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렸던 감상 싹 다 하기 프로젝트 p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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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0 14:37:43

Jerry,K – OVRWRT

그를 둘러싼 수많은 음악 외의 이슈들은 생각하지 않고 들었습니다. Jerry,K를 소울컴퍼니 시절 엄청 좋아했던 저로써 현재의 Jerry,K 음악을 듣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과거의 Jerry,K는 이제 없는 사람이란 걸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오직 과거에 대한 향수만이 Jerry,K의 현재 스타일에 대한 거부감을 일으킨다면 그런 태도만으로 즐겁게 들을 수 있겠지만, Jerry,K의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만 하고 잘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제가 붐뱁충이라서 그렇다기보단, 그가 자주 선택하는 강한 메시지 전달과 거친 톤에는 붐뱁 장르가 좋을 것 같은데도, 그는 끊임없이 트랩 리듬, 오토튠, 싱잉 랩, 멈블이나 클라우드에 어울릴만한 비트 등 트렌디한 것을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앨범은 OVRWRT는 그나마 그의 지금까지 음악 중에선 가장 목소리와 비트가 잘 달라붙는다는 느낌을 받긴 했습니다만, ‘알약’이나 ‘셰셰셰’ 같은 트랙은 여전히 과한 시도가 아닌가 합니다. 뭐… 시도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겠죠. 그래도 이때까지 중에서 가장 괜찮은 것을 뽑아냈으니 다음 앨범을 기대해보겠습니다.


Marvel.J – Blue Marvel

 Basick이 이끄는 All Right Music에서 다음 타자로 밀고 있는 Marvel.J의 앨범입니다. 그가 대남협의 멤버로써 수면 위로 드러날 준비를 하던 즈음 그의 스타일은 강렬한 비트 위에 수많은 랩스킬로 몰아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이번 앨범도 그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예상 범위 내의 스타일입니다. 재밌는 것은 보통 강한 트랙을 초반에 배치하고 뒤로 가면서 비교적 편안한 스타일로 마무리 짓는 일반적인 구성 대신, 초반 두 트랙을 비교적 잔잔한 것으로 열고, 중간 부분을 강력한 트랙으로 포진하였는데, 저에게는 이 때문에 초반과 종반의 트랙은 크게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중간은 듣다가 피곤해지는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비단 앨범의 구성뿐만 아니라, Marvel.J의 음악은 저에겐 너무 셉니다. 같은 All Right Music에서 나온 Basick의 앨범과 비교할 때 그의 음악은 여유가 부족하고, 어떻게는 ‘나 랩 존나 잘해’라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는 인상이 듭니다. 분명 그는 랩을 잘하지만, 적절히 힘을 안배한다면 좀 더 듣기 편안한 앨범이 되었을 거 같다는 아쉬움이 남네요.


Bloo – Downtown Baby

 MKIT Rain의 컴필레이션이나 Bloo의 최근작 “Drink Slow Henny”를 감안할 때, “Downtown Baby”는 매우 놀랍고 즐거운 충격입니다. 앨범은 힙합과 컨츄리 락 사이 어딘가에 걸쳐있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로, 첫 트랙부터 듣는 사람을 몰입시킵니다. 어쿠스틱한 비트 구성과 멜로디의 높은 비중, “Hate Me”에서 특히 드러나는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보컬 등이 모두 이런 분위기를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MKIT Rain하면 아직 Loopy, Nafla, Owen 셋이 떠오르는 현재 이 앨범은 Bloo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에 남게 해준 데에 큰 의미가 있네요.


Rama – DAWN.

 Rama는 2005년 EP “전형적인”을 발표한 후 1년 남짓되는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비단 개화산 크루였던 Paloalto의 전폭적인 지지만이 그 전성기의 원인은 아닐 거라 믿습니다. 더 중요한 건 그의 건조한 톤과 폐부를 찌르는 가사를 120% 서포트해주었던 Aeizoku와 Nodo의 프로덕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요소가 빠진 후 Rama의 건조한 랩은 심하게 부족한 그루브와 유치한 가사 진행이라는 단점만이 남았습니다. 분명 Rama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남아있고, 그건 이번 앨범 “효미더머니”나 “Don’t Believe the Hype”에서의 가사 진행이나 “슈퍼히어로”에서 보이는 다른 피쳐링진이 가지고 있지 않은 센스로도 증명이 됩니다. 그러나 음악적인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 이상의 것은 입증이 어렵습니다. 조금이라도 비트가 강렬하면 목소리는 처참하게 묻히기 일쑤이고, “메인을 노려라” 같은 트렌디한 시도는 심한 부조화만 일어납니다. 한때 Rama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써, 전성기 이후의 행보는 아쉽기만 하네요.


