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니트로 로건 (Nitro Logun) – S.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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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17 14:13:45

 

 

2010년대는 힙합이 다른 장르로부터 적극적으로 끌어오기 시작하는 시기였습니다. 샘플링으로부터 태동되어 사운드는 명목상 원래 정해진 한계가 없었지만, 래퍼들의 퍼포먼스도 이에 발을 맞춰 새로운 시도들도 일반화되었습니다. 알앤비 가수처럼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랩에 오토튠도 입히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이모 랩은 특히나 젊은 장르입니다. Lil Peep, xxxtentacionJuice WRLD 같은 슈퍼스타들을 많이 배출한 이 장르는 이제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산실인 Soundcloud 씬의 성장을 책임졌다는 평가가 있을 만큼 영향력이 막강합니다. 얼터너티브 록의 문법을 힙합에 접목시키면서 우울하고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를 강조한 이 스타일은 이제 국내에서도 자주 시도됩니다.

 

그렇지만 이후로 대부분 이모 랩 작품들은 유행하는 흐름에 뭔가를 더하기보다는 편승하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뻔한 비트들, 분위기만을 위한 우울함, 그리고 비슷한 멜로디를 쓴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울증마저 상업화되고 말았다는 소리도 일각에서 나왔습니다. 맞는 말인지 여부를 떠나 이 현상은 비교적 얼마 안 된 장르에 피로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nitro logun의 데뷔작 S.O.S.는 그 피로감을 단번에 덜어준 앨범입니다.

 

이 앨범은 락의 요소를 기존의 이모 랩 앨범보다 더 과감하게 추가합니다. 트랩 드럼 위에 기타 루프를 얹는 것이 아닌, 완전한 밴드 세션을 배경으로 랩을 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대부분의 곡은 밴드 구성으로 연주가 이루어져 있고, 이 위에 nitro logun이 노래를 하거나 랩을 하는 형식입니다. 최근에 가능하면 라이브 연주를 이용한다는 철학을 비친 프로듀서 Alive Funk의 영향 같습니다. 곡 별 크레딧이 불분명해 정확히 어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앨범 전반에 라이브 연주가 실린 느낌이 나는 것은 분명합니다.

 

, 얼터너티브 록에 국한되어있다고 하기에는 다양한 장르의 모습이 보입니다. teleport는 블루스와 인디 록, pizza makes me cry는 일렉트로닉 재즈의 색이 묻어있습니다. we made it의 비트는 얼터너티브 알앤비 영향이 스며들어있고, mood for love는 펑크 기타가 두드러집니다. 이런 다채로운 스타일들이 어색하지 않게 잘 조합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빛나는 건 nitro logun입니다. 오토튠이 없는 트랙들에서도 안정적인 보컬 퍼포먼스를 보여줘 듣기에 불편하지 않았고 랩도 박자가 어긋나지 않고 다양한 플로우를 구사해 자연스러웠습니다. nitro logun은 이 둘이 따로 놀지 않게 능숙하게 줄타는 퍼포먼스를 보여줬습니다.

 

앨범의 첫 곡인 teleport는 얼터너티브 록 특유의 청량감을 선사합니다. 벌스들과 코러스가 모두 훌륭했고 디테일을 잘 살린 자잘한 변주들이 nitro logun을 더욱 부각시켰습니다. 특히 2절은 과감하게 랩으로 처리하지만 훌륭한 박자 감각 덕에 자연스럽게 잘 묻어납니다. 자살하는 상황을 묘사하지만 유쾌한 멜로디로 풀어내 반전 있는 곡이었습니다.

 

 

비밀친구는 매력적인 기타 리프와 폭발적인 코러스가 돋보였습니다. 안정적인 nitro logun의 퍼포먼스는 물론 곡 마무리의 화음처리와 기타 솔로가 어우러지는 순간은 청각적 카타르시스를 선합니다. 비트에 들어가있는 트랩 작법의 하이햇이 조금 거슬리지만 워낙 훌륭한 곡이라 별로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mood for love는 펑크적인 비트 위에 여름 분위기 나는 사랑 노래입니다. 굳이 오토튠이 필요했는지는 의문이지만 지나치게 록 영향에만 경도될 수 있었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잘 해낸 트랙이었습니다.

