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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거 힙합과 게토화한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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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3-31 14:05:08

 

 

김봉현 힙합 평론가가 인터넷 웹진 ize에 기고한 글을 읽었습니다. 창모, ‘일리네어 키드의 등장 | http://ize.co.kr/… 이란 글인데요. 창모의 마에스트로차트 역주행의 원인을 살피는 걸로 시작해, 창모가 역주행한 배경이 일리네어의 상징자본을 상속받은 것이라 진단한 후, 이 현상이 모든 젊은이의 꿈 “‘하고 싶은 일로 성공해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얻는 삶'”으로 통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후 일리네어의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일리네어 키드가 탄생했다고 결론을 맺습니다. “일리네어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삶의 태도를 제시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팬들은 그것을 내면화하며 일리네어의 발걸음을 따라간다.”

 

멍한 기분이 들더군요. ‘마에스트로차트 역주행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고, 음악 평론가가 그걸 분석하는 거야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차트 역주행은 그렇게까지 드문 현상이 아니죠. 그 함의를 꼭 사회적인 방면에서 찾아야 하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그로부터 이르는 결론이 전혀 정확한 거 같지 않아요. 간단하게 말해보죠. 한국에서 창모나 김효은처럼 랩스타로 데뷔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젊은이들에게 보여줬다? 게다가 일리네어식 자수성가가 젊은이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삶의 태도? 이 글은 곳곳에 의심스러운 진술로 차있습니다. 김봉현이 다루는 주제는 결국 한국에서 스웨거힙합이 흥행하는 이유, 그것이 음악 팬들, 나아가 사회의 기층과 어떻게 호응하고 있는가, 와 상통합니다. 이 점에 대해 평소 생각하던 바를 풀어보겠습니다.

 

영화 장르 이론에 도상(icon)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장르의 기본 구성단위라고 생각하면 돼요. 히어로 무비에선 히어로가 변복하는 유니폼이 도상이고, 필름 누아르에선 양복과 시가, 팜므파탈이죠. 슬래셔 무비라면 사이코패스와 전기톱, 서부극이라면 황야와 권총, 열차, 인디언, 모뉴먼트 밸리 같은 거대한 계곡이 도상이지요. 음악장르 힙합에도 도상이 있습니다. 가사적 서사가 있고 캐릭터가 있으며 그것들로 구성되는 장르적 관습이 확고한 음악이니까요. 힙합의 도상은 금시계와 금목걸이, 롤스로이스, 멋진 몸매의 'shawty', 랩스타를 등쳐먹는 'Bitch', 스트릿과 게토 같은 공간입니다. 이 중 게토와 스트릿은 힙합의 장르적·ᆞ문화적 서사를 길어 올리는 원천입니다.

 

미국 힙합에는 왜 그렇게 자수성가와 부귀영화의 가사가 많을까요. 개인에 대한 사회의 책임과 복지 시스템을 강조하는 유럽과 달리, 신대륙 개척에서부터 시작한 생존주의와 자유 시장경제에 입각해 개인의 자기계발을 강조하는 미국적 전통이 한 배경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랩스타들이 척박하고 핍박받는 흑인 공동체 게토에서 성공을 쟁취했기 때문입니다. 가난과 범죄의 무간도 같은 뒷골목에서 탈출하고 싶지만, 사회적 지원은 없고 흑인의 사회 진출이 차별당하는 상황에서 단 하나의 탈출구가 음악을 통해 스타가 되는 것입니다. 스웨거 가사를 읽어보면 게토-허슬-스웨거가 서사적 세트를 이루는 경우가 많잖아요? 어린 시절에 불행했지만 죽도록 랩을 해서 지금은 부귀영화를 누린다, 이 넘치는 돈과 여자는 다 내 손으로 거머쥔 것이다, 라는 자전적 스토리요.

