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뷰터 Daytona의 2020년 힙합 앨범 To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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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4-09 14:44:14

긴 말 않겠습니다. 좋은 앨범이 너무 많았던 2020년, 피와 살을 깎는 고통으로 추려봤습니다. 

 

Don Malik - 선인장화: MALIK THE CACTUS FLOWER

 

 

붐뱁 래퍼들에게 가장 따라 붙는 낙인은올드하다는 점입니다. 어째서 붐뱁과는 거리가 먼 시대에 태어나 붐뱁 하는지에 대해 가끔씩 취재하다시피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특정 스타일을 구사하는 데에는 거창한 이유 따위는 없을 것이라 봅니다. 그냥 좋아서 하는 것일테고, 관건은 동기가 아니라 결과물이죠.

 

그런 의미에서 Don Malik 앨범은 무결점입니다. 어느 하나 약간의 실수도 없이 힙합의 가장 정석적인 정서를 작사적 창의력으로 발현시킵니다. 결국 힙합 앨범에 필요한 건 딱 두 가지입니다. 좋은 랩과 좋은 비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Red’, ‘전염’, ‘얼마나같은 트랙들을 듣고 있으면 라임의 치밀함, 자연스러운 플로우, 그리고 디테일한 비트에 감탄하게 됩니다.

 

Lil Cherry & GOLDBUDDA - CHEF TALK

 

 

선인장화가 뿌리로 돌아가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면, ‘CHEF TALK’은 하늘 위까지 올라가 구름을 헤집고 다닙니다. Dakshood YTG의 기상천외한 비트와 Lil Cherry GOLDBUDDA의 즉흥적인 퍼포먼스는 올해의 가장 설명이 안되는 중독성을 보여줍니다. 마구 웅얼거리다가, 소리를 지르다가, 나른하게 떠다니다가도, 바로 정신 나간 듯이 머리를 흔들게 만드는 종잡을 수 없는 음악입니다.

 

아방가르드한 형식미는 가히 초자연적인 감상을 가능케합니다. ‘하늘천따지 1000 Words’는 그 분위기만으로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본토의 현지화가 원동력인 국내 힙합에서 진정 전혀 레퍼런스가 없는 듯한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이게 랩의 어느 하위 장르에 속해있는지를 말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신나게 들었으니 아무 상관 없지만.

 

B-Free - FREE THE BEAST

 

 

혁신은 언제나 완전히 새로울 필요없습니다. 래퍼런스가 있어도 그것을 어떻게 본인의 것으로 만드는지가 관건인 게 결국 힙합 장르의 전통이자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 명제에 충실하게 ‘FREE THE BEAST’는 본토의 멤피스를 팔레트로 활용해 극도로 회화적인 세계관을 그려낸 앨범입니다.

 

어둡고 스산하게 조여드는 비트와 B-Free의 짐승 같이 울부짖는 랩,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층 더 심연으로 끌어들이는 지저분한 믹싱은 올해 가장 몰입도 있는 퍼포먼스였습니다. 물론 가끔은 믹싱이 너무 과하게 투박하고 몇몇 게스트가 감상을 해치는 경우도 있었으나, ‘FREE THE BEAST’는 멤피스 사운드에 창의적인 편곡과 뛰어난 랩 퍼포먼스로 한국 힙합에 한 획을 그은 작품입니다

 

Khundi Panda - 가로사옥

 

 

앨범은 청자를 창작자의 세계로 발을 들이게 하는 매개체입니다. 그 세계가 순간 순간의 감정일 수도 있고, 래퍼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 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Khundi Panda가로사옥은 이 명제의 한계를 시험합니다. 물론 Khundi Panda의 랩과 다양한 프로듀서들이 제공해준 비트까지 음악적 완성도는 당연하고요.

