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앞서=
| ★★★★ [FANA - FANAttitude] 자기 존재의 광신도 | HIPHOP-TALK
위 링크는 4년 전 본인이 작성한 화나 2집의 리뷰이다. 힙플이 예전 리뷰게에서 소스 그대로 가져온 탓인지 태그가 깨진 감이 없잖아 있다. 해당 리뷰와는 큰 상관관계는 없지만 그의 음악적 색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참고하기에 도움이 되는 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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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2집 [FANAttitude]로부터 약 4년 만이다. 소울컴퍼니 해체 이후 화나는 그 어떤 레이블에도 속하지 않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길을 걸으며 묵묵히 활동을 이어왔다. 어글리정션. 그가 런칭한 독자적인 공연 브랜드이면서 동시에 그 공연이 벌어지는 자그마한 공간. 쇼미더머니를 기점으로 TV의 스포트라이트가 힙합을 조명하기 시작하고 많은 뮤지션들이 성공을 꿈꾸며 화면 안에서 각축전을 벌일 때 화나는 그 작은 공연장에서 자신만의 음악적인 신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FANACONDA]는 그동안 화나가 느낀 감정과 고뇌,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을 담아낸 앨범이다.
[FANACONDA]는 크게 ‘분노->소망->다짐’의 감정선을 타며 진행된다. 전반부의 분노는 ‘시스템’에 대한 분노이다. 장르가 자본주의의 논리에 변질되는 상황을 바라보는 화나의 시선에는 허탈함과 분노가 담겨 있다. 판은 커졌지만 갈 곳 없는 씬의 구성원들,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발버둥 치지만 점점 경제논리 아래에 음악의 본질이 잠식당하는 모습. 화려한 조명 아래 힙합은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 사랑의 형태는 점차 왜곡되기 시작했다. 화면 안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뮤지션이 아닌 다른 이들은 설 곳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화나는 활동을 갓 시작한 신인이나 TV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는 이들을 위한 공간, 이들의 ‘유배지’를 만들었다. 그 장소가 바로 “어글리 정션”, TUJ인 것이다. 지난 정규작인 [FANAttitude]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첫 트랙 “Move Again”에서 화나 스스로를 ‘자기 존재의 광신도’로 표현한 부분이었다. 자기 존재만을 숭배하는 광신도가 사회의 흐름에서 벗어나 만들어 낸 유배지 ‘어글리정션’에서 자신의 재등장을 노래한 “유배지에서”, 그리고 다음 트랙으로 이어지는 “순교자찬가”는 화나의 음악색이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여전히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지 않았음을 어필한다.
이러한 감정은 “가족계획”에서 극대화된다. 그가 2006년에 발표한 싱글 “그날이 오면”의 정신적 후속작이다. 화나는 당시 이 곡을 통해 힙합문화가 범사회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칠 ‘그날’을 고대했다. 어떻게 보면 가리온이 도달하고자 했던 “약속의 장소”와도 상응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가리온이 아직 그 ‘약속에 장소’에 도달하지 못했듯, 화나 역시 “가족계획”에서 ‘그날이 아직 오지 않았음’을,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름을 이야기하며 현재 상황에 대한 분노와 허무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윽고 작금의 상황을 타개할 힘을 소망한다. 이런 바람을 노래하는 곡이 “가족계획” 다음으로 이어지는 본작의 리드 싱글 “POWER”이다.
“POWER”는 화나가 [FANACONDA]에서 하고픈 궁극적인 이야기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어지러운 지금의 상황 속에서 자신은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면 좋을지를 끊임없이 고뇌하며 방황한다. 제로섬게임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성공과 실패 이분법적으로 나뉜 뮤지션들의 면면을 보며 그 중간 어딘가에서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힘을 갈구한다. 고난의 길을 걸어왔던 자신, 그리고 이 길을 뒤따라 걷는 후배 뮤지션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되풀이되는 역경을 막기 위한 힘. 하지만 화나 역시 현실의 벽에 매번 부딪혀 좌절하고 만다. “대면”은 이러한 현실의 벽에 대한 좌절을 직설적으로 풀어놓은 곡이다.
