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던말릭 (Don Malik) - 선인장화: MALIK THE CACTUS 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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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6-27 09:32:23

 

 

 

Wu-Tang ClanGhostface Killah힙합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get some official beats and say fly shit over them"

"깔쌈한 비트에 죽여주는 걸 뱉으면 "

 

이번 던말릭의 앨범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선인장화: MALIK THE CACTUS FLOWER는 서너명 남짓한 프로듀서들이 제공한 재즈에 기반한 붐뱁 비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곡마다 조금씩 다른 악기 선택으로 각각 개성 있으면서도, 전반적으로 일관된

스타일을 선보입니다. 따뜻한 건반과 베이스, 간혹 날 선 샘플들, 그리고 관악기와 기타가 조합되어 있습니다. 90년대의 재현을 노렸지만, 군더더기가 없어 매우 세련된 분위기를 만듭니다.

 

믹싱도 굉장히 잘 되어있습니다. 덕에 작은 변주들과 드럼의 질감이 라이브 밴드가 연주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The RootsA Tribe Called Quest가 많이 생각나는 작법입니다. 가리온의 비트메이커로 유명한 JU의 관록과 진화가 동시에 느껴지는 훌륭한 사운드죠. 참여한 다른 프로듀서들도 이 스타일을 지나치게 현대화시키지 않아 잘 어우러집니다. 던말릭은 라임 설계가 잘 된 벌스들을 변칙적인 플로우와 거친 

톤으로 전달하며 이 비트들을 훌륭하게 소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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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훌륭한 비트들만으로 훌륭한 앨범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선인장화: MALIK THE CACTUS FLOWER가 대단한 이유는 바로 던말릭의 가사들입니다. 이 가사들이 그저 준수했을 앨범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이 앨범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입니다.

 

던말릭은 작사에 있어 크게 두 가지의 핵심 요소를 조합한 접근법을 보입니다. 래퍼 본인만의 레시피가 

있는 것 같은 인상입니다.

 

우선 특정 소재 혹은 모티프를 선정한 후, 잘 짜인 추상적인 라인들로 그에 맞춰 함축적 의미를 담아냅니다. 덕에 이 앨범은 창의적인 컨셉들과 밀도 높은 라인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이번 리뷰에 최대한 그런 

라인들을 담아보겠습니다. 그래도 직접 곱씹으며 들으실 것을 강력 추천합니다. 리뷰를 작성하는 이 

시점에서 저도 최대한 많은 의미를 끌어냈지만 앞으로 들으면서 더 드러나는 내용이 있을 겁니다.

 

우선, 편의를 위해서 이 접근법이 예외적으로 해당되지 않는 두 트랙, ‘선인장 (Intro)’ ‘20180222 – 20180930’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선인장 (Intro)’는 앨범 전체의 테마인 선인장화에 대한 밑바탕으로 보입니다. 가난에서 오는 고통을 

고찰하고, 이에 대한 답으로 음악을 제시합니다. 이 과정을 현악 세션으로 시작해 트랙이 진행되며 

단계적으로 악기가 추가되는 빌드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0180222 – 20180930’의 경우 자신과 친구의 자살시도를 담은 곡입니다. 제목에 적힌 기간에 일어난 

일들이 원인인 듯합니다. 약간의 상황 설명으로 시작한 이 트랙은 청자에게 용기를 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무리됩니다. 친구의 경우 별세를 한 것인지 아닌지가 명확하지 않지만, 이걸 모르더라도 좋은 라인들이 많아 충분히 몰입이 됩니다.

 

죽고 싶은 맘으로 사는 게 편해졌고 / 돈으로 고용해 Pain Killer / 고통을 청부살인해도 금방 뒤쫓아와 내일이면

감정은 못 사더라도 지킬 수는 있네 / 그게 돈이 지독하게 필요한 내 이유인데

기억은 남겠지만 삶은 순간인 걸 / 너의 그 찰나에 내 곡이 있었으면 해

 

마지막에 올해는 좋은 곳으로 갈 것을 다짐합니다. 어느 정도 고통에서 벗어난 인상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두 트랙은 예외입니다. 나머지 트랙들은 모두 앞서 언급한 접근법을 따라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냐는 어린 시절의 회상을 그 당시 썼던 재화들의 가격을 나열하며 전개합니다. LL COOL J – Mama Said Knock You Out 샘플로 시작되는데, 인트로에서 하지 않은 떠난 적 없다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시작하죠.

