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인간의 감정을 증오한 20살의 빈첸, 정규 1집 <유사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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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8-13 21:57:39

 

<고등래퍼 2>를 통해 혜성 같이 등장했던 여러 래퍼들. 그 사이에서도 제일 색채가 짙고 돋보였던 것은 당연히 빈첸이었다. 빈첸은 유독 짙었다. 어둡고 우울함을 표현했고 자신의 속내를 들어내면서 10대의 지지를 받았다. 특히 이와 같은 이야기로 <쇼미더머니 6>에서 크게 성공을 거뒀던 우원재의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우원재는 20대의 우울함을 표현했다면 빈첸은 10대의 우울함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의 믹스테잎 <병풍>과 2018년에 발매된 <제련해도>는 그와 같은 감정들을 허물 없이 보여줬다.

 

물론 다른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한 인물에게 있어서 늘 같은 감정을 바라는 것은 최악의 고문이다. 팬들의 바람도 있었고 <고등래퍼 2>에서는 김하온을 만나 '바코드'라는 곡을 내는 등 밝은 모습과도 잘 섞이기 시작했다. 이후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해피투게더>에 출연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뒤 '유재석 헌정곡'을 부르며 주목 받았다. 이후 '별'과 함께 '유재석' 곡을 발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늘 방송은 모든 면을 비추지 않는다. 빈첸은 갑자기 떠오른 스타덤과 얻은 것들에 대해 혼란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은 빈첸의 눈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19살의 스타덤은 20살의 슬럼프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음악 활동을 놓지는 않았다. 대신 음악에 그런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았다. 지난해 8월에 발매했던 '허물'과 '낙하산'에서는 <유사인간>의 감정들이 그대로 박혀있다. '허물'에서는 '나를 온전히 아는건 엄마도 아빠도 아니야, 나도 아니고'라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헷갈려한다. 이어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하다가 나의 답은 태어난 그 시점부터 문제란 결론'이라며 <유사인간>의 1번 트랙과도 이어진다. 평소 인간관계에도 크게 상처를 받아왔던 것 같다. '유사인간이라서 그래'라며 모든 것들을 퉁치고 해결하고자 하지만 그렇지 않다. 또다시 상처받는다.

 

 

이러한 감정들은 쌓이고 쌓여 빈첸의 정규 1집 <유사인간>이 된다. <유사인간>의 14트랙 중 'i'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20살의 이병재에게서 나왔다. 이들은 모두 21살의 이병재가 들었을 때 매우 아팠다고 전한다.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이 싫었다. 물론 그 감정의 원초적인 근본인 인간조차 싫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증오하는 것은 사랑과 행복을 증오하게 됐고 그저 로봇처럼 살고 싶었다. 이와 같은 감정들은 빈첸에게 '유사인간'이라는 정의를 가져다줬다.

 

1번 트랙의 '불시착'이라는 컨셉에 맞추어 <유사인간> 앨범이 발매됐다. 태어날 때 자신과 맞지 않는 지구라는 행성에 잘못 찾아온 것이다. 앨범 커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반나체' 상태인 빈첸은 상당히 미래적인 색채의 도시에 도착했다. 앨범 발매에 앞서서도 자신의 사진을 공개했는데 거의 '반나체' 상태로 촬영됐다. 이는 과거의 원시적인 인간을 표현하고 미래도시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불시착'은 <유사인간>의 출발점이 된다.

 

01. 불시착

 

빈첸의 철학적인 고민이 드러나는 곡이다. 그는 태어날 때 지구라는 행성을 스스로 결정하고 태어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신은 지구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곡을 만들었다. 이전의 '허물' 곡에서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하다가 나의 답은 태어난 그 시점부터 문제란 결론'이라고 말했던 것과 한 맥락이다. 모든 증오와 거부감에 질리기 시작할 쯤 사람은 모든 것을 놓게 된다. 동시에 그에 대한 근거를 찾으려한다. 빈첸은 그 근거로 '출생'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던 게 아닐까. '유사인간'은 하나의 배역일 뿐이라고 말한다.

