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심야 - 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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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1-19 12:46:16

 

 

제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Ratatouille는 명성이 추락한 레스토랑을 요리 잘하는 생쥐가 부흥시키는 이야기입니다. 뛰어난 예술의 출처는 어디에서나 올 수 있다는 메시지와 환상적으로 표현된 파리의 풍경은 제게는 언제나 설렘으로 남아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본 영화이지만, 나이를 좀 먹고 다시 보니 더 깊은 구석들도 보였습니다. 예술의 권위를 굳게 신봉하며 냉혹한 평가로 유명한 평론가인 등장인물 에고의 독백이 그 부분입니다. 인생 요리를 만들어낸 주방장이 생쥐임을 알게 된 에고가 서술하는 리뷰는 아이들의 애니메이션에서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명문입니다.

 

에고는 평론가가 실질적인 위험을 감수하는 경우는 단 하나라고 규정합니다. 바로 새로움을 변호할 때입니다. 평론이야말로 모두가 욕을 하고, 잘못되었다고 하는 새로운 예술가의 탄생을 앞장서서 지켜낼 의무가 있다는 것이 핵심적인 의미입니다. 제가 평론가를 할 만큼 교양 있고 잘 나지 못하지만, 음악으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항상 염두하고 있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 의무에는 하나의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단순히 새로워서 변호하는 것이 아닌 실질적으로 제가 청자로서 좋다고 생각해야 진정성 있는 리뷰가 나옵니다. 제 취향을 속이면서 새로움을 감싸고 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원칙적이고 불순한 저의가 있는 추잡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심야의 첫 정규 앨범 Dog는 주저하게 됩니다. 선뜻 대단하다고 추켜세우기에는 부족한 점이 뚜렷하고, 그렇다 해서 혹평하기에는 여러 새로운 시도와 진심으로 듣기 좋은 곡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택적인 변호 정도에서 그만두어야 하는 답답한 작품입니다.

 

Dog는 일관된 음악이 담겨 있는 앨범이 아닙니다. 오히려 유기성이라고는 토씨도 느껴지지 않을만큼 사운드가 사방팔방을 다 건드립니다. 기본적으로 전자 음악의 영향이 깊지만 참으로 괴상한 출처의 샘플들이나 상상하지도 못한 곡 전개 등이 즐비합니다. 소리적으로 이 앨범은 단 한번도 청자에게 쉴 틈을 주지 않습니다. XXX에서 몸 담으며 만든 작품들은 소리의 질감으로 청자를 압도했다면 Dog는 특정 소리를 앞세우지 않고 계속 주도권을 분산시켜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듭니다. 250, ccr, Maalib, Simo, DJ Soulscape 등등 내로라하는 프로듀서들이 최대한 독특한 비트들을 제공한 듯합니다.

 

Dog 같은 경우 오히려 유기성을 이렇게 대놓고 버린 전략은 유효합니다. 실현하려다 실패한 것이 아닌 애당초 목표가 아니었으니 더 당당하게 밀어붙이는 느낌이 납니다. 이런 다이나믹한 팔레트는 듣기에도 재밌고 곡마다 개성을 뚜렷하게 부여합니다. 하지만 이런 소리들을 묶어서 곡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은 래퍼의 역할입니다. Dog는 어쨌건 위에 상기한 프로듀서들의 앨범이 아니라 명백히 김심야의 이름을 걸고 나온 앨범입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Dog는 완전히 성공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곡을 들었다기보다는 사운드 콜라주를 들은 인상을 주는 곡들이 꽤 많습니다. 김심야는 평소의 칼 같은 예리함을 대신해 더 자유분방하게 곡을 접근합니다.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고 이는 온전히 창작자의 영역이니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저도 그 결과를 항상 좋아할 필요가 없는 만큼, 그 과정에서 김심야의 음악을 매력적으로 만들던 요소들이 사라졌다고 봅니다.

 

이런 느슨한 곡 구조와 제대로 다듬질 된 것 같지 않은 디테일은 앨범 초반부에서 특히 많이 눈에 띕니다.

 

앨범의 시작인 Drive Slow부터 이런 면이 조금씩 보입니다. 어슬렁거리듯이 깔리는 신시사이저와 평소와는 다르게 김심야의 느릿하고 끈적한 플로우가 매력인 곡입니다. 벌스가 끝날 때마다 조용한 비트와 상반되게 시끄럽게 난입하는 신스는 지루할 수 있는 분위기를 환기시켜줍니다. 특히 피쳐링한 Rad Museum이 곡의 후반부에 아름다운 보컬 아웃트로를 장식하는데, Blonde에서의 Frank Ocean이 연상되기도 하는 멋있는 대목이었습니다.

 

근데 이런 느린 플로우를 구사하는 김심야가 가끔씩 박자를 완벽히 소화하지 못하는 구간이 있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기괴할 정도의 템포도 달궈진 나이프가 버터 자르듯이 매끄럽게 탄 김심야인지라 더 당황스러웠습니다. 삶의 반복성과 거기서 오는 회의감을 다루는 가사인데, 인생의 파도를 직시하다는 구간에서는 속도감 없이 박자를 우겨 넣는 모습이 잠깐 보입니다. 안 그래도 느려서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되는 곡인데 굉장히 거슬립니다. 랩 피지컬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 같은데 몇 회차를 돌려도 어색하게 들립니다.