 

자신의 과거를 돈으로 환산해서 묘사하는 이 서술 방식은 건조하지만 애잔합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며 

그 재화의 구입 동기를 생각해보며 사회의 세속적 면모를 관찰합니다.

 

울 엄마가 고른 에어포스 1 / 왜 걸 골랐냐면 학교 가서 무시 받지 말어

처음 받은 공연 페이 5만 원 / Throw your hands / 내가 마이크 잡기 전 마냥 조용했던 객석에서 터진 환호 / 물어보자 한번 그러면 그건 얼마짜리였냐

주머니에 안에 꾸겨넣은 쾌락 티켓 / 그게 얼마가 됐든 간에 내겐 꽤나 어릴 때부터 중독돼 / 자본주의 코케인

 

이어지는 같은 옷은 힙합에 있어 고전이라 할 수 있는 ESG UFO를 샘플한 날카로운 비트가 

두드러집니다. 여기서 던말릭은 자신을 스스로 생각하는 부정적 인간상과 구분 짓습니다. 이 인간상은 

작업을 게을리하는 래퍼들 같습니다. 자신은 정형화된 직장인과 다르게 주말과 주일의 의상이 같지만

태도는 주말과 주일의 차이가 없다는 모티프를 사용합니다. 열심히 프로 의식을 가지고 작업한다는 부심을 드러냅니다.

 

다른 날 같은 옷 / 그게 내 정장 넥타이 / 삼성 신입 사원보다 더 꽉 매 난

 

특히 마지막 벌스에서 성경의 7일 세계 창조에 빗대며 자신의 작업 과정을 그린 가사들은 정말 짜릿한 

쾌감을 선사합니다.

 

부잣집 도련님은 모르는 세계 만들어 / 7일 정도면 충분하네 / 마지막 날은 쉬어 / 만약 잠든다 해도 / 아무도 창조하지 못해 나보다 더 나은 걸

 

다음 트랙 ‘Rainy Day’는 자신의 현주소를 갈증으로 표현하며, 비를 기원하는 트랙입니다. 삶은 사막 같이 말라있고 여기서 자신은 불을 뿜으며 가사와 곡을 제작합니다. 점점 지치는 던말릭은 돈, , 그리고 사랑이 필요하며 이를 비에 비유합니다.

 

난 용처럼 불을 뱉어 / 뜨거운 내 주변 / …(중략) / 우린 사랑 힘과 돈을 벌어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는 부차적일 뿐, 그저 창작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만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삶이 먹고 사는 것과 같은 말 된 그 시점 /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갈증 / 단지 난 갈라진 땅 위엔 단비가 필요하다 할 뿐

 

예술’()을 쫓다가 ’(사막)이 너무 피폐해지지 않도록 ’(, , 사랑)를 원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Red’는 앞서 언급한 이 앨범이 채택한 접근법에 가장 부합하는 트랙입니다. 제목 그대로 붉은색 소재를 

지속적으로 사용해 자신과 청자들의 관계를 그려냅니다. 1절은 타협을 요구하는 제의를 뒤로하고 자신을 재료로 요리해 만드는 작업물을 청자에게 바치는 것, 그리고 이를 소셜 미디어나 스트리밍의 좋아요 

버튼을 뜻하는 하트와 연결 지어 묘사합니다.

 

너희 내게 버릴 거 없는 듯 모두 다 해체하고 요리해 / 이제 접시에 예쁘게 담아놓고 다시 선사하지 너희에게 / 이게 내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 / 피와 좋아요의 색깔은 여전히 같지

 

이렇게 자신의 피를 담은 작업물을 주는 것을 사랑의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그걸 좋아해주는 팬들이 

그에 화답을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2절에서는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붉은 심장까지 꺼내듭니다.

