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ASHII (오카시) - AGA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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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9 15:42:50

 

OKASHII라는 이름을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OKASHII의 래퍼 Cold Bay를 연고전 힙합 동아리 디스전을 통해 처음 알았었는데, 이후 래퍼 RAVI가 설립한 GROOVL1N과 계약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워낙 대학 동아리에서 제대로 된 아웃풋이 없던 시기라 신기한 해프닝이었습니다.

 

Cold Bay의 음악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씬에서 상징적일 수 있는 출신이라 행보를 지켜봤습니다. 그렇게 Cold Bay가 소속이 되어 있는 OKASHII라는 크루도 어찌어찌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OKASHII는 래퍼 Cold Bay 이외에도 래퍼/프로듀서 Jeffery White와 래퍼 MASON HOME, 신명근, Raf Sandou로 이루어진 크루입니다. Cold Bay를 제외하고 뚜렷한 행보가 없었으니 이번에 발매된 크루 컴필레이션 앨범 AGATHA를 이들의 데뷔 앨범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AGATHA는 얼핏 들어서는 평범한 트랩 앨범입니다. 808 드럼과 공간감 있는 루프, 적극적인 오토튠 사용까지 힙합 팬이라면 모두 익히 알고 있을 트렌디한 음악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만약에 이러한 흐름을 근본적으로 싫어하시는 국힙 리스너라면 솔직히 AGATHA를 추천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특히 가사가 모두 영어이기 때문에 더 큰 괴리감을 유발할 것입니다.

 

하지만 AGATHA는 디테일적인 측면에서 여느 트랩 앨범과는 차별화 되어있습니다. 여기에 가장 큰 몫을 하는 게 Jeffery White의 프로덕션입니다. 기본적인 트랩 베이스에 조금은 색다른 요소로 루프를 구성하거나, 곡 구조를 실험적으로 비틀어 소소한 재미를 챙겨갑니다. 아무리 이런 사운드가 취향이 아닌 사람이더라도 이번 앨범을 보고 뻔하디 뻔한 클리셰 범벅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I see Odd Future가 생각나는 풍부한 전자 신스와 중간의 파격적인 비트 스위치, Tight의 리버브 처리되어있는 기타, Feds의 기괴한 인상을 주는 날 선 신스 루프, Blue의 흩뿌려져 있는 보컬 샘플 등등 천편일률적인 사운드를 피하고자 한 노력이 엿보이는 앨범입니다. 프로듀서 Jeffery White에게 놀라게 되는 대목입니다.

 

이런 시도가 가장 엿보이는 곡이 8번 트랙 SAVE입니다. 자연의 새소리와 함께 흥얼거리는 여성 보컬로 시작하는데 잔잔한 드럼과 함께 조용하게 시작합니다. 하나의 곡보다는 ASMR 오디오를 듣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여기에 Mason Home의 변조된 훅과 Raf Sandou의 브릿지를 지나면서 점점 풍부해지는 소리들이 Jeffery White가 들어오면서 확 퍼지는 연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SAVE는 실험성이 남긴 좋은 인상만큼 단점도 명확합니다. 앞서 언급된 Mason Home의 낮게 변조된 훅이 초반의 조용한 비트와 잘 맞물리지도 않았고 굳이 Raf Sandou의 짧은 브릿지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청각적 시도는 훌륭했으나 이 위의 래퍼들은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SAVE의 이러한 양면적인 구도가 AGATHA의 감상 포인트입니다. 독특한 비트들이 그에 걸맞는 래퍼들의 퍼포먼스로 뒷받침이 되는지가 관건입니다. 뻔한 얘기지만 당연히 이를 성공한 곡들은 좋았고, 실패한 곡들은 별로였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AGATHA는 좋은 곡들이 많이 실려있는 탄탄한 앨범입니다. 비록 보컬적인 측면에서도 프로덕션처럼 실험적인 요소가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멤버들이 모두 1인분 몫을 해내기 때문에 큰 불만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래퍼들의 상투적이라 할 수 있는 스타일이 오히려 청자들에게는 진입장벽을 낮추는 포인트일 수도 있습니다. 멜로디는 잘 짜여있고 각각의 랩 퍼포먼스도 심각한 하자가 없습니다.

 

첫 번째 곡 I see에서 멤버 전원이 참여하는데, 청자를 OKASHII의 세계로 초대한다는 내용입니다. 비록 그 세계가 정확히 뭔지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없지만 인트로의 역할을 잘 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첫 부분에 Jeffery White의 싱잉도 안정적이었고 우주적인 비트와 맞물리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형성시킵니다. 여기에 중간에 비트가 바뀌면서 환기되는 분위기는 상당한 쾌감을 줍니다. Raf Sandou의 이 죽여주는 바이브를 전파해야 한다는 훅과 성공을 위해 달리자는 Mason Home Cold Bay의 벌스들도 곡 취지와 잘 맞습니다. 마치 투어를 시작하는듯한 인상을 줍니다.

 

 

뒤에 이어지는 Tight도 비슷한 내용의 곡입니다. Jeffery White의 훅부터 알 수 있듯이 페스티벌에서 뛰고 있는 OKASHII를 묘사합니다. 캐치한 훅에 Mason Home이 이어지는 브릿지가 곡의 흐릿한 분위기를 심화시킵니다. 이어지는 Raf Sandou의 퍼포먼스도 인상적인데 멜로디컬하게 시작해서 멈블로 전환하는 플로우가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가장 마지막 신명근의 벌스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속삭이는듯한 톤 설정은 신선하고 곡에도 기여하는 좋은 선택이었지만 후반부에 오토튠으로 구사하는 가성은 심히 거슬렸습니다.