 

이어지는 0 Balance는 정말 좋게 들었습니다. 불교 음악이 연상되는 괴기스러운 보컬 샘플로 시작하는데, 김심야의 훅이 페이드인 하면서 비트가 떨어질 때 쾌감이 어마어마합니다. 끝의 두 단어를 강조하는 벌스는 훅으로 쓰이는데, 살짝 긴 길이에도 Elon Musk 등의 단어 선택도 흥미로워서 기억에 남습니다. 약간의 속도감이 있는 김심야의 래핑도 전 트랙에 비해 훨씬 깔끔합니다.

 

하지만 이 트랙의 묘미는 후반부에 휘몰아치는 다양한 소리의 향연입니다. 상대적으로 악기가 한번에 많이 나오지 않아 총 볼륨은 작지만, 보컬 샘플이나 톰톰 드럼 같이 예상 못한 악기들이 나오면서 굉장히 흡인력 있는 감상이 완성됩니다. 청자만을 위한 클럽에서 화려하게 믹싱하는 DJ가 음악을 틀어주는 듯합니다. 확실히 캐치한 초반부와 다양한 시도를 한 후반부가 탄탄한 곡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이 앨범의 약점은 이어지는 두 트랙에서 다시 보입니다. 아마 앞서 말한 전반적인 단점이 가장 부각되는 트랙은 Does It Matter입니다. 기계적으로 변조된 보컬 샘플과 일정하게 내려치는 드럼은 인상적입니다. 그 외에 하수들을 디스하는 김심야의 허를 찌르는 문장력 모두 좋았지만, 뭔가에 도달하려는 듯 하는 곡이 30초 가량 이후 갑자기 끝나버립니다. 만들다 만 데모곡을 믹싱만 제대로 한 다음 앨범에 넣어놓은 인상입니다.

 

Okay, Dial It Up, Call Me는 특히 Dog에서 별종 같은 트랙입니다. 처음에 짧은 벌스를 짠 이후 제목을 계속 반복하는데 평소라면 이 캐치한 훅이 곡의 구조를 잡아줘야 합니다. 하지만 별다른 비트의 변주도 없이 이를 곡이 지루해질 때까지 반복합니다. 균형이 무너진 모습입니다. 글리치한 신스와 찰지다는 표현으로 밖에 설명이 안 되는 김심야의 훌륭한 퍼포먼스가 있어 특히 더 아쉽습니다. 난해한 초반부에서 비교적 직관적인 트랙인데도 다른 의미에서 엉성해 별 감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실망스러운 전반부는 무색해질 정도로 Dog는 중반부부터 한번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Butting on the Glass의 공간감을 조성하는 화음과 트랜스 음악이 생각나는 전자 베이스, 그리고 가벼운 드럼이 연출하는 분위기가 압권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삶을 방향을 비관하는 김심야의 가사와 잘 어울리기도 하고 Drive Slow에서 보여주려는 묘한 엇박이 여기서 훨씬 깔끔합니다. 특히 지저분한 베이스로 비트가 바뀌며 들어올 때 같이 페이드 인하면서 토하듯이 뱉는 김심야의 랩은 탄성이 나왔습니다. 피를 튀기는 김심야의 가사와 함께 사악한 현악 신스가 추가되며 곡이 마무리되는데 Dog에서 손 꼽힐 정도로 고무적인 순간입니다.

 

 

이런 무거운 분위기가 Y2K92와 함께한 Uainrealli로 이어집니다. 록 보다는 60년대 P-Funk의 날 선 면모가 보이는 기타와 치고 들어오는 무거운 드러밍은 김심야의 곡이 맞나 싶을 정도로 투박한 매력을 보여줬습니다. Jibin의 스타카토 식 플로우가 인상적인데, 적들에게 팩트를 쏜다는 가사와 소음기 끼운 총소리가 반복되는 구절은 본 시리즈를 보는 듯한 감상을 선사했습니다. 이어지는 Simo도 비슷한 플로우로 오만한 사람들을 저격하는데, 변조된 톤이나 영어 가사의 발음이 멤피스 힙합을 연상시켰습니다. 김심야는 나머지 참여진과는 다르게 깔끔한 톤으로 위선자들을 저격하는데 뱀이 기어가는듯한 매끄러움이 있었습니다. 무슨 템포든지 소화해내는 출중한 피지컬이 보이는 대목입니다. 여기에 마지막에 기름을 부으라는 Jibin의 훅은 OutKastGasoline Dreams가 반갑게 떠오르기도 합니다. 오마주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정제와 혼돈의 한 끝 차이를 타는 박진감 넘치는 트랙이었습니다.