 

'제대로 말해줘 내 배역에 대해, 그냥 배우가 되어서 과몰입 후에'라고 말하는 모습은 너무나 아프다. 이 땅에 불시착한 자신은 하나의 배우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떠한 감정을 오로지 '감정'으로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 감정에 너무 지쳤기 때문에 이제는 자신이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배우가 되어 과몰입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한다. 물론 사실은 자신이 '유사인간'이 아님을 알고 있다. '후회를 반복'하기 때문인데 만약 이 모든 것이 연기고 자신이 '유사인간'이었다면 모든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로봇은 자신이 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빈첸은 유사인간이 아님을 제시하고도 있다.

  

'이 별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우주선을 고치려 잠시 들렸을 뿐이야', '인간인 척을 하는 유사 인간일 뿐이야'라는 가사들은 이 앨범 전체에 대한 유기성을 부여한다. 또 동시에 맥락을 만들고 <유사인간> 앨범의 핵심 축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은 빈첸의 마음속 무기력을 커지게 만들었다. 무기력은 계속 커져만 갔고 빈첸의 존재를 삼키고 말았다. 그동안 돌아갈 우주선을 찾고 있었는데 무기력의 존재와도 같은 '검은색'에 타고 말았다. 검은색은 빈첸의 우주선이 됐고 빈첸 눈 앞에 있는 것은 '진한 검정색' 뿐이다. 이는 2번 트랙으로 연결짓고 있다.   

02. BLIND

  

'Blind'란 무언가 가려졌다는 뜻으로 '맹인'을 뜻하는 단어다. 빈첸은 19살에 얻었던 많은 것들에 혼란을 겪기 시작했고 20살에 와서는 그 혼란이 증폭됐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혼란 속에서 그의 눈 앞에 놓였던 것은 없었다. 즉, 검정색만이 눈앞에 보였던 것이다. 눈앞에 검정색만 보이면 맹인과도 같다. 따라서 'BLIND'라는 제목이 성립된다.

 

'변한 게 뭐냐고 물어볼 때, 머리 안 단어들이 다들 자기라 싸우다 다 엉켜서 뾰족해져'라는 표현 중 변한 것에 대한 질문은 사실 빈첸의 가사에서 단골로 나온다. 주변에 아는 연예인도 생겼고 꿈도 이뤘으니 변한 게 아니냐는 친구들의 말. 그런 것들로부터 가사를 자주 쓰곤 했다. 그러나 '변했다는 것'은 무엇일까. 주변이 변한 것일까. 자신이 변한 것일까. 아마 검정색만 보이는 상황에서 변한 게 무엇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다들 자기라 싸우다가 엉키고 이런 변했다는 것들은 빈첸을 감싸고 돌기 시작한다. '목에 찔려버렸네'

 

결국 빈첸이 선택했던 것은 술이었다. '가져와 펜과 종이'라며 글이나 가사를 쓰려하다가 결국에는 술을 선택한다. '술은 몇 색을 낼 수 있는 펜'이라 말하고 자신의 뇌와 오감을 공책으로 비유하고 있다. 검정색 속에서 변한 게 무엇인지 묻다가 결국에는 술로 도피처를 찾아냈다.

 

'알게 모르게 사라진 나의 자유, 원인은 내 이름 뒤에 붙은 글자들이겠지'라며 무기력해진 삶을 비유한다. 연예인처럼 스케줄도 생겼고 일이 많아진 상황, 그러나 어린 나이였던 빈첸에게 자유가 사라지는 상황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특히 이름 뒤에 붙는 수식어들은 빈첸을 한정짓는다. 창의력은 없고 바보인간처럼 되는 두려운 상황. 빈첸은 빨리 도피하고 싶다. '난 징징거려 걍 백기나 던지려고'

 

