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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MIC
[리뷰] 넉살 - 1Q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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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10-08 16:48:11

 

지난 3년 정도의 시간은 넉살에게 순탄치 않았습니다. VMC 집단 자체가 힙합 팬들 사이에서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혔었고 넉살은 그 중심에 있는 래퍼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전작 작은 것들의 신에서 영혼을 팔지 않겠다는 넉살의 쇼미더머니 6의 참가는 잇단 예능 출연과 함께 많은 장르 팬들에게 배신자의 행보로 비춰졌을 겁니다.

 

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비록 가장 엄격한 기준에서 VMC가 기존의 스탠스를 지켰는지는 의문이지만, 힙합 팬의 입장에서 발매되는 음악의 질적 완성도가 스탠스 같은 부수적인 요소보다 훨씬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신념으로 행동하는 아티스트나 돈을 위해 장사하는 연예인이나 전 좋은 결과물을 바랄 뿐입니다. 완성도 높은 작품들은 메시지, 출처나 유통 방식에 상관없이 어떤 방식으로든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말하는 언더 떡밥에 관하여 마음 먹는다면 족히 몇 십장은 써내려 갈 수 있겠다만, 이건 리뷰인 만큼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넉살의 이런 주변 상황이 이번 신보를 이해하는데 너무 중요합니다.

 

이번 넉살의 신보에 거는 기대감이 높지 않았습니다. TV에 자주 모습을 보이며 웃음을 챙기는 넉살은 당연히 변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것 자체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힙합 씬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신보가 과연 나오기는 하는 것인지부터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시간은 있을까, 혹은 아예 앨범보다는 상업적인 성과만을 위해 싱글만 계속 내는 것은 아닐까 등등 다양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힙합 씬의 자양분이 되는 좋은 음악을 꾸준히 내준 넉살이라는 래퍼가 이제는 사실상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1Q87은 제 걱정 아닌 걱정이 쓸데없는 노파심에 불과했음을 보여준 멋진 앨범입니다.

 

1Q87은 전작 작은 것들의 신과는 좀 다른 방향성을 추구합니다. 넉살이 보는 사회의 모습과 내적인 사념이 잘 버무려져 하나의 사유 체계를 소개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넉살은 본작에서도 사회의 부조리한 면과 인간이 가지는 본질적인 고민들을 곡으로 담아냅니다.

 

다만 작은 것들의 신은 청자와의 공감대를 전면에 내세운 앨범입니다. 각박하고 답답한 사회 속 넉살은 자신의 모습에서 청자가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듯했습니다. 여전히 잘 듣고 있는 밥값이나 타이틀 트랙에서는 이런 메시지를 대화체로 청자에게 능동적으로 전달하기도 합니다.

 

이와 달리 1Q87은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청자는 넉살에게 공감의 대상이 아니라 반박이자 설득의 대상입니다. 넉살은 1Q87에서 휩싸였던 여러 논란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변해버린 정체성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목표의 변화에 대해 성찰합니다. 회의적인 대중에게는 일종의 선언이자 공격을, 그리고 이 앨범의 진정한 청자인 자신에게는 불안함과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아티스트 외면에서 발생한 문제를 내면과의 대면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셈입니다. 전작과 달리 청자가 별로 중요한 위치를 선점하지 않습니다. ‘작은 것들의 신이 개인의 철학을 외면으로 확장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면 1Q87은 그 철학의 유효성에 회의감을 품고 다시 내면으로 시각을 축소시켜 결론을 도출해내려는 역전된 사고 회로로 전개됩니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BAD TRIP부터 이런 면을 볼 수 있습니다. 넉살은 헤이터들과 주변의 잡음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1절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흩어지는 자신의 어릴 적 친구들과의 관계를 그리면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멸종된 공룡에 비유하며 위기감을 표출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마디에서 결국 살아남아 뭔가가 되어버렸다고 시사하며 그것은 자신이 원한 걸 수도 팬들이 원한 걸 수도 있다고 합니다. 바뀐 스탠스에 관한 비판을 의식한 가사로 보이는데 2절의 도입부에서 상당히 날카롭게 대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애당초 TV에 나오는 모습이 우스울까 고민하는 것은 쓸데없고 과거의 불우함보다는 지금이 무조건 나은만큼 어차피 돌아갈 일은 없다고 못을 박아버립니다.

