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박첼라, 화나의 [FANACONDA] 프로듀서 워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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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9 14:43:40

 

안녕하세요. 화나의 세번째 정규 앨범 “FANACONDA”를 프로듀스한 김박첼라입니다. 원래 프로듀스한 앨범에 대한 첨언을 아끼는 편입니다. 왜냐면 음악인은 음악 자체로 모든 게 설명되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 앨범처럼 공들인 작업이고, 저와 같이 힙합 프로듀서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글을 남깁니다.


(이하 존칭 생략할게요)

이 앨범은 2014년에 첫 작업을 시작했어. 2013년 화나의 정규2집 "FANAtitude" 작업 기간에 스톤십의 똘배 소개로 처음 만났고, 타이틀곡 '신발끈 블루스'와 동명 타이틀 'FANAtitude'를 작업하며, 우린 서로의 케미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았지. 그 뒤 내 첫 정규 앨범에 'And The Story Gose On'까지 함께 하며 새로운작업에 대한 열망이 생겼어. 자연스럽게 그는 내게 3집에 수록될 몇 곡을 부탁했어. (이땐 내가 모든 곡을 쓸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았음;) 

내 프로덕션은 기본적으로 '정통힙합'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어. 태생이 락키드여서인지 이런 저런 악기를 연주하며 새로운 장르에 힙합을 뒤섞는 걸 좋아하지. 화나는 자신의 3집에 내가 가진 얼터너티브함이 담기길 원했던 거 같아. 200여 곡 정도 힙합 곡에 피쳐링하면서 뻔한 프로덕션에 지친 듯 보였달까? 힙합씬에서 가장 다양한 시도를 하는 나를 택한 건 아마도 그가 평소에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작업은 순탄치 않았어. 완성되어 있는 랩 가사에 비트를 붙이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어.(그래서 화나가 농담처럼 프로듀서들이 다 도망갔다고 했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스튜디오에 출근해서 내가 이런 저런 연주와 비트 메이킹을 하면 화나가 의견을 주고 그걸 다시 적용해 다듬고, 랩을 녹음해 어울리는지 붙여보는 방식으로 작업했지. 말그대로 이걸 무한 반복했어. 반복하고 또 반복했지... 하지만 그렇게 3-4년 동안 작업한 대부분의 세션들은 버려졌어. 대부분이 그가 원하는 100%가 아니었던 거지. 그래서 작업기간은 자연스럽게 길어졌어. 나도 사람인지라 계속 까이면 지치기 마련이었고, 내가 잠깐 외부일로 바빠지면 몇 주 작업을 쉬는 게 다반사였어. 작업 중반에는 과연 이렇게 작업해서 이 앨범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지. 

하지만 그의 집요함과 끈기는 나를 다시 스튜디오에 있게 했지. 잼을 하며 만드는 기존 방식이 아닌 좀 더 주도적으로 내가 비트 메이킹을 한 후에 화나가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내놓는 방식으로 바꾸니 몇 곡이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됐어. 1,2,6번이 그 대표적인 트랙이지. (참고로 6번 Power는 내 정규 앨범에 쓸 기타 연주를 넣었지) 그러면서 퍼즐이 짜맞히듯 다른 트랙들도 속도가 나기 시작했어. 해금과 태평소같은 악기를 넣어보자는 엉뚱한 아이디어와 여자 코러스의 적극적인 기용은 기존 힙합 프로덕션과의 차별점을 부각시켰지. 힙합답지 않은 빠른 BPM의 곡들 (9,10번)도 이 앨범의 얼터너티브함에 일조하고 있지.

프로덕션 부분에서 다른 프로덕션과 가장 큰 차별점은 티가 크게 나지 않지만,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촘촘히 설정한 오토메이션들이야. 예를 들어, 6번 파워의 경우 바이올린과 기타 연주들에 미묘한 필터링이 걸려 톤이 쉴새없이 변화하고 있어. 랩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최대한 함께 조우하는 느낌으로 만들었어. 그리고, 신디사이저가 들어간 곡의 대부분은 하나하나 세심하게 설정값들을 메만졌지. 감정선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바닥부터 천장까지 치고 올라오는 느낌을 만들어주고, 듣고 또 들으며 최선의 흐름을 찾았지. 이 작업도 반복에 반복. 둘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렸어. 