'so what you got now'라며 너는 무엇을 가졌냐고 스스로 묻는다. 그렇게 자신이 가진 것들을 '15층, 방 3개, 100k' 등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진정한 빈첸의 자아는 어디로 갔을까. 또 어디로 가고 있고 어디를 향해 가야 할까. Vinxen이라는 예명은 세례명인 빈첸시오에서 가져왔다. 따라서 자신의 초심과도 같은 이름. '어디로 갔나 시오 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보이지 않는다. 초심과도 같은 '빈첸시오'는 어디로 갔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생기는 불안감은 또 한 번 빈첸을 도피하게 만든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꾸 도망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모래성 지랄하네 그걸 왜, 내가 또 쌓아 X신아, 바람 한 번 불어온다면'이라고 비유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03. 바다는 왜

 

'I just wanna get some table with a 지인 또 drink'라며 계속 술을 마시는 일상은 이어진다. '맨 정신에는 싫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외로움은 타지만 혼자인 게 편하기에'라며 혼자를 즐기기도 한다. 즉, 조울증에 의해 매일 변화하는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매일 새로운 색들로 mix되는 성격 탓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주변 사람들을 떠나보내게 만들었다. 또 술을 먹고 취하고 가사를 쓰는 일상의 반복.

 

어린 시절 '바다는 왜 끝이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던 빈첸. 그런 순수함이 그립기도 하고 지금에 대한 증오감이 있던 걸까. 지금의 무력감에서 벗어나 과거로 돌아가고 싶기도 했던 것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바다의 손을 잡고서 잠들래'라며 감각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돌아갈 수 없다. 이제는 어른이고 애처럼 굴지 못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시 회상하고 있다. '똑같은 옷에 똑같은 장소에 모인 애들 보고'라며 학생 시절을 되돌아본다. 그런 정형화되어 있는 시스템 아래에서 어른들은 '각자의 개성이며 각자의 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학교가 아니라 음악을 한다는 빈첸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은 유사인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철이 안든 아이와 멍청한 어른 사이 떠 있는 유사인간이지'

 

이처럼 취해서 있던 상황에 어린 시절과 지금의 자신을 향한 자조적인 가사들이 이어진다. 순수했던 시절과 이제는 순수할 수 없는 상황.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진짜 필요한 게 아니라 필요에 의해 필요한 존재일 뿐이다. 단지 전화를 할 수 있는,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감정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 있다.

 

04. SYUPID NIGHT (Feat. SIK-K)

 

빈첸이 말하길, 한 달에 술 값에 천 만원씩 쓰던 20살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우울함을 없애기 위해서, 불안함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이어지는 안정제와도 같다. 계속 마신다. '잔 따라 부어버려 더, 맛탱이 갈 때까지 부어 더'라고 말한다. 물론 모순적이다. '원래 이런 놈 아냐 난 fxxk it'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원래 자기합리화는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쉬운 사고 방식이다. 어차피 하루 쯤은 괜찮다며 원래는 이렇지 않다고 합리화하기 쉽다. 물론 그런 술 마시고 노는 것은 재밌다. 멍청하지만 재밌고 계속 반복하고 싶다.

 

크게 특별한 내용은 없다. 빈첸의 주특기인 오토튠 섞인 멜로디 라인이 반복되고 중독적인 훅 조합이 인상적이다. 식케이 역시 피처링에서 같은 내용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걱정하지 말고 따르라며 함께하길 권유하는 모습이다.

 

05. IMOK

 

또 술이다. 이정도면 알콜 중독자라는 타이틀이 걸맞는 20살을 보냈던 것 같다. 그리움과 이별이라는 아픔을 잊기 위해 핑계 삼아 또 술을 마시고 있다. 술을 마셨던 '멍청한 밤'을 지나보낸 뒤 눈을 떴더니 '노을이 숨은' 시간이다. 계속 밤을 술을 먹으며 보낸 뒤 눈을 뜨면 밤이었던 일상을 보낸 것 같다. '넌 어디였을까 걸어버렸네 전화'라며 술을 먹으면서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를 건다. 다행히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난생 첨 보는 여자와 대화나 했어'라고 이어진다. 실수의 반복이다. 처음 보는 여자와 또 다시 대화를 하고 실수는 연속된다. 앞선 트랙에서 전화할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마음이 텅 빈 상태이니 '그저 대화 몇 마디로 날 좀 안아줘'라고 말한다.

