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Pento (펜토)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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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21 08:49:47

 

 

Pento는 독특한 행보를 걷고 있는 래퍼입니다. 2~3곡의 EP를 위주로 활동하는 많은 래퍼들과 달리 Pento는 가끔씩 싱글로 생존신고를 하다가 완성된 정규를 들고 컴백합니다. 활동 기간이 길었던 덕도 있겠지만 정규 단위의 작업물을 3장씩이나 보유한 래퍼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렇게 매번 나오는 앨범의 평은 항상 좋았습니다. 한국대중음악상에도 언제나 노미네이트 되어 왔으며 장르 팬들의 반응도 대체적으로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막상 포괄적 대중들과는 접점이 별로 없었을 수 있지만 장르 안에서는 인정 받은 아티스트입니다.

 

이런 행보를 걷게 된 것은 아마 Pento의 음악적 색깔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감한 전자 음악의 차용과 아슬아슬하게 엇박을 타는 특유의 플로우는 이미 힙합의 문법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괴리감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정규 앨범 4는 지금까지의 Pento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우선 7곡의 짧은 트랙리스트와 18분이라는 충격적으로 짧은 런닝 타임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작년 Kanye West의 와이오밍 세션 때 연속으로 나온 앨범들 이후로 짧은 앨범이 유행인데, 이를 반영한 것 같기도 합니다.

 

또 두드러지는 점은 4는 지금까지 Pento의 앨범 중에서 가장 접근이 쉬운 앨범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전작 ADAM에 비해서 더 말초적인 음악이 담겨있습니다. 여전히 전자 음악의 영향이 짙지만 중독적 코드 진행이나 샘플 소스 등의 활용으로 더 즉각적으로 귀에 꽂힙니다. 예를 들어 5번 트랙 SALON 2020을 보면 Alla PugachevaSonet Shekspira를 샘플한 보컬 루프와 건반 진행이 비장한 분위기 형성에 성공했고 바로 기억에도 각인됩니다. 이외에도 boogie palace의 미니멀한 전자 베이스와 심플한 드럼, navigate meditation bassssss raw forever의 공간감 있는 신스 모두 즉각적인 감흥을 줬습니다.


 

이런 캐치함은 훅들에서도 강조됩니다. 4 Pento 커리어 중 가장 잘 설계된 훅들을 담아낸 앨범입니다. boogie palace 2음절 라임 모티프, get litraw forever의 중독적인 동어구 반복, 그리고 SALON 2020의 응원가 같은 코러스 모두 랩 훅의 좋은 예시들입니다. ‘어쩌면 우리 서로에게 모든 걸 다 바쳤을지도에서도 평범하게 들릴 수 있었던 싱잉 훅이 비트 변주 덕에 도드라집니다.

 

이 면에서 유일하게 좋지 못하게 들은 트랙이 wormhole입니다. 다른 곡들은 구조가 정돈되어 있는데 비해 wormhole은 이미 재생되고 있던 트랙을 중간에 듣기 시작한 듯한 느낌을 줍니다. 물론 상당히 공격적인 비트에 매끄러운 플로우를 보여주지만 비트가 조금씩 멈춤에도 벌스와 훅이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난잡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창작의 과정을 영생과 우주적 소재에 결합시켜 담은 가사도 흥미로웠지만 참으로 아쉬움이 남는 곡이었습니다.

 

하지만 4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앨범입니다. boogie palace raw forever의 경우 곡을 멈춘 후에 끝난 인상을 준 이후 다시 시작하거나, 1번 트랙에서 DJ Wegun을 가사에서 언급 직후 바로 스크래치가 들어오는 등 자잘한 디테일과 장치들이 청자의 허를 찔러 놓아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navigate motivation bassssss의 베이스 진행은 아주 짧게 전면에 나서지만 청각적 쾌감이 엄청났습니다. 아주 재치 있는 선택들이었다고 봅니다.

 

이 앨범은 모든 곡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첫 곡인 navigate meditation bassssss의 가사가 대충 말하듯이 4 Pento가 평소에 하는 생각을 담아둔 모음집 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잘 짜인 비유와 문장력으로 보여줍니다. 1번 트랙에서 가슴을 시공간으로 확장시켜 표현하거나 자신의 상황을 스포츠 만화의 명장면과 비교한 것은 적절한 비유였습니다.

 

이런 이점은 get lit에서 기린과의 호흡을 맞춰 자기과시를 할 때도 유효합니다. 해당 트랙의 프로듀서의 이름인 GIANT를 이용한 언어유희적 가사도 흥미로웠고 자신이 가진 물질적인 요소가 아닌 오로지 음악성에 대한 묘사 하나로 곡을 완성시킨 것도 신선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서로에게 모든 걸 다 바쳤을지도는 애인과의 어긋난 관계를 생생하게 묘사한 트랙입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열등감과 상대의 외도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이 건조한 비트, 부드러운 싱잉 훅 그리고 건반 마무리와 어우러져 감정이 잘 전달됩니다. 서정적인 연주가 갑자기 치고 나온다는 인상이 있었지만 앨범의 마무리이기도 해서 반복된 청취 후 납득이 되었습니다.

 

앨범의 피쳐링진 역시 대체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합니다. get lit의 여유 있는 KIRIN의 벌스는 Pento와 잘 대조되어서 곡을 잘 보충했고, raw forever에서의 Kim Ximya는 패션 용어를 이용하면서도 주제 의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촌철살인 같은 염세적 시점을 담아냈습니다. Pento의 벌스와 도입부를 공유한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유일하게 문제점이 드러난 트랙은 SALON 2020 VON입니다. Salon 01 크루 단체곡인만큼 시너지를 기대했지만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GIANT의 안정적인 벌스 이후 VON은 굉장히 거친 톤으로 인상 깊은 퍼포먼스를 보였지만 다른 벌스들과 주제가 달라 몰입이 잘 안 됐습니다. 미국의 정치 현실을 다루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왜 굳이 이 트랙에서 이를 소재로 택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물론 조지 콘웨이와 조 바이든이 국내 힙합 노래에서 다뤄진 것 자체만으로도 특이했지만 마지막의 추임새는 심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결과적으로 4는 짧은 길이에도 지금까지의 Pento의 다양한 면을 모두 담아낸 앨범입니다. 중심적 소재의 부재를 사운드의 개성과 일관성으로 보완했고 그 과정에서 음악의 가장 원론적인 쾌감을 챙겼습니다. 실수는 적었고 매력은 배가되었습니다. 4는 이색적 재료로 만들어진 보편적 결과물의 모범입니다.

 

8/10

 

Best Tracks: navigate meditation bassssss, boogie palace, get lit, raw forever, 어쩌면 우리 서로에게 모든 걸 다 바쳤을지도

Worst Track: worm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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