 

여기엔 윤리적 딜레마가 있습니다. 래퍼들은 돈 자랑을 하는 한편 게토를 고향이라 부르며 애정을 바칩니다. 하지만 성공의 서사를 빛내주는 배경화면이 되기 위해선 게토는 언제까지나 궁핍한 채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게토에 남은 형제들 모두가 살만하다면 그 곳을 빠져나온 자신의 영광이 퇴색된다는 간단한 이치지요. 게토는 장르적 관습 스웨거의 성립 전제이고 양자는 상징적 착취관계에 있습니다. 예전과 달리 힙합이 획일화 됐다 따위의 비판은 한국 뿐 아니라 미국 힙합 씬 안에서도 제기되는 레파토리입니다. 힙합 밴드 더 루츠의 드러머 퀘스트러브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과거 래퍼들의 스웨거는 런-디엠씨의 ‘My Adidas’처럼 듣는 이가 얼마든지 따라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면, 지금은 도저히 꿈 꿀 수 없는 환상 같은 사치품을 자랑하며 듣는 이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고 말이지요.

 

스웨거 가사가 본격적으로 수입되고 있는 한국에서 게토의 도상적 기능을 하는 건 무엇이냐. 좁게 보면 언더그라운드고 넓게 보면 한국사회입니다. 도끼와 콰이엇 같은 언더 출신 2세대 래퍼들은 밑바닥에서 이곳으로 왔다며(came from the bottom) 스스로 이룬 성공신화를 과시하지요. 여기서 밑바닥은 페이도 받지 못하고 작업하던 언더 씬입니다. 불과 몇 년 전 까지 힙합은 비주류 장르였습니다. 한국은 인디 예술가의 생활고가 사회적 문제가 되는 나라고요. 이런 특수한 맥락을 통해, 탑 연예인에 비하면 소박한 일리네어의 성공이 극적인 이펙트를 얻는 겁니다. “한국에서 힙합은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할 때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타협 없는 힙합을 고집하며 결국은 거대한 성공을 이루어낸 한국 최초의 (진정한) 랩 스타라고 김봉현이 일리네어에게 바치는 찬사처럼 말입니다. 이런 언더와 스웨거의 대립항 속에 언더는 탈출해야 할 수난의 장소로 은연중에 규정됩니다. 자본에 길들지 않는 자의식과 자존감의 창작지대라는 언더 혹은 인디 본연의 정체성이 부서지는 거지요.

 

한편 <쇼미더머니> 출신 래퍼들이 부르는 인생역전, 젊은 갑부의 서사는 젊은 세대가 처한 사회적 빈곤과 공명합니다. 88만원 세대라는 개념으로 젊은 세대의 빈곤이 의제화된 건 이미 00년대 후반입니다. 알다시피 실업난은 해결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매해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죠.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절대다수 청년들이 있기에 밥 먹듯이 외제차를 사 젖히는 래퍼들의 삶이 특별해 보이고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쇼미더머니> 신드롬이 암시하는 현실 하나는 그겁니다. 한국 사회가 거대한 게토가 되어가고 있다는 거지요. 시청자들은 빈곤이 일상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탈출하는 젊은 래퍼들의 승천의 서사에 취합니다. 상업씬 규모에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있고 저변도 방대한 미국 힙합에선 랩스타의 꿈이 게토를 벗어나는 현실적 수단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은 안 그렇죠. 아무리 힙합이 상업화됐다지만 랩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잡아야 백 명쯤 될까요. 비와이와 일리네어 레코즈 같은 슈퍼스타는 손가락으로 꼽아야 하고요. 한국 힙합은 상업씬 등용문이 <쇼미더머니>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쇼미더머니>도 기성 래퍼들이 돈을 더 땡기고 싶어재탕 삼탕을 불사하며 출연해 아마추어 출연자를 밀어내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었습니다. 래퍼가 돼서 도끼처럼 살겠다는 건 로또 당첨만큼 가능성이 낮습니다. 한국 힙합의 허슬러 서사는 완벽한 판타지입니다.