 

아직 헤어지기 전 또는 사랑할 때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사람이 원하는 특정 시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갈 곳 없어 더 이상, 더 망가지기 전에 빨리 데려가줘'라며 한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감정들은 술로 향한다. '이러다 말 거야', '걱정 마 괜찮아', '이러다 갈 거야'라고 말하지만 말일 뿐이다. 실제는 괜찮지 않다.

 

'xan'은 xanax의 줄임말로 이는 불안증, 공황장애를 효과적으로 줄여주는 신경안정제다. 매일을 마지막인 것처럼 마시고 놀면서도 여전히 신경안정제를 달고 사는 상황이다. '넌 핑계야 내가 망가지는 핑계'라는 가사는 이 트랙의 핵심적인 구절이다. 매일 술을 먹고 망가지는 상황, 그러나 이별과 그리움이라는 핑계를 대고 있을 뿐이다. 링겔은 누군가에게 없던 힘을 주고 연명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니 술을 먹는 이병재에게는 '어쩌다 보이는 네 흔적이 내 링겔'이었다. 계속 핑계를 대며 망가진다.

 

06. 바람

 

계속 빈첸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부담과 압박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졌다. '이유도 없이 찾아와서 하루 종일 날 괴롭히는 불안함아'라고 부른 뒤 '니네가 이겼어 이제'라고 말할 정도다. 불안함을 견디지 못 할때 가장 하기 쉬운 생각은 '도피'다. 그는 트랙 전체적으로 바람 부는 방향으로 아주 멀리 가고 싶다고 말한다. 바람이 불면 파도와 구름 위에 올라 움직일 수 있다. 계속 자신을 태워서 긴 여행을 떠나자고 바람에게 말을 건넨다.

 

그가 원했던 곳은 인간이 없는 곳, 그리고 생명이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렀다. 그리고 다시 상황을 바라보았다. '밤바다 위 물결 위에, 주황색 하늘의 등 뒤에'. 파도를 타고 시간이 흘렀으며 밤이 됐다. 그리고 구름을 타고 시간이 흐르니 노을 진 주황색 하늘이 나타났다. 구름과 파도를 타고 바람에 이끌렸는데 정작 어디에 있는걸까. 사실은 착각일지도 모른다. 특히 마지막 트랙을 듣고 나면 알 수 있다. 갈 곳을 잃었고 그 자리에 그저 가만히 있었다. 술을 먹고 취한 상태의 반복은 착각을 낳았다. 그러니 실제로 바람에 이끌렸다기 보다는 바람에 이끌리고 싶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07. 꽃봉오리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늘 꽃봉오리를 피우려는 빈첸이지만 자신이 짓밟히고 있다고 표현한다. 빈첸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들을 얻은 만큼 많은 것들을 잃었다. 특히 유명해졌기 때문에 악플과 여러 상처들은 당연히 안고 가야 할 숙제와도 같다. 악플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황들이 있을 것이다. 진심이 전해지지 않고 오로지 이유 없이 짓밟히는 상황. 그런 상황에 대해서 '나의 진심이 짓밟힌 날들 사이로 난 꽃봉오리 피워'라고 말했다.

 

'악마들의 소리에 천사가 죽지 않기를, 내가 이룰 것이 꿈꾸는 미래보다 더 크기를'

 

08. SINK (Feat. 임수(Im Soo))

 

어른이 되면 가장 많이 하는 생각 중 하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앞서 어린 날에 자신이 고민하던 '왜 바다는 끝이 없을까'라는 생각과 '왜'라는 질문들은 이에 대해 미리 예고를 했다. 이 트랙에서도 빈첸은 '아주 가끔 돌아가고파 그때로'라며 걱정도 없고 마냥 좋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사실 이런 감정들은 현재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역시나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자신을 지나치는 사람들을 향해 말은 건네고 있다. 그 이유는 '너무 불안해서 그래'라고 할 수 있다.

