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국 힙합 VS 현재 한국 힙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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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5-05 16:35:38

매거진 게시판에 

 | 삭제되었거나 존재하지 않는 게시물입니다. 라는 글이 올라왔더군요.

 

글의 요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한국힙합은 과거 보다 지금 훨씬 발전했다. 믹싱 같은 기술적 요소는 물론 가사적 다양성도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가사 쓰는 작법이 발전했다. 한국 힙합은 망하지(?) 않았다. 나름의 문제점은 있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과거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히 미화하지 마라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가령 자본이 유입되며 파이가 커졌고, 그런 만큼 기술적 요소는 더 발전했고 과거에 비해 힙합 본연의 사운드가 대중화된 상태죠. 그런데 허수아비치기를 하는 글이란 인상도 강하고, 인식이 부정확한 거 같아요. 가령 현재 한국 힙합을 향해 제기되는 비판이라면 들을 만한 가사가 없다. 자기자랑 가사로 획일화됐다” “양적으론 발전했지만 다양성은 없어졌다일텐데, 그렇다고 힙합이 망했다라고 까지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이 글은 심지어 홍대에 앉아서 술만 쳐마시고, 앨범은 안내고 시장 키울 생각도 안했던 꼰대 랩퍼들이 힙합을 망쳤다는 극언을 하고 있습니다. 막연히 과거를 미화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턱대고 깔아뭉개는 건 더 큰 문제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돈이 많이 유입될수록 기술은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전 래퍼들이라고 사운드에 투자를 안 한 건 아니에요. 주석 같은 경우 2001년 정규 데뷔작 ‘Beat 4 Da Street’을 미국의 '스테일링'이란 스튜디오에 가서 마스터링했습니다. 알다시피 그 시절 주석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죠. 예전 언더그라운드에서는 더 콰이엇처럼 집에서 믹싱하고 마스터링하던 뮤지션이 많았지만, 마스터플랜 정도만 돼도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데프콘 2‘city life' 앨범도 당시 기준에서 사운드가 훌륭했던 앨범이에요. 데프콘 1집의 ’POWER TO BOB'은 미국 믹싱 엔지니어 밥 파워에게 바치는 헌정곡인데, 예전 언더 래퍼들이 사운드라는 지점에 나름의 관심을 품고 있었단 걸 엿볼 수 있죠. 당시엔 지금보다 자금 사정이 훨씬 부족했지만, 부족한 예산 안에서도 음악적 발전을 위한 투자를 했었단 말이죠. 당시 오버에서 활동하던 무브먼트 크루도 제대로 된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를 고용하며 작업했으니 사운드 퀄리티가 확실히 괜찮았습니다. 지금 들어도 부족하단 느낌이 안 들어요. 요즘엔 시즌 마다 행사용으로 내는 싱글 음원이 많습니다만, 어떤 음악적 지향을 갖고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케이스가 그렇게 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찾아보면 의식있는가사를 쓰는 래퍼들이 있다는 건 좋은 지적입니다. 하지만 현재 힙합 신이 어떠하냐를 평가하려면 전체적 경향과 스펙트럼을 놓고 판단을 해야죠. 머니 스웨거 가사가 부흥한 쇼미더머니 이후의 시대, 대략 2012년 이후에 데뷔한 래퍼들 중 그 트렌드에서 빗겨난 가사를 쓰는 래퍼가 얼마나 됩니까. 저는 화지, 넉살, 저스디스, 던말릭, 슬릭 정도 말고는 잘 모르겠습니다. 거기서 몇 명 더 꼽을 수 있겠습니다만, 그 숫자가 널리고 널렸다고 할 정도는 아니죠. 자기과시 가사란 큰 트렌드가 지배적인 상태고, 거기에 대해 예외적 무브먼트를 보이는 래퍼가 언더 혹은 인디 시장에서 활동하는 상태라는 것이 정확한 규정입니다.

