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에서 랩 잘하려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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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31 15:23:05

[컬처클럽/1.19] 노래방에서 랩 잘하려면 (2)

\"반응 좋으면 속편 쓰겠다\"는 협박이 주효했던 탓인지 50여분의 독자님께서 편지 주셨습니다. 고2 학생서부터 딸 하나 두신 40대 가장(家長)까지 연령도 다양했습니다. \"그동안 스트레스 많이 받았는데 속시원하다\"는 칭찬부터 \"기자가 이런 걸 쓰다니 황당하다\"는 솔직한 반응, \"기사 보며 연습하겠다\"는 결의부터 \"이렇게 써보라\"는 가르침까지 재미있는 편지들 잘 읽었습니다

글쟁이에겐 글 읽는 여러분들의 격려가 가장 큰복입니다. 1편이 큰 전략 위주였다면, 이번엔 세부 전술 위주로 가보겠습니다.

◇끊어서 읽어라.

이미 말씀드렸지만 god의 미덕은 쉴 틈을 준다는 점입니다. 한 구절서 다음 구절로 넘어가기전, 짧긴 해도 숨쉴 시간이 분명 있습니다. 히트곡 가운데 초심자들도 비교적 따라부르기 쉬운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를 볼까요.

\"돌아보면 너무나 아름다웠어 / 내 인생에 다시 못올 순간들이었어 / 너를 보면 보고 있으면 / 아무 이유없이 눈물이 흐르곤 했어\"

노래는 \"어\"로 말을 맺으며 다음 구절을 부를 기회를 줍니다. 박자도 느린 편이어서 1~2번만 연습하면 쉽게 마스터할 수 있죠. 가사를 보면서 한 구절과 다음 구절이 만나는 쉴 공간에 표시를 해두세요. 빗금(/)도 좋고, 쉼표(,)도 좋습니다. 느낌표(!)면 또 어떻습니까. 래퍼들이 어디서 쉬고 다시 나가는지 체크해두는 건 그 래퍼의 무의식적인 습관을 익힌다는 측면에서도 유익합니다.

◇ 결코 지나간 가사에 미련 두지 마라.

끊어서 읽는 습관을 들이면 래퍼들의 습관이 눈에 보입니다. 래퍼들의 습관에 자신도 모르게 빠질 정도가 되면, 그 래퍼의 신곡을 연습 안해도 자연스럽게 소화할 경지에 어느덧 이를 수 있죠.

단, 여기엔 1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결코 지나간 가사에 신경쓰지 마십시오. 1번 놓친 가사를 따라잡으려면 2배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떨어진 성적을 올리는데 드는 노력, 낙종한 기사를 따라잡는데 필요한 노력과 같은 양의 땀이 필요합니다. 설령 1번 실수하더라도 대세에 지장 없다면 과감하게 무시할 수 있는 배짱이 필요합니다.

◇ 모든 랩에는 강세가 있다.

지누션의 \"말해줘\"가 기억나십니까. 엄정화가 깜짝출연했던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97년 새삼 감탄한 부분이 있습니다. 후반부 노승환(션)의 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가사 볼까요.

\"날 믿어줘! / 느껴줘! / 감싸줘! / 내게 이제 네 안에서 자유롭게 풀어줘 //

날 알아줘! / 불러줘! / 받아줘! / 내게 이제 내 안에서 자유롭게 기대줘 //

하늘에서 보내준 우리 사랑을 / 이룰 수 없다면 / 나는 그 아픔으로 미쳐버릴 거라면 /

알 수 있겠니? / Oh! / 그렇다면 / 이제 그만 받아줘 나의 사랑을! /

내 마음속 깊은 보석 같은 사랑을 / 니 앞에 있는 여기 나의 사랑을 /\"

\"믿어줘, 느껴줘, 감싸줘\"라며 짧게 툭툭 끊어치던 노승환은 갑자기 \"하늘에서~\"부터 뒤로 갈수록 강세를 올리는 수법을 사용합니다. 앞보다 뒷부분에 더 강세를 줘 랩을 한다. 서태지의 \"난 알아요\"에 익숙하던 97년만해도 충격이었죠.

