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BLNK (블랭) - FL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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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8-26 16:12:51

 

LEGIT GOONS는 여러모로 한국에서 독보적인 색을 지닌 팀입니다. 그들의 음악을 정의하자면 여유의 미학이라 생각하는데 이는 스타일적인 면모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래퍼들은 한국에서 강박을 그리지만 LEGIT GOONS는 여유를 담고 즐거움을 그립니다. 음악을 일보다는 놀이에 가깝게 소화하는, 그 원초적인 재미를 담아내는 앨범들이 이를 보여줍니다.

 

이런 집단 안에 속한 BLNK2015년에 Color Unique라는 이름의 정규를 발표했습니다. LEGIT GOONS다운 음악이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여유롭고 듣기 쉬운 앨범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인 앨범에서만 기대했던 무언가가 빠져있었습니다. 그룹 작업물은 다양한 스타일을 담아내고 집단의 철학을 담지만 하나하나의 개인의 이야기를 심도 있게 다루지 못한다 생각합니다. 저는 Color Unique에 그것이 담겨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Color Unique의 중심에는 BLNK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주일우라는 인간은 부재했습니다. 좋은 노래들이지만 기억에 남는 앨범은 아니었습니다.

 

이번 앨범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FLAME은 대단한 성장의 결과물입니다.

 

이 앨범의 최대 장점은 프로덕션입니다. 재즈, 블루스, 그리고 아프리카 음악을 연상시키는 비트들은 흡사 모닥불 근처의 원주민 휴양지를 연상시킵니다. ‘Chi Chi Island’의 전자 건반 리킹 (Licking)과 관악 루프, ‘역마의 중독적인 베이스, DEADMAN의 기타 프레이징과 같이 흑인 음악의 대표적인 요소들을 잘 선별해 조합합니다. 마지막 곡 ‘FLAME!’Herbie Hancock이 연상되는 퓨전 재즈 영향 짙은 구성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Headhunters를 좋아해서인지 반가웠습니다.

 

 

이런 비트들 위에 BLNK은 잘 설계된 훅을 얹습니다. 멜로디를 부여하기보다는 살짝 허밍을 하거나 중독적인 후렴을 활력 넘치게 소화해 개성 있는 곡들을 완성시킵니다. ‘Chi Chi Island’‘Morphine’이 전자, ‘역마‘DEADMAN’이 후자를 잘 보여줍니다. 간혹 부담스럽거나 불안할 수도 있다고 느껴지는 BLNK의 보컬이었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그런 모습이 안 보입니다. 훅들은 캐치하고 감탄사가 나오는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피쳐링과의 합 역시 대체적으로 훌륭했습니다. 모두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특히 창모와 차붐이 참여한 DEADMAN3명의 에너지가 모두 잘 어우러져 뇌리에 남습니다. 사이먼 도미닉 역시 루즈한 트랙을 타이트하게 소화해 균형을 잡았습니다. 조금 걸리는 점이 있다면 nafla와 넉살 모두 좋은 벌스들이었지만 트랙의 주제에서 조금 벗어난 가사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FLAME은 이런 뛰어난 사운드를 배경으로 주일우라는 사람이 가진 많은 고민과 생각을 풀어내는 앨범입니다. 20대를 막 마무리 지으며 드는 생각들 같기도 한데 FLAME이라는 단어로 그 고민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FLAME이 무엇인지는 앨범이 끝날 때까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를 찾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고 카타르시스적인 면모가 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서사는 아니지만 이 앨범은 크게 원을 그리면 장작을 줍는다라는 트랙의 전후로 나뉩니다. 전반부가 현주소와 고민을 담아낸다면 후반부는 그에 대한 해답을 찾고 나열하는 방식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을 형상화하는 Chi Chi Island, 염세적인 면모를 보이는 역마’, 그리고 인생의 굴곡을 표현한 ‘Rollercoaster Ride’가 이를 보여줍니다.

 

인상적인 배치였던 ‘Burning’‘Morphine’은 음악을 그 해답으로 제시하는 과정을 그리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Burning’에서 전반부 트랙들의 제목을 언급하며 창작욕에 불타는 BLNK은 바로 다음 트랙 ‘Morphine’에서 자신을 불타는 기차에 비유하며 그 연료가 진통제였다는 신선한 발상을 선보입니다. 이것이 피로감인지 매너리즘을 표현한 건지는 모르지만 이어지는 트랙 ‘Dejavu’에서 초심을 찾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NETFLIX’에서는 애인과의 보내는 여유로운 시간을, 팔로알토와 함께한 ‘When I Was Caught’에서는 인간 관계에 대한 고민을 풉니다. BLNK의 의문들에 팔로알토가 충고처럼 받아주는 전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모닥불은 김오키의 환상적인 퍼포먼스와 더불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풀며 모성애에 대해 성찰합니다. 후회의 모습도 보이지만 기억 자체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이 구간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반부에 비해 살짝 늘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좋은 트랙들이지만 ‘Morphine’‘Dejavu’를 이어서 쭉 다운 템포로 간 건 아쉽네요.

 

이쯤에서 FLAME이 무슨 개념인지 어느 정도 감이 잡힙니다. 전반부가 태워야 할 땔감 같은 고민들이라면 후반부는 그 땔감을 태우며 함께 둘러앉아 같이 즐길 사람들 혹은 불빛을 보며 드는 생각들인 셈입니다. 마지막 트랙인 ‘FLAME!’이 이 화염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서술해줍니다. 열정일수도, 노력일수도, 사랑일수도 있겠습니다. 이 곡은 BLNK 자신의 상황에서 시작을 해 마지막은 청자로 하여금 자신의 Flame을 찾을 것을 독려하며 끝납니다. 자신은 나름 해답을 얻었으니 청자도 그러길 기원한다는 따뜻한 메시지로 해석됩니다.

 

FLAME은 음악을 뛰어넘는 음악의 좋은 예시입니다. 모순적이지만 진심이 있고, 화려하면서도 소박합니다. 거기서 오는 울림은 묘하게 신비합니다. 커다란 감명보다는 잔잔하게 청자의 삶에 있어 원동력과 위로를 전합니다.

 

예술가는 자신을 드러냄으로 타인에게 영감을 준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올해 이 명제에 더 부합하는 앨범은 안 나올 것 같습니다.

 

8/10

 

Best Tracks: Chi Chi Island, 역마, DEADMAN, 원을 그리며 장작을 줍다, Burning, Morphine, 모닥불, FLAME!

 

Worst Track: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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