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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스킬에 대한 고찰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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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7-09 16:25:32

접때 힙플에 무슨 릴레이 글 나오고 랩스킬에 대한 글도 올라왔길래 저도 몇 자 끄적여봅니다.

(사실 지금 일감이 없어 회사에 글을 못보내는 동안 손풀고 싶어 쓰는 글이지만)

사족을 붙이자면 당.연.히. 제 주관 100%고 아니다 싶으면 거르시면 됩니다


 

#1 랩스킬이란 무엇인가

한국에서는 유독 랩스킬에 대한 오해가 많습니다. 한때 이십사이더놈을 필두로 대중에게 '속사포가 곧 스킬'이라고 알려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여파로 힙찔이들은 빠른 랩을 천시하는 경향이 생기기도 했지요. 영어를 쓰면 멋지다는 사대주의 때문일까요? 영어도 못하는 래퍼들의 한영혼용 남발과, 버벌진트/빈지노처럼 발음을 굴려야 그루브를 만들 수 있다는 괴랄한 편견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랩이라는 기술이 그렇게 한 두가지만으로 결정할 수 있을만큼 단순할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 그렇다면 랩스킬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크게 스핏/박자/가사/정서 이 네 가지의 영역으로 나눠보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다양한 예시를 통해서 그 세부적인 내용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참고로 저는 본 글에서 랩 뿐 아니라 보컬, 나아가서는 성악가까지 예시로 들 생각입니다. 사람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하는 기술은 기본적인 매커니즘이 같다고 보며, 실제로 이를 이해하고 다양한 보컬 영역을 오가는 기술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최근 멈블 랩 등 기존의 랩스킬에서 많이 벗어난 하위 장르가 생겨났습니다만, 본 글에서는 보다 전통적인 의미의 랩스킬과 그에 대한 해석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2 래퍼의 수준을 가른다 '발성'

잘하는 사람은 1초만에 알아본다고들 합니다. 어째서일까요? 바로 입에서 '뱉는' 그 기술에서 이미 레벨이 천지차이이기 때문입니다. 라이브를 직접 볼 때 첫 소절에 소름이 쫙 끼친다던가, 오디션 프로에서 1초만에 심사위원 펜타킬을 찍는다던가...다 같은 맥락이죠. 이게 바로 발성의 힘이라고 하겠습니다.


-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전설의 심사위원 펜타킬


단,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만 그런지는 몰라도 많은 분들이 '발성'하면 성량에만 집중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허나 발성은 성량 뿐만 아니라 입에서 뱉기까지 필요한 모든 기술의 총칭이며, 그만큼 굉장히 복합적인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발성이란 무엇일까요?


(성량이 전부가 아니라고 해 놓고서 꺼낸 첫마디론 우습지만)우선 첫째는 역시 성량입니다. 최근 클라우드 랩, 멈블 랩 등 성량이 비교적 덜 중시되는 부류들이 생겨나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여전히 성량의 힘은 절대적입니다. 소리를 꽥꽥 질러 키우는 '볼륨'과 달리 성량은 가볍게 뱉더라도 듣는이에게 위압감을 선사합니다. 다시 말해 시끄럽다고 성량이 큰 게 아니고, 성량이 작다고 힘이 없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이 곡에서 건플레이는 벌스 3입니다)

 

 

무시무시한 성량으로 이름 높은 건플레이(Gunplay)와 루다크리스(Ludacris)입니다.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건플레이가 입을 여는 순간 릭 로스, 요가티는 들러리로 전락해버리니다. 루다크리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트랙을 휘어잡고는 놓지 않지요. 물론 이들은 다른 영역도 탄탄합니다만 특히 성량에서 상대를 압도하고 시작합니다. 무슨 말을 하든 설득력을 가질 것 같은 강력한 힘이죠.