 

나 역시 널 처음 본 그때를 떠올리며 만들어 바치는 중이야 전부 / 거울 속 광인은 눈을 번쩍 뜬 채 심장을 꺼내놔 / 떨어뜨리지 않고서 올려놓지 손에다 / 장미꽃 장미꽃 장미꽃 색깔 / 아름다운 건 이해한 애들만

 

비록 자신을 완벽히 이해하는 사람들만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겠지만, 청자라면 일단 제공을 해주려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줍니다. 피를 갈아 넣는 것을 모자라 심장까지 보여주는겁니다. 후렴에서도 

보입니다.

 

우주를 담은 너의 눈 말이야 / 우주를 안은 너를 닮아서 난 편하게 눈 감아

 

모두의 눈에서 우주를 보는 던말릭은 언젠가 모두에게 이해 받을 수 있을 희망을 품고 눈을 감습니다.

이것이 죽음을 뜻하는 건지, 아니면 계속 삶을 이어가기 위한 숙면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Sunrayz (3rd)’세 번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후렴구를 보면,

 

첫째로는 love / 둘째로는 빌어먹을 돈 / 세 번째는 우린 대부분 잊어먹었어

 

바로 여기 있는, ‘잊어먹은 것에 대한 곡이죠. 정황상 이 세 번째는 가족인 듯합니다. 1절은 알코올 

중독으로 폭력적이던 아버지에 대한 애증, 2절은 자신을 제대로 키워준 엄마에 대한 감사함이 주제입니다2절에서 자신을 인간 태아가 아닌 탯줄을 도화선으로 가진 시한 폭탄으로 비유해 어머님이 가졌을 

부담감을 표현한 건 신선한 표현이었습니다.

 

탯줄이 도화선 어쨌든 움직이네 / 세상에 나왔어 이미 불 붙여진 채로 / 굴러가는 시계태엽

 

이 자체로도 독특하지만 다음 트랙과 소재가 겹쳐서 앨범의 유기성에 보태는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폭탄에서는 자신이 힙합에 빠지는 과정을 그리고, 그렇게 빠진 후 자신이 작업하는 행위를 폭탄 제작에 

빗댑니다. Eric B, & RakimI Know You Got Soul을 인용하는데, 원곡의 가사도 곡의 제작 과정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잘 배치된 오마주입니다.

 

1절에서 여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랩을 시작했지만 결국 힙합 문화 그 자체에 매료됩니다. 그런 던말릭이 2절에서 자신의 노래인 폭탄을 제작하고, 3절에서는 그 곡이 발표되고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서 폭발하는 전개를 보이죠.

 

하지만 이 폭발이 단순히 파괴를 위함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을 위한 준비 같은 폭발로 묘사됩니다.

 

뜨겁게 녹은 콘크리트가 굳고 / 갈라진 금에서 피어난 한 떨기 불꽃 /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나 / 난 그 둘을 동시에 3분 속에 채워놔

 

이렇게 자신이 래퍼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테마는 다음 곡에서도 이어집니다.

 

전염 (Til Infinity)’ Souls of Mischief93 ‘Til Infinity라는 곡에서 사용한 Billy Cobham Heather 샘플을 다시 사용합니다. 제목부터 오마주인 것이 자명하죠. 병균이 전염되듯이 자신의 메시지가 퍼져나가는 것을 형상화한 트랙입니다. 하지만 Til Infinity라는 부재에서 볼 수 있듯, 단순히 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랫말들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내가 남길 건 딱 한가지 다음 시대 기억하지 / 너의 아들들의 아들 딸들의 딸들까지 / 내 말을 내 Rhyme을 내 답을 / 이야기가 돼서 돌아다니게 돼 이 거리를

 

이 메시지는 마지막 후렴에서 피타입의 돈기호테를 인용하며 심화됩니다. 자신 역시 이러한 전염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동시에, 앞으로도 다음 세대를 통해 계속 계승될 것임을 암시하죠.