베이스의 연주도 한 몫 했어. 대부분의 곡에 리얼 베이스를 기용하여 그루브가 살아 숨쉬게 했지. 실은 요즘 한국 힙합 비트들 들으면 뻣뻣한 로보트가 만든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좀 더 신경쓰면 좋겠어. 또한, 9번의 경우 내가 아끼는 신디사이저 Pro-One의 LFO 값, Frequency 값 등등을 손수 손으로 돌려가며 그루브를 만들었지. 야릇하게 넘실대는 파형을 만들거나, 묘하게 어긋나는 피치들은 모두 의도한 것이며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졌어. 사실 요즘엔 다들 마우스질로 만들지. 결국, 화나의 집요함과 실험정신이 날 더 이상한 시도를 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어. 

또 특이할 만한 점은 모두 영화음악처럼 곡마다 인/아웃트로가 있어. 곡의 주제에 부합하는 인/아웃트로를 만드는데도 위에서 이야기했던 붙여보고 버리는 과정을 무한 반복했지. 곡마다 다른 아이디어를 쓰려고 정말 많은 음악을 섭렵했지. 대가들의 방식은 우리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됐고, 결국엔 근사한 인/아웃트로들이 탄생했어. 몇몇은 우연이 작용했지만 그런 행운을 우린 감사히 여겼지.

난 이 앨범을 통해 흡사 부처가 된 기분이야.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면서 곡을 쓰는데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달까. 앨범 작업 후반부에 잠깐 포기하고 싶었지만 화나의 앨범은 내 인생을 바칠만 했다고 봐. 눈씻고 찾아봐도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랩퍼는 국내에 없는 것 같거든. 그저 대세를 따르거나, 외국에서 유행하는 무언가를 발맞춰 내기 급급했지. 하지만 그마저도 어설프고 빳뻣했지.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없이 돈벌기에만 혈안이 된 거 같아 무척 아쉬워. 물론, 젊은 세대들의 센스를 무시할 순 없어. 음악은 철학이 아닌 놀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들이 즐기며 나온 결과물들이 마냥 나쁘다는 건 아니야. 세상은 변하고 또다른 음악이 젊은 세대를 움직이니깐. 다만 새로운 시도를 하는 젊은 예술가가 많아졌으면 할 뿐이야.

앨범이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서 다행이야. 우리의 노력이 허사가 아니었다는 것도 고맙고, 그런 시도에 찬사를 보내는 대중들이 많고 그걸 기다려온 것 같아 정말 다행이야. 거대 자본의 힙합씬 침공은 몇몇의 랩스타들을 만들었지만 마치 거대 마트가 들어서서 골목 상권을 위협하듯이 힙합씬의 생태계를 망가뜨렸지. (예를 들어 신인이 설 무대는 거의 사라졌다고 보면 돼) 그러한 마당에 이 앨범에 보내는 이 반응은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또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해. 더 많은 응원과 지지, 그리고 공유를 부탁해!

마지막으로 힙합 프로듀서들의 처우가 좀 더 개선되었으면 해. 물론 끈끈한 정으로 일하는 관계가 많은 걸 알지만 비트를 사서 작곡 크레딧에서 뺀다거나, 페이를 체불하거나 터무니없이 싼 가격을 부르는 등등 씁쓸한 일들이 꽤 많다고 알고 있어. 물론 승자독식의 게임에서 못 하는 사람은 그만큼 가치가 적게 매겨진다고 불평할 순 없지만, 마이너 리그에도 게임의 법칙이 있으면 좋겠어. 그래야 새로운 시도를 꾸준히 하는 프로듀서가 생기고, 그게 또 다른 랩 생태계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해. 

끝으로 이 글을 읽는 젊은 프로듀서들. 모두 건승하길 바래.

p.s 화나콘다의 이빨이 저 거인의 피부에 생채기를 낼 뿐일지라도 언젠가는 독이 온몸에 퍼져 쓰러지길 바라며.

 

 

 

출처 : https://www.facebook.com/kimparkchella

※ 김박첼라 님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허락하에 업데이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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