두 번째는 스핏입니다. 다소 생소한 개념일 수 있겠지만 랩을 포함한 보컬 스킬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스핏'에 대한 이해도가 필수적입니다. 사실 제일 중요하다고 해야겠죠. 스핏이란 곧 문자 그대로 '뱉는' 방식입니다. 소리를 응집시켜 성량을 한 점에 집중시키는 기술로, 이를 통해 음절은 힘을 얻습니다. 사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여기서 갈린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소위 말하는 '뜬' 보컬리스트 중에서 성량이 딸리는 가수는 있어도 스핏이 구린 가수는 없다고 보면 됩니다. 오케이션이 좋은 예입니다. 성량이 굉장히 취약한 오케이션이 음원에서 랩을 타이트하게 유지할 수 있는 이유도 이 스핏이 좋기 때문이지요. 앞서 말했듯 성량이 비교적 덜 중요시 되는 클라우드, 멈블 랩에서도 이 스핏만큼은 잘 갈고 닦아야 합니다. 

 

- 오케이션의 스핏을 제대로 보여준 야마하 벌스


이 스핏에서 중요한 부분은 발음입니다. 퓨쳐(Future), 미고스(Migos)처럼 미국인도 못 알아듣는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날카로운 자기 발음이 없다면 좋은 스핏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박자를 쪼개더라도 분명하게 가져갈 수 있고 보컬의 전개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가볍고 날카로운 발음. 이게 바탕이 될 때 좋은 스핏은 물론 성량까지도 제대로 살릴 수가 있다는 거죠.


이런 보편적인 발성의 기본덕목을 종합했을 때 완성형에 가까운 보컬리스트들은 사실 팝 보컬이나 래퍼가 아니라 성악가 중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악에 대해서 잘은 모릅니다만) 소위 말하는 쓰리 테너를 들어본다면 전혀 왜곡 없는 바르고 예리한 발음, 흠 잡을 데 없는 스핏, 완벽한 성량을 자랑하지요. 감히 말하건데 기본기의 완성도에 있어 팝 세계에서 이에 비견될 보컬리스트는 없습니다.


- 목소리의 정석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요


- 현대음악시장에서는 이런 분들이 정상급 완성도를 자랑한다 할 수 있겠군요

 

- 현대음악 vs 성악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한국 대중음악은 이 발음과 스핏에 있어서 유독 취약한 측면이 있습니다. 비단 힙합 뿐만이 아니라 보컬리스트 전체로 확장시켜도 통용되는 이야기지요. 어르신들이 랩을 듣고 '뭔 소린지 못알아먹겠다'고 하시거나, 일반적으로 뮤지컬 극장이나 공연장에 갔을 때 가사가 들리지 않는 건 음향의 문제도 있지만 보컬리스트의 내공 자체가 부족한 탓이 큽니다.


- 한국인보다 정확한 한국어 발음을 보여주는 플라시도 도밍고


그 이유는 개인적으로 한국어 억양을 완벽하게 무시한 발음을 꼽습니다. 한국에서는 아마추어들은 물론빈지노, 버벌진트 등 정상급 래퍼들조차 영어식 발음을 구사하죠. 발음은 절대 억양의 영역 밖에 있을 수 없습니다. 언어가 있는 이상 발음은 억양을 바탕으로 구성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발성과 스핏의 기본형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제부터는 이 스핏을 입체화시키는 억양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억양은 기계적으로 존재하는 보컬 기술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표현하고 싶습니다. 개개인의 환경, 출신, 정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이만한 도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개성과 정서에 관해서는 이어지는 글에서 언급하겠습니다만, 억양은 발성의 영역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2000년대를 풍미한 남부힙합의 대표곡. 티아이(T.I.)의 맛깔나는 남부 억양을 감상해보시죠


한국에서야 천시받지만 억양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2000년대를 주름잡은 남부힙합이라는 한 하위장르의 정체성을 결정할 정도로 말입니다. 당시 남부힙합은 뻔한 멜로디, 전자음과 누그러진 억양을 특징으로 내세웠죠. 그리고 2010년대 트랩이 등장하며 사운드적인 특징은 많이 죽었지만, 남부의 억양은 여전히 빌보드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퓨쳐(Future), 릭 로스(Rick Ross)가 대표적인 예죠.


