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담예 (DAMYE) - The Sandwich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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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0 16:27:04


담예라는 아티스트는 작년의 Life’s A Loop 앨범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상당한 호평과 함께 떠오르는 신인으로 각광 받았는데 충분히 그럴만했습니다. 보컬과 랩을 모두 소화하면서 스스로 프로듀싱까지 하는 역량도 흥미로웠고 첫 정규 앨범 Life’s A Loop도 여러 면에서 재능이 엿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비트의 뛰어난 완성도와 작가주의적인 테마의 구축까지 담예는 보여줄 것이 많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Life’s A Loop은 수작이라 하기엔 몇몇 부족함이 보였습니다. 지나치게 늘어지는 분위기, 삶의 순환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담아내지 못한 문장력, 그리고 탄탄한 멜로디의 부족과 느슨한 곡 구성 때문에 각인되는 트랙이 몇 없었습니다. 랩과 보컬을 모두 소화하는 유연성 역시 분명 강점이지만 둘의 경계가 너무 흐릿해 제게는 이도 저도 아닌 퍼포먼스로 들렸습니다. 충분한 역량이 방향성 때문에 빛을 못 본 전형적인 케이스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신보 The Sandwich Artist는 모든 면에서 Life’s A Loop에 비해 뛰어납니다. 비로소 담예의 진가가 담긴 앨범이 나왔습니다.

 

The Sandwich Artist는 담예의 장점을 부각시키면서 전작의 단점을 모두 과감하게 쳐낸 작품입니다. 노래와 랩을 좀 더 명확히 구분해서 구사하며 적재적소에 다양한 효과와 변주로 색을 입히고 사운드는 일관성을 챙기는 동시에 더 다양한 장르 들을 끌어와 다채롭게 구성했습니다.

 

전자재즈와 어쿠스틱 팝에 치중되었던 전작에 비해 The Sandwich Artist는 펑크, 신스팝, 일렉트로니까, 드림팝 등등 다양한 색채를 보여줍니다. 템포도 다양하게 배치해 앨범 진행에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완급조절합니다.

 

컨셉도 담예의 비교적 가볍고 일상적인 작사 방식에 맞게 잡았습니다. ‘The Sandwich Artist’는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샌드위치 가게에서 알바하는 담예의 해프닝과 고민들을 담아냅니다. 트랙들의 제목들도 구인구직, 점장님, 테이블 닦이, 영업종료 등등 비정규직하면 생각나는 익숙한 표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떤 추상적인 개념이나 가치관을 전달하려고 시도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 트랙 구인구직부터 이런 강점이 부각됩니다. 가스펠과 소울의 영향이 짙은 화음과 코러스 처리, 빠른 템포의 베이스와 클랩 리듬이 상당히 고무적이면서도 신나는 곡을 완성시킵니다. 샌드위치 가게에서 알바를 하게 된 이유를 그리는 트랙인데 일상적이면서도 디테일한 표현들이 밝은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져 좋게 들렸습니다. 톤도 노래와 대화체를 오고 가는 것도 재미있었고 화음도 잘 배치가 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고 기억에 남는 트랙이었습니다.

 

미디로 작업한 건지 라이브 세션으로 작업한 건지 모르겠는데 연주가 상당히 풍부한 소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는 앨범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강점인데, 특히 구인구직암낫욜쏜의 베이스는 연주 세션을 듣는 것 같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루는 담예의 음악적 기량을 잘 보여주는 면목 같습니다.

 

테이블 닦이는 비교적 차분하지만 템포가 그래도 빠른 편이라 마찬가지로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잔잔한 기타와 캐치한 신스 루프가 서로 잘 묻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중간에 랩 부분은 디스토션과 급박한 변주가 들어오면서 확 몰입됩니다. 알바를 하면서 하는 실수를 자책하는 트랙인데 눈에 들어오는 문장 없이도 세세한 디테일 덕에 민망하지 않습니다. 훅이 조금 단순하지만 음악과 잘 어울렸다고 생각합니다.

 

암낫욜쏜테이블 닦이와 비슷한 구조를 취하지만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슬랩 베이스로 펑키함을 극대화 시킨 트랙 위에 진상 손님들을 욕하는데 신나는 분위기와 짜증이 느껴지는 담예의 표현의 아이러니한 궁합이 일품입니다. 분노를 유쾌하게 풀어내는 센스가 돋보였습니다. 화음 운용에 굉장히 적극적인데 훅 부분도 좋지만 벌스에서의 화음처리는 정말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마치 잠수한 것 같은 이펙트를 먹인 후반부의 짧은 기타 연주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작과는 판이하게 다른 위 트랙들과 다르게 차분하고 편안한 느낌을 그대로 추구하는 곡들도 많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영업종료’, ‘세 가족그리고 샌드위치 드림모두 이에 해당되는 경우입니다.