모든 랩에는 강세가 있습니다. 서태지처럼 주로 앞에다 둘 수도, 지누션의 \"말해줘\"처럼 뒷부분에 둘 수도 있습니다. 김진표나 CB MASS 등 고난도 래퍼들은 중간중간에 말장난을 치면서 엇박자를 넣기도 하죠. \"2000 대한민국\"에 실려 주목 받은 씨비매스의 \"나침반\"을 보겠습니다.

\"변화를 원해 / 좀더 진실한 인간이 되길 원해/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길 바래 /\"


첫구절은 한숨에 재빠르게 읽어내려가 버립니다. 다음 구절부터는 또박또박 끊어읽으면서 끝구절 \"애\" 발음에 액센트를 넣고 있죠.

강세는 앞서 말씀드렸던 반복구와도 관련 있습니다. 자주 사용하는 어구에 강세도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가사를 유의 깊게 살펴보시라고 말씀드린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부르고 싶은 가사를 보면서 꼼꼼히 반복구, 강세, 쉼표를 표시해두세요.

◇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百戰百勝)

이승환의 발라드를 김건모식으로 부르면 안 되겠죠. 마찬가지로 래퍼들도 나름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때론 장기와 특징이 달라 좁디좁은 힙합 세계에서 래퍼들이 서로 비난과 욕설을 퍼붓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느낀 래퍼들의 특징을 말씀드려볼까요.

조PD는 섬세하고 미묘한 편입니다. 부르기 결코 쉽지 않죠. 이정현의 백보컬로 유명한 \"피버(fever)\"가 그나마 쉬운데, 이 노래도 초당 내레이션 양(量)이 많아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 힌트 한가지. 일단 노래방 기계의 속도를 한 템포만 줄이세요. 반주만 들을 땐 다소 느리지만 일단 랩을 시작하면 늘어지진 않습니다. 그만큼 초당 노래 가사가 엄청나게 많다는 뜻이지요.

김진표는 노랫말을 가장 자연스럽게 쓰는 래퍼입니다. 예전 랩들엔 억지로 라임(rhyme·압운·押韻)을 만들어 듣기 부자연스러운 노랫말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오버그라운드의 가사에선 종종 이런 흠이 눈에 띕니다. 하지만 김진표의 노래를 가사집을 보며 듣다보면 \"아!\"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천의무봉(天依無縫), 자연스러움 그 자체입니다.

\"이젠 서서히 끝이 끝이 보여 / 너무 빨리빨리 와버렸어 / 시원하게 웃는 / 아무 티 없는(사랑해 그리고 생각해)\"이란 가사를 보면 그 짧은 순간에도 반복(끝이 끝이), 각운(어/여, 는) 등 각종 화려한 특기가 펼쳐집니다.

씨비매스는 우리나라 힙합가수 가운데 가장 박력있는 랩을 구사합니다. \"나침반\"이라는 노래를 듣다가 \"한국도 미국 본토 못지 않은 힙합을 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를 때도 강세를 확실히 줘야 한다는 점 잊지 마세요. 단 씨비매스는 지금 노래방에 있는 랩 가운데 가장 고난도에 속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우선 박자를 늦추고 연습하는 편이 좋습니다. 현재 제가 도전하고 있는 곡이기도 하지요.

허니 패밀리는 래퍼들의 억양과 스타일이 뚜렷합니다. 이 때문에 각각의 특징에 주목하면 부르기 무척 흥겹습니다. \"1999 대한민국\"의 \"우리 같이 해요\", 1집의 \"남자 이야기\" 등을 추천합니다. 특히 여성 멤버가 있어 남녀 함께 부르기도 좋습니다.

이처럼 래퍼들에게도 그들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앨범을 들을 때 한 래퍼가 다른 래퍼와 어떻게 다른 지에만 눈 돌려도 쏠쏠하게 챙길 수 있는 것들이 꽤 많습니다. 가리온·주석·갱톨릭·SIDE B 등 클럽 \"마스터 플랜\"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을 못 다뤄 아쉽습니다.

요약하자면 \"노래를 반복 청취하며 강세, 숨쉴 틈, 특징 등에 주목해야 한다\" 정도가 될 것 같네요. 도움이 되셨는지요. 다음번엔 독자님들이 보내주신 질문과 힌트를 모아 실전 Q&A로 꾸며보겠습니다. /김성현 드림 danp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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