 

향수병은 무언갈 그리워 할 때 온다. 그는 향수에 빠져 있었고 빠지다 못해 이제는 가라앉고 있다. 그래서 'SINK'라고 표현했다. 피처링인 임수 역시도 좋았던 기억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비록 그때는 투정이 싫었고 짖궃었지만 돌아가고 싶어한다. 어린 시절에 좋았던 기억들은 지금 재현하기 조차 어렵다. 순수했던 그때와 달라졌기 때문에.

09. i

 

이번 앨범에서 유일하게 올해 만들어진 트랙이다. 빈첸은 지난 힙합플레이야와의 인터뷰에서 타이틀인 'I'에 대해 가장 대중적이고 제일 밝은 감정을 담았다고 말했다. 특히 앞으로는 우울한 감정의 곡보다는 밝은 곡들을 쓰겠다고 말한 만큼 다음 앨범의 무드와도 어울릴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는 대중적인 트랙이라 타이틀이 됐다고 했다.

 

분명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쉽게 뱉지 못한다. '있잖아 내가 할 말이 있는데 기다려 줄래, 어려운 말도 듣기 싫은 말도 아닐 텐데'라고 표현한다. 무슨 말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꾸 힌트를 남기고 있다. 얼굴이 빨개지고 반응이 궁금해지는 말. 맨 정신에 할 수는 없지만 맨 정신에 하고 싶으며 오늘 꼭 말해야 할 것 같은 말. 들킬까 봐 자물쇠를 걸어둔 말. 예측은 되지만 순수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 벌스 3에서 무엇인지 밝힌다. '그니까 하려던 말이 뭐냐면, 내가 주려던 건 세 글자가 다야 음', '나 많이 변했잖아 하고 싶었던 말은 I LOVE U oh I LOVE U SO MUCH', '사랑해 이 말 한마디가 하고 싶었어 난'

 

 어릴 때는 자주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기억이 잘 안나고 많이 변했다고. 즉,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10. 노을 (Feat. 오반)

 

소행성 B612의 어린왕자는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44번도 노을을 볼 수 있다. 어린왕자는 "몹시 쓸쓸할때면 노을이 더 좋아진다"라고 말하곤 했다. 노을이 지는 저녁이면 구름은 아름답게 피어난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노을은 세상에 잠시나마 아름다움을 가져다주는 존재다. 그런 찰나의 순간을 행복하고 좋은 순간에 비유했다. 꿈같은 순간들은 노을처럼 찰나지만 그런 시간에 멈춰있고 싶다고 말한다. 특히 이 트랙을 쓰는 순간에는 그랬다고 한다. '제발 그 자리 그대로 좀 멈춰줘'라며 노을을 향해 바램을 말하고 있다.

'다 변하더라고 너무 당연한 건데', '나도 변했어 거울에 괴물을 봤네'라며 또 한 번 변화에 대해 고민한다. 주변이 변했고 자신도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노을은 자신에게 안정을 주는 존재다. 그러니 노을만큼은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담긴다. 노을이라는 존재는 세속적이지 않다. 노을만큼은 변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줬으면 하는 기대감을 담았다. 그러나 노을이 지는 변화는 자연스럽다. 빈첸은 이런 노을을 향해 '내 마음도 모르고'라 한다.