 

When the Right Is Wrong은 제게 모순적인 트랙입니다. 초반부에서 싫어했던 모든 점이 있지만, 프로듀서 진이 제공하는 모든 소리들이 너무 흡인력이 있어 부정할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풀벌레 소리가 짙은 밤에 여성의 숨소리, 주술적인 남성의 흥얼거림, 그리고 잔잔하게 스치는 듯한 베이스와 심벌이 고요한 섬에서의 하룻밤 같습니다. 여기에 콩가 같은 아프로비트의 드럼이 들어올 때는 원주민 주술 의식에 참여하는 것 같습니다. 김심야가 본질을 잃어버리는 듯한 씬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묘사를 하는 것도 트랙에 어울립니다. 벌스가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 같이 처리되고 마지막에 페이드 아웃 처리되는데, 김심야가 쾌락과 세속에 잠식되어가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별다른 곡 구조도 없지만 제공되는 요소들 하나하나가 너무 본능을 간질이듯이 친밀해 감흥이 없을 수 없습니다.

 

CL과 함께한 Looooose ControllaDog를 통틀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입니다. 아방가르드 프리 재즈를 연상시키는 인트로의 마구 떨어지는 스네어와 펑크 기타로 이루어진 비트, 그리고 느리면서도 포켓을 다 찾아가며 적재적소에 박자를 박는 김심야의 랩은 일품입니다. 그리고 벌스가 끝나자마자 정박으로 바뀌고 들어오는 기계적인 보컬 샘플과 멜로디는 한 대 맞은 것 같이 허를 찌릅니다. 여기에 우주적이고 편안하면서도 강렬한 신스가 얹힐 때는 소위 말하는 귀르가즘이 느껴집니다. 다시 한 번 원래의 비트로 회귀했다가 김심야가 들어올 때는 막상 두 번째 비트로 또 바뀝니다. 한치 앞도 예상이 안 되는 독특한 트랙입니다. 특히 보컬 샘플, 피쳐링한 CL의 묵직한 벌스, 그리고 신스가 맞물릴 때는 참으로 훌륭하다는 말 밖에 안 나옵니다. 제목 그대로 청자의 자제력을 잃게 만드는 트랙입니다.

 

 

Looooose Controlla 이후부터는 Dog의 가장 직관적인 곡들이 실려있습니다. Walking on Thin Ice는 서정적인 신스 멜로디와 소울 샘플이 인상적인데 드럼이 들어오는 구간부터 청량감이 충만합니다.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을 주제로 깔끔하게 랩하는 김심야와 이렇게 잘 어울리는 비트는 별로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확고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간혹 불안함은 있는지 자신의 상황를 살얼음 위를 걷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랩과 비트 모두 완벽했습니다.

 

선공개곡이었던 Forgotten 역시 직관적입니다. 고무적인 소울 샘플과 후반부의 강렬한 신시사이저는 The Life of Pablo 시절의 Kanye West가 떠올랐습니다. 능숙하게 밀고 당기는 플로우로 이제는 회의감을 떨치고 돈을 바라보는 김심야를 보고 있으면 경이롭게 듣게 됩니다. 특히 문화는 한 사람의 주도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가사는 손대현 합작에서 나온 냉소적인 화법이 더 성숙해진 소재를 전달하는데 쓰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Don’t Kill, Don’t Spill, Don’t Steal은 프로그레시브 락이 생각나는 웅장한 비트와 성악 같이 처리된 보컬 샘플이 뇌리에 박힙니다. 김심야가 마지막 단어만 던지듯이 뱉는 플로우가 귀에 꽂힙니다. 해탈을 해서 더 이상 다치지 않고 삶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듯한 가사의 내용은 김심야의 전작들을 모두 들은 사람으로서 달콤 씁쓸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에 벌스가 페이드 아웃되면서 샘플과 명랑한 드럼만이 울러 퍼지는 구간은 여운이 짙었습니다.

 

Dog는 흥미로운만큼 다듬어지지 않은 앨범입니다. 게다가 가장 문제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전반부에 몰려 배치되어 있는 점도 나름 치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팬들은 초반부에 실망하고 때문에 후반부의 감흥도 줄어든 경우도 꽤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Dog의 조악함을 변호하자면, 이런 새로운 김심야의 모습이 후반부의 더 직관적이고 짜릿한 곡들을 완성시키기도 했습니다. 배치를 떠나서 Dog는 대부분 좋은 곡이 실려있는 좋은 앨범입니다. 불꽃놀이는 불안정하고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멋있습니다. Dog에는 조금 아쉬움이 남지만 김심야의 전반적인 음악적 변화는 매우 기대됩니다.

 

Best Tracks: 0 Balance, Butting on the Glass, Uainrealli, When the Right is Wrong, Looooose Controlla, Walking on Thin Ice, Forgotten, Don’t Kill, Don’t Spill, Don’t Steal

 

Worst Track: Does it Matter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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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0-12-06 21:47:39

리뷰 잘 읽었습니다. 요즘 항상 챙겨보고 있습니다.

WR
2020-12-06 22:14:34

감사합니다!

2020-12-07 14:51:56

김심야는 아직까지도 제게 너무 난해하게 느껴지는 아티스트입니다. 이번 앨범도 너무 적응이 안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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