myunDo – RGB 3부작: (255,0,0), (0,255,0), (0,0,0)

 쇼미더머니로 한껏 주가를 올린 후 Ghood Life Crew에 들어간 myunDo의 첫 앨범 단위 작업물이었습니다. RGB의 의도는 명확해보이며, 거기에서 myunDo가 얼마나 영리한지 알 수 있습니다. 트랩으로 뜨고 트랩을 잘 하는 래퍼로 알려진 그는 대담하게도 RGB 시리즈 중 첫 두 작품을 붐뱁 리듬으로 채웠습니다. 그의 특유의 그루브 있는 유려한 플로우가 붐뱁에도 여지없이 섞여들면서, myunDo가 단순히 트랩만 잘 하는게 아니라 랩을 잘 한다는 것을 성공적으로 증명해보입니다. 그리고 시리즈의 마지막은 역시 자기의 장기인 트랩으로 장식하는군요. 그런가하면 시리즈 3부작 각각의 색깔별로 스타일도 뚜렷하게 나누어져있어, 골라듣는 재미도 있습니다. 붐뱁충인 제 취향을 저격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정규 앨범이 기다려지게 하는 미니 앨범입니다.


재달 – Adventure

 잔인하게 말하면 “내일의 숙취” 뒤쪽의 대머리 이상으로는 Legit Goons에서 인지도를 갖고 있지 못하던 재달의 앨범입니다. 이 앨범은 매우 기분 좋은 발견이었습니다. Legit Goons의 특유의 구수하고 순박한 무드를 이어가면서도, 그의 거친 톤은 Legit Goons의 나머지 멤버들과 확연히 자신을 구분지어줍니다. 별다른 피쳐링진을 쓰지 않고도 그의 음악은 앨범 전체를 탄탄하게 채우고 있으며, 랩도 랩이지만 때로는 인디 밴드의 앨범을 듣는 듯한 비중 높은 멜로디 라인 역시 맘에 들었습니다 (“Old Time Galaxy”는 특히 인디 밴드 곡이라 해도 믿을 거 같습니다). 아직 Legit Goons 나머지 멤버와 시너지를 보지 못한 점은 아쉬운데 그건 차차 보여주겠죠?


LT – EXiT

 LT는 2013년 Blasti와 함께 Tee Time이라는 듀오로 낸 앨범으로 처음 접했습니다. 그후로 5년이 지나면서 LT는 많은 솔로 작품을 냈건만 그동안은 제대로 감상할 기회를 자의적 타의적으로 갖지 못 했습니다. 이번 앨범은 DCTribe에 LT 본인이 올렸던 앨범 홍보글을 계기로 찾아 듣게 되었는데, 2013년 기억하던 이미지와 많이 달라져있음에 우선 처음으로 놀랐습니다. Tee Time 당시 그들은 샘플링 기반으로 한 비트 위 밝은 분위기의 붐뱁을 하는 이들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발음 좋은 멈블 랩’이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몽환적인 분위기와 조곤조곤한 랩으로 채워져있습니다. 개인적으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묻고 싶을 정도로 우울한 분위기가 강하게 앨범을 지배하고 있으며, 곡과 곡들이 다소 비슷함에도 지루하지 않고 몰입되게 하는 작품이었던 거 같습니다. 다만 (역시 붐뱁충으로써의 주관이 작용하겠지만) 그러한 테마 때문인지 한 방을 날리는 트랙은 없습니다 – 앨범 전체가 하나의 긴 트랙이라고 생각이 되는 면도 있네요. 이건 뭐 보기에 따라는 장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긴 하겠죠?