과연 이러한 분노와 고민, 좌절의 끝에 화나가 내린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최후반부 트랙인 “Do Ya Thang”과 “12 Boxes”에서 답이 드러난다. 굉장히 단순하다. 바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 화나는 지금까지 그 분노를 훌훌 털어버리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자리를 떠난다. 앞서 보여준 답답함, 혹은 멜랑콜리하거나 음울한 감정들을 지나 최후반부에서 보여주는 트랙들의 무드는 밝고 경쾌하기만 하다. “Do Ya Thang”에서 보여주는 경쾌한 기타 리프는 그의 고민들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음을 암시한다. 뒤이어 가스펠적인 요소가 반영된 화나의 보컬로 시작되는 “12 Boxes”는 DJ 웨건의 산뜻한 인스트루멘틀 아래에서 다 끝내지 못한 일들을 마무리 지어야 함을 이야기하며 여운이 남는 마무리를 선사한다. 이렇게 화나가 스스로 던진 의문에 답을 찾아나가는 약 41분의 여정에는 어떤 동료 랩퍼나 보컬리스트의 목소리 하나 들어가지 않았다. [FANACONDA]가 화나 자신의 앨범이듯, 자신의 생각과 이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고뇌 역시 자신이 스스로 풀어나가야 함을 관철하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크게 ‘분노->소망->다짐’으로 정리할 수 있는 [FANACONDA]는 화나 특유의 다양한 어휘구사와 이를 활용한 절묘한 라이밍이 듣는 쾌감을 배가한다. 우리가 화나의 앨범에서 언제나 예상할 수 있듯, 산발적으로 뿌려댄 단어들이 퍼즐 조각 맞춰지듯 절묘한 리듬감을 형성하고, 나아가 하나의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단어가 문장이 되고 트랙이 되면서 하나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서사의 분위기를 더욱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프로듀서가 큰 비중을 맡았다. CD에만 수록된 DJ 웨건의 “12 Boxes”를 제외한 10 트랙은 모두 김박첼라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그의 손을 거친 10곡의 트랙은 곡마다 인트로와 아웃트로 파트를 따로 부여해 각각의 트랙 독자적으로 완결성을 지닌 것이 특징적이다. 붐뱁, 덥, 펑크 등의 다양한 사운드 소스를 끌어와 각 트랙마다 독특한 개성을 부여한다. 이 중에서도 사운드적으로 주목할 트랙은 태평소를 적극 활용해 아라비안의 분위기를 끌어낸 “FANACONDA”와 멜로디컬한 훅과 밝은 무드를 기반으로 흡사 뮤지컬과 같은 분위기를 재현하지만 가사 면으로는 부정적인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더욱 극적인 메시지를 연출한 “WABS”일 것이다. [FANACONDA]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1집 [FANAtic]의 추상적이고도 멜랑콜리한 음악색을 유지한 채 그의 현실과 생각을 풀어낸 2집 [FANAttitude]를 반쯤 섞은 듯한 분위기이다. 그렇기에 이번 앨범에서 보여주는 독특한 무드는 그의 지난 작품들과 비슷한 궤를 따르면서도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2년, “쇼미더머니 시즌 1”이 한창 시작할 무렵이었다. 화나는 그 프로그램에 ‘참가자’로 출연할 것을 제안받는다. 지금이야 모두가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우며 앞다퉈 지원하니 놀라움은 있어도 큰 감흥 없이 받아들여지겠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제법 이슈가 될 법한 이야기였다. 장르팬 뿐이 아닌 뮤지션들마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에 대한 리스펙이 없다’는 의견에서부터 ‘나가서 홍보하면 좋은 거지 뭘 그렇게 따지시나’의 양분된 의견이 엇갈렸다. 화나는 이러한 해프닝의 소회를 개인방송에서 풀어내며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는 힙합은 스머프라고 생각해. 그냥 우리끼리 즐기면 되는 거지”-
이 역시 많은 이야기를 오가게 만들었다, 크게는 힙합정신과 상업주의 중 어느 부분에 비중을 두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립으로 이어졌다고 보면 될 것이다. 어떤 의견이 궁극적으로 옳았든 간에 결과적으로 화나는 자신의 신념대로 ‘어글리정션’이라는 스머프 마을을 만들어 독자적인 생태계를 꾸려나갔다. 이것이 그가 내린 답이었다. 많은 이들이 화면 밖에서 보이지 않는 그의 모습을 주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분명히 그의 움직임에 호응하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결과론적 시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의 행보는 많은 문제점을 빚고 있는 현재의 시스템에 대한 저항, 혹은 희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FANACONDA]안에서 계속 이야기한 고뇌에 대한 해답이다.
그렇게 ‘해야 할 일을 하자’는 화나의 메시지에 근래 들어 한국 장르씬에 대한 일종의 환멸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던 나 역시 1년 만에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글은 화나가 던진 메시지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다. 환멸과 부정만이 시스템을 거부하는 방법이 아니다.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혹은 해야 하는 것을 해야 할 것. [FANACONDA]는 우리가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스머프의 작은 움직임이 빚어낸 결과를 목격한 순간이었고, 이는 곧 나와 같은 사람들을 다시금 움직이게 하는 방아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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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진데 이벤트..커트라인이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