 

이렇게 랩과 싱잉의 경계를 묘하게 탈 때 OKASHII의 매력을 엿볼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Blue의 빠른 템포를 가진 Drake가 연상되는 보컬 샘플 비트와 Jeffery White의 캐치한 훅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제목의 푸른색을 하나의 테마로 엮어서 이제는 만나지 않을 이성과의 사건을 풀어내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훌륭한 곡입니다. Mason Home의 단절된 차가움과 Raf Sandou 약간은 미련이 있는 듯한 묘사가 대조를 이루며 재미있는 감상을 선사합니다.

 

 

이어지는 Calvin Serenade도 같은 맥락에서 잘 들었습니다. 훅은 평범했지만 Aphex Twin을 래퍼런스한 단어 선택이 특이했고, 벌스는 앨범 통틀어서 가장 잘 짜인 것들 중 하나입니다. 성공과 애인 아닌 애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신명근의 벌스나, 애틋해 하는 듯 하면서도 결국 미련을 버리는 Cold Bay의 벌스 모두 훅의 취지와도 딱 맞아 떨어집니다. 통통 튀면서도 부드러운 비트는 곡이 귀엽다는 인상까지 줍니다.

 

Vavatos도 좋게 들었습니다. 체명 악기와 잔잔한 기타와 어우러지면서 신비한 비트가 완성이 되는데, Jeffery White가 담담하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절박한 훅이 임팩트 있습니다. 화음도 깔리면서 더 분위기가 심화되는데, 동침하는 애인을 믿지 못하는 강박을 보여주는 Cold Bay의 벌스도 도 잘 어울립니다. 그에 반해 Mason Home의 벌스는 내적 갈등이 없어 보여서 깨는 구간이었는지라 좀 아쉽습니다. 여전히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지만 조금 더 서사적으로 다듬어질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AGATHA는 가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앨범이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한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서는 가사적인 완성도는 그다지 기대할 것이 되지 못합니다. AGATHA의 큰 단점인데, 문학적인 가사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주제적 통일성도 없을 때가 많습니다.

 

Feds가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멤버 전원의 타이트한 랩 퍼포먼스는 인상적이지만, 제목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세속적이거나 육체적인 쾌락을 쫓는 얘기만 가득하고 끝납니다. 그나마 Raf SandouRed Dot 라인이 있다만 그 표현도 갑자기 너무 뜬금없이 나옵니다. 기괴한 비트와 뛰어난 플로우로 채워진 트랙이라 결과적으로 좋게 들었습니다만 어쩔 수 없이 의아해지는 부분입니다.

 

WATTAGAIN도 같은 의미에서 아쉽습니다. 비록 Feds만큼 뜬금없지 않고 What again을 빠르게 발음한 제목에 걸맞게 훅이 이를 잘 활용하지만, 벌스는 훅의 모티프를 더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뭔가를 반복한다는 인상을 전혀 살리지 않고 그냥 던져놓고 끝냅니다. 바운스 감 있는 베이스나 캐치한 훅이 낭비되었다는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 면에서 또 다른 방면으로 아쉬운 게 Gazed On입니다. 캐치한 훅과 비트, 여유 있는 벌스와 뒤의 추임새까지 청각적으로 갖출 것을 다 갖췄습니다. 하지만 벌스는 달랑 하나 밖에 없고 훅도 2회차에서는 반절만 반복합니다. 완성된 곡이 아니라 떡잎 좋은 사운드클라우드 데모를 들은 기분입니다.

 

위 세 트랙 모두 좋게 들었지만 더 다듬어지고 신경 쓰여서 완성이 되었어야 했습니다. AGATHA는 청각적인 면을 대체적으로 훌륭하게 챙겼지만 그 이상의 무엇을 제공하는 경우는 반절에 불과합니다. 오죽하면 Gracefield 같이 Raf Sandou가 홀로 보컬로 끌어가는 곡 같은 경우, 청각적으로는 가장 맘에 안 들었는데도 가사적으로 디테일한 묘사 때문에 1회차 감상에서는 훨씬 기억에 남았습니다. 제가 듣고 있는 건 음악인데 정작 가사가 매력적인 곡이 우선 떠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곡들이 서사적으로 너무 부실한 겁니다.

 

하지만 앨범의 마무리는 확실하게 합니다. Boy TeslaAGATHA 통틀어 가장 좋게 들은 트랙입니다. 신스를 역재생한 듯한 루프와 잔잔한 기타, Raf Sandou의 벌스가 들어오면서 웅장해지는 드럼까지 고무적인 비장함을 한껏 불러일으키는 비트는 OKASHII가 얼마나 가능성 있는 그룹인지를 보여줍니다. 비록 제목과의 연결점을 모르겠지만, 속도를 핵심 테마로 선정해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려낸 가사들은 힘차고 단호합니다. 화음과 멜로디, 여운이 남는 새소리와 건반으로 마무리되는 페이드 아웃까지 기승전결이 완벽한 곡입니다.

 

AGATHA는 완벽과는 거리가 멉니다. 서사적인 측면을 제외하고서도 문법이나 조금 더 선명하면 좋았을 듯한 자잘한 단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음악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낸다는 점입니다. 소리가 다양하고 멜로디는 탄탄하며 랩도 완성도가 높은 편입니다. 이제야 제대로 데뷔를 낸 크루라는 점을 감안하면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팀입니다. 버릴 것은 없고 취할 것만이 남았습니다. AGATHA는 앞으로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게 만드는 좋은 앨범입니다.

 

Best Tracks: I see, Tight, Feds, Blue, Calvin Serenade, Vavatos, Boy Tesla

Worst Track: Gracefield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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