- 음울한 카자흐스탄식 러시아 어 억양을 무기로 내세운 스크립토나이트(Скриптонит/Scriptonite)


- 자기 성질머리만큼이나 배배 꼬이고 음울한 억양이 특징인 조 버든(Joe Budden)


위 두 명은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아주 높게 평가하는 래퍼입니다. 기본기도 탄탄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억양이 확실하고, 더군다나 그게 굉장히 남성미가 넘친다는 점에서 취향저격이었습니다.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억양만으로도 이들은 자신의 정서, 출신 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한마디로 캐릭터와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뜻이지요.

 

- 반면 한국 래퍼들은 스핏과 억양이 상당히 쳔편일률적입니다. 이 곡에선 플로우식이 좀 예외죠.

 

(여기에 사족을 좀 더 붙이자면 한국 래퍼 중에서 한국어 억양을 살리는 래퍼라고 한다면 화지, 이센스, 피타입, 이그니토 정도가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한국적인 랩'을 구사한다고 할까요. 그 외에는 절대다수가 정체불명의 영어 억양에 기대 랩을 하지요. 희대의 음잘알인 고 신해철 선생님도 "한국 랩은 10미터만 떨어져 들어도 영언지 한국언지 분간이 안 된다"고 지적하신 바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센스의 '경산 촌놈 더 티내 안 감추네'는 참 멋진 구절이고 억양입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요소 하나하나를 컨트롤하는 경지에 오르면 어떻게 되느냐. 목소리를 스킬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보다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적정한 톤을 잡게 되고, 정말 노련한 경우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바꾸고는 하죠. '창법'을 바꾼다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흔히들 목소리는 타고나는 거지 무슨 스킬이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과연 그럴까요? 


 

 

이 두 곡의 보컬이 같은 사람입니다. 좀 극단적인 예긴 하지만 보통 이런 메탈 계열 보컬들은 클린 보컬과 스크리밍/그로울링 보컬이 모두 가능한 경우가 많죠. 선천적인 톤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변주를 줄 수 있는 폭은 상당히 크다고 하겠습니다. '래퍼는 안 되지 않아?'라고 하기엔 해외까지 나갈 것도 없이 본킴이라는 훌륭한 반례가 있죠.

 

 

- 억양은 그대로 두고 피치만 올리고 내려도 이 정도의 차이가 납니다

 

이렇게 창법을 완전히 바꾸지 않아도 스핏을 익히면서 목소리는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 저는 록 밴드 Three Days Grace의 보컬이었던 아담 곤티어(Adam Gontier)를 그 예로 들고 싶군요. 3DG 당시 정석적인 보컬 발성과는 다르게 악 쓰듯 강렬한 소리를 내던 고티어는 새 밴드를 꾸리면서 보다 카리스마 있게 목소리를 바꿉니다. 전과 같은 화력은 사라졌지만 대신 위엄 있는 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고 하겠습니다.


 


발성으 또 다른 주요 요소로는 그루브가 있습니다. 'OO 랩 잘하나요?' 논쟁이 나올 때마다 항상 나오는 떡밥이죠. 그루브에 대한 갑론을박이 많은데에는 사실 제일 설명하기 어려운 기술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해석과 감상이 다양한 편이고, 저 역시도 이를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름대로의 설명을 해보자면 '보컬의 진행에 긴장감을 유지시켜주고 리듬을 보다 풍성 내지 유연하게 만드는 기술'이라 하고 싶습니다. 특히 흑인음악에서 중요한 만큼 제대로 짚고 넘어가고 싶지만 표현력의 한계로 정말 그루비하다고 생각하는 두 명을 올리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사족 1

록에는 그루브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분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록도 흑인음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 초창기 로큰롤의 아주 좋은 예시


* 사족 2

발성의 주요 요소로는 소울 등도 있겠지만 거기까지 가면 글이 너무 길어지고 랩을 기준으로 할 때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아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3 좋은 래퍼와 뛰어난 래퍼의 차이점 '박자'

지금까지 이야기한 발성은 일종의 피지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안무를 짜기 위한 최적의 신체 레시피라는 것이죠. 사실 피지컬이 일정 수준 받쳐주는 이상 가볍게만 움직여도 그럴싸한 동작이 나오지만, 이를 고차원적인 예술로 승화시키기란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 소위 '멍청랩' 등 사람들이 좋아하는 박자는 점점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진짜 테크니션들은 역시 어려운 박자를 구사할 줄 아는 이유입니다.


