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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앨범리뷰] 한요한 "청룡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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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08-13 21:26:44

 먼저 앨범의 타이틀이기도 한 [청룡쇼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해봅시다. 쇼바는 현가장치(차체 충격이 탑승자에게 전달되기 전 이를 흡수, 완화하는 장치) 중 하나인 쇼크 업소버의 일본식 표현입니다. 업소버가 일본식 발음으로 압쇼바가 되고 줄여서 쇼바가 된 셈이죠. 흔히들 말하잖아요? 상스치콤처럼 줄여 부르면 주변에서 '오~ 좀 놀 줄 아는 놈인가?'라고 생각한다고. 그래서 90년대 후반 폭주 좀 뛴다 하는 놀 줄 아는 형누나들 사이에서는 대림 VF125에 튜닝을 거쳐 뒷바퀴 서스펜션을 왕창 올리는 게 하나의 유행이었습니다.(혹은 가스통 등의 무거운 짐을 배달하는 일을 하느라 직업상 올린 사람도 있었다 합니다.) 그때 사용된 사제부품 이름이 청룡쇼바였고요. 지금도 인터넷 부품숍에서 '청용쇼바'라는 이름으로 확인 가능합니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승천쇼바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후륜 서스펜션을 겁나 올려 뒷부분이 하늘로 치솟아, 혹은 안전 따위는 개나 준 구조상 사고 나는 순간 하늘로 승천하기 때문이라는 등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청룡쇼바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들어가는 사진 중 하나입니다. 흔히 '차량튜닝 끝판왕'이라는 제목으로 돌던 짤방이기도 합니다. 다들 꼬리 부분을 보고 'ㅗㅜ ㅑ저래서 청룡쇼바구만!' 하는데 사실 쇼크 업쇼버(쇼바)는 뒷바퀴와 차체 사이에 있는 스프링으로 감싸진 부분입니다. 앨범커버에서도 구릿빛으로 칭칭 감겨진 용수철 같은 것이 있는 그 부분 말입니다. 이 부분의 과도한 연장으로 후면 차체가 유난히 붕 떠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사진의 오토바이의 모습이나, 바퀴의 휠 모양, 구도를 보면 커버아트는 해당 오토바이를 그대로 트레이싱한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은 그 기원이 어디인지, 누가 찍은 건지 모를 정도로 돌아다니는 짤이라 그냥 청룡쇼바가 무얼 의미하는지, 그리고 앨범의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그렸다 생각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청룡쇼바]는 '마구 내달리는 좀 노는 형'의 이야기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좀 노는 형'을 '락스타'로 바꾸면 더할 나위 없겠네요. 한요한의 기타 리프에 기반한 인스트루멘틀에 따라 격렬하게, 또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순간을 만끽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한요한의 보컬과 랩은 경계 없이 어딘가에 엉성하게 걸쳐져 있고 샤우팅을 지르는 순간 음정마저 무너지는 광경을 여러 차례 목격했지만 이번 [청룡쇼바]는 한 층 안정적인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히려 앞서 이야기한 로우(raw)한 부분들이 한요한의 격한 감정들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이기에 "범퍼카" 혹은 "300km"때처럼 밸런스가 무너질 정도로 내지르는 그의 모습을 원한 사람들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그의 스타일을 부담스러워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한 층 듣기 편한 앨범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칭 훅잽이라는 또 다른 별명답게 멜로디컬하면서 맛깔스러운 훅 또한 여전합니다.

 이외의 전체적인 구성은 이전작들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초반에는 락스타, 셀럽, 파티피플로서의 자신을 내세우다 약 두 곡 정도가 지나갈 때쯤 한 층 차분한 분위기로 개인적인 소회나 사랑 이야기들을 병렬적으로 나열하고 마무리 짓는 방식입니다. 방금 멘트를 [기타 멘 무사시] 시리즈, [칼춤]에다 가져다 써도 큰 무리가 없는, 이른바 '한요한식 플롯'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비슷한 구성의 작품을 연속으로 네 장이나 발표했어도 작품을 거듭할수록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하고 어느 순간 한요한이 그려낸 독특한 분위기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믹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요한은 여태껏 발표한 모든 작품 안에서 자신을 일본의 검호 '미야모토 무사시'에 비합니다. 검 두 자루 손에 쥐고 검호의 길을 걸었던 무사시를 살짝 비틀어 검 대신 기타를, 검호의 길 대신 락스타의 길을 전전합니다. 기믹을 정했다면 그다음은 설득의 싸움입니다. 기믹의 활용은 청자들에게 뮤지션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유치하게 보일 수 있다는 위험성 또한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거부감 없이 그 캐릭터를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한요한은 [기타 멘 무사시]라는 타이틀을 통해 자신을 무사시에 대입시키는 시도를 하고 이후에는 직접적인 묘사 없이 곡 중간중간에 이와 관련된 단어를 차용함으로써 기믹의 기반을 다져나갑니다. 이번 [청룡쇼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표지에서부터 한 자루의 칼을 쥐고 기타를 멘 하카마를 입은 청년이 서있고 그 뒤에는 청룡쇼바로 튜닝한 오토바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토바이의 경우 무사시 기믹보다는 그의 저돌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매개체로 보는 것이 더 알맞겠습니다. 아무튼 그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 여전히 청자를 향한 무의식적인 설득은 현재진행형이고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가는 중입니다.

  분명 한요한의 앨범 [청룡쇼바]에 관한 글인데 시작부터 뜬금없이 청룡쇼바 그 자체를 다루고 마지막엔 무사시로 끝났습니다. 기능성, 안정성 따위는 생각하지 않은 채 자기가 생각하는 멋, 소위 '간지'에 치중하고 한 번 밟았다 싶으면 기둥에 박을 때까지 멈추질 못한다는 청룡쇼바 튜닝 오토바이처럼 앞뒤 안 가리고 저돌적인 면모는 그의 작품과 너무도 잘 맞아떨어지는 소재임을 말해보고 싶은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앨범 소개 글에서 [청룡쇼바]를 단 네 글자로 간단히 나타냈는데 뭐 이리 글이 길어졌을까요. 앨범 소개글을 그대로 가져오며 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빠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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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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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3 21:37:41

일식의 '소바'와 무관한 제목이였군요(...)

한요한이 처음으로 JM의 일원으로 트랙 위에 올라섰을 때는 '노창 카피캣이다', '락은 역시 FT아일랜드', '낯이 익다했더니 슬램덩크에서 본 것같다' 등 한요한이 아닌 제3자에 오버랩 된다는 반응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점점 한요한(a.k.a 무사시)으로 자리를 잡아가네요.

다만 '우쟈쟈쟈쟈!!!'식의 장르를 불호하는 저로선 아직 손이 가는 뮤지션은 아니군요...

2018-08-13 23:53:22

1,2번트랙 가장 좋게들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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