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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지 않은 그 날 오지 않을 그 날, 화나 「FANACO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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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5-08 15:00:54

※본 글은 객관적인 분석이 아니라 제가 받아들인,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임을 말씀 드립니다.

 

  이제는 그 멤버 한 명 한명이 한국 힙합에서 커다란 기둥이 된 추억의 레이블 '소울컴퍼니', 그곳의 소속 멤버였던 화나가 이번에「FANACONDA」라는 이름의 3집 정규 앨범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4년만에 나온 정규 앨범이고 화나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로 많은 이들이 기대감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발매된 앨범은 그 기대감들을 충분히 만족시켰습니다. 화나는 곡을 작업할 때 가사를 다 써놓고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비트에 맞춰서 가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사에 맞는 비트를 찾거나 아예 가사에 맞춰서 곡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로듀싱을 맡은 이들이 너무 힘들어서 도망간다는 농담같지 않은 농담도 나오고는 합니다. 이는 그만큼 화나가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표현을 타협할 수 없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그렇다면 그렇게까지 말하고자 했던 화나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지금부터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속산 없어 난 어엿한 Underground

영혼 판 도적단이 쪽쪽 빤 이 더러운 판 위

떳떤한 못난이"

화나「유배지에서」-FANACONDA

 

"밤낮으로 가살 쓰고 마음 가는 것 하날 추려

단 한 구절의 갈망으로 또 내 펜은 과다출혈

가냘픈 종이의 딱한 순결을 탐하는 병적 강박 충동

모든 게 다만 숭고 숭엄한 숙명을 향한 순교"

화나「순교자찬가」-FANACONDA

 

  화나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무대와 배역을 설정합니다. 이미 쇼미더머니가 주류가 되어버리고 대중화된 힙합이라는 조롱도 받는 상황 속에서, 그는 모두가 알다시피 그만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The Ugly Junction이라는 사업을 이끌며 다양성을 유지하기위한 공연들을 기획하고, 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들도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습니다. 물론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하는 이들을 이끄는 역할도 해주었습니다. 이는 확실히 대세와는 다른 길이었고 돈이나 명성이 따라오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화나는 이 문화를 지키기 위해 이 일들을 했으며, 이런 자신을 '유배지에서의 순교자'로 설정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다른 순교자들을 위한 찬가를 부릅니다.

 

"노력 없이 거저먹기로 얻어걸린 명성놀이

허영덩이 떵떵거리면서 본질을 꺽어놓지

그 존경 버린 혀로 어찌 존엄 얻으리

이 건 돌연변이 초록 구렁이 호통소리"

화나「FANACONDA」-FANACONDA

 

  이어지는 트랙은 앨범이름과도 같은 'FANACONDA'입니다. 앞서 자신의 역할을 설정한 그는 이 곡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를 마칩니다.


"칭작인의 권리 위에 놓인 힘의 논리

TV에서 비추는 Scene의 뻥튀기에 홀린

그들의 이해범위 속 이제 고집은 지겨운 핑계거리

한심해 보이는 시체놀이 또 일개 선비들 인생 허비"

화나「진실은 저 너머」-FANACONDA

 

"마냥 거대해 져버린 유통망 속 행패가 반복될 때

땅꼬맹이의 눈엔 달콤해 봬나 봐 도대체

제 감정 제대로 말 못해 랩 학원에 가서 배회

현실은 잔혹해 얘네 갈 곳 태반은 자녹게에"

화나「가족계획」-FANACONDA

 

  화나는 이전에 '그날이 오면'이라는 곡을 발표했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소수가 즐기던 음악인 힙합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우리 삶 곳곳에서 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가사입니다. 그리고 언뜻 보면 지금, 화나가 말하던 '그날'이 온 것도 같습니다. 길거리에서는 힙합 음악이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고, 광고용 노래가 랩으로 제작되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랩퍼들은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수입을 벌이들이며 대선 유세 차량에서 디제잉을 하는 장면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화나는 말합니다. "그날은 오지 않았고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보이는 힙합의 모습은 환상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미디어에서는 힙합의 자극적인 면만을 보여주어 그 본질을 가리었고, 외제차와 명품을 자랑하는 이들도 결국 방송이 만들어 놓은 주류에 편승하고 그곳에서 승리한 극소수의 랩퍼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류가 되어 권력을 가진 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애들에게는 환상을 심어 이 판에 뛰어 들게 만듭니다. 이 판이 유지 되어야 자신들의 권력도 지속될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피드백 아니 그저 댓글 하나를 바라고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오는 자녹게의 작업물들과 자신의 신념을 당당히 내뱉던 이들이 결국에는 미디어가 짜놓은 판에 뛰어드는 씁쓸한 현실을 말입니다. 이렇게 망가져버린 한국 힙합의 현실에 화나는 분노합니다.