 

연간 음원 차트를 확인해보세요. 힙합이 메인스트림이 되었다고 하지만, 거기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음원 대부분은 쇼미더머니 음원이거나 산이, 매드씨 같은 발라드 랩입니다. 전자는 자기 과시 일색이고 후자는 사랑 노래죠. 10년 전에는 오버라고 해도, 전체 음악 생태계에 가사적 다양성을 부여해주는 힙합 트랙이 많았어요. 리쌍의 ‘rush' 'fly high' '좆까라 마이싱’, ‘광대다듀의 고백’, 에픽하이 ‘fan' 드렁큰 타이거 ’good life' '소외된 모두 왼발 앞으로같은 가사죠. 저 노래들은 삶을 향한 도전의식, 실패한 사람들을 향한 격려, 주류 가요계를 향한 비판,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의식, 동년배 남성들의 자조의식, 팬덤 문화에 관한 논평을 담고 있고, 삶을 술에 빗대 노래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함께 행진하자고 외쳤습니다. ’8:45 heaven'검은 행복처럼 아티스트의 자전적 이야기를 하는 노래가 히트하기도 했습니다.

 

언더 같은 경우도 그래요. 빅딜처럼 하드코어 힙합, 남성적 가사를 쓰는 그룹이 있었고, 소울컴퍼니처럼 일상을 섬세하게 다루는 그룹이 있었고, 가리온처럼 언더 문화와 힙합에 대한 성찰적 가사를 쓰는 그룹이 있었고, 오버클래스처럼 자기 과시 가사를 쓰는 그룹, 유엠씨처럼 문학적 요소를 극대화한 가사를 쓰는 래퍼가 있었고, 주석처럼 랩스타 캐릭터를 추구하는 래퍼가 있었죠. 이렇게 다양한 생태계가 형성된 상태였습니다. 가령 소울컴퍼니라고 해도 그 안에서 캐릭터가 다양했습니다. 콰이엇은 상자 속 젊음같은 노래로 입시 교육 속 동년배의 삶을 대변했고, 이루펀트는 좀 더 감성적인 가사를 썼고, 로퀜스는 사회비판과 하드코어 가사를 팠고, 화나는 소외된 잉여의 감수성을 불렀죠. 지금도 래퍼 마다 캐릭터와 스펙트럼이 없는 건 아니겠습니다만, 개인의 자의식이 아니라 자기 과시형 가사라는 정해진 양식에 맞춰 가사를 쓰는 관습이 대다수입니다. 03년이었나요. 키비는 소년을 위로해줘라는 트랙으로 남성성의 사회적 강요에저항하는 자의식을 표현했는데, 남성성이라는 코드 하나로 가사 관습이 수렴되는 현재와 대비하면 울림이 있죠.

 

리릭적 요소를 넘어, 현재 힙합 신에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건 부정하기 힘듭니다. 이건 모든 문화 양식이 상업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해요. 과거에는 소울스케이프 같은 저명한 DJ‘180G BEATS'창작과 비트같은 명반을 발표하며 입지를 갖고 있었고, DJ son'The Abstruse Theory' 앨범으로 ABSTRACT 힙합을 소개했습니다. 렉스와 네가, 스킵, 웨건, 버스트디스, unknownDJs 처럼 턴테이블리즘에 치중한 DJ도 있었죠. 한편, 페니와 랍티미스트, 프라이머리, 뉴올리언스 같은 프로듀서들이 네임밸루를 갖고 독자적으로 활동하며 솔로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지금은 랩스타외에 다른 직군의 존재감이 많이 줄거나 보조적 존재가 됐죠(특히 DJ. 프로듀서 같은 경우 잘 나가는 이들은 예전보다 훨씬 돈을 잘 벌긴 하겠죠). 이건 쇼미더머니 중심으로 재편된 산업 구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언더라는 공간은 직업적 활동과 비직업적 활동의 경계에 있습니다. 때문에 지금처럼 힙합이 돈이 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느슨하게 작업하는 사람도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 동안 언더에서 발매된 앨범이 수백장이고 그 사람들이 언더그라운드라는 신 자체를 만들었으며, 그것이 기술과 인프라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된 것인데 어떻게 홍대에서 술이나 먹으며 놀던 꼰대 래퍼들이 힙합을 망쳤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저 글의 작성자는 예전 음악을 듣지도 않던 놈들이 뭣도 모르면서 과거를 미화한다고 말씀하십니다만,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얼마나 예전의 음악과 힙합 신에 관해 알고 있는지 의문입니다(술만 먹고노는 홍대 꼰대 어쩌고는 스윙스 같은 래퍼가 자주 말하는 레파토리인데, 그런 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따라 뱉는 것은 아닐까요?). 요는 현재를 개탄하기 위해 과거를 미화하는 것도 아니고, 현재를 뽐내기 위해 과거를 무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현재를 위한 반면교사로 삼는 일이 필요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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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017-05-04 22:12:14

글을 작성하면서도 고민을 많이 하신 흔적이 보이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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