 

훅도 상당히 인상적인 트랙입니다. 넉살이 이렇게 샤우팅에 가까운 훅을 구사한 건 처음 들어보기도 하고 벌스 이후에 비교적 조용한 브릿지 다음에 튀어나와서인지 임펙트가 컸습니다. 주변의 혼돈을 파티로 표현하는데 피로감을 느끼며 짜증에 가까운 공격성을 드러내는지라 트랙이 시사하는 바에도 잘 들어맞습니다.

 

BAD TRIP 1Q87의 서사적 전개를 시작하는 중요한 트랙이지만 사운드방향성도보여줍니다. 전자건반 루프와 베이스로 이루어진 곡인데, 특히 2절에서는 드럼이 강력해지면서 굉장히 무거운 신스가 들어오는 구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주로 전통적인 붐뱁 비트를 즐겨 사용하던 넉살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면입니다. 넉살은 1Q87에서 이런 전자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채택합니다. 박자도 트랙마다 다양하게 설계되어 있는데 문장 구조를 흩뜨리지 않으면서 다양한 플로우로 소화하는 넉살의뛰어난 퍼포먼스는 그의 기술자적인 면모를 의심치 못하게 합니다.

 

이어지는 AM I A SLAVE에서 넉살은 전 트랙에서 표출한 공격성 뒤의 의문을 나열합니다. 전자음 루프, 배경에 있는 셰이커 같은 악기와 드럼까지 타격감이 충만해 날카로운 비트가 완성됩니다. 여기서 넉살은 분명히 성공을 향해 달려와 물질적인 풍요를 맛봤는데도 석연치 않음을 깨닫습니다. 1절에서는 의문으로 남은 것이 2절에서는 어딘가 잘못되었단 확신으로 굳혀지는 전개가 치밀합니다. 이는 1절 이후에는 오로지 AM I만 외치던 훅이 2절이 끝난 후에 A SLAVE라는 단어가 추가됨으로도 드러납니다.

 

넉살이라는 래퍼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 그림이 그려지는 듯한 뛰어난 묘사와 많은 것을 짧게 담아낼 수 있는 문장력입니다. AM I A SLAVE에서 여과 없이 드러납니다. 스테이크 칼에 반사되는 플래시의 섬광이나 금으로 된 성에서 마음으로 따는 목화는 기발한 상상력과 센스가 보이는 표현력입니다.

 

하지만 다음 트랙 WON 1Q87에 있는 다른 트랙들만큼 훌륭한지 모르겠습니다. 성공의 공허함에 길을 잃은 넉살이 맹목적 세속주의에 빠지는 개연성은 설득력 있지만 노래 자체는 단점이 많았습니다. 멤피스 특유의 사악한 비트가 잘 구현되어있고 ODEE가 제공한 훅도 멋있었지만 이 위에서 랩은 비교적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혼의 저울과 예술을 차용한 라인은 멋있었지만 알파벳 철자로 구성한 언어유희는 어색하고 그 라인은 발음까지 뭉개져 이질감이 듭니다. 특히 피쳐링한 우원재의 벌스는 각인되는 라인도 없었고 초반부의 스타카토식 플로우는 어색하고 멤피스 음악 특유의 매끄러운 그루브를 못 살렸다 생각합니다. 프로듀서 BUGGY의 역량이 십분 발휘된 훌륭한 비트인 만큼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어지는 AKIRA 1Q87을 통틀어 가장 좋게 들은 트랙입니다. 1988년작 사이버펑크 공상과학 애니메이션 AKIRA에서 제목을 따온 곡인데, 묵직한 베이스 리프와 브레이크 비트를 감속시킨듯한 드럼이 듣는 즉시 쾌감을 주는 트랙입니다. 특히 변주되는 박자와 악기들이 싸우듯이 막 부딪히는 후반부는 가히 환상적입니다.