 

 

스웨거 가사는 차와 시계를 자랑하며 평판과 긍지를 대신합니다(“니들이 날 욕해봤자 나는 잘 살고 너는 못 살지같은 가사들). 부귀영화를 질투하는 헤이러를 상정하고, 물질적 성공을 곧 근면함과 재능의 징표로 강변하는데, 이런 논리 속에서 빈곤은 개인적 자질의 결핍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사회 구성원 다수의 빈곤을 암묵적으로 경멸하며 성립하는 가사입니다. 개인의 성공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합니다. 재능만 있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요. 자신이 놓인 환경과 핏줄과 배경과 기회가 작용하고, 어느 한 순간의 성패가 평생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일리네어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은 허슬과 재능으로 동시대 힙합 씬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갔고 누구라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거기엔 그들 개인을 넘은 구조적 요인도 작용했죠. 가령 그들이 2011년 인디레이블을 결성해 투자자에게 뺏기는 것 없이 알짜배기 매출을 올린 건 10여년에 걸쳐 언더그라운드 시장이 형성되었었기 때문입니다. <쇼미더머니>를 만나 결정적 도약을 이룬 것도 힙합을 차세대 트렌드로 지목한 문화시장의 흐름과 변화 덕분이고요. 그 변화를 이끌어낸 데엔 90년대부터 무대에 오르며 힙합을 알렸지만 부와 명예는 얻지 못한 다른 MC들의 기여도 있는 겁니다. 창모 같은 일리네어 키드는 말할 나위 없죠. 창모 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해도, 예전 같으면 신예 래퍼가 행사장을 순회하며 지폐를 세는 게 가능했겠습니까? 김봉현이 말하듯이창모가 차트 역주행을 이루며 비슷한 실력을 가진 신인 사이에서 돋보일 수 있는 것도 일리네어의 상징자본을 상속받았다는 기회의 대물림이 결정적이죠. 반면에 타이거 JK가 콰이엇과 창모 보다 끼와 노력이 부족해서 지금껏 기획사를 옮겨 다니며 불우한 사건을 겪었겠습니까. 사회적 차원으로 넘어가자면, 빈곤 또한 개인의 탓을 넘은 사회적 문제입니다. 강남구 월 사교육비는 전국 평균의 6배가 넘고,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간 사교육비 지출은 17배 차이 납니다. 이 차이는 입시 결과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서울대 합격자 비율은 강남구가 강북구에 비해 21배 높고, 특목고 출신은 일반고보다 65배 많이 합격합니다. 졸업 후엔 전문직 종사자와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삶이 갈리겠지요. 한국은 이미 계층이동이 단절된 사회입니다


핵심은 일리네어의 성공신화가 랩스타를 꿈꾸는 극소수에게 롤모델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한 절대다수에게 공허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겐 성공의 신화 보다 실패의 우울이 가까이 있습니다. 물론 일리네어의 현재는 그들이 이룬 성취로 존중할 수 있습니다. 판타지는 전통적으로 인기 있는 오락 소재이기도 하고요. 랩스타 판타지를 엔터테인먼트로 즐긴다면 모르겠으되, 거기서 무리하게 사회적 교훈을 찾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그건 무의미할 뿐 더러 심지어 해롭습니다.

  

한국사회가 게토화되어 간다는 징후는 아이돌 고시가 성행할 때부터 관측됐습니다. 케이팝 스타를 꿈꾸며 적지 않은 중고생들이 기획사 오디션을 전전하는 현상 말이지요. 스웨거 힙합의 유행은 이것과 한패의 현상입니다. 그 많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의 난립도 마찬가지죠.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 통로가 틀어 막히니까, 미디어와 스포츠 스타가 되어 일확천금의 바늘구멍을 뚫으려 합니다. 미국 흑인사회가 정확히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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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7-03-31 12:32:13

아 히플에도 글 올리시는군요

WR
2017-03-31 21:11:02

네, 가끔씩 힙합을 주제로 글을 쓰는데 글을 더 넓게 공유하자는 차원에서 힙플과 엘이 두 군데 다 올리고 있습니다. 