- '박자의 치밀함'

 

'박자의 치밀함' 문자 그대로입니다. 비트의 구성, 혹은 가사의 내용 등을 감안해 정교하게 박자를 구성하고 벌스를 전개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박자가 단순하고 복잡하고와는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적어도 복잡한 박자를 쓰려면 필요한 능력이죠. 국내에서는 당연히 찾아보기 힘들고 본토에서도 사실 요즘 래퍼 중에서는 제가 말하는 정도의 정교한 랩을 구사하는 래퍼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 랩 좀 한다는 루키들 사이에서 혼자 다른 세계에 있는 세 번째 래퍼 앱 소울(Ab Soul)

 

- 그렇게 어렵진 않지만 놀라울 정도로 날카로운 박자를 자랑하는 영 떡(Young Thug)

 

- 박자에 착착 달라붙는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의 보컬

 

어느 정도 감이 오시나요? 박자를 치밀하게 짠다는 말은 바꿔말해 비트에 착 붙여 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큰 박자만 얼추 맞추고 제 흥에 겨워 보컬을 진행하는 게 아니라, 보컬이 전개되는 한 순간 한 순간을 모두 컨트롤한다는 뜻입니다. 이게 가능해지면 이제 '박자를 가지고 노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러닝타임은 일직선으로 흘러가고 박자는 이를 균일하게 쪼개 규칙성을 부여하는 데 존재목적이 있습니다. 4분의 4박자, 4분의 3박자 등이 바로 그 개념이죠. 하지만 박자가 기계적으로 제자리에만 떨어진다면 큰 청각적 쾌감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정된 일정한 박자를 깨고 그 안에서 음절을 밀고 당기며 복잡한 박자를 형성하는 것이죠.

 

박자를 다루는 스킬로는 대표적으로 레이백과 싱코페이션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미는 음과 당김음이죠. 박자를 잘 타는 보컬이라면 이 두 가지 기술을 적절히 섞어 쓸 줄 압니다만, 장르에 따라 보다 중요시되는 기술은 조금씩 다릅니다. 레게, 펑크(Punk가 아닙니다. Funk입니다) 가수들은 특히 싱코페이션을 잘 살리며, 뒷박을 강조하는 힙합에서는 레이백이 더 두드러지죠. (물론 개인차가 제일 큽니다만 일반적으로)

 

- 아이슬리 브라더스의 쫄깃한 싱코페이션

 

- 탁월한 레이백으로 유명한 릭 로스(Rick Ross)


- 데미안 말리(Damian Marley)의 싱코페이션과 나스(Nas)의 레이백이 맛깔나게 어우러집니다


- 극한의 스킬을 자랑하는 안드레 3000(Andre 3000) 1 (원곡 : Big Boi - Royal Flush)


- 극한의 스킬을 자랑하는 안드레 3000(Andre 3000) 2 (원곡 : Young Jeezy - I Do)


반대로 피지컬은 좋은 래퍼가 박자를 허술하게 구성하면 어떻게 되느냐. 발성이 좋기 때문에 존재감은 뛰어나지만 곡에 제대로 섞이지 못해 그 존재감 만큼 불쾌한, 즉 '깨는'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믹 밀(Meek Mill)이 그런 경향이 좀 심한 편이죠. 자기 곡에서는 자기 무드를 살릴 비트를 골라서 잘 살리는 편입니다만, 피쳐링에서는 산통 깨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 루다크리스(Ludacris)가 피쳐링을 잘못 선택한 좋은 예시


- 아무리 박자를 쪼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릴 웨인(Lil Wayne)과 대조되는 믹 밀(Meek Mill)

 

- 드레이크(Drake)한테 발린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박자 구성이라는 것이 밀고 당기는 게 전부는 아닙니다. 발성이라는 생고기를 레이백과 싱코페이션으로 굽고 삶았으면 이젠 맛깔나게 포장할 양념이 필요하죠. 자주 쓰이는 양념으로는 라임, 박자 쪼개기, 텅트위스팅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바로 대중이 '스킬풀하다'고 느낄만한 요소들, 즉 '랩 퍼포먼스 기술'이자 '기교'입니다.