 

신기한 건 라이브 연주가 주를 이루는 트랙이 넉살의 단어선택과 BUGGY가 주도한 듯한 신스와 합쳐져 제목에 걸맞은 근미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점입니다. 미국의 레게식 작법을 주로 활용하는 프로듀서 Salaam Remi와 무겁고 공상과학적인 분위기의 신스 사용으로 유명한 프로듀서 El-P가 협업한 것 같은 독특한 트랙입니다.

 

AKIRA의 디스토피아적이면서 세기말적인 정서는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2020년이 여러모로 어지러운 한 해인만큼 감상이 남다르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곡의 도입부에서 예로부터 종말을 상징했던 혜성과 미쳐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언급하는데 이렇게 글로 그림을 그리는 넉살의 장점을 잘 보여줍니다. AKIRA에 나오는 청소년 폭주족을 묘사하는듯한 첫 번째 벌스는 아마 현재 우리가 느끼는 짜증과 울분을 잘 대변하지 않나 싶습니다. 화자는 심적으로 다쳤지만 가해자는 불분명하고 분풀이는 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잘 대표하는 시기 적절한 소재의 표본입니다.

 

이후 2절에서는 공상과학을 떠나 주변의 세태를 담아내는데 결국 모든 것에 실증이 난 넉살은 자신을 띄운 시적인 예술을 태워버리면서 전투를 준비하는듯한 인상을 줍니다. TV의 차가운 소식들을 전하는 착한 아나운서와 뻔뻔하게 부지런한 도시의 살인자들 사이에서 일단 랩으로 다 패버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부조리한 세상에 물들어 감화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개코의 훅도 AKIRA의 감상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약간의 싱잉이 가미됐는데 넉살이 광기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개코는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일상의 무료함은 변하지 않는 기괴한 상황을 잘 연출합니다. 나아질 기미가 없는 세태에 염증을 느끼고 라떼를 마시면서 무력하게 출근이나 하게 되는 아이러니는 넉살이 보여주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잘 정리한 장치입니다.

 

 

Crack Kids (Interlude)는 그 다음 트랙 Dance Class의 전주 역할을 하는데 앞선 트랙들과는 분위기가 판이하게 다릅니다. 훨씬 차분한 분위기에 IDM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전자음이 주를 이루는데 dance class라는 단어를 느리게 변조시키고 반복합니다. 서사적인 의미는 모르겠지만 텐션을 낮추는 역할을 부드럽게 해냅니다.

 

Crack Kids (Interlude)의 비트를 이어받는 Dance Class에서는 악기가 좀 더 쌓입니다. 우주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신스가 추가되며 명상적인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묵직함을 위시했던 앞 트랙과 다르게 비교적 가벼운 스네어가 전면에 나서는 박자도 한 몫 합니다. 취한듯한 몽롱한 플로우, 필터링 비슷한 처리가 되어있는 듯한 넉살의 랩, 반복적인 훅도 이런 분위기를 위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기서 넉살은 자신의 취향과 실력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납니다. 하지만 앞선 앨범의 초반부와는 다르게 자신을 회의하는 사람들을 작정하고 부숴버리겠다기보다는 가볍게 꾸중하듯이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훈장님이 유생들에게 귀찮으니 꺼지라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특히 2절에서 기믹 래퍼들에게 자신의 동료인 Don Mills가 먼저 한 거라고 지적하는 부분은 실소가 지어졌습니다.