 

이어지는 pizza makes me cry에서 nitro logun은 Flying Lotus가 생각나는 빠른 박자의 비트 위에 싱잉 랩으로 일탈을 꿈꾸는데, 캐치한 코러스와 탄탄한 벌스들이 잘 어우러져 다시 텐션을 올립니다. 앞선 mood for love에서 단번에 록 사운드로 돌아가지 않고 이런 스타일의 곡을 배치한 건 센스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짧은 스킷 이후에 울타리는 리버브가 걸려있는 웅장한 비트 위에 자기 혐오와 떠나가는 듯한 누군가에 대한 애원을 강렬한 보컬 퍼포먼스로 풀어냅니다. 조금 긁히는 목소리가 감정선을 잘 잡아 몰입이 쉬웠습니다.

 

cosmic cavern은 라이브 세션이지만 스네어가 끌어가는 비교적 차분한 비트를 가진 우울한 감성의 곡입니다. 피쳐링한 Ol’price의 가성을 가미한 랩은 감상을 할 때마다 호불호가 바뀌지만, 전체적으로 멜로디와 보컬 퍼포먼스 모두 탄탄했습니다. 편견의 폭력성을 색채라는 소재를 이용해 풀어낸 가사적 접근도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S.O.S.가 상투적인 시도가 없는 앨범은 아닙니다. 전형적인 트랩 드럼을 탑재한 트랙이 서너곡 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곡마다 완성도가 차이 나서 간혹 감상에 방해됐습니다. i need you to love me는 멜로디도 괜찮고 가사도 좋았지만 앨범에서 가장 평이한 비트 때문에 기억에 남지 않았습니다. sad dream은 비교적 독특한 기타 루프에도 불구하고 처지는 곡 분위기 때문에 같은 문제로 묻혔습니다.

 

반면에 we made itBlood vessel은 바운스 감은 물론 뚜렷하게 뇌리에 박히는 코러스 덕에 감상을 전혀 해치지 않았습니다. we made it은 알앤비 향이 짙은 비트에 자수성가의 스토리가 인상 깊었고, Neverunderstood의 벌스도 안정적이었습니다.

 

특히 Blood vessel은 앨범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곡 중 하나입니다. 신나는 비트는 물론 Re.jack의 속도감 있는 벌스도 쾌감을 선사했습니다. 무엇보다 사회를 인체에 비유해 사람을 세포, 도시를 심장, 그리고 도로를 혈관에 비유하며 그 속에서 헤매는 인간상을 그리는 가사는 신선한 비유였습니다.


 

 

S.O.S.구조라는 키워드를 담고 있는 앨범입니다. 이 앨범의 nitro logun는 도시에서의 삶에 지쳐있는 래퍼입니다. 이런 고민에 대해 분노한다기보다는 절망하는 걸로 보아 누군가 자신을 꺼내주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공격적인 감정의 분출보다는 헤어나오지 못하는 허무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감정선을 담기에 이모 랩은 적절한 선택이었습니다. 조금 추상적인 가사들을 써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nitro logun은 나눌 서사가 많습니다.

 

두 영역을 조합할 때는 둘 모두에 대한 이해도가 필수적입니다. 하나만 알고 시류에 휩쓸려 만든 작업물들은 어설픕니다. nitro logun은 그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S.O.S.는 작품의 무게 중심과 트렌드가 공존하는 수작입니다. 

 

8/10

 

Best Tracks: teleport, 비밀친구, pizza makes me cry, 울타리, we made it, cosmic cavern, Blood vessel

Worst Track: i need u to lov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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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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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17 13:49:04

와.. 처음 들어보는 분인데 사운드가 너무 알차네요
앨범도 들어봐야겠어요

WR
2020-07-18 00:32:36

정말 좋습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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