 

내가 바라던 건 정체된 이 문화가 / 거센 바람을 걷으며 앞으로 나가 / 빛을 발하는 것 내가 말하는 걸 / 기억한 어린 아이들이 어서 자라는 것

 

힙합 팬으로써 이 비트에 이 구절이 얹혀지니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

 

이 앨범의 마지막은 서로 치환된 이름의 두 곡인 누군가 (Outro)’‘(Outro) 누군가가 장식합니다

누군가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개인의 정체성은 타인과의 관계로 형성된다는 명제를 중심으로 설계된 트랙입니다. 이 트랙의 마지막 구절에서 앨범 명인 선인장화에 대한 설명이 제시됩니다. Rainy Dayz에서 설명한 사막 한가운데 있는 선인장이 음악이 벌어다 준 돈과 힘, 그리고 가족들이 준 사랑을 양분 삼으며 꽃피우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결국 다른 누군가는 누군가의 꽃이 되니 / 우리 삶에 서로의 이름을 딴 꽃이 영원히 필테지

 

던말릭을 상징하는 선인장화는 타인과의 관계로 각박하고 메마른 현실을 이겨내 꽃을 피웁니다.

 

이어지는 ‘Outro (누군가)’에서 던말릭의누군가는 자신의 어머니임 밝힙니다. 어머니와의 대화를 그대로 담은 트랙인데, 던말릭이 가진 고민들을 진심 어리게 상담해주시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의 

내레이션으로 끝나는 Common의 초중기 앨범들이 생각났습니다. 개인사인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 더 

이상의 설명은 제하겠습니다.

 

힙합의 중추적인 특징 중 하나는 언어입니다. 그것이 음운론적인 요소가 되었건 의미적인 요소가 되었건, 작문의 설계가 곧 청각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예술입니다. 많은 래퍼들이 이를 족쇄라고 여기는 

시점에 던말릭은 이를 하나의 무기로 사용합니다.

 

작사에 있어 창의성의 끝을 보여주는 앨범입니다. 곡 별 주제도 훌륭하고 이를 모두 아우르는 앨범으로서의 정체성도 뚜렷합니다. 이를 뛰어난 랩 퍼포먼스와 비트들로 뒷받침합니다. 얕게 들어도, 깊게 들어도 

흡잡을 수 없는 뛰어난 앨범입니다.

 

가사가 있고, 음악이 있고, 중심에 강력하게 자리 잡은 아티스트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장점을 나열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짧다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그만큼 말문이 막히게 훌륭한 앨범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힙합 앨범에 정말이지 놀랍도록 가깝습니다.

 

이 앨범은 힙합 그 자체입니다.

 

10/10

 

Best Tracks: N/A

Worst Tracks: N/A

 

7
Comments
2020-06-19 21:02:00

이번 스태프 모집을 통해 새롭게 '컨트리뷰터'로 합류하게된 myK_daytona 님의 글 입니다. 

앞으로 myK_daytona 님의 리뷰글들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될 예정입니다. 

2020-06-19 21:03:49

아래 댓글로 앨범의 한줄평과 본인의 평점(10점 만점)을 남겨주세요. 
힙플 SNS를 통해서 소개될 예정입니다. 

1
2020-06-19 23:00:49

힙합팬들이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있어서 만족스러웠어요

아이러니하게도 한 달 후 나온 딥플로우 앨범과 결을 같이 한다는 점..

10점 만점에 8점

(옆동네는 눈팅만 하지만 daytona님 글은 항상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네요

유익한 글 많이 써주세요!)

WR
2020-06-20 10:58:50

이번에 힙플에서도 자주 쓰게 됐습니다ㅋㅋㅋㅋ 감사합니다!

1
2020-06-20 12:59:30

나도 이런거 하고싶었다구요..
부럽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WR
1
2020-06-20 16:30:34

감사합니다!ㅋㅋㅋㅋㅋ 앞으로 열심히 써야겠습니다...ㅎㅎ

1
Updated at 2020-06-20 21:43:39

정말 치밀하고 잘 몰입시키도록 짜여진 앨범 

그 정도는 dslr 카메라로 던말릭의 생각을 보는 거 같았다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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