 

Khundi Panda는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찾는 과정을 옆으로 뉘인 집 (가로사옥)을 탐험하는 일대기로 형상화 시켜서 앨범의 전개를 끌어갑니다. 듣기 불편할 정도인 열등감과 깨달음의 성취감까지 모든 것을 보여줍니다. 기술적 내공을 완벽히 익힌 래퍼가 내러티브를 장악하여 청자를 멱살 잡고 끌어가는 긴박함은 지적 유희를 제대로 자극합니다. 올해의 가장 즐거운 철학적 경험 중 하나였습니다

 

넉살 - 1Q87

 

 

2020의 어지러움은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새로운 10년을 맞는 우리들로서는 평생을 기억할 혼돈이었고, 학자들에게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 기폭제로써 연구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1Q87은 그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넉살의 앨범입니다.

 

물론 ‘AKIRA’ 같은 트랙이 동명의 사이버펑크 애니메이션을 모티프로 2020의 서사를 보여줬지만 1Q87은 결국 넉살의 개인 서사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넉살이 자신의 음악적 타협과 그를 둘러싼 논란을 다루는 과정에서 혼란 속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합니다. 앨범의 주를 이루는 전자음이 2020의 배경음악이라면 넉살의 가사는 그 속을 살아가는 개인을 대변합니다. ‘작은 것들의 신에 이어서 ‘1Q87’ 역시 성공적으로 내면 서사를 외부로 확장했습니다.

 

키츠요지 - Sitcom of the Year

 

 

, , . 절대로 힙합과 떼놓을 수 없는 소재입니다. 은 삶의 모든 것을 건드립니다. 돈 때문에 사랑을 잃거나 덕에 얻기도 하고, 사치의 향을 맡아보거나 가장 비루한 밑바닥을 맛보기도 하죠. 키츠요지의 ‘Sitcom of the Year’는 그 비루한 시궁창을 겪게 되는 자의 소름돋는 비명 같은 앨범입니다.

 

많은 트래퍼들이 막연히 성공에 침 흘리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키츠요지는 망해버린 현주소에 분노하는 배신 당한 위버맨시를 보는 듯합니다. 분명히 짧게 맛본 쇼미더머니의 성공은 자기 확신을 줬지만 탈락 이후에 커튼이 걷히듯 다시 찾아온 현실은 너무나 초라하죠. 성공 서사가 클리셰인 장르에서 하강 서사를 그리며 광기를 보여주는 처절한 오토튠은 정확히 왜 그가 돈에 미쳐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미친 집착에서 나오는 독기는 그를 언젠가 반드시 정상의 반열에 올려놓을 것입니다.

 

Nitro Logun - S.O.S

 

 

이모 랩은 본토에서도 상당히 일찍 동력을 잃은 상황입니다. 장르를 대표하는 거성들의 이른 부고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는 국내 씬에서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듯합니다. 씨잼의이후로 이렇다 할 변혁을 일으킨 앨범은 없었고, 본토의 레퍼런스는 기댈 것이 별로 없는 실정입니다.

 

그 와중에 올해 데뷔한 Nitro Logun의 데뷔 앨범 S.O.S.는 상당히 반갑습니다. 프로듀서 Alive Funk의 주도로 설계된 빵빵한 밴드 사운드를 위시한 이번 앨범은 뛰어난 디테일의 사운드, 탄탄한 멜로디, 그리고 다양한 주제의 가사들로 알차게 구성된 수작입니다. 이모랩 스탠다드에 전자 음악, 트랩, 인디 록 등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빌려 재미있는 감상을 선사합니다.

 

Pento - 4

 

 

Pento는 한국 힙합을 논할 때 뺄 수 없는 래퍼입니다. 과장 좀 보태서 아마 한국 최초로 본토를 완전히 탈피한 독자적인 색을 구사한 래퍼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년에 10주년을 맞이한 그의 2 Microsuit는 몸 담고 있는 Salon 01 크루의 음악답게 전자음악과 힙합의 빈틈 없는 조화를 보여주는 고전입니다.

