'란 설명은 이 앨범에도 적용되죠. 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 앨범 중에 제일 좋게 들은 앨범입니다. 그 이유는 프로덕션과의 조화입니다. 앞선 두 앨범이 내놓았던 단조로움을 깨는 방법은 어색할 뿐이었습니다 - audiogamejoystick 앨범 후반부의 말랑말랑해진 무드라든지, Audio Game 앨범에서 락과의 접목(?)과 생목 보컬 등은 그다지 기존 색깔과 시너지를 내지 못하였고 앨범의 통일성만 해쳤던 거 같습니다. "평화를 찾아서"는 진솔하게 담아낸 본인의 얘기와 힘듦, 신세 한탄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이는 사실 Joystick 앨범 전반부와 다를 건 없지만 랩을 설계함에 있어서 더욱 흥미로운 포인트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I Can" 중반부에 등장하는 격해진 목소리나 "Good Morning"의 1절과 2절 목소리가 다른 점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선이 앨범 내내 몰입도 있게 유지되면서 서사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MC 스나이퍼가 떠오르는) 노래가 위주가 된 트랙 "미뤄"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고 앨범을 깔끔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Audio Game 앨범과 이렇게 다르게 와닿는건 그의 목소리에 어울리는 옷을 전반적으로 입혀줬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한 가지 궁금해지는 건 Audio Game은 저번에도 말했듯 신나고 유쾌한 음악을 하는 팀이라 생각했던 건데 이렇게 되면 향후 방향이 어떻게 되는건가 하는건데요, 개인적으론 그래도 Audio Game 기존의 음악도 계속 볼 수 있으면 좋겠군요.



(10) Zene the Zilla - 감기 (2019.3.7)


 "감기"는 "전화하지마 비행 중이야" 이후로 3개월 만에 나온 Zene the Zilla의 새 앨범으로, EP라고 하지만 9곡으로 작지 않은 크기를 갖고 있습니다. 음악적으로 그가 하는 음악은 예전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나 메세지의 색깔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성공과 스웩을 주된 주제로 삼던 이때까지의 결과물들과 달리 이번 앨범은 성공 후에 찾아온 허무감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앨범이 진행될 수록 그 허무감은 짙어져서, 그에 따라 가사와 톤, 비트가 함께 차분해지는 구조를 그리고 있습니다. 원래도 괜찮은 센스를 보여줬던 그이지만 특히 메세지가 중요한 이러한 프로젝트에서도 Zene the Zilla의 가사는 뒤쳐지지 않습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이라면, 붐뱁충인 제가 트랩 음악을 들을 때 늘 드는 생각이지만 자기 복제에 관한 것입니다. 사실 Zene the Zilla는 이런 오토튠 싱잉 외에도 꽤 바운스가 살아있는 랩을 선보이곤 했는데, 그게 저번 앨범부터는 찾아보기가 힘들었죠.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그런 랩이 여기 들어가긴 어려웠겠으나, 그가 하는 싱잉은 이번 앨범 톤을 고려할 땐 너무 높고 가느다란 느낌은 좀 들었습니다 (그래서 후반부의 "Playlist 2019", "언제까지" 등 차분한 톤이 나올수록 더 마음에 들더군요). 한 가지 더 사소한 점이지만, 마무리를 짓는 트랙 "약"은 꽤 그 의도가 분명하긴 해도, 그렇게 아래로 내리깔리던 무드에서 뜬금없이 밝은 곡이 튀어나오는 구조는 좀 당황스러웠다는 점. 이런 점 외에는 뭐, 늘상 하던 음악을 보여준 셈이고, 음악적인 시도는 크게 없었지만 얘기의 넓어진 스펙트럼과 진솔함만으로 이 앨범은 충분히 가치가 있어보입니다. 특히 Zene 본인에겐 꽤 의미가 큰 앨범일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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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WR
2019-04-08 20:06:55

근데 한 번 들은 걸 안 듣는/못 듣는 경우가 대다수라 별로 건강한 감상은 못 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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