 

좋은 순간, 좋은 사람들, 좋은 기억들이 점차 자신을 떠나가고 있다고 느꼈던 걸까. 망가지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좋은 기억들이 변하지 않기를,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11. 텅 (Feat. HAON)

 

10번 트랙인 '노을'과 더불어 '텅'은 선공개됐던 트랙이다. '텅'은 빈첸이 평소 쓰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앨범 전체를 꿰뚫는 하나의 단어이기도 하다. 망가졌던 자신에게 남겨진 것이 없는 '텅', 우울감에 사로잡혀 마음속이 비어있는 '텅', <유사인간>에게는 실존하지 않는 '텅'빈 심장. 그러나 사실 '텅' 비어있는 것을 바라진 않았다.

 

감정도 없고 심장도 없다. 그렇다면 그게 사람일까. 또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빈첸은 '뭘 더 쫓아가야 할까 난, 난 이제 더는 모르겠어'라고 말할 수 있다. 외로움을 느끼지만 건강한 감정이 아니다. '돈 좀 있는 애 어때, 사랑 말고 다 해줄게'처럼 돈은 있지만 사랑할 수 없는 상태다. 그저 자신의 감정과 외로움을 채우고 싶은 상황.

 

여기에 피처링은 김하온이다. 김하온이라는 캐릭터는 <고등래퍼 2> 시절 빈첸의 삶에 안정감과 좋은 기운을 가져다줬다. 지금 이 상황에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김하온은 심적으로 안정적이어 보이지만 사실 비슷한 고민이 있는 모양이다. '난 배운 거라곤 비우기 밖에 없어', '찾는 것들은 전부 다 내 안에 있겠지만은 들어온 게 많아 꽤나 뒤적여야겠다'라고 말한다. '텅'빈 것 같은 둘의 공허함은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12. 광대

 

연예인과 아티스트의 삶은 밖으로 보이지 않지만 꽤나 큰 어려움이 공존한다. 이 트랙에서는 '광대'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면 이미지가 깎이고 드러내지 않기 위해 탈을 써야 한다. 탈을 쓰면서 우울함을 겪고 매일 다른 가면을 써야하기 때문에 어렵기도 하다. 가면도 세밀하게 고민해서 골라야 한다. '그 빨간색은 슬퍼 보여, 좀 밝은 빨강', '그 가면 너무 얇아 보여, 좀 두꺼운 걸로'라며 밝아보여야 하고 두꺼워야 하는 상황을 표현했다.

 

무대 위에 서면 많은 박수를 받지만 무대 뒤에서는 갈 길이 어딘지 모른다. 특히 공허함이 아티스트를 향해 찾아오기 마련이다. 아티스트도 사람이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유명세를 이용하기 위해 또는 어떤 목적을 위해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제일 무서운 게 뭐냔 질문에 답 못했지', '사람이란 단어가 입 안에 맴돌았어'라는 가사처럼 사람에게 무서움을 느끼곤 한다. 가면을 벗고 싶지만 벗지 못한다. '그러다보면 너도 떠날 꺼를 알아'. 즉, 가면을 벗으면 무언가를 잃고 누군가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어디를 가도 연기를 하게 된다. 자신을 숨기고 다른 가면을 자꾸 얹게 된다. 남에게 맞추기 위해, 무언갈 잃지 않기 위해.

 

술과 약을 먹고 무대 위에 오르면 가면을 쓸 수 있다. 자신이 아닌 광대. '결국 광대는 자길 못 이겨서 죽는다네'

 

13. 바래

 

서로 칼을 뽑아 흉터 없는 상처를 내주는 시간들의 반복이 빈첸을 더 아프게 했다. '현재의 난 싫고 미래의 나는 무서워'라며 반복되는 삶에 고통을 느낀다. 그러니 '그냥 모르고 싶어 감정이라는 것'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감정에 지쳤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 모든 걸 돌려놓고 싶고 까먹고 싶다고 말한다. 내일은 덜 불안하길 바라고 내일의 행복을 바란다. 그러니 '제발 제발 제발 내일의 난 사라지길 바래 봐'라는 생각까지 한다.