먼저 라임. 라임은 마디의 마지막에 강조할 단어를 배치함으로서 가사적 쾌감을 일으키는 역할이 더 큽니다만, 이 부분은 뒤에서 다루도록 하고 지금은 리듬의 도구로서 사용하는 라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라임은 다들 아시겠지만 모음이 비슷한 단어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적으로 사용해 리듬감과 그루브를 형성하는 도구입니다.


- 개인적으로 라임 하나하나를 잘 들리고 간지나게 쓴다고 평가하는 푸샤 티(Pusha T)


그렇다면 이 라임을 잘 쓰는 방법이란 무엇이냐. 바로 앞서 말한 '치밀한 박자구성'이 기반이 돼야합니다. 이센스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수줍은 용기'와 'Back In Time'은 라이밍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모음이 맞는 단어들이 쏟아지지만 인위적으로 맞춘 감이 느껴지고 크게 인상적이지 않은 '수줍은 용기'에 비해, 'Back In Time'은 단어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적절한 운율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 '내가 지금 라임을 쓰고 있다'고 말하듯 어색한 강세와 부실한 배치가 보이는 '수줍은 용기'의 라임

 

- 평상시처럼 말하는데 운율이 맞아떨어지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Back In Time'의 라임


이렇게 자연스럽게 라임을 쓸 수 있는 단계가 되면 그제부터는 라임 폭격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게 됩니다. 소위 말하는 '라임 떡칠'을 뽐낼 레벨이 되는 셈이지요. 여기서부터는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한 라임을 계속 밀고 나가느냐, 아니면 서로 다른 여러 라임을 섞어 쓰느냐입니다. 보통 정말 스킬풀한 래퍼들은 후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요.

 

- 래퍼도 라임으로 생각 안 했을 단어를 라임으로 체크하기도 하지만, 이런 영상이 이해를 돕긴 합니다

 

- 비교적 적은 종류의 라임을 오래 밀고 나가는 편인 테크 나인(Tech N9ne)


라임에 대한 더 많은 내용은 가사 부분에서 언급하도록 하지요. 다음은 박자 쪼개기입니다. 박자 쪼개기는 스핏만 제대로 갖웠다면 구사하기 상당히 쉬운 편에 속합니다. 굳이 래퍼가 아니라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쉽지만, 무대 퍼포먼스에 있어서는 꽤나 재미를 볼 수 있는 가성비 좋은 기술이지요. 2000년대를 주릅잡았던 뉴메탈/메쓰메탈 계열 보컬들을 보실까요?

 

- SOAD의 세르지 탄키안(Serj Tankian)의 경우 이 곡에서만 유독 박자를 쪼갰습니다

 

- 뉴메탈의 범주를 넘는 과격함으로 유명했던 머드베인(Mudvayne)과 보컬 채드 그레이(Chad Gray)

 

- 속사포 래퍼를 방불케 하는 슬립낫(Slipknot)의 보컬 코리 테일러(Corey Taylor)

 

단, 이렇게 극도로 박자를 쪼갤 경우 박자가 단순해지기 쉽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속사포는 보통 문장을 4음절(드물게는 3음절)로 쪼개 같은 패턴으로 드럼 두드리듯이 반복해 쏘아붙이죠. 워낙 쉽고 범용성이 높은데다, 이처럼 단순하기까지 한 기술이다보니 '속사포 래퍼'로 알려진 래퍼들도 사실 속도만 믿고 마구 달리는 경우는 보기 드뭅니다. 대부분 옵션 중 하나로만 남겨두는 편이죠.