 

다음 트랙 연희동 BADASS’에서 넉살은 앨범의 초반부에 언급한 젊었을 적 거닐던 연희동으로 돌아옵니다. 주제의식을 더 강조하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실험성을 뒤로하고 전형적인 붐뱁 비트를 사용합니다. 훅도 90년대의 단순함을 다시 소환하는듯합니다. 어렸을 적을 회상하는 디테일이 치밀합니다. 상당히 단순한 구조의 곡이지만 전형적이면서도 기본기가 탄탄한 넉살인지라 낭비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이후에 이어지는 브라더 1Q87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차분하던 분위기를 다시 끌어올리는 바운스감 있는 비트인데, Ace Spectrum1974년작 Inner Spectrum 수록곡 I Don’t Want to Play Around를 샘플합니다. 소울 샘플의 보컬을 고무적인 분위기로 편집시키는 방식이 2000년 뉴욕을 주름잡던 Dipset 크루를 연상시키도 합니다. Los의 끈적한 브릿지와 넉살의 중독적인 훅도 신나는 곡을 만드는데 큰 일조를 합니다.

 

넉살의 날렵한 플로우가 인상적인데 그 외에도 말론 브란도를 이용해 표현하는 형제애를 다루는 가사와 바닥에 붙어있는 부가티 자동차로 보여주는 자수성가식 플렉스도 좋았습니다. Don Mills도 넉살의 속도감을 무리 없이 따라가고 Los의 유연한 플로우도 지 펑크 변주와 어우러져 재밌는 감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전혀 성장 배경이 다른 세 명이 함께 형제애를 외치는 모습이 뭉클했습니다.

 

 

비교적 따뜻한 전개를 보여준 연희동 BADASS’브라더와 다르게 9번 트랙 부터는 다시 염세적인 분위기로 돌아섭니다. BAD TRIP의 연장선과 같은 서사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가식성에 좀 더 초점을 맞춥니다.

 

그리고 다른 트랙들은 그래도 전자음을 베이스로 했을 뿐이지 딱히 구조적으로 전위적인 인상을 못 받았는데 비해, ‘는 진정으로 괴상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컴프레션이 강하게 걸려서 끈적하게 들러붙는듯한 드럼과 트랜스 영향이 느껴지는 신스, 중간 중간 글리치처럼 들어왔다가 빠지는 추가적인 전자음, 디스토션이 강하게 걸린 훅, 뭔가를 빨아드리는 듯한 효과음 등등 배경에 많은 것이 난잡하게 일어나고 있는 비트입니다.

 

약간의 강박감이 느껴지면서 넉살의 정신 나간듯한 딜리버리와 정말 잘 묻어납니다. 호불호가 심히 갈리겠지만 이 트랙은 넉살의 머릿속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같은 경험을 선사합니다. 전 좋게 들었습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경험 후에 이어지는 거울은 안도감을 줍니다. 보컬 스플라이스를 활용한 듯한 공간감 있는 CODE KUNST의 비트를 탑재한 트랙인데 절묘한 배치였습니다. 특히 전자 건반이 들어오면서 화지의 훅과 어우러지는 구간은 편안한 감상을 선사합니다. 화지는 분명 이 씬에서 따라할 수 없는 개성적인 보컬을 가진 래퍼입니다. 화음 처리나 안정적인 음정 모두 훌륭했습니다.

 

거울은 앞서 설명한 작은 것들의 신 1Q87의 차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트랙 중 하나입니다. 이 곡에서 넉살은 어린 시절 힙합에 빠지는 과정을 서술하는데 마지막 마디에서 이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을 타자화시켜 대화하는 중임이 드러납니다. 제목 그대로 거울을 응시하는 겁니다. 특히 2절에서 눈물의 염도를 조절하는 이미지를 활용한 위로의 메시지는 가슴 아려지는 표현인데, 그 말을 건넨 대상이 자기 자신이라는 점에서 넉살의 고독함을 더욱 배가시킵니다.

 

이런 넉살의 고독함은 다음 곡 너와 나에서 폭발합니다.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간절한 염원으로 치환이 되어 넘쳐흐르는 듯합니다. 넉살은 훅에서 자신 속에 자신 이외의 누군가를 들이고 싶은 마음을 드러냅니다. ‘거울에서 보여준 자기 자신과의 대화로는 충족되지 않는듯한 공허를 시인한 듯한 인상입니다.