 

알바하면서 맘에 드는 이성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 갈망을 담은 영업종료는 체명악기 루프에 잔잔한 기타가 이끌어가는 트랙입니다. 컨셉과 제목에 충실한 가사를 담아내기도 했고 구조적으로 상당히 훌륭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감정이 고양되어가며 악기와 화음이 추가되며 장엄한 인상까지 주는데 심장 소리를 베이스로 사용하면서 기타가 치고 나오는 연출은 마치 전성기 Prince의 창의성과 치밀함을 보는 듯했습니다. 단순히 좋은 노래임을 넘어서 천재적인 면모가 보였습니다.

 

 

세 가족은 드림팝의 영향이 두드러지는 트랙입니다. 공간감이 두드러지는 어쿠스틱 기타에 블루스 템포가 느껴지는 트랙 위에 가족과의 애증 관계를 그립니다. 훅 부분에 멜로트론을 사용한 것 같은 현악기 그리고 간간히 들리는 종소리가 약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학대를 다루는 듯한 어두운 소재를 이렇게 아름다운 분위기로 승화시킨 건 평가 받아 마땅한 재능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트랙 샌드위치 드림세 가족과 비슷한 뼈대를 공유하지만 전자음악의 영향이 더 짙고 템포도 빠릅니다. 원래 특정 단어를 늘려 처리하는 훅을 안 좋아하지만 훅에서의 화음 처리는 싫어하기엔 너무 훌륭했습니다. 첫번째 트랙인 구인구직의 자기 소개 가사를 변형한 벌스를 담아내는 앨범의 수미상관식 마무리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구석이었습니다. 알바를 할 수 밖에 없는 사실에 툴툴거리는 청년이 조용히 정진을 다짐하는 모습은 청자를 뭉클하게 만듭니다.

 

이 앨범의 유일한 빈틈은 6번 트랙 퇴근길입니다. 담예는 여덟 곡의 짧은 앨범에 인터루드 역할을 하는 짧은 트랙을 두 곡이나 배치했는데 이 두 곡이 준 감흥은 천양지차입니다. 퇴근길은 나름 예쁜 분위기를 보여주지만 지나치게 짧은 동시에 앨범 서사에 있어 나름 중요한 전환을 너무 단순하게 처리했다는 인상을 줬습니다. 명분은 있지만 막상 알맹이는 없는 트랙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2번 트랙 ‘Feat. 점장님 1 48초라는 짧은 시간에 굉장히 많은 것을 보여준 트랙입니다. Daft PunkDa Funk 오마주 같은 신스에 점장님의 명령과 담예의 훅을 섞어가며 정신 없는 분위기를 잘 연출합니다. 거기에 갑자기 곡이 전환되는 부분에서 알람 소리로 다시 멜로디를 이용해 루프를 만들며 평일 기상의 고단함과 고민을 묘사하는 부분은 천재적인 센스를 보여줬습니다. 애당초 스킷 같은 트랙을 이렇게 신경 써서 만드는 아티스트도 드문데 2번 트랙의 반가움이 6번 트랙에서는 느껴지지 않아 실망감이 꽤 컸습니다.

 

결과적으로 The Sandwich Artist는 담예의 잠재력이 발현된 훌륭한 작품입니다. 기본기가 탄탄한 동시에 한 걸음 더 앞서가려는 진취적인 면도 공존하는 빼어난 작품입니다. 가볍게 들어도 집중해서 들어도 언제나 감동할 요소가 많습니다. 과감하면서도 치밀하고 쉬우면서도 담긴 것이 많은 수작입니다. 앞으로 담예가 어떤 작품을 들고 올지 너무 기대됩니다.

 

Best Tracks: 구인구직, Feat. 점장님, 테이블 닦이, 영업종료, 세 가족, 샌드위치 드림

Worst Track: 퇴근길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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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9-10 21:45:50
WR
2020-09-10 23:54:50

감사합니다!

1
2020-09-11 07:38:40

얘기하신 것에 많이 공감하네요! 제 인스타 글에 이미 좋아요 눌러주신거 봤지만ㅋㅋ 현실밀착형 주제로 집중력 있게 풀어낸게 담예 스타일을 하면서 애매하지 않은 인상을 남긴, 성공적인 전략이었던거 같아요

WR
2020-09-13 15:06:46

맞습니다ㅎㅎ 오히려 일상적인 소재를 다루니까 훨씬 완성도 있는 서사가 만들어지더라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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