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MIC
헤이설Hasal - 태어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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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4 14:45:54

 

두 번째 믹스테입 [Imperfection]의 10번 트랙입니다.

 

열 시간이 넘어가는 진통에 니 정신이 자꾸 휘청대
날카로운 니 비명, 내 존재는 무기력해
아까 맞은 무통주사 효과는 끝난 지 오래
이 지옥 같은 고통이 언제 멎을진 알 길이 없네
갈수록 더 아파진단 절망적인 말이
잊으려 했던 누추한 진실을 다시 밝혔지
경련하는 니 손을 잡은 내 두 손만으론
미세한 따끔함마저 분담될 수 없다는 것
우리 아이를 함께 안은 걸 상상하며
미소 짓는 널 난 살짝 걱정스레 바라봤어
무섭지 않냐는 내 물음에 무섭다 말하면서까지
날 여기로 데려온 건 왜였을까
아마도 넌 겁먹지 않았던 거겠지
니 선택을 존중하기로 한 내 선택이
니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에서야 두렵기 시작해
난 잘 해내지 못할 것 같아, 미안해

 

가볍게 뒤척이는 니 눈동자가 가닿은 천장
아직 옹알거림조차 불분명한 니가 하려 한 말은 뭘까
난 네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니가 날 이해하기까진 얼마가 걸릴까
내가 포기한 것들을 다시 찾을 때
다 커버린 넌 어김없이 내게 안겨 부리겠지, 어리광
몇 년의 고민 끝에 널 갖기로 한 건
니 엄마의 환상 속 여럿이서 거닐던 광경
어쩌면 평생 둘만일 게 겁난 건지 몰라
솔직히 남은 날들이 훨씬 더 길 거라고 상상하면
현기증이 일었거든, 니가 도피처라서 널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내 마음은 자꾸 그땐 택할 수 있었던 다른 선택질 향해
아빠는 널 원했던 적이 없어, 미안해

 

난 여전히 너무 가볍게 흔들려
내가 굳게 딛고 서있다 생각했던 믿음들도
그저 불구경 할 뿐인 사람들이 휘두르고
폐허가 된 신념은 한 줌 재와 비웃음으로
귀 기울인 만큼 기울어지는 건
선택의 저울이 아닌 내가 디딘 땅
그렇게 귀를 막고 나 혼자 움츠릴수록
내게 허락된 공간은 사방이 막힌 빈 칸
떨어지는 게 겁나, 그 바닥은 어딜까
아득한 밑에서 바라볼 내 지금은 멀기만 해
내가 태어나 이룬 것들은 행운 덕이란 걸 알아
새로 쌓아도 여기까진 못 올 거니까
난 기어코 이곳에서 버티기로 해
몇 년 간 서랍 속에 쌓인 내 삶이 적힌 기록에
싸그리 불을 지른다면 난 어떤 인간으로 남을지
그게 두려워서 내 손으론 아무것도 버리지 못해
그래서 내게 삶은 계속 상처를 쌓는 일
지나간 고통은 잊으라고 재촉한 몸은
그때 그 절망적인 무력감은 지우지 않아서
내가 보는 미래는 그저 끔찍한 광경
앓고 나면 단단해지는 상처 말고
살이 썩어 문드러지는 병도 많더라고
그러니 괜찮을 거란 말은 제발 가져가줘
내 웃음도 사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만족한 척
이젠 나도 인간이 아닌 기계 같고
성과, 일상, 감정 전부 표준치에 맞춰
내가 죽고 나면 다같이 한마음으로 기뻐해줘
드디어 바라오던 걸 성취했다고
어차피 결국엔 다 떠나갈 뿐인
내 곁의 모두를 증오한단 걸 알아주길
내 삶은 내 삶이란 사실 자체로 비참해
아직 난 내가 태어난 걸 후회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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