 

두 번째 벌스는 더 슬프게 다가온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부작용이 생긴 것처럼 아프다. 계속 반복되는 일상 탓에 어딘가에 갇힌 느낌을 받는다. 이에 돈을 쓰고 술을 먹지만 변하지 않는다. '믿음 희망 이런 단어들은 저 멀리, 나아지려는 내 의지 밟고 비웃으며 떠났지'. 그러면서 불효자였던 자신을 말한다.

 

14. 회고록

 

'회고록' 트랙은 크게 두 가지 재미를 준다. 먼저 자신의 삶을 되짚는 '회고록' 자체의 의미를 담고 있다. 두 번째는 믹스테잎 <병풍> 흐름에 맞추어 가사들을 인용해 재밌게 표현한다. 마지막 '회고록'은 이 두 가지에 맞추어 정리한다.

 

우선 <병풍> 가사들의 인용을 찾는다. 첫 시작은 '난 이 늪에 있어'라며 '늪' 가사를 인용했다. 이후 <병풍>의 두 번째 트랙인 '제련'의 '매일 갈고닦은 것들은 수련보다는 제련'이라는 가사를 인용해 '너무 갈고 닦았나 봐'라고 말한다. 자신을 원석이라고 표현했었지만 이제는 형체가 안 보인다고도 말하고 있다. 빈첸을 싫어했던 이들은 <병풍> 세 번째 트랙 'ouu ouu ouu'에서처럼 '엄지를 내리고 그들은 내게'처럼 묘사할 수 있다. 이들은 여전하다. '여전히 내 목소리 듣기 싫은 애들은 엄지를 내리고서 ouu ouu ouu'라고 말한다.

 

'다시'라는 곡에서 '다시 시작해보자 우리 처음부터'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지난해의 빈첸은 회의감을 느꼈던 걸까. '또 다시 시작한다면 달라질까 무언가'라고 말한다. 당시 '반복이 되지 악순환은 돌아 다시'라고 말했었다. 지금도 같다. '회고록'에서 '또 다시 시작해봐도 악순환이겠지 뭐'라고 반복된다. 이어 <병풍>의 '탓'을 인용해 '또 다시 다시 다시 나의 탓이겠지 뭐'라고 말한다. 믹스테잎의 '조항'에서 '난 내 조항들을 써 내려가는 중야 Fxxk'이라고 했던 빈첸이지만 지금 남은 것은 회의감 뿐이다. 따라서 '회고록'은 '찢어버려 조항 따위 무슨 소용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약을 먹고 자해도 했었던 '마른논에 물대기'를 지나 '패륜아'도 인용했다. '어쩔 수 없는 패륜아인가 보다 안 그래'라며 '엄마 아들은 패륜아가 맞아'라고 말했던 <병풍>의 '패륜아'를 다시 언급한다. 여기에 '그대들은 어떤 기분일까 나도 내''IM SINKING DOWN ALONE'이라는 가사로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와 'Sinking Down With You'를 상기시키고 있다. 특히 혼자보다 같이 우울함을 느끼는 게 좋다고 했던 그가 혼자 가라앉겠다고 말한다. 그의 변화와 감정적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처럼 가사 인용을 통해 재밌는 트랙을 만들어냈다.

 

두 번째로 회고록 자체의 의미를 담아 <유사인간>을 정리한다. 술을 먹고 실수를 반복하는 삶을 '늪'처럼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주변의 비난과 악플러들의 소리가 들려오고 가장 아픈 인간관계도 눈에 보인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알약으로 연명하는 삶. 반복되니 희망보다는 고통이 앞선다. 그래서 바라기도 했다. '걍 나 먼저 갈까 봐'라며. 이런 우울함이 몇 년째라 지겨워질 정도다. <유사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두렵기도 하다. 결국 한참을 고민했지만 눈앞에는 검정색. 그렇게 갈 곳을 잃고 그 자리에 그저 가만히 서 있다. 앞으로는 나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20살의 빈첸은 그랬다. 가만히 서 있었던 것이다.

 

글 / HIPOPPLAYA EDITOR 김동현 (gunners2537@hiphopplaya.com / @kimd0nghye0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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