버스타 라임즈(Busta Rhymes)는 커리어 후기에 가서 간간히 속도로 조지는 벌스를 내놓았을 뿐이고, 에미넴(Eminem)은 애초에 속도를 주 무기로 삼은 적이 없죠. 그나마 'Rap God'한 곡 정도. 정말 무식할 정도로 빠른 걸로 유명했던 트위스타(Twista)는 자기 복제가 심하다는 평이 많고 이제는 더 이상 핫하지도 않습니다. 머신 건 켈리(Machine Gun Kelly) 같은 경우 2집 이후 속사포 노선을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텅트위스팅을 알아볼까요. 텅트위스팅은 문자 그대로 혀(Tongue)를 튕기는(Twisting) 기술입니다. 보통 소리가 단단한 파열음(ㄱ, ㄷ, ㅂ 등)을 반복배치하고 발음을 강조해 두두두두 연타하는 식입니다. 더 설명할 게 없을 정도로 기술 자체는 단순하지만, 박자 쪼개기보다 단어 배치나 발음에 있어서 난이도가 더 높은 편이죠.이름만 봐도 아시겠지만 트위스타(Twista)가 이 기술의 마스터로 정평이 나 있는 래퍼입니다.


- 사실상 대놓고 혀 튀기겠다고 만든 곡

 

 

- 지금까지 말씀드린 라임 떡칠/속사포/텅트위스팅의 결정체격인 곡

 

下 편에서 계속

17
Comments
2017-07-07 20:55:27

완전 잘 읽었습니당 이런 글이 더 많이 올라왔으면 좋겟네요

 

하편도 기대할게요

2017-07-07 21:13:29

안읽고 댓글 달기

2017-07-07 21:13:36

와..진짜로 글 써주실줄은;;
지금 술먹고 들어와서리,맨정신일 때 볼게요.

WR
2017-07-07 21:17:22

??? 저 지목한 줄 모르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전 하농 햄 지목이요

2017-07-07 21:29:09

덕분에 도서관에서 공부안하고 잘읽음ㅎㅎ~

WR
2017-07-07 21:30:50

바람직해요 아재

2017-07-07 21:56:55

아재라뇻-_- 아직 꼬맹이한테..
수능은 잘 보셨수?

WR
2017-07-07 22:04:13

아재 나이가 스물 일곱인가 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무신 넘의 수능...

2017-07-07 22:17:08

양싸님이 글은 믿고 읽조 ㅎ
정독했습니다
박자부분은 솔직히 들어온 짬이있어서 전부 아는 내용이지만
발성부분은 전혀 모르는 분야라 재밋게 읽고 들엇네요

2017-07-07 22:47:23

영어도 한글도 아닌 스타일이 여럿 망쳐놓긴 한거같내요..
신해철님이 저런말을 한 줄은 또 몰랐내요 ㄷㄷ
여윽시 음잘알 양싸님

2017-07-07 23:21:49

잘 읽었습니다
하편도 기대하고 있을게용

2017-07-08 00:03:50

오오 하편 기대돼요 나오면 꼭볼께요!!

2017-07-09 17:26:40

오랜만에 힙플 들어와보네요 근데 제 생각은
굳이 또렷한 국어 발음이 들려야하나 생각해요미고스나 릴우지버트 같은 아티스트들도 막 또렷하다 라는 생각이 안들어서요 라임을 살리기위해 발음을 의도적으로 굴절을 준다고 해야하나... 빈지노가 그런거 잘하잖아요 어쨋든 청각적인 요소인데 크게 한국적이어야한다 그럴필요까진 없는거같아요 여기까진 그냥 생각이고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ㅋㅋ

2017-07-11 22:38:08

사족이라고 명시한 부분들 제외하더라도 글의 많은 부분이 사족으로 다가옵니다.  사족을 자제하고 영양가 있는 정보만 전달했으면 명작이었을텐데, 아쉽네요.  어쨋든 대단하십니다.

2017-07-15 08:58:11

"음학"을 하지말고 "음악"을 하라고는 말하지만, 이런 글은 "음악"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군데군데 양싸님의 열정이 느껴지네요. 양질의 글 감사합니다.

 

근데 하편 미리보기는 어디서 결제하면 되는거죠

2017-07-16 23:00:15

너무 잘봤습니다!! 정말 큰 도움이 되는 글과 영상들이었습니다~~~

너무 감사해요..이런 글들이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08-27 17:04:11

정말 도움되는 유익한 글이네요. 하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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