 

그런 Pento가 일곱 트랙의 짧고 굵은 정규 4집으로 귀환했습니다. 미묘하게 엇박자를 깔끔하게 타는 랩과 독특한 프로덕션, 그리고 끈적하게 달라붙는 훅들은 20분 남짓한 짧은 런닝 타임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모두 담아냅니다. 올해 다시 활동을 예고한 Salon 01 멤버들과의 반가운 조합은 덤입니다. 오랫동안 활동한 Pento지만 ‘4’만큼만의 역량이 앞으로도 나온다면 새로운 십 년을 책임질 큰 축이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Loxx Punkman x Conda - Grind House-Explosive Show

 

 

Loxx Punkman은 씬에서 가장 저평가 받는 래퍼 중 하나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작품을 발매했던 래퍼고, 작년에 Deepflow의 창작 지원 프로젝트 Boiling Point의 일환으로 The Red Apple을 발매하고서는 인지도가 많이 올라갔습니다. 간단한 붐뱁 리듬에 우직하게 먹통 같이 때려박는 랩은 여러모로 충격적인 퍼포먼스였습니다

 

이번에는 프로듀서 Conda와 손을 잡고 상당히 다양한 시도를 한 앨범을 들고 왔습니다. 평소에 구사하던 스타일을 추구하는 CD1과 색다른 프로덕션을 채택한 CD2로 나뉜 이 앨범은 Loxx Punkman이 더욱 성장해서 돌아왔음을 증명합니다. 곡 별로 뚜렷하게 다루는 주제와 그를 뒷받침하는 시원한 문장력, 엇박과 정박을 마구 넘나드는 플로우, 독특한 악기와 곡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앨범은 청자를 만족시킴에 손색이 없습니다.

 

BILL STAX - DETOX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힙합씬이지만, 그 중에서도 BILL STAX의 행보는 두드러질 정도로 파격적입니다. 대마 합법화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의 사상은 DETOX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대마의 두 가지 계열인 SATIVA INDICA로 나뉜 구성은 물론 커버에도 대마초를 대놓고 박아놓은 것부터 자명합니다.

 

하지만 몇몇에게 거부감으로 다가올 수 있는 외적 요소는 결국 안에 있는 음악이 불식시킵니다. 어둡고 음산한 트랩부터 밝고 희망찬 바운스, 서정적인 이모 넘버까지 DETOX는 통일성과 다양성을 모두 챙긴 최고의 힙합 패키지 입니다. 게다가 재밌는 표현과 간드러지게 실려있는 대마초에 대한 오마주는 BILL STAX의 진정성은 물론 유일무이한 힙합 앨범으로서의 개성을 구축합니다. 반항적인 사운드가 극도로 사실적인 묘사와 어우러지는 이 시대의 새로운 고전.

 

BLNK - FLAME

 

 

Legit Goons의 정신적 지주가 뱃사공이라는 공식이 불문율이라면, 그들의 음악적 정체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멤버는 BLNK일겁니다. 나른한 비트에 흥얼거리는듯한 멜로디, 그리고 비음을 활용한 랩은 Legit Goons 앨범들에서 빠지지 않고 그 존재감을 피력했습니다.

 

BLNK의 새로운 신보 FLAME은 그런 래퍼로서의 아이덴티티에 확실한 사운드까지 사로잡습니다. 아프로비트의 원초적인 리듬과 훵크적인 색채를 잔뜩 머금은 이 앨범을 통해 주일우라는 한 인간이 청춘을 되돌아보며 여러 상념을 정리합니다. 사색적인 느근함부터 고무적인 에너지까지 두루 갖추는 FLAME Legit Goons의 이름 아래 나온 앨범 중에서도 손꼽히게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BLNK이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을 보여준 기념적 홀로서기입니다.

 

Deepflow - FOUNDER

 

 

변절(變節). 이 두 글자는 Deepflow라는 이름을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낙인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다크 나이트의 명대사처럼, 영웅에서 악당이 되어버린 그는 이제 전작양화의 성취감이 일종의 족쇄처럼 느껴질겁니다. 언더그라운드를 수호하겠다고 자처한 Deepflow는 이제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힙합 팬이라면 당연히 느낄 수 있을 법한 배신감이지만, ‘FOUNDER’는 그 모습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Deepflow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Van Ruther가 주도한 소울 밴드 세션의 진한 느와르적 분위기와 묵직하게 이어지는 라이밍은 적을 너무 많이 만들어버린 노련한 대부의 주름살을 연상시킵니다. 여전히 응당 불편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언제부터 느와르를 정의 타령하면서 봤습니까? 배우들 간지 챙기는 연기 보는 맛이지.

