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ILLIONAIRE RECORDS (일리네어 레코즈) -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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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7-14 21:05:03

 


연결고리는 국내 힙합을 통틀어 가장 억울한 평가를 받은 곡들 중 하나입니다.

 

두 단어씩 끊어치는 단순한 플로우와 심플한 트랩 비트, 그리고 돈 자랑에 대한 가사는 당시 장르 팬들에게 온갖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돈 자랑이 특히 조악하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이런 곡은 한국 힙합을 좀 먹는 악질적인 존재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에게 연결고리‘MC의 철학을 담지 않은 상업화의 전형이었습니다. 외국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을 그대로 베낀 곡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카피 논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치더라도, 이건 두 가지 측면에서 너무 표면적인 해석이자 견해입니다. ‘연결고리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돈 얘기가 많이 들어가 있는 곡이 아니고 이 가사에 철학이 담겨있지 않다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연결고리에서 돈 얘기가 직접 언급되는 건 여섯 마디에 불과합니다. 사치품에 대한 얘기를 다 합쳐도 10마디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Dok2, Beenzino와 The Quiett 세 명 모두 12마디의 벌스를 구사합니다. , 36마디의 랩 중에 26마디는 기존 힙합의 문법에 항상 존재했던 내용의 가사입니다. 구린 곡을 뿌리며 언론 플레이 하는 래퍼들을 족치고 매일 밤마다 애인이 바뀌며 랩에 라임이 없는 래퍼들을 경멸합니다. 이는 자신이 가진 부보다는 실력에 대한 과시로 보는 게 맞습니다. 트랩 이전의 붐뱁 스타일 곡에서도 항상 있던 내러티브입니다. 하다못해 힙합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Illmatic에도 동류의 자기자랑 식 랩이 즐비합니다.

 

, 자신의 철학이 담겨 있지 않은 랩이 절대 아닙니다. Dok2는 부정적 시선을 이겨내는 방법론을 담아내고 Beenzino는 사업가들과 돈을 분배하는 수익 모델을 부정하며 인디펜던트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화법이 직설적이긴 했지만 연결고리는 골 빈 가사로 채워진 곡이 아닙니다. 특히 인디펜던트의 중요성은 상업화의 정반대 편에 섰던 90년대 후반부터 Rawkus Records 같이 전설적인 음반사들도 표방했던 철학입니다. ‘Independent as F#!k’을 모토로 삼았던 Company Flow 같은 예시를 두고 어째서 연결고리가 단순한 상업화로 비춰졌는지는 의문입니다. 실제로 현재 Illionaire Records가 가장 평가 받는 영역도 바로 이 인디펜던트 양식을 유지한 채로 이뤄낸 성과입니다.

 

이런 오명을 쓴 데 있어 일조한 것은 돈에 대한 언급이라고 생각합니다. 횟수가 지금에 비해 적을지언정 돈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대놓고 피력한 곡이 대중적 인지도를 가진 것은 연결고리가 최초입니다. 돈이 없다는 푸념을 하는 것도 아닌 돈을 엄청나게 벌었다는 곡은 어쩌면 암묵적인 사회의 금기를 건드린 겁니다. 일리네어는 부를 축척한 것에 겸손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랑했고 이는 오만으로 비춰졌습니다.

 

11:11연결고리와 비슷한 내용의 곡들로 채워져 있는 앨범입니다. 작사적 접근법과 서사적인 관점에서 각각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핵심적인 주제는 같습니다. 오로지 실력으로 축적한 부와 그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있습니다. 이 자부심을 받쳐주는 서사가 생각보다 명확합니다. 단순히 돈이 많다 자랑하기보다는 그 위치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담겨있습니다.

 

첫 트랙 ‘We Here 2’부터 자명합니다. 멤버 제각각 실패할거라는 주변의 저주, 가난의 굴레와 긴 공백기를 모두 이겨내고 돌아왔다는 것을 피력합니다. 장엄한 피아노와 강렬한 트랩 베이스가 번갈아 가며 배치된 비트는 고무적인 분위기와 청각적 타격감을 모두 챙겨 몰입감을 높입니다.

 

이어지는 타이틀 곡에서는 프리마 비스타의 웅장한 트랩 비트 위에 세 명이 더 본격적으로 자기 과시를 담아냅니다. Illionaire에게 중요한 상징 같은 11:11이라는 단어를 활용한 The Quiett의 훅은 중독적이었고 Beenzino의 벌스 후반에 숫자를 활용하는 펀치라인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외에도 좋은 트랙이 많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차를 주제로 한 의 덥스텝 같은 트랩 비트 위 유려한 플로우와 간단한 훅이 지금 들어도 재밌는 감상을 선사합니다. 서로 랩의 마지막 마디를 이어 받는 곡 구조도 텐션을 올려줍니다.