 

또 계절을 심상으로 사용하는데 봄 여름을 과거로 그리는 것으로 보아 가을이 된 시점에서 서술한 듯합니다. CODE KUNST는 그런 가을 감성에 딱 맞는 서글픈 비트를 넉살에게 쥐어줍니다.

 

너와 나는 넉살이 지금까지 썼던 멋진 가사들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 가사들을 수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1절에서 미련과 염원의 아슬아슬한 경계와 있지도 모를 상대를 위해 비워놓은 자리, 2절에서는 훅에서 이어받는 계절의 순환 이미지를 시야를 넓혀준 사람과 비유하며 세상의 마지막에는 결국 그 한 사람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겠다 다짐합니다. 비록 오로지 사랑노래로만 해석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위 말하는 최고의 힙합 사랑 노래중 하나라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거미의 보컬도 훌륭했습니다. 감정의 과잉 없이 서정적인 CODE KUNST의 비트를 물 미끄러지듯이 소화해냅니다. 곡의 문학성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의 절제와 기억에는 남을 만큼의 존재감 사이를 능숙하게 줄타는 노련함이 보입니다.

 

이 앨범의 마무리를 짓는 추락1Q87이라는 앨범 속 수많은 고민들에 대해 답변을 정립하는 곡입니다. 결국 넉살은 이 수많은 고민들은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뻗어 나오는 두려움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성공 이후에 삶을 제대로 향유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미쳐버리는 세상 속에서 같이 미쳐버리는 것은 아닐지, 그리고 과연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등등의 고민은 결국 삶의 일부입니다. 태어나서 천천히 죽고 있는 모두는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추락하고 있는 셈입니다.

 

Don Sign의 잔잔한 기타 리프를 내세운 비트 위에서 넉살은 이런 깨달음을 차분한 플로우로 풀어놓습니다. 여러 촌철살인의 라인들이 많이 보입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거위 같이 도마 위에 올린 대중, 죽음 이후에 묻힐 곳에는 금시계를 놓지 말라는 당부 등등 넉살의 문장력이 십분 발휘됩니다. 특히 모든 벌스의 마지막 두 마디를 통일시켜 주제 의식을 꾸준히 환기시키는 것도 곡의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피쳐링한 DeVita의 훅도 재치 있게 삶의 우여곡절을 Rhythm Blues로 나누는 언어유희와 뛰어난 보컬 퍼포먼스가 합쳐져 멋들어집니다. 특히 끝의 가성 처리는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글의 전반부에서 밝혔듯 1Q87작은 것들의 신과는 반전된 방향을 보여줍니다. 외면을 향해 긍정의 메시지를 전파하지 않습니다. 결론은 긍정적일지라도 결국 내면을 향해 던지는 부정적인 의문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결국 청자인 저는 같은 것을 얻어갑니다.

 

신의 노여움을 사 언덕 위로 계속 굴러 떨어지는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에 처했던 시지프의 신화는 익히 들어보셨을 겁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작가인 알베르 카뮈는 저서 시지프의 신화에서 이 그리스 신화를 통해 인간 존재를 고찰합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산정(山頂)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카뮈는 삶이란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음을 역설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조리란 결국 삶의 허무함을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라고 역설합니다.

 

우리는 공허한 삶이 던지는 시련에 맞서 용기 있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 원동력은 신일 수도, 신조일 수도, 철학일 수도, 혹은 동료나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넉살은 1Q87에서 추락을 하며 멋지게 비행하는 모습으로 앨범을 마무리 짓습니다. 이미지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조용하고 결기 가득한 정진의 의미로 해석됩니다.

 

작은 것들의 신의 넉살이라는 래퍼는 변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인간 이준영이 변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 사람의 음악을 들으면서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습니다.

 

훌륭한 앨범이었고 오랜만에 작품을 내놓은 넉살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Best Tracks: BAD TRIP, AM I A SLAVE, AKIRA, 연희동 BADASS, 브라더, , 거울, 너와 나, 추락

 

Worst Track: WON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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