Microdot – PROPHET

 아이러니하게도 Microdot의 씬에서의 위치는 매우 애매해 보입니다. 함께 커리어를 시작한 Dok2의 성공과 어쩔 수 없이 비교되어서 일지도 모르겠고, 눈에 띄는 언더그라운드 활동 없이 (믹스테입 같은 게 있지만 호주에서 주로 냈던 거다보니…) 쇼미더머니를 통해 제2의 데뷔를 하였지만 그렇다고 메인스트림 래퍼는 아닌 거 같고, 그렇다고 매니악한 면이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과감히 2CD로 나온 이 정규 앨범도 듣는 내내, “Microdot만의 영역은 어디인가?”라는 의문이 계속 들게 하였습니다. “Tropical Night”을 필두로 1CD의 초반부는 다분히 메인스트림적인 색깔을 띄고 있는듯 하면서도, 1CD의 막바지부터는 트랩 래퍼로 그를 보아야하는 거 같기도 하고, 어느 부분에선가는 붐뱁 래퍼인 것 같기도 합니다. 결국 결론적으로 2CD라는 큰 용량을 채우기엔 아직은 그의 구별되는 존재감이 명확치 않았던 거 같습니다. 당연히 트랙 수가 많다보니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었는데, 특유의 얇은 하이톤 때문에 트랙에 따라 그의 단점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 제 의견으론 본래의 목소리에 땜핑과 그루브가 부족했기에, 비트가 잘 받쳐주지 않는 1CD 초반의 어쿠스틱 트랙들은 매우 치명적인 조합이었던 것 같습니다. 본인도 알고 있는듯이 앨범은 클럽튠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그나마 제일 어울리는 듯하지만, 그러면 타이틀곡 Time to Shine과 Tropical Night이 좀 초라해지는군요. 인트로에서 얘기하는 2CD를 낸 의도 자체는 매우 좋고 박수를 보낼만 합니다만, 좀 더 자신의 스타일이 완성된 시점에서 냈으면 더 좋은 느낌으로 남지 않았을까 하네요.


Yammo – Childhood Pt.3

 얌모에 대한 기억은 저로써는 Bigdeal Squads에서 했던 짧은 활동이 대부분인 거 같습니다. 탈퇴 후로도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가는 걸 보면서,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하면서 어떻게 Bigdeal에 합류를 했을까… 라는 생각도 좀 들었습니다. 이 앨범을 포함하여 Childhood 시리즈에서의 얌모는 요즘 트렌드인 음악인 거 같으면서 또 묘하게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는 느낌입니다. 발음을 흘리긴 하는데 멈블 랩은 아닌 거 같고, 뭔가 뿅뿅 칫칫(?)하는 데 트랩은 아닌 거 같고 그런 느낌? 앨범 전체에 서려있는 몽환적인 느낌이 근래 들은 것 중에선 제일 미국 메인스트림 음악과 닮아있다는 느낌입니다 – ‘닮아있다’라는 것이 장점인지 아닌지는 판단이 갈리겠지만, 어설픈 것과 비교하자면 분명한 자기 무기일 겁니다. 이런 의의 따지고 하는 재미없고 뻔한 평 이상을 할 수 없는 건 역시 제 취향과 관련이 있습니다… 솔직한 느낌은 와닿는 것 없이 멍…하니 들었다는 거.


DooYoung – Ghood Life

 고등래퍼를 통해 처음 이름을 알린 DooYoung의 첫 공식 작업물입니다. 고등래퍼 때 E-Sens 은근 닮았다면서 좀 관심을 가지고 봤었는데, 그 이후 쇼미더머니에서의 모습은 ‘내가 뭘 보고 쟤한테 관심을 가졌지?’라고 의문이 들 정도로 평범 그 자체였습니다. 아쉽게도 이 앨범은 후자의 모습에 더 가까웠습니다. 이렇게 앨범 단위 작업물이 빨리 나온 것은 본인의 열정을 반증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지 앨범엔 지펑크스러운 것도 있고, chilling하는 것도 있고, 트랩도 있고 붐뱁도 있고 한데, 그 분위기에 따라 본인의 랩스타일은 이리저리 휘둘리면서도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미숙함도 있지만 프로덕션도 영 만족스럽지가 못합니다 – 단체곡 “Gangstarr”는 DooYoung뿐만 아니라 다른 래퍼들도 빛을 발하지 못하네요. 보니 그 후로도 DooYoung은 나름 허슬하고 있군요. 다만, 아직 본인 칼라를 잡아가는 과정에 있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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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8-05-10 15:03:09

라마의 부족한 랩은 이미 10년전부터 시작된거같습니다..


WR
2018-05-10 15:04:14

네 사실 저기에 써있는 서두는 '근데 왜 라마는 전성기를 가지게 된 거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결론입니다..

1
2018-05-10 15:44:46

한국에 래퍼가 이렇게 많았다니, 제가 힙알못이란 걸 새삼 느끼게 되네요. 이런 저만해도 '과거의 본인의 영광에 짓눌린 우상의 현재'를 보며 씁쓸할 때가 많았는데 힙잘알 분들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Jerry,K를 소울컴퍼니 시절 엄청 좋아했던 저로써 현재의 Jerry,K 음악을 듣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과거의 Jerry,K는 이제 없는 사람이란 걸 인정하는 것 " 이라는 말씀이 많은 생각이 들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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