 

A Better Tomorrow는 비장한 건반을 루프 시킨 비트 위에 벌스로만 채워진 단체곡입니다. Sean2slow의 아카펠라 벌스로 시작하는데, 비교적 긴 곡임에도 워낙 벌스들의 완성도가 뛰어나 큰 변주 없이도 몰입도가 높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MC Meta의 부활을 키워드로 설계된 벌스와 돈보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는 중요성을 설교하는 The Quiett의 벌스입니다. 이 벌스부터 돈 자랑질이 단순히 돈만을 담은 서사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Illionaire Records가 선정한 꿈에 있어 돈은 하나의 징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공의 강력한 증거지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인 셈입니다.

 

Zion. T가 간단한 훅을 제공하는 Go Hard 역시 좋습니다. 펑키한 비트 위에 각자 정진하겠다는 다짐을 풀어내는데 세 명 모두 느린 박자감으로 끌어가는 플로우가 인상 깊었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박자에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폼이 뇌리에 깊게 남았습니다.

 

물론 모든 곡들이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Jay Park이 보컬로 참여한 아닌 척 (Don’t Front)’는 나름 재치 있는 라인이 있지만 너무 전형적인 비트와 뻔한 코러스가 그닥 인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Rollie Up 역시 이미 트랙리스트 후반에 배치되어 피곤하게 와닿는 뻔한 자기과시성 트랙이었습니다. ‘11:11’, ‘연결고리같은 트랙의 하위호환이었습니다.

 

앨범은 We Gon’ Make It으로 마무리됩니다. (본 리뷰에서 보너스 트랙들은 다루지 않겠습니다.) 관악기를 강조한 비트 위에 본인들의 서사를 자축함과 동시에 리스너들 역시 이뤄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변주된 마무리 위에 The Quiett의 벌스는 앨범의 여운 있는 마무리를 담당합니다. Illionaire Records가 설교하려는 메시지가 담긴 트랙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가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삶의 방식으로도 성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영감을 전하는 트랙이었습니다.

 

11:11은 여전히 재밌게 들을 요소가 많은 앨범입니다. Beenzino는 기괴하다 싶을 정도로 독특한 플로우를 굉장히 세련된 방식으로 소화하고 Dok2는 뛰어난 라임 설계와 피지컬을 바탕으로 가장 원초적인 부분을 자극하는 랩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The Quiett 역시 당시의 평가는 좋지 않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까지 욕을 먹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기본기 충실한 래핑을 구사했습니다. 오히려 가사적인 측면으로 볼 때는 The Quiett이 세 명 중에 가장 인상 깊었다는 생각입니다.

 

11:11 이전에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얘기는 힙합 씬에 존재했습니다. Okasian탑승수속 Dok2의 개인 디스코그라피가 등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11:11은 돈이 없는 사람들의 서사가 담기지 않았습니다. 11:11은 이미 자수성가를 이룬 사람들의 자축이 담긴 앨범입니다.

 

11:11의 혁신성은 여기서 기인합니다. 작게는 힙합 장르 안에서의 돈에 대한 서사를 바꿨고 크게는 대중 문화에서 부를 대하는 태도를 바꿨습니다. Illionaire Records는 이런 태도 변화를 강요한 것이 아닌 몸소 실천함으로써 보여준 성취를 이뤄냈는데 11:11은 그 성취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앨범입니다. 믿을 수 없는 것 같은 현실과 음악이 일치되는 드문 사례입니다.

 

, 힙합은 가난해야 한다는 틀을 산산조각 내버린 앨범입니다.

 

11:11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느껴집니다. 힙합이 자본적인 측면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유효했고 돈벌이는 이제 힙합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트랩 음악의 스타일적인 이정표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 앨범이 고전인 이유는 트랩의 정신적인 방향성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돈과 자기과시에 대한 노골적인 자부심과 솔직함을 주류로 만들었습니다.

 

6년 남짓한 앨범을 바로 고전 취급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10년을 한 세대로 잡을 때,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고전이라 언급하는 건 과하다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는 11:11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합니다. 이 앨범의 영향권을 벗어난 앨범은 현재 국내 힙합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힙합은 물론이고 Flex라는 자기과시성 문화는 사실상 Illionaire Records가 처음으로 시도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11:11은 힙합이 대중문화에 있어 듀스 이후로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한 하나의 사건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11:11은 절대 흠이 없는 앨범이 아닙니다. 몇몇 비트는 확실히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도라 미숙한 티가 나기도 하고 그냥 간단하게 말해 좋지 않은 노래도 실려있습니다. 하지만 11:11 같은 앨범은 리뷰하는 사람의 취향을 무색하게 만드는 앨범입니다. 제가 아무리 완성도를 깎아 내리더라도 이 앨범이 거대한 변혁을 가져온 앨범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렇게 자명한 영향력을 가진 앨범은 리뷰하는 사람을 겸손하게 합니다.

 

11:11은 하나의 앨범이기 전에 문화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CLASSIC/10

 

Best Tracks: We Here 2, 11:11, 연결고리, , A Better Tomorrow, Go Hard, We Gon Make It

Worst Track: Rolli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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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0-07-14 23:15:06

욕도 많이 먹었지만 결국 10년대를 이끄는 중요한 움직임이었죠.

WR
2020-07-17 11:38:56

네네 지금 들아보면 더 어마어마한 앨범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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