 

unofficialboyy - drugonline

 

 

unofficialboyy는 고등래퍼 출신 중에서 눈부신 발전을 보여준 래퍼입니다. 수많은 소년 소녀 래퍼들이 휘발성 영광에 취해 사라질 동안 이름을 바꿔가면서 계속 음악적 탐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프로듀서 404NOTFOUND의 박자를 안 가리는 싸이키델릭한 비트 위에 퇴폐적인 톤으로 쏟아지는 그의 랩은 오디션 프로의 소년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건강에 좋지 않은 삶에 허우적대는듯한 페르소나는 뜨기 직전 고뇌하는 라커의 모습 같습니다.

 

친한 음악적 동료들과 함께 약에 절어있는듯한 오디세이를 펼치는 듯한 drugonline은 단언컨대 올해의 가장 충격적인 앨범 중 하나였습니다. 겉멋 뒤에 숨겨진 냉소적인 강박을 담아내는 뛰어난 문장력과 계속 변화하는 플로우는 unofficialboyy를 당당한 국힙 씬의 현역으로 자리잡게합니다.

 

Ourealgoat - 가족애를 품은 시인처럼

 

 

Youtube를 쓸어 버린 트랩 신예 Ourealgoat는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마약상을 연상시키는 무거운 트랩 비트와 허스키한 톤은 생각보다 평범한 그의 정체성과는 안 맞습니다. 하얀색 티셔츠 하나 걸치고 단정한 머리에 랩하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90년대에 비트 하나 깔고 랩 하나 죽여주게 잘하겠다는 거리 래퍼의 태도와 더 비슷합니다.

 

이런 독특한 요소의 병치는가족애를 품은 시인처럼를 뛰어난 작품으로 보이게합니다. 동년배 트래퍼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잘 설계된 라임과 독특하면서도 추상적인 단어 선택, 그리고 시종일관 타이트한 플로우는 묘한 매력입니다. 토해내듯이 랩하는 그의 모습은 진정 목숨을 걸고 음악하는 급박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기본기가 이렇게까지 탄탄하면 못 이뤄낼 것이 없습니다

 

Rakon - Rock On Blink

 

 

Rakon을 처음 알게된 건 The Quiett과 염따가 진행하는 네이버 나우 라디오 쇼 Rap House를 통해서였습니다. 바로 이목을 끄는 갱스터한 외모, 그에 맞는 듯 안 맞는 듯한 매혹적으로 허스키 한 톤은 바로 그의 작업물을 찾아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양질의 ep를 계속 내던 Rakon은 올해 지금까지의 작업물 중 가장 긴 여덟 트랙으로 무장한 Rock On Blink로 돌아왔습니다.

 

오르간이 두드러지는 라틴 넘버용케를 제외하고서는 평범한 악기 구성을 보여주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멜로디 메이킹과 감탄스러운 보컬 퍼포먼스는 Rock On Blink를 몇 번이고 다시 듣게 만듭니다. 싱잉을 이렇게 자유롭고 능숙하게 다루는 Rakon은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이를 낭비 없이 십분 발휘합니다. 정규 앨범이 아닌데도 이 정도의 역량을 보여준다면 1집은 얼마나 대단할지 기대됩니다.

 

Honorable Mentions

 

Alive Funk - DI-ANA

Azikazin Magic World - Spaceship for Bad Dreams

가오가이 - 열혈

BeWhy & Son Simba - NEO CHRISTIAN

키츠요지 - 돈이 다가 아니란 새끼들은 사기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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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2-21 10:53:54
Nitro Logun - S.O.S 지금 들어보고 있는데 상당히 좋네요. 드럼 활용이 너무 좋은데 Alive Funk님 프로듀싱이었군요.
WR
2021-02-21 19:01:11

네네 밴드 사운들 꽉 채워서 잘 활용하셨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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