 

"힘을 원해 하지만 현실은 벽에

힙을 원해 뭔가 이루어낼 힘을 원해

날 믿는 동생들의 뒤를 벋댈 내 친구 형제

모두를 이끌 더 센 힘을 원해"

화나「POWER」-FANACONDA

 

"굳이 남의 얘길 들어 뒤따라가는데 길들어

오직 나만의 길 들어서지 못해 제길

들어 올릴 수 없는 닻과 대면해"

화나「대면」-FANACONDA

 

  "힘을 원해." 화나는 말합니다. 후배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계속 할 수 있게 이끌 수 있는 힘을 원한다고 말합니다. 자신들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다른 아티스트들을 지원할 수 있는 힘을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화나가 느끼는 감정은 '무력감' 혹은 '허탈함'입니다. 망가진 이 상황을 일으켜 세울 힘을 원하지만 결국 그가 느낀 것은 현실의 벽입니다. 이렇게 허무한 심정으로 이제 와서 성공과 실패는 무엇이고 자신이 추구하던 증명과 영혼은 무엇인지 자문하지만, 그는 답을 찾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감정은 '대면'에서 더 깊게 들어납니다.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그 안에서 살아 남아도 현실에 주저앉는 '이시대의 이십대' 이들의 상황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시켜 화나는 한층 더 짙어진 자신의 무력함을 토로합니다.


"가면에 숨긴 덫 그 검은 Nasty Thought

가슴에 스민 모조품 Plastic Soul

꾸며내 쓴 질서 What a Blasted Show Blasted Show

What a Blasted Show

 

이건 비극 달콤한 힘을 맛본 일부 깡통들이 키운 악몽"

화나「WABS」-FANACONDA 

 

"다들 원하는 건 남부럽지 않은 모습

남부럽지 않은 돈 남부럽지 않은 현실

한두 번 맛을 본 자는 절대 발을 못 빼

잔뜩 손에 잡으려고 두 팔을 뻗고 알을 써대"

화나「세상이 어디로」-FANACONDA

 

  그렇게 좌절한 화나의 시선은 좀 더 근본적인 곳으로 향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 감춰진 현실. 그보다 더 깊숙한 곳에, 이러한 상황의 배경이 되는 시스템과 그에 응하는 인간의 본성들에 말입니다. 변하는 곡의 분위기로 보아 화나는 이러한 것들을 인식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무력함에서도 어느정도 벗어난 듯 보입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는 똑같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려 노력합니다. 그 속을 바꾸려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지나가는 개가 웃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 큰 녀석아 울면서 짜지 마라

왜 또 그리 작은 걸로 삶을 펑펑 낭비하나

하루하루 도망가듯 쫓겨 사는 건 쪽팔리잖아

아직까진 안 늦었어 팍 가슴 펴고 살길 바라 제발"

화나「Do Ya Thang」-FANACONDA 

 

  앨범을 마무리하며 화나는 말합니다. "네 것을 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바로 앞에 보이는데 무의미하게 고민하고, 머리 싸매고 있지 말라고 합니다. 물론 주변 상황과 시스템이 가로막고,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망설일 수도 있지만 바꾸려고 노력은 해봤냐고 묻습니다. 편협한 일반화와 판에 박은 변명이나 둘러대는 것이 아니라, 가식은 벗고 있는 모습의 너로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이전까지의 흐을을 볼 때 이는 화나가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망가진 현실에 분노하고 바꾸려했지만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던 화나. 그는 이제 그럼에도 자기 것을 자신의 모습으로 계속 해나가겠다고 말합니다. 결국 삶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스테리한 것이니 말입니다.

 

"너를 막은 저주받은 저 System 위

너무 많은 거부반응과 Hysterie

속을 알 수 없는 갈등 다 Mystery

모든 삶 그 모든 삶은 Mystery"

화나「Do Ya Thang」-FANACONDA

 

  화나는 위 일련의 이야기들을 김박첼라의 비트 위에서 들려줍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화나의 이야기를을 김박첼라가 훌륭하게 프로듀싱 해냅니다. 그는 화나의 이야기 하나 하나에 세심하면서도 다양한 음악을 입힙니다. 물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3-4년 동안 작업한 세션들이 버려지기도 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작업에 매진했고, 덕분에 이런 훌륭한 앨범이 저희에게 왔습니다.

 

  이제는 무색해진 'Underground'의 신념을 담으면서도 화나의 가사들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그의 행보와 음악성 덕분일 것입니다. 그리고 더 진화된 그의 랩과 피쳐링 없이 앨범 전체를 혼자서 끌고 가는 그의 역량. 이 모두를 한데 묶어 곡의 모음이 아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시킨 김박첼라의 프로듀싱. 이것들을 보자면 이번 화나의 정규 3집 앨범「FANACONDA」는 명반이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사실 최근 들어서 아티스트들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미디어를 비판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던 이들의 방송 출연을 보며 그들이 감당해야했던 현실이 안타까우면서도, 그들이 뱉었던 신념의 가벼움에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이 앨범을 들으면서 조그마한 희망사항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입니다. 뛰어난 역량에도 '대중이 반기는 음악이 아니기에 탈락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아티스트들이 살아남아서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음악을 대중들이 좋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정말로 화나가 말하는 '그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봅니다.

 

  훌륭한 음악으로 저를 즐겁게 해주시고 이런 생각도 하게 해 준 김박첼라님과 화나님에게 Respect와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도 감사를 표합니다.

 

  김박첼라님의 말처럼 FANACONDA의 이빨이 저 거인의 피부에 생채기밖에는 못 낼지라도 언젠가는 그 이빨의 독이 온 몸에 퍼져 쓰러지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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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1 09:38:20

 

정성....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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