2017-04-01 16:12:34

이번 글은 이슈가 되시네요ㅋㅋ김봉현도 읽었더라구요

 

생각해보면 '게토 감성'자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닌 듯해요. 피상적인 연결이지만, 장난으로 시작하자면,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에서 개천은 게토와 그리 멀지 않은 의미에 있겠지요. 물론 이런 속담이야 찾으면 외국 어디에나 있겠지만요ㅋㅋ

우린 제국이었던 적도 없지요. 당연히 마인드셋도 그러했을 테구요. 식민지를 겪었고, 짤막한 살만함은 아이엠에프가 찾아와 끝났구요. 헬조선이란 말을 꺼낼 필요도 없이, '한의 민족'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잘 말해준다고 생각해요. 마치 한국인의 어떠한 영혼을 가리키는 듯한 그 말은, 결국 그저 힘들게 살아왔다는 한탄에 불과하니까요.(그것이 뭐 어떻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위인전을 지나 멘토와 자기계발서를 거쳐, (우연히 쇼미더머니를 통해) 힙합과 만났을 때 반응이 커질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가 그런 감성이라고 봅니다. 게다가 스웨거는 고리타분하게 충고하지도 않고, 단순 울분에 차 소리치는 것보다 세련됐으니까요. 아이돌(=셀럽)의 장점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구요. 

2017-03-31 14:01:49

 좋은글 감사합니다...

너무 좋은글이라 페이스북에도 연동해서 보다 많은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조회수가 엄청나게 늘어나네요

 

시간되시면 자주써주세요!

 핵심을꼬집으셨네요 필력도 어마어마하시고...

WR
Updated at 2017-03-31 21:59:39

글을 좋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글 자주 소개해주세요 ㅎ 

2017-03-31 14:17:39

일리네어가 노래나 인터뷰로 제시한길은 꼭 힙합씬만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각자의 길에서 하면된다라는걸 제시한것 아닌가요

WR
2017-03-31 21:14:50

제 말도 그런 말이죠. 랩스타가 되는 것 자체도 힘든 일일 뿐더러, 그걸 떠나 '각자의 길'에서 사회적 성공을 이루는 것 자체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자기계발/자수성가 가사가 판타지라는 거고요. "계층 이동 통로가 단절되었다"는 대목은 그런 취지에서 쓴 것이에요. 

2017-03-31 15:45:04

a better tomorrow의 인트로만 들어도 일리네어의 지향점은 명확하죠.
멈추지 않고,그들의 움직임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에게 본인들의 긍정 메시지를 전파하는 거죠.
단순히 그저 돈벌자 식의 음악은 아니라 생각했으나..
소위 일리네어 키드라 할 수 있는 분들도 그 점은 잊지 않으시길 합니다.

WR
Updated at 2017-03-31 21:18:30

말씀대로 일리네어식 가사가 꼭 돈벌이로만 흡수되는 건 아니겠지만 차와 시계, 여자 같은 물질적 요소가 가장 큰 포인트란 사실도 간과할 순 없죠. 저는 저런 식의 자기계발/성공신화 이야기가 사회적 울림이 사라진 시대라고 말하는 것이고요.

2017-03-31 21:39:38

글의 요점은 잘 이해했습니다.
그렇지만,이 글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는 분들이나 일리네어키드를 꿈꾸는 분들에게 짚어줘야 할 부분이라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WR
2017-03-31 21:56:38

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2017-03-31 16:52:50

재밋는글입니다

WR
2017-03-31 21:17:22

감사합니다-

Updated at 2017-04-02 14:29:29

잘 읽었습니다.

WR
2017-04-02 23:29:35

감사합